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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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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8. 14:39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코로나19가 인간들의 일상을 멈춰 세우거나 말거나 자연은 흘러갑니다. 장마도 태풍도 끝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어릴 때 보던 따가운 햇살과 뭉게구름도 보입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특히 농부와 어부들의 피해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었지요. 좋은 소식은 대법원이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전교조가 다시 노동조합 지위를 회복할 수 있게 된 소식이었습니다. 대법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언제든지 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을 직권 취소할 수 있었지만 외면해 왔습니다. 7년 사이에 무려 서른 명이 넘는 교사들이 학교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떠돌았습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빨리 이들을 복직시키고 해직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나쁜 소식은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였죠. 의사 수를 늘리자는 정부 방침에 자기들 수익이 떨어질까 봐 온갖 해괴한 논리로 진료를 거부하며 집단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의대생은 의사 수, 정말 부족하냐’, ‘아픈 데도 진료 받지 못하신 분이 정말 있냐고 어이없는 팻말을 들고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몰라서 묻냐?”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전교 1수준이 그것뿐인가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10월호 특집에서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독자님들, 그런 후안무치한 자들한테 치료받지 않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916

발행인 안건모

 

 

목차

 

책이 이끄는 여행

평등 세상을 꿈꾸며 걷는 단양팔경 김용심

 

13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5 배를 육지로 올릴 때 황은주

18 궁중족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윤경자

22 전교조가 합법노조로 회복한 날 구자숙

28 삼천포에 살아요 구륜휘

30 달려라 밥묵차 성미선

36 아버지,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다 진솔아

40 13만 원, 아니 14만 원만 받아 주세요 이근제

4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윤혜신

통통수제비

48 살아온 이야기

승무원이 꿈이었어요 김수련

54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55 시 읽고 감상하기

땅을 파서 먹고살 생각은 어떨까? 이규동

58 교장 일기

오늘 아침엔 뭐 먹었어? 최관의

63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생애주기 권해진

 

일터 이야기

67 일터에서 온 소식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 김계월

71 12만 방과후 강사들은 개인사업자가 아닙니다 김경희

77 작은책 법률 상담소

보석 제도란? 양성우

 

특집_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82 ‘전교 1들에게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이향춘

88 한국 의사 연봉은 OECD 최고 수준 윤효원

94 의학생들의 국시 거부에서 나타난 문제점 박찬호

100 의사 집단 진료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석균

106 의사 파업이 드러낸 의료제도의 현주소 문정주

 

112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14 옛 그림 속 여성들

신부 나이 열다섯 살 이종수

120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의 외침 Black Lives Matter 고태경

126 어린이 해방과 평화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주시오 이주영

132 생태 이야기

범람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려면 박병상

138 존버 씨의 시간들

관행과 실적 그리고 자살 김영선

14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동물 그림에 건 희망 박찬희

150 독립영화 이야기

미지의 세계에 들어선 엄마에게 축복을! 류미례

156 책 읽고 딴 생각

청소부환경미화원으로 이름이 바뀐들 변정수

160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64 지난 호를 읽고

166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0. 8. 27. 15:03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문재인 촛불 정권이 탄생하면서 금방 바뀔 줄 알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도 금방 규명될 줄 알았고, 전교조,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직되고, 비정규직이 감축되고, 양심수들도 석방되고, 정당한 파업을 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도 취하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국회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국회를 마비시키는 미통당 때문이라고 판단해 여당에게 180석 정도,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줬습니다. 여당 의석만으로 법을 뜯어 고칠 정도로 몰아준 것입니다. 이제는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정기 국회가 열리면, 건국 이래로 사상을 검증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데 써 먹던 국가보안법은 폐지되는 걸까요?

수구 세력들이 발악을 합니다. 지난 815일 광복절, 나라를 찾은 기쁨을 나눠야 할 뜻 깊은 날에 전광훈 같은 극우 세력들이 광화문을 점령했습니다. 민족이 해방된 날에 제국주의의 상징 성조기를 흔들고, 우리나라를 짓밟았던 일장기, 욱일기까지 등장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도 확산시켰습니다. 대체 어쩌자는 걸까요.

독자님들, 이달 특집은 지난 730일 국회에서 속전속결로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입니다. 서민을 위한 법인데, 왜 수구 미통당과 찌라시 언론에서는 이제 전세는 씨가 마를 것이고, 집값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협박을 하는 걸까요? ‘여러분, 이거 다아 거짓말인 거 아시죠?’

 

2020918일 안건모

 

 

목차


책이 이끄는 여행

그들의 마지막 길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최규화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회사 횡포에 맞서 볼 만할까요 -최창덕

19 소성리 부녀회장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 -손소희

25 은혜롭고 평화로운 은평마을이 사라졌다 -박지현

29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오징어김밥 -윤혜신

35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36 살아온 이야기

너는 우리와 달라 -김수련

42 시 읽고 감상하기

130원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박영수

45 교장 일기

교장과 수다 떨 수 있는 학교 -최관의

50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슬기로운 한의사 생활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5 우리는 어떤 내일에 닿을까 -이창근

61 벼랑 끝에 매달린 울산 북구 체육강사 -김문오

68 기간제 교사는 교사다, 아니다,

정부 입맛대로 정한다 -박혜성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김묘희

 

특집_ 주택임대차보호법

78 올겨울 이사 갈 집이 남아 있을까? -이하나

82 겨우 2년 거주제? 반 사회적 범죄 -최창우

86 세입자가 건물주한테 대들 수 있는 법 -이성영

90 감동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최지희

96 내가 방문한 곳은 이었다 -이선영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옛 그림 속 여성들

화가 신씨, 혹은 현모 신사임당 -이종수

108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소비자 권력과 여론 -고태경

114 어린이 해방과 평화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이주영

120 생태 이야기

집중호우에 물꼬 둘러보던 일상으로 -박병상

126 존버 씨의 시간들

아픈 게 내 탓이 아니야 -김영선

132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마음과 눈과 손으로 그린 그림, 동물화 -박찬희

138 독립영화 이야기

특별하지 않은 엄마 이야기 -류미례

144 책 읽고 딴 생각

허구인지 실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소설 -변정수

148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52 지난 호를 읽고

154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8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베테랑 월급이 50만 원 적다

한영미/ 마트 시식 코너 노동자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가 덮칠 줄은. 전염병 때문에 지형 구도가 이렇게 달라지는 걸 보는 건 내 평생 처음이다. 마트에서 시식 알바를 하던 나는 오늘 갑자기 실업 상태가 됐다. 서울시에서 코로나 때문에 시식을 금지하라는 공문이 내려와서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난들 목숨 걸고 시식 일하고 싶었을까? 그렇지만 코로나는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고 밥은 안 먹으면 확실히 죽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귀한 내 목숨을 최저임금에 걸었었다. 그런데 오늘 출근하자 시식을 금지한다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란다.

사실 세상이 이럴 때 마트에서 시식하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그러나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도, 내일 먹을 밥그릇은 빼앗더라도, 숟가락까지 빼앗지는 말아야 한다. 마트 담당자에게 걱정되어 물었더니 자기들은 서울시 공문을 이행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하니 너희들은 회사에서 알아서 하겠지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마트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사원들은 마트에 물건을 대는 각자의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파견직 사원이므로 이럴 때 마트는 간단하게 사람을 정리할 수 있다.



기분이 더러웠다. 나와 자매처럼 지낸 고정 사원에게 회사에서는 어떤 입장인가를 물었다. 고정 사원 역시 나와 같은 회사에서 파견된 최저임금자이지만 마트에 물건을 진열하는 사원이므로 마트 입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또 고정 사원은 회사와 나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는 곧 나오게 되겠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코로나가 기승인데 아무 대책 없이 무조건 기다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동안 월급 주는 것도 아니고. 상황 변화 없이 일을 다시 하게 되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았다. 나는 회사에서 파견된 고정 사원에게 나도 생활하는 사람이니 차라리 해고해서 고용보험을 타게 해 달라고 했다. 나와 친구처럼 자매처럼 지냈던 회사 고정 사원은 이상한 논리를 폈다.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회사는 관계없다는 이야기다. 나로선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지고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 심각한 일인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즉 고용보험도 뭣도 없이 손가락 빨고 기다리면 자기들 필요할 때 부른다는 이야기다. 나는 마음이 많이 상했다. 오늘 아침 때려잡은 바퀴벌레랑 내가 뭐가 다른가 말이다. 그날 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와 표정이, 그리고 회사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가 서운했다. 나는 고정 사원에게 내 상한 심정을 퍼부었다.

마음대로 해. 회사가 월급 줄 돈이 없으면 내 4대 보험 내 주겠니? 그때 되면 해고가 되든 어떤 조치가 취해지겠지. 회사에서 일당 짜게 줘서 다른 사람과 돈 차이가 한 달에 몇십만 원 날 때도 난 바보같이 나 없으면 네가 꾸려 갈 이 살림 걱정해서 의리로 참았어. 어쩌면 너는 내가 백수가 될지 모를 이 마당에 회사 입장만 얘기하고 나에 대한 걱정은 없냐.”

우리 회사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내 근무 일수를 줄였고, 다음 해에는 시간을 줄였고, 또 다음 해에는 일급도 줄였다. 그래서 나는 삼 년째 같은 일당을 받고 있다. 일하는 날만 줄어 월급은 이십여만 원이 줄었다. 모든 회사들은 편법으로 돈을 줄여 나갔는데, 버젓이 내놓고 하는 일을 나라에서는 모르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는 베테랑이다. 그러나 회사의 편법 때문에 최저임금이나마 대우해 주는 회사보다 월급이 50만 원 차이가 났다.

더러워진 기분으로 나는 계속 고정 사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이어 갔다. ‘만일 네가 회사에 얘기해서 내가 고용보험을 타게 해 준다면 다시 나오는 날 내가 이곳으로 복귀할 것이고,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라고.

고정 사원은 사과했지만 고용보험과 관련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부터 당장 백수가 되었다. 그깟 일 뭐를 하면 이보다 못하랴 싶었지만 내 의사와 관계없이 보장 없는 백수가 되고 나니 참으로 허탈하다. 이놈의 사회에서는 잘 조직되고 복지 혜택 많이 받는 제도권 국민에게만 주고 주고 또 준다.

오늘 오랜만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수기 청소하러 온 아줌마와 이야기했다. 자기들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고 한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회사의 노예라면서. 그런데도 프리랜서로 등록돼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고 해고돼도 고용보험도 못 탄다고 했다. 이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몰린 직업군을 찾아내어 노동조합 결성하는 일에 동참해 볼까?

일주일 뒤, 시식 행사가 재개되고 나는 기약 없는 백수에서 다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행사 알바로 복귀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회사 소속임을 잊고 있었다. 그저 내 일이려니 생각해서 참 우직하니 열심히 일했다. 다시 일하게 된 지금 별로 기쁘지가 않다. 그나마 일할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존재에 대한 미미함을 깨닫게 되어 기가 죽는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는 이루지 못할 정의일까?

posted by 작은책
2020. 7. 23. 14:34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영웅이냐, 악랄한 친일파냐? 미래통합당과 수구 언론이 고 백선엽 씨를 영웅이라고 호칭하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광복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백선엽 씨를 친일파 중 악랄한 친일파로 분류해 대전현충원에도 안장하는 걸 반대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백선엽 씨가 복무했던 간도특설대는 사병까지 전원 친일파로 분류돼 있습니다. 독립군 토벌에 가장 적극적이고 잔혹하고 악랄했기 때문이지요. 백선엽 씨는 6·25전쟁이 끝난 뒤, 동생 백인엽 씨와 사상 최악의 선인학원 비리를 저지르고, 부동산 투자로 현 시세로 2천억이 넘는 덕흥빌딩을 소유하고, 50억이 넘는 자택에서 아주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친일파를 옹호하는 수구 정당은 촛불 이후로 조금씩 역사가 바로 잡혀가면서 점점 소수 정당이 돼 가고 있다는 걸 자신들만 모르고 있지요.

작은책 8월호 특집은 작업중지권입니다. 4년 전 구의역 사고, 2년 전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등 하루에 7, 1년에 2400여 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들이 작업중지권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었더라면 허망하게 사망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김경수 경남 지사는 격차 해소’,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기본소득이 진짜 뉴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저는 작업중지권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진짜 뉴딜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님들은 어떠신가요?

2020716

발행인 안건모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다시 왕십리에서 -하명희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그 쌤 빨리 해고시켜 버렸어야 했는데 -이율현

17 그래서 성공을 못했구나 -최은영

21 베테랑 월급이 50만 원 적다 -한영미

25 코로나19 덕분에 텔레비전을 없앴다 -임지현

28 경비과장이 가슴이 아픈 사연 -손소희

32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가지가지주먹밥 -윤혜신

37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38 살아온 이야기

늙은 암소도 챙겨 주었다 -김수련

44 시 읽고 감상하기

시를 보면 시인을 안다 -조기현

47 교장 일기

첫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주는 입학 선물 -최관의

5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혼인 신고를 막는 조건들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7 노조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김나영

63 직위 해제 당하고 진짜 교사가 됐다 -김석현

69 9개월 만에 강제 퇴사, 입사 반복, 뭔가 이상하다 -김경학

75 작은책 법률 상담소

대여금이냐, 투자금이냐 -김예지

특집_ 작업중지권

80 작업중지권? 2004년이 마지막이었다 -김진영

84 구의역 사고 4주기,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임선재

88 작업중지권 없는 안전한 일터? -서현수

92 오늘은 배달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당신은? -손진우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우리 안에, 그대는 없다 -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탈진실인국공사태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이발이나 목욕을 때맞춰 해 주시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에어컨으로 식힐 수 없는 더위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신자유주의 시대의 근면 규범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정신을 담은 얼굴, 초상화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잊을 수 없는 그 순간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통찰의 실마리를 주는 실험들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7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퇴직금 한푼 없이 쫓기듯 떠나기는 싫었다

 정숙영/ 코웨이 정수기 관리 코디

 

막내가 여섯 살이던 20049, 임상병리사로 경력 단절 상태였던 나는 세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생 집에 방문하던 코디가 자기가 하는 일이 일정 조정이 자유롭고, 열심히 하면 일정한 수입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체 고객 대면, 영업, 초보운전, 관리자들과의 관계 등이 쉽지는 않았지만, 비상금 털어 자동차까지 샀으니 버텨 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된 17년의 코디 생활.

아침 아홉 시 첫 고객 방문부터 늦는 날은 밤 아홉 시까지, 공휴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일을 한다. 두 달이나 네 달에 한 번씩 정기 방문해서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연수기 등을 점검하는 코디는 깐깐한 점검 서비스는 기본이고 자차를 갖고 운전도 잘해야 하며 50페이지가 넘는 상품 안내서의 상품을 판매하고 때로는 홀로 사시는 어르신의 심부름꾼과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지국 관리자의 영업 목표를 맞춰야 한다는 잔소리에 시달리기도 하고 회사가 만들어 놓은 점검 시간과 한 달 내에 마쳐야 하는 계정이 있어 매일 종종거리며 이 집 저 집 방문하는 일개미이자 멀티플레이어이다. 고객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방문 점검이다 보니, 고객들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욕설 등의 언어폭력은 물론이고 드물게는 신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락까지 안 되는 고객들의 행동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고객의 코디 교체 요구가 있을 경우, 상처받은 코디를 생각하는 관리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위로는커녕 질책하고 사유서까지 쓰게 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소모되는 코디의 감정을 회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니, 동생, 회사 동료와 수다를 떨거나 혼자 삭인다. 게다가 요즘에는 판매 채널이 다양화되고 수수료 체계가 달라져서 제품 설명은 코디에게 듣고 상품 주문은 온라인이나 사업국의 고가 사은품과 현금 지원이 있는 곳에서 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상실감이 크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하다 보면 영업이 부진하거나 관리자들과 불화가 있을 때도 있다. 점검 계정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고, 지국의 영업 목표를 맞추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자가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렌털 제도를 도입했던 전 회장의 경영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이다. ‘고객의 렌털 비용을 낮추기 위해 코디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자가운전이 가능한이들을 코디로 채용했다. 1만 명이 넘는 코디들이 타고 다닐 자동차를 회사에서 구입하고 유지비용을 댔다면 그 비용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렇게 렌털이라는 아이디어 덕분에 2008년 매출이 13000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회장 본인은 창조적 발상과 실천을 책으로 써서 코디들에게 한 권씩 나눠 주며 자랑했겠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코디가 책임지게 하는 회사의 규정과 수천억의 영업 이익에도 노동환경에는 변화 없음에 울화가 치밀었다. 만약 권리 투쟁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중심에 서 있다.

17년 일한 지금도 신입 때랑 바뀐 게 거의 없다. 자차를 쓰는데도 유류비 지원은커녕 사고가 나면 모두가 코디의 책임이다. 점검 수수료도 오르지 않다가 노조가 생기면서 한 계정당 몇백 원 오른 게 전부이다. 고객의 단순 변심 반환 시 수당 되물림 제도가 지금은 일 년 내 반환 시 100퍼센트 되물림으로 바뀌었지만 MBK파트너스에서 관리할 당시에는 18개월 내 반환 시 100~150퍼센트까지 수당 되물림이었다. 영업을 하기 위해 썼던 시간과 판촉 비용은 코디가 손해 봐야 한다.

회사에서는 적정 계정을 200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업이 안 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 150만 원 정도만을 받아가야 한다. 일하며 드는 비용을 코디가 전부 부담하면서 말이다.

201711월 코웨이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공부가 끝나갈 즈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달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고용보험이 있었더라면 두 달 더 쉬면서 전업을 맘 편히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늘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단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손과 발을 많이 쓰는 반복 작업을 하는 코디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한의원과 통증의학과를 제집 드나들듯 한다.

지난 3월 1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 설립 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정숙영 씨. 사진 제공_ 민주노총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퇴사할 때 퇴직금 한푼 없이 쫓기듯 떠나던 선배 코디들이 생각난다. 밥 한 끼 나눌 시간도 없이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사라져 간다. 나는 그렇게 떠나는 게 싫었다. 그런 내게 들어온 한 장의 노동조합 웹자보. 당장 설명회를 요청했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 노조의 양윤석 국장님, 이흥수 코웨이지부 지부장님과 우리 지국 코디들의 만남이 있었다. 우리 지국 코디들이 보낸 내용을 바탕으로 코디·코닥 지부의 홍보 웹자보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설명회가 시작되고 코디·코닥 지부는 2019112일 설립 총회를 하게 되었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며 상집위원이 되었다. 코디를 하면서 대의원대회, 간부수련회, 법률학교 등 조합 활동이 버거워 아프기도 했지만 집중했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길이 열린 듯했지만 노동청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여 노조 설립 필증을 내주지 않았고 노조 설립 필증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집간부들과 서비스가전 간부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시작된 지 103일째 되던 513일에 역사적인 특고직 최초의 설립 필증을 받게 되었고 우리의 권리 찾기는 시작되었다. 지금도 회사와 교섭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1월 26일 웅진코웨이 본사 17층 대표 이사실을 점거하고 대화를 요구하는 웅진코웨이지부. 사진 제공_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노조가 생기고 전국의 조합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한길을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찼던 순간,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할 동지들이 있어 좋았던 순간들을 늘 기억할 것이다. 코웨이가 없으면 코디도 없다. 회사와 대치가 아닌 상생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가 탄탄한 코디 조직을 믿고 지원해 준다면 정수기 업계 일등 기업으로 우뚝 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기 탄탄한 멀티플레이어인 코디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하면서 만난 고객들 대부분은 호의적이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또또클럽(목표 실적을 달성하면 회사가 해당 코디·코닥 노동자들에게 식사나 여행을 보내주는 사업)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성남 태평지국 가늘고 길게(장기 근속자 소모임) 팀 식구들이 있어 17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귀한 지면을 내준 <작은책>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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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7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성주, 한반도의 최전선

나정(가명)/ 사드가 배치되어 있는 성주에 살고 있는 주민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시계를 보니 540. 이미 남편은 거실에서 비염에 좋다는 작두콩차를 마시고 있다. 몸이 무겁다. 누운 채 손가락을 차례로 꼽아 본다. 묵직하고 뻣뻣한 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늘도 새벽에 두 차례 종아리에 쥐가 났다. 끙끙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깨어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아프다. 허리를 시작으로 팔꿈치, 발목, 그리고 이제는 무릎. 아무래도 오른쪽 무릎은 이미 탈이 난 듯하다. 남편 나가는 소리에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세수는 고사하고 거울조차 보지 않고 남편을 뒤따른다. 마스크 한 장이면 족한 세상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집에서 밭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10, 차로 가면 5. 대부분 차로 다니지만, 가을철에는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허리와 무릎 근력을 위해 걸어서 간다. 걷다 보면 세상이 다가온다. 로드킬 당한 각종 동물의 사체, 물오른 배 롱나무, 겁 많은 이 집 저 집 개들. 어느 새 도착한 딸기밭. 오십 중반을 넘긴 나와 남편은 참외로 유명한 이곳 성주에서 5년 전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하필이면 왜 딸기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참외'로 적정화 내지 표준화되어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라서. !

나는 경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경주에서 평생 살 거라 믿었다. 그러나 15킬로미터 인근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사실, 아니 그 핵발전소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다음 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끔찍한 참사를 보며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 믿었다. 이런 우리의 귀농사를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웃었다. ‘경주나 성주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피해 봐야 소용 없다는 말이지만, 그래도 성주는 100킬로미터 밖.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거리였고, 그 사실만으로 족했다. 그렇게 핵발전소를 피해 온 성주에 2016년 사드(THAAD)가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곳 성주가 한반도의 최전선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다시 성주를 떠날까?’

남편과 나는 500평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는다. 동수로 보면 세 동이지만, 면적으로 따지면 두 마지기 반의 크기. 수십 동씩 참외 농사, 상추 농사를 짓는 다른 농가들에게는 소꿉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평생 농사라고는 구경도 하지 않은 우리는 심지어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유기 재배를 선택했다. 시원하게 약 한번 뿌리면 되는 일을 우리는 밤마다 랜턴을 쓰고 민달팽이를 잡았다. 응애가 오면 천적인 칠레이리응애를 넣고 매일 개체수를 살폈고, 진딧물이 보이면 난황유를 만들어 쳤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평화로웠고, 새롭게 만난 이웃들과의 풍성한 이야기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무엇보다 가야산으로 넘어가는 노을과 마주하며 돌아오는 시간은 감사의 기도가 절로 터진다. 그런데 이곳 성주에 사드가 웬 말인가!

수확한 딸기들. ⓒ나정

30분 걸어 도착한 딸기밭 주변은 이미 한낮처럼 분주하다. 농사 이웃인 옆 하우스의 K 아저씨는 참외를 따고 있다. 낡은 트럭 위 빨간 바구니에 노란 참외가 그득하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하우스 문을 민다. 딸기는 거짓말처럼 밤새 빨갛게 익어 있다. 순간 젖은 솜처럼 무겁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옆 동에서 남편의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애청하는 채널의 사회자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걱정이다. 집과 딸기밭만 오간 지 벌써 석 달. 사드를 코앞에 두고 있는 소성리 집회도 멈춘 지 두어 달이다. 오늘은 수요일. 남편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소성리로 올라간다. 사드가 임시 배치된 소성리 미군기지 앞에서 매일 평화행동이 열린다. 남편은 수요일마다 올라간다. 다른 주민들도 참외밭, 고추밭, 마늘밭을 뒤로하고 허겁지겁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미군기지 앞에서 외칠 것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2019년 10월 6일 성주 소성리 진밭교에 마련된 원불교 교당의 평화 기도가 1000일째 되는 날. 우리 모두 모여 서로에게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 제공_ 나정

다시 돌아가서, ‘성주를 떠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싱겁게 정리되었다. 핵발전소가 무서워 떠나왔던 경주가 이미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들 그곳에 제2의 핵발전소, 2의 사드 기지가 들어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사람 적고 힘없는 시골은 더더욱.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떠나고 버릴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사드가 임시배치되어 있는 이곳 성주에서 그냥 살기로 했다. 아니,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사드 배치로 하루아침에 한반도의 최전선이 된 성주 소성리에서, 평생 살아온 터전을 하루아 침에 미군에게 빼앗긴 소성리 어머니들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저항하며 살아 낼 것이다.

미군은 미국으로, 평화는 이 땅으로!”

사드 가고 평화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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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7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여름철 긴팔 남방을 입은 까닭

 

권해진/ 래소한의원 원장

 

80대 아버님이 환자로 오셨습니다. 당뇨가 심해서 인슐린을 주사제로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팔에 상처가 나서 연고 바르고 반창고 붙이고 했는데, 자꾸만 상처가 커졌습니다. 당뇨합병증 중 하나가 상처 치유가 늦어지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니 반창고 아래로 땀이 차고 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피부과에 가셨다고 합니다. 이미 괴사가 진행되었고 의사가 열이 나거나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따끔따끔이야 하지. 그래도 무릎이나 허리 아픈 것만 하겠어. 다른 데가 더 아프니 그러려니 했지.”

더 이상의 괴사를 막기 위해 한쪽 팔을 잘라야 했습니다. 처음 한의원에 오셨을 때는 이미 팔 수술을 하신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피부 상처 하나 잘못해서 이리 ○○이 되었지. 자식들이 팔 없이 옷만 덜렁거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놀란다고 가짜 손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게 더 무섭게 생겼어. 원장 보기에는 어때요? 다른 환자 생각해서 가짜 손 달고 오라 하면 달고 올께.”

긴팔 남방 속 의수는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눈이 뭐가 중요합니까! 아버님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렇게 말씀드리던 때는 겨울이었고, 옷 안에 팔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알 수 없을 때였습니다. 점점 더워지는데 아버님은 여전히 긴팔 남방을 입고 오십니다.

당뇨가 있으셔서 땀을 많이 흘리시는 것도 안 좋아요.”

남방 사이로 바람이 술술 들어와. 반팔 입으면 길 다닐 때 지켜보는 눈 때문에 내가 귀찮아서 그래.”

팔 하나가 없으면 치료받을 때 옷을 입고 벗고 하는 것을 도와야 할 것 같지만 시간만 드리면 됩니다. 그렇게 혼자서 천천히 입고 벗고 하시는 데는 남방이 티셔츠나 다른 옷보다는 편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미 생활과 마음의 정리가 이루어진 분입니다. 치료를 끝낸 후 남방 단추를 한 손으로 차례차례 잠그시고 펄럭이는 남방의 빈 팔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나오셨습니다.


6학년 때 만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느리지만 왼손으로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의 오른손 글씨보다 예뻤습니다.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오른팔의 화상 흔적.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화상이 있었는데 글을 배우던 유치원 때 생긴 상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졸업 후로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자주 볼일이 있었고 그녀의 여름옷은 항상 흰색 긴팔 남방이었습니다. 교복 세대였던 우리는 여름에는 반팔 교복을 입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여름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서 허용해 준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얇지만 팔의 화상 흔적을 덮을 수 있는 옷은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제 옷을 사러 갈 때도 시원한 긴팔 남방이 보이면 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괴사로 팔을 잃은 아버님과는 달리 회사 일을 하다가 손이 절단된 지 3년이 지난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항상 의수를 하고 오셨고 여름에도 긴팔 옷에 장갑까지 끼고 오셨습니다.

제가 장애인이지만 회사를 다녀요. 저희 회사에서 정상인보다 제가 일을 더 잘해요. 그래서 어깨랑 팔이 항상 아픕니다. 사장님이 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해서 휴가도 못 쉬어요.”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자신보다 일을 못 하는 비장애인을 타박하는 말투입니다. 어깨를 만져 보니 절단된 쪽 팔을 쓰지 않고 온전한 팔로만 일을 했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깨 등세모근의 크기가 다릅니다. 한쪽 팔뚝은 다른 쪽의 두 배 크기입니다. 당연히 아픈 쪽은 비정상적으로 일을 많이 한 정상 팔입니다. 2주 동안 매일 치료받으러 오셨습니다. 치료도 열심, 일도 열심인 분입니다. 그런데 치료 효과가 없습니다.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환자분!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언지 아세요? 쉬는 것입니다. 일을 좀 줄이시면 안 되나요?”

장애 있는 나를 써 준 사장인데 일반인보다 더 열심히 해야지요.”

그런데 치료받고 가시면 덜 아프시다가 다시 일을 너무 심하게 하시니 제가 느끼기에는 팔 상태가 매일 똑같아요. 그러면 팔이 남아나질 않아요.”

더 나이 들면 다닐 직장도 없을 거예요. 올해는 몸이 부셔져라 해 보려고요.”

사장님을 욕하는 거는 아닌데요. 회사는 장애인 고용으로 국가 보조를 받을 겁니다. 그래서 환자분이 천천히 몸 생각하면서 하셔도 회사에 손해는 안 갑니다. 정년도 보장이 되고요. 환자분 잃어버린 왼쪽 팔 때문에 열심히 사시는 건 저도 압니다만, 그럼 오른쪽 팔은 누가 돌봐 주나요? 오른팔이 안쓰럽지 않으세요?”

갑자기 그녀가 웁니다.

내 인생이 안쓰럽지. 그래요. 내 오른팔도 안쓰럽지. 없어진 왼팔보다 버티고 있는 내 오른팔이.”

할 말도 해 드릴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같이 울었습니다.

여름철 긴팔 남방 안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많습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시간만 있으면 우리는 모든 사연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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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5. 15:22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벌써 한여름입니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감염증 기세는 꺾일 줄 모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하고 뒤숭숭한데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작자들이 참 많습니다. 무차별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수구언론과 미통당 의원들입니다.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을 파렴치한 집단으로 낙인찍고 과장, 왜곡 보도를 하는 수구언론은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연의 무차별 의혹 보도와 검찰의 압수 수색에 압박감을 느껴 위안부마포쉼터 소장 손영미 씨가 자살했습니다. 거기에 곽상도 미통당 의원은 타살 의혹이 있다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곽상도 의원이 어떤 인물입니까. 199158일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 분신자살한 사건을, 김기설의 친구였던 강기훈 씨를 고문까지 해서 유서를 대필했다고 조작했던 담당 검사였지요. 강기훈 씨는 그 후 2015514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한 인간의 인생을 망치고 이 사회를 살벌한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던 곽상도는 국회의원이 돼 여전히 의혹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런 사람을 안 보게 되는 세상이 될까요.

이달 특집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다뤘습니다. 본래 좋은 제도인 것은 분명한데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네 분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독자님들은 또 어떠신가요.

 

4 책이 이끄는 여행

내 맘속의 첫 대통령, 여운형 - 이동수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바람이 불어오는 곳 정범구

18 걸어 다닐 권리! 걸어 다닐 자유! - 최숙하

22 성주, 한반도의 최전선 - 나정

27 초보 엄마의 꿈과 성장 - 김설민

31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매운두부덮밥 - 윤혜신

37 두꺼비 손글씨 - 김상화

38 살아온 이야기

힐링 라면과 동료들이 그리워요 - 김수련

44 시 읽고 감상하기

밥 먹고 합시다 - 신경현

47 교장 일기

너는 230이지? 나는 280이다 최관의

5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여름철 긴팔 남방을 입은 까닭 -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6 몽둥이로 때리면 맞고 있겠습니까? - 김영재

61 당신의 일터는 안전한가요? - 강석경

68 퇴직금 한푼 없이 쫓기듯 떠나기 싫었다 - 정숙영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기간제 교사와 정규 교사가 뭐가 다른가 - 전다운

특집 _전 국민 고용보험

78 각자의 자리에서 외치는 전 국민 고용보험

- 오민규

83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 - 유채림

87 전 국민 고용보험보다 시급한 것 - 신민주

92 예술인 고용보험,

전 국민 고용보험의 마중물 될 수 있을까? - 오경미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죽어야 사는 여자, 열녀 -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내 운동을 오인한 시대 -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코로나19 원인을 묻는 무책임 -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업종별 자살 실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민화, 욕망을 욕망하다 -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그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누구나 편집을 하면서 산다 -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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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2. 15:16 기획 특집

<작은책> 20206월호

300호 특집

 

먹물출신의 노동자 홍보물 도전기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1981년에 노동운동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만난 사람들이 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과 같은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하늘이 내려 주신 천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124명 중에 절반 정도가 나하고 동갑내기였다. 그 노동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넌 배운 놈이니까.”, “넌 지식인이니까.”, “먹물이니까.” 등이었다. 대화나 토론을 하다가 그런 지적을 당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대화가 더 이상 진전이 안 되곤 했다.

알짜배기 노동자 출신이 아닌 사람이 계급성을 극복하고 노동자 정서에 충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 끝에 생각해 낸 훈련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그 무렵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서울로 간 허수아비, 어느 돌멩이의 외침등 노동자 수기와 노동 야학의 졸업 작품집 등에 노동자들이 쓴 글이 많이 나올 때였는데, 그런 글들을 있는 대로 모아서 같은 단어에 대해 노동자들의 정서가 표현된 문장들을 칼로 오려 대학 노트에 붙여 보는 것이었다.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새벽에 고향에서 기차 타고 떠나오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한국 농업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활동가도 있다. ‘노동조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이 뭘까?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는 노동자도 있지만 노동운동에 일생을 걸고 활동하는 노동자도 있다.

구름, , 어머니, 고향이런 수많은 단어들에 대해서 노동자 생각이 담긴 글을 주제별, 단계별로 오려서 대학 노트에 가지런히 붙여 정리하는 작업을 일 년쯤 했다. 그렇게 해 보니까 먹물출신으로서는 노동자 정서에 상당히 친숙해진 편이었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큰 재산이 됐다고 생각한다.

먹물이 노동자들과 함께 2년쯤 부대낀 뒤에 만든 첫 번째 홍보물이 바로 <일꾼>이다. 하종강


편집 책임자였던 내가 글자 폰트의 크기와 종류를 적어 놓은 흔적이 보인다. ‘노동자도 한자어니까 일꾼이 우리말이다, 그런 호기로운 생각으로 이름을 <일꾼>으로 정했고, 어떻게든 노동자들에게 글을 쓰게 해 보자는 뜻으로 노동자가 쓴 글을 모집하는 광고도 실었다.

이 작업이 점점 발전해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꾼 노동문제 자료연구실을 설립하고 내가 실장을 맡았다. 노동자들에게 노동문제를 작은 주제로 나누어 정말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노동자 교육의 교재로 사용될 뿐 아니라 노동자가 한번 손에 잡으면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도록 해 보자는 취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일꾼노동문제자료> 시리즈다.

▲ <일꾼노동문제자료> 시리즈. ⓒ하종강


<나는 바르게 계산된 월급봉투를 받고 있나?> 세 번째로 만든 일꾼 노동문제 자료이다.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민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글은 지배 세력의 또 다른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길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나 밭을 매는 노인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원칙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림을 많이 사용해 설명했고 관심을 유발하려고 노동문제 상식 퀴즈도 만들어 넣었다. 그때 무보수로 삽화를 담당해 주었던 대학생 후배가 바로 요즘 투쟁 현장마다 따라다니며 사람들 초상화 그려 주고 <작은책>에 만화도 연재하는 이동수 화백이다.

작업이 끝나면 사람들과 같이 식당에 가서 뒤풀이를 했다. 한번은 식당에서 틀어 놓은 텔레비전에 뉴스가 나오는데 부장검사가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마약의 위험성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제고시켜야 합니다.” 그 무렵 우리는 그런 거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갔다. 일행 중 한 명이 내뱉었다. , 인마, 너 말 꼭 그렇게 해야 돼?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똑같은 뜻이야.”

TV 뉴스에 나와서 희생자가 더 나올 개연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라고 말하는 소방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컨트롤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우리들의 제삿밥이 되곤 했다.

노동자 정서에 충실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올바른 교육 교재 하나 만드는 것이 노벨문학상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내 모습이 최규석 작가의 만화 <송곳>에 잠깐 나온다.

▲ 《송곳》(최규석, 창비)


그 무렵에는 유인물 한 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불심검문에 걸려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던 시대여서, 노동자들이 부담 없이 갖고 다닐 수 있는 노동교육 교재를 만드는 작업도 해 봤다. 현장에서 보다가 직·반장한테 걸리거나 경찰 불심검문에 걸려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러나 속에는 나름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런 노동문제 자료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손바닥 크기쯤 되는 <일하며 산다> 시리즈다.

 

 ▲ <일하며 산다> 시리즈. ⓒ하종강

 

온갖 정성을 들여서 가능한 한 예쁘게 편집을 했다. 사람들이 쉽게 버리지 않도록 지하철 노선도도 넣었다. 나중에 100이라고 가격을 붙인 이유는 불법 유인물로 취급당하지 않도록 합법 출판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정암사라는 출판 등록을 내기도 했다. 당시 가리봉 오거리에 있는 공단서점에서도 팔았는데 한 달에 한 번 수금을 하러 가면 이 100원짜리 책을 판 대금을 고스란히 필름 통에 모았다가 건네주던 사람이 지금 노동자교육센터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순 동지다.

이 책들도 삽화는 이동수 화백이 맡았다. 한번 붙잡히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예나 이제나 이 바닥의 생리다.

 ▲ <일하며 산다> 시리즈. 삽화는 이동수 화백이 그렸다. ⓒ하종강


당시 이런 작업들을 할 때는 모두 건방지게도 이것이 한국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혁명의 시기에 이런 과정들이 있었다.’ 그런 자부심에 불탔다.

198812월 새로운 노동상담소 일을 시작했다. 그 상담소가 나중에 한울노동문제연구소로 발전했지만 처음에는 사무실 구석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다. 거기서도 똑같은 작업을 시도했다. 노동법을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는 교재를 만들어 보자. 그런데 실패했다. 대중적 매체를 만들수록 그걸 만드는 사람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경망스럽게 쉽게 풀어 쓴다고 해서 쉬운 문장이 되는 게 아니다. 대중 정서에 충실한 글을 쓰려면 정말 그 사람은 전문가여야 한다.

창간 준비호도 두 번이나 만들어 보면서 준비했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 비슷한 놈들끼리 볼 수 있는 걸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시리즈가 <한울노동법강좌>이다. 활동하는 노동자들보다는 사법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사법연수생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나중에 두고두고 들었다. 20113월 연구소 문을 닫을 때까지 53호까지 만들었다.

▲ <한울노동법강좌> 시리즈. ⓒ하종강


이러한 노동문제와 관련된 홍보물을 만들고 글을 쓰는 작업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1994년에 제6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지금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러한 작업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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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6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회사가 보낸 가정통신문, 그게 호소문이라고?

신재성/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저는 20175창진에프티라는 보전업체에 입사를 하였고 201871일 업체가 고용승계되면서 현재 마스타씨스템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보전업체는 주로 자동차 자동화 설비 시스템 구축과 유지 보수 등의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1공장) 도장에서 오버헤드 컨베이어(천장에서 매달린 레일 중 체인을 주행시켜, 운반물을 순환 운반하는 것)와 플로어 대차(하부의 체인을 주행시켜 운반하는 역할) 공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는 1, 2, 3차 업체라는 이상한 구분이 지어져 있습니다. 제가 노동하고 있는 이곳도 1차 업체에서 외주업체로 바뀌어 간 케이스이며 상여금, 성과금, 각종 수당 등이 폐지되었고, 기존 관리자 수가 2명에서 8명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업무는 바로 원청인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것이고, 1차 업체 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최저임금밖에 없기에 주 평균 65시간을 해 가며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갈수록 처우가 나빠지는 상황 등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청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업무들, 비정규직이라는, 외주화라는 딱지로 갈수록 안 좋아지는 처우들. 참을 수 없어 2017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 현대자동차 보전 정규직들과 보전업체(마스타씨스템, 성진) 관리자들은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았습니다. 노조 가입만 한 것인지,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도 걸었는지 파악해 나갔으며,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하여 현대자동차는 보전업체를 진성 도급화 하기 위해 더욱 더 우리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근무시간 등을 변경했고, 현대자동차 출입 시 출입증만 제시하면 되었는데, 공장 밖 사무실 앞에서 알밤(이중 출입 시스템)이라는 모바일 앱을 깔게 만들어 출퇴근 등을 강제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당함을 느끼며 아침 일찍부터 현대차 공장 앞에서 출근하는 원·하청 동지들에게 선전전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 현대자동차 본관 앞 출퇴근 선전전을 하는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2020년 4월 13일). 사진 제공_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사측은 알밤을 안 찍는다는 이유로 경고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공동 투쟁을 하고 있는 성진 조합원들은 정직까지 주며 탄압했습니다. 지노위, 중노위까지 진행된 이중 출입 시스템 문제는 결국 보전 하청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굴복하지 않고 계속 선전전을 했고 결국 알밤은 철회되었습니다. 보전 하청 조합원 공동 투쟁으로 이루어 낸 첫 성과였고, 뭉치면 강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힘을 얻어 사측에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저희 작업장은 2.5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고, 급배기 팬만 존재하여 여름날이면 40도를 웃돌며, 바로 옆에 세척장이 있어 귀마개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급배기 팬조차 없는 공정은 너무 더워서 여름날은 피해서 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실상은 원청이 시키면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요. 울산차 현대공장에서 가장 노후된 작업장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같은 층 문만 열면 현대차 정규직분들이 일하는 공간은 환경도 깨끗하고 에어컨이 나오고 소음 또한 벗어나 있습니다. 불평등하다 생각하여 20192월경 간이 휴게실과 에어컨 설치 등을 원한다고 요구를 했지만 현대차 공장 안에 2층 높이 이상인 곳엔 간이 휴게실을 지을 수 없다는 답변과 환경 및 소음에서 기준치 미달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2층 높이 이상에 정규직 간이 휴게실은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지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지을 수 없다니요. 누가 봐도 덥고 시끄럽고 먼지가 많다는 걸 알 텐데, 분명 안전 환경을 받고 개선이 돼야 하는 곳인데. 이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점이라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의 벽을 느꼈고 체념한 채 일을 하였습니다.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는 동안 52시간 근무제라는 정부의 시행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끊고 드디어 주말이 있는 삶,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주 52시간 시행은 대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52시간 시행에 관하여 사측에 문의했습니다. 보전 업무는 근무 형태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임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측의 답은, 정부가 시행하는 것이고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임금이 삭감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웃긴 건, 사측은 기존과 동일한 물량과 기성금을 원청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줄어든 시간에도 노동자는 물량을 똑같이 완수해야 하는 반면, 사측은 기성금을 동일하게 받았으니 이윤을 더 챙기는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우리는 임금 보전을 요구하였지만 사측은 임금 삭감은 피할 수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52시간 근무제 계도 기간 연장으로 올해까지 노사간 합의로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동 투쟁을 일으킬 때가 되었습니다. 마스터씨스템과 성진 보전 하청 조합원들은 52시간 임금 보전 확실하게 보장하라고 선전전을 통하여 투쟁했지만, 사측은 주 52시간을 핑계로 더 큰 탄압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현대차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측은 임금 보전 제시안을 내놓지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사항만을 더 늘어놓았습니다. 주말 근무 의무화 및 성과 연봉제, 출퇴근 시스템 도입. 기가 찼습니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보전 하청 조합원 동지들은 생계도 뒷전으로 미룬 채 각자 호소문을 적으며 지난 46일 공동 전면파업에 나섰습니다. ·석식·출근·퇴근 선전전, 공장 현장 순회 등 가열찬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입니다. 결국 장기화되는 파업과 진전 없는 교섭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중재하겠다고 요청을 해 왔고 429일 노사는 이에 응하였습니다.

▲ 현대자동차 1공장 의장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2020년4월22일). 사진 제공_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부에 올라가기 전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서 우편이 날아왔다고. 뭔가 불안한 느낌이 생겨 내가 확인할 테니 열지 말라고 했고, 이에 다른 동지들의 소식이 전해 들어왔습니다. 바로 사측에서 일괄적으로 직원들에게 파업으로 회사가 손실을 받고 있으며 즉시 중단해야 한다, 장기 파업으로 고용은 더욱 불안하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이따위 내용을 가정에서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노동부 중재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사측은 직원들이 호소문으로 사람들에게 알렸으니 자기네들도 가정통신문으로 호소문식으로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항상 이따위 식으로 응답하는 사측이 싫었고 생계를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정 파탄에 불씨를 주는 행위 등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시간은 줄이고 노동 강도는 높이고 임금은 삭감하겠다면, 하는 일이 같으면 임금을 보전받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주장이 전면파업까지 하게 만들 사항인가요? 현대차는 비용 절감, 불법파견 은폐 외주화도 부족하여 바지 사장들을 내세워 주 52시간을 꼼수로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더 강탈하려고 합니다. 1차 하청2차 하청외주화52시간 임금 삭감으로 노동자를 쥐어짠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요? 원청 주머니에? 여전히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노동자 모두 고통받지 않게 우리 모두 단결된 투쟁으로 이겨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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