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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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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3. 10:15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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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아버지를 만났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연속극에서 삼순이 아버지로 나온 맹봉학 씨다. <작은책>에서 연예인을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다. 전화를 했더니 “요즘, 본의 아니게 내가 유명 인사가 됐네요” 하고 껄껄껄 웃는다.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성균관대 앞에 있는 풀무질 책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맹봉학 씨가 풀무질 책방 주인인 은종복 씨하고도 친하니 잘됐다 싶었다. 정확히 두 시에 책방으로 들어온 맹봉학 씨가 은종복 씨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맹봉학 씨는 요즘 더 바빠졌다. 어제도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했고 오늘도 이 인터뷰가 끝나면 이 근처에서 다른 매체와 또 인터뷰가 있단다. 이렇게 바쁜 까닭이 연기자로서 스타가 됐기 때문이 아니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배우인데 사회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여러 매체에서 취재당하는(?) 수준을 보면 거의 사회운동가가 다 됐다. 연기를 해야 먹고사는 배우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전에 경찰에 소환당해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 벌금 맞으셨어요?”

“두 번 다 안 맞았어요. 뭐, 죄가 있어야죠.”

맹봉학 씨는 유일하게 연예인으로서 집회에 관련해 경찰에 소환을 두 번 당한 사람이다. 한 번은 2008년 촛불 집회 때, 두 번째는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때였다.

“영결식 때 도로로 차를 따라 갔는데 사진이 찍혔더군요.”

연예인이 경찰에 출두하면 금방 소문이 나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낮출 만도 한데 맹봉학 씨는 당당하다. 하지만 역시 그 사건 이후로 영화 섭외가 전혀 안 들어온단다.

“전혀 연락이 없어요. 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거든요. 근데 촛불 집회 이후로 한 편도 못했어요. 단편 영화는 숱하게 했지만. 하 참 나, 하하하!”

촛불 집회 때 기억나는 게 있냐고 물었다.

“촛불 집회 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먹을 걸 갖다 줘요, 고맙다고. 나 하나 나온 게 자기들 백 명 천 명 나온 것보다 더 힘 되니까 고맙다는 거죠. ‘아, 이분들이 지켜보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맹봉학 씨는 푸근한 아버지 역할로 많이 나왔지만 아직 미혼이다. 올해 마흔여덟 살. 왜 결혼을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못했다고 봐야죠.” 하고 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웃는 모습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얼굴이 밝지만 맹봉학 씨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열두 살 때부터 일을 했단다. 7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맹봉학 씨는 6ㆍ25 때 남쪽으로 넘어온 아버지가 수원에 자리를 잡은 뒤 태어났다. 친척이 없어 명절 때마다 우울했다. 맹봉학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혼자 살아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걸 느꼈단다. 닭을 몇 마리 키웠는데 달걀 한 개를 공책이나 학용품으로 바꿀 만큼 어렵게 살았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사 오라고 하면 집에 돈이 없어 못 사줄 게 뻔해 아예 이야기를 안 했다.

그래도 맹봉학 씨는 늘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때 만화를 많이 봤단다.

“만화를 보면, 처음엔 고생하다가 나중에 다 성공하더라고요. 하하하.”

참 잘 웃는다. 꾸밈이 없다. 맹봉학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 학교인 산업체 특별 학교를 다녔다. 낮에는 구로공단에 있는 병 공장에서 일했다. 일하다가 손을 다치기도 했다. 다니던 산업체 특별 학교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맹봉학 씨는 영등포공고 전기과로 들어갔다. 연극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리 집이 가톨릭 집안이에요. 성당 학생회에서 문학의 밤을 했어요. 그런데 연출가 형이 딴죽을 거는 거예요. 연기를 그거밖에 못하냐고.”

맹봉학 씨는 오기가 생겼다. 가톨릭 학교를 다녀 수사가 되려고 했지만 자기 길이 아니라고 깨닫고는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극은 재미가 있었다. 첫 작품은 전주 지방연극제에서 한 〈멀고 긴 터널>이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였다.

독립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때 출연한 작품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김진성 감독(<서프라이즈>, <거칠마루>)의 <환생>이었다. 그이가 맡은 역은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는 두 명의 사형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밖에 <2001 이매진>, <수사반장 트위스트 김>, <트라이앵글 메모리즈>, <잘돼가? 무엇이든>, <바이칼>,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등 수백 편에 출연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최원석 감독의 단편 영화 <트라이앵글 메모리즈>라고 한다. 맞고 다니는 아들한테 레슬링을 전수하는, 재미있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코믹 배우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하하하.”

맹봉학 씨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삼순이 아버지 역할이었다. 2005년에 방영했던 그 연속극은 시청률이 50퍼센트 가까이 됐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은 다 봤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한다.

“대사가 좋았어요.”

가장 깊이 기억에 남는 대사는 삼순이가 사랑에 지쳐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한 대사였다.

“미안해, 아부지. (줄임) 끔찍해. 그렇게 겪고 또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내가 너무너무 끔찍해 죽겠어… …. 아주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그때 삼순이 아버지가 한 말이 시청자들을 울렸다.

“삼순아, 아버지는 가슴이 딱딱해져서 죽었잖아.”

맹봉학 씨는 이 사회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을까. 1987년, 거리에는 짱돌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데모가 한창이었는데 맹봉학 씨는 연극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얼마 뒤 절차상으로나마 직선제 민주주의로 바뀌었는데 자신은 무임승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밑바닥에 늘 미안함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뭔가 할 거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씨앗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발아할 거’라고 했죠. 그럴 때 광우병 소 수입 반대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어른들이 막았어야 하는 일인데 아이들이 자기 먹을거리 때문에 싸우는 걸 보고, 이번에 안 하면 더 큰 죄의식을 느낄 것 같아 참여하게 된 거예요. 이왕 참여한 거 열심히 해 보자… ….”

맹봉학 씨는 현재 강동촛불, 참여연대, 언론행동모임, 강동중증장애인, 강동청소년공부방, 백혈병 단체, 제주도 다니엘, 동자동사랑방 등 일일이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곳에 후원 회비를 내고 있다. 은평시립병원, 아산병원에서는 18년째 중증 환자들과 함께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참여연대에서 주관한 ‘최저 생계비 하루 체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그 하루 체험을 하고는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고 허풍을 친 차명진 의원에게 ‘체험’과 ‘삶’도 구분 못하느냐고 쓴소리도 했다.

맹복학 씨가 이렇게 사회에 관심을 두고 촛불 집회까지 나와 경찰에 두 번 연행되면서 현실은 우울해졌다. 영화 섭외가 뚝 그친 것이다. 후회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이는 일분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후회했다면 이런 인터뷰 안 하죠.”

맹봉학 씨는 이어 말한다.

“사람이 영원히 권력을 잡을 수 없는 거고, 언젠가는 죽잖아요. 반성하면서 좀 더 착하게 살다 보면 죽을 때 덜 후회하고 죽을 텐데… …. 이명박, 자기는 안 죽나? 당장 2년 뒤에 청문회 하고 그럴 텐데. ‘버티면 전두환처럼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 가질 수 있겠죠. 세상이 잘못 됐지. 잘못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을 너무 빨리 사면해 줘서 그래요. 망명을 가게 하든지 종신형을 때리든지 해야 돼요.”

이렇게 용기 있는 연예인은 처음 만났다. 왜 이런 분이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을까. 마음에 있는 분들은 용기를 내서 <작은책>으로 연락하시라. ‘소개팅’도 사양하지 않겠단다. 맹봉학 씨는 갑자기 배가 고프다면서 떡볶이를 사 왔다. <작은책> 일꾼 최규화가 연예인이 사 준 떡볶이는 처음 먹는다며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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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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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16. 15:22 기획 특집




2호선 - 첫 번째 방법: 합정역 2번 출구로 나오셔서 왼쪽으로 도세요. 빵 가게와 정비공장 사이 '마포만두' 골목으로 10분만 쭉 가시면(중간에 부동산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버스 다니는 큰 길이 나옵니다.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HP컴퓨터' 가게를 끼고) 3분 가다 보면 '기분좋은 가게'가 나옵니다. '문턱없는 밥집' 사이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세요. (전체시간 13분)

2호선- 두 번째 방법(길을 잘 못 찾으시는 분은)- 합정역 2번 출구로 나오셔서 똑바로 5분 정도 가시면 '우리은행' 사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서 왼쪽으로 7분 정도 가다가 큰 사거리 '서교가든'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서교교회'가 나오고 교회 오른쪽에 있는 건물입니다.(이렇게 오실 때는 조금 돌지만 헤맬 걱정이 없습니다) 큰 길가에 있습니다. 1층엔 '문턱없는 밥집'과 '기분좋은 가게'가 있습니다. (전체시간 15분)

6호선 - 망원역 1번 출구로 나오세요. 왼쪽으로 4분 가시다 보면 '성산초교사거리'가 나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5분 가세요. 'HP컴퓨터' 가게 지나 '기분좋은 가게'가 나옵니다.(전체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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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81-2 태복빌딩 5층
작은책 사무실은 5층이지만 겉에서 보면 4층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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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

고화숙/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 문화국장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은 공무원노조 조합원이자 간부이고 현직 지부장과 지부장을 역임했던 사람들이다. 쪼코형님은 공무원이었는데 2004년 파업 투쟁 이후 파면돼서 지금은 해고자다. 박 주사님도 해고되었지만 복직돼서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신다.

두 분 다 50대고 공무원 6급 팀장이거나 이었다. 쪼코형님은 5부 스포츠에 흰머리고, 박 주사님은 2대8 가르마에 새까만 머리칼이다. 쪼코형님은 거의 매일 술을 드시고 박 주사님은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노조 인천본부에서 일하는 일꾼이다.

쪼코형님이라 하는 이유는 대화할 때 어느 지점에서 끊거나 정리할 때 ‘좋고’ 하신다. 발음 그대로 따면 ‘쪼코’가 돼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쪼코형님은 누구나 ‘형님’하고 부르고 싶을 만큼 친근함과, 비호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술자리에서 말의 반은 씨팔이고 양념이 좆도 혹은 개시끼들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놀랄 수도 있겠다. 말투가 그런 거지 아랫사람이라고 하대하는 법도 없고 남 얘기도 잘 들어 주신다. 그래서 쪼코형님하고 만나면 즐겁다.

박 주사님은 마주 대하는 즉시 노조 지부장님보다는 주사님 하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확 들게 한다.

예전에 한번 ‘어떤 공무원’이라는 제목으로 작은책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박 주사님이다.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만큼 척 보는 즉시 ‘깐깐’ 이렇게 써 있다고나 할까.

두 분의 재미난 공통점은 노동조합 운동을 직접 하고 있으면서 ‘노동운동’에 대해서 주입하지 말라고 하신다는 거다. 50대다우신 태도이다.

사실 난 두 분과 그런 거창한 주제로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어려운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드신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이 쓴 좋은 글이 하나 있어서 박 주사님한테 ‘이런 문제에 대해 공무원노조도 같이 공감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니까 읽어보기도 전에 ‘나한테 노동운동에 대해 주입하지 말라니까’ 하신다. 그래서 막 웃었다.
쪼코형님의 7년 간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도 “일반 사기업과 공무원은 다릅니다잉”이다.

물론 어떤 조직이나 일반성과 특수성은 있는 거고 노동자라고 해서 똑같을 수는 없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굳이 매번 다르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 ‘특수성’을 강조하고 싶은 건데 ‘틀렸다거나 아니’라고 반론하지도 않는데도 매번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속으로는 ‘누가 머라나’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은 노조에 대해 맨날 흉보면서도 노조 행사 때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챙기신다는 거다.

“그 시끼들 말이야 일을 그따위로 하고 말이야.” 이게 쪼코형님 버전이고 “노조에 전망이 없어요. 공무원노조를 도대체 왜 만든 거예요. 조합원들한테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는 노조가 노좁니까.” 이런 정갈한 어투가 박 주사님 버전이다. 맨날 전망이 없다면서 박 주사님은 무려 두개 지역의 지부장을 하시고 계시다. 워낙 자주 하는 말씀이니 남들은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그 꼴을 못 보는 정씨의 버럭 한마디.

“아니, 어르신들이 어떻게 하면 도와줄까, 어떻게 해야 잘될까, 이런 말씀은 안 하시고 맨날 남 탓만 하고 김 빼고 뭐지?”

보통 이분들과 나누는 대화의 장면이 이렇다.

이런 독특한 특징을 가진 두 분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쪼코형님과 대화를 나누다 말 끝에 ‘원죄 의식’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본인이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면서 간만에 욕 안 하고 착잡한 표정과 말투로 “나는 괜찮은데 말이야 나 때문에 괜히 해고당한 사람들 보면 참 마음이 너무 아파” 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파업 당시 지부장이었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짠했다.

박 주사님의 걱정은 좀 다르다. 전교조는 해고 기간이 길더라도 복직돼서 현직으로 가면 일할 수 있지만 공무원은 설령 복직이 돼서 현직으로 돌아가더라도 일하기 어렵다는 거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공무원 사회에 지금도 5년인데 이보다 더 긴 세월을 떨어져 있다가 들어가서 적응하는 게 단순히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일수도 있겠다 싶다. 까마득한 후배들 눈치부터 부딪혀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첩첩산중이겠는가. 이런 두 분의 고민을 들으면서 해고된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쓴다.

공무원이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로 파업을 했다. 하루 혹은 이틀 정도 결근을 했고 그만한 일로 정부는 무려 400여 명을 공직 사회에서 내쫓았다. 대부분은 복직 판결을 받았으나 130여 명은 정말 쫓겨났다.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나 노동자인데 제대로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공무원이나 다른 게 뭘까. 공무원노동조합이 생기면서 겉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변화보다 더 중요하게 내부 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과제들이 높고 많다 보니 작은 변화에 둔감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공무원 사회가 훨씬 깨끗해져 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쪼코형님이나 박 주사님 같은 분들이다.

쌀 직불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령해 간 공무원들, 여전히 검은 뒷거래에 가담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고개 빳빳이 들고 사는데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의 어깨는 오늘도 무겁다. 잘못된 세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달라는 소박한 요구가 폭력으로 돌아오는 사회, 그것도 생존권까지 박탈해 가는 잔인한 사회는 참 나쁘다. 나쁜 사회를 바꿔 보겠다고 처지는 고개와 무거운 어깨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쪼코형님이나 박 주사 님같은 사람들…….

물론 지금 사회는 훨씬 더 비참한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기륭이 그렇고 이랜드가 그렇고 인천 GM대우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조금 덜 비참하다고 해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해고 문제가 소홀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이기 때문에 솔선해서 잘못된 매듭을 푸는 모범을 보이고 이를 계기로 나쁜 자본의 횡포를 줄여 가는 건 꿈에나 불과한 일일까.

이런 마음을 담아 해고된 공무원 노동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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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26. 10:24 알림 / 엮은이의 글

 

4 사진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10 엮은이가 독자에게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13 따르릉! 작은책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4 불쌍한 친구  장남길

18 미안합니다  오정현

21 3년 만에 당선된 ‘운동권’ 총학생회  박재균

23 까칠한 아들 키우기  이남옥

28 나를 채찍질하는 수업  이혜숙

33 여성의 일과 삶

전화기 켜 놓으세요  유이분

38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이성수

40 살아온 이야기 (1) 탄광촌을 떠돌며 자란 어린 시절  황인오

46 오도엽의 일터 탐방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52 일터에서 온 소식 (1)

법원, 너마저도 우리를  김은경

58 일터에서 온 소식 (2)

선생님, 우리랑 같이 졸업 못해요?  정상용

62 세상의 중심에서 십대가 외친다

서울은 마을이 없다  김수민

66 이야기가 있는 들녘

난, 착하게 살고 싶을 뿐이고  이진천

 

기획 특집 _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박정희와 이명박  진중권

 

72 강좌

86 질문과 답변

92 뒷이야기  정지선

95 만화로 보는 세상  이성열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96 안건모의 삐딱한 글쓰기

100 깐깐선생의 글 뜯어보기

104 개구리박사의 다시 읽은 좋은 글

 

세상 보기

 

108 최영주 노무사의 현장 노동법 이야기  아기도 소중했고 돈도 벌고 싶었다

111 생각해 봅시다(1)  택시 운전사가 살길  기우석

115 생각해 봅시다(2)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민경우

119 나라 밖 소식  카슈미르분쟁, 인도와 파키스탄 갈등  김재명

123 정태인의 쉬운 경제 이야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127 ㅋㅋㅋ 누리꾼 세상

128 우리 밖의 우리  또 다시 희망의 땅을 찾아서  최금희

133 인물 바로 보기  곽태영과 권중희  방학진

 

쉬엄쉬엄 가요

 

137 여민락  저 가마가 식을 때까지  김산하

143 추억 따라 역사 따라  붕어빵과 풀빵  박준성

149 노동자 문화 산책  도스토예프스키  박홍규

153 영화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  강성률

156 생태 이야기  우주복 입고 살까?  박병상

160 함께 읽고 싶은 책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김승태

162 한 뼘 책 소개  그래도 열여덟은 아름답다  유혜림

163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67 독자사업부에서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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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병원, 노동자는 파리 목숨
오도엽의 일터 탐방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추석을 앞둔 9월 10일 강남고속터미널 너머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터미널과 병원을 잇는 육교에 올라서자 웅장한 글씨가 눈을 가로막는다. ‘2009년 5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개원합니다.’ 이천억 원을 들여 짓는다는 가톨릭 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사와 호흡을 맞춰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고용된 사람들이다. 2년을 계약하고 들어왔고, 계약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 계약을 그리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해고에 아무 문제가 없다. 2006년 10월 1일에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2년을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으니 2008년 9월 30일에는 계약대로 집에 가서 푹 쉬면 그만이다. 법을 기계처럼 적용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이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 그것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파리 목숨으로 여기면 안 된다.

홍석. 그는 서른일곱이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홍석 씨는 5년 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을 통해 강남성모병원에 취직을 했다. 이때는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을 맺었다. 홍석 씨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돈보다는 환자들에게 봉사도 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고된 일도 흥겹게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2006년 9월 28일, 낡아서 잘 굴러가지도 않는 침대를 힘겹게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으며 침대에 누운 환자를 검사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호출기가 울렸다.

“파견업체로 가라는 거예요. 더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딱 3일 남겨 두고 파견업체로 가든지 아니면 출근을 하지 말든지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정말 얼떨결에 파견업체로 간 거예요. 별 수 없잖아요. 파견업체로 가지 않으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데, 그것도 3일 남겨 놓고 통보를 하는데 어쩌겠어요.”


△ 9월 9일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비정규직 철폐하라>를 외치고 있다. ⓒ 작은책


홍석 씨만이 아니었다. 간호 보조 업무는 2002년 이전에는 모두 정규직이 담당하던 일이었다. 이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 형태를 바꾸더니 2006년에는 파견업체로 떠민 것이다. 노동자들은 선택을 할 생각은커녕 시간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와 다를 바 없다. 천 원에 팔리다가 해질녘에는 오백 원에 막판 떨이 신세가 되어도 그냥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팔려 나가면 그만인 존재다.

올해 서른둘인 이미경 씨도 마찬가지다. 다니던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자 이미경 씨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때 강남성모병원에서 사람을 뽑고 있었다. 3교대로 일을 한다지만 하루 8시간 근무니 해 볼 만했다. 물론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서를 썼다. 이리 큰 병원이면 안정되게 일을 할 수 있으니라 생각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다. 말이 8시간 근무지, 잠시도 숨 돌릴 겨를이 없다. 꼬박 8시간을 잔걸음으로 쉴 새 없이 뛰면서 근무를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겨우 짬을 내서 식당으로 가 식판에 밥을 푸는 순간 호출기가 울린다. 호출기가 울리면 허기졌던 뱃속과는 달리 입맛이 싹 사라진다. 식판의 밥은 고스란히 잔반통으로 들어가기가 일쑤다. 제 시간에 근무가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30분에서 한 시간은 잔업을 해야 한다. 수당도 없는데 말이다.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다가 퇴근시간이라고 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일은 교대 근무자가 오더라도 자신이 끝내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보조 업무라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아픈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닌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하루 8시간 넘게 병원 복도와 층계를 오르내리며 뛰어다녔으니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그리고 몸이 아픈 환자를 상대하다 보니 그 긴장은 육체의 피로를 몇 곱으로 가중시킨다.


△ 9월 9일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 작은책


물론 이미경 씨도 홍석 씨가 있던 자리에 2년 전에 함께 있었다.

“너무 억울했어요. 찍소리도 못하고 파견업체로 팔려 간 거잖아요. 배추 시래기처럼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그날 황당하게 파견업체로 버려진 사람들이 터미널 앞 호프집에 모여서 술을 한잔했어요. 울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다짐을 했죠. 이건 아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당하지 말자.”

그리고 두 해가 지나고 9월이 왔다. 홍석 씨와 이미경 씨와 배추 시래기가 된 간호 보조 업무를 하던 파견사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참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했다.

홍석 씨와 이미경 씨에게, 강남성모병원 간호 보조 업무 파견 직원들에게 “2년 계약하고 들어왔으면서 이제 와서 못 나가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하며 손가락질할 사람 있습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 고용된 직원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강남성모병원에 고용된 사람입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서 일했습니까,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습니까? 이들이 찍소리 하지 않고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가라사대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꽃을 만들었듯이, 강남성모병원 가라사대 간호 보조 업무가 정규직이 되라 하고 비정규직이 되라 하고 파견직이 되라 하면, 그 가라사대에 따라 고용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가톨릭의 정신입니까? 그게 생명 존중입니까? 수천억을 들여 짓는 새 병원 담벼락에 자랑스럽게 써 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인가요? 새 병원에는 70평짜리 초호화 병실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기업 CEO들이 입원을 해서도 회의를 할 수 있는 초특급 병실을 갖춘다고 하는데요, 가톨릭에서는 돈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고, 돈 없는 이들은 2년마다 해고를 묵묵히 감수하며 일하는 세상이 옳은가요?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간호부 소속 사원으로 되어있던데, 간호부의 부장님 과장님들이 수녀님이시던데, 수녀님! 당신 부서의 사원들이 시장판 배추 시래기 취급을 받고 있는데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심지어 앞장서시는 것이 당신이 믿는 신앙에 따른 행동이신가요?

그리고 추석이 지났다. 강남성모병원에 비정규노동자들이 천막을 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천막이 세워진 몇 시간 뒤 강남성모병원이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천막을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들려왔다.


△ 농성장 천막에 내걸린 현수막. ⓒ 작은책


9월 30일.

홍석 씨와 이미경 씨의 강남성모병원 마지막 근무하는 날 찾아갔다. 스무날 전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미경 씨의 눈이 탱탱 부어 있었다. 웃을 때마다 콧잔등에 주름을 가득 지으며 까르르 자지러지던 이미경 씨는 보이지 않았다. 분홍 근무복 위에는 가을 하늘 빛깔을 가득 담은 조끼를 입었다. 결국 조끼를 입고 마는 구나. 칙칙한 청색도 뜨겁게 달궈진 붉은색도 아닌 가을 하늘빛 조끼라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설마 저 푸른 가을 하늘이 이들의 소박한 소망을 저버리겠는가 하는 위안을 했다.

“언제부터 로비에서 연좌 농성을 들어가셨어요?”

“연좌 농성 아니에요. 아침부터 병원 돌며 저희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로비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왜 저희가 이런지 호소를 하는데 무릎이 팍 꺾여 이 자리에 주저앉은 거예요. 그동안 설움이 복받쳐 올라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인사팀 직원들이 다가와 설움에 복받쳐 주저앉은 이들에게 나가라며 협박을 하였고, 병원의 연락을 받은 서초경찰서는 정보과 형사를 보내 연행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다. 일어설 힘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연행을 하든 말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투석을 받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온다는, 자신도 아이엠에프 때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아저씨 한 분은 꼭 강남성모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라며 요구르트를 건넨다. 휠체어에 링거를 달고 온 한 환자 분은 바나나 우유와 빵을 담은 하얀 비닐봉지 2개를 건네고 사라진다. 비닐봉지를 열던 박정화 조합원이 갑자기 굵은 눈물을 쏟아 내며 병원 로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손에 자그마한 쪽지 하나를 보여준다. 방금 전 우유를 건넨 환자가 봉지 안에 담아둔 쪽지다.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 어느 환자가 투쟁 중인 조합원에게 건넨 음료수와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가 적힌 쪽지를 보고 있다. ⓒ 작은책


이미경 씨 병동에 있던 분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안다. 이들이 얼마나 병원에서 소중한 사람인지를. 아픈 자신들에게 이들이 보여 준 헌신과 애정을 환자들은 안다. 함께 일한 간호사들도 알고, 병원 청소를 하는 용역 아줌마들도 알고, 주차 관리를 하는 용역 아저씨들도 안다. 파견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직원임을 알고, 반드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정말 환자들의 생명 존중만큼 노동자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함을 세상은 알고 있다.

약물로도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 2009년 광우병, 멜라민과 함께 온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비정규직,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사회가 무섭다. 가톨릭에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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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3. 14:52 알림 / 엮은이의 글

    4  사진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8   엮은이가 독자에게
    9   원고를 기다립니다
   10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2  남편이 돌아왔다!   유이분
16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   고화숙
20  수능이 코앞이다  이어정
22  주고받은 이메일  박지호
26  여성의 일과 삶  
      세 친구   안미선
30  삶이 있는 만화  정재훈
32  살아온 이야기(마지막) 희망은 있습니다    김재영
39  오도엽의 일터 탐방  
      절망의 일터    
45  일터에서 온 소식
      나의 투쟁기    최지연    
49  세상의 중심에서 십대가 외친다
      아침엔 출근, 저녁엔 등교    변차경
54  농촌 들녘에서 보낸 편지  
      곶감    김근희
기획 특집 _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신자유주의가 어디까지 갈까   우석훈
58  강좌
71  질문과 답변
77  뒷이야기
80   2008년 작은책에서 취재한 투쟁 사업장 현황    편집부

81   만화로 보는 세상  이성열

우리 밖의 우리
  82  함께 읽는 북녘 글  호박씨 닷되  
  85  북녘 남새 요리  토란국
  86  재일 조선인 이야기  꿈 같은 여름방학 (3)   김미자
  90  이주 노동자  이주노동자 단속 현장을 다녀와서    이정원


세상 보기
  93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   정권에 따라 역사의식이 바뀌는 교과부     김한종
  98 박종남 노무사의 현장 노동법 이야기  가슴속에 비현실적인 꿈을 갖자
  100 정태인의 쉬운 경제 이야기  우리가 살 길


그때 거기, 지금 여기
  104 인물 바로 보기  이각종의 사생아들    방학진
  108  여민락  나 때문에 그리 되었소!   김산하
  114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사람의 공간과 짐승의 공간     오창익


쉬엄쉬엄 가요
  120  우리말 산책  부리나케와 불현듯이  김수업
  122  생명을 살리는 밥상  밥의 꿈   윤혜신
  126  노동자 문화 산책  클림트    박홍규
  130  함께 읽고 싶은 책  서울공화국에서 벗어나기     김승태
  132  새로 나온 책
  135  독자사업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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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8. 09:58 알림 / 엮은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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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2  택시 손님 천태만상   이정민
16  엄마 생신  김명희
20  제발 제발 다시 들어오지 마라!  강정민
24  귀농과 입양   김지영
28  여성의 일과 삶  
      주인 아줌마의 비밀  안미선
32  삶이 있는 만화  정재훈
34  살아온 이야기(11)  엄마 시집 보내 준답니다    김재영
39  오도엽의 일터 탐방  
      생명을 살리는 병원, 노동자는 파리 목숨    
45  일터에서 온 소식
      지금 숙제 내러 갑니다   서분숙    
49  세상의 중심에서 십대가 외친다
      낯선 동양인 꼬마 시절   이한결
53  농촌 들녘에서 보낸 편지  
      탈곡    김근희
기획 특집 _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혁명은 다가오는가  손석춘
57  강좌
72  질문과 답변
78  뒷이야기

81   만화로 보는 세상  이성열
우리 밖의 우리
  82  함께 읽는 북녘 글  머슴이 량반을 때린 이야기  
  85  북녘 남새 요리  풋배추 돼지고기볶음
  86  재일 조선인 이야기  꿈 같은 여름방학 (2)   김미자
  90  이주 노동자  비전문 외국 인력 ‘개악’ 방안   이정원


세상 보기
   94 박종남 노무사의 현장 노동법 이야기  ‘모닝’의 질주, 노동의 절망
   96 종합부동산세 문제   종합부동산세   이태경
   100 정태인의 쉬운 경제 이야기  미국 금융 위기, 우리는 어디로?


그때 거기, 지금 여기
  104 인물 바로 보기  기억을 둘러싼 투쟁  방학진
  108  여민락  죽고 사는 것이 괴롭구나  김산하
  114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청계천, 전태일의 거리     민종덕


쉬엄쉬엄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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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생명을 살리는 밥상  덩덩 궁따궁  윤혜신
  126  노동자 문화 산책  릴케의 <가을날> 다시 읽기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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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나오지 않는 노동자 이야기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두 달이 넘도록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억수와 같이 비가 쏟아져도 촛불은 꺼지지가 않는다. 시청광장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면 유모차를 탄 아이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까지 만날 수 있다. 녹음기 마이크를 슬며시 들이대면 갖가지 사연이 흘러나온다. 서울광장은 서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고 달래는 공간이 되었다. 촛불 문화제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대전의 콜텍 조합원은 서울 본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천의 테트라팩도 다국적 기업과 맞서 아직 싸우고 있다. 반가움은 잠깐이고 답답함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촛불이 미처 비춰 줄 수 없는 설움과 눈물이 너무도 많아 속상할 뿐이다. 서울광장에 모인 기자들의 카메라를 보면서 참담해진 순간도 있었다. 1000일을 넘기며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이 이제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싸움도 1년을 훌쩍 넘었다. 지난 여름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쫓겨난 이랜드 노동자들이 농성을 했던 홈에버 상암점에는 다시 농성 천막이 들어섰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 6월 25일 남대문에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을 찾아갔다.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가슴에 매단 천에는 하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 밑에 자그마한 글씨로 ‘비정규직의 뻥 뚫린 가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공공 기관이다. 서민들의 전세 자금, 연금, 학자금 들을 대출해 주는 곳이다. 5백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백여 명은 계약직 직원이다.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만들어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정책이다.

△ "사람은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

  계약직 직원은 보통 11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했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2년이 넘은 비정규직은 이제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공공 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되는 오는 7월에는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기 계약직이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광주지사에서 근무하는 이재석 씨는 지난 3월에 익산센터로 옮기라는 제의를 받았다. 계약직인데 익산으로 옮겼다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었다. 아내도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용이 안정되지 못한 이재석 씨에게 아내의 수입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전학시키는 일도 부담이었다.

  회사에서는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2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오는 7월에 당연히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서른여덟 이재석 씨는 결심했다. 이제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데 뭐가 걱정이냐. 맞벌이를 하던 아내에게는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이제 갓 입학한 아들도 전학을 시켰다. 집도 팔고 익산으로 일터를 옮겼다. 익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게 4월 3일이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이재석 씨는 어김없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익산센터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컴퓨터를 켜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을 하였다. ‘계약 인력 운용’이라는 제목으로 부사장 이름의 공문이 올라와 있었다. 이재석 씨는 무기 계약직 전환에 대한 대책이 발표된 줄 알고 기뻐서 클릭을 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공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채권추심에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을 계약 해지를 한다는 공문이었다. 업무를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직원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각 지사와 센터는 신규 직원에 대해서는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직으로 뽑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말했다.

  “능력이 없어서 쫓겨나거나 성실하지 못해서 계약 해지되었다면 억울하지 않아요. 업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상관없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2년 이상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는 거잖아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불안해도 11개월에 한 번씩 자동으로 계약을 갱신했는데 이게 뭡니까.”

  또한 계약직 직원들은 공공 부문 개혁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공공 기관 개혁을 하라고 하니 계약직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예요. 정규직을 구조 조정할 수 없으니 계약직 직원들이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으로 전환되는 걸 막아 개혁을 했다고 하려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하던 업무는 계속 필요합니다. 저희가 나가는 자리를 단기 계약직으로 충원한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식 공공 기관 개혁의 실상이에요.” 6월 3일 공문에는 계약 해지자 명단이 없었다. 더는 계약 갱신 없이 모두 해고라는 통보였다. 그날 밤 퇴근을 한 이재석 씨는 차마 아내에게 이달 말로 계약 해지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 "정규직화 실시하라." 노동자들의 바람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여보,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림만 하는 것도 이제 몸에 익네.”

  아내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말을 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식탁으로 달려와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화났어?”

  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는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목소리에 이재석 씨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재석 씨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이대우 씨는 계약직 직원을 일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행동이라고 분노를 했다.

  “계약직이라지만 회사에서 2년 넘게 근무해 온 직원들이 아닙니까. 최소한 한두 달 시간을 두고 해고 통보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모두들 집안의 가장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6월 3일에 달랑 전산망에 공문 한 번 올리고 그달 말에 회사를 나가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다른 일자리 알아볼 짬이라도 줘야 맞는 것 아니에요. 계약직 직원들이라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금융계에 근무한 베테랑이에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정말 자존심을 뭉개는 짓이에요.”

  이대우 씨는 평화은행에서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아이엠에프 때 은행들이 구조 조정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가로놓인 높은 벽을 하루에도 몇 차례 경험을 했다. 취재를 하고 돌아서는데 계약직 직원들이 물었다. 오늘 몇몇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가 왔는데 언론에서 다뤄 주겠냐고 묻는다. 얼마 전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취재를 해 갔는데 갑작스레 촛불 집회 관련 내용으로 바뀌어 방영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알 수 없다고 답을 했다. 해고를 앞둔 계약직 직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한국주택금융공사 노동자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 "비정규직 법안을 악용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를 규탄한다."

  나흘 뒤,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에 전경차가 8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보 게재에 맞서 성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몰려 나온 날이다. 물대포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생중계하던 날이었다. 노란 비옷을 입고 물대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재석 씨로 보였다. 주홍빛 조끼를 입은 기륭전자 노동자도 보였다. 이랜드 노동자도 보였다.
 
얼굴에 맺힌 물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겠다.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에 맞아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울광장에는 한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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