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2020년 5월 1일, 노동절 130주년, 월간 〈작은책〉이 2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작은책〉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생활 글쓰기를 이끌어 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님과 변산공동체 윤구병 선생님의 뜻을 길잡이로 삼고 평범한 서민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글쓰기 모임도 만들고 노동자들이 쓴 글을 찾아 실었습니다.
지난 2010년에 단행본 세 권을 출간한 뒤, 10년 동안 독자님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삶을 풍성하게 했던 생활글을 추려 다시 두 권을 발행합니다. 지금까지 〈작은책〉에 실렸던 생활글에는 서민들의 소소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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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의 말
월간 〈작은책〉이 25주년을 맞이해서 단행본 두 권을 출간합니다. 2010년에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로 1~3권이 나온 뒤 10년 만에 나오는 책입니다. 시리즈 3권에 이어 이번에도 그동안 〈작은책〉에 실렸던 생활글을 모은 책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이때, 책을 내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까 하는 회의도 했지만 진작 계획했던 일이라 용기를 냈습니다.
책을 내면서 1995년에 처음 발행했던 월간 〈작은책〉을 찾아봤습니다. 64쪽짜리에, 가운데를 스테이플러로 찍은 책입니다. 그 얇은 책 안에는 공장 노동자들이 쓴 글들이 많았습니다. 차광주 발행인이 쓴 글을 보면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실은 책이 과연 월간지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났습니다. 〈작은책〉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생활글쓰기를 선도해 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고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길잡이 삼아 평범한 서민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모임도 만들고 노동자들이 쓴 글을 찾아 실었습니다. 지금까지 〈작은책〉에 실렸던 생활글을 다시 읽어 보면 서민들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 4권, 《서로 안고 크니까 그렇지》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작은책〉에 실렸던 글입니다. 마트 노동자, 일용직 택배 노동자, 철물점 노동자, 도시가스 점검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쓴 글이 있습니다. 2011년 9월에 최만선 씨가 쓴 글을 보면, 강원도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누나와 10년 만에 전화통화를 하고는 어릴 적에 자신을 키워 줬던 누나를 회상합니다. 최만선 씨는 2020년 3월호 ‘작은책이 만난 사람’에서 인터뷰한 독자입니다. 현재 삼표레미콘 서부공장에서 차주회 회장, 노동조합으로 말하면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다가 만난 여자 손님과 결혼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손님은 차비가 없다고, 다음에 준다고 하면서 택시 기사에게 삐삐 번호를 알려 줍니다. 그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는데 글쓴이는 운명이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 택시 기사는 나중에 버스 기사가 되고 부산버스노동자협의회 회원으로 ‘노조 민주화 추진’ 활동을 열심히 합니다.
2010년에 ‘하루에 열 시간만 일하고 싶어요’라는 글도 눈길이 다시 갑니다. 대체 얼마나 일을 하기에 ‘열 시간만 하고 싶다’고 할까요. 숙박업 노동자가 쓴 글입니다. 당시에는 월차도 없고, 명절 때 연차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그때와 달라졌을까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시리즈 5권,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걸까?》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작은책〉에 실렸던 글 중에서 뽑은 글입니다. 뜻밖에 귀농한 분들이 쓴 글도 많이 보입니다.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자주 나왔던 최성희, 최상천 부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최상천 씨는 소방서에 근무했는데 퇴사하고 부인과 함께 캠핑카로 전국을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주도에 머물고 있죠. 가끔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엄청 행복해 보입니다.
또 마트 노동자, 맥도날드 알바 노동자가 쓴 글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과연 어떠했을지, 꼭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이란 가장 먼저 감동이 있어야 하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지혜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뉘우치는 것은 이제 그만! 우리 이웃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수 있겠지요.
여기에 실린 글은 글쓴이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여기 실린 글이 거북하시다면 〈작은책〉에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월간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 책 중에서
“엄마는 아빠가 몇 번째 남자야?”
그래서 화려한 나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면서 마지막으로
“그래도 엄마가 제일 사랑한 남자였고 대화가 되었고 믿음이 가는 멋진 남자였단다”라고 뻥을 좀 쳤다. - 4권, 본문 23쪽
나는 신입 사원 때 서른이 넘은 선배를 보면서 ‘왜 저렇게 나이 먹도록 구질구질하게 회사를 다니냐’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여직원들은 결혼만 해도 퇴사를 했다.
하지만 나이 마흔이 넘은 올해, 처음으로 정년퇴직하는 여자 선배를 보았다. ‘아, 멋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정년퇴직을 하다니. - 4권, 본문 198쪽
중학생 딸은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다. ‘평소 자기 실력을 측정하는 것이 시험인데 벼락공부는 반칙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아이다. 심지어 최적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며 전날 9시면 불 끄고 눕는다. - 5권, 본문 86쪽
“야! 니 잘 사나?”
“응, 잘 살아!”
십 년 만에 하는 전화가 이랬다. 누나한테 드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누나는 나 때문에 자기 인생길이 갈리고, 그 고생을 했으면서도 한 번도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가슴 아프다. - 4권 본문 31쪽
분명히 내가 인사를 했는데 투명 인간이 인사한 듯 못 본 척하거나 손님이 돈을 내밀어서 받으려 하는 순간 테이블에 휙 던지거나 잔돈을 주려고 손을 내밀면 팔짱 끼고 먼 산을 보는 행동. 아니, 아르바이트생 인사 받아 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니, 손님, 당신 꿈이 야구 선수였나? 왜 자꾸 던지고 지랄이야. 아니, 내가 뭐 전염병 환자라도 되나? 내 손 닿으면 손이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하나? 참, 어이가 없다. - 5권, 본문 149쪽
“같이 살림 차리고 8년을 살던 놈이 다시 4년 더 살자고 하면서 혼인 신고는 절대 안 해 준대. 당신 같으면 이 ×새끼 어떻게 할 거야! 판사도 인정했잖아, 사실혼이라고. 왜 당신들만 쌩까냐고!” - 5권, 본문 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