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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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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8. 12:02 알림 / 엮은이의 글

* 3월호 배송 지연 안내

 - 3월호를 지난 2월 26일 일반 우편으로 발송하였습니다. 아직(3월 8일 기준) 책이 안 왔다는 독자님들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관할 우체국에 문의한 결과 우편 물량이 폭주하여 전국 우체국들도 집배 지연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3월 9일까지는 대부분 배송이 될 거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책을 못 받은 독자님들은 <작은책>으로 연락주시면 재발송하겠습니다. 많이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엮은이의 글

몇 년 새 우리 시대의 참 어른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나가십니다. 3월호 마감 중에 백기완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늘 낮고 작고 힘없는 이들 곁에 서서 함께 싸워 주신 선생님. 오래전 작은책 강좌에 오셔서 세상을 바꾸는 올바른 꿈과 사상을 일러 주셨어요. <작은책> 정신과 맞닿은 ‘노나메기’. “너도 나도 더불어 일하며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셨지요. 그 말씀 따라 <작은책>도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이번 달 일터에서 온 소식은 네 편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인천공항 면세점 노동자들 이야기, 가족 사랑을 실천한다는 대기업 마트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 고객들의 욕설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져도 전화벨이 울리면 1초 안에 받아 밝은 목소리로 응대’해야 하는 건강보험공단 상담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십이 넘어 청소일을 시작했다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이순예 씨의 구술은 마음을 찡하게 울립니다. “우리의 일자리로 돌아갈래요.”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하철 역사마다 엘지 불매 포스터를 붙이고 있답니다.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엘지 제품도 쫓겨나요!”

독자님~. 지하철역에서 이런 포스터를 보면 아직도 힘들게 싸우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이분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엘지 제품 불매로 함께해 주세요.

2021년 2월 17일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바다 출근길이 설레는 부부 어부 안건모

30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28 엄마는 사랑이 참 많았어요 이임순

32 계약서를 쓰는 데 12년 걸렸다 심연

36 깃벘던 일, 아버지의 공책 신혜정

40 안녕, 나 별거하기로 했어 구본희

45 살아온 이야기(3)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3) 최현숙

51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의뢰인들이 나를 위해 울어 주었다 남수경

55 우리 동네 주치의

범인은 돈가스인가, 생굴인가 추혜인

59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학교는 교육 기관인가, 보육 기관인가 안정선

64 남해 바다 어촌 일기

보물섬 남해 황은주

68 제소라의 아는 여자

꽃보다 ‘유정수’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2 유령도시에서 사라지는 직원들 김금주

76 ‘가족 사랑 실천’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고광진

80 벨이 울리면 1초 안에 받아라 강혜경

86 연대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순예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보이스 피싱 피해금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양성우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너 출입국 사무소에 신고할 거야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입은 하나, 귀는 둘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귀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의료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교육은 왜 이렇게 됐을까?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과학이 내일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박병상

124 존버 씨의 시간들

알고리즘이 감시하는 세계 김영선

 

쉬엄쉬엄 가요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자의 정숙한 몸가짐, 중요합니다!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내 이야기 들어 볼래?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1. 1. 27. 16:53 알림 / 엮은이의 글

엮은이의 글

어느새 2월을 맞습니다. 1월호가 나가고 독자님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습니다. 새 꼭지와 필진이 기대가 된다는 얘기, 연재가 끝난 꼭지에 대한 아쉬운 마음 등을 전해 주셨습니다. 독자님들 마음 받아 글 한 편 한 편 정성을 다해 싣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 ‘희망버스를 기억하시나요? 2011,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를 응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지요. 고공농성 309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으나 복직은 되지 않았어요. 배 만드는 노동자였던 김진숙 씨가 해고된 지 35년째입니다. 암 투병 중인 그녀는 복직 없이 정년 없다는 각오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습니다. 이번 달 안건모의 사람여행주인공은 김진숙과 함께 걷는 사람들입니다. 김진숙 씨가 왜 걸을 수밖에 없는지, 누가 왜 그 길을 따라나섰는지 희망뚜벅이들을 본문에서 만나 보세요.

청와대사랑채 앞에는 김진숙 복직을 염원하는 분들이 오늘로 2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고, 김진숙 씨와 희망뚜벅이들은 15일째 걷고 있어요. 오늘은 김천역을 지났고, 독자님들이 2월호를 받게 되는 2월 초에는 천안, 평택, 인덕원 근방을 지나게 될 겁니다. 서울이 가까워지면서 희망뚜벅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아요.

독자님들, 근처에서 줄지어 뚜벅뚜벅 걷는 사람들을 보시거들랑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걷는 걸음걸음에 희망을 보내 주세요. 김진숙 씨가 외칩니다. “끝까지 함께 웃으며 투쟁!”

2021115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복직 없이 정년 없다 안건모

30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32 사랑한다면서 왜 화내? 이은주

37 남편 모르게 사랑이 가능할까? 하해영

42 너네 엄마 누구냐? 하채현

45 사춘기 대 갱년기의 전투 김은영

50 살아온 이야기(2)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2) 최현숙

56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스캐비 쥐를 지킨 남편이 떠났다 남수경

60 우리 동네 주치의

하하하, 그 도시락 저도 알죠 추혜인

64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코로나19 시대 수업, 교사마다 천차만별 안정선

69 남해 바다 어촌 일기

장군은 갑옷을 입고 어부는 갑바를 입는다 황은주

73 제소라의 아는 여자

넝쿨의 여자들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8 노조의 힘이 세지면 어떻게 될까요 양경수

84 군위군청, 갑질 행정과 차별은 이제 그만 김동환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면? 김묘희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우리 회사 근로자대표가 누구라고요?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민주당으로 가! 한자리 할 수 있잖아!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구금시설에서 의료제도의 진면목을 본다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왜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나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강력해진 자연의 경고는 귀찮은 소음인가 박병상

124 존버 씨의 시간들

업무상 정신질환, 어떻게 볼 것인가? 김영선

 

쉬엄쉬엄 가요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개성을 죽일수록 칭송받았던 시대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명랑하고 따뜻한 민주노조의 일상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5:54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작은책> 20211월호

세상 보기

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할 병상이 부족하다. 11월 중순부터 환자가 급속히 늘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날마다 수백 명씩 감염이 확인된다. 무증상자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지만 열이 나고 아픈 데가 있는 환자, 전부터 앓던 병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12월 들어 환자가 많아지니 전담 병원 입원실에 빈자리가 없다. 지금 수도권에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이 수백 명이다. 대기하는 동안 증세가 나빠지기도 해 환자도 가족도 방역 당국도 불안하다.

 

병상이 많아도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않아

상황을 심각하게 하는 것은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 부족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폐렴이 진행되는 환자는 갑작스레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어 이런 경우 초기에 즉시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로 치료해야 한다. 주로 고령층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일어나며 제때 집중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한다. 이에 대비해 정부가 전담 치료 중환자 병상200여 개 지정해 두었는데 1210일 아침에 남아 있는 병상이 서울에 3, 경기도와 인천을 합쳐도 6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만약 호흡곤란 환자가 6명 넘게 발생하면 누군가는 치료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할 테니 정부 대책으로는 중대한 허점이다. 준비된 병상이 적은 이유가 병원과 중환자실이 적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인구당 병상은 영국보다 다섯 배, 미국보다 네 배, 독일보다 1.5배로 과잉이라 할 만큼 많다. 중환자실 병상도 상급종합병원(고도의 전문적인 의료를 시행하는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 약 3천 개, 병원 전체에는 약 1만 개나 된다.


우리나라 병상의 95퍼센트가 사립 병원 소유다. ‘95퍼센트라는 숫자는 의료를 거의 전적으로 사립 병원에, 다시 말해 공공이 아닌 민간 사업체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환자 치료에 수익성을 따지는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수익성이 낮고 위험한, 게다가 많은 의료진을 투입해야 하는 질병에 대해 사립 병원은 입원 문턱을 높이거나 아예 빗장을 건다. 크고 유명한 사립 병원에 병상이 수천 개 있어도 코로나19 환자는 손으로 꼽을 만큼 받을 뿐이다. 그러니 환자 대부분을 공공병원이 도맡는다. 주요 도시마다 겨우 하나씩 있는 지방 의료원이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돼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병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수익성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존폐 위기 속에서 어렵사리 공공병원의 명맥을 이어온 터라, 병상 규모가 작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도 적어 중증 치료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 대학병원에 음압격리 중환자실을 최대한 확대하게 하고 삼성, 아산 등 사립 대학병원에 협조를 구한다. 코로나19 중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높게 정해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보다 열 배 많은 금액을 지급하기로 하며 병상을 열어 주기를 요청한다.

 

경영 수익을 따지는 의료의 민낯

사립 대학병원은 몸을 사린다. 그 이유를 삼성의료원이 코로나19 중환자를 4명만 받겠다며 내놓은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시설 부담이다. 음압 격리 병상 4개를 만드는 데 드는 면적이 기존 병상 18개를 폐쇄해야 할 만큼 넓다고 한다. 둘째, 인력 부담이다.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 간호사 1명이 환자 2명을 돌볼 수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에는 간호사 5명이라야 환자 2명을 돌볼 만큼 인력 소요가 크다고 한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주는 표현이라 하겠으나, 그런 이유로 입원 환자를 극소수로 제한하는 것은 경영 수익을 중시하는 사립 기관의 전형적인 논리일 뿐이다. 삼성의료원은 소유 병상이 2천 개가 넘고 의대 학생을 교육하며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병원이다. 이와 같은 병원이 코로나19 감염증 유행의 재난 앞에서 비용을 계산하며 몸을 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의료의 어두운 민낯이다. 최고의 인력·기술·자원을 보유한 병원이 국가적 위기 극복에 발을 뺀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아 운영하는 병원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 치료를 남에게 떠넘긴다. 사립이라는 이유로 힘든 짐을 공공에 맡기고 자기 보호를 꾀한다.

사립 병원의 논리는 전문가 단체의 주장에도 반영된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127일에 낸 코로나19 급증에 따른 중환자 진료 체계 구축을 위한 성명서는 정부와 보건 당국에 상급종합병원 기반에서 벗어나 전담 병원 기반으로 대응하고 대형 임시 병원을 구축(체육관, 컨벤션 등 활용)하라고 촉구한다. 그 뜻을 되짚으면 정부가 더는 사립 대학병원에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요구하지 말라는, 대신에 공공병원에 맡기고 그래도 부족하면 체육관 같은 곳을 임시 이용해 해결하라는 주장이다. 묻고 싶다. 의학회는 공공병원의 어려운 의료 여건을 과연 모르는지. 중증 호흡기 환자를 임시 시설에서 치료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는지. 요구대로 대형 임시 병원을 짓는다면 새로 의료진이 필요한데 여기에 학회 전문의들이 참여할 건지.

공공병원이 더 큰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이미 수도권에서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 지방 의료원의 입원 병상을 전부 또는 대부분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키고 의료진이 모두 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된 상태다. 입원한 환자가 호흡곤란 징후를 보여도 중환자를 받아 줄 상급종합병원을 찾기 전까지 치료를 책임져야 하니 의료진의 스트레스가 크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지자체 당국이 응급실, 분만실 등 다른 기능은 줄이거나 정지하게 했는데 여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의료원에 의지하던 저소득층 환자를 진료해 줄 다른 병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집에서 방치되거나 상태가 나빠져 사망하기까지 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산모, 코로나19에 감염된 혈액투석 환자를 받아 주는 곳도 찾기 어렵다. 사립병원에서는 자기 병원에 다니던 임신부라 해도 감염 확진자라고 하면 공공병원에서 분만하라며 문을 닫는다.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가 되려면

코로나19 유행이 우리나라 의료 제도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정부는 건강보험을 통해 필수 의료가 공급되게 하고 국민에게 의료 이용을 보장했다. 그러나 보험의 주된 기능은 돈을 모아 비용을 해결하는 것이며 의료 내용과 성격에 깊게 개입하지는 못해, 그와 같은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에 관한 국가적 관리 기능을 높여야 한다. 국민을 위한 의료,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를 사립 병원이 주도하는 시장에 맡겨둔 채 공공의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자기 사업을 꾸리는 방식으로 의료 활동을 하게 했을 뿐, 공공의 이익을 높이는 의료 체계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일제 강점과 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짧은 기간에 의료 공급을 확대할 목적으로 손쉬운 방안인 민간 공급을 선택했던 과거가 남긴 결과다.

의료는 매우 넓은 범위의 학문, 기술, 활동을 포괄하는 사회적 영역이며 삶의 필수 요소다. 따라서 누구도 의료 전체를 소유하거나 장악할 수 없어 사회 공동의 힘으로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의료에서 공공성은 본질로서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관련해 참고할 선례가 유럽이다. 지난 세기에 그곳 나라들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제도를 세웠다. 나라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를 이용하고 건강에 관한 한 안심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에도, 비록 초기 방역에 실패해 유럽 모든 나라에서 환자가 엄청난 숫자로 발생하게 되었지만, 병원 대부분이 공공병원이고 의료진 대부분이 공직자인 제도 안에서 국가적 비상 체계를 작동해 상황을 통제한다. 방역의 실패를 의료가 수습하는 셈이니 우리와는 정반대라 할 만하다.

공공성을 높여 누구나 건강하게 하는 제도, 공공의료에 관한 짧은 글로 올 한 해 작은책독자와 만나려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11월호

일터 이야기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이팝 노동법률사무소, 작은책 자문 노무사

  

 

박미래 씨(가명, 40)는 올해 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경력이 있었기에 일을 시작하고 담당 업무인 회계 경리 업무를 거침없이 해 나갔습니다. 회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클럽입니다. 박미래 씨는 근로계약서를 요구하고 4대보험 가입을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박미래 씨가 입사한 지 한 달 뒤에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사유는 사업주 명령 불이행이었습니다.

해고통지서를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뛰고 그저 두려웠습니다. 둘레에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법대로 해 보자.’ 하고 의지를 다지며 노동위원회라는 곳에 가서 직접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이 접수된 것을 알고서는 바로 업무 복귀를 명령했습니다.

회사는 첫 번째 복귀한 날부터 본격적으로 감시와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중 개인 휴대폰 사용 금지, 화장실도 최소 시간으로 다녀올 것, 잡담 금지를 지시하고, 모든 업무에서 배제하고 그날그날 업무만 지시했습니다. 뭐만 하면 꼬투리부터 잡고서 경위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당당하게 업무 지시에 따라 일을 했는데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여 작성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경위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경위서 작성으로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여러 날입니다.

경위서가 여러 장 쌓이자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박미래 씨를 해고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직접 접수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했습니다. 회사도 어디서 법률 자문을 받는지 반박 서류를 치밀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박미래 씨는 그보다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부당해고 이유서를 노동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징계 해고는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는 이번에도 복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복귀하는 날 출근하니 회사가 그 사이에 이사를 갔습니다. 문 닫힌 회사 건물 앞에서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대표님, 어디로 갈까요?’ 회사는 그제야 박미래 씨에게 문자로 옮겨 간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박미래 씨가 두 번째 복귀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회사는 코로나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는 핑계로 일방적 휴직 명령을 내렸습니다. 박미래 씨는 3개월 뒤에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인력 재배치를 한다는 이유로 다시 출근한 박미래 씨에게 회계 업무와는 전혀 다른 재고 업무를 시켰습니다. 박미래 씨는 꿋꿋하게 출근을 하며 무거운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고 파악 업무를 했습니다.

회사는 다시금 박미래 씨만 콕 집어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세 번째 해고 사유는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였습니다. 박미래 씨는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노동위원회를 세 번째 찾아갔습니다. 문래동에 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가는 길이 익숙해질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판정에서도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했습니다. 회사의 해고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부당해고 인정을 받은 날 회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세 번째 복귀 명령입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박미래 씨에게 야간 업소 입구에서 체온 측정 등의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유 없이 거부당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주변 건물의 화장실을 찾아 어두운 길목을 뛰어갔다 와야 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지금도 회사의 괴롭힘에 맞서 힘쓰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감시, 이유 없는 업무 배제, 알 수 없는 업무 배치, 업무 시설 사용의 제한, 부당해고와 싸우는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에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동료들은 괴롭힘인 줄 알면서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외면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97월에 시행되었습니다. 그 인정 요건은 첫째, 가해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둘째, 그 행태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셋째,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등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률(근로기준법 제76조의2, 76조의3, 109조 제1)에는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반쪽짜리 규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업주에게 괴롭힘 신고를 한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회사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음에도 별도의 조치가 없는 경우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청은 이 경우에도 사업장 지도 개선 방식에 머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싸울 때 동료 근로자들의 외면 그리고 입증 책임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동료를 외면하지 않고 응원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 곁에 열려 있는 <작은책> 노동상담소

전화_010_7237_8228

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5:20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엮은이의 글 

 

2021년 새해를 맞습니다. 지난 1년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참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날마다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인지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느라 작은책도 연말연시 모임이나 행사는 아예 계획하지 않았고요, 다달이 독자분들과 유일한 소통 창구인 글쓰기 모임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인터넷으로 접속을 하니 멀리 지방에 계신 독자분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시절에 맞게 독자님들께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새해부터 안건모의 사람여행연재를 시작합니다. <작은책>과 인연이 있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삶을 여행하고자 합니다. 1월호 사람여행의 첫 주인공은 제주도에서 집 없이 사는 최성희·최상천 부부입니다. 맘 편히 여행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니 <작은책>을 읽으며 함께 사람여행을 떠나기로 해요.

올해도 <작은책>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새로 시작한 꼭지의 필자님들과 함께 다달이 웃고 우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작은책> 자문위원인 정태인 님의 희망의 경제학과 홍세화 님의 낮은 곳, 나의 자리로도 연재됩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작은책>은 작고 낮은 곳에서 독자님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1215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제주 니어링 부부 최씨네안건모

24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26 추접스런 젊은 여자의 김장 체험기 장진영

29 코로나19로 노인 연대가 핀다 고현종

33 1인 가구, 수술 동의서 서명은 어떻게? 권영란

37 아버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다 전혜진

43 50대 백수 아줌마의 가출, 문제는 이다 김영주

47 살아온 이야기(1)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 최현숙

53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국보 빵잽이 미국 변호사 되다 남수경

57 우리 동네 주치의

조폭 아저씨의 신박한 건강법 추혜인

61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저기요, 고객님? 체온 재게 마빡 좀안정선

66 남해 바다 어촌 일기

물고기들이 자를 들고 다닌다? 황은주

70 제소라의 아는 여자

아는 여자를 시작하며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4 우리가 뉴스다 윤미영

80 신나게! 독하게! 당당하게! 정민규

86 한 시간가량 소명했는데 귓구녕이 막혔나 최창덕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부당 징계에 대항하는 법 김예지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낮은 자리, 가장자리가 편해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희망의 경제학을 시작합니다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근대 문명을 버려야 행복한 생태 문명 박병상

124 어린이 해방과 평화

대우주의 말초는 오직 어린이에게 있습니다 이주영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녀들이여, 두려움 없이 말하라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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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대한민국 9급 공무원

 

 

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차 9급 공무원이다. 내가 일하는 주민센터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민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거다. 어떤 때는 정말 다들 손에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리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에는 정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진다. 점심시간 중에도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민원을 봐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 잘릴 염려 없고, 어쨌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 나는 운이 좋구나 싶다가도, 한 번씩 인터넷상에서 공무원들을 놀고먹는 철밥통에 세금이나 축내는 한심한 존재로 싸잡아서 얘기하는 댓글들을 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내 경우만 해도 몇 년에 한 번 주민센터에 가서 민원을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뭐 사람들이 그리 있을까 생각들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정적의 시간 동안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주민센터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롭게 일하는 곳으로 비치기도 할 테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화된 지금도 단골 민원인들은 있다. 어떤 민원인들은 마실 삼아 주민센터에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온다. 아침에 번호 대기표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서 오늘은 좀 사람들이 덜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치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듯이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있고, 점심도 체하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화가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질라치면 화를 내고,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 달라고 떼를 쓰는데 안 된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고, 직원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존감 뭉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그야말로, 던진다. 과연 이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 일을, 먹고살기 위해 직업으로 택한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들은 말이다. 비록 '노동자의 날'에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는 하지만, 월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거의 최저시급이고, 민원인들이 갑질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주장을 얘기하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 맘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만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욕도 배부를 정도로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재난 지원금과 관련된 경우였다. 먼저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정부에서 1차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기사가 난 이후 주민센터로 그와 관련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지침도 안 내려오고, 우리도 아는 거라고는 기사로 난 정보가 다였는데 말이다. '지침이 안 내려와서 안내를 드릴 수가 없다'는 답변을 하면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을 위해야 하는 주민센터에서 그것도 모르고 그 정도의 답밖에 못 해 주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재난 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야근에, 주말 출근에,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갔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해외 체류 등으로 지원금 수급의 자격이 안 된다거나, 가족이라 세대 분리가 안 되는 등의 사유로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이었다. 우리도 돈 더 드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럴 땐 진짜 내 월급이라도 까서 드리고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된 경우가 많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괴로웠다. 물론 좋은 민원인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와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인 걸까?

나는, 아니 대부분의 말단 공무원들은, 하루하루 성실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길 원한다면, ‘내가 내는 세금으로 너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러느냐?’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우리도 세금 누구보다 꼬박꼬박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돈이라는 건 원래 돌고 도는 존재라, 그 사람들이 말한 세금이 우리 월급에서 차지하는 지분만큼 나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각종 부문에서 성실히 소비하고 있는 돈이 흐르고 흘러 그들에게 눈꼽만큼이라도 가는 것이니 말이다.

서류 한 장에도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고 미소 지으며 말씀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작은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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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3. 16:27 기획 특집

<작은책> 11월호

특집_ 전태일 열사 50주기, 아동·청소년 노동

 

 

생계형 알바를 하는 학교 밖 청소년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

  

민주는 스물네 살 청년이다. 열세 살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던 엄마 아빠가 그 무렵 완전히 이혼을 했고, 건강이 나빠진 엄마는 일을 하지 못했다. 민주는 학교 준비물도 사고 친구들과 간식도 사 먹으려고 떡볶이집에서 시급 2000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잠깐 일하고 용돈을 벌려는 생각이었지만, 이후 민주의 삶은 '끝없이, 쉼없이' 일해야 하는 알바 생활로 이어졌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고 이혼한 아빠가 몇 해째 생활비를 보내 주지 않아 민주는 고등학교 입학 두 달 만에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유소, 피시방, 호프집, 제빵 공장. 민주는 몇 달에 한 번씩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일했다. 한동안 일하다가 몸이 지치면 잠시 그만두고 쉬었다가, 돈이 부족해지면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

일하는 곳을 계속 옮기게 되면서, 민주에게는 '불성실하다'거나 '끈기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10대 청소년이 긴 시간을 지속해 일하기는 힘들었다. 일이 어렵거나 정해진 시간을 지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민주를 가장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일터의 사람들'이었다. 사장은 민주가 '당연한 것을 모른다'며 자주 혼을 냈고 민주가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근로계약서나 주휴수당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민주가 의지하고 싶었던, 그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매니저나 선임들은 나이 어린 민주를 무시하거나 텃세를 부리며 일터에서 존재감을 내세우려 했다. 사장이나 선배들이 던지는 수많은 거칠고 아픈 말들을 민주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 지치고 아파 왔다. 하지만 병원에 가거나 쉴 수 없었다. 민주는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자신을 사회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병원에 간다고 조퇴를 하거나 결석을 하면 불성실하고 무례한 아이로 낙인찍히기 쉬웠다. 민주는 아파도 참고 버티며 일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고 일을 그만뒀다.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무서워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거나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민주가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으로 평가되고 기억되는 악순환의 시간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알바가 직업인 청년들

우리 주변에는 '생계형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청년,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악하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놓여 있지만, '알바'라 부르기에는 주 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그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사실상의 직업 노동자들이다.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아무런 지지를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은, 의미없게 느껴지는 학교 생활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닐 무렵인 17세에 첫 알바를 시작한다. 하지만 절박한 생활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한다. 이들 중 35퍼센트는 6개월 이내에, 70퍼센트가량은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생계형알바 실태조사 보고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 2016).

 

'불성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과 싸우는 과정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인내심이 없다',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그만둔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학교'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모르고 부당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겪어 온 '비난과 공격'을 이겨 내는 방법도 아직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처럼 어렵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홀로 참고 마음의 고통과 싸우다가 단절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뿐이다.

민주가 그랬던 것처럼, 10대에게 일터는 어렵고 두려운 곳이다. 너무나 일방적이고 불친절하고 윗사람이나 선배들 관계에 눈치껏 끼어들지 못하면 쉽게 왕따가 되는 힘든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당연한 상식'이라며 되레 혼을 내는 막막한 곳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일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학교'라는 성장의 유예 기간, 친구를 만나 어울리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 좌절과 은둔의 시간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들은 '일과 일터'를 통해서 성취의 경험들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는 일터가 '학교'이고 '삶의 터전'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 조금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그들은 일한다.

이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터가 변화하면 좋겠다고 꿈꾸고 싶지만, 사실 너무 허황되고 요원하다. 다만 내 곁에 이렇게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고, 조금 더 이해하고 응원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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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 투자와 투기는 어떻게 다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 전 마을이장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는 신성한 것들이다."

유명한 1854'시애틀 추장의 편지'. 모든 생명의 바탕인 "신성한" 땅 자체를 상품화하여 부동산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생각"이자, 법적·윤리적으로는 죄악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봉건주의나 노예주의를 극복한 역사적 업적을 상쇄하고도 남을, 인간과 자연의 착취와 파괴라는 해악을 극도로 보여 준다. 그 한 측면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기후위기가 아니던가?

원래 땅은 뭇 생명의 어머니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얻는 토대이자 온갖 야생동물들도 먹여 살린다. 풀과 꽃, 나비와 벌, 채소와 열매 없인 살기 힘들다. 크게 보면 강이나 바다조차 땅이다. 수산물, 해산물도 모두 땅의 산물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땅이 있으니 집을 짓고 산다. 허공의 아파트조차 땅의 기초 없인 불가능하다. 그 땅에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닌다. 학교나 일터나 문화 등 그 모든 게 그래서 가능하다. 이렇게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땅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 토대이며, 따라서 고맙고도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땅이 돈인 세상이 되었다. 살림살이 관점이 아니라 돈벌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땅이 돈이다. 그래서 어느 부동산 중개소의 간판에는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고 외친다. 땅에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는 뜻. 그러나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이 말 자체가 거짓말이다. 왜 그런가?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서울 강남 소재의 어느 기획 부동산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철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을 고용한다. 연봉이 얼마며, 앞으로 전망이 어떠하다며 그럴듯하게 꼬드긴다. 전국의 시골 구석구석 골짜기까지 상세히 그려진 지도를 보여 준다. 요즘은 컴퓨터 내지 휴대폰으로 전국 곳곳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하는 일은 특히 세종시나 여타 혁신도시들처럼 새로이 건설되는 곳, '기회의 땅'이 열리는 곳과 그 외곽까지 마치 이를 잡듯 샅샅이 뒤져 미개발 농경지나 임야를 찾아낸다. 상대적으로 값싸지만, 머리를 잘 쓰면 금세 황금이 되는 곳들이다. 이제 투자와 투기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원래 자본의 투자 자체가 투기다. 수익에 대한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시세 차익(지대)을 노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투자는 경제학적인 용어이고 투기는 사회학적인 용어일 뿐이다.

이제 돈을 벌려면 그런 땅을 팔아야 한다. 누구에게? 중산층 이상, 돈이 좀 있는 이들에게. 그래서 매주 요일마다 부동산 세미나를 연다. '누구는 어디에 투자해 1년 만에 몇억 벌었다.' 이 한마디면 모두 눈이 뒤집힌다. 그래서 15명 내외를 한 팀으로 꾸려 매주 세종시로 '부동산 투어'를 한다. 현장까지 소풍을 가는 셈이다. 나들이를 하며 맛집도 즐기고 돈벌이도 하고! 무슨 이런 환상적인 프로그램이 다 있나, 하며 너도나도 몰린다. 좋은 말로 투자, 나쁜 말로 투기가 바로 이것이다.


현장에 가 보면 농경지나 임야(야산)가 있다. "저기에 어떻게 집을 짓나요?" 누가 물으면, 회사는 멋진 설계도를 내민다. 잘 정리된 전원주택 단지 그림이다. 200평씩 되는 땅을 하나씩 분양한다. 원래 농경지나 산을 개발하려면, 특정 용도에 맞아야 하고 각종 허가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예컨대, 쌍방 통행이 가능한 진입로도 만들어야 하고, 행정 당국에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오폐수 시설 등 여러 가지 인프라(도로, 전기, 수도, 근린생활시설 등)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이 하긴 힘드니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며 예비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다. 이제 투자자들은 전체 비용의 1/N씩만 부담하면 된다. 개인이면 엄두도 안 날 일인데, 부동산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니, 뭉칫돈 불리고 싶은 자들은 그냥 일정한 돈을 통장으로 쏴 주면 끝이다. 세상, 참 편리하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정말 '식은 죽 먹기'. 어차피 남아도는 돈, 일정 액수의 돈만 투자하면 집 지을 땅이 저절로 생기고, 일단 산을 까부순 뒤에 몇 년 기다리면 산 위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하나 지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아넘기면 된다. 이렇게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

그러나 '회사''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 법이나 정책으로 규제되는 지역도 마치 규제가 없는 것처럼, 개발이 불가능한 보존 지역인데도 개발이 되는 것처럼 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청 공무원들 역시 높은 사람의 부탁이나 뇌물 앞에 거짓을 행한다. 머리와 돈을 쓰면, 불법이 합법처럼 둔갑한다. 각종 조작과 편법을 쓴다. 예컨대, 거주자가 거의 없는 농경지 한복판에 '근린생활시설' 허가가 나고, 좁은 농로가 2차선 도로로 변한다. 산지 경사도 기준을 피하기 위해 의원들을 통해 조례를 바꾼다. 이런 식이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규정을 우회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각종 개발 정보를 남보다 우선 접하기에 땅 투기하기도 좋다. 개발업자들을 잘 도와야 미리 사 놓은 땅도 쉽게 황금으로 변한다. 일심동체다. 인생은 아름답고 땅은 황금이다!

그래서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며 술잔치, 돈 잔치를 벌인다. 돈밖에 보이지 않는 자들이 '순진한'(?) 그러나 탐욕적인 중산층을 꼬드겨 투기꾼으로 만든다. 처음엔 투자자이지만 갈수록 투기꾼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삼천리 투기강산'으로 변했다. 이런 분위기에 남북통일? 아이고, 무섭다. 북한도 투기 대상이 될까 봐 두렵다. 투기와 난개발, 기획 부동산을 잡지 않으면, 경제도 통일도 모두 헛일이다. 난개발과 투기를 확실히 잡을 장치(: 중국, 싱가포르, 에티오피아처럼 땅은 모두의 것이니 매매 금지, 건축물만 매매)를 마련하기 전에는 행정수도 세종시라든지 지방 분권 강화, 남북통일 등은 모두 헛일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들, 그리고 시민들이여, 제발 정신 차리자! 시애틀 추장의 외침처럼,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임을 알기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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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10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

김계월/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

 

저는 항공기 기내 청소를 하는 노동자입니다. 20146월 아시아나항공 하청의 재하청 업체인 케이오()에 입사해서, 코로나19로 인하여 2020511일자로 정리해고가 되었습니다. 거리에 천막을 치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그 해고 판결문을 받기까지 100일 하고도 15일이 지났습니다.

저희 청소 노동자들은 승객들의 쾌적한 비행을 위해 사용했던 모포와 베개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좁은 기내를 오가고, 의자 벨트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포켓에서 오물을 빼내며 허리를 잠시 펼 시간도 없이 반복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항공기 한 대라도 더 일 시키려고 밥시간을 지켜 주지 않아 저희는 승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 초콜릿 등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조차 틀어 주지 않아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며 일했고 캄캄한 항공기에서 손전등을 켜고 일하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퇴근 시간도 지켜 주지 않아서 감독(중간 관리자)하고 자주 언쟁도 해 가며 퇴근 시간 지키기(퇴근 15분 전에는 비행기 청소 안 받기), 밥시간 지키기, 파워(전원) 안 들어온 비행기 청소 안 하기 등 기본적 권리 찾기를 하며 근무한 지 6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저에게 회사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를 쓰라고 했지만, 서명을 하지 않았고 민주노조 조합원 8명과 함께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기 전 4월부터 9월까지 70퍼센트의 유급휴직을 주겠다고 3161노조(한국노총 소속)와 합의한 내용을 공지했지만, 3일 만에 합의한 내용을 뒤집었습니다. 선택의 시간은 일주일뿐이었고 그 시간 동안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회사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민주노조의 간부로서 이 부당한 결정에 팀장과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의와 설득도 했지만, 고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희망퇴직을 하고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썼습니다. 한 동료는 아끼던 작업복을 깨끗이 세탁해 "다음에 저를 불러 주면 제 작업복을 주세요" 하고 울면서 회사를 떠났고, 또 다른 동료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살이 빠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인천공항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모든 책임을 케이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고, 위로 한마디나 대책의 말도 없었습니다. 선종록 대표라는 사람은 정말 악덕 사장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을 이용해 민주노조 간부들을 정리해고하는 지경에 이른 것도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종각역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그것도 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일에 농성 천막이 종로구청과 공권력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두 번, 세 번 농성 천막을 설치했지만 그마저 강제 철거당해 1톤 트럭과 1인용 텐트로 농성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713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7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아직도 복직 이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재벌의 횡포는 법도 무시하며 이렇듯 해고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 지난 6월 세 번째로 천막이 강제 철거된 날 1인용 텐트를 치고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노숙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코로나19로 원청 아시아나항공은 17천억 원이라는 고용유지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냈지만 하청 또 그 하청 케이오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수백 명이 희망퇴직으로 무기한 무급휴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선종록 대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민주노조 탄압과 말살로 일관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아시아나 하청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복직할 수 있도록 사측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거리에서 농성한 지도 어느덧 봄을 지나 긴 장마를 견디고 9월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을 스쳐 지나는 바람이 새삼 고맙기까지 한 건 여름 내내 습하고 더운 날씨에 땀띠로 고생한 일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뜨거운 땡볕 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피켓 선전을 함께해 주신 연대 동지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동지애로 남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절대로 포기하지는 말자, 뼛속 깊이 다짐 또 다짐하며 저는 오늘도 해고자란 딱지를 떼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해고자 없는 세상을 위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재촉하겠습니다.

▲ 해고 통보 내용증명을 피켓으로 만들어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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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0월호

책이 이끄는 여행

 

평등 세상을 꿈꾸며 걷는 단양팔경


_ 김용심, 사진_ 정인열

 

▲ 단양 남한강 잔도길. ⓒ작은책(정인열)


우리가 옳다!(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간의 투쟁을 기록한 책이다. 직접고용 판결을 묵살한 채 노동자를 비정규직 자회사로 내모는 거대 공기업 한국도로공사의 횡포에 맞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처절하게 투쟁한다. 그 뜨거운 기록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아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고 일어서려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우리가 옳다!(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2020)


책과 함께 충청도 단양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함께한 <작은책일꾼 정인열 씨의 차는 하이패스 차량인지라 톨게이트를 거침없이 휭휭 지나간다. 그래서 여행길에 가끔 마주치곤 했던, 피곤하지만 선량해 보였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들을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도로공사 관리자가 저보고 선생님, 잠깐 자리에 앉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댁의 선생님입니까.’ 반박했습니다. 제가 장애인으로 2002년 입사했습니다. 그동안 언제 그렇게 대우해 줬다고 선생님, 선생님 합니까. 저는 나이가 많고 직접고용이 된다 해도 얼마 다니지 못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장애인, 비정규직, 고연령, 여성···. 세상의 모든 약한 고리를 다 모은 듯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그런데도 자신들만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많은 약자들을 위해 싸웠다. 그래야 더는 자신처럼 끔찍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그래야 좀 더 사람답게살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

이제는 나로 한번 살아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들의 투쟁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언제나 곧게 제 길을 간다. 마치 모든 이들을 품어 안는 성스러운 어머니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본래 이름: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처럼.

단양에 도착해 양방산 꼭대기에 올랐다. 비록 초모랑마처럼 드높은 산은 아니지만 양방산은 그 우뚝한 정상에 서면 단양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오밀조밀 세워진 도시를 시원하게 휘감아 내려가는 남한강 모습에 속이 탁 트인다.

▲ 양방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 시내 전경. ⓒ작은책(정인열)

이때 보이는 단양은 신단양이다.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댐의 상류에 있던 옛 단양은 거의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새로 구획된 신단양으로 이주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졸지에 실향민이 된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면 강둑에 내려가 하염없이 물속을 바라본다고 한다. 맑은 날이면 그 깊은 물속에서 언뜻 자신이 살던 집의 지붕이 보인다던가.

단성면 벽화마을은 그렇게 수몰된 구단양의 모습이 벽화로나마 남아 있는 곳이다. 붉은 꽃과 푸른 덩굴 사이로 간간이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 벽화마을 입구. 알록달록한 그림들 사이로 왼쪽에 있는 적성비가 눈에 띈다. ⓒ작은책(정인열)


벽화마을에서 조금 올라간 언덕에는 단양수몰이주기념관이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은 닫혀 있었지만 주위의 수려한 경치에 취해 잠시 기념관 앞뜰을 거닐어 본다.

뜰에는 수몰 지역에서 가져온 석탑과 비석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우화교 돌다리 설명이 눈에 띈다. 마을에 꼭 필요한 다리라 모두가 호응하여 젊은이는 힘을 보태고 나이 든 사람은 곡식을 내어 돌다리를 놓았다는 사연. 그렇지.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다 같이 호응하여 힘도 보태고 곡식도 내어 모두 함께 살길을 도모해야지. 그렇게 연대는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비로소 변화도 시작된다.

▲ 우화교 돌다리 기념비. 충주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단양수몰이주기념관으로 옮겨 왔다. ⓒ작은책(정인열)

돈으로, 힘으로 억압하는데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싸우는 동료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직도 저들은 우리가 자기들 시다바리인 줄 압니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 정규직 되는 분들도 대단하지요. 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은 일들, 꺼리는 일들을 하는 것도 대단한 거란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세상의 잣대에 제 생각이 길들여진 것이죠. 노동자는 평등한 겁니다.”

그랬다. 노동은 평등하며 모든 노동자, 혹은 모든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 그 평등함을 억누르는 것이 부당함이요, 부조리며, 진짜 불법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이다. 우리가 옳다!의 저자는 그 문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근본적 질문은 삶이 먼저냐, 이윤이 먼저냐다. 이 가치관으로 싸워야만 노동자들은 더 인간답고 풍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삶이 이윤보다 앞서는 세상. 노동이 자본보다 소중한 세상. 그런 세상은 정말 꿈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단양 잔도길을 걸어 보았다. 잔도(棧道)는 험한 벼랑이나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따라 낸 길을 뜻한다. 관광 목적으로 지었다지만 목적이야 어쨌든 굽이치는 남한강 자락을 따라 만들어진 절벽길 잔도의 풍경은 아찔하고 황홀하다.

본디 단양은 아름다운 절경이 많은 곳이다. 그 유명한 단양팔경도 있지 않던가. 강줄기를 따라 제7경과 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시작으로 제1, 2, 3경인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두루 돌아보았다. 발길 닿는 어디나 다 절경인지라 도시의 칙칙한 잿빛 풍경에 익숙한 눈이 마냥 행복해진다.

▲ 단양 제1경인 하선암. 널찍한 마당바위 위로 보이는 크고 둥글넓적한 바위가 하선암이다. ⓒ작은책(정인열)

마지막으로 제4경 사인암을 들렀다. 사인암은 고려 때 사인벼슬을 살았던 대학자 우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탁은 역동(易東)선생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가 어찌나 역학에 밝았던지 역이 동으로 넘어왔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한다. 또한 우탁은 임금 앞에서도 꼿꼿한 성정으로 유명한데 고려사에 그 모습이 잘 나와 있다.

우탁이 흰옷에 도끼를 메고 궁궐 앞에 거적을 깐 채 왕의 잘못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하들이 상소문을 펴들고 감히 읽지 못하는데, 우탁이 크게 소리를 질러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죄를 알고 있느냐!’ 하고 매섭게 꾸짖었다.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충선왕도 부끄러워했다.”(고려사109 <우탁 열전>)

▲ 단양 제4경인 사인암.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풍인 양 힘차게 서 있다. ⓒ작은책(정인열)

권력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기개가 돋보인다. 우탁이 옳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고, 부끄러움은 가르쳐야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저 비겁한 자본을 향해 우리가 옳다!”고 외쳤던 것처럼. 그래야 자본가들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뒤흔들 수 있는 진짜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깨닫지 않겠는가.

노동자 계급에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판매, 서비스의 주체로 마음먹으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단결과 협동,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톨게이트 투쟁은 그 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별의 이름은 노동자.


*<작은책> 편집위원인 글쓴이는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2)와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9)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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