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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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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7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성주, 한반도의 최전선

나정(가명)/ 사드가 배치되어 있는 성주에 살고 있는 주민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시계를 보니 540. 이미 남편은 거실에서 비염에 좋다는 작두콩차를 마시고 있다. 몸이 무겁다. 누운 채 손가락을 차례로 꼽아 본다. 묵직하고 뻣뻣한 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늘도 새벽에 두 차례 종아리에 쥐가 났다. 끙끙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깨어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아프다. 허리를 시작으로 팔꿈치, 발목, 그리고 이제는 무릎. 아무래도 오른쪽 무릎은 이미 탈이 난 듯하다. 남편 나가는 소리에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세수는 고사하고 거울조차 보지 않고 남편을 뒤따른다. 마스크 한 장이면 족한 세상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집에서 밭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10, 차로 가면 5. 대부분 차로 다니지만, 가을철에는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허리와 무릎 근력을 위해 걸어서 간다. 걷다 보면 세상이 다가온다. 로드킬 당한 각종 동물의 사체, 물오른 배 롱나무, 겁 많은 이 집 저 집 개들. 어느 새 도착한 딸기밭. 오십 중반을 넘긴 나와 남편은 참외로 유명한 이곳 성주에서 5년 전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하필이면 왜 딸기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참외'로 적정화 내지 표준화되어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라서. !

나는 경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경주에서 평생 살 거라 믿었다. 그러나 15킬로미터 인근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사실, 아니 그 핵발전소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그다음 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끔찍한 참사를 보며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 믿었다. 이런 우리의 귀농사를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웃었다. ‘경주나 성주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피해 봐야 소용 없다는 말이지만, 그래도 성주는 100킬로미터 밖.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거리였고, 그 사실만으로 족했다. 그렇게 핵발전소를 피해 온 성주에 2016년 사드(THAAD)가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곳 성주가 한반도의 최전선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다시 성주를 떠날까?’

남편과 나는 500평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는다. 동수로 보면 세 동이지만, 면적으로 따지면 두 마지기 반의 크기. 수십 동씩 참외 농사, 상추 농사를 짓는 다른 농가들에게는 소꿉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평생 농사라고는 구경도 하지 않은 우리는 심지어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유기 재배를 선택했다. 시원하게 약 한번 뿌리면 되는 일을 우리는 밤마다 랜턴을 쓰고 민달팽이를 잡았다. 응애가 오면 천적인 칠레이리응애를 넣고 매일 개체수를 살폈고, 진딧물이 보이면 난황유를 만들어 쳤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평화로웠고, 새롭게 만난 이웃들과의 풍성한 이야기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무엇보다 가야산으로 넘어가는 노을과 마주하며 돌아오는 시간은 감사의 기도가 절로 터진다. 그런데 이곳 성주에 사드가 웬 말인가!

수확한 딸기들. ⓒ나정

30분 걸어 도착한 딸기밭 주변은 이미 한낮처럼 분주하다. 농사 이웃인 옆 하우스의 K 아저씨는 참외를 따고 있다. 낡은 트럭 위 빨간 바구니에 노란 참외가 그득하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하우스 문을 민다. 딸기는 거짓말처럼 밤새 빨갛게 익어 있다. 순간 젖은 솜처럼 무겁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옆 동에서 남편의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애청하는 채널의 사회자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걱정이다. 집과 딸기밭만 오간 지 벌써 석 달. 사드를 코앞에 두고 있는 소성리 집회도 멈춘 지 두어 달이다. 오늘은 수요일. 남편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소성리로 올라간다. 사드가 임시 배치된 소성리 미군기지 앞에서 매일 평화행동이 열린다. 남편은 수요일마다 올라간다. 다른 주민들도 참외밭, 고추밭, 마늘밭을 뒤로하고 허겁지겁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미군기지 앞에서 외칠 것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2019년 10월 6일 성주 소성리 진밭교에 마련된 원불교 교당의 평화 기도가 1000일째 되는 날. 우리 모두 모여 서로에게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 제공_ 나정

다시 돌아가서, ‘성주를 떠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싱겁게 정리되었다. 핵발전소가 무서워 떠나왔던 경주가 이미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들 그곳에 제2의 핵발전소, 2의 사드 기지가 들어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사람 적고 힘없는 시골은 더더욱.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떠나고 버릴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사드가 임시배치되어 있는 이곳 성주에서 그냥 살기로 했다. 아니,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사드 배치로 하루아침에 한반도의 최전선이 된 성주 소성리에서, 평생 살아온 터전을 하루아 침에 미군에게 빼앗긴 소성리 어머니들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저항하며 살아 낼 것이다.

미군은 미국으로, 평화는 이 땅으로!”

사드 가고 평화 오라!!”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