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작은책> 2021년 4월호

세상 보기

 

‘시대의 기후’를 읽을 줄 알아야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은퇴한 지 십 년이 지났어. 나 스스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어. 이런 말이 있지. 20대에 좌파(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인데, 40대에 여전히 좌파(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어도 바보라는 말. 나이가 들면 그동안 축적한 재산이 있으니까 그만큼 보수적이 된다는 뜻이라고 해. 하지만 난 이 따위 말을 신뢰하지 않아.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말이라고 보기 때문이야. 나이 들면 보수화되는 걸 나는 ‘돈 공부’만 하고 ‘세상 공부’를 하지 않는 탓으로 보는 편이야.

요즘 ‘하루 만 보 걷기’를 실행하고 있어. 매일 만 보를 걷는 거야. 스스로 ‘은퇴한 산책자’라고 부르는데, 온건한 사람이 되긴 틀렸다는 걸 최근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만나면서 다시금 확인했어. 며칠 사이를 두고 김기홍 씨와 변희수 씨가 세상을 등졌어. 무척 우울했는데, 그게 코로나 블루 때문만이 아니었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잖아. 사회적 존재로서 두 사람은 한국 사회를 반영해. 그 일원인 나에게도 그들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

세상에는 왼손잡이가 9분의 1정도 있다고 해. 아홉 명 중 한 명이 왼손잡이라는 거야. 한국은 왼손잡이 비율이 더 적을 것 같기도 해. 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나도 오른손잡이야. 근데 내가 오른손잡이를 선택했나? 물론 아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채 남자로 태어났듯이 그냥 오른손잡이가 된 것뿐이지. 높은 담을 넘어갈 때에도 오른발을 먼저 짚는 사람이 있고 왼발을 먼저 짚는 사람이 있어. 평소에 왼발을 먼저 짚는 사람에게 오른발을 먼저 짚으라고 하면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어려울 거야.

오른손은 ‘옳은 손’에서 온 게 분명해.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도 하는데, 바른손은 ‘바른 손’에서 왔지. 그럼 왼손은 ‘틀린 손’인가? 좌우동형으로 똑같은데 한쪽을 ‘옳다’, ‘바르다’고 말하게 된 근거나 배경은 뭘까? 절대다수가 오른손잡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언어가 곧 사유이고 사유가 곧 언어”라면, 오른손 또는 바른손이라는 말에서 다수의 횡포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해. 이 다수의 횡포가 한국어에만 있는 게 아냐. “언어는 곧 사유이고 사유는 곧 언어”라는 언어학의 명제가 한국어에만 적용될 리 없기 때문이지. “right hand(영어로 ‘오른손’)”의 right도 “main droite(프랑스말로 ‘오른손’)”의 droite도 모두 ‘옳다’의 뜻을 갖고 있어. 이건 순전히 가정인데, 어떤 사회에 왼손잡이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면, 그 사회의 언어는 우리와 정반대로 왼손잡이를 ‘오른손(옳은 손)잡이’라고 쓰고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라고 쓸 거야.

이처럼 좌우동형으로 똑같은 오른손과 왼손임에도 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라는 이유로 ‘옳은 손’이라고 주장해 온 게 인간의 사유였는데, 그런 인간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을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건대, 좌우동형인 왼손잡이/오른손잡이를 그렇게 갈라치기했는데, 성소수자/이성애자는 왼손잡이/오른손잡이의 차이 정도가 아니잖아!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국책이 부국강병인데 여기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성소수자들은 그야말로 배제와 차별,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어.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노예해방이나 여성참정권보다 한두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을 만큼. 성(별)정체성이 사람의 의지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과학의 기여가 필수적이었지. 그리하여 마침내 21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권이 처음 법제화되고(정확히 2001년의 일이야) 다른 유럽 나라들이 뒤를 이어 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됐어.

“19세기가 노예해방의 세기였고 20세기가 보통선거권(여성참정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성소수자들이 해방되면서 시작되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등의 유치학교에는 ‘엄마’가 둘인 동무를 가진 어린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어제 동무를 찾으러 온 엄마와 오늘 찾으러 온 엄마가 다른 거야. 맞아! 레즈비언 커플인 거지. 양육권을 가진 그들은 정자은행을 통해 생물학적 자식도 가질 권리가 있어. 남성 커플일 경우에는 대리모 관련법이 나라마다 다른데 여성 커플보다는 어려운 편이야. 이런 게 한국의 헌법에도 있는 행복추구권이 살아 있는 사회의 모습이야. 그 아이들은 ‘정상 가족’이라는 고루한 개념에서도 해방되겠지.

이런 시기인데 김기홍 씨와 변희수 씨의 죽음을 만난 거야.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의 “나중에!”에서 4년이 지난 오늘까지 반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이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씨는 “퀴어 퍼레이드를 안 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그의 평소 지론이었던 ‘새 정치’의 실체를 알려 주었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년째 표류 중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진보적인 여성 대법관은 ‘시대의 기후’라는 말을 인용했어. 내일의 날씨를 알아야 하듯이 시대의 기후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어.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들어야 할 말이야. 아무리 한국의 현실 정치인들이 공부하지 않고 구닥다리로 남아 있어도 시대의 기후는 이미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분명히 말하고 있어.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뿐이야!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1년 2월호

세상 보기

공공의료 이야기

구금시설에서 의료제도의 진면목을 본다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2000명 넘는 사람이 건물 안에 있다가 그중 절반이 코로나19에 걸렸다.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용자 2292명 중 1133명이 확진되었다.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알렸다. 지난해 말, 창살 틈새로 손을 내밀어 “살려 주세요/ 확진자 한 방에 8명씩 수용/ 편지 외부 발송 금지”라 적힌 종이를 바깥세상이 보게 한 것이다.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찾아낸 비상 대책이었고, 처벌을 각오한 시위였다. 뒤이어 <한겨레>에 실린 기사는 바깥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수용자 8명이 누워 자는 좁은 방, 마스크를 지급받기는커녕 돈 내고 사기도 힘든 구매 통제, ‘열이 나고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아무런 조처를 안 해 주고 무시해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는 수용자의 편지, 확진자와 같은 방을 쓴 밀접 접촉자 180명을 다른 방으로 옮기기에 앞서 강당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4시간이나 머물게 했다는 어설픈 행정은 하나같이 코로나19 방역의 기본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 차마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2020년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수용자들이 창문 틈으로 요구 사항이 적힌 종이를 든 손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이동수

유엔의 ‘수용자 처우에 관한 최저 기준 규칙’에 따르면 구금 기간은 수용자가 사회로 돌아가 통합되고 준법과 재활의 삶을 살게 하는 데 이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라야 자유를 박탈하는 처분의 주된 목적인,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재범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가는 수용자에게 의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수용자는 지역 주민과 같은 수준의 의료를 차별 없이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구금시설 의료는 유엔의 최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구금시설당 수용 인원이 평균 1000명이고 대다수가 30~50대 남성인데 전체 인원의 절반이 ‘환자’이며 그중 38퍼센트가 고혈압을, 20퍼센트가 당뇨병을, 15퍼센트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2019 교정통계연보). 이 많은 환자를 진료할 인력은 의사가 두세 명, 간호사가 한두 명, 약사와 의료기사가 한 명 정도다. 간단한 의료 장비를 갖춘 ‘의료과’에서 진료하는데 의사 1인이 하루에 보는 환자가 보통 200여 명으로, 진찰과 상담을 제대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다. 외부 의료기관 진료를 수용자가 요청할 수 있으나 허가 받기 어렵다.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구금시설에 의료인이 부족할 뿐 아니라 고용 또한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의사는 2~3년 임기의 계약직이거나,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뒤 또는 전문의 과정을 이제 막 마친 뒤 군 복무 대신으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다. 불안정하게 단기 근무하는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뿐, 행정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의사가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에 대비해 방역 조치를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어도 실제 무엇을 하기는 어렵다. 마스크를 수용자에게 일괄 지급하거나, 열이 나는 수용자를 즉시 격리하거나, 다수 인원의 집합을 금지하거나, 어떤 조치든 권한이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금시설 의료가 그 나라 의료제도를 보여 준다

보건소에서 10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10년을 일했어도 나는 구금시설 현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보건소나 지방 의료원에 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구금시설 의료에 관해서는 법무부가 관할해 서로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나눌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외국 의료제도를 견학하면서였다.미국 뉴욕주 시립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외에 순번에 따라 지역 의료 센터에 나가 진료하며 교도소에도 간다고 했다. “교도소(jail)?” 생각지 못한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는데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립병원 의사는 공무원으로서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해 수용자를 진료한다고 했다.

국영의료의 나라 이탈리아에 가서 본 것은 아예 금을 긋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의료에 관한 한, 교도소 담벼락은 분리와 배제의 경계가 아니었다.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동네 일차 의료 의사, 전문의, 정신 건강 센터 활동가가 구금시설을 오가며 수용자를 진료하고 돌본다. 건강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만성질환이 있는지, 심각한 합병증을 앓는지 등을 고려해 수용자 본인의 동의 아래 개인별 계획을 세워 의료를 제공한다. 출소를 앞둔 이에게는 구역 간호사가 따로 배정돼 필요한 도움을 준다. 구금시설 밖이든 안이든 인간으로서 건강할 권리에는 다를 바 없도록 보장한다.

이처럼 국가마다 의료제도가 다르다. 차이가 시작되는 뿌리는, 헌법이다.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의료제도에 대해 헌법의 영향력이 크리라 생각된다. 헌법은 ‘국가의 형태 및 통치구조,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법’(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고 건강과 의료가 바로 그 기본권의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영의료 역시 그 나라 헌법에 뿌리를 박고 있다. 1948년에 제정된 헌법에 “공화국은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이자 집단 공동의 관심사로 보호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의료를 보장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그 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우파가 장기 집권하면서 헌법 정신이 빛을 보지 못했지만, 30년이 지난 1978년에 좌우 거대 양당이 타협해 집권 연합을 이루면서 국영의료법이 제정되었다. 법의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된다. “공화국이 국영의료를 통해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이자 집단 공동의 관심사로 보호한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호할 때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 정신을 그대로 받아안고 실현하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법으로 구금된 수용자의 건강도 보호한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우리나라 헌법에는 건강과 의료에 관한 독립된 조문이 없다. 다만 분야별 권리를 밝히는 마지막 조문(제36조) 마지막 항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할 뿐이다. 이 짧고 애매한 글은 보건의 내용이 어떠한지, 이에 관해 국가가 무슨 의무를 지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교육(제31조), 근로(제32~33조), 사회복지(제34조), 환경(제35조)에는 하나하나 독립된 조문이 있고 국민이 누릴 권리와 국가의 의무가 자세히 적혀 있다. 우리 헌법이 유독 건강과 의료를 형식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헌법의 ‘짧고 애매함’이 현실에 투사되고 국가 행정에 반영된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 안에서 의료에 관련된 정책이나 관리·감독 업무가 여러 법률에 쪼개져 여러 부처로 나누어진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가 주된 역할을 하지만 법무부, 국토부, 고용부, 교육부 등 다른 부처도 의료제도 일부를 관리한다.

법무부가 구금시설 의료를 관장하며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을 운영한다. 국토부가 교통사고 환자의 자동차보험 진료를 관장해 연간 진료비 2조 원을 다루며 국립교통재활병원을 운영한다. 고용부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보상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을 관장해 연간 진료비 1조 원을 다루며 전국에 근로복지공단 병원 10개소를 운영한다. 교육부 또한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한 10개 국립대학병원을 관리·감독한다. 중증질환의 최종 단계를 진료하는 이 병원들은 대규모 병상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공공의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교육부에 맡겨진 것은 의료 정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 업무에 상당한 제한이 된다. 실제 예는 이보다 많다.

쪼개진 체계에서는 부처 간 칸막이 너머 사정을 서로 알지 못한다. 부처마다 독자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니 행정의 일관성은 고사하고 제도 전반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쪼개진 제도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건 허상이다. 대학병원 의료가 눈부시게 발전해도 구금된 수용자에게 그림의 떡이고, 바깥세상 방역이 아무리 철저해도 구치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다. 누구나 건강하게 하려면 의료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전반을 책임질 총괄 체계가 필요하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11월호

세상 보기

독립영화 이야기_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 보라보라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지만 어떤 풍경들은 변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호의 영화들처럼요. 2021년의 1월의 영화는 특별히 두 편입니다.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23명이 출연하는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을 기록한 <보라보라>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독자들에게는 특별히 더 반가울 것 같습니다. 2020년 여러 영화제들에서 공개되어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 냈는데 소개가 좀 늦었네요. 연말에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온라인 상영회가 있었고 귀한 영화들을 보고 나니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들을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제목들이 멋지면서도 알쏭달쏭하지요? 첫 번째 영화를 만든 김상패 감독의 말로 제목의 의미를 대신합니다.

아사히 동지들, 용균이 어머니,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거미다. 이들이 하나의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엮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의 일상을 쫓아가는 영화는 직접고용 투쟁을 벌이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교육 공무직 등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납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평등하지 않은 노동 현실을 고발합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자주 등장합니다. 김미숙 님은 비정규직이었던 아들의 사고로 투쟁에 나서면서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과 동지가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김미숙 님은 고() 이한빛 씨 아버지 이용관 님, 그리고 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김미숙 님의 절규에 불평등한 현장에서 위험한 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른거립니다. 엔딩 크레딧에 이르게 되면 감독의 의도는 더 확실히 드러납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던 화면이 점점 확대되면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며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 김용균 씨처럼 산재로 숨진 노동자들의 이름들로 화면이 가득 찹니다. 방금 만났던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세상에 그토록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목이 멥니다.

▲ 영화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한 장면.


두 번째 영화 <보라보라>의 주인공들은 첫 번째 영화에도 잠깐 등장했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입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 고용을 거부해 해고됐던 1500명의 요금 수납원들의 이야기를 김도준, 김승화, 김미영 세 명의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겠어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것만 같아요. 등장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거리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곧 밝혀집니다. 바로 동료가 동료를 찍고 있었던 겁니다. 세 명의 연출자 중 김도준 감독은 영화과 학생이고 김승화 감독, 김미영 감독은 민주연합노조 조합원입니다. 김도준 감독이 다른 사안으로 광화문 집회에 갔다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캐노피 고공농성을 알고 밥을 올리는 도르래에 카메라를 올려서 촬영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캐노피 위 촬영을 맡은 김승화 감독이 촬영을 정말 잘했더라고요. 주인공들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찍는 것이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았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는 무척이나 안정적이라서 그분들의 시간에 몰입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투쟁하는 일상에서 시작한 영화는 투쟁의 방향성을 둘러싼 토론과 갈등을 보여 주다가 투쟁을 평가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 영화 <보라보라> 한 장면.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건 조합원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력이었어요. 산업체 학교를 다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가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저희 언니들이 떠올랐어요. 화장품이나 책의 외판 일로 시작해서 휴게소, 대리운전, 안마방 카운터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여성 노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당신은 거미를 본 적 있나요?>의 주인공들도 투쟁 기간 중에 인생 이력을 들려주는데요, 그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잘 모으면 불안정한 노동의 행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건 갈라치기를 하는 자본의 계략을 호쾌한 웃음으로 비웃으며 비정규직을 남용하지 못하게,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꿈을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었어요.

▲ 영화 <보라보라> 한 장면.

물론 이 영화에도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조합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토론하는 모습들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과 학생으로서 편집을 전담했을 김도준 감독이 투쟁을 거치며 개개인의 의식이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라는 말을 했던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첫 번째 영화가 73, 두 번째 영화가 180분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답니다. 이 영화들이 극장 개봉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에서 자리를 만들어서 영화를 보고 그 투쟁의 시간들을 되짚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랜선 상영회 희망합니다. (문의: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010-4644-9575)

 

<작은책> 정기구독 신청하기

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5:54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작은책> 20211월호

세상 보기

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할 병상이 부족하다. 11월 중순부터 환자가 급속히 늘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날마다 수백 명씩 감염이 확인된다. 무증상자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지만 열이 나고 아픈 데가 있는 환자, 전부터 앓던 병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12월 들어 환자가 많아지니 전담 병원 입원실에 빈자리가 없다. 지금 수도권에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이 수백 명이다. 대기하는 동안 증세가 나빠지기도 해 환자도 가족도 방역 당국도 불안하다.

 

병상이 많아도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않아

상황을 심각하게 하는 것은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 부족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폐렴이 진행되는 환자는 갑작스레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어 이런 경우 초기에 즉시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로 치료해야 한다. 주로 고령층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일어나며 제때 집중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한다. 이에 대비해 정부가 전담 치료 중환자 병상200여 개 지정해 두었는데 1210일 아침에 남아 있는 병상이 서울에 3, 경기도와 인천을 합쳐도 6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만약 호흡곤란 환자가 6명 넘게 발생하면 누군가는 치료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할 테니 정부 대책으로는 중대한 허점이다. 준비된 병상이 적은 이유가 병원과 중환자실이 적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인구당 병상은 영국보다 다섯 배, 미국보다 네 배, 독일보다 1.5배로 과잉이라 할 만큼 많다. 중환자실 병상도 상급종합병원(고도의 전문적인 의료를 시행하는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 약 3천 개, 병원 전체에는 약 1만 개나 된다.


우리나라 병상의 95퍼센트가 사립 병원 소유다. ‘95퍼센트라는 숫자는 의료를 거의 전적으로 사립 병원에, 다시 말해 공공이 아닌 민간 사업체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환자 치료에 수익성을 따지는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수익성이 낮고 위험한, 게다가 많은 의료진을 투입해야 하는 질병에 대해 사립 병원은 입원 문턱을 높이거나 아예 빗장을 건다. 크고 유명한 사립 병원에 병상이 수천 개 있어도 코로나19 환자는 손으로 꼽을 만큼 받을 뿐이다. 그러니 환자 대부분을 공공병원이 도맡는다. 주요 도시마다 겨우 하나씩 있는 지방 의료원이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돼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병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수익성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존폐 위기 속에서 어렵사리 공공병원의 명맥을 이어온 터라, 병상 규모가 작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도 적어 중증 치료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 대학병원에 음압격리 중환자실을 최대한 확대하게 하고 삼성, 아산 등 사립 대학병원에 협조를 구한다. 코로나19 중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높게 정해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보다 열 배 많은 금액을 지급하기로 하며 병상을 열어 주기를 요청한다.

 

경영 수익을 따지는 의료의 민낯

사립 대학병원은 몸을 사린다. 그 이유를 삼성의료원이 코로나19 중환자를 4명만 받겠다며 내놓은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시설 부담이다. 음압 격리 병상 4개를 만드는 데 드는 면적이 기존 병상 18개를 폐쇄해야 할 만큼 넓다고 한다. 둘째, 인력 부담이다.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 간호사 1명이 환자 2명을 돌볼 수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에는 간호사 5명이라야 환자 2명을 돌볼 만큼 인력 소요가 크다고 한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주는 표현이라 하겠으나, 그런 이유로 입원 환자를 극소수로 제한하는 것은 경영 수익을 중시하는 사립 기관의 전형적인 논리일 뿐이다. 삼성의료원은 소유 병상이 2천 개가 넘고 의대 학생을 교육하며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병원이다. 이와 같은 병원이 코로나19 감염증 유행의 재난 앞에서 비용을 계산하며 몸을 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의료의 어두운 민낯이다. 최고의 인력·기술·자원을 보유한 병원이 국가적 위기 극복에 발을 뺀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아 운영하는 병원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 치료를 남에게 떠넘긴다. 사립이라는 이유로 힘든 짐을 공공에 맡기고 자기 보호를 꾀한다.

사립 병원의 논리는 전문가 단체의 주장에도 반영된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127일에 낸 코로나19 급증에 따른 중환자 진료 체계 구축을 위한 성명서는 정부와 보건 당국에 상급종합병원 기반에서 벗어나 전담 병원 기반으로 대응하고 대형 임시 병원을 구축(체육관, 컨벤션 등 활용)하라고 촉구한다. 그 뜻을 되짚으면 정부가 더는 사립 대학병원에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요구하지 말라는, 대신에 공공병원에 맡기고 그래도 부족하면 체육관 같은 곳을 임시 이용해 해결하라는 주장이다. 묻고 싶다. 의학회는 공공병원의 어려운 의료 여건을 과연 모르는지. 중증 호흡기 환자를 임시 시설에서 치료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는지. 요구대로 대형 임시 병원을 짓는다면 새로 의료진이 필요한데 여기에 학회 전문의들이 참여할 건지.

공공병원이 더 큰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이미 수도권에서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 지방 의료원의 입원 병상을 전부 또는 대부분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키고 의료진이 모두 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된 상태다. 입원한 환자가 호흡곤란 징후를 보여도 중환자를 받아 줄 상급종합병원을 찾기 전까지 치료를 책임져야 하니 의료진의 스트레스가 크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지자체 당국이 응급실, 분만실 등 다른 기능은 줄이거나 정지하게 했는데 여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의료원에 의지하던 저소득층 환자를 진료해 줄 다른 병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집에서 방치되거나 상태가 나빠져 사망하기까지 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산모, 코로나19에 감염된 혈액투석 환자를 받아 주는 곳도 찾기 어렵다. 사립병원에서는 자기 병원에 다니던 임신부라 해도 감염 확진자라고 하면 공공병원에서 분만하라며 문을 닫는다.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가 되려면

코로나19 유행이 우리나라 의료 제도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정부는 건강보험을 통해 필수 의료가 공급되게 하고 국민에게 의료 이용을 보장했다. 그러나 보험의 주된 기능은 돈을 모아 비용을 해결하는 것이며 의료 내용과 성격에 깊게 개입하지는 못해, 그와 같은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에 관한 국가적 관리 기능을 높여야 한다. 국민을 위한 의료,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를 사립 병원이 주도하는 시장에 맡겨둔 채 공공의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자기 사업을 꾸리는 방식으로 의료 활동을 하게 했을 뿐, 공공의 이익을 높이는 의료 체계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일제 강점과 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짧은 기간에 의료 공급을 확대할 목적으로 손쉬운 방안인 민간 공급을 선택했던 과거가 남긴 결과다.

의료는 매우 넓은 범위의 학문, 기술, 활동을 포괄하는 사회적 영역이며 삶의 필수 요소다. 따라서 누구도 의료 전체를 소유하거나 장악할 수 없어 사회 공동의 힘으로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의료에서 공공성은 본질로서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관련해 참고할 선례가 유럽이다. 지난 세기에 그곳 나라들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제도를 세웠다. 나라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를 이용하고 건강에 관한 한 안심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에도, 비록 초기 방역에 실패해 유럽 모든 나라에서 환자가 엄청난 숫자로 발생하게 되었지만, 병원 대부분이 공공병원이고 의료진 대부분이 공직자인 제도 안에서 국가적 비상 체계를 작동해 상황을 통제한다. 방역의 실패를 의료가 수습하는 셈이니 우리와는 정반대라 할 만하다.

공공성을 높여 누구나 건강하게 하는 제도, 공공의료에 관한 짧은 글로 올 한 해 작은책독자와 만나려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4월호

세상 보기

책 읽고 딴 생각_ 혁명 노트(김규항, 알마, 2020)

 

물신 전체주의 사회

변정수/ 출판 편집자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사회를 그 이전과 확연하게 구분하게 해 주는 단절적인 변화의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을 꼽는다면, 그건 아마도 한국전쟁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쟁 이전 삶의 모습과 전쟁을 겪고 난 뒤 삶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졌고, 지금 사람들이 사회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의 뿌리를 더듬어 가자면 어김없이 전쟁 체험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이제 막 사회에 나서려는 젊은이들과 긴밀하게 접촉해 오면서 이런 상식과 조금은 다른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1997년의 구제금융 사태와 그로 인해 촉발된 사회 재편은 어쩌면 한국전쟁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그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사회를 만들어 낸 역사적 계기가 아닐까 싶달까. 그 실체가 뭔지는 아리송한 채로도,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은 분명히 감지됐던 것이다. 하나는 대체적인 경향성에서 그 이후에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 이전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다른 하나는 기성세대는 그들대로 그 이전에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까맣게 잊었으며 이미 중년에 접어든 후속 세대는 또 그들대로 그것을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밀레니엄이 바뀌던 그때 한국 사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물론 그 변화의 성격은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고, 단순한 개념 틀 하나로 손쉽게 환원시킬 수도 없다. 다만 그 모든 국면을 매개할 수 있는, 그 모든 계기의 가장 깊은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을 근본적인동인이 있다면 그 실체가 무엇일지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명해 줄 무슨 만능열쇠(따위가 있을 리도 없거니와)를 찾으려는 건 아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을 수박 겉 핥듯 좇아 봤자 헬조선이라는 비명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개탄과 냉소 말고는 남는 것이 없을 게다. 다기한 현상 이면을 꿰뚫어 통찰하는 데 나침반이 돼 줄 만한 화두가 늘 목말랐다. 그리고 김규항의 신작 혁명 노트에서 유력한 실마리 하나를 얻는다. 지식인이란 바로 이런 사회적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렷다. 저자는 지난 20년 사이에 일어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물신주의의 전면화로 설명한다. 이렇게 시야가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혁명 노트(김규항알마, 2020)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전근대적 농촌 공동체 습속이 많이 남아 있는, 삶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아직 상품이 아닌 사회자본주의 사회지만 사회주의 요소들이 도입되어 있는, 생활의 기본 요소들이 상품이 아니거나 상품의 속성이 덜한 사민주의 복지사회에서 물신성이 억지된다면서, 전근대 농촌 공동체에서 사람들에게 인심이나 정이 있었던 게 그들이 경제적 안정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듯 이런 사회들에서 사람들이 좀 더 인간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흔히 말하듯 경제적 안정때문이 아니라 물신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혹은 모든 아이가 대학 입시라는 한 경로에 줄 세워져 인생의 등급이 매겨지 교육 현실은 한국 민주화가 결국 물신 전체주의 사회로 귀결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들 끄덕이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에게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물신성을 극복한다는 뜻이고, 그런 통찰은 어느샌가 막연한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 혁명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를 전복해 낸다. 우리가 우리네 일상 구석구석을 파고든 데다가 심지어 내면까지 잠식해 버린 물신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혁명은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극복의 목적은 정의롭고 인간적인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경제 차원을 벗어나 더 고양된 삶을 구현하는 데 있다.” 거칠게 빗대자면,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인간다움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결코 혁명이 아니며 실은 혁명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것이야말로 왜 혁명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대의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건설만이 아니라 실은 이행이기도 하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미래에 속한 사람이며 또한 새로운 사회의 담지자다. 투쟁하는 자유인의 삶과 생활양식에 선취된 새로운 사회의 조각들이 현재 사회에 균열을 만들어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 간다. 누군가 새로운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물을 때, 투쟁하는 자유인은 먼저 묻는다. ‘내 안에 새로운 사회가 있는가.’” “혁명은 인민의 자기해방이기 때문이다. 해방은 나를 억압하는 시스템 앞에 서는 일, 내가 그 안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앞에 서는 일을 바탕으로 어느 순간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결단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게 투쟁하는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데는, ‘더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자각과 노예가 존재하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다는 성찰이라는 두 경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 해방의 두 경로는 투쟁으로 하나가 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19월호

세상보기

인물 바로 보기

 

이승만은 누구인가

이이화/ 역사학자

 

 

 

올해 광복절 66주년을 맞이해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새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방송공사에서 이승만의 공과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독립운동가 유족들과 한국전쟁 피해자 유족,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자들이 이 방송 계획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면서 한국방송공사 앞에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또는 정부 수립의 첫째 공로자로 추앙하면서, 독재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그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정 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419혁명을 부정하면서 공영방송이 이런 일을 벌이는 의도가 어디에 있나?

그동안 이승만의 평가는 거의 부정적으로 흘러왔다. 하지만 일부 세력은 그를 옹호하면서 그를 국부(國父)로 받드는 의식을 보여 주었고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주장도 펴 왔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승만의 행적을 간단하게 더듬어 보기로 하자. 이승만의 생애는 대체로 3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겠다.

첫 시기는 청년 시절이다. 이승만은 황해도 평산에 사는 몰락한 전주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경선은 양녕대군 후손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울로 와서 전주 이씨 문중을 기웃거리면서 낙백의 생활을 했고 이승만도 그런 연줄로 전주 이씨들이 차린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다. 이승만은 20세 때 배재학당에 입학해 영어와 성경 공부를 하고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청년 시절 이상재, 서재필 등이 벌인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등에 참여해 열렬히 자주 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황제 폐위를 주동하는 세력과 결합한 탓으로 체포되어 종신형 또는 사형 언도를 받았다. 마침내 고종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둘째 시기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외교운동을 벌이던 시절이다. 그는 미국으로 가서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를 그는 별처럼 평생 달고 다녔다. 그 뒤 미국을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벌였는데 열렬한 미국 추종자가 되었다. 그는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그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교 전문가라는 것, 영어를 잘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 언변이 좋고 미국 동포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따위가 대통령으로 추대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재정 압박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자 안전지대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구미위원부 대표를 맡았다.

마지막으로는 해방이 된 뒤 고국으로 돌아와서 정부 수립운동을 벌이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 벌인 정치 활동기이다. 그는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해 끝내 이를 실현시키고 반공정부를 수립한 뒤 불법으로 3선 개헌을 단행하고 이어 315부정선거를 하다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독재자로 군림했고 반공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공산당 박멸을 외치고 끊임없이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그리고 친일파를 등장시켜 무수히 독립지사를 탄압하고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

, 나는 역사학자로서 위에서 밝힌 이승만의 삶과 행동을 평가해 보기로 한다. 그의 청년 시절은 한학을 배운 소년이 새로운 사조에 눈을 뜨고 급진적 엘리트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일 것이다. 그는 충군(忠君)이라는 왕조 의식에서 벗어나 서구의 입헌군주제 또는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에 눈을 떴다. 그리해 청나라에 맞서 자주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행동 의식을 보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미국에서 유럽 사조와 제도를 배우면서 장년 시절을 보내고 임시정부의 요인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극단적 인 이론을 냈다. 일본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한국을 미국의 위임 통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무력 투쟁 노선을 비판하면서 박용만 등이 벌인 군사 양성을 방해하기도 했다. 또한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독립 자금을 받으면서 외교관이란 이름으로 호텔에 거처하는 따위 호화 생활을 했으며, 전주 이씨 왕자라는 이미지를 조작하여 품위를 유지하려는 천박한 행동을 보였다. 상하이를 떠난 뒤 위험 지역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아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늘 손가락이 마비된 것은 일제의 고문 탓이라고 말했는데 한 번도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신채호는 이승만을 두고 이완용이나 다름없는 매국노라고 비난했는데 정작 신채호는 일제에 잡혀 감옥에서 옥사했던 것이다. 또 국제연합이 조직될 무렵 그는 철저하게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한국 독립에 대한 그쪽의 협조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해방 공간에서 그의 행동 노선은 타협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반공을 표방한 단독 정부 수립에만 매달렸다. 그리해 미국의 환심을 사서 정권의 수장이 되었다. 단독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친일파 출신의 경찰 군인 판검사를 끌어들여 정권의 하수인으로 부려먹었다. 그런 과정에서 온갖 불법 탈법의 독재 수법을 쓰면서 반대파 국회의원을 연금하는 따위로 민주주의 절차를 왜곡시켰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한강을 폭파하고 남쪽으로 몰래 도망치면서 군사작전권을 미군에게 넘겨 자주 국가의 면모를 잃게 했으며, 휴전을 반대하면서 공허한 북진 통일만을 외쳐 냉전 체제를 공고하게 했다. 그리해 남북 관계는 극단적 대결로 치달았다.

419이후 이승만은 학생들이 반대하면…… 또는 국민이 반대하면……이라는 언사를 늘어놓으면서 마치 민주주의 왜곡이 자신의 책임이 아닌 듯이 말하고 하야했다. 그러고 나서 밤을 틈타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가 진정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다면 이화장에서 반성의 나날을 보내면서 참회의 회고록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의 인간성은 허위와 사술로 점철되어 있으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음모꾼의 모습을 보였다. 또 그의 통치술은 철저하게 독선적이고 전제적인 수법을 구사해서 독재 체제를 구축해 정부 수립 초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이나 중화민국의 국부인 손문의 행적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충분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지만 그를 반공의 화신이란 이름으로 국부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공로자가 아니라 오히려 통일을 방해하는 인물로 앞으로 기억해야 하고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승만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의도는 새 정권의 창출을 앞두고 반통일적 보수 세력이나 친일파 잔존 세력을 결집시켜 통일 지향의 민주 세력을 꺾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의도를 냉철하게 간파하면서 이승만 띄우기의 음모를 직시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이승만의 실체를 잘 몰라 휩쓸리기 쉬울 것이다. 바른 역사 인식은 냉철한 비판 의식이 따라야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2월호

세상 보기

옛 그림 속 여성들 <덕흥리 벽화고분 묘주 초상>

 

 

그녀는 오지 않았다

이종수/ 미술사학자, 조선회화실록저자

 

  

이 무덤은 특별합니다. ‘덕흥리 벽화고분은 고구려의 수많은 벽화고분 가운데 묘 주인이 확실한 유일한 무덤입니다. 연대까지도 확실하죠. 408. 앞서 보았던 안악3호분의 경우, 많은 정보를 주긴 했지만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묵서명에 이름을 남긴 동수가 무덤의 주인인지 등등,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인 까닭에 여주인의 신분 또한 잘라 말하기가 어려웠지요.

덕흥리 벽화고분 묘주 초상.


그런데 안악3호분으로부터 약 반세기 후,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품고 있는 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무덤 안 벽화 사이에 남겨진 명문을 보자면, 그 내용인즉, 영락(永樂) 18, 즉 광개토대왕 시대인 408년에, 유주 자사 등등을 역임했던 진()이라는 남자가 77세까지 잘 살다가 이곳에 묻혔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주 자사라면 지방 태수에 해당하는 지위이니 진의 무덤은 5세기, 고구려가 한창 잘나가던 시대의 지배층 무덤을 대변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무덤 안 가득 벽화로 장식되었으니 당연히 무덤 주인 부부의 초상화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5세기 무렵의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앞 시대의 안악3호분과는 달리, 무덤 주인 부부가 한 장면에 나란히 앉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무덤 안에서의 위치도 바뀌었죠. 묘주 부부 초상화를 측실에 그렸던 안악3호분과는 묘실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인데요. 측실이 사라진 5세기에 이르면 묘 주인의 초상화는 현실(玄室, 무덤방)의 북쪽 벽면에 그려집니다. 주인공들을 상석(上席)에 모신 것이지요.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덕흥리 벽화고분의 현실 북벽에는 이 홀로 앉아 있습니다. 배우자가 없었던 것일까 싶지만, 고대 사회에서 지배층 남성이 미혼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만한 선택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명문 기록을 보면 자손들의 영달을 기원하는 내용이 더해져 있습니다. 진은 여느 고구려의 상류층 남성들처럼 자손을 둔, 다시 말해 기혼자였던 것입니다.

벽화의 원래 계획이 단독 초상일 리도 없습니다. 남주 혼자 벽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명백히 그 옆자리가 비어있지요. (선으로 모사한 그림을 보면 이 장면이 보다 선명하게 확인됩니다.) 진의 옆으로는 그를 위해 대기 중인 말 한 마리, 그리고 시중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진과 나란해야 할 배우자의 자리는 비어 있고, 장방 바깥쪽으로 여주를 위해 준비해 둔 수레 하나와 시녀들이 대기 중일 뿐입니다. 진의 아내는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덕흥리 벽화고분 묘주 초상(선 모사도).


궁금합니다. 진이 홀로 그려져야 했던 이유. 저 영원의 세상에서도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지배층 남성이 무덤에 홀로묻힌 경우가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저 그런 관직도 아닌 국왕의 신분이었죠. 물론 그는 결혼을 했습니다. 다만 왕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뿐인데요. 문제될 것 없지요. 대부분의 부부처럼, 후일 왕비가 죽은 뒤에 합장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 왕비는 남편 곁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죠. 두 번째 남편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쪽도 국왕의 신분이었는데 두 남자는 형제 사이였답니다.

고구려의 9대 임금인 고국천왕이 승하한 것은 197. 아들은 없이, 동생들만 여럿 있는 왕이었습니다. 왕비 우씨는 고민이 깊었지요. 어떻게 왕비 자리를 더 유지할 수 있을까. 고국천왕은 첫째 동생인 발기를 후계로 골라 두었지만, 그 유지의 시행 여부는 살아 있는 왕비의 몫이었죠. 결국 왕비는 자신을 박대한 첫째 시동생 발기를 제치고, 둘째 시동생인 연우를 왕으로 세웁니다. 바로 10대 임금인 산상왕인데요. 고국천왕의 비였던 우씨는 다시 산상왕의 비가 되어 왕비의 자리를 유지해 나가지요.

흥미로운 것은 다소 무리를 해 가며 다시 왕비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별다른 비난이나 저항 없이 왕비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를 생각해 본다면, 그녀의 행동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녀와 새 임금 산상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은 권력에서 밀려난 발기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신민들 모두 왕과 왕비를 승인했다는 얘기지요. 오히려 왕위를 차지하려 분란을 일으킨 발기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왕비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그녀의 출신인 연나부, 즉 고구려의 왕비를 배출했던 부족의 힘이,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는 배경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집안의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왕비 자리를 유지할 방법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출신 부족이 세력을 겨루어야 했던 것이 2세기 말, 고구려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한 여인이 출가를 했다 할지라도, 딱 잘라서 출가외인으로 금을 긋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지요.

물론 그렇다 해서 산상왕비의 경우가 고구려 여성의 평균적인 삶일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고구려 여성들은 권력에서 소외되지 않았다, 뭐 그런 식의 일반화로 이해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후 조선의 여성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나마 조금 숨을 쉴 만한 시대라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해 줍니다. 산상왕비 개인의 선택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든 별개로 말입니다.

묘실 벽화 이야기를 하던 중이니만큼 죽음 후 이 왕비의 안식처가 궁금해집니다. 그녀는 죽은 뒤 어느 남편 곁에 묻혔을까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산상왕 곁에 묻혔다고 합니다. 첫 번째 남편의 뜻을 어기고 왕위 계승을 흔들었으니 고국천왕과 함께 영원의 시간을 나눈다는 건, 아무래도 낯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홀로 무덤을 지키는 신세가 된 고국천왕. 저승에서도 마음이 썩 좋지 못했나 봅니다. 왕비 우씨가 산상왕 곁에 묻히게 되자, 무녀의 꿈에 나타나 큰 분노를 토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두 무덤 사이에 소나무를 심어 서로 보이지 않게 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하네요. 재혼이야 고구려가 허락한 제도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을 무덤 안에 홀로 남겨 둔 왕비를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겠죠. 왕비 없이 혼자 묻힌 고국천왕의 무덤 안에 벽화가 그려졌다면, 몹시도 외로운 묘 주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덕흥리 벽화고분의 여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째서 이토록 장엄하게 장식된 영원의 안식처로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요. 고국천왕의 왕비가 두 번째 남편인 산상왕을 따라 묻혔듯이 의 아내에게도 무언가 사연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묻혀 버린,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어 있는 여주인의 자리. 고구려 여성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9월호

세상 보기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

고태경/ 정치철학 연구자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 저널 <디 애틀랜틱>이 최근 미국 20~30대 좌파들을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무엇을 기다리다 지쳤다는 말일까. 미국 밀레니엄 세대의 생활 환경을 특징짓는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다. 1940년대 미국 30세 청년의 소득이 그들 부모의 30세 당시 소득보다 높을 확률은 대략 90퍼센트. 그러나 2019년 현재 이 비율은 50퍼센트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이들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화두는 단연 기후 위기다. 산업혁명 후의 역사를 돌아보자.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말은 체제를 불문하고 지구상 모든 국가의 비전을 특징짓는 단어였다. 산업화의 진보를 통해 다다른 곳이 기후 위기의 종말론적 파국이라는 사실, 경제 개발의 서사가 도달한 결론이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사실 앞에 다시 한 번 기다림을 역설할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기다림에 조응하는 말은 약속이다. 20세기에는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진보의 약속이 있었다. 밀레니엄 좌파들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말은 이 모든 것과 대립한다. 그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런 것은 아니어야 한다.

 

구심력의 붕괴

밀레니엄 좌파들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말과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그들의 강한 사회주의 지향이다. 최근 미국 내 29세 이하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다룬 여론 조사에서 대략 50퍼센트 정도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먼저 21세기의 서막과 함께 거대한 구심력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였고, 출발점이 된 것은 2010년 아랍 민주화 운동이었다. 미국의 월가 점거와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시위가 연이어졌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논란(결국 잔류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카탈루냐의 스페인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 시도가 나타나며 국제 질서의 대변동 역시 촉발되었다.

체제의 구심력 붕괴는 기성 정치 세력의 몰락을 동반했다. 잠시 유럽에서 회자된 파소키제이션(Pasokization)이라는 말에 주목해 보자. 그리스의 양대 정당 중 하나였던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사회당(PASOK)2010년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지지율 급락을 경험했고, 2015년 총선에서는 제7당으로 몰락한다. 1980년대 이후 긴축 기조의 친자본 정책을 받아들이며 일어난 노동계급 지지 기반 이탈의 결과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향들이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독일 등지의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연이어 나타났다. 파소키제이션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풀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사회당화’. 조롱 섞인 이 말은 유럽사회민주주의의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함축한다.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은 동시에 노동계급의 동요를 불렀다. 20세기 혁명의 거점이라 여겨졌던 중화학공업 산업단지는 경제 위기의 광풍으로 혼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미국 대선을 경유하며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 ‘앵그리 화이트’. 이 표현 끝에 붙는 단어가 노동계급이다. 화가 난 백인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직장을 이주노동자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선언한 트럼프를 지지했다. 백인이 중심에 된 서구의 구 혁명 중심지들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새로운 극우 정당 독일의 대안(AfD)의 주요 정치적 거점은 구 동독공산당과 현 좌파당의 거점이었던 구 동독 지역이다.

대중의 우파적 동원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중의 좌파적 동원은 불가능할까. 미국 29세 이하 유권자들 절반이 지지한다고 말한 사회주의의 이름은 민주사회주의. 이 세력이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공유하는 몇 가지의 관념이 있다. 하나는 기성 정치는 시효 만료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민들의 목소리가 표현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동원의 시작, 그런데 어떤 동원인가

영국과 미국의 신흥 좌파들은 최근 민주사회주의의 정책적 경향을 사회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핵심 특징들을 정리해 보자.

첫째는 20세기의 종말론적 파국의 상황과 연관된다. 미국 민주당 좌파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최근 대표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은 이 파국에 대한 잠정적 대안을 담고 있다. ‘그린뉴딜에서 뉴딜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루스벨트 정부의 확대재정정책의 기조를 받아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확대재정정책은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포괄하는 보다 보편적 성격을 수반한다. ‘그린은 기후 위기와 연관된다. 기후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부의 적극적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확장될 것이고, 이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며 선순환 경제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린뉴딜은 산업화를 축으로 전개된 20세기 경제 패러다임과의 결별을 추구한다.

둘째는 시민들의 직접적 공론장 참여라는 문제다. 전후 유럽에서 전개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체제는 경제적 재분배 정책에 크게 의존했다.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국가의 공공부문을 확장하고, 누진세 등의 세제 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개별 시민의 일상에서는 시장의 개인주의화, 경쟁, 실업의 리스크가 일부분 상존하지만 중앙정부의 소득이전정책과 복지를 통해 사후적으로 이들을 규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자연스레 중앙정부의 역할은 비대해졌고, 개별 시민과 중앙정부를 매개할 장치는 (노조와 정당 외에는) 희소해져 갔다.


여기서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라는 말의 함의를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별 시민들이 공론장과 맺는 수동적 관계에 한계가 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세대가 지금 당장 행동하기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 파업의 열풍을 선도하는 것은 전 세계 10대 청소년들이다.

마찬가지로 밀레니엄 좌파들 사이에서 최근 새로운 도시 대안모델로 주목하는 미국의 클리블랜드와 영국의 프레스턴시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기존에는 산업중심의 도시였다가 2000년대를 전후로 기업들이 자본을 빼 가며 산업생태계에 위기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고 지역 공공기관과 비영리기관의 주도하에 산업생태계의 재편에 들어갔다. 공공연구기관이 시장 관계망들을 조사한 후, 지역 주민들이 직접 노동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자자주관리형 협동조합 모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된 이 두 도시의 모델을 부르는 개념 중 하나가 지역기반형 경제(place-based)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시민들을 잇는 것은 사실상 선거를 제외하면 사회계약이라는 추상적 원리뿐이다. 반대로 지역은 지방의 공공기관과 시민의 참여가 만나는 공간으로, 시민사회의 새로운 합의의 모델을 구축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남용되는 민관협치형 거버넌스 모델은 사실상 공공부문을 민간의 시장으로 외주화하는 형태를 띠었다. 한국의 민관협치 모델로 주목된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를 끼고 노동3권을 잃은 저가의 노동력이 현대차에 외주화되는 구조를 띠었다. 공공부문을 시민들의 직접 참여의 장으로 환수하는 클리블랜드 지역 기반 모델은 새로운 공적 참여의 모델로서 이 민관협치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누군가에 의해 대의되는 것을 꺼린다. 대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참여는 직접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이제 지금 여기의 대안을 필요로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9월호

세상 보기

존버 씨의 시간들

 

금지되어야 할 표현 통상적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저자

 

 

정신적 이상 상태의 양상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자해 행위로 인한 결과인 자살 자체를 원칙적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하는데, 그 구체적인 경우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둘째,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셋째,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6: 자해 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

그런데 세 사유 모두 정신적 이상 상태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전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차치하고라도, 정신적 이상 상태의 정도에 대한 내용들이 그렇게 명확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판정 과정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판정 내용의 모호함으로 인해 판정 결과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업무상 자살 사유로 산재를 신청한 케이스 가운데 2017년 판정된 총 63(승인 23건과 불승인 40)을 대상으로 업무 스트레스 -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 간의 관련성을 판정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에 대한 판정 내용의 불명확성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구체화해 보자.

우선, 업무로 인한 자살이 산재로 승인 받으려면 업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이 발생했음을 밝혀야 하는데, 업무와 정신적 이상 상태 간의 관련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정신적 이상 상태를 유발할 만큼의 업무 스트레스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23건의 승인 사례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의 내용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 기술된 대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억울하고 이번 일로 인해 직장과 당신 그리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두려워 죽겠다.”

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만두고 싶다. 아예 사라져 버리고 싶다.” 

손톱 옆살을 물어뜯는 등의 불안한 모습,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 등의 말을 수시로 함

걱정에 몹시 불안해하였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흥분함, 평소와 다르게 입으로 손톱을 뜯으면서 땀을 흘리고 혼자 중얼거림.

재해 직전에 보인 행동들은 평소 때의 모습이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고 하지 않던 욕도 처음으로 했고 밤중에 소리를 지르기도 함.

주위의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인간적으로 나를 이렇게 매장당하게 할 줄 몰랐다. 억울하고 너무나 원망스럽다.”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개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말을 함.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

위에 언급된 스트레스의 양상들은 자살에 이를 만큼의 정신적 이상 상태로 제시되고 산재 승인에 합당한 이유로 설명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스트레스의 양상들이 발견되어도 승인되지 못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통상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라니?

여러 불승인 사유들 가운데 눈에 띄는 지점은 정신적 이상 상태에 이를 만큼의 스트레스는 아닌 통상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라는 설명 방식이다. 통상적인 수준이란 이유로 자살을 업무상 사유로 판정할 수 없다는 사례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 기술된 대로 몇 가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역할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업무 스트레스 및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통상 업무에서 적응할 수 없을 만큼 과다한 부담으로 보이지 않고 20여 년간 해당 업무 근무 이력을 감안해 볼 때, 업무 스트레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

(새로운 인사관리 업무 등의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지만) 고인이 그동안 수행하던 일상적인 조리 업무의 일부로 판단되고 자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 직무 요인이나 업무상 스트레스가 없었다.”

업무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이나, 통상적인 수준의 업무 수행으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해 민감하게 책임감을 느끼는 개인적인 소양이 사망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매출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는 통상적인 수준(타 영업팀장들도 있는 부분)이다.”

환경상 업무 스트레스(조직 개편으로 부하 직원 1명 퇴사, 영업 관련 비용으로 추정되는 채무로 이에 대한 독촉 전화 수시로 받음)가 없지 않았으나, 통상적인 범위 내라고 보이고 업무 환경의 결정적 변화, 충격 사건, 인간관계 변화 등 없어 과도한 스트레스로 정신 이상 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인사이동(재해 1주일 전 타 부서로 이동)이 업무상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나, 인사이동이 고인에게 특정하여 실시된 것은 아니고 고인의 업무적 스트레스는 일반적 기자 업무 환경에서의 스트레스다.”

관리자로서의 책임감과 업무 실적에 대한 부담감 등 평소 업무 스트레스가 있었다 하더라도, 20여 년간 같은 업무를 수행해 해당 업무에 익숙했다.”

업무상 스트레스(자존감 상처, 의욕 저하, 우울감, 불면, 분노 감정 등의 증상으로 진료)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어 보이나, 우울증 등 질병에 이를 만큼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스트레스 요인을 확인하기 어렵다.” 

업무 질이나 강도가 정황상 문제적인 것으로 추정되더라도 많은 경우 통상적인 수준’, ‘자살을 유발할 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려움’, ‘○○년 차에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업무는 아님’, ‘업무에 있어 큰 변화라고 볼 수 없는 수준등의 이유로 불승인되는 경향이 높다. 그런데 불승인 사례의 업무 스트레스들을 왜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근거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서는 찾기 어렵다. 판정 내용의 불명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목이다.

국어사전에서 통상은 특별하지 않고 늘 예사로 있는 일이나 상태를 뜻한다. 그 일이나 상태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관행적으로 오래전부터 해 오던 것들이란 의미들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너만 힘드냐, 다들 힘들다. 그 정도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식이다. 이러한 통상적인 수준이나 ○○년 차 정도의 업무라는 설명 방식은 업무 스트레스를 재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려한 것도 아니요, 당시 업무 맥락에 기초해 고려한 것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심히 주관적일 수 있는 통상적이란 표현 그 자체는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판정의 언어들은 더욱 타당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판정 내용을 담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통상적인 업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그 수준이란 것이 이미 문제의 정도를 넘어선 상태라는 점을 먼저 인지하고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6월호

세상 보기

생태 이야기

 

벌써 모기가 나타났다는데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입하(立夏). 고마운 계절이 어느새 여름 문턱에 다다랐다. 어린이날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하루 지나자 쾌적해졌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매우 좋다. 초미세먼지가 나빠도 마스크 착용하고 걸었으니 이런 날 집 안에 머물면 예의에 벗어난 일이다. 급한 원고가 더 급해지더라도 밖에 나갔는데, 조금 쌀쌀해졌다. 벚꽃이 떨어지면서 한낮에 그늘을 찾았는데, 양지로 걸었다. 북풍이 멈추면 따뜻해질 거라 예보하는데, 이내 무더워지겠지.

요즘 날씨는 느닷없다. 어제오늘은 아닌데, 산들바람으로 가로수를 초록으로 물들이던 날씨가 어느새 여름이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우리의 언어와 달리 자연의 변화는 더디다. 여태 기상이변에 적응하지 못한다. 순서를 놓친 봄꽃이 뒤죽박죽이자 새들은 짝을 찾기 어려워한다. 개구리가 물가 찾는 순서를 놓치면 잡종이 생긴다. 잡종은 예외적이어야 한다. 일상화되면 생태계는 안정을 잃는다. 생식 능력이 없는 잡종이 늘어나면 먹이사슬이 무너지지 않는가.

요 며칠, 거리에서 폭염 냄새가 났다. 작년 여름은 참 유난했는데, 올여름은 견딜 만할까? 롱패딩이 씻은 듯 사라진 거리에 반팔 티셔츠가 갑자기 늘었는데, 가지치기로 앙상해진 플라타너스들은 새잎을 몇 가닥 펼치지 못했다. 넓은 가로수 그늘이 햇살을 막지 못할 올여름이 벌써 두렵다. 여름은 초미세먼지를 줄이니 다행인데, 경각심까지 무뎌질지 모른다. 아닐까? 폭염은 에어컨 가동을 부추기고 중국 동해안의 화력발전은 석탄 사용량을 늘릴 테니 미세먼지가 오히려 늘어나는 건 아닐까?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지로 잘 알려진 홍도의 평균 기온이 40년 동안 섭씨 1도 상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뿐 아니라, 2010년 제주도에서 발견돼 학자들 놀라게 한 아열대성 식물 고깔닭의장풀이 작년에는 홍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올해는 무성하려나? 거제도의 평균 수온이 1970년대보다 0.6도 정도 올랐다고 하니 홍도 해역도 비슷할 텐데, 우리에게 생소한 범돔과 아홉동가리 같은 아열대성 어종이 홍도 해역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아열대 어류가 고유 어류를 밀어낸 형국인데, 괭이갈매기는 번식에 이상이 없을까?

0.6도의 변화는 피부로 느끼기에 미미하다. 자판기에서 뽑아 든 믹스커피가 미지근해지는 온도보다 훨씬 작지만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드넓은 바다의 생태계는 변화에 예민하고 우리는 그 변화 폭을 감내하며 물고기를 잡아 왔다. 잡는 종류와 양이 들쭉날쭉했어도 익숙한 범위 이내였으므로 견뎌 냈다. 하지만 이젠 모른다. 누적된 기상이변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할지 모른다. 쥐치가 사라진 홍도 해역에서 잡아 올린 범돔과 아홉동가리의 요리법을 연구해야 한다.

수온 변화는 플랑크톤 변화로 이어지고 필히 어류 변화로 연결된다. 국립공원공단에서 홍도 괭이갈매기가 2003년보다 열흘 빨리 번식했다는 보도 자료를 돌린 모양이다. 괭이갈매기는 새끼들에게 범돔과 아홉동가리를 먹여야 할지 모르는데, 처음에 흔쾌하지 않았을 거 같다. 지금도 그리 흔쾌하지 않을 텐데, 쥐치는 어떨까? 남획으로 사라진 쥐치가 홍도 주변에 회복되더라도 아열대 어류를 능가하기 어려울 거 같다. 우리 눈에 띄지 않는 플랑크톤이 이미 아열대성으로 바뀐 상황이므로.

온난화는 태풍과 해일의 수와 힘을 키운다. 아시아, 그중 우리나라를 둘러싼 바다의 수온이 크게 상승했다. 태풍 피해가 전 같지 않다. 바다에서 비롯되는 자연재해 기록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이제 눈에 띄는 뉴스거리가 아닌데,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충분한가? 태풍이 일으키는 홍수와 산사태, 해일과 폭풍만이 아니다. 평균 기온과 수온의 변화가 일으키는 생태계 변화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곧 제주도 남쪽 해역부터 아열대성 해파리가 올라올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지만 종류와 양이 늘어나기만 한다. 쥐치가 흔전만전할 때, 해파리는 그물 올리는 어부와 해수욕장의 청춘 남녀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해파리들은 서해안에 밀집한 발전소에 적지 않은 비용을 청구한다. 터빈 돌린 수증기를 식히기 위해 끌어 올리는 바닷물에 감당하기 어렵게 섞이는 해파리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터빈을 식히고 나오는 온배수가 다시 해파리를 끌어들인다. 바다의 온도를 높이는 탓이다.

발전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설비 1기마다 초당 50톤의 온배수를 내놓는다. 우리나라 화력발전 사업소마다 그런 설비가 적으면 서넛, 많으면 예닐곱 이상이고, 그로 인해 영흥도, 평택, 당진 주변 10킬로미터의 바다가 1도 정도 따뜻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영광군에 막대한 온배수를 쏟아 내는 핵발전소가 6기 가동 중이다. 같은 용량인 화력발전소보다 2배의 온배수를 황해에 내놓은 핵발전소는 우리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더 늘어날 태세인데, 중국의 화력발전소는 우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부분 황해에 온배수를 쏟아 내는 실정이니, 괭이갈매기의 식성 변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백령도에서 북한 장산곶 사이의 인당수는 물살이 거세, 예전부터 고깃배의 접근이 어려웠나 보다. 중국 어선에 오른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걸 보면. 물고기가 많아도 남북 접경 수역이라 보전되었지만 그건 어부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이고, 점박이물범은 덕분에 식솔을 늘리고 몸집도 불렸다. 고마웠을까? 얼마 전 해양수산부는 백령도 물개바위 인근에 인공 쉼터를 만들었다. 경계심이 많아 처음엔 접근하기 꺼려했지만 차차 익숙해진다고 언론이 보도하던데, 물개바위가 비좁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보도했듯 단순히 개체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그 명확한 이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황해 점박이물범은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붙는 발해만으로 이동해 안전한 해빙에 새끼를 낳는다. 황하의 강물이 닿았던 발해만은 오랜 황금 어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업용수로 전환된 뒤 폐수가 되어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면서 바다 같았던 황하가 9개월 동안 건천으로 바뀌었다. 이후 점박이물범은 발해만을 포기해야 했다. 먹이가 마술처럼 사라졌을 뿐 아니라 바닷물도 얼지 않으니 새끼를 낳을 해빙도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점점 따뜻해지는 황해에서 멸종되는 걸까? 모른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도, 8000마리였지만 200여 마리로 줄었다고 걱정했다. 한데 늘었다니? 물고기가 남은 물개바위 주변에 모이는 개체가 늘었을 따름이 아닐까?

현재 황해의 점박이물범은 생태계 변화가 치명적이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쥐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은데 모기가? 입하가 막 지났는데 남녘에 모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입동 지나도 자취 감추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입하에 모습 드러내는 게 이상하지 않은데, 가려워서 그런지 인간은 호들갑이다. 요즘 모기는 예전과 같은 종류일까? 여름철 모기장으로 피신시키던 모기는 아니겠지. 독성을 강화한 분무기로 퇴치되지 않는 요즘 모기는 초여름부터 존재를 과시한다. 이러다 사시사철 긁적여야 하나?

며칠 맑아지니 미세먼지 걱정이 무뎌진다. 정부 대책도 흐지부지되는 건 아니겠지? 홍도 괭이갈매기는 누적된 지구온난화의 결과다. 더우면 에어컨 켜고 추우면 보일러 온도 높이는 인간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모기를 이기지 못하는 인간은 생태계의 변화에 예민하게 대처해야 생존이 가능한데, 몹시 굼뜨다. 온실가스를 줄이려 들지 못한다. 그럴 생각이 아예 없다.

posted by 작은책
prev 1 2 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