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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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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만든 '영전강', 사교육비 절감한다며 뽑더니…
[작은책] "사실혼 인정하고 무기 계약 보장하라!"



"같이 살림 차리고 8년을 살던 놈이 다시 4년 더 살자고 하면서 혼인 신고는 절대 안 해 준대. 당신 같으면 이 X새끼 어떻게 할 거야! 판사도 인정했잖아, 사실혼이라고. 왜 당신들만 쌩까냐고!"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말이 거칠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친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고, 학창 시절 대단한 천재는 아니었지만 총명하다는 말을 듣던 모범생이었고, 성장해서는 교통 법규조차 함부로 어기지 않는 시민이 되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싹싹하게 웃으며 일했고, 어른들 명절 선물 챙기기에도 최선을 다했다. 친구들에게조차 소홀하게 되어 핀잔을 들어가면서까지 그 비겁한 놈에게 온 마음을 쏟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혹시 '착한 여자 콤플렉스' 아니냐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 말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참고 살았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상황을 면해 보려 했다. '부당하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처지가 못 되었고,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나에게 큰 상처를 남길 것이 분명했다. 설마 했는데 나를 데리고 살던 이놈은 애초부터 나랑 가족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 나 혼자 헛꿈을 꾸었음을 알고 나니 분노가 치민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쫓겨날까 봐 조마조마하며 눈치 보고 살던 습관은 내 자존감에 커다란 상처를 남겨 놓았다.  

▲ 전국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이것은 지금 학교 현장에서 4년마다 거듭 해고를 당하며 일하는 비정규직 교사인 영어회화 전문강사(이하 영전강)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다. 지난 8월 대전고등법원은 4년을 근무하고 해고된 영전강이 사실상 무기 계약이라고 판결하였으며, 학교장과 계약하더라도 실제 사용자는 교육감임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영전강의 업무가 상시 지속적임을 인정하여 무기 계약 전환과 고용 주체를 학교장에서 교육청으로 바꿀 것을 교육부 장관에게 권고하였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절감과 영어 말하기 교육의 문제점을 보강하기 위해 영전강 제도를 만들었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영어 지도안 작성과 영어 수업 시연, 영어 면접 등을 거쳐 6200여 명의 영전강을 선발하여 초중고교로 배치했다. 그러나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42조에 영전강의 근무 기간이 4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해고를 반복하는 꼼수를 썼다. 그동안 절반 정도가 일터를 떠나 현재는 3200여 명 남았다.

공개 채용을 거쳐 8년간의 실무를 통해 검증받은 영전강들에게 임용고시를 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법원이 자격을 인정했음에도 최상위의 기준을 다시 정해 무한 경쟁에 밀어 넣는 논리는 아이들이 경쟁 교육에서 마주하는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주장대로 영전강이 임용고시에 응시하여 모두가 합격한다 해도 교육부의 생각이 이렇다면 학교는 계속하여 해고하기 쉬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정규직에서 밀려난 청년들이 다시 이 비루한 일자리를 메울 것이다. 

머지않아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마구 쏟아 내는 화풀이 식 댓글과 새 정부의 정규직 전환 공약이라는 희망 고문에 상처받고 주눅 들어 한없이 우울해졌다. '동일 노동·동일 임금'은 고사하고 8년간 15만 원 오른 월급에도 불평 없이 방학에도 아이들 가르쳤는데, 이제 와서 무자격자라고 흠을 잡으려 든다. 그들의 주장에서는 인간에 대한 도리도 필요 없고, 오로지 살자고 발버둥치는 생존 본능의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가난한 비정규직이 넘쳐 나는 한 이런 진흙탕 싸움은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겪고 지켜본 해고는 지위가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살인이다. 왜냐하면 일자리는 그 사람의 존재를 다 걸기 때문이다. 한 영전강은 임신을 이유로 해고되는 것에 저항하여 학교와 말싸움을 벌이다 태아를 잃기도 했다. 교수나 박사님의 해고 또한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해고의 위협은 사람의 마음을 하릴없이 좀먹게 만든다. 

교원 임용 선발 인원을 깎아 먹는다고 영전강 제도를 폐지하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잔인한 왕정의 노예들도 태어날 귀한 신분(정규직)의 앞길을 위해 먼저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 수년 전 영전강 제도 폐지 서명 용지가 내가 앉은 책상 옆에서 돌던 날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느 집단이나 주장하고 싶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온 힘을 다해 굴려 내고 싶은 역사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 밑에 깔려 다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냈던 얼마 안 되는 후원금을 돌려주겠다던 모 의원님은 줏대가 약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영전강을 반대하는 이들의 반발이 그만큼 거세었다는 말이 옳다. 수년 전 교육공무직 법안 발의 때 한 국회의원의 홈페이지는 영전강에 대한 댓글로 다운될 지경이었다. 합법적인 후원금조차 낼 수 없게 되자, 내가 어쩌다 이렇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8년의 학교생활에서 나는 비굴함과 겸손의 차이를 아직 모른다. 나는 아이들에게 겸손하기 위해 비굴함을 선택했다. 어른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학교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풀 죽어 있던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이 그냥 들여다보였다. 나는 아이들과 공감하는 방법을 교육학에서보다 한없이 내 몸을 낮추어야 했던 비정규직 생활에서 더 많이 배웠다.

나는 '교사'라는 이름을 원하지 않는다. 일하던 대로 일하도록 고용 안정만 바랄 뿐이다. 내가 만약 학교가 아닌 다른 공공 기관에서 2년을 근무했다면, 기간제법에 의해 무기 계약 대상이 된다. 공공 기관과 학교는 무엇이 얼마나 다른 곳인가. 가르치는 일이 노동법 적용 대상이 아닌 이유가 무엇인가. 가르치는 일에는 얼마나 혹독한 전문성이 요구되는가. 9년이 아니고 90년을 일하면 인정해 줄 것인가. 

추석 명절을 지내며 여성과 비정규직의 삶은 서로 많이도 닮았음을 느낀다. 함부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 언제나 남에게 해석 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는 착하지 않아, 능력이 부족해'라고 끝없이 죄책감을 강요받는다. "임용고시 합격하여 떳떳하게 일하라"라는 말은 영전강의 생각은 들어볼 것 없이 너희는 부정한 집단이라는 누군가의 일방적 해석이다. 짜장면집 주방장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반드시 세계적 요리사가 되라고 윽박지르는 꼰대의 모습이다. 어느 한 편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건강할 수 없고 이익을 누리는 쪽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그리하여 직무유기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아무리 말단의 일이라도 해고될 걱정 없이 소신껏 할 수 있어야 그다음에 민주주의고 뭐고 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을까. 

계속하여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강자들에게 이제 더 이상 나만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의 눈물을 팔아 우리가 옳다고 누구를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나를 지지하며 수고를 인정하고 내 노동의 법적 권리가 옳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마치고 밤샘 농성을 하기도 하고 광화문 땡볕 아래서, 교육청에서 싸움을 이어간다. 거기엔 함께하는 친구도 있고 공감도 있어 견딜 만하다. 오늘은 교육부 높은 담장을 향해 소리친다.

"사실혼 인정하고 무기 계약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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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7. 11. 9. 17:02 태복빌딩 꼭대기

* 다달이 <작은책>을 받아보시면 가장 먼저 편집 뒷이야기부터 읽어보시는 독자님들이 꽤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옮겨봅니다. ^_^


발행인 안건모

마감 무렵에 개에 물려 시민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교정을 보는데 이번 호는 개 이야기가 두 편입니다. 독일에서 개 키우는 이야기도 있는데 입이 쩍 벌어집니다. 입양 절차가 얼마나 깐깐한지 모릅니다. 출근할 때 집에 강아지와 함께해 줄 사람이 없어도 안 된답니다. 맹견 키우려면 자격 검증도 받아야 하고, 목줄과 번호표는 의무, 게다가 세금도 있어요. 이 정도 돼야 개를 키울 수 있지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전 안 키울래요.

 

독자사업부 정인열

초박빙 마감 중,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안샘이 제 자리로 오셔서 말을 겁니다.

인열 씨, 잠깐 천장 한 번 쳐다보고 머리 좀 식혀 볼래?”

안샘의 두 손에는 원고가 있습니다.

요거 한 번 봐 줘. 그리고 한 문단이 넘치는데 줄일 데 없는지 봐 줘.”

마음이 착한 저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주세요. 읽어 볼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안샘이 뒤돌아서면서 하는 말,

. 저렇게 해서 인열 씨 시간을 뺏으면 내가 더 빨리 마감하겠지. 음하하하하!”

저는 그냥 저대로 마감하고 있는데 자꾸만 안샘이 저를 의식하셔서 경쟁이라고 하시네요.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7년 11월호

<'그때 그 사건다시 보기>   


노 파사란!

김형민/ 방송 프로듀서

 

몇 년 전 아베 일본 수상의 안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북을 두들기며 어깨를 들썩이며 랩같은 구호를 반복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흥겨운 시위였다. 그때 일본의 한 젊은 여성이 외치던 구호 가운데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가 끼어 있었다. “노 파사란!”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의 스페인어였다. 그 구호는 약 80년 전 스페인을 달뜨게 했던 역사적인 구호였다. 그 구호가 지구를 반 바퀴 돌고 8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모습에 감회가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80년 전 이 구호를 외친 이도 그 또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이 외친 구호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시위대가 많이 부른 훌라송의 일부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더 원한다 훌라훌라일어서서 저항하다가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고 생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는 이 가사의 저작권자 역시 같은 여성이었다. 이름은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

그녀는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 광산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원래 다산(多産) 전통의 남유럽 국가답게 그녀의 형제들도 축구팀급이었다. 11남매. 그중에 그녀는 8번째였다. 여기서 바스크 지역의 역사를 잠깐만 훑고 지나가자.

바스크인들의 언어는 유럽 대륙의 인도·유럽 어족과 완전히 다른 고립어 계열이다. 즉 바스크인들은 언제 어디에서 왔고 왜 그곳에 살고 있는지부터가 미스터리인 민족이다. 로마 제국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시절에도,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에 초승달 깃발을 꽂았을 때에도 독립적 지위를 유지했던 깐깐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대체로 바스크인들은 공화파 정부에 충성했다. 공화파 정부가 더 많은 자치를 허용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프랑코를 돕는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쑥밭이 됐고 피카소의 그림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은 게르니카도 바스크의 도시였다. 이 바스크족 광부의 딸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소녀티를 벗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여 열댓 명의 아이들을 낳고 그들을 건사하느라 여념이 없는 여느 스페인 시골 여자들과는 팔자가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녀는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독학으로 읽으며 자신과 조국의 상황을 체득하고 사회운동가로 성장해 갔던 것이다. 1918<미네로 비스카이노> 신문에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필명이 열정의 꽃이라는 뜻의 라 파시오나리아였다. 열정의 꽃1920년 이후 스페인 공산당에 입당했고 당 중앙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됐으며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3차 공산당 전체회의에 스페인 대표로 참석하는 등 좌파 진영의 주요한 지도자로 성장해 갔다. 19362월의 운명적인 선거에서 그녀는 목이 쉬어라 연설하며 좌파 연합 인민전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스페인의 1936년 총선은 치열했다. 72퍼센트의 높은 투표율 속에 좌파와 우파의 표 차이가 1퍼센트도 나지 않는 초접전이었다. 어쨌든 다수의 의사가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선거법에 따라 인민전선이 다수 의석을 가져갔고 공화파 정부를 수립했다. 돌로레스 이바루리도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이미 프랑코 이하 군부나 지주 등 우익 세력은 정부에 복종할 마음이 없었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 내전이 시작됐다. 스페인 내전은 전 세계 모든 이념들이 모인전쟁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시험대라고 불렸다. 전 세계의 양심들이 몰려와 국제여단을 구성하여 프랑코 군대와 싸웠다. 영국인 조지 오웰도, 미국인 헤밍웨이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내전에서 돌로레스 이바루리 의원은 저항의 여신(女神)으로, 그리고 용기와 열정의 꽃으로 스페인 사람들과 공화파를 도우러 온 외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된다. 1936년 마드리드 방어전을 앞두고 그녀가 10만 군중 앞에서 한 연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큰 울림으로 남았다.

파시즘은 무사히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 파사란! (No pasaran!) 왜냐하면 파시즘의 진로를 막아 왔던 우리의 방어가 더욱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겁한 적은 우리처럼 전쟁터로 이끄는 이상이 없기에 용감하게 돌진해 오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프랑스로 가서 공화파 지지 연설을 하며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바로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더 원한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다.

노 파사란! 그들은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무릎 꿇고 살기보다를 절규하는 열정의 꽃이 어느 정도의 향기를 내뿜었는지는 헤밍웨이의 걸작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속 등장인물의 증언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등장인물은 돌로레스 이바루리의 연설을 듣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고 음성만으로도 진실을 말하는 줄을 알겠더군. 그녀가 전하는 소식을 그 대단한 목소리로 들었을 때 그 순간은 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였네. 선과 진실이 마치 백성의 참된 사도에서 뿜어져 나오듯 그녀도 그랬어.”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군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야 했다. 비참한 운명을 맞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소련으로 망명해 큰 파란은 없었지만 아들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잃어야 했음에도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꿋꿋이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고수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사태, 즉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 침공 때 오랜 침묵을 깨고 소련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던 그녀는 프랑코가 죽은 후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오던 1976년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그녀의 나이 여든한 살.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카를로스 국왕의 균형 잡힌 리더쉽 아래 민주화의 발길을 내딛었고 공산당도 합법화돼 선거에 참여한다. 1977년 무려 41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바루리는 다시 한 번 국회의원이 된다. 역시 41년 만의 재선. 당시 그녀의 나이 여든둘이었다. 내전 시작 전의 스페인을 41년 살았고 독재 치하 스페인을 41년 떠나 있었던, 늙었으나 싱그러운 열정의 꽃라 파시오나리아의 귀환이었다.

재출발한 민주주의에도 위기는 있었다. 최대의 위기는 역시 1981223일의 쿠데타 기도였을 것이다. 헌병대 중령이 수상 선출을 위해 모든 국회의원이 모여 있던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자동소총이 난사되고 모두 엎드리라는 호령이 떨어졌을 때 모든 의원들이 책상 밑에 납작 엎드렸지만 두 사람만은 자리를 지켰다. “내가 왜 당신들 명령을 들어야 하는가.” 수아레스 당시 수상과 돌로레스 이바루리의 후계자로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산티아고 카리조였다. 마치 쿠데타군에게 노 파사란! 여기는 민의의 전당 국회다를 외치듯 그들은 똑바로 자리에 앉아 쿠데타군을 노려보았다.

이후 카를로스 국왕이 군복을 입고 방송에 출연, 결연한 쿠데타 반대를 표명했고 1936년을 꿈꾼 군부의 반란자들이 체포되면서 쿠데타는 막을 내렸다. 아마 이 모습을 보면서 열정의 꽃 라 파시오나리아,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페인의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 ‘라 파시오나리아19891112일 세상을 떠났다.

posted by 작은책
2017. 11. 1. 16:46 기획 특집

<작은책> 2017년 11월호


<특집 _ 하승수 지상강좌>



몰랐어? 문제는 선거제도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

 




제가 활동하는 단체가 비례민주주의 연대라는 단체인데요, 저는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하기 전에 녹색당 창당 때부터 활동했고요. 그 전엔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주제 중의 하나가 어린이·청소년 인권 문제였습니다.


지금 보여 드리는 자료는 유엔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라는 자료예요. 2012년부터 발표를 해 오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걸 가지고 비교해 보면 어떤 사회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좋은 사회인 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그 사회가 뭐가 다른지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겠죠.


전 세계에 있는 나라들을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1위에서 20위 사이의 나라들은 대체로 어디에 많이 몰려 있죠? 우리가 잘 알다시피 덴마크라든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이런 북유럽에 있는 나라들,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고요,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은 걸로 나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도 10등 안에는 못 들어가지만 좀 나은 걸로 나오고, 호주, 뉴질랜드, 중남미의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은 걸로 나왔어요. 2012년에 나온 자료입니다. 코스타리카나 베네수엘라, 중남미에 있는 나라들은 주관적 행복감이 높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소득 수준은 떨어져도 행복도가 꽤 높은 걸로 나오고요.


여기서 주목할 만한 나라들이 한국하고 일본이에요. 한국은 2012년 첫 번째 발표된 보고서에서 56등을 했고요, 일본도 44등을 했어요. 소득 수준에 비해서는 굉장히 행복도가 떨어지는 걸로 나왔습니다. 이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 우리나라 경제부처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분석했어요.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떨어지는지 분석해 보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유엔 행복 보고서에서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 사회 공동체가 건강하다, 예를 들면 시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고 기업도 투명하게 경영이 되고 사람들의 안전이나 자유 같은 게 잘 보장이 되고 이런 거예요. 또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느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행복도가 높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행복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고 일본도 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예요. 사실 미국도 이 보고서에서 괜찮은 걸로 나왔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미국은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걸로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행복 보고서는 양호한 편이고요, 지난번에 여론 조사 기관 갤럽이 조사한 걸로는 148개 나라에서 118등을 했습니다. 거의 바닥권이었죠.


그럼 덴마크는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스웨덴이나 이런 나라들은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그걸 추적하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되는 거죠. 교육의 문제라면 교육 문제, 사람들이 노동 시간이 길어서 그렇게 피로에 찌들어서 사는 사회가 안 되려면 노동 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사람들이 하루하루 너무 팍팍하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장해 줄 것인지, 청소년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불안하지 않게 나오게 할 수 있는지,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정치의 역할입니다. 저는 우리보다 행복도가 높게 나온 나라의 핵심은, 그 나라 정치가 그 차이를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만든 게 선거제도고요. 그래서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까지 가지게 됐어요. 사실 어린이·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진짜 선거제도 개혁 운동에 대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수, 주관적 행복 지수입니다. 어린이·청소년만 놓고 비교해 봤을 때, 작년에 나온 결과인데, 한국이 꼴찌를 했어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주관적 행복감이 높은 나라는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위권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노르웨이까지 8등까지의 나라들의 선거제도가 뭐냐 하면, 대체로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예요. 우리가 하고 있는 선거하고는 다른 선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선거제도가 그 나라의 정치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흔히 선거제도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선거권 문제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의 시야를 그렇게 좁혀 놓은 거예요. 물론 선거권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선거권 연령을 많이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그렇지만 이것은 선거제도의 아주 일부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게 뭐냐면, 선거권을 만 16세로 낮춰도 만 15세 이하는 선거권이 없잖아요. 그러면 그 청소년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거냐, 투표권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냐, 그렇지가 않아요. 예를 들면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청소년들이 만 18세부터 선거권이 나오지만 사실은 그 청소년들은 만 18세 되기 이전부터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지금 교육부 장관이 1983년생이에요. 지난번 이준식 교순가? 그 양반이 60대였죠. 지금 정권이 바뀌었어도 김상곤 부총리, 그분도 연세는 많으시죠. 그런데 스웨덴은 1983년생이 교육부 장관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겠죠. 어떻게 30대 초반에 장관을 할 수 있냐, 교육부 장관을. 교육이 무지하게 중요한데.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 정도가 장관을 해야지 청소년들하고 소통이 좀 가능하지 않겠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구스타프 프리돌린(Gustav Fridolin) 스웨덴 교육부 장관은 열한 살부터 정치를 했어요. 열한 살에 스웨덴 녹색당에 가입을 합니다. 당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8년 동안 활동을 하다가 당원들한테 인정을 받아서 19살에 국회의원이 돼요. 그리고 2011, 20대 후반에 당 대표가 되고 2014년에 서른한 살 나이에 교육부 장관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될 때 정치 경력이 20년 되는 겁니다. 나이가 젊은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선거권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치할 자유라는 게 보장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들도 정치 활동할 수 있어야 돼요. 선거권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할 자유는 나이에 관계없이 보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제도에서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면 가장 기본은 뭐냐면 내가 던진 표가 어떻게 계산되느냐라는 문제입니다. 그게 선거제도의 가장 기본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우리나라 선거 중에 극단적이었던 경우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014년 지방 선거를 했습니다. 경상남도에서 새누리당이 1등을 했습니다. 도지사도 새누리당이 당선됐고 홍준표 전 지사. 그리고 도의회도 새누리당이 1등을 했어요. 문제는 뭐냐면 새누리당이 1등을 하긴 했는데 받은 표는 59퍼센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석을 90퍼센트 이상 가져가요. 그러면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가 1.5배로 뻥튀기 하는 거죠. 밑에 있는 정당(새정치민주연합)을 보시면 28퍼센트 받은 당이 있습니다. 28퍼센트를 받은 당이 몇 퍼센트 의석을 가져가냐 하면 3.63퍼센트 의석을 가져가요. 그러면 이 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가 8분의 1로 줄어드는 거죠. 그럼 결국 한 표의 가치는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표의 등가성이라는 게 깨지는 겁니다. ‘표의 가치는 동등해야 한다라는 것이 표의 등가성이라는 건데,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어떤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표의 가치는 올라가고 어떤 정당을 지지한 표의 가치는 8분의 1로 떨어지고. 또 여기 보시면 통합진보당이라고 5.3퍼센트를 받은 표의 가치는 제로가 되는 겁니다.


이게 어느 나라든지 간에 선거제도라는 걸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입니다. 사람들이 표를 던지는데 그 표의 가치가 어떻게 계산이 되느냐 이거죠. 이런 결과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2014년에 경상남도 의회에서 새누리당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죠? 도지사인 사람이 무상 급식을 중단하겠다, 이래서 한참 논란이 많았죠.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4월에 총선을 했는데 그 당시 새누리당이 정당표는 제일 많이 받았어요. 33.5퍼센트의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석은 122, 40퍼센트 이상 의석을 가져갔죠. 33.5퍼센트의 표보다 더 많이 가져갔어요. 더불어민주당도 25퍼센트 받았으면 한 80명 정도 돼야 하는데 123석을 가져갔어요.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받은 표보다 적게 가져갔어요. 한국은 정의당 같은 정당이 진보적인 정당이죠. 진보정당은 역대 선거에서 늘 10퍼센트 안팎의 표를 받아 왔어요. 300명의 10퍼센트면 30석을 가져가야 하는데 5, 6, 이런 거죠. 작년에 정의당이 7퍼센트를 받았으면 21석 이상을 가져가야 되는 건데 여섯 석밖에 못 가져갔죠.


21석을 가져갔다면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원내교섭단체가 되어야만 국회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정의당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진보정당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늘 받은 표보다 적게 의석을 차지하기 때문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선거제도가 잘못돼서 이런 결과가 초래되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선거제도를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다수대표제라는 게 있고 비례대표제라는 게 있어요. 다수대표제라는 게 우리가 가장 익숙한 겁니다. 소선거구제라고도 합니다. 1등 하면 되는 선거제도, 나머지는 다 사표. 우리는 너무 익숙하죠. 그렇게 하는 게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1등 찍은 표만 유효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의사는 다 무시되는 거니까 민주적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 반드시 표의 등가성이 깨집니다. 그러면 1등을 할 때 30퍼센트 받아서 1등 해도 돼요. 나머지 70퍼센트는 다 무효가 되는 거죠, 표가. 그러면 자연스럽게 표의 등가성이 깨지는 겁니다.


사실 선거의 역사를 보면 다수대표제가 먼저 시작된 선거제도예요. 미국이나 영국이 먼저 시작을 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무비판적으로 도입을 합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유럽에서는 150년 전부터 1등만 되는 선거제도는 곤란하다, 이거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들이 150년 전부터 비례대표제라는 걸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개발해 내요. 정당이 받은 표대로 나눠 가지자 하는 게 공통점이었어요.


이게 1900년에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채택이 됩니다. 그리고 190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유럽 대륙으로 확산이 돼요. 그 당시에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등이 이 제도를 채택합니다. 사실 지금 그런 나라들이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 100년 전에 이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아니라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이 된 나라들입니다.


승자독식의 선거를 하면 할수록 지역구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정당, 즉 거대 정당 중심으로 정치 구조가 고착됩니다. 그리고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가 특권 계급화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0억이 넘었습니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평균 모습하고 다른 국회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대표성이 파괴됩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30대 장관도 있고 19살에 국회의원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불가능해요. 왜냐면 이 승자독식의 선거를 하면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지역구에서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못 받으면 될 가능성이 없어요. 20, 30대 청년들이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냐? 못 받는 거죠. 작년에 국회의원 총선을 했는데, 국회의원 당선자 중 만 20, 30대가 1퍼센트였습니다. 세계 평균은 13.5퍼센트 정도는 돼요. 왜 대한민국 국회가 청년들이 없는 국회가 됐을까. 그리고 평균 연령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어요. 작년 총선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당선자들 평균 연령이 만 55.5세였어요. 그전 선거보다 세 살이 올라갔습니다. 왜냐면 지역구에서 1등을 해서 당선이 되면 그 다음에 또 하려고 하잖아요. 포기하지 않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계속 재선, 삼선 이렇게 가다 보면 평균 연령은 계속 올라가게 돼 있어요. 지금 제도라면 다음번 국회의원 당선자들 평균 연령은 58.5세 정도로 올라갈 거고요, 그다음엔 60세가 넘겠죠.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회가 될 거예요. 국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예요. 지방의원이 되려고 해도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니까 지방의원도 못 들어갑니다.


여성도,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 비율이 17퍼센트, 지방의원도 14~25퍼센트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이거 굉장히 낮은 겁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 나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 나라들의 공통점도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예요. 왜 비례대표제를 하면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고 청년들이 많이 들어가느냐? 표를 받아야 하니까. 비례대표제를 하면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겁니다. 청년들 같은 경우는 청년 정책을 보고 찍고, 여성들은 성평등 정책, 여성 정책 보고 찍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정책만 보고는 사람들이 믿지를 않죠.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후보가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청년들은 청년 후보가 있는지, 여성들은 여성 후보가 있는지.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면 자연스럽게 정당들이 정책도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보자들도 다양하게 여성들, 청년들, 소수자들 다 공천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 구성이 국민들의 표준적인 구성에 유사하게 되는 거죠.


우리나라처럼 선거를 하게 되면 표의 등가성이 깨지고 거대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흘러가고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책이 중요하지 않은 정치가 됩니다. 왜냐면 대부분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번에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면 열심히 지역구 관리를 해야 돼요. 국회에 앉아서 정책 토론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국회에서 부실하게 해도 괜찮아요. 우리 지역에서 열심히 인사 다니고 행사 찾아다니면서 악수 많이 하고, 이게 다음번에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하는 방법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그걸 너무 잘 알아요. 그러니까 국회에서 정책 토론할 때에는 국회의원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정책에 관심이 없어요.


국회 자체에서 하는 공청회에도 안 앉아 있어요. 제가 국회 공청회 때 몇 번 갔는데요, 깜짝 놀란 건 17명이 앉아 있어야 되는데 서너 명 앉아 있어요. 시작할 때는 좀 앉아 있는데 그다음에 없어져요, 사람들이.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교수님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위원장과 다른 의원 한 명이 앉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는거죠. 이게 저는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답은 나와 있습니다. 어떤 선거제도가 정말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느냐, 그건 나와 있다고 생각해요. 100년 전에 승자독식의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하고 비례대표제하고 갈라섰는데 100년 후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가 잘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비례대표제를 택했던 나라들이 많다는 거죠. 이 나라들이 100년 전에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근데 100년 동안 정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지국가라는 걸 만든 거예요. 스웨덴이 100년 전에 복지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핀란드도 100년 전에 매우 어려웠던 나라예요. 핀란드는 100년 전에 독립을 했습니다, 러시아로부터. 근데 1917년에 독립하자마자 우리로 치면 한국전쟁 같은 내전을 겪었어요. 좌우로 갈려서 총 들고 싸웠어요. 서로 죽였어요. 심각한 핀란드 내부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치유하고 지금 핀란드가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그 원인이 뭐냐면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가 크게 작용을 한 겁니다. 총 들고 싸우던 좌파, 우파, 그리고 중도파 이런 사람들이 선거를 하게 된 거죠. 내전이 끝나고 선거를 하게 됐는데, 비례대표제로 하니까 받은 표만큼 국회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좌파도 들어가고 우파도 들어가고 중도파도 들어갑니다. 받은 표를 가지고 국회 의석을 그대로 나눠 주는데 한 당이 50퍼센트를 받을 방법이 없어요. 그러면 서로 토론해 가면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그 심각한 내전이라는 내부 갈등을 치유해 나갔던 겁니다. 그러면서 핀란드가 지금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입니다.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예 지역구라는 걸 없애는 거예요. 네덜란드는 지역구 선거라는 게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일만 하라 이겁니다. 왜 국회의원이 지역 일까지 관여하냐 이거지요. 그래서 네덜란드는 다 비례대표입니다. 네덜란드 투표용지는 이렇게(왼쪽 사진) 생겼습니다. 제가 이 투표용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이걸 가지고 어떻게 투표를 하는 거냐. 알고 보니까 투표하는 방법이 너무 간단한 거예요. 우리나라보다 더 쉬워요. 어떻게 하냐면 제일 윗줄에 적혀 있는 게 네덜란드의 정당 이름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당을 찾으면 돼요. 세로줄로 적어 놓은 게 뭐냐, 이 당이 낸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명단을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 이름 옆에 볼펜으로 체크하면 투표 끝이에요. 내가 지지하는 당을 찾은 다음에, 그 당에서 그래도 내가 지지하는 당이면 좀 아는 사람이 있을 거 아녜요?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 체크, 한 명만 하면 되는 거예요.



개표는 어떻게 하냐면, 이 당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받은 표를 다 합치면 이 당의 지지율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그 지지율대로 국회 의석을 나눠 줍니다. 150명의 국회의원이 있거든요. 150명을 정확하게 받은 표대로 나눠 주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가 다당제가 됩니다. 다양한 정당이 국회 안에 들어가요. 네덜란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물을 위한 당도 국회에 들어가 있어요. 동물당! 올해에 네덜란드 총선이 있었는데, 의석이 5석으로 늘었어요. 대단하죠. 정말 다양한 정당들이 국회 안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뭘 보고 찍을까. 일단 그 당의 정책을 보고 찍는 거죠.


그리고 1등을 해 봐야 26퍼센트 받으니까 혼자선 아무것도 못해요. 어느 나라도 정당 중심으로 투표를 하면 한 정당이 50퍼센트 이상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1등 한 정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소수 정당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립정부라는 걸 구성해요. 안정적으로 정책을 펼치려면 다른 당들하고 공동 정부를 구성하는 거죠. 공동 정부를 구성할 때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협상하는 거죠. 그래서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가 된 겁니다. 좋은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고 서로 치열하게 협상을 합니다. 아무리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지만 이 당의 정책은 말도 안 돼, 그러면 같이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서로 말이 되는 토론을 해서 정책을 합의할 수밖에 없어요.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편이고,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도 높은 편이고 복지도 잘돼 있습니다.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예요. 노인 빈곤율이 1.6퍼센트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노인 빈곤율이 지금 대한민국은 44퍼센트가 넘었어요.


네덜란드는 받은 표대로 공정하게 의석을 나눠 가집니다. 그리고 정당만 찍는 게 아니라 사람 이름까지 체크를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순번이 있죠. 1~10 순번이 있습니다. 만약 이 당이 열 석을 받았으면 1번부터 10번까지 되는 거죠. 그런데 네덜란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10번보다 밑에 있는 사람이 체크를 많이 받았으면 순서가 바뀝니다. 정당이 순서를 정해서 내지만 밑에 있는 사람 표를 많이 받으면 이 사람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사람이 떨어져요. 그러니까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도 그 정당 지지자들이 정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정당이 공천을 엉터리로 하면 유권자들이 바꿀 수 있는 거죠. 네덜란드는 비례대표제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제대로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정치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거죠. 저는 앞으로 네덜란드식 선거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당장은 좀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면 한국은 승자독식의 선거에 너무 익숙해서 네덜란드식으로 곧장 가자고 하면 아마 유권자들이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비례대표제로 가려면 어떻게 할 거냐 관련해서 이야기되고 있는 게,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택하고 있는 방식이에요. 이 방식은 지역구 선거를 하긴 하는데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국 사람이 적응하기가 매우 쉬워요. 투표는 지금하고 똑같이 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회의원, 지방의원 대부분을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되는 걸로 뽑지만 일부 비례대표 의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 보면 지역구 후보자 한 표 찍고 정당 한 표 찍거든요.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53명은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되는 걸로 뽑고 47명은 비례대표라고 해서 따로 뽑습니다. 그리고 지방의원도 90퍼센트는 지역구에서 뽑고, 10퍼센트는 비례대표,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12, 지역구 후보 한 표, 정당 한 표 찍는데, 독일과 뉴질랜드도 그렇게 투표를 해요. 투표를 할 때는 지역구 한 표, 정당 한 표 찍습니다. 우리하고 투표하는 방법은 똑같아요. 다른 점이 뭐냐면, 계산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1등 한 사람 당선시키고 얼마 안 되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지지율대로 나눠 주는 방법인데요.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택한 방법은 그게 아닙니다.


지역구 투표를 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정당 투표입니다. 1단계로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만 가지고 계산하는 거예요. 가령 청포도당이 10퍼센트를 받았다, 그러면 300명 국회 의석의 10퍼센트는 무조건 주는 거예요. 그럼 30석을 받습니다. 그러면 청포도 당이 지역구에서도 후보를 냈을 거예요. 지역구에서 청포도당 20명이 1등을 했다고 하면 그 20명은 우선 국회의원이 되고 모자라는 10명은 비례대표로 채운다, 이게 독일식이에요. 만약 청포도당이 지역구에서 한 명도 안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러면 청포도당은 30명 전체를 다 비례대표로 채우는 겁니다. 또 만약 지역구에서 30명이 다 됐다, 그러면 청포도당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해 주지 않는 거예요.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인정해 주고 모자라는 건 비례대표로 채운다. 이게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하고 있는 방식이에요. 우리나라도 진보정당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라는 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냥 지금처럼 투표하면 됩니다. 선관위에서 의석을 배분할 때 계산 방법을 다르게 하면 되죠. 아주 간단한 겁니다. 이것만 하면 한국 정치가 비례대표제로 바뀌는 거예요. 지금처럼 승자독식의 정치가 안 되는 겁니다. 네덜란드나 덴마크에 더 좋은 선거제도도 있는데, 한국이 워낙 엉망이니까 일단은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하는 방식 정도로 가자, 투표는 똑같이 하되 표를 계산하는 방법만 바꾸면 한국 정치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아까 보신 비례대표제 나라들처럼 다당제가 되고 그리고 표의 등가성도 지켜지고 청년들이나 여성들, 소수자들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실제로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꾸니까 그런 변화가 일어난 나라가 있어요. 뉴질랜드가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뉴질랜드는 1993년에 소선거구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꿨어요. 독일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전까지는 뉴질랜드에는 비례대표제라는 게 없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냥 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되는, 영국식 선거제도를 도입했어요. 그런데 1993년에 바꿨습니다. 바꿨더니 한꺼번에 이런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원래 뉴질랜드는 노동당과 국민당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어요. 두 거대 정당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전형적인 양당제 국가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1980년대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노동당이란 정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해요. 그래서 노동당이 앞장서서 복지 축소, 민영화, 이런 걸 추진합니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했던 노동당이 배신한 거예요. 그 당시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들이 노동당에서 집단 탈당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왜냐면 뉴질랜드 정치는 두 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정치니까.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했던 겁니다. 뉴질랜드의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제도 개혁 운동에 올인을 했어요. 그래서 1993년에 바꿨습니다. 1999년에 선거를 했는데, 바뀐 선거제도에 의해 노동당이 1등을 해서 38퍼센트를 받았어요. 120명 중에 49석을 얻었어요. 그러나 그걸로는 아무것도 못하죠. 그러니까 밑에 있는 다른 정당보고 연립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을 해요. 노동당이 동맹당이라는 정당 보고 같이 하자고 제안합니다. 동맹당은 뉴질랜드에서 진보정당이었어요. 그 정당이 뭘 요구했냐. 이거(91쪽 사진 내용) 받으면 같이 할게, 싫으면 말고. 노동당이 1등을 했는데 정부 구성이 안 되니까 동맹당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녹색당까지 협력해서 뉴질랜드에서 진보적인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뉴질랜드가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 전에 말씀 드린 최저임금 인상, 고소득층 증세, 임대주택 개선 이런 것들이 다 정책으로 채택이 되는 거예요. 선거제도의 변화라는 게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뉴질랜드가 너무나 잘 보여 줬습니다. 외국에서는 뉴질랜드가 갑자기 바뀌니까 다 놀랐어요. 그걸 보고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선관위 공무원들도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 사례나 외국의 선거제도를 공부하다 보니까 이걸 한국에 도입하면 한국 정치도 획기적으로 바뀌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20152월에 중앙선관위가 개혁안을 발표합니다. 시민단체들이 낸 개혁안보다 더 좋은 개혁안이었어요.


2015년 가을에 국회에서 토론이 벌어져요. 토론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 당시 야당 대표였는데, 이걸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새누리당이 반대해서 안 됐어요. 사실 작년 촛불 때부터, 촛불의 결과물이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걸로 끝나서야 되겠느냐,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선거제도,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이 선거제도를 안 바꾸고 무슨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있겠냐 라고 생각해서 올 1월부터 선거법 개혁 운동을 시작했고요. 국회의원들 중에서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은 동의를 하더라고요. 거대 정당에 몸을 담고 있어도 선거제도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왜냐면 이분들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국회의원들 중에서 한 30퍼센트 가까이 이 제도를 지지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가 300명한테 다 질의서를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85명은 찬성한다고 답장을 보내셨더라구요. 나머지는 무응답입니다. 그러니까 300명 가운데 이 제도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있구나, 이걸 확인하게 된 거죠.


지금 딱 하나 걸림돌은 뭐냐, 선거제도를 개혁하려고 하다 보니까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뉴질랜드도 그랬는데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거 하나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논리적으로는. 그냥 기득권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하는 반발 말고는 없는데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건 국회 의석을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300명 가지고 이 제도를 도입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지금 253명을 지역구에서 뽑고 47명이 비례대표인데, 47명 가지고 독일이나 뉴질랜드처럼 하면 이게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시민단체들은 국회 의석 360명으로 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253명 지역구는 그대로 놔두더라도 100명 이상의 비례대표가 만들어지면 우리나라도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다, 독일이나 뉴질랜드처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세금으로 국회를 유지하고 있는데 똑같은 돈으로 300명보다는 360명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회 예산 가지고 360명 쓸 수 있냐,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이 14700만 원이거든요. 일단 연봉을 1억으로 줄이자 이겁니다. 물론 최저임금으로 낮추자는 분들도 있는데요(웃음). 14700의 의미가 뭐냐, 노동자 평균 연봉의 네 배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 연봉이 3300으로 나왔어요. 14700, 정확하게 네 배 가까이 돼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복지국가들, 덴마크, 스웨덴, 독일 이런 나라들 국회의원들 평균 연봉은요, 노동자 평균 연봉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에요. 조금 더 주는 이유는 노동 시간이 좀 길거든요. 국민들 노동 시간보다 국회의원 노동 시간이 두 배 정도 깁니다. 하루에 14시간씩 일해야 돼요. 3D 업종이에요. 국회의원이 돈도 많이 못 받는데 노동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 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일도 많이 안 하는 거 같은데 평균 연봉의 네 배를 받는 겁니다. 이거를 확 줄여야 되는 거죠. 1억 정도로만 줄인다고 가정을 하고요 지금 국회의원 개인 보좌진을 아홉 명 쓰고 있는데요, 독일 국회의원들은 우리 절반밖에 안 됩니다. 덴마크나 스웨덴 국회의원은 개인 보좌진이 없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진도 9명씩이나 둘 필요가 없지요. 좀 줄여도 됩니다.


국회에 보면 1년에 81억 원의 특수 활동비라는 예산이 있어요. 이거 다 현금으로 쓰는 거예요. 영수증도 안 내도 됩니다. 어디다 쓰는지 제가 좀 조사해 봤는데,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 원을 현금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야당 원내대표는 월 2000~2500만 원 정도 가져갈 수 있어요. 진보적인 정당은 원내교섭단체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가져간 적이 없어요. 국회 상임위원장이 되면 월 천만 원 정도 가져갑니다. 현금으로. 우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죠. 현금으로 가져가고 그 다음에 어디다 썼는지 보고할 의무가 없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원내대표 할 때 특수 활동비를 받았는데 쓰다 남아서 생활비로 보태 썼다고 자기 페이스북에 자백을 했어요. 근데 지난 정권에서 그게 무혐의 처분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우리 상식으로는 공금을 개인 용도로 쓰면 횡령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처벌이 안 돼요. 하여튼 이런 예산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연봉을 1억으로 줄이고 개인 보좌진 6명으로 줄이고 특수 활동비 없애면 지금 국회 예산으로 390명 써도 돼요. 그러면 국회의원 숫자 늘리더라도 선거제도 개혁하는 게 우리한테 훨씬 유리한 겁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요, 대통령 후보자들도 공약을 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정치 개혁 특위라는 게 만들어져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여기에서 합의가 안 됩니다. 6월에 만들어져서 몇 달 동안 하고 있는데 합의가 안 돼요. 밥그릇 싸움으로 보니까,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론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상당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금 여당인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 이게 당론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 소극적인 의원들이 여당 안에도 있습니다. 야당 중에서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은 당연히 찬성이죠. 그리고 지금 국민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아졌어요. 보수정당 중에 바른정당 일부 국회의원들도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국회 안에서도 정치권 안에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지지세가 넓어졌어요. 근데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반발하는 겁니다.


이게 올해 12월까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사실은 지방선거도 바꿔야 돼요. 그러면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비례민주주의 연대 포함해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여기에 집중해서 활동을 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있어요. 1111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행사를 할 예정이고요, 그다음엔 국회를 갈 예정이에요. 광화문 촛불이 아니라 여의도 촛불을 켜야 하는 시기다. 올해 말 아니면 늦어도 내년 초까지 되야 합니다. 왜냐면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고 지방선거 넘어가면 그다음 국회의원 선거 다가오니까 더 힘들어집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해서 정말 국회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거거든요. 이미 법안들도 발의가 돼 있습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해서 여의도를, 진짜 국회를 둘러싸서라도 이걸 통과시키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일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분들이 참여를 해 주셔야 됩니다. 다행스러운 게 노동운동 쪽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큰 조직이 두 개 있는데 지금 다 참여하고 있어요. 비정규 노동단체들도 다 참여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건 교육단체, 어린이·청소년 단체 다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이게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교육 문제도 인권 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에 좀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선거법이 정말 낙후된 선거법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일본 거를 많이 베껴 와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뭘 하려고 하면 다 금지돼 있습니다. 우리 집 앞, 대문 앞에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선거 기간에는 불법이에요. 우리 집 베란다에 내가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를 표시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인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뚫리면 나머지도 다 뚫릴 수 있어요. 어차피 다 밥그릇 문젠데, 결국에는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게 만들어야 돼요. 국회의원들 월급을 자기들이 정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까 연봉도 올라가고 그런 건데, 그것도 안 내려놓는 거죠. 맨날 선거 때마다 특권 내려놓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안 내려놓습니다. 그러니까 다 맞물려 있는 문제입니다. 결국에는 자기 밥그릇, 자기 기득권을 국회에서 내려놓게 만들면 선거제도 개혁, 필요한 것들 다 되고, 국회 개혁도 되고, 우리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에 가까운 그런 정치가 저는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시기가 있는데 올해 넘기면 더 어려워집니다. 왜냐면 국회의원 선거가 2020년이기 때문에요. 2020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선거 개혁은 어려워져요. 저는 이번 촛불은 반드시 시스템 개혁, 제도 개혁까지 꼭 이루어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잘 들어 줘서 감사합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는 2시부터 사전 행사를 시작하고, 4시 반에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사전 집회를 갖고, 6시부터 본행사입니다. 촛불 때처럼 할 겁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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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1. 15:27 알림 / 엮은이의 글

<작은책> 2017년 11월호가 나왔습니다.




<작은책> 11월호를 못 받았다고 전화 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네요. 죄송합니다. 추석 연휴가 길어서 마감이 늦어졌어요. 게다가 책은 나왔는데 발송업체에서 <작은책>보다 급하다며 다른 거래처 작업을 먼저 해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헌데 거기서 일하는 분들 업무 강도 생각하니 차마 독촉을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이래저래 다른 달보다 많이 늦어졌네요. 월요일에 발송했으니 이번 주에는 받으실 거예요. 다음 주 초까지도 못 받으시면 연락 주세요.

이달에도 재밌고 알찬 내용이 가득해요. 둘레에 계신 분들에게도 두루 알려 주시고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정기구독 문의_ 02-323-5391)


[11월호에 실린 이야기]

** 표지 그림 유순희, 삽화 최정규

* 곡성 농부 이재관의 그림일기

* 책이 이끄는 여행 /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 김용심

* 살아가는 이야기
1. 가을… 그리운 사람 - 이현숙

2. 독일에서 강아지 기르기 – 서울 여자 독일 아줌마 조숙현 Josephine Jo

3. 가을맛, 뿌리 – 돌모루댁 윤혜신의 살림살이

4. 오래된 미래 – 은종복의 책방 풀무질 이야기

5. 주말에 일할 권리를 주겠다 - 남김지영 김지영의 목수 이야기

* 이야기가 있는 사진 / 아낌없이 주는 나무 민중가수 박준 – 윤성광

* 살아온 이야기(5) / 나는 적당히 잘 지냈다 - 이하나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 키우지 말든가, 버리지를 말든가

* 교실 이야기 / 나를 닮은 종이비행기 - 박태찬

* 이야기가 있는 들녘 / 골치 아픈 집짓기 – 참참(김진회)

* 일터 탐방_삼성·엘지 스마트폰 부품 생산직/ 어느 날 갑자기 신호등이 안 보였다 - 정인열

* 일터에서 온 소식 / 판사도 인정했잖아! 사실혼 맞다고! - 김기선

* 작은책 법률 상담소 / 연인 간 금전 거래, 돌려받을 수 있을까? - 양성우

* 특집_ 하승수 지상강좌 / 몰랐어? 문제는 선거제도야

이동슈의 생활 만화

* 생각해 봅시다 / 베트남의 마지막 자장가 - 석미화

* 여성으로 살아가기 / 여자의 취미 - Seohwa Kim 김서화

* ‘그때 그 사건’ 다시 보기 / 노 파사란! - 김형민

* 생태 이야기 / 경로우대가 지하철 적자 원인이라니 - 박병상

* 책 읽고 딴 생각 / 세종은 우리말을 만들지 않았다 (김슬옹 저 한글혁명) - 안건모

* 독립영화 이야기 / 경계에서 국가의 효용을 묻다 - Mi-rye Ryu 류미례

* 우리 지역 깊은 역사 / 미군기지에 생겨난 문화들 - 문영일

* 와글와글 아이 글 / 울산호계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 작은 소설 / 펑 - 하명희

* 새로 나온 책 / 편집부

* 지난 호를 읽고 / 금홍섭 박영희 이태오 권영란 이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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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독일에서 강아지 기르기


조숙현/ 28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아줌마

 

 

11월이 되니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개 니키가 더욱더 생각납니다. 니키는 20013월에 태어나 2016년에 1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년 전, 어느 날 신문에 니키 입양 광고가 났어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독일인이었습니다. 당시 입양할 강아지를 찾던 우리 가족은 옳다구나 싶어 신문 광고를 보자마자 그 집으로 총 출동했답니다.


독일에서는 전문 브리더에게 강아지를 살 수도 있고,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보호소에서 입양을 하는 조건은 꽤 까다롭습니다. 보호소에 한 달 정도 가족들이 다 같이 가서 입양하고자 하는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식구가 될 수 있는지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호소 직원이 집에 찾아와 강아지를 기를 수 있는지 집 상태를 보기도 해요. 집에 정원이 없다면 대형견을 기르는 데 탈락 사유겠지요. 출근하고 나면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해 줄 사람이 없는 것도 강아지를 입양하는 데 탈락 사유라고 합니다. 아무튼 꽤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저희는 여러 보호소를 탐방하던 중이었습니다. 때마침 니키 입양 광고는 정말 저희에게 행운의 기회였습니다.


세 번째 방문하던 날 니키의 입양이 확정되어 니키는 우리 집 막둥이가 됐습니다. 독일에서 강아지를 기르려면 절차도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강아지는 세금도 내야 합니다. 훈데슈토이어(Hundesteuer)라고 하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요. 견종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 대형견, 맹견은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맹견은 따로 자격 검증(?) 같은 것을 받아야 키울 수 있어요. 저는 일반 믹스견을 키웠기에 맹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맹견은 지역에 따라 세금이 1000유로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니키는 일 년에 120유로의 세금을 냈습니다. 그리고 훈트패스(Hundpass)도 만들었어요. 외국에 데리고 다니려면 강아지도 여권이 있어야 합니다. 여권에는 니키 사진과 그동안 맞은 각종 예방 주사 기록이 들어 있어요. 특히 광견병 예방 주사는 의무입니다. 그리고 니키는 목 옆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했어요. 마이크로 칩은 니키를 잃어버렸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귀에 번호를 문신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 칩을 이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독일에서 기르는 강아지들은 목줄에 훈데마르케(Hundemarke)라고 부르는 쇠로 만든 동그란 번호표를 달고 다닙니다. 그 지역에 등록한 세금 번호이자 일련번호입니다. 많은 지역에서 목줄과 번호표는 의무입니다. 그래서 강아지를 잃어버릴 경우, 이 훈데마르케나 마이크로칩을 스캔해서 주인을 찾아 줍니다.


제가 사는 곳은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목줄과 리드 줄을 하지 않으면 40유로의 벌금을 냅니다. 경우에 따라 5만 유로까지 벌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목줄에 세금 번호표가 없어도 벌금을 내고, 배변을 치우지 않고 가도 벌금을 내야 합니다. 강아지를 기르려면 나와 주변인을 위해서 그만큼 의무도 다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독일은 동물 보호법도 강력해요. 동물 보호법 제17조 제13항을 보면 제대로 먹이지 않고 돌보지 않은 경우 징역 3년에 벌금 내야 하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됩니다. 고의로 강아지를 해하려고 하면 25천 유로의 벌금을 물리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합니다. 유기해도 마찬가지로 25천 유로의 벌금형입니다. 강아지를 훔치거나 사기로 팔거나 해도 징역형입니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키웠던 사람으로서 동물 보호법 제17조는 정말 대찬성입니다. 더 강력해져도 좋을 법입니다.



강아지를 기르는 많은 사람들이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저는 책임 보험을 들었습니다. 강아지가 남의 집 물건을 망가뜨렸거나 남에 집 개를 물었을 경우 등 강아지로 인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 주는 보험이죠. 니키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적용한 적 없는 보험입니다. 다행히도 니키는 정말 얌전한 강아지였습니다. 그리고 강아지 의료 보험도 있습니다. 의료 보험에 들면 응급실, 입원, 수술, 예방 주사. 약값이 처리됩니다. 견종의 나이와 체중에 따라 보험료 책정이 달라져요. 보통 한 달에 20~30유로 정도 하고 치료비가 3000유로 이상 나오면 자가 부담 비용이 30~40유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설마 니키가 뭐 그리 아프겠나 싶어서 안 들었는데,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니키는 새끼를 한 번 낳게 한 후에 중성화 수술을 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해서 했는데도 유선 종양이 생겨 한쪽 유선을 다 없애는 수술을 했는데, 나중에 다른 쪽도 문제가 생겨 또 수술했습니다. 벌레에 물린 후에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괴사한 일이 있어서 수술. 털이 긴 장모종인데 겨울이라 털을 깎아 주지 않아서 상처를 좀 늦게 봤어요. 다리를 다쳐서 엑스레이도 찍고 CT도 찍고, 16년을 길렀으니 별일이 다 있었겠지요. 아무튼 우리는 농담 삼아 너한테 소형 자동차 한 대 값이 들어갔다!”라곤 했습니다. 지금은 지인들이 강아지를 기르겠다고 하면 의료 보험 꼭 들라고 말해 줍니다.


독일에서 강아지를 기르는 일은 많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한 생명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니까요. 본인이 선택해서 데려온 생명이니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책임을 져 주는 게 견주의 도리입니다.


니키의 마지막은 참 힘들었습니다. 치매가 생겨 집도 잘 못 찾고, 배변도 아무데나 하고, 마지막 몇 주는 하반신에 마비가 와서 걷는 것도 불편해졌어요. 매일 아침 수의사가 첫 환견으로 니키를 돌봐 주었습니다. 니키가 더 이상 아픔이 없는 세상으로 떠난 날, 화장을 해서 분골구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도 니키는 자신이 좋아하던 테이블 위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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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7월호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이발소 잔혹사


안재성/ 소설가, 경성트로이카저자



 

 

20년 전 이곳 이천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아직 젊어 염색을 안 하니 미장원 가서 커트만 하는 게 보통이었다. 염색이 필수가 되면서 염색비 싼 이발소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맨 처음 단골로 삼은 곳은 옆 동네인 우물실 마을의 작은 이발소였다.


겨우 60가구밖에 살지 않는 우물실 마을에서 혼자 이발소를 하던 아저씨는 성격 조용하고 정감 넘치는 토박이 이천 사람이었다. 논농사를 겸하고 있어 농번기면 밤에만 이발소를 열었는데, 그 집으로 포클레인 일을 가는 날이면 저녁까지 얻어먹고 머리를 깎곤 했다.


몇 년을 단골로 다니던 우물실 이발소가 문을 닫은 것은 아저씨가 노환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설성면 면소재지의 또 다른 토박이 아저씨가 하는 이발소 단골이 되었다. 아무래도 면소재지라 손님이 제법 있다 보니 그곳에 가면 경기 남부 사람들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 비슷하니 느리고 억양 없는, 편안한 대화들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다시 이발소를 옮길 때가 된 것은 역시 그 아저씨마저 노환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자꾸 아저씨라고 말하다 보니 좀 그렇다. 내가 나이가 먹다 보니 아저씨라 호칭하는 것뿐, 젊은이들에게는 곧 돌아가실 할아버지들이다.


설성면 소재지에는 이발소가 두 개였다.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하나 남은 이발소는 경상도 출신의 오십대 노총각이 혼자 운영하고 있었는데 손님이라곤 거의 없었다. 쓰레기통 수준으로 더럽고 어질러진 데다 이발사 차림부터가 노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할 수 없이 십여 킬로 떨어진 장호원 읍내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피시방 옆 컴컴하고 작은 공간에서, 이번에는 진짜 할아버지라 불러도 좋을 노인 혼자 일하는 이발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은 반년도 드나들지 못했다. 그 양반 역시 요양원에 갔는지 사망했는지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날이 미장원만 번창하니 한 번 문을 닫은 이발소는 후계자가 없이 그대로 업종 변경이다. 그런데 때마침 장호원 읍내에 새로 차린 이발소가 있기에 가 보니 내 또래 남자가 중국 동포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주인 부부는 솜씨가 좋은 데다 붙임성과 입담이 좋아서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손님과 친구가 되었다. 부인이 중국 동포이다 보니 근방 농촌과 공장에 일하러 온 중국 동포들이 모두 몰려와 한가할 틈이 없이 바쁘고 시끄러운 곳이 되었다. 주말이면 순서를 맡아 두고 밥을 먹고 와서도 한 시간씩 기다리는 게 예사였다.


나로서는 불만도 없지 않았다. 중국동포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중국이 지하철이며 기차가 한국보다 훨씬 좋다던가, 중국 신도시는 한국보다 훨씬 크다던가 하는 이야기까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니 할 말 없었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 공격하지 못하게 사드를 왜 들이냐 말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중국인들이었다. 북한의 핵 생산을 걱정한다던가, 사드 설치해 봐야 아무 효과 없다고 걱정하면 모를까, 한 줌도 안 되는 약소민족께서 웬 대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지?


자기 존재의 기준이 중국인이란 점은 미세먼지 문제에서도 나온다. 중국 쪽에서 바람이 오지 않는 날이면 한국 하늘이 예전처럼 새파란 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중국의 미세먼지보다 한국의 발전소 먼지가 더 문제라고, 중국에게 책임 전가하지 말고 한국이나 잘하라는 식으로 떠드는데 은근 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권들이야 미국을 미워하다 보니 사건마다 중국 편을 든다지만, 조선일보구독자에 이명박, 박근혜 광팬들에게 그네들의 모순은 해석 불가였다.


간간이 이런 일이 되풀이되니 유전자만 동포일 뿐 법적으로도 심정으로도, 경제적으로까지 중국인인 그네들이 싫어서 다른 곳에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갈 만한 이발소가 없어 견디던 내게 새로운 단골이 생긴 것은 작년 겨울 촛불시위 때였다.


염색만 하는 날이라 장호원까지 가기 싫어 면소재지의 총각 이발소에 꾹 참고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거기서 박근혜 탄핵등등의 포스터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발사는 자기가 며칠째 일찍 문 닫고 광화문에 시위하러 다니는 중이라며 박근혜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 것이었다. 더 물을 필요도 없이 단골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총각 이발소에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간판인데 실내가 너무나 훤했다. 꼭 필요한 집기 외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데다, 낯선 중년 부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하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총각 이발사는 가게 팔고 집에 들어앉아 맨날 술만 마신단다. 새 주인 부부는 이발 솜씨도 좋고 친절하기도 했다. 촛불동지의 몰락이 안 됐지만 기분은 썩 좋았다. 이제 먼 장호원까지 갈 일은 없어졌다. 이발사 나이도 나보다는 젊어 보이니 더 이상 이발사가 바뀌는 잔혹사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손님이 바뀌겠지.


세월이 데려가는 것은 이발사만이 아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아버지가 꼭 네 달을 채우고 돌아가셨다. 지난주 일이다. 사지마비 상태로 눈만 뜬 상태에서 더 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다행이요, 호상이라고 다들 위로해 주었지만 겪어 보니 세상에 호상이란 건 없더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병실에 들어가면 돌아 나올 때까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뭔가 말을 하려고 우물거리던 그 간절한 표정이,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해져 혼자 있는 시간이면 자꾸만 눈물이 돈다. 설사 백수를 채우고 편안히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해 준 부모님의 죽음은 슬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왜 삼년상을 치렀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또 한편, 한쪽에서는 가고 한쪽에서는 오는 게 인생인가 보다. 장례 치르고 사흘째 되던 날, 큰딸이 무사히 첫 아이를 낳았다. 유리창 너머로 입을 오물거리며 하품하는 갓난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손자가 퇴원해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는 날인데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막판에 심한 기관지염을 앓았는데, 반가워하는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어 마스크를 하지 않은 탓이다. 벌써 이 주일 넘게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이놈의 기침이 갓난아이에게 옮을까 봐 병원에 가질 못했다. 정말 안아 보고 싶었는데. 이래서 내리사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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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0월호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전두환보다는 나중에 죽고 싶다


 

안재성소설가경성 트로이카》 저자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젊은 시절부터 그랬다친구들과 멀리 놀러 갔다 와서 사진을 보면 즐거운 추억보다는 걸어 다닐 때의 전신의 고통혼자만 비 맞은 듯 쏟는 진땀목숨을 건 졸음운전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수년 전부터는 견딜 수가 없어 동네 앞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노인들도 나를 휙휙 지나쳐 올라간다그나마 절반만 오르다 포기하고 내려오는 때가 대부분이다.


남의 몸 아픈 이야기 듣기 좋아할 사람도 없고가족들에게는 걱정 끼칠까 봐 입을 다물고 겉보기에 정상인처럼 살려 애썼지만몸 여기저기 끊임없는 통증이며 두통 때문에 술 한 잔 못하고 억지로 앉아 있는 게 싫어서 취재 이외의 만남은 회피하며 살아온 햇수가 이제는 헤아릴 수도 없다지인들의 부모형제 장례식에나 갈까즐거운 행사나 친목 술자리는 일체 응하지 않으니 친구들이 노는 자리에 나를 부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치료를 위해 애를 안 쓴 것이 아니다사십이 넘어서며 신경통이 급속히 심해지면서 다닌 병원이며 한방민간요법에 대해 책을 한 권 써도 될 정도다하지만 특정 진단명이 나오질 않았다생활에 전혀 지장 없는 미미한 당뇨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높은 간 수치가 전부요나머지 기능은 튼튼하기만 하단다여기저기 바늘을 꼽고 사는 듯한 근육통만이 문제였다.


그래도 잘 버텨 오던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서너 달 전부터였다좀처럼 몸살이 낫지 않는다 싶더니 온몸의 근육이 심한 운동을 한 뒤처럼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 방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온몸을 비틀며 신음을 터뜨리게 되었다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는 데다 조금만 움직이면 심장과 폐가 조여와 지하철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그런데도 의사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동네 병원부터 서울 백병원까지 가 봤지만 처음 보는 병이라며 다른 과에 가 보라고 미루기만 했다예약이니 검사니 뭐니 해서 시간만 자꾸 흐르는 사이이젠 진짜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무라이 흉내였다사무라이들이 칼싸움으로 죽을 때를 대비해 악취가 나지 않도록 아침엔 김밥만 먹었다던 믿거나 말거나 전설처럼잠자다 죽을 것에 대비해 매일 밤 깔끔히 청소하고 쓰레기통 비우고 속옷까지 새 걸로 갈아입었다소원이 있다면 아침에 깨지 않는 것뿐이었다.


결론은살아났다가정의학과 의사이자 노동당 부대표이기도 한 임석영 씨가 병명을 찾아내 바로 응급실로 보내 치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난치병이긴 하지만 불치병은 아닌아주 오래된 다발성 근육염이었다그에게는 간단한 진단이었을지 몰라도여러 달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죽어 가던 내게는 임석영 씨가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위독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중 이렇게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경우는 처음이라는 주치의의 찬사까지 들으며 15일 만에 퇴원한 내 몸은 15킬로그램이나 빠져서 마치 늙은 청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얼굴 주름만 늘었을 뿐 탱탱하던 배가 쏙 들어가 삼십대 청년이 되었으니 말이다의사 왈, 15킬로그램은 근육이 아니라 염증이 빠져나간 거란다.


회복력이 대단하다는 말에 떠오른 것은 내가 본래는 아주 건강한 체질이었다는 사실이다고등학교 체력장 때 1천 미터 달리기는 1, 2등이었고 씨름턱걸이팔씨름 같은 것도 반에서 수위였다오늘날까지도 위장병이니 폐렴이니 장염 같은 속병은 아예 앓아 본 적이 없다진맥 본 한의사들마다 기가 엄청 센 체질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외가에서 양젖을 먹고 커서 서양인처럼 튼튼하다고 자랑하던 몸이 조금만 육체노동을 해도 남들보다 몇 배 빨리 지쳐 버리고 땀범벅이 되어 기진해 버리는 현상이 시작된 것은 확실히 만 스무살 되던 1980년 광주 항쟁 이후다.


겨우 5일이었다시간만으로 치면 3박 4일 정도를 24시간 내내 잠 못 자고 매를 맞았다당시 만 명도 넘는 이들이 한두 달씩 보안대에서 고생했다지만 대개 한 방에 수십 명이 수용되어 차례로 돌아가며 매를 맞았기 때문에 실제로 맞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들었다그런데 나는 광주 항쟁이 끝난 후에 시위를 선동하다가 수배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다들 구속되거나 훈방되었을 때 혼자 보안대에 끌려가게 되었고그야말로 한시도 쉴 틈 없이 헌병과 보안대원들의 몽둥이주먹군홧발에 짓이겨져야 했다참 재수도 없지.


교통사고 한 번 당한 후유증도 평생을 간다는데깡패들이 누굴 집단 구타 한들 한 시간을 넘지 못할 텐데며칠 내내 발바닥부터 머리통까지 몽둥이와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니 아래위 할 것 없이 옷에 피가 엉겨 붙어 떨어지질 않고식당에 데려갈 때는 헌병들이 들어 안아서 옮겨야 했다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다 못해 귀에서도 피가 나더니 청력을 상실해 난청이 되었지만 그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욕을 이기게 한 것은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 달라고 빌거나 울지 않고 이 불의를 꼭 복수하리라고 수도 없이 다짐한 증오심이었다빌지도 않고 비명도 안 질러 더 지독스럽게 맞았는지 모르지만지금까지도 나를 지켜 온 힘일 것이다그 며칠을 잘 버텨 주었기 때문에 그해 5월이 내게는 정신적 후유증이 아닌 긍지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 5월을 기점으로 내 몸이 망가진 것은 확실하다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온몸의 근육과 신경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고 살게 된 것은 틀림없다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해도생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보잘것없는 글재주에 비해 책도 실컷 썼고모험과 여행도 충분히 했고좋은 벗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도 넘치게 누렸으니 삶의 여한은 없다다만 전두환보다는 나중에 죽고 싶다. ‘전두환 찢어 죽이라는 구호를 지키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오늘 퇴원해 읍내 이발소에 가던 길에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바람에 무릎이 까졌다다리뿐 아니라 팔에도 힘이 없어 일어나지를 못하고 버둥대고 있으니 가게 앞에 모여 웃고 떠들던 노인들이 놀라서 일으켜 준다한동안은 어디 나다니지 말고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나 맞을 생각에 머리칼을 바짝 깎고 거울을 보니 눈만 퀭하니 낯선 사람을 대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날 것이다오히려 그 지독했던 근육통에서 벗어나 날씬한 몸으로 건강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지루한 병실에서 올가을 단풍으로 물든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다는 꿈으로 시간을 보냈다북핵 관련 뉴스 좀 안 나오는 깊고 아름다운 산천을 걷고 싶었다저항의 돌멩이와 화염병이 있었기에타오르는 촛불이 있었기에 멋진 나라내 사랑하는 남도 땅을 마음껏 천천히 주유하고 싶었다북한 땅도 외세나 압박이 아닌우리나라와 같은 민중의 항쟁을 거쳐 스스로 아름다운 땅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가을의 사찰 기행매년 꿈꾸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일이다올해는 꼭 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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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1. 15:34 기획 특집

<작은책> 201710월호

 

특집 _ 채효정 지상강좌


저항에서 투항으로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안녕하세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해고된 강사이자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채효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시민운동의 변천사와 지금 현재 부딪쳐 있는 장벽, 어려움, 그런 것들을 같은 지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도 마을에서 공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실 것이다, 거기 맞춰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지금 새날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제가 판단하는 정세는 그렇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회 전반적, 국제 정치적인 질서에서 마찬가지로 보수 우경화 친좌파 형태의 후퇴, 근대 사회와 근대적 기회가 만들어 냈던 인간성, 자유주의 그런 정도도 지켜 내지 못하는 정도로 여러 공동체에서도 붕괴되고 해체되어 가고 있는 징후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에서 누가 됐죠, 트럼프. 프랑스는 마크롱. 실제 자본가를 대표하는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으로 대통령이 됐어요. 영국의 브렉시트라든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언제요? 작년 촛불,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이건 뭐지. 이 반도에서 다시 물꼬가 터질 건가? 변방에서부터 물꼬가 터지듯이 다시 한 번. 그렇지, 이 극동이라고 불렸던 여기가 그런 곳이 될 것인가. 우리한테 불씨가 안 죽고 남아 있었던 것인가 촛불이 시작될 때 그렇게 느꼈어요.

 

 사회적으로 촛불을 규정하고 정리하는 경향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다들 이 대사건 앞에서 엄청 흥분하고 엄청 도취되어서, 사회학자, 정치학자, 문인들, 시민사회 명망가들이 모두 이 현상을 두고 새로운 시민정신이 나타났다”, “촛불 혁명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고취·고양되고 촛불에 대한 해석도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시민의 승리라는 도식으로 되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들뜬 분위기가 가면 갈수록 더 서늘해지는 거예요.

 

 대통령 탄핵하고 권좌에서 끌어낸 것은 대단한 사건이긴 하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탄핵은 정말로 촛불의 승리였는가. 탄핵은 됐지만, 그 판결 내용은 정말 보수적이었어요. 대통령 탄핵 사유 중에서 헌재가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대통령이 기업의 영업 행위를 방해했다는 것이었죠. 철저히 재벌 편에서 대통령을 자격이 없다고 직무 정지시킨 거예요.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하에서 눈치 보면서 반노동적·반민주적 판결을 해 왔던 사람들, 이를테면 통진당 해산 판결의 주역이었던 이정미 대법관이 갑자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법조인이 되고, 그런 법조인들이 아침 방송에 나와서 세련되고 온화한 말투로 대통령 박근혜의 위법 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주니까, 그들이 혁명의 조력자가 되고.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거대한 상징이 만들어지고, 시민혁명의 주인공이 되고, 우리도 그 주인공의 한 명인 양 도취되어 가면서, 마치 역사가 영화가 되고 다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거 같았죠. 사실 촛불은 처음에 시작될 때가 제일 흥분되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시민이 없다고, 시민운동 다 죽었다고 그랬잖아요. 이 촛불 시민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전에 우리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뭐였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건가. 이렇게 많았는데 그동안 시민운동은 왜 주체를 못 찾았어?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그 디딤돌을 딛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건데, 우리는 그냥 100만 명에 놀랐어요. 촛불 시민, 백만의 힘.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밖에 없고, 새로운 주체다 새로운 시위 문화다 하면서 피상적인 이야기밖에 없고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백만 명을 모을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해서 이런 백만 명이 나와서 그런 일들을 함께했고, 그런데 그 전까지는 왜 없었고, 보이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이제 하나하나 규명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 그런데 그 백만 명이 지금 어딨어요? 그 백만 명의 시민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었다면 촛불 이후에 시민운동의 제2의 전성기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중에 만 명이라도 단체 회원이 되었나요? 노동조합의 조합원 가입자는 늘어났나요? 정당에는 당원들이 모여들고 있나요? 학생회는 다시 조직되고 있나요? 아니면 기층에서 뭔가 작은 운동들의 흐름이 포착되고 있나요? 아니라는 거죠. 아까 저기 활동 오래 하신 분께 물어보니 도리어 기존 회원도 빠져나가고 있다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위기와 좌초라는 진단을 가지고 함께 고민을 나눠 보려고 해요. 지금의 시민운동의 좌초 혹은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살펴보려고 해요.

 

 저는 세 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 노동 없는 시민운동.


 

시민 없는 시민운동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뭐냐. 어떻게 이해하세요? 그동안 우리가 말해 왔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쉽게 말해서 회원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였어요. 대표하고 활동가만의 조직. 시민이 없으니까 활동가가 운동하고 대표가 운동을 하는 거죠.


 그것도 문제는 문제인데 저는 촛불을 경험하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장을 해석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백만 명이 모였을 때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한, 정치적 존재로서의 시민이었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오예요. 왜냐면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건 항상 집합적 주체거든요, 개인이 아니라. 그런데 촛불 시민은 개인-시민, 모래알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었던 거였어요. 그게 아무리 백만 사람이라고 해도, 그러면 힘이 없죠


 그러니까 촛불이 끝나자마자 다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졌던 거예요. 야구장의 군중과 정치 집회의 시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화에 있어요. 정치 세력화라고도 할 수 있고요. 정치적 세력으로서 조직화를 못하면 힘이 없어요. 개인은 협상력이 없어요.


 이렇게 정권을 바꿔 낸 것은 뭉쳐서 협상한 거잖아요. 협상 단위는 없었지만 어쨌든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죠. 다음 단계로 조직화를 해냈어야 되는데, 무수히 많은 정당 가입원이 생겼어야 했고, 단체들이 막 또 생겼어야 했어요.


 1987년하고 2017년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해요. 1987년과 2017년을 되게 비슷하게 대입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혀 달라요. 1987년 끝나고 나서 뭐가 생겼어요. 전노협, 전대협, 전농, 전교조가 생겼고 그다음 오늘 같은 이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운동의 산물들로 생겨났단 말이에요. 그런데 촛불은 그게 없어요. 오히려 조직을 해체해 버렸어요. 촛불 과정에서도 조직이나 단체는 계속 거부되는 그런 모습이 보였죠. ‘조직은 곧 지도부’, ‘낡은 방식’. 이상하게 이런 도식이 나타나서 우리 뭉치자가 아니라 뭉치지 말자가 광장의 정신인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나는 내가 대표한다그렇게. 촛불이 하나의 조직으로 대표되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요, 다양한 정치적 흐름들을 세력으로서 결집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야 제도 권력과의 협상력이란 게 생기거든요. 그런데 시민 권력을 못 만들어 내요. 만약 제도권과 다른 운동으로서의 정치 전체 흐름과 물결과 힘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이후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예요. 제가 주장했던 거는 이중 권력 체제가 필요하다는 거였거든요. 제도 정치로 몰빵하지 말고 견인하고 강제하고 협상할 수 있는 제도권 밖에 어떤 시민 의회 같은 시민 권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건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촛불 광장은 제도화한 시민운동의 질서조차도 허물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그 정치적 상상력이 막혀서 못 나가더라고요. 참 아깝지요.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운동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이야기를 해 볼까요.

 운동은 자기 역사를 갖잖아요. 아주 조용하게 몇 명이 시작해서 조금씩 키워 나가고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가 그러면서 발자국을 남겨 나가요. <작은책>도 그렇고, 지금 강의하고 있는 <사람과 공감>도 그렇고, 문 닫았지만(웃음) <학벌없는사회>도 그렇고, 10, 20년의 자기 역사를 가지는 게 운동이거든요. 지금 시민운동은 그런 게 없이 일회성 사업에 매몰돼 있어요. 사업 끝나고 사업과 사업 사이에 자기 발전의 경로를 가지느냐, 그게 아닌 거예요. 시민운동을 해야 할 단체들이 운동은 못하고 사업만 하고 있잖아요.


 대학도 마찬가지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무슨 사업? ‘교육 사업을 하고, ‘연구 사업을 하지요. 한국연구재단 지원 공모사업에 연구 신청서 내고 교육 사업 계획서 내고 해서 지원금 따내는 게 목표가 되어 버렸어요. 연구와 교육이 지원금을 따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지금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금 이런 우리 운동 방식이 과연 맞는 운동 방식이냐, 이게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봐야 해요. 사업의 정신이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공모 사업! 공모 사업이라는 덫에 빠져서 운동 단체들이 심각할 정도로 자생력과 자율성이 훼손당해 왔어요. 이런 방식의 시민단체 지원 사업이 언제부터 시작된 거냐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예요. 시민사회를 지원하고 활성화하겠다는 목표였죠. 엄청나게 많은 지원금이 흘러 들어와요. 문제는 이 돈을 물고 나면, 이제 정면 비판을 못하는 거예요. 게다가 공모 사업에선 누가 갑입니까? 발주처인 정부, 지자체, 기업이 갑이고 시민운동 단체들이 을이에요. 여기에 맞게끔 운동이 조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누가 주도권을 가져요? 국가와 자본이.


 우리 마을에서 마을책 만들기 하고 있거든요. 준비 모임을 하는데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 온 것에 익숙해져서 모임 할 때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꼭 예산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보를 들고 와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면 거기에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애초에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것들은 못하게 돼요. 우리가 운동가, 활동가가 아니고 뭐가 되냐면, 서류 작업하는 공무원 에이전트가 되는 거예요.


 시골의 마을 만들기도 실은 지자체에서 나서서 해야 하죠. 마을을 살려야 하니까요. 살던 사람은 떠나고,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그러면 농촌 마을이 왜 이렇게 황폐해졌는가, 왜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가를 알아보고 그걸 가지고 그 원인에 맞게끔 정책을 수립하고 마을을 재건해야 되는데 그걸 다 외부 기관에 정책 용역을 주거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온 동네가 마을, , 단위로 공모해서 사업 따오게 만들어요. 그럼 그때부터 농촌 공동체가 망가지는 거예요. 자급, 자치, 자립이 생명인데, 돈이 들어오면 다툼이 생기고 돈 쓰는 것 갖고 말 나고, 지원 사업 잘하는 마을하고 역량이 안 되는 옆 마을하고 비교하고, 잘 나가는 마을은 계속 잘 나가고, 못하는 마을은 계속 못하고 격차가 벌어지고 그래요. 우리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시길, 그런 돈 500만 원만 들어와도 동네가 망가진다고 하시던데요. 어떠세요? 그 마을하고, 우리 마을하고, 또 내가 일하는 단체하고,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대학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할 때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도 하다 보면 활동이 주()가 아니라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게 일이 돼요. 기획서에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나죠. 나중에는 사고방식이 그렇게 돼요. , 이건 보고서 어떻게 들어가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보고서에 넣을 사진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첫해에 7천만 원 받았고 두 번째 해에는 전년도에 잘해서 9천만 원. 제가 학벌없는사회 사무국장을 할 때도 그런 단위의 사업비를 만져 본 적이 없는데(웃음) 제 머리로 도저히 돈을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돈을 쓰려니까 일이 엄청나게 많아져요. 증빙이 다 활동 경비니까. 죽어나는 거죠. 그러다 3년 차에 지원에서 떨어졌어요.

지원 사업 떨어지니까 학벌없는사회와 공동 기획자로 참가했던 경희대는 한 푼도 지원 안 해주겠다는 거예요. 인문 사회 한국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칭송하고 학교 홍보물에도 싣고 하다가 지원 사업 안 되니까 완전 찬밥이 됐어요. 저도 갑자기 연구원에서 빵 원짜리가 됐어요. 7, 9천만 원짜리 따 오는 연구원이었던 제가 빵 원짜리가 된 거예요.


 그럼 어떡하죠? 그런 방식으로는 이제 못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에 대한 다른 상상력이 그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강좌 중심이 아닌 거리의 청소년과 만남 중심의 학교 밖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이었고, 그게 떡볶이 학교였어요. 예산 얼마였게요? 딱 오백만 원. 그런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건 더 자유롭게 많이 했어요. 전에는 평가 때문에 항상 청중이 일정 규모가 있어야 하고, 그게 가능한 안정적인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이제 그런 부담이 없어지니까 , 되든 안 되든 밑져야 본전이지! 한 명 오면 뭐 적지만, 열 명 오면 기쁘고, 까짓 아무도 안 오면 우리끼리 나눠 먹으면 되지하고 떡볶이 학교를 은평 물빛공원에서 했어요. 그때 되게 재미있게 잘했어요. 평가라는 제한과 관료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이 없어지니까. 공모 사업 서류 작업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사람 버려요. 운동가 체질이 아니라 행정가 체질로 바뀌어 버려요. 우리의 시민운동도 지금 스스로의 운동성을 거세해 나간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사람이잖아요. 같이할 수 있는 사람. 운동은 주체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이게 아까 얘기했던 조직화이기도 하고 세력화이기도 한데요, 근데 그 힘이 어떻게 생겨요? 사업하고 회비 내고 그런 데서 생기지 않거든요. 같이 일을 하면 생기는 거예요. 산전수전 같이 겪으면서 동지가 되고, 둥지가 되고, 서로 삶을 지켜 주고, 운동의 의지를 지켜 나가는. 거기서 힘이 생기는 건데, 공모 사업은 그게 아니잖아요? 사업을 해야 되니까 돈이 중심이 돼요. 이 공모사업이 중심이 되니까 부작용이 뭐냐면, 원래 시민운동에서 회원 조직화 운동이 제일 중요한데 이게 부차적으로 되어 버렸어요. 사업할 수 있는 멤버가 중심이 되고요. 회원들은 시민의식, 시민 참여를 마치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상품 소비와 같은 심성이 생겨나요. ?

 나 회비 내고 있어. 그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걸로 자족감과 만족감을 느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회비 내는 거는 가장 기초적인 회원의 의무이자 권리죠. 그보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장이 되고 각자가 각자의 수준에서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데, 회원들이 단체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대상화. 더 나쁜 말로 하면 호구가 되기도 해요. 공모사업 해서 우리 단체는 이런 거 했어요. 그래 놓고 상 받았어요, 신문에 났어요, 메일 보내 주면 회원들이 만족감을 느껴요.


 근데 상품이란 건 그렇잖아요. 효용이 떨어지면 만족도가 떨어지고, 취향이 바뀌면 새로운 상품으로 바꾸잖아요. 맘에 안 들면 단체 후원 끊고 맘에 끌리는 다른 모임으로 갈아타고. 그건 아니잖아요. 실패도 성취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 함께 성장해 가는 관계. 그게 단체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요즘 시민 활동가들의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이야기를 보면 활동가는 죽도록 소진되고, 회원들과 단체의 관계는 계좌 이체 통장에서만 확인될 뿐이고. 사업비 타면 그 사업비로 인건비 책정하고 사업 탈락하면 활동가도 함께 아웃되는 방식, 사업이 되면 되는 대로 안으로 활동가는 죽어나고, 운동성은 계속 사라지는 방식. 이제 이 방식으로는 정말 안 됩니다. 그 핵심에 공모 사업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발주처 갑질에 계속 끌려다니지 말고 그 갑이 착한 갑이라도이걸 어떻게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정말 좀 터놓고 얘길 해봐야 해요.



노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로 노동 없는 시민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1987년 운동도 그렇고 이번 촛불도 마찬가지예요. 투쟁의 불씨는 현장에서 지속적 투쟁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냈지, 진보 엘리트들의 성과가 아니거든요. 시민단체 명망가들도 아니고 생존권 투쟁을 해 온 사람들이에요. 이 체제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살 수가 없어서 사장한테 반말 듣고 임금 체불당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각자 자기 사업장 안에서 자기 학교에서 부당 해고 당하면서 투쟁해 왔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싸워 왔기 때문에 그게 역사의 분기점에서 확 점화되면서 1987년도 생겨났고 2017년 촛불도 생겨났던 거거든요. 그런데 외곽, 외연이었던 시민, 시민운동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었어요. 노동자들은 희생자, 피해자, 소수, 약자로 주변화되었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운동, 시민운동은 화이트칼라 운동이었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현장 운동을 엄호하고 지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위상을 가졌거든요. 항상 꿀렸어요. 어떤 사람들한테? 노동계급한테요. 빨간 조끼 입고 작업복 입은 사람들한테 와이셔츠 입은 사람들이 꿀려요. 왜 꿀리냐, 괜히 꿀려요. (청중 웃음) 계급적으로도 꿀리고, 확실한 노동계급이 아닌 자기가 훨씬 더 지배계급과 더 결탁돼 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지금은 그걸 자기 한계가 아니라 자기 자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변호사, 내가 교수인 것이 노동자계급을 훨씬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고 훨씬 더 유리한 지위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나서지는 못해도 양심 있는 교수다, 의사다, 변호사다, 잘 나간다 하면 그냥 뒤에서 돈 대 주고, 옆에서 박수쳐 주는 사람들이었던 중산층 전문직들이 이제 지도를 하기 시작해요. 상황이 완전히 전도돼서 전체 운동 사회, 변혁 운동의 지도 세력이 이 집단이 된 거예요. 엘리트 집단, 교수, 변호사 이런 사람들이 시민의 대표 지위를 갖게 된 거예요. 여기서 질문.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의사 있습니까? (청중 웃음, 그 자리에 의사가 있었다 - 편집자 주) 변호사 있습니까? 대학 교수는요? 대체 언제부터 그 직업군이 전체 일반 시민들을 대표하는 직업군이 됐는지 물어봐야 되는데 이것도 거버넌스나 공모사업하고 연결되어 있죠.


 단체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모객 행위에 도움이 되는 순간에 명망가가 중요해져요. 활동가가 아니라 유명한 한 사람이 텔레비전, 신문에 한 번 나와서 단체 이름 알려 주는 게 실제 현장 활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고, 그런 영향력이 커질수록 단체 안에서도 그 사람의 권력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민사회 안에서 계급 양극화가 일어나죠. 시민운동을 자기 자본화할 수 있는 활동가와 노동으로 소진되는 활동가로.

이런 과정에 사회 전체의 계급론적인 변화도 있지요. 예전에는 계급 구도가 단순하잖아요. 마르크스 책을 봐도 노동자계급, 자본가계급 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그런데 중간층이 양극화되면서 월급 받는 임노동자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일체화된 집단이 생겨나요. 그걸 신중간 계급이라고도 하고 관리자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사실상 자본의 마름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죠.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 임노동자고, 월 매출 삼백도 안 되는 영세 자영업자는 사장이고, 그럼 이상하죠? 그러니까 형식적으로 계급을 대입하지 말고 실제 계급 구조, 즉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권력의 관계를 놓고 봐야죠.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사회가 양극화되는데, 중간계급도 그런 양상을 보입니다. 화이트칼라 고용도 계속 불안정해지고 비정규직화되니까, 한편으로는 중간계급 하층부가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반면 상층계급은 부와 특권을 보장해 주면서 전체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관리·통제하는 그룹으로 편입되죠. 일례로 교수 사회의 양극화, 위계화가 대표적이에요. 똑같이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억대 연봉의 교수와 연봉 오백이 안 되는 강사로 나뉘고, 분리해서 차별하고, 동료 교수가 다른 동료 교수를 착취하게 만드는 그런 방식. 그래서 제일 아랫단에 있는 강사는 어쨌든 위로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기를 쓰고 위에 있는 교수는 아래쪽에 있는 강사들에게 갑질하고. 자기가 주인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질 수 있을까요? 노동자를 대변하고 전태일의 친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타락한 집단들, 자본에 회유된 집단들,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이 항상 사회 담론을 생산해 내고, 사회적 의제를 정하고 관점을 제시한단 말입니다. 언론은 또 그 사람들 말만 따서 인터뷰하고, 줄창 실어 나르는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고요. 문제는 그들이 누구의 입장에 서서 말하느냐인데, 결코 노동자 편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노동자를 위하는말은 해도 노동자로서’, ‘노동의 관점에서함께 서 있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 친자본 반노동 사상과 이론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보수 진보 구분이 없어요. 오히려 보수 인사는 아, 저거 완전 반노동적인 생각이다, 하는 게 딱 보이는데, 더 문제는 진보인 척하는 전문가, 지식인들이에요. 내용은 되게 친자본, 반노동적인데 말은 그럴듯하게 노동자 편인 척하니까요. 노동자들이 어려울 땐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허용된 비판만 하고, 보수든 진보든 사실상 담론 공동체를 만들어서 계속 서로의 문화 권력, 상징 권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하죠. ‘썰전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그래요.


 그런데 시민운동이 이런 담론의 흐름에 또 굉장히 민감해요.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사회주의 담론은 금지하면서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그렇게 다들 좋아하는지. 기본 소득론이나 4차 산업 혁명론 같은 미래 담론, 혁신 담론, 기업가 정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자본주의 정신. 이런 용어나 담론이 나오면 그냥 훅 쏠려서 가요. 왜 민주적 관리 운영이라고 안 하고 꼭 알아듣지도 못할 거버넌스니 협치니 그런 말을 쓰는 거예요? 그런 단어, 개념 속에서 사실상 노동의 관점은 해체되고 있는데, 그걸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아요. 왜냐, 자기도 좋거든요. 부담스러운 민중, 계급, 노동자, 이런 말보다, 두루뭉술하게 사회적인 게 좋고, 두루뭉술하게 협치하자는 게 좋고.

부르디외는 이 중간계급의 특징을 이렇게 말해요. 소속 계급이 없기 때문에 되게 기회주의적인 계층이라고. 이들은 자기의 상층계급에 대해서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하층민에 대해서는 문화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개의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집단이에요.


 정확한 거 같아요. 도덕적 우월감. 나는 자본가들보다 가난하지만, 내 취향만은 더 귀족적이다. 인문주의적 시민들의 자기만족감은 체제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투항하는 중요한 근거예요. 사장님도 회장님도 대통령님도 인문학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금 인문학은 너무 좋은 중산층의 통치 수단이 됐어요.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지금 이들의 문화가 지배적이죠. 그러니 운동 방식도 이 사람들이 하기 좋은 시민운동 방식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상품 구매가 운동이 되는 거. 배지 사고, 가방 사고, 옷 사고, 공정 무역 커피 마시고. 그걸 굿즈(goods)라고 하는데, 요즘 보면 좀 과도한 거 같아요. 재정 마련을 위해서 단체도 그런 홍보 상품 제작을 많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어야지, 그게 주가 되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요새 청년 창업 아이템 보면 대부분이 다 좋은 의미를 가진 물건 팔기예요. 농부를 돕는 물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물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물건, 전쟁을 반대하는 물건. 물건은 곧 상품이죠.


 그러면서 유럽에서 들어온 담론을 좋아하고, 그런 유행을 쫓아가고, 사실 그게 다 서구 사회 백인 중산층 신중간 계급이 만들어 낸 건데, 그걸 따라가고, 자꾸만 거기서 대안을 찾고 하면서 시민사회의 담론과 실천이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요. 구매력 있는 인문적 소양을 갖춘 교양 시민들의 소셜 클럽처럼 되어 가는 거죠. 그렇지 않은 단체들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예요.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 내고 그걸 사회적 의제로 만들려는 언론, 잡지, 매체들도 찾아보기 힘들고요. 촛불 광장이든, 마을이든, 마르쉐든, 어디든, 다들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한테 맞는 방식으로 하는 거예요. 현장 투쟁, 직접 행동보다는, 안전한 장소에서 포럼하고, 세미나하고, 맨날 무슨 인문 교육 사업하고, 세련된 거 좋아하고, 공간도 점점 중산층 취향을 반영하고, 집회 양식도 죄다 문화제 양식으로 바뀌고요. 집회 때 부르는 노래만 해도 그렇죠. 레미제라블 오페라를 누가 얼마나 봤다고, 그게 촛불 집회 주제가가 되니, 그 노래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하고 못 따라 부르는 사람 사이에 계급의 분할선이 확연히 그어지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방법은 점점 촌스럽게 보이고, 말하는 방식도 싫고, 옷차림도 거부감이 들고, 사실 촛불 광장도 그런 식으로 중산층의 도덕과 윤리, 미학이 압도했죠. 시민운동 전반에서 감지되는 현상이에요. 사실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탈정치화된 일종의 문화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되는 경향. 그런데 그 문화가 노동자문화는 아닌 거죠. 핀란드니 덴마크니 하면서 좋은 사회라고 맨날 가져오는 사례가, 다 서구 백인 지배계급의 중산층 문화인데, 그걸 진보라고 하니. 대외적으로 노조나 노동현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과의 연대 고리가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단체 안에서도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죠. 그러니 지금 인문학이 신종 문화 통치술처럼 활용되고 있고, 서구 중산층 문화가 마치 진보이자 대안처럼 유입되는 이 상황에 뭔가 제동을 걸어야 해요.


 이거는 변절은 아니고, 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의 질서와 소비문화에 동화되고 대안도 자본주의 사회 체제 내에서 찾으려는 것이거든요. 교양 시민들이 보기에는 그냥 한국이 싫고 구질구질한 거예요. 북유럽 시민들처럼 살고 싶은 건데, 그게 투항이죠.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가 되고, 운동권이 뉴라이트가 되는 건 변절이지만, 좀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건 투항이죠. 그래서 촛불을 주도한 집단들도, 안전하고 질서 있는 퇴각으로 혁명의 경로를 유인한 사람들도, 실은 체제를 전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왜냐? 다들 이 사회에서 제 몫이 있으니까. 이번 달에도 월급 나오고, 다음 달에는 상여금 나오고, 그 다음 달에는 휴가니까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애들한테 학원비 쓰면서 명문 대학 보내려고 하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좀 있고, 자기가 없으면 부모한테 물려받을 거라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 혁명이란 게 하고 싶을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적 인사가 되어서 지금 목에 밧줄 걸어 놓고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하죠. 운동이 될 리가 없죠. 그들만의 세계예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여기도 트럼프가 와요. 미국의 노동계급이 민주당을 워싱턴과 뉴욕의 부자들이라고 여기면서, 그들이 자기의 지지 세력을 철저히 배반했다고 생각하면서 트럼프가 나온 거거든요. 똑똑한 척 도덕적인 척 다 하면서 실제로는 똑같은 부자인 힐러리한테는 죽어도 표를 주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지난 미국 선거는 하층계급, 노동계급의 이탈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중산층 진보 그룹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과 이탈의 결과라고 봐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정권 다음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오면 안 되지 않겠어요? 민주당이 원래 진보정당이 아니라도 촛불에 의해 탄생했으니 개혁적 정책을 하라고,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고,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시민사회가 이 정부를 엄호하고 있는 형국이에요. 다들 새 정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지역에서 마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씩 맡아서 정부로 들어가고.


 사실 기층, 변방의 운동가들과 역량들이 중앙으로 계속 빨려들어가는 방식으로 오면서 풀뿌리 운동이어야 할 시민운동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말라 버리게 된 것이 지금 시민운동의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서울시가 대표적인 곳이고요. 뭔가 시민사회 인프라도 되게 잘되어 있고,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새로운 시민운동의 의제가 나오면 앞서서 실현하고, 그래서 열악한 풍토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민운동의 전시장, 쇼룸 같은 곳이지만, 저는 서울의 운동 풍토가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까지 말했던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말이죠.


 그런데 선거에서 지지표도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들이 제대로 건강하게 분출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억눌리면 그 힘이 엉뚱한 곳으로 터져 나와요. 지금 혐오의 정치, 팬덤 정치도 그런 징후라고 볼 수 있는데, 억눌린 힘들이 억압자를 향한 증오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를 향해서 발산되고, 사회적 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까 정치는 계속 이미지만 생산하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계속 상징 정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 지금 팬덤 정치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팬덤은 전형적으로 정치를 일종의 문화적 소비재로 보는 것이죠. 그러니 정치는 계속 쇼가 되고, 쇼가 중요해지면, 그 쇼의 기획 연출자가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는 거죠. 청와대는 이 정치 쇼의 유능한 기획 연출자인 탁현민을 놓아 줄 수 없겠죠. 이런 방식은 시민사회,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보여 주는 활동, 가시화된 사업 성과가 중요해지면 역시 그 기획자가 중요해지는 거고, 그걸 토대로 다음 사업비가 나오니까 계속 운동이 쇼처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맨날 상상력만 이야기 하잖아요. 진짜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을 갖자고, 꿈만 꾸자는 얘기예요.



투항과 변절


 시민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1990년대가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분기점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이 시대를 규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지금 현재 시민사회의 등장은 1987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1989년에 경실련이 생겼고, 뒤이어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조직체들이 생겨났어요. 그러면서 바뀝니다. 운동의 주어가 바뀌어요. ‘노동자·민중에서 시민으로. 그건 주체,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뜻이죠. 시민은 사실 탈계급적이고, 그런 점에서 탈정치적이기도 한 개념이죠. 원래 경실련은 처음부터 개량주의적 운동을 내걸었던 단체였어요. 개량주의 운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개량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전체의 한계 혹은 불가능성으로 설정해 버리는 거예요. 가장 높은 수위의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봉쇄하고 시작하면 그걸 넘어가려는 모든 운동들이 부정되니까요. 그리고 이후에 민교협, 민변 같은 단체가 조직되고,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면서 운동 사회 내에서 전문가 엘리트 집단들이 힘을 가지게 돼요. 협상을 하든 협치를 하든 뭐를 알아야 하니까. 협상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과는 다르죠. 전문적 지식도 있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입말과 현장 용어에 능한 사람보다 정돈된 개념어와 논리에 강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경실련의 경제 전문가, 참여연대의 입법 전문가, 환경운동연합의 환경 전문가 등, 과거 사회운동에서 측면에 있거나 후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중심부, 전방에 서게 되는 거예요. 전체 운동의 지도부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이 운동의 중심 변동이 전체 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점점 중산층 취향의 운동과 담론으로 중심 의제가 바뀌고 쟁점을 만들어 내는 핵심 개념어들도 혼란스러워졌어요. 20대 실업자 문제, 20대 구직자 문제, 20대 빈곤층 문제, 20대 주거난, 10대의 참정권 문제라고 하지 않고 전부 다 퉁쳐서 청년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씀드린 대로 전문가·명망가 중심의 엘리트 운동이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 생겨났던 거예요. 저는 청년의 대안으로 청년 기업가니 욜로족이니 힙스터니 하는 말을 들으면 막 현기증이 나요. 정치적 경제적 대안이 아니라 문화적 대안밖에 찾지 않는구나. 그런데 중요한 건 시민이 주어가 되고, 개량적 대안으로 사회를 개선해 나가려는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집단이 되었던 이 시기가 한편으로는 노동이 계속해서 조직적으로 탄압당하고, 노동운동이 위축되고, 노조가 분쇄되고 있었던 시기라는 거예요. 시민운동이 만개할 때 노동운동, 민중계급은 와해되고 있었죠. 이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투항! 1990년대는 투항의 시대였다고 저는 정의해요. 세계적으로는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비판이라는 담론이 유행하고 막 몰아닥쳐요. 당시 핵심 단어가 해체였는데, 해체주의 철학이 가진 전복적 가능성과 별개로 우리의 삶은 그때 그야말로 해체당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몰랐어요. 투항은 변절과는 좀 다른 거죠. 뭐가 더 나쁜 거 같아요? (변절요!) 글쎄 그럴까요? (웃음) 변절이 더 나쁜 거 같죠? , 나쁘긴 하죠. 근데 변절은 확실하게 보이잖아요.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나쁜 놈인 줄 다 알죠. 근데 투항은 참 복잡미묘한 거예요. 자기도 모르고 남도 잘 모르고. 게다가 투항은 저항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어요. 어떤 저항? 새로운 저항. 어떤 운동? 새로운 운동. 어떤 진보? 새로운 진보. 이를테면 그렇게요. (new), () 자가 마법인 것 같아요. 유럽의 신좌파, 신노동당처럼. 지금 우리는 아예 혁신그 자체를 말하고 있죠.


 시민운동은 저항 속에서 성장하고 탄생했어요. 무엇에 저항했어요? 폭압적 국가권력, 독재자,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어요. 지난 겨울까지도 우리는 그런 집단에게는 투항하지 않았어요. 촛불 광장에서도 보면 그 마음은 확고했지요. 그런데 투항은 어디로 했냐하면 시장으로 투항했다고 생각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반독재’, ‘민주-반민주라는 정치적 세력 구도가 자본-반자본이라는 세력 구도로 넘어가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서 선명했던 계급 간의 정치적 구도, 대적성이 사라지고 차이와 정체성의 정치로 넘어가게 되죠. ‘노동 대 반노동또는 자본 대 반자본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시민 대 시민으로 되어 버린 거죠. 다대다(多對多)의 전선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투항이 안 보이죠. 그렇게 되는 순간 이제 정치는 취향의 정치, 각자의 이해와 이익들이 경합하는 장으로 가는 거죠.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양상을 보이는 혐오의 정치는 실은 이 취향의 정치의 뒷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운동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저 세 가지 없음속에 어쩌면 답이 있지 않을까요? 시민을 다시 찾아야겠죠. 그리고 운동성을 되찾아야겠죠. 마지막으로 노동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노동권 없이 시민권 없다는 생각으로요. 노동권이 시민권을 담보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요. 중산층 중간계급 말고 더 아래로, 더 가난한 곳으로, 더 주변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원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거기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서 주민들을 만나 나가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사업 중심이 아니라 운동 중심의 단체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리고 변절보다 투항을 조심하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언젠가 세상이 제대로 서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잃지 말자.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제 말에 해방이 절대 안 올 것 같았어도 왔잖아요. 박근혜 정권이 차기 차차기까지 집권 연장할 것 같았지만 지금 감옥에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줄지 모릅니다. 때를 기다리며, 다시 처음으로, 기층으로 돌아가서 운동을 다시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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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작은책> 편집자문위원 

* 이 글은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끝장토론’ 마지막 날(10월 24일)의 마지막 발언 원고입니다. (글쓴이 주)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오늘 저는 토론이 아니라 호소를 하려고 합니다. 미국 의회가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꼭 비준해야 할까요? 지난 3일 동안의 토론에서 우리는 정부도, 국회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직무 유기입니다. 

  엉터리 수치
 
  ‘GDP(국내총생산) 5.66퍼센트 추가 성장, 일자리 35만 개 증가.’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하는 근거라고, 정부가 제시한 수치입니다. 찬성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이 수치를 믿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짜입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GDP 성장률이 플러스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CGE 모형을 돌리면 언제나 플러스 수치가 나옵니다. 한미 FTA로 일자리를 잃은 농민이나 중소기업 노동자가 모두 삼성반도체나 현대자동차에 취직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CGE(연산 가능 일반 균형) 모형은 어떤 정책을 취했을 때 GDP나 무역수지 등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상대적 비교를 하기 위한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FTA 상대국에 따라 서로 다른 가정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가정해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한미 FTA의 경우처럼 제조업 1.2퍼센트, 사업서비스 1퍼센트 생산성 향상을 가정해서 CGE를 돌린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가정을 한 경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아직 대답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론 2006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다고 화를 낸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급조한 가정입니다.

  더구나 무역 수지는 산업별 합산이라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표준 CGE에서는 무역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당연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관세율 7.5퍼센트가 미국의 2.5퍼센트에 비해 세 배이기 때문입니다. 관세를 더 많이 내린 쪽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엉터리 가정을 하면 당연히 그 결과도 엉터리로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로도 이 수치가 엉터리라는 걸 금방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어떤 나라도 이렇게 GDP나 일자리가 증가한 나라는 없습니다.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17년째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2000년대 들어 오히려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1인당 GDP 성장률 1퍼센트 남짓이 우리의 목표일까요? 우리나라는 다르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우수하다고 우기는 것만큼 비과학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시장 만능의 미국 시스템을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협정

  2008년에 발발한 세계금융위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역사는 이 시대를 “장기 침체”라고 부르게 될 겁니다. 당연히 한국의 수출은 줄어들 것이고, 지금도 아슬아슬한 우리 내부의 부동산 거품이 폭발하면 우리는 또다시 금융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미국의 기조는 “수출만이 살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5년 동안 대 아시아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적자 때문에 재정 정책을 사용할 수도 없고, 이미 금리가 제로이기 때문에 금융정책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환율조작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절상 압력을 넣을 만큼 다급합니다. 불행하게도 주요 나라들 중 우리 원화만 거의 절상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화가 절상되면 당연히 수출은 줄어듭니다. 한미 FTA는 이런 압력의 통로, 위기의 전달 통로가 됩니다. 

  지난 30년간 모든 걸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 만능론, 시장 근본주의가 판을 쳤습니다. 미국식 FTA는 시장 만능의 미국 시스템을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협정입니다. 애초에 “경쟁적 자유화”라는 전략을 설계한 로버트 죌릭은 미국 FTA의 목적이 상대국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G20 논의에서 보듯이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는 퇴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FTA뿐 아니라 각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약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규정도 바뀌게 될 겁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스티글리츠 교수를 좌파로 매도했습니다만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스티글리츠 혼자 쓴 게 아닙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 은행 총재들이 쓴 것이고 UN(국제연합)의 보고서입니다. 215개국이 만장일치로 수용한 보고서입니다. 아무 데나 색깔론을 들이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보고서는 FTA는 물론 WTO의 서비스 분야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그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의 정책 공간이 넓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한미 FTA 반대론자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시대착오라는 점에서는 한미 FTA야말로 구한말 대원군의 정책과 같습니다. 시대가 변화할 때는 얼마나 새로운 조류에 먼저 부응하느냐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지금은 국가의 자율성을 확보해서 위기에 대비할 때입니다. 미국식 시장 국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 국가 시스템을 갖추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멕시코의 철도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 끊어져 있습니다

  이미 파산이 증명된 미국식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게 과연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향일까요? 미국은 관세법과 무역법 등 4개의 법률만 고치면 그만이고 우리는 정부 주장으로도 23개의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건, 한미 FTA가 미국의 법과 제도를 직수입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지니 계수(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최악 세계 4위인 나라의 제도를 꼭 받아 들여야 할까요? 17년 전에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그 부문, 부동의 1위입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로 불리던 캐나다마저 우리보다도 못한 12위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우리는 14위). 이런 나라들을 우리가 꼭 뒤따라야 할까요?

  양극화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특히 절망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극화는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로부터 시작됐고 외환 위기와 한미 FTA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과연 이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게 옳은 정책 방향일까요? 

  대처 수상 때 철도를 민영화했던 영국은 대형 사고가 빈발하자 시설 부문을 다시 국유화했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된 후, 우리 정부가 철도를 자발적으로 민영화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우린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 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 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 등 각종 독소 조항들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철도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 끊어져 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길일까요?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만 될 뿐입니다

  지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이제 우리 국민들도 복지를 원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복지의 확대를 가로막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제도 중 그래도 괜찮은, 세계 5위 정도로 평가받는 건강보험이 위험해집니다. 캐나다 정치학자 클락슨은 나프타를 초헌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는 외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만 될 수 있을 뿐 확대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의료 제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다는 뜻), 비영리법인, 그리고 전 국민 가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상교섭본부가 확인했듯이 경제자유구역은 미래 유보(개방을 하지 않고 국가의 규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의 예외입니다. 경제자유구역이 확대되는 만큼 건강보험이 설 자리는 축소됩니다. 

  약값이 올라갑니다. 허가-특허 연계 등으로 미국 제약 회사의 특허권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글리벡(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같은 불치병 약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같이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 모두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나 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은 더 흔들릴 겁니다. 

  야당들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면 불가능합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사회보험은 예외”라고 강변하지만 암 100퍼센트 보장으로 인해 망하게 된 AIG(미국 보험회사)가 과연 가만 있을까요? 투자자국가소송은 통상교섭본부장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가 이길 만하면 걸 수 있는 겁니다. 예외라 하더라도 국제관습법에 입각한 최소 기준 대우는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게 토론에서 확인됐습니다. 3명의 법률가 중 다수가 건강보험 보장성 90퍼센트가 국제 관습에 어긋난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마저 제약하는 초헌법을 우리가 굳이 받아들여야 할까요?

농업과 제조업이 무너집니다

  농업이 무너집니다. 돈 좀 더 준다고 농업이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세계의 학자들은 피크 오일, 즉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기가 곧 온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요즘 농사는 석유로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식량 위기가 오면, 과연 돈 좀 더 준다고 농산물을 살 수 있을까요? 식량 주권은 가장 중요한 주권입니다. 한번 시스템이 무너지면 다시 농업을 살릴 길이 요원해집니다. 

  제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기계화학, 특히 정밀기계, 정밀화학이 약하다는 겁니다. 제약이 바로 정밀화학입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허리를 끊어 버릴 겁니다. 제조업은 우리가 미국보다 우위라는 건 정말 환상입니다. 우리의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의 40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버시바우 미 대사에게 “국회의원들이 농민들에 저항하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의원들은 농민들을 두려워해, 진정한 현안들을 다루는 대신 보조금만 지급해 왔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사실이 아니겠지요? 미국 대사를 만났으면 미국의 농업 보조금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미국 정부는 쌀 농가당 연간 6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이걸 없애는 내용이 한미 FTA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재협상을 해서라도 말이죠. 

검토하는 사이에 우리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남희섭 변리사께서 말씀하시겠지만 우리가 논의조차 못한 의제가 한가득입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문제도 많을 겁니다. 한미 FTA는 방대합니다. 과연 한미 FTA 협정문을 꼼꼼히 읽고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찾으셨나요? 국민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미국이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의원들은 지난 5년 동안 자기 선거구민의 이익을 위해서 끝없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선결 과제, 재협상, 재재협상, 그리고 행정명령을 통해 실리를 챙겼습니다. 과연 우리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8년 국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한미 FTA 비준안을 의결하려 했습니다. 만일 한미 FTA가 우리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신다면 그 역사적 결정을 숨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국회 본청에 찬성과 반대한 분들의 이름을 새겨서 사람들이 길이 되새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 남희섭 변리사와 이해영 교수가 제시하는 여러 과제에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미 FTA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제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해 주십시오.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정책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정책을 토론 없이 의결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날치기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날치기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6개월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그 사이에 우리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제발 철저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미 FTA의 대표적 독소 조항 네 가지

① 투자자-국가소송제도 (ISD: Investor-State Disment)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상대 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며, 공공정책도 제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 투자자는 어떨까. 이번에 오바마가 미 의회에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ISD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고, 심지어 불평등하다. 

② 네거티브 리스트 (Negative List)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는 내가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르는 것이고, 네거티브 리스트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쓰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가 개방의 폭이 훨씬 넓다. 게다가 이 조항의 특징은 새로 생기는 서비스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서비스 분야는 압도적으로 미국에서 많이 생긴다. 한국의 첨단 서비스 시장은 당연히 미국 기업에게 넘어가게 된다. 

③ 래칫조항 (rachet: 역진방지조항)
래칫은 톱니바퀴의 역진을 막는 장치를 말한다. 앞으로 개방하고 시장에 맡기는 건 가능하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서비스 시장에 적용된다.

④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Future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
 우리가 미래에 다른 나라와 FTA를 맺게 될 경우, 그 나라에 개방하는 만큼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개방해야 한다. 한미 FTA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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