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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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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0월호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전두환보다는 나중에 죽고 싶다


 

안재성소설가경성 트로이카》 저자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젊은 시절부터 그랬다친구들과 멀리 놀러 갔다 와서 사진을 보면 즐거운 추억보다는 걸어 다닐 때의 전신의 고통혼자만 비 맞은 듯 쏟는 진땀목숨을 건 졸음운전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수년 전부터는 견딜 수가 없어 동네 앞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노인들도 나를 휙휙 지나쳐 올라간다그나마 절반만 오르다 포기하고 내려오는 때가 대부분이다.


남의 몸 아픈 이야기 듣기 좋아할 사람도 없고가족들에게는 걱정 끼칠까 봐 입을 다물고 겉보기에 정상인처럼 살려 애썼지만몸 여기저기 끊임없는 통증이며 두통 때문에 술 한 잔 못하고 억지로 앉아 있는 게 싫어서 취재 이외의 만남은 회피하며 살아온 햇수가 이제는 헤아릴 수도 없다지인들의 부모형제 장례식에나 갈까즐거운 행사나 친목 술자리는 일체 응하지 않으니 친구들이 노는 자리에 나를 부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치료를 위해 애를 안 쓴 것이 아니다사십이 넘어서며 신경통이 급속히 심해지면서 다닌 병원이며 한방민간요법에 대해 책을 한 권 써도 될 정도다하지만 특정 진단명이 나오질 않았다생활에 전혀 지장 없는 미미한 당뇨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높은 간 수치가 전부요나머지 기능은 튼튼하기만 하단다여기저기 바늘을 꼽고 사는 듯한 근육통만이 문제였다.


그래도 잘 버텨 오던 몸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서너 달 전부터였다좀처럼 몸살이 낫지 않는다 싶더니 온몸의 근육이 심한 운동을 한 뒤처럼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 방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온몸을 비틀며 신음을 터뜨리게 되었다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는 데다 조금만 움직이면 심장과 폐가 조여와 지하철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그런데도 의사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동네 병원부터 서울 백병원까지 가 봤지만 처음 보는 병이라며 다른 과에 가 보라고 미루기만 했다예약이니 검사니 뭐니 해서 시간만 자꾸 흐르는 사이이젠 진짜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무라이 흉내였다사무라이들이 칼싸움으로 죽을 때를 대비해 악취가 나지 않도록 아침엔 김밥만 먹었다던 믿거나 말거나 전설처럼잠자다 죽을 것에 대비해 매일 밤 깔끔히 청소하고 쓰레기통 비우고 속옷까지 새 걸로 갈아입었다소원이 있다면 아침에 깨지 않는 것뿐이었다.


결론은살아났다가정의학과 의사이자 노동당 부대표이기도 한 임석영 씨가 병명을 찾아내 바로 응급실로 보내 치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난치병이긴 하지만 불치병은 아닌아주 오래된 다발성 근육염이었다그에게는 간단한 진단이었을지 몰라도여러 달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죽어 가던 내게는 임석영 씨가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위독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중 이렇게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경우는 처음이라는 주치의의 찬사까지 들으며 15일 만에 퇴원한 내 몸은 15킬로그램이나 빠져서 마치 늙은 청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얼굴 주름만 늘었을 뿐 탱탱하던 배가 쏙 들어가 삼십대 청년이 되었으니 말이다의사 왈, 15킬로그램은 근육이 아니라 염증이 빠져나간 거란다.


회복력이 대단하다는 말에 떠오른 것은 내가 본래는 아주 건강한 체질이었다는 사실이다고등학교 체력장 때 1천 미터 달리기는 1, 2등이었고 씨름턱걸이팔씨름 같은 것도 반에서 수위였다오늘날까지도 위장병이니 폐렴이니 장염 같은 속병은 아예 앓아 본 적이 없다진맥 본 한의사들마다 기가 엄청 센 체질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외가에서 양젖을 먹고 커서 서양인처럼 튼튼하다고 자랑하던 몸이 조금만 육체노동을 해도 남들보다 몇 배 빨리 지쳐 버리고 땀범벅이 되어 기진해 버리는 현상이 시작된 것은 확실히 만 스무살 되던 1980년 광주 항쟁 이후다.


겨우 5일이었다시간만으로 치면 3박 4일 정도를 24시간 내내 잠 못 자고 매를 맞았다당시 만 명도 넘는 이들이 한두 달씩 보안대에서 고생했다지만 대개 한 방에 수십 명이 수용되어 차례로 돌아가며 매를 맞았기 때문에 실제로 맞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들었다그런데 나는 광주 항쟁이 끝난 후에 시위를 선동하다가 수배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다들 구속되거나 훈방되었을 때 혼자 보안대에 끌려가게 되었고그야말로 한시도 쉴 틈 없이 헌병과 보안대원들의 몽둥이주먹군홧발에 짓이겨져야 했다참 재수도 없지.


교통사고 한 번 당한 후유증도 평생을 간다는데깡패들이 누굴 집단 구타 한들 한 시간을 넘지 못할 텐데며칠 내내 발바닥부터 머리통까지 몽둥이와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니 아래위 할 것 없이 옷에 피가 엉겨 붙어 떨어지질 않고식당에 데려갈 때는 헌병들이 들어 안아서 옮겨야 했다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다 못해 귀에서도 피가 나더니 청력을 상실해 난청이 되었지만 그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욕을 이기게 한 것은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 달라고 빌거나 울지 않고 이 불의를 꼭 복수하리라고 수도 없이 다짐한 증오심이었다빌지도 않고 비명도 안 질러 더 지독스럽게 맞았는지 모르지만지금까지도 나를 지켜 온 힘일 것이다그 며칠을 잘 버텨 주었기 때문에 그해 5월이 내게는 정신적 후유증이 아닌 긍지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 5월을 기점으로 내 몸이 망가진 것은 확실하다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온몸의 근육과 신경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고 살게 된 것은 틀림없다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해도생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보잘것없는 글재주에 비해 책도 실컷 썼고모험과 여행도 충분히 했고좋은 벗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도 넘치게 누렸으니 삶의 여한은 없다다만 전두환보다는 나중에 죽고 싶다. ‘전두환 찢어 죽이라는 구호를 지키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오늘 퇴원해 읍내 이발소에 가던 길에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바람에 무릎이 까졌다다리뿐 아니라 팔에도 힘이 없어 일어나지를 못하고 버둥대고 있으니 가게 앞에 모여 웃고 떠들던 노인들이 놀라서 일으켜 준다한동안은 어디 나다니지 말고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나 맞을 생각에 머리칼을 바짝 깎고 거울을 보니 눈만 퀭하니 낯선 사람을 대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날 것이다오히려 그 지독했던 근육통에서 벗어나 날씬한 몸으로 건강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지루한 병실에서 올가을 단풍으로 물든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다는 꿈으로 시간을 보냈다북핵 관련 뉴스 좀 안 나오는 깊고 아름다운 산천을 걷고 싶었다저항의 돌멩이와 화염병이 있었기에타오르는 촛불이 있었기에 멋진 나라내 사랑하는 남도 땅을 마음껏 천천히 주유하고 싶었다북한 땅도 외세나 압박이 아닌우리나라와 같은 민중의 항쟁을 거쳐 스스로 아름다운 땅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가을의 사찰 기행매년 꿈꾸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일이다올해는 꼭 해 보리라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