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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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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8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직위 해제 당하고 진짜 교사가 됐다

김석현/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

 

나는 올해 8년 차 교사이다. 교사가 되기 전에 나는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모범생에 가까웠고 세상일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구시교육청 현관 앞에 천막을 차리고 앉아 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629일에 학교로부터 무단결근으로 인한 직위 해제 소식을 들었다. 내 인생 최대의 비행이다. 남들이 들으면 왜 그런 위험천만한, 어쩌면 교단에 더 이상 설 수 없을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길이 바로 진정한 교사가 되는 길이었고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던 것들을 몸소 보여 주는 길이었다.

전교조가 2013,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아님통보를 받은 이후 2016년부터 전교조 대구지부의 전임자들에 대해 탄압이 이어졌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해직되거나 직위 해제 된 전임자가 나까지 총 5명에 이른다. 13개 시·도가 전임자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대구에서 교사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정권과 교육청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후회는 없다. 처음으로 교직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훨씬 살아 있음을, 그리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교사가 되었다는 기쁨은 3월에 잠깐 스쳐갈 뿐이었다. 그 이후 현실이 닥쳐왔는데, 학생들과는 잘 지냈지만 대부분 교장, 교감과의 갈등이나 이해할 수 없는 학교 내 관례들, 그리고 일부 교사들이 보이는 위선적인 행동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매일매일 고민에 빠졌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의 신규 교사들이 여기서 굴복을 하고 만다. 그리고 기존의 교사들과 똑같은 행동 양식을 체득하는데, 학교가 몇십 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내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다.

전교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학교가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공간이라는 나의 생각이 과연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수천 명의 교사들이 참교육실천대회라는 곳에 모여서 학교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학교의 문제점들은 별종들만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대구는 다른 지역보다도 더 심각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 많았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던 2월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학교에서 사무실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받았다. 몇 달 동안 쏟아질 민원이 며칠 사이에 쏟아졌다. 민원을 들어 보면 대부분의 기존에 있던 문제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직업계고에서 매년 준비하던 기능경기대회라는 것이 있다. 학교마다 경쟁이 과열되어 있어서 그 대회를 위해 합숙까지 시켜 가면서 혹독한 훈련을 한다. 학생들은 합숙을 하면서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지기도 한다. 최근 경북의 한 S공고에서 일어난 기능경기대회 준비생의 자살은 이러한 과열 경쟁과 무관하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상황임에도 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 가는 학교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경쟁은 준전시 상황에서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진단평가(일제고사)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중단되지 않았다. 시험지는 이미 2월에 인쇄가 되어 3월에 학교에 모두 배달이 되었다. 하지만 개학이 연기되면서 시험을 치르지 못하다가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된 5월과 6월에 진단평가를 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교육 관료들은 학생들의 실질적인 기초 학력을 길러 주기보다는 단순히 객관식 평가를 통해서 적당히 부진 학생을 걸러 내고(교육적으로 몇 점 이하가 부진 학생인지 근거가 없다) 제대로 시간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 속에 남겨서 공부를 시키면 기초 학력이 길러진다고 주장한다. 탁상행정도 이런 탁상행정이 없다. 결국 학생들을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SKY에 진학할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여 교육 수도의 자랑으로 삼는 것(대구는 자칭 교육 수도이다), 그것이 코로나19 감염 위험 속에서도 진단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 대구의 한 중학교 앞에서 김석현 정책실장이 진단평가 반대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전교조 대구지부

학교에서는 이런 교육적이지 못하고 기만적인 일들이 넘쳐 난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교육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나는 노조 전임자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구시교육청의 독선과 불통은 코로나19로 더 심해지고 있는데, 소통하지 않는 대구시교육청에 제동을 걸 조직은 전교조 대구지부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자며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했지만 대구시교육청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전임자들을 직위 해제 하는 것으로 답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강은희 교육감에게 대화와 전임자 인정을 요구하며 교육청 현관 앞에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 지난 630일 대구시 교육청 마당에서 대구 교사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_ 전교조 대구지부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보고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교직에 들어오면서 깨닫게 된 것은, 교사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서는 안 되고 세상 밖으로 나가서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싸움을,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서로 무관해 보여도 나의 수업과 교육 활동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데 이를 외면하고 어떻게 수업에서 정의를 논할 수 있을까? 나는 직위 해제를 당했지만, 그리고 길거리의 교사가 되었지만, 오히려 이제야 진짜 교사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서 전교조 법외 노조 문제가 해결되고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에게 길거리에서 겪었던 우리 삶의 불편한 진실들을 나누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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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7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몽둥이로 때리면 맞고 있겠습니까?

 김영재/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지역지부 카트분회 조직부장

 

저는 중소기업만 다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IT 관련 회사를 경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경영자의 땀과 열정과 어려움도 어느 정도는 압니다. 첫 번째 회사는 IMF 시기를 못 넘기고 폐업하고, 다시 3년 뒤에 100퍼센트 해외 수출하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세계 금융 위기 때 환율의 벽으로 폐업했습니다. 개인 파산도 하고요. 가족과도 단절돼 보았습니다. 사람 데리고 하는 사업을 하기가 겁이 나서 택배, 운전, 건설 현장도 나가고 했지만, 50대 중반이 넘자 체력도 달리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젊을 때는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 공항이 친근하기도 해서 그곳에서 일자리를 알아 보다 인천공항에서 카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항공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여객이 이용하는 여객터미널과 화물이 세계로 유통되는 화물터미널로 구분되고, 여객터미널은 다시 각 항공사별로 제1여객터미널과 제2여객터미널로 나누어집니다. 또한 여객터미널에는 간단하게 랜드사이드(입국·출국 시 사용하는 구역)와 에어사이드(면세점 탑승동의 구역) 및 단기/장기 주차장이 있으며,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의 일일 이용자가 각자의 사용 목적으로 소정의 장소에 비치된 카트를 이용합니다.

저희 카트 노동자들은 약 13000대의 비치된 카트를 24시간 수거하고 필요한 곳에 재배치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터미널별로 주간조/야간조가 있습니다. 주간조는 랜드조, 교통조, 면세조, 단기조, 유지보수조의 형태로 구분되며, 주간조는 조출/만출의 시간대로 운용됩니다. 단순한 카트 수거 업무에서 1층과 3층간의 수직 이동, 동편과 서편의 수평 이동, 청결 작업, 광고 교체 작업, 카트 수리 등을 담당하며 한 번에 많은 수량의 카트를 이동하기 위하여 카트를 밀어 주는 로보카라는 장비를 사용합니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로보카를 이용해 카트를 운반하는 노동자. 사진 제공_ 인천공항지역지부 카트분회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카트에 광고를 하는 명목으로 ()전홍과 1차 계약을 하고 ()전홍은 ACS()에게 카트 관리를 전담하도록 2차 하청 계약을 하여 운영 중에 있습니다.

저는 제1여객터미널의 랜드사이드 업무를 담당하며 3일 근무 1일 휴무의 365일 근무 형태로 201811월에 입사하였습니다. 광범위한 면적을 커버하고 이용객의 수요에 따라 하루에 3만 보 이상의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고 몸의 거의 모든 근골격을 사용해야 하는 높은 수준의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어깨, 허리, 무릎, 발목의 관절과 발바닥의 통증을 갖고 있습니다. 이용객들이 기물과 접촉 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카트와 로보카가 무거운 쇠붙이이라 접촉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치면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개인에게 변상을 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작년 여름 휴가철에 로보카가 카트를 달지 않은 상태에서 회전 중에 초등학교 여아의 발목 아킬레스건에 접촉해 아이가 중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가족 여행이 취소되고, 집도 지방인지라 서울에서 수술하고 입원 치료를 받으려면 많은 보상이 필요했지요. 그 뒤 회사의 공식적인 지침은 개인 변상을 원칙으로 하고 해당 직원은 퇴직 처리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여행객이 두렵습니다. 넓은 공항에서 어린아이들이 마구 뛰어 다니기도 하고 시간에 늦은 여행객들도 뛰어다닙니다. 카트와 로보카가 정지 상태에서 접촉을 해도 무조건 저희가 책임져야 합니다.

점심시간이 40분입니다. 근무지에서 구내식당까지 멀어서 항상 허겁지겁 달려가야 합니다. 휴게 시간과 휴식 공간 물론 없었고요. 노조가 만들어지고 MBC 방송국에서 취재하여 알려지고 청와대에 민원 넣고 고용노동부에 진정한 결과 사무실 안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평상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조출자들은 오전에 휴게 시간 20분을 보장받게 되는 등 조금 개선이 되었습니다.

화장실은 2분 안에 해결, 출퇴근 지문 누락 시 1시간 공제, 그것도 나중에 1일 공제하겠다더군요. 근무 시간 중 잠깐 쉰다고 앉아 있으면 사진 찍어 공개하고 얼마 전부터 근무 평가를 한다며 현장의 주임들은 노조를 말살하고자 열심입니다.

부당 노동 사례와 노조 말살에 대하여 적어 보겠습니다. 202042일 노조 집행위원들이 모두 참석해 회사와 교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사측 관리자들이 노조 측과 사전 협의도 없이 조합원들에게 위임장을 돌렸습니다. 유급 휴가에 대한 모든 것을 회사에 일임하고, 고용 유지 지원금을 타서 휴직할 것을 위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위임장은 향후 회사의 입맛대로 가는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업 참여 시 징계하겠다고 위협하고, 회사의 명예 실추, 유언비어 유포라며 경고장도 보내옵니다. 노조를 탈퇴해야 90퍼센트의 유급 휴직을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행한 적도 없는 근무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예의, 언행, 모욕, 유언비어, 선동, 분위기 저해 같은 항목을 보면 근로 능력 평가가 아닌 복종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작년 11월 노조를 설립할 당시 노조가 싫다, 노조가 도깨비 방망이냐, 그렇게 탄압하더니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대립 노조를 만들고 현재는 타 노조원이 되어 타 노조의 근무 평가를 한다니 코미디 극장도 아니고 말이 됩니까.

현재 위탁 계약 기간은 2018년부터 금년 말까지 3년입니다. 그전에는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근로 계약 때문에 저런 많은 부당 노동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안과 불평등을 호소하면서도 어떤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작년 여름부터 다른 조에서 노조 설립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미약하지만 힘을 합하자고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21일 카트 노동자 파업 결의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서로 몸 벽보를 붙여주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처음 인천공항지역지부에서도 긴가민가했을 것으로 봅니다. 노조 상담하러 갔더니 카트 쪽에서 매년 와서 노조 만들려고 하다가 회사 때문에 깨지고, 20명까지도 모였었는데 회사가 압박해서 깨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갔을 때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우리가 해 보렵니다, 믿어주세요 했습니다. 저희 회사의 평균 연령은 50대 중반이 넘습니다. 두려워하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그 나이에 무슨 노동조합이냐 조용히 살다 퇴직하자, 몇 년만 더 근무하자고 반대하는 부인과 자식들을 설득하고,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며 극복하였습니다.

회사의 업종과 색깔에 따라 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가족 같다 하면서 뒤에서는 신다 버린 헌신짝 취급을 한다면 어느 누가 애사심이 생기며 고객을 웃음으로 대하고 세계 제일의 공항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생기겠습니까. 스스로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몽둥이로 때린다고 맞고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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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7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퇴직금 한푼 없이 쫓기듯 떠나기는 싫었다

 정숙영/ 코웨이 정수기 관리 코디

 

막내가 여섯 살이던 20049, 임상병리사로 경력 단절 상태였던 나는 세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생 집에 방문하던 코디가 자기가 하는 일이 일정 조정이 자유롭고, 열심히 하면 일정한 수입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체 고객 대면, 영업, 초보운전, 관리자들과의 관계 등이 쉽지는 않았지만, 비상금 털어 자동차까지 샀으니 버텨 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된 17년의 코디 생활.

아침 아홉 시 첫 고객 방문부터 늦는 날은 밤 아홉 시까지, 공휴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일을 한다. 두 달이나 네 달에 한 번씩 정기 방문해서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연수기 등을 점검하는 코디는 깐깐한 점검 서비스는 기본이고 자차를 갖고 운전도 잘해야 하며 50페이지가 넘는 상품 안내서의 상품을 판매하고 때로는 홀로 사시는 어르신의 심부름꾼과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지국 관리자의 영업 목표를 맞춰야 한다는 잔소리에 시달리기도 하고 회사가 만들어 놓은 점검 시간과 한 달 내에 마쳐야 하는 계정이 있어 매일 종종거리며 이 집 저 집 방문하는 일개미이자 멀티플레이어이다. 고객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방문 점검이다 보니, 고객들의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욕설 등의 언어폭력은 물론이고 드물게는 신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락까지 안 되는 고객들의 행동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고객의 코디 교체 요구가 있을 경우, 상처받은 코디를 생각하는 관리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위로는커녕 질책하고 사유서까지 쓰게 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소모되는 코디의 감정을 회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니, 동생, 회사 동료와 수다를 떨거나 혼자 삭인다. 게다가 요즘에는 판매 채널이 다양화되고 수수료 체계가 달라져서 제품 설명은 코디에게 듣고 상품 주문은 온라인이나 사업국의 고가 사은품과 현금 지원이 있는 곳에서 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상실감이 크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하다 보면 영업이 부진하거나 관리자들과 불화가 있을 때도 있다. 점검 계정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고, 지국의 영업 목표를 맞추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자가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렌털 제도를 도입했던 전 회장의 경영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이다. ‘고객의 렌털 비용을 낮추기 위해 코디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자가운전이 가능한이들을 코디로 채용했다. 1만 명이 넘는 코디들이 타고 다닐 자동차를 회사에서 구입하고 유지비용을 댔다면 그 비용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렇게 렌털이라는 아이디어 덕분에 2008년 매출이 13000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회장 본인은 창조적 발상과 실천을 책으로 써서 코디들에게 한 권씩 나눠 주며 자랑했겠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코디가 책임지게 하는 회사의 규정과 수천억의 영업 이익에도 노동환경에는 변화 없음에 울화가 치밀었다. 만약 권리 투쟁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중심에 서 있다.

17년 일한 지금도 신입 때랑 바뀐 게 거의 없다. 자차를 쓰는데도 유류비 지원은커녕 사고가 나면 모두가 코디의 책임이다. 점검 수수료도 오르지 않다가 노조가 생기면서 한 계정당 몇백 원 오른 게 전부이다. 고객의 단순 변심 반환 시 수당 되물림 제도가 지금은 일 년 내 반환 시 100퍼센트 되물림으로 바뀌었지만 MBK파트너스에서 관리할 당시에는 18개월 내 반환 시 100~150퍼센트까지 수당 되물림이었다. 영업을 하기 위해 썼던 시간과 판촉 비용은 코디가 손해 봐야 한다.

회사에서는 적정 계정을 200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업이 안 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 150만 원 정도만을 받아가야 한다. 일하며 드는 비용을 코디가 전부 부담하면서 말이다.

201711월 코웨이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공부가 끝나갈 즈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달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고용보험이 있었더라면 두 달 더 쉬면서 전업을 맘 편히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늘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단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손과 발을 많이 쓰는 반복 작업을 하는 코디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한의원과 통증의학과를 제집 드나들듯 한다.

지난 3월 1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 설립 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정숙영 씨. 사진 제공_ 민주노총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퇴사할 때 퇴직금 한푼 없이 쫓기듯 떠나던 선배 코디들이 생각난다. 밥 한 끼 나눌 시간도 없이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사라져 간다. 나는 그렇게 떠나는 게 싫었다. 그런 내게 들어온 한 장의 노동조합 웹자보. 당장 설명회를 요청했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 노조의 양윤석 국장님, 이흥수 코웨이지부 지부장님과 우리 지국 코디들의 만남이 있었다. 우리 지국 코디들이 보낸 내용을 바탕으로 코디·코닥 지부의 홍보 웹자보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설명회가 시작되고 코디·코닥 지부는 2019112일 설립 총회를 하게 되었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며 상집위원이 되었다. 코디를 하면서 대의원대회, 간부수련회, 법률학교 등 조합 활동이 버거워 아프기도 했지만 집중했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길이 열린 듯했지만 노동청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여 노조 설립 필증을 내주지 않았고 노조 설립 필증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집간부들과 서비스가전 간부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시작된 지 103일째 되던 513일에 역사적인 특고직 최초의 설립 필증을 받게 되었고 우리의 권리 찾기는 시작되었다. 지금도 회사와 교섭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2019년 11월 26일 웅진코웨이 본사 17층 대표 이사실을 점거하고 대화를 요구하는 웅진코웨이지부. 사진 제공_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가전통신서비스노조

노조가 생기고 전국의 조합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한길을 간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찼던 순간,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할 동지들이 있어 좋았던 순간들을 늘 기억할 것이다. 코웨이가 없으면 코디도 없다. 회사와 대치가 아닌 상생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가 탄탄한 코디 조직을 믿고 지원해 준다면 정수기 업계 일등 기업으로 우뚝 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기 탄탄한 멀티플레이어인 코디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하면서 만난 고객들 대부분은 호의적이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또또클럽(목표 실적을 달성하면 회사가 해당 코디·코닥 노동자들에게 식사나 여행을 보내주는 사업)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성남 태평지국 가늘고 길게(장기 근속자 소모임) 팀 식구들이 있어 17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귀한 지면을 내준 <작은책>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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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6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회사가 보낸 가정통신문, 그게 호소문이라고?

신재성/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저는 20175창진에프티라는 보전업체에 입사를 하였고 201871일 업체가 고용승계되면서 현재 마스타씨스템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보전업체는 주로 자동차 자동화 설비 시스템 구축과 유지 보수 등의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1공장) 도장에서 오버헤드 컨베이어(천장에서 매달린 레일 중 체인을 주행시켜, 운반물을 순환 운반하는 것)와 플로어 대차(하부의 체인을 주행시켜 운반하는 역할) 공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에는 1, 2, 3차 업체라는 이상한 구분이 지어져 있습니다. 제가 노동하고 있는 이곳도 1차 업체에서 외주업체로 바뀌어 간 케이스이며 상여금, 성과금, 각종 수당 등이 폐지되었고, 기존 관리자 수가 2명에서 8명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업무는 바로 원청인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것이고, 1차 업체 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최저임금밖에 없기에 주 평균 65시간을 해 가며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갈수록 처우가 나빠지는 상황 등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청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업무들, 비정규직이라는, 외주화라는 딱지로 갈수록 안 좋아지는 처우들. 참을 수 없어 2017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순간 현대자동차 보전 정규직들과 보전업체(마스타씨스템, 성진) 관리자들은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았습니다. 노조 가입만 한 것인지,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도 걸었는지 파악해 나갔으며,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하여 현대자동차는 보전업체를 진성 도급화 하기 위해 더욱 더 우리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근무시간 등을 변경했고, 현대자동차 출입 시 출입증만 제시하면 되었는데, 공장 밖 사무실 앞에서 알밤(이중 출입 시스템)이라는 모바일 앱을 깔게 만들어 출퇴근 등을 강제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당함을 느끼며 아침 일찍부터 현대차 공장 앞에서 출근하는 원·하청 동지들에게 선전전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 현대자동차 본관 앞 출퇴근 선전전을 하는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2020년 4월 13일). 사진 제공_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사측은 알밤을 안 찍는다는 이유로 경고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공동 투쟁을 하고 있는 성진 조합원들은 정직까지 주며 탄압했습니다. 지노위, 중노위까지 진행된 이중 출입 시스템 문제는 결국 보전 하청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굴복하지 않고 계속 선전전을 했고 결국 알밤은 철회되었습니다. 보전 하청 조합원 공동 투쟁으로 이루어 낸 첫 성과였고, 뭉치면 강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힘을 얻어 사측에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저희 작업장은 2.5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고, 급배기 팬만 존재하여 여름날이면 40도를 웃돌며, 바로 옆에 세척장이 있어 귀마개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급배기 팬조차 없는 공정은 너무 더워서 여름날은 피해서 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실상은 원청이 시키면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요. 울산차 현대공장에서 가장 노후된 작업장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같은 층 문만 열면 현대차 정규직분들이 일하는 공간은 환경도 깨끗하고 에어컨이 나오고 소음 또한 벗어나 있습니다. 불평등하다 생각하여 20192월경 간이 휴게실과 에어컨 설치 등을 원한다고 요구를 했지만 현대차 공장 안에 2층 높이 이상인 곳엔 간이 휴게실을 지을 수 없다는 답변과 환경 및 소음에서 기준치 미달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2층 높이 이상에 정규직 간이 휴게실은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지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지을 수 없다니요. 누가 봐도 덥고 시끄럽고 먼지가 많다는 걸 알 텐데, 분명 안전 환경을 받고 개선이 돼야 하는 곳인데. 이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점이라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의 벽을 느꼈고 체념한 채 일을 하였습니다.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는 동안 52시간 근무제라는 정부의 시행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끊고 드디어 주말이 있는 삶,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주 52시간 시행은 대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52시간 시행에 관하여 사측에 문의했습니다. 보전 업무는 근무 형태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임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측의 답은, 정부가 시행하는 것이고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임금이 삭감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웃긴 건, 사측은 기존과 동일한 물량과 기성금을 원청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줄어든 시간에도 노동자는 물량을 똑같이 완수해야 하는 반면, 사측은 기성금을 동일하게 받았으니 이윤을 더 챙기는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우리는 임금 보전을 요구하였지만 사측은 임금 삭감은 피할 수가 없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52시간 근무제 계도 기간 연장으로 올해까지 노사간 합의로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동 투쟁을 일으킬 때가 되었습니다. 마스터씨스템과 성진 보전 하청 조합원들은 52시간 임금 보전 확실하게 보장하라고 선전전을 통하여 투쟁했지만, 사측은 주 52시간을 핑계로 더 큰 탄압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현대차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측은 임금 보전 제시안을 내놓지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사항만을 더 늘어놓았습니다. 주말 근무 의무화 및 성과 연봉제, 출퇴근 시스템 도입. 기가 찼습니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보전 하청 조합원 동지들은 생계도 뒷전으로 미룬 채 각자 호소문을 적으며 지난 46일 공동 전면파업에 나섰습니다. ·석식·출근·퇴근 선전전, 공장 현장 순회 등 가열찬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입니다. 결국 장기화되는 파업과 진전 없는 교섭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중재하겠다고 요청을 해 왔고 429일 노사는 이에 응하였습니다.

▲ 현대자동차 1공장 의장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2020년4월22일). 사진 제공_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노동부에 올라가기 전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서 우편이 날아왔다고. 뭔가 불안한 느낌이 생겨 내가 확인할 테니 열지 말라고 했고, 이에 다른 동지들의 소식이 전해 들어왔습니다. 바로 사측에서 일괄적으로 직원들에게 파업으로 회사가 손실을 받고 있으며 즉시 중단해야 한다, 장기 파업으로 고용은 더욱 불안하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이따위 내용을 가정에서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노동부 중재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사측은 직원들이 호소문으로 사람들에게 알렸으니 자기네들도 가정통신문으로 호소문식으로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항상 이따위 식으로 응답하는 사측이 싫었고 생계를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정 파탄에 불씨를 주는 행위 등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시간은 줄이고 노동 강도는 높이고 임금은 삭감하겠다면, 하는 일이 같으면 임금을 보전받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주장이 전면파업까지 하게 만들 사항인가요? 현대차는 비용 절감, 불법파견 은폐 외주화도 부족하여 바지 사장들을 내세워 주 52시간을 꼼수로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더 강탈하려고 합니다. 1차 하청2차 하청외주화52시간 임금 삭감으로 노동자를 쥐어짠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요? 원청 주머니에? 여전히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노동자 모두 고통받지 않게 우리 모두 단결된 투쟁으로 이겨 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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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2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자회사만 고집하는 한국가스공사

박인국/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인천기지 지회장

 

  

한국가스공사 인천기지에 미화원으로 근무한 지 9년차가 되어 갑니다. 20175월 문재인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발표가 있은 후 지금까지 한국가스공사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바른 정규직 전환을 위해 20179월에 노동조합을 만들 당시만 해도, 희망이 보였습니다. 미화원이라고 하여 단순 미화가 아니고, 청소와 예초, 제초 작업, 집기류 이동 등 관리원에 가까운 노동을 하였습니다. 급여가 삭감되어도 말을 못했고, 소장의 갑질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흐름에 따라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은 전국에 본사를 포함하여 15군데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만 1400여 명에 달합니다. 그래서 지부를 두고 지회를 만들고 지회장, 대의원을 선출하였습니다. 대구 본사에 지회장들이 모여 비정규직 직종을 비서, 기사, 캐드 업무를 하는 파견직과 시설, 미화, 소방, 특경, 전산, 홍보 7개 직종으로 구분하고 직종 대표인 지부장을 선출하였습니다. 공공운수노조 각 지역 국장님이나 본부장님을 통하여 교육을 받고, 공공운수노조의 도움을 받아 노·사 및 전문가 컨설팅협의회(이하 노사전협의회)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201711월에 1차 회의를 하기 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을 상대로 노동조합 설립 취지와 노동조합이 앞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설립 초기부터 별도 직군, 별도 임금, 별도 예산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한국가스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였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시험을 치르고, 호봉을 받고, 성과금을 받는 정규직분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사전에 논의를 하고 합의를 하여 공사에 요구했지만, 공사는 자회사만을 고집하였습니다.

한국가스공사 앞 천막 농성장에 걸린 현수막. 사진 제공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지부


전환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파견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계약이 만료되어, 정규직 전환 대상자라는 종이 한 장 받고 퇴사하여 전환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고, 전산 직종에 근무하시는 분들 중 일부는 전환 제외 대상이라고 해서 노동청 중앙컨설팅에 의뢰를 했더니 전환 대상자이며, 직접고용해야 된다는 답도 받았습니다. 공사 사장이 공석일 때는 사장이 없다는 핑계로, 인사이동 철에는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핑계로 지루한 싸움을 하였습니다.

20189월 처음으로 3일간 파업을 진행했지만 얻은 것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12차 노사전 회의를 기점으로 공사와 전환 회의를 중지하고, 각 직종별 처우 개선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미화 직종의 경우 급여 삭감 이유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저희는 단순 미화가 아닌 시설 미화이기 때문에 현실성 있는 임금 설계를 요청하며, 정규직 전환 발표 후 정년퇴직 등으로 나가신 자리에 인력 충원이 안 되고 있어 충원을 요청했습니다.

공사는 순환 보직으로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 담당을 하는 관계로 전 담당자의 설계 취지를 확인 안 하는 것인지, 노동조합이 있음에도 아무런 개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기존 용역업체와 계약이 만료되어 신규 입찰 과정에서 임금을 개선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력 충원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관리소가 늘고, 정규직이 늘어서 더 충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간 자리에 충원을 요청한 것에 대해 사측은 타 공공기관보다 많은 인력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미화 인력에 대한 조사를 하니, 단순 청소만 하는 미화고 공사와 같이 청소 업무와 조경 관리를 같이 하는 곳이 없었으며, 건물 청소의 경우도 건물관리위생협회의 기준보다 적은 인원으로 미화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20195월에 다시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임금체계가 바뀌어 남녀 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남자의 경우 실적급 정산이라는 수당이 생기면서 조합원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노조에서 남녀 기본급이 상이하니 같이 맞춰 달라는 요구에는 남자의 임금이 총액으로는 많으니 문제없다고 하고, 최저임금은 통상임금으로 따지니 상여금 300퍼센트를 12개로 나누어 지급한다는 것을 월 25퍼센트 지급으로 바꾸어 통상임금에 산입되게 하는 등 사측의 만행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부에 건의를 하여, 2019129일 대구 본사 앞에 미화 조합원의 설움을 알리는 투쟁 천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투쟁 천막 설치와 동시에 총무부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름만 없다뿐이지 자기를 욕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지 못하고 투쟁 천막을 쳤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저희는 담당자 분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사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 말하고, 총무부장의 빠른 결론 촉구를 하였습니다.

미화 직종의 문제는 새로운 임금 설계와 인력 충원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비정규직 전환 요구에 대해서 사측은 아직도 답이 없습니다. 우리 비정규직 노조는 일방적인 직고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안도 하나의 조건만 성립이 되면 검토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회사의 경우 모회사와 교섭을 할 수 있는 교섭권을 보장한다면 검토를 한다고 하였으며, 설립과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산업통상자원부의 자회사 운영 평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등을 사측에 요구하였지만 제대로 된 자료를 안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물며 직접고용시 정부의 전환 가이드라인에 나오는 권고 사항도 무시한다는 발언을 하여 15차 노사전 회의와 2번의 실무 협의를 마지막으로 중단을 하였으며, 사측의 성의 있는 자료가 나올 때까지 우리 나름의 투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 지난 12일 한국가스공사 시무식 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구 본사에서 게릴라 파업을 벌였다. 사진 제공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지부


이에 지난 12일 본사 조합원만으로 게릴라 파업을 진행하여 2020년 시무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2020110일 기준 투쟁 천막 33일차, 정규직 전환 요구 선전전 634일차를 보내면서 한국가스공사의 성의 있는 자세를 요청하며, 한 명의 조합원으로서 정규직 전환이 희망 고문이 안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지난 2월 10일부터 가스공자 비정규지부는 전면 파업 중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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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4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대법원장만을 섬겼던 법원

조석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양승태를 구속하라! 양승태를 구속하라!”

지난 111일 아침 8시 무렵부터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법원 안에서 정문을 막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 중 몇몇은 양승태 구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대법원 담벼락에, 일부는 피의자 양승태는 검찰 포토라인에 서라는 현수막을 들고 대법원 정문 지붕 위로 올라가기도 하였다.

법원노조가 검찰 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을 저지하고 있다(2019111). 사진 제공_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오전 9시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앞에 나타나자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구호는 더욱 크게 울려 퍼졌으며, ‘피의자 양승태에게 경고합니다로 시작하는 규탄 방송은 기자회견을 하는 양승태의 목소리를 덮어 버렸다. 결국 현장 소식을 중계하던 방송국에서는 양승태의 발언을 자막으로 처리하였으며, 각종 언론사의 현장취재 사진에 나온 배경은 대법원 건물이 아니라 양승태 구속 현수막과 손피켓이 차지해 버렸다.

당일 전국으로 생중계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을 방해한 장본인은 바로 법원공무원노동자들이다. 필자는 전국의 법원공무원들이 자주적으로 조직한 노동조합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이하 법원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다. 왜 법원공무원들은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구속을 목놓아 외쳤을까?

먼저 양승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리를 뒤흔들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사법농단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재작년 2월 이탄희 판사에 의해 법원행정처의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이 불거지면서부터 법원본부는 이를 사법농단으로 규정하고 그 주범으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을 지목하며 투쟁을 전개하였다. 법원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시나 보고 없이 하급자들이 재판 거래와 같은 어마어마한 일을 알아서 진행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만큼, 그가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던 사실을 알고 있다.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하는 가장 막중한 사명을 지닌 대법원장이라는 인물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서 청와대와 재판 결과를 거래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반헌법적인 범죄행위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재판 결과가 일부 적폐 법관들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극도의 사법 불신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피해는 민원현장의 최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법원공무원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게 되었다. 실례로 형식이 잘못된 재판 서류의 보완을 요구하는 담당 직원에게 법원이 상대편 당사자와 한통속이 되어 나를 해코지하려는 것 아니냐며 폭언을 일삼는 일이 급증하였으며, 작년 11월에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법정에서 난동을 부리는 민원인을 제지하던 법원공무원이 폭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하였다.

법원본부가 사법농단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공개된 사법농단 관련 문건들을 보면 양승태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이 우려된다는 식으로 노조 집행부의 성향을 파악하고, 각종 회의, 내부게시판 글 게시, 집회 참석 등 노조활동을 지속적으로 사찰했으며, 이를 통해 신규 직원 조합 가입 위축 등 노조 와해 공작을 벌였다.

또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반민주적이고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독선적인 사법 정책이 법원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모토를 걸고 출발한 양승태 대법원은 실제로는 대법원장 1인만을 섬기는 법원이 되었고, 대법원장 치적 쌓기를 위한 각종 전시성 행사와 사법 정책이 물적, 인적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졸속으로 집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기간 6년 동안 판사를 포함한 법원 구성원 7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그중에 약 20명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법원본부는 2014년 당시 법원 구성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와 공동으로 외부 전문기관에 법원공무원 근무 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근무 인원을 대폭 증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1~2년 이상을 가지 못하고 다시 직원들이 쓰러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법원 구성원들의 죽음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가 만들어 낸 비극이었던 것이다.

법원본부는 20173월부터 사법부 적폐청산을 위한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끝장내고 사법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투쟁을 본격적으로 진행해 왔다.

그리고 드디어 124일 새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서울구치소에 구속되었다.

돌이켜 보면 2017년 대법원 앞 촛불문화제 개최, 민주적 대법원장 선출 투쟁, 2018년 양승태 대법원장 처벌을 위한 전 조합원 서명운동 및 형사 고발, 전 지부 1인 시위 및 현수막 게시 투쟁, 각종 기자회견, 대법원 앞 단식농성 투쟁, 119일 대법원 앞 연가투쟁, 1119일 적폐법관 업무배제 및 특별재판부 설치 촉구 법원본부장 삭발투쟁, 128일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청와대 앞 결의대회, 2019111일 양승태 대법원 앞 기자회견 저지 투쟁, 양승태 구속 촉구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및 123일 영장실질심사 담당 재판부에 의견서 제출을 위한 기자회견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투쟁들을 전개해 왔다.

글쓴이 조석제 씨를 비롯한 법원본부 지부장들은 법원 청사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다(2018.6.15.) 사진 제공_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법원본부가 흔들림 없이 양승태 구속 및 사법적폐 청산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원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도록 인권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과 법원공무원노동자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일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승태는 구속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이 여전히 법복을 입고 재판업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양승태, 임종헌 등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 해방 이후 70년 역사 이래 단 한번도 교체되지 않고 법원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사법적폐 세력들은 호시탐탐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1만여 법원본부 조합원들은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사법부가 국민의 법원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사법적폐 세력들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민의 공무원이니까.

양승태 구속 촉구 기자회견 중인 법원노동자들(2019.1.23). 가운데가 조석제 씨. 사진 제공_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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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파업 투쟁의 기술

이철의/ 정년을 앞둔 철도노조 조합원

 

 

1125, 철도노조의 파업이 6일 만에 끝났다. 이전의 경고 파업까지 더하면 올해 9일간 파업한 셈이다. 올해 파업은 유난히 여론이 좋지 않았다. 수험생을 볼모로 파업을 하냐?” “다 잘라 버려라. 일할 사람 많다.” 파업 기사에 달린 댓글이 한심했다. 수서발 고속철도 통합이나 안전 인력 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등 조합의 요구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MB나 박근혜 정부 때는 파업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철도노조 힘내라. 불편해도 괜찮아.” 응원을 하고 10만 명이 모이는 연대 집회까지 열릴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말기 촛불 시위 때는 무려 74일이나 파업을 벌였다. 처음에는 연봉제에 반대해서 파업에 나섰는데 나중에 촛불 선봉대가 되었다. 조합원들은 신이 나서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하지만 파업이 끝나고 보니 후유증도 컸다. 파업 조합원들은 두 달 넘는 기간 무노동 무임금 신세가 되었다. 필수유지 업무 조합원들은 17개월이나 무노동 무임금에 대한 고통 분담금을 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하지? 착한 정권에 반항해서 그런가? 우리는 시민들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20191122일 철도노조 파업 집회. 우리는 비정규직과 함께 철도 공공성과 사회성 강화, 임금인상을 걸고 당당히 파업했다. 사진제공_ 이철의


철도노조는 조합원 2만 명이 넘는 큰 노조이다. 파업도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복귀 후 징계 대응이나 법정다툼도 침착하기 이를 데 없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 철도노조는 24일간 파업을 벌였는데 사장이 정말로 화가 났다. 사장보다 대통령이 더 화가 났겠지, 노조 위원장이 숨어 있는 경향신문사에 경찰이 쳐들어간 것을 보면 대통령의 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정부의 태도가 그러니 회사도 강경 일변도였다. 파업 참여자 12천 명을 전원 징계에 회부한 것이다.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징계에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 관리자 7명 정도가 위원이 되어 나름 그럴듯한 심문 절차도 밟는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을 징계하려니 시간과 인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는 삼십 분에 한 명씩 속전속결로 해치우려고 하였다. 철도노조 단체협약에 따르면 노동조합 측 인사가 진술인이나 의견 대리인으로 참석한다.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징계위원을 기피할 수도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징계에 노동조합은 지연 전술로 맞섰다. 절차나 태도를 시비 걸어 징계위원을 기피하거나 진술을 한없이 길게 하여 질질 끌었다. 조합원들은 겁도 없이 징계장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관리자들을 골리기도 하였다. 회사는 징계를 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나중에 조합원들 수백 명이 집단 삭발하며 재파업 분위기가 무르익자 탄압이 수그러들었다.

처음 파업했을 때가 생각난다. 1988726, 올림픽을 50여 일 앞둔 때였다. 그때 한 달 300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참다못한 철도 기관사들이 파업을 벌였다. 기관사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쉬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기관사 부인들 수백 명이 철도청 청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내 남편을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 조합은 지독한 어용노조여서 조합원들의 권리는 관심 밖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농성에 쓴 장구와 북을 모두 찢고 농성 주동자들을 경찰에 제보했다고 한다. 위원장은 텔레비전에 나와 불법 파업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업은 열네 시간 만에 진압되었다. 백골단이 쳐들어와 농성하던 기관사들을 몽땅 잡아갔던 것이다. 기관사들은 경찰, 노동부, 안기부 조사를 차례로 받고 개전의 정을 보인 끝에 석방되었다. 가슴에는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쓴 깃을 달고 기관차에 올랐다.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1994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연대파업 전 결의대회 사진. 사진제공_ 이철의.


1994년 철도 지하철 연대 파업은 말 그대로 교통대란을 만들었다. 그때 나는 주동자로 구속되어 있었는데 아내가 늘 오후에 면회를 왔다. 왜 하필 운동할 때 오냐? 오전에 오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차가 막혀 면회 오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비록 강경 탄압으로 패배했지만 우리는 원없이 싸웠다. 조합원들은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경찰을 피해 흩어졌다. 노장들은 지금도 계곡에 숨어 밥해 먹던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2006KTX 승무원과 함께 철도공사 사옥에서 농성하다 연행되는 모습. 사진제공_이철의.


2002, 2003, 2006, 2009, 2013, 2016. 숨가쁜 파업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구속자와 해고자가 탄생하고 징계와 손해배상 등 탄압이 뒤따랐지만 노동자들은 싸움의 고수가 되어 갔다. 회사 쪽 관리자들은 때가 되면 보직을 바꾼다. 하지만 노동조합 투사들은 파업 때마다 싸움의 기술을 익힌다. 갓 입사한 신입들은 선배들이 싸우는 것을 보며 잔뼈가 굵어 간다. 정의감이 유달리 강하거나 인간성이 좋은 후배들은 파업 끝에 자연스럽게 노조 간부의 길로 들어섰다. 그 결과 민영화 법안을 철회시키고 외주 위탁을 멈추게 하였다. 노동시간도 점점 단축되었으며 직장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 문제를 일으킨 관리자들을 반드시 혼내 주니 성희롱이나 폭언·폭행, 갑질이 사라져 갔다. 민주노조 20년에 철도 현장은 몰라보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에게 이번 파업은 마지막이자 송별 파업이 되었다. 파업으로 송별회를 대신해 주니 후배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번 파업은 특히 자회사 조합원들 수천 명이 함께하였다. KTX 승무원, SRT 승무원, 고객 센터 조합원, 그리고 역무 위탁 조합원들은 파업 기간 동안 대전 철도공사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는 등 치열하게 싸웠다. 비정규직과 함께하려는 노동조합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앞으로도 철도노조는 철도 공공성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분투를 계속해 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한국 사회 모든 노동자들과 연대에도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 2019년 1230일 마지막 근무날왼쪽 붉은 게시판에 ‘0’ 표시는 정지 위치를 10센티미터도 안 틀리게 딱 맞췄다는 뜻이다. 철도공사는 이런 나를 평생 징계만 했다. 사진제공_ 이철의


*글쓴이는 2019년 12월 30일 근무를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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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1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

 

책임 회피만 하는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

정인열/ <작은책> 기자

 

2016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 정신 건강 책임져왔지만

고용은 늘 불안정,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는 서로 고용주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

한시적 고용 책임지기로 한 화성시, 겨울 학사일정 동안 고용계약에서 배제

상담사들은 두 달간 당장 수입 없고 상담 연속성이 깨져 피해는 학생들에게

 

학교 청소년상담사 김화민 씨. 그는 20178월부터 비정규직으로 경기도 화성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상담해 왔다. 그런데 최근 근로계약 갱신을 앞두고 고용 주체인 화성시로부터 계약기간을 20203~202012월로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 측과 학사일정이 남았음에도 새해 첫날부터 두 달간 일을 할 수 없어 임금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방학 중 상담 프로그램 부재로 학생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고등학교. 작은책(정인열)

 

김화민 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상담사는 모두 15이들은 화성시에 올 겨울만이라도 상담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계약기간 조정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상담사 김화민 씨와 김선희 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이하 도교육청)은 화성시와 창의지성교육도시(2012~20162) MOU(업무 협약)를 맺고 도내 초··고등학교에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도록 인력을 지원했다. 2012년부터 투입된 상담사들은 1년마다 학교장과 계약을 하는 학교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이상 학교에 상주하며 학생, 학부모의 심리 검사 및 심리 상담, 교사 자문, 상담 프로그램 등을 도맡았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2011~2017년 통계 평균),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염유식 교수팀, 2016~2017년 발표). 학교 상담실은 접근성이 좋아 위기 상황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외부 상담소에 있을 때보다 학교에서 훨씬 병리 증상(조현병, 공황 장애, 우울 장애 등)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눈앞에서 조현병이 발병한 아이를 병원에 즉시 인계한 경우도 있고요. 특히 초등학생들은 안전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학부모, 교사와 협의해서 행동 교정에 들어가죠. 또 교사들이 담당하기 힘든 학생들은 대안 교실이라고 해서 저희가 자체 프로그램으로 돌봅니다. 학부모들이 화가 나서 학교에 올 때는 상담으로 진정 시켜 드리고요.”


김선희 씨는 상담 경력 11년으로 학교 청소년상담은 20183월부터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김선희 씨와 김화민 씨의 말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소년상담사와 임상심리사 자격, 한국상담심리학회 및 상담학회 1, 2급 자격을 보유한 전문 상담사들이다. 하지만 전문성에 비해 임금은 턱없이 낮다.

실수령액이 수당, 출장비 등 다 합쳐도 197만 원 정도예요. 최저임금 수준이죠.”

20163, 계약 기간이 2년 초과된 상담사들 약 20(공공운수노조 추산)은 교육청의 정규직(무기계약 교육공무직)이 됐다. 반대로 계약 기간 하루가 부족해 해고된 상담사도 있었다. 해고된 상담사는 모두 20. 이들을 단계적으로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도입했다면 좋았겠지만 도교육청은 하지 않았다. 이어 도교육청은 화성시와 20162월 혁신교육지구 시즌2(20163~20212) MOU를 맺었다. 도교육청은 인력 지원을 없애고 지역사회 교육 기부를 활용하겠다고 사업 기조를 밝혔는데, 이는 학교 청소년 상담 사업을 포함한 기존 사업들을 진행하되 인력 채용은 안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방침은 후에 화성시와 교육청이 청소년상담사 정규직 전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빌미가 됐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화성시는 인력 예산을 투입해 청소년상담사를 민간위탁하고 학교로 파견시켰다. 2016년 새 학기부터 기존 해고됐던 상담사 일부와 김선희, 김화민 씨 같은 신규 상담 인력이 채용되며 청소년상담사 수는 약 40명이 됐다. 이듬해인 20177,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화성 청소년상담사들은 3단계에 해당하는 정규직 전환 심사 대상이 되는 듯했다. 김선희 씨가 당시 분위기를 말한다.

시청 공무원들도 우리한테 무기직 전환 대상이라고 얘기하면서 기대감을 줬어요.”

정부 지침에 따라 청소년상담사들을 지자체 공무직으로 채용한 의정부시와 오산시의 사례도 있지만 화성시는 달랐다. 학교 청소년 상담은 본래 교육청 소관 사업이므로 시가 정규직 전환을 책임질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정규직 전환 지침과 반대로 201810, 시는 청소년상담사들에게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김화민 씨의 말이다.

“10개월씩 받아들이면 2020년까지 두 번 계약을 해 주겠대요. 실업급여도 못 받고 상담 계획도 남아 있으니까 12개월로 해 달라고 했죠. 그럼 고용에 대해 (정규직 전환)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길게는 47개월, 짧게는 27개월 동안 상담 업무를 해 온 청소년상담사들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이들은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이하 지부)에 가입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철모 현 화성시장과 면담했다. 하지만 서 시장은 상담사 외에 노동조합 관계자가 동석했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표했고 그 자리에서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졸지에 해고된 상담사들은 화성시청과 도교육청, 화성오산교육지원청을 다니며 20191월부터 3월까지 피켓 시위, 천막 농성, 두 차례 오체투지 등을 하며 고용안정을 요구했다. 이들에겐 누구보다 추운 겨울이었다. 김선희 씨가 말한다.

해고된 화성시 청소년상담사들이 단식 4일째 되는 날 수원 화성행궁에서 경기도교육청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2019221)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화성청소년상담사분과.


임용고시에 통과한 교사하고 똑같은 대접을 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학교 업무니까 저희는 교육청 공무직으로 안정되게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인터넷 댓글에선 저희 보고 거저 교사가 되려 한다 하고.”

화성시와 도교육청은 서로 핑퐁 게임만 할 뿐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김선희, 김화민, 박호진 상담사와 성지현 경기지부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20일 만인 20193, 단식을 포함한 모든 쟁의행위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경기지부, 도교육청, 화성시가 3자 협의를 시작했다. 화성시와 도교육청은 MOU1년 단축해 2020년까지로 하고, 종료 후에는 도교육청 인력풀 등재 여부를 협의하기로 했다. 김선희 씨가 당시 결정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단식 멈추지 않을 거예요. 3자 협의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시의회의 추경 예산 승인을 거쳐 이들이 학교로 복귀한 건 20198. 7개월 동안 임금이 없어 실업급여, 상담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기다렸지만 상담사 대부분이 떠나고 현재 15명만 남았다. 생계도 곤란하지만 투쟁 후에도 여전히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201911월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가 화성 청소년상담사 15명을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무 불안정 항목에서 매우 불안정함으로 일반 직군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김화민 씨는 화성청소년상담사분과(노조) 대표로 유일한 남성 상담사로 20178월부터 학교 상담을 시작했다. 작은책(정인열)


그럼에도 이들이 학교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학생들 때문이다. 김화민 씨의 말이다.

취약계층이 많은 한 학교는 아동학대도 많고 아이들도 굉장히 거칠었어요. 이상심리는 경제적인 소득, 학력과 반비례하거든요. 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힘들어하는 곳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상담이 빛을 발하는 경험을 했어요.”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지역교육공동체 구축이라는 경기도교육청의 목표 아래 청소년상담사들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두 기관이 고용안정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청소년상담사들만 고통스럽게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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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12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은수미 시장님, 약속을 지키세요

유미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성남시의료원 지부장

 

 

성남시의료원에서 일하기 전 21년 동안 종합 병원에서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로 일했고 노동조합 활동도 꽤나 열심히 했었다. 탈퇴하면 승진을 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몇 차례 받긴 했지만 탈퇴를 해서 부끄러운 관리자가 되는 것보다 당당한 조합원으로 남는 것이 더 좋았고,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안심이 된다며 출근하기를 기다려 주는 환자들이 있어 행복했다.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병원을 그만두었고 4년 전부터 성남시의료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성남시의료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부터이다. 인하병원과 같은 산별 노조인 보건의료노조의 조합원이었던 나는 2003년 인하병원이 폐업한 후 그 조합원들이 퇴직금을 모아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의료원이 건립되기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켜보며 함께 해 왔다. 오랜 기간 시립 병원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느라 경력이 단절되고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인하병원 조합원들과,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남시의료원은 없었을 것이다. 주민 발의로 시립 병원을 만들기 위해 골목길들을 누비며 가가호호 방문 서명을 받으러 다녔는데 시립병원을 만들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낯선 사람에게 선뜻 문을 열어 주며 서명에 동참해 준 시민들이 성남시의료원의 진정한 주인이다.

성남시의료원은 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계기로 설립되었다. 사진 제공_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오늘은 2019116, 국내 최초로 주민 발의에 의해 세워지는 공공 병원인 성남시의료원의 개원 준비 일을 시작한 지 4년째가 되는 날이다. 이제 개원 준비가 아닌, 개원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지금 성남시청 앞 파란 천막에서 78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을 시작하면서 나의 일상은 천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출근 전에는 시청 앞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말라는 요구를 담은 피케팅을 하고 병원으로 출근해서 병동 분야의 개원 준비를 하고 있다. 병원에서 일이 끝나면 천막으로 퇴근을 한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은 자정을 넘기는 날이 많고 일주일에 하루는 천막에서 숙박을 한다. 당연히 주말도 천막에서 지낸다.

성남시의료원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첫 번째로 가입하겠지만 내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합 집행부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10년 남짓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시간들이 소중하고 자랑스럽지만 개인적인 일상을 많이 내려놓아야 하는 일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는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나는 성남시의료원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부장이 되었다.

법인이 설립되고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인사 보수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아 직원들의 임금이 천차만별이었다. 의료원에 입사해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전에 다니던 직장의 연봉을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했기 때문에 천만 원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병원장은 80퍼센트 이상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칙도 기준도 없는 무늬만 직무급인 임금 체계를 도입하려 했다. 차별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임금 체계였다. 논란이 되자 외부에서 의료원의 임금 체계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단체와 참가자들이 의료원에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노동조합의 설립 주체이고 임금 체계 합의 당사자인 직원으로서 외부의 결정에만 의지한 채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개원도 하기 전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렸지만 개원을 하려면 직원을 뽑아야 하고 직원을 뽑으려면 인사 보수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2년이 넘도록 만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노동조합을 만들어 제대로 된 인사 보수 체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개원을 앞둔 성남시의료원 조감도. (성남시의료원 홈페이지 갈무리)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시민들이 16년을 기다려 온 의료원의 정상적인 개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개원 준비를 최우선에 두고 활동하겠다고 조합원들과도 다짐했었다. 그래서 단체협약 요구안도 일반적인 신규 지부 요구안의 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축소하여 요구했다. 직원들의 복지 혜택에 대한 요구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빨리 마무리하고 개원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첫 교섭 상견례를 시작한 후 사측의 교섭 대표가 4번 교체되었고 교섭 대표가 바뀔 때마다 기존의 합의 사항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의료원장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섭도 장기화되었다. 현 의료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교섭 대표들은 합의서를 쓰지 않았어도 교섭 내용이 녹음되고 있으니 합의서와 다름없다고 기존의 합의 내용들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성남시의료원에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성남시와 성남시의료원이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한 약속이고 노사가 이미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성남시와 성남시의료원의 경영진은 약속도 합의 사항도 모두 뒤집었다. 교섭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개원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경력 산정 기준도 수용했고 개원 준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일부 분야에 한시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되 기간 만료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했었다. 그러한 잠정 합의안을 사측이 하루 만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더니 급식, 청소 미화, 보안, 진료 보조, 환자 이송, 약무 보조, 콜센터, 운전원 등 9개 분야 238명에 대한 비정규직 채용 계획을 노동조합과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238명이면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해당한다.

글쓴이 유미라 지부장이 성남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_ 성남시의료원지부.


잠정 합의안도 파기하고 국가 기관인 노동위원회의 조정 권고안까지 거부하면서 그동안 합의했던 노동조합 가입 범위, 인사 보수 체계도 모두 뒤집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경영권이고 인사 보수 체계는 인사권이라며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1년에 걸쳐 노사가 합의한 내용들을 파기하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만든 인사 보수 체계를 취업 규칙에 담아 개별 직원들에게 강제 동의나 다름없는 공개 서명을 받았다. 이로 인해 3년 동안 개원 준비를 위해 고생해 온 직원들이 입사 당시 인정받았던 경력을 삭감당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노조 가입 범위에 대해 법대로 하자는데 그것도 합의 못하겠다며 조합 가입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려는 것은 헌법으로 보장하는 노동 기본권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시장 임기 내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하겠다고 하면서도 합의서는 쓸 수 없다는 것은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 기본권조차 인정하지 않고 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만들겠다던 시민과의 약속을 너무 쉽게 뒤집어 버리는 성남시와 성남시의료원 경영진의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성남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는 이유이다.

무더운 여름에 시작해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고 이제 곧 겨울이 되겠지만 오늘도 천막으로 퇴근을 한다. 세상에 비정규직으로 채용해도 괜찮은 일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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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12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남해화학 비정규직

 

표적 해고당한 민주노총 조합원들

정인열/ <작은책> 기자

 

 

거북선표 비료로 농민들에게 잘 알려진 남해화학()1974년 설립된 비료 생산 기업이다. 농협 계열사로 연 매출 1조 원이 넘으며(2017~2018년 사업 보고서), 시장 점유율 50퍼센트에 달하는 업계 1위 업체다. 정규직 평균 급여도 1억 원에 이르고(2018년 사업 보고서, 평균 근속 17) 우수한 복지 제도도 많다.

남해화학 여수공장. 작은책(정인열)


하지만 이런 남해화학의 위상 뒤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맡아 최저시급을 받으며 밤새워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이들은 2015년부터 2년마다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남해화학이 하청업체와 2년마다 신규 계약할 때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조건을 없애고, 사실상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낙찰한 신규 업체 새한이 한국노총(하이팩노조·여수종합항운노조) 조합원만 고용 승계 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은 거부한 일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이를 원청인 남해화학이 배후에서 지시한 정황도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지난 10월 1일부터 해고 노동자 29명이 고용 및 단체 협약 승계를 요구하며 여수 공장 안에서 옥쇄 투쟁을 시작했다이들은 모두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이하 지회) 조합원으로길게는 30년 넘게 제품팀에서 비료 포장과 설비 정비를 해 왔다.

공장 내 직원 대기실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가를 부르며 옥쇄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지난 1031, 장비팀 조합원 김중민 씨의 안내로 여수 공장 접견실에서 해고자 구성길, 이완규, 김만수 씨를 만났다. 제품팀과 장비팀은 모두 하이팩 소속이었으나 최근 입찰에서 제품팀은 새한과, 장비팀은 기존 업체인 하이팩과 계약했다. 장비팀 조합원들은 연차 휴가를 내고 공장 밖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다.

남해화학 접견실에서 이인규, 구성길, 김만수, 김중만 씨(왼쪽부터)를 만났다. 작은책(이동수)


남해화학이 새한, 한국노총 간부들하고 모여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완전히 들어내고, 나머지는 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서 최대한 이윤을 가져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완규 씨의 말이다. 지난 1017남해화학 비정규직 집단 해고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남대책위원회(이하 전남대책위)는 기자 회견을 열어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은 지난 105일 한국노총 고용과 단협 승계를 합의하는 자리에서 남해화학 제품팀장과 차장, 새한 총괄부사장, 한국노총 하이팩노조 위원장이 나눈 대화로, 남해화학 측이 민주노총 고용 승계 거부를 지시하고 인사 개입까지 한 정황이 담겨 있다. 공장 안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헌신하던 이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친 것이다. 구성길 씨와 이완규 씨의 말이다.

남해화학에서 잡일은 다 하는 잡부죠. 주 업무가 성수기 때는 포장, 비수기 때는 설비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남해화학에서 제일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최고 장시간 합니다.”

비료 원료들은 해외에서 수입해 대형 선박에 실어 부두에 하역한다. 김중민 씨 같은 장비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장비로 원료를 운반하고 컨베이어 벨트 등 생산 라인에 투입하는 일을 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공장 내로 운반된 원료들은 화학 가공 되어 비료로 만들어지고 다시 포장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완제품이 된다.

정량보다 적거나 많거나 포장이 불량한 것은 파대(포장을 터트림) 작업을 해요. 20킬로그램짜리를 깡통에다 붓고 들었다 놨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전부 다 사람 손으로 골라내고 까대기질(제품을 분류하고 적재) 합니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정에서 이들은 43교대로 근무한다. 성수기에는 16시간 연속 근무하는 경우도 잦다. 비수기인 7~12월에는 사고 위험이 높은 작업에 투입된다. 이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직접 올라가 투입구 밖으로 떨어진 비료를 치우거나 유해 물질이 저장된 창고나 대형 선박의 탱크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한다. 주로 다루는 물질은 비료 제조에 쓰이는 질소, 인산, 칼륨, , 석고 등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료 공급 시설로 직접 들어가 공급 라인 밖으로 넘친 비료를 청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사다리를 타고 몇만 톤짜리 배 밑바닥으로 10미터 넘게 내려가서 삽 하나 들고 방진 마스크 쓰고 청소하고요, 황산 탱크에 들어가서 굳은 황산을 손 드릴로 파기도 하고요.”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 씨는 남해화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에 대해 모두 매우 위험한 유독 물질이다. 특히 탱크 청소할 때 산소 농도가 너무 낮거나 독성 물질 농도가 너무 높으면 질식이나 중독으로 갑자기 사망에 이를 위험이 크다. 피부에 노출되면 화상이나 피부염을 입게 되고, 만성적으로 분진을 마시면 특정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 농도를 체크한 후 작업 여부를 결정하고 투입 시에는 산소가 공급되는 송기 마스크와 작업복을 착용하고 작업복 품질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현장은 산업 안전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김만수 씨의 증언이다.

주로 방진 마스크를 많이 사용했고 사전 산소 농도 측정 여부는 저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안전 교육은 전무하고요. 원청은 우리가 작업 허가서에 서명을 했는지만 확인합니다.”

현장에는 냉방 장치도 없어 여름이면 땀범벅이 되어 일한다. 야간 노동으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30년을 일해도 신입 직원과 똑같이 최저 시급을 받는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희망이 없다는 점이다. 이완규 씨의 말이다.

한 달에 100~150시간 잔업을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애들 뒷바라지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제 나이도 50대 중반이 넘어서 노후 자금도 준비해야 하는데.”

100시간 이상 잔업 및 야간 노동에 상여금 600퍼센트를 합쳐도 정규직 임금의 30~4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복지도 크게 차이가 나는데, 대표적으로 정규직은 모든 자녀의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받지만 비정규직은 1년에 60만 원이 고작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여수 지역 계층 간 격차로 이어진다. 구성길 씨가 말한다.

공단 정규직 자녀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이렇게 따로 다녀요. 회사 버스가 등하교 시켜 줘요. 어릴 때부터 분리되죠.”

이완규 씨는 자녀들에게까지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솔직히 공부를 좀 못해서, 빽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고생하는 건 숙명으로 알랍니다. 그런데 집에 있는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냐는 말이에요. 가족들만 생각하면 정말 피눈물이 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마다 하청 업체와 근로 계약을 맺었지만 고용 불안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남해화학이 입찰 조건으로 고용 조건 저하 없는 고용 승계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고용 승계 조건을 없앴고 최저가 입찰로 유진피엘에스와 계약을 맺었다. 유진피엘에스는 교섭 해태, 임금 체불, 부당 노동 행위를 일삼고 어용 노조인 제2노조를 설립해 기존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했다. 정규직 노조와 당시 상급 단체였던 한국노총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남해화학 생산 라인 현장에 피켓이 걸려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지회는 한국노총의 한계를 느끼고 2016년 민주노총으로 조직을 변경했다. 2017년 여름, 지회는 농협 본사와 청와대를 오가며 53일간 파업했고 결국 유진피엘에스를 입찰에서 탈락시켰다. 그런데 2년이 지나 이번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만 표적 해고됐다. 지회는 2년마다 고용 불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투쟁에서 확실하게 매듭짓고 싶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남해화학의 행태를 규탄하며 불매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팔짱만 끼고 있다. 김만수 씨가 말한다.우리한테 양보하라고만 해요. 최저 시급 받는 사람이 양보할 게 어디 있습니까?”

연 매출 1조 원이 넘고 이익 잉여금 33백억 원을 보유한 남해화학이 양보해야 할까, 아니면 최저 시급 노동자가 양보해야 할까. 상시적이고 꼭 필요한 업무인데 왜 비정규직을 쓰는 걸까. 근본적인 물음들이 떠오른다.

* 12월호 인쇄 직전, 지회는 해고자 전원 고용 및 단협 승계 타결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1119, 옥쇄투쟁 51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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