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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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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5월호

일터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작은책기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전문 성악인들과 연주자들이 경기도 양주 시내 한 교차로에 서서 민중의 노래(영화 <레 미제라블> 삽입곡)’를 부른다. 이 곡은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 때 광화문에서 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다.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데 이들은 무슨 일로 길거리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양주시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이하 양주시립예술단) 단원들이다. 그런데 지난 11일부로 60명 전원이 해촉됐다(합창단 25, 교향악단 35). 예술단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양주시가 사업을 종료하고 양주시의회는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합창단은 2003년에, 교향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어 시민들에게 해마다 20회 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갑작스런 사업 종료로 시민들은 올해부터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양주시 교향악단, 합창단 2016년 송년음악회 모습.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양주시립예술단 단원이자 공공운수노조 양주시립예술단지회(이하 지회) 조합원 김용원 씨(37)와 송수진 씨(31)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았다. 합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은 김용원 씨는 2017년에, 교향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송수진 씨는 2016년에 각각 모집 공고를 보고 입단했다.

시립(단원)이라는 것은 (음악 전공자로) 거의 최고죠. 공인된 느낌? 레슨도 많이 들어오고 경쟁률도 엄청나고요.”

▲ 2016년 양주시 교향악단합창단의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홍포 포스터.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이들은 정기연주회 외에도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파크 콘서트등의 무대에 서며 양주시 곳곳에서 연주를 해 왔다. 연주회를 위해 주 23시간씩 함께 모여 연습을 하고 받는 임금은 50만 원. 타 지자체 예술단보다 20만 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상임단원들은 지방공무원 8급 대우에 복지카드도 나오고요, 저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계약직이죠.”

2회 연습에 월 50만 원을 받는다면 임금이 많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합주하는 시간말고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노동시간이 있다.

합창단은 보통 (곡을) 외워 오라고 해요. 가사가 다 외국어인데 내 시간 내서 외워야죠. 어려운 곡들도 있는데 그때는 스트레스죠.”

악기의 경우 악기 유지관리비와 개인 연습실 사용료 등 지출이 크지만, 양주시에서는 보조해 주지 않는다.

한번은 연습 때 만든 단이 무너져서 튜바가 쓰러졌어요. 해외에서 수리해야 하는데 천만 원 정도 드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관광과(담당 부서)에 얘기를 했거든요. 시는 예산이 없다고 해서 결국 50만 원 받고 끝냈어요.”

단원들은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임금인상이나 상임단원으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주를 해왔지만 점점 참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교향악단에 부임한 김OO 지휘자는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향악단을 데리고 다른 단체명으로 시와 관련 없는 외부 연주를 했다. 2014년에만 연 10회 이루어졌고, 2015년과 2016년에는 지휘자의 아들들이 포함된 음대 입시생들의 협연에도 동원됐다.

관객이 학부모들로 열 명도 안 되고, 학예회 수준이었어요.”

김 지휘자는 찬성한 단원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지휘자가 있는 데서 거수로 투표가 이루어져 불이익을 받을까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지회는 주장하고 있다. , 지회는 시외 공연을 위해 양주시교향악단 근무시간에 외부 공연 연주곡을 연습하는 날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단원들은 김 지휘자에게 시청 모르게 하는 연주는 하지 말 것’, ‘협연 학생들에게 돈 받지 말고 양주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하여 양주에서 협연자 음악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양주시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이지만 시는 예술단에 대한 기본 관리·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예술단을 총괄하는 단무장은 역시 시외 연주를 강요했다.

양주시립교향악단 송수진 씨와 합창단 김용원 씨.  작은책(정인열)

2017년 참다못한 수석단원들이 문화관광과에 찾아가 호소했다. 송수진 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대요. 심지어 누가 찾아갔는지 지휘자한테 전했고요.”

시외 공연에 반대한 단원들은 경고를 받거나 평정(오디션)으로 수석단원에서 일반단원으로 강등됐다. 이들은 평정 부정심사 의혹도 제기한다.

평정 점수를 당사자한테 공개 안 해요.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점수를 줬는지 저도 알아야 뭘 잘못했는지 아니까요. 다른 데는 다 알려줘요.”

김 지휘자가 레퍼토리도 다르게 구성한 사례도 폭로했다. 특정 단원에게 어펴운 파트를 집중시켜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송수진 씨가 말한다.

지휘자가 트럼펫 수석을 자르려고 마음을 먹고 트럼펫 솔로만 세네 줄 나오는 서곡을 2개 넣었어요. 틀리면 실력 미달로 어떻게 하려고 했었나봐요. 우리 트럼펫 주자들 따로 모여서 진짜 독기를 품고 연습했죠.”

보통 서곡-교향곡으로 구성되는 연주회는 지휘자의 권력으로 서곡이 2개인 이상한 구성이 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단무장이나 담당 부서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지회는 밝혔다.

합창단 단역시 고통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부임한 이OO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막말과 고성, 반말을 일삼았다. 김용원 씨가 말했다.

저한테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질렀어요. 지휘자가 너무 소리질러서 지휘자님,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했거든요. 어린이합창단하고 협연할 때도 꺼져!’ 하는 거예요.”

양주시 합창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합창단 단원들도 교향악단 단원들처럼 지휘자에게 시정 요구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거의 대부분 단원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시에 제출했지만 이 지휘자는 대표격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러 간 단원 4명에 대해 해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해촉당하면 다른 데 시험 볼 때 불이익을 받아요.”

해고 위협을 느낀 단원 3명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사임하고 김민정 씨만 버텼다. 이 지휘자는 김민정 씨를 연습과 공연에서 두 달간 배제시켰다. 김용원 씨가 증언한다.

매일 저희 연습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요. 혼자 배제돼서 연습실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누나도 울었죠.”

합창단 단원들은 2018918일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양주시립예술단지회를 설립했다. 김민정 씨는 노조 지회장이 됐다. 곧이어 교향악단 단원들도 노조에 가입했다.

시의회는 양주시립예술단이 20181212일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연간 일정을 마치자 곧바로 양주시립예술단 운영예산 전액(75천여만 원, 1218)을 삭감했다. 이어서 시는 예술단 전원에게 1226일 해촉 통보를 했다.

▲ 송수진 씨가 양주시로부터 받은 해촉통지서.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양주시예술단지회. 

양주시립예술단은 전원 비상임단원으로 해마다 평정에 통과하면 자동 재위촉됐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시는 단원들을 프리랜서처럼 위촉했다. 하지만 이 아무개 단원이 낸 부당강등 구제신청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20186, 201811).

지회는 2018년 송년음악회 준비 때부터 시와 시의회가 예술단 사업을 종료할 계획이었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공연 2주 전에는 포스터가 나오고 시 전역에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성호 시장은 홍보 결재를 공연 7일 전에 했고, 협조 공문 발송은 6일 전에야 시작되어 홍보 기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항상 관람객으로 꽉 들어차던 객석이 송년음악회에는 100석도 채우지 못했고, 이를 빌미삼아 정덕영 시의원은 예산 삭감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회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촉됐다고 주장한다.

양주시에 노조가 하나도 없어요. 청소용역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 시장이 노조 없애면 처우 개선해 주겠다 했대요. 공공연히 다 퍼진 얘기예요.”

▲ 양주시 홈페이지. 양주시와 시의회는 단순히 사업 종료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양주시 홈페이지 갈무리.

황영희, 김종길 의원도 예산 심의 때 노조 만든 곳에 예산 세워 줘야 하냐며 노골적으로 노조를 반대했다. 하루아침에 해촉 당한 단원들은 해촉 철회, 양주시립예술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이들의 장기인 음악으로 시위했다. 이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지자 양주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꾸렸고 전국 예술단체들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서 양주시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예술단체들도 다 노조가 있더라고요.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서울시향, 성남, 제주, 광주 전부. 솔직히 놀랐어요.”

지회의 요구는 양주시민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뿐이다. 지휘자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예술단이길 거부하고, 폭언과 갑질에서 벗어나 음악에만 집중해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단이 되고 싶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이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음악으로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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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한국음료지회 조합원

 

 

지방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던 나는 200812월 전라북도 남원시에 OEM(주문자위탁생산방식)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음료 공장의 식품연구소 대리로 입사하게 되었다.

한국음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_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는 자사 브랜드 없이 OEM사의 신제품 개발 및 처방 개선을 해 가며 자체 생산을 유도하여 매출을 이어 갔으며 롯데칠성, 팔도, 매일유업, 남양유업, 광동제약, SPC 등 국내 많은 기업들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한국음료는 지난 20103월 엘지생활건강 음료사업부인 코카콜라에 인수되었고, 한국음료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결정은 엘지생활건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인수 후 코카콜라 70퍼센트, 해태음료 10퍼센트, OEM사의 매출을 20퍼센트대로 유지하던 중 OEM 제품의 생산을 철수하라는 엘지생활건강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맡고 있던 OEM사의 신제품 개발 업무는 없어지게 되었으며, 현장 일은 전혀 모르던 내가 배합, 충진, 입고검사 중 택일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을 때 고심 끝에 배합 업무를 선택하였다. 주간 8시간 근무에서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과장 직급을 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생산현장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비 관련 업무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현장의 디테일한 업무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도 찾아가는 등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비와 공정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산 중이던 배합액 일부를 폐수장으로 흘려보내 징계 위기까지 갔던 일, 첨가물 용해 시 밸브 조작 미숙으로 용해 중이던 첨가물탱크가 넘쳐 났던 실수 등을 경험하면서 세상사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더 이상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묵묵히 일만 하던 우리도 엘지의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과 부푼 마음으로 엘지라는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게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엘지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대기업 손주뻘 되는 자회사가 되었으니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겠으나,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한국음료 사측은 1)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 2) 지켜지지 않은 희망고문 3) 신규 채용은 손에 꼽을 정도며 정규직도 기댈 곳 없고 급기야 노노갈등까지 우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 각각의 포지션에서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행함에도 회사에서는 개인의 업무 외에도 잡다한 일들로 직원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지시에 따르라는 일방적인 회사의 태도에 상실감과 자괴감에 위축이 되었다.

2) 코카콜라에서 인수 후 안내를 위해 내려온 인수팀, 공장 업무를 맡았던 엘지생활건강과 코카콜라 책임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짧게는 3, 길게는 5년 내에 코카콜라 임금의 80~90퍼센트 수준까지 올려 주겠다던 약속, 복리후생 또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맞춰 주겠다던 약속들은 우리에게 희망고문이 되었다.

3) 서서히 아주 서서히 100명이 넘던 정규직 직원이 47명만을 남기고 도급직으로 바뀌었으며 라인을 하나 증설했음에도 신규 채용은 없었다. 경비직, 조리직, 생산직 중 여직원 전원, 물류직군까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모조리 도급화하였다. 

위 직군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배합과 충진업무를 제외한 후공정 6명 업무도 도급업체로 모두 넘어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선 한국음료 직원들에겐 이제 충진, 배합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수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사측은 고정비 중 인건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결국 선택권 없는 직원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으며, 인수한 지 9년이 다 되도록 근로조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에, 이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멈추고자 자구책으로 지난해 4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 전북지부의 문을 두드리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북 남원 한국음료 공장 입구에서 노동자들이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2019110). 사진제공_ 한국음료지회


한국음료지회 2018101일을 시작으로 투쟁 기간 184, 단식농성 28일 경과. 드디어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천막을 걷었다.

인간 존중, 정도 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는 LG그룹을 상대로 한국음료지회 조합원만으로는 이토록 장기간의 투쟁도 역부족이었음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단식농성까지 하는 모습을 본 많은 분들이 사측의 부당함에 함께 맞서 연대해 주시고, 우리의 안타까운 싸움이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고, 시민단체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자발적인 시민들의 성금으로 메인 일간지 1면에 엘지생활건강 규탄 광고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6개월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LG그룹이 한국음료지회 노동조합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LG 자본 규탄 및 한국음료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모이고 있다(20181110). 사진제공한국음료지회


장장 반년이 넘는 정말 힘든 투쟁이었다. 혹자는 궁금해했다. 한국음료 조합원 29명의 이 처절한 6개월간의 싸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사실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그동안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우리 한국음료지회 노동자들이다. 이젠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며 모든 노동자들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퇴근길 선전전(2018115) . '' 피켓을 든 사람이 서종원 씨사진제공_한국음료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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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4월호

작은책 법률 상담소

 


임차인이 꼭 알아야 할 주택임대차보호법


양성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세입자분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주택임대차보호법

ⓒ이동수


내 집이 아닌 전세나 월세 형태로 거주하는 세입자분들은 임대차 기간 동안 집주인인 임대인과 적지 않은 문제들을 겪게 됩니다. 일례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당장 집을 구하지 못해 계약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지만 임대인이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으니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겪게 되는 경우 임차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상대적으로 열악한 입장에 있는 주택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임대차계약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 내용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세입자들이 겪는 문제 중 대표적인 유형은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셋집이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입니다.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하면 집주인은 도리어 법대로 하라면서 집이 나가야 돈을 돌려줄 수 있지 않냐고 역정을 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세계약이 종료된 후 이사를 가기 전 임차권 등기를 해 놓는 방법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아니한 경우 임차인은 임차주택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 등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시에 임차인이 임차권등기 이전에 이미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그 우선변제권은 그대로 유지되며, 임차권 등기 이후에는 이미 취득한 우선변제권을 상실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임차권 등기 신청을 하면 이사를 가더라도 전세보증금을 다른 일반 채권자들에 비해서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임차권 등기 신청 절차나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 드리지 않겠지만 통상 등기 신청 후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이사를 가기 한 달 전에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해서 이사 직전까지 결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동수


두 번째 방안은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 소요되며 임대차계약 사실, 보증금 지급 사실, 임대차 종료 사실만 제대로 입증된다면 패소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물론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내용증명 등을 보내 그 지급을 요청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임대인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승소할 경우 상대방에게 소송 비용 일부를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1년만 계약한 임대차계약, 1년을 더 임차하여 살고 싶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임대차 기간을 1(2년 계약 후 다시 1년 연장 계약을 한 사안도 동일함)으로 했는데, 여러 사정의 변경으로 인해 계약기간을 1년 더 연장하고 싶은 경우입니다. 보통 집을 계약하면 2년 단위로 하는데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2년 미만 즉 1년만 계약하더라도 세입자는 최소 2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집주인은 1년만 계약한 세입자에게 2년 거주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세입자인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1년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다시 1년의 계약 갱신을 원하면 추가적으로 1년 거주가 가능한 것이고, 임차인이 원하지 않으면 1년 계약이 끝나는 즉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동수


앞서 임차인이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살펴봤는데요, 임대인과의 관계에서 주택임대차 문제로 부당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상황을 풀어 갈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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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4월호

일터 탐방_ 신영프레시젼

 

공포의 택배 상자

정인열/ <작은책> 기자

 

 소통은 성공의 기초적 수단이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 있는 표어다. 신영프레시젼은 LG전자 스마트폰 금형 설계와 제작, 사출부터 조립까지 일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회사는 소통을 강조하는 표어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대량 해고하고, 20년간 이어 온 사업도 정리하겠다며 250명이던 노동자들을 다 내보냈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201812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노동자들 50명이 서울 독산동 사옥에 남아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2018127일부터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 김정숙, 이순영, 최진숙, 이희태 씨를 지난 35일 사옥에서 만났다. 사무실 한쪽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있는 표어.   작은책(정인열)

 

등기를 안 받기 시작하니까 회사에서 꼼수를 써서 택배를 보낸 거죠. 택배는 수취 확인 안 하고 놓고 가도 되니까요.”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은 해고 통지서. 처음 회사는 등기우편으로 해고장을 보냈다가 수령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기자 수취 확인이 필요 없는 택배로 보냈다. 발송인 난에도 회사명을 기입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받아 본 노동자들 73명은 20187월에 해고됐다.

▲ 생산 공장과 대표이사실이 있는 신영프레시젼 사옥.  작은책(정인열)

 

신영프레시젼은 자본금 12억 원(1999~2001)으로 시작해 15년간(2003~2017) 연평균 매출 1500억 원 이상, 연평균 당기순이익은 2016년까지 91억 원에 이르는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다 LG전자가 2014년부터 베트남 등 해외 공장을 가동하면서 스마트폰 국내 생산량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의 국내 생산량이 10년 만에 5분의 1로 줄면서(한겨레, 2019213일 보도) 신영프레시젼도 물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2017년 처음으로 약 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회사는 20179월부터 유급순환휴업,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축했다. 하지만 분회는 정리해고도, 청산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희태 분회장이 말했다.

 

▲ 불 꺼진 신영프레시젼 공장.   작은책(정인열)

 

단 한 사람도 회사 상황을 설명하거나 미안하다는 자리조차 없었어요. 여기 누님들 정말 10,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제가 봤으니까요. 그런데 해고장만 배달됐거든요.”

신영프레시젼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으로 이 분회장만이 유일한 남성 조합원이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녀차별때문이었다. 사출 업무를 하는 생산부 노동자들은 주야 2교대로 일을 하다 2017년부터 주야 3교대로 일할 것을 통보받았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최저시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었다. 이직하려는 남성 직원들이 생기자 회사는 남성에게만 임금 보전을 해 주었고, 여성들은 계속 최저시급을 적용했다.

남녀차별 불평등하다고 면담 신청을 했죠. 하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한밤중에 관리부장한테 단체로 문자 폭탄도 보냈지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각자 방법을 알아보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로 가서 노동 상담을 받았다. 임금차별부터 그동안 쌓였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생산부 노동자들은 사출기에서 물건이 나오면 컨베이어벨트에 일렬로 서서 분류, 조립, 검사, 포장을 했다. 사출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실내 온도는 40도에 이르렀고 화상 사고는 일상이었다. 휴대폰 반조립을 하는 제조부는 시간당 400~450개를 생산하는 것이 정량이었지만 관리자는 매일 목표치를 높여 700~800개까지 해야 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서 일하고 점심시간에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일한 시간은 임금으로 받지 못했다. 10년을 일한 숙련자라도 신입 사원과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았다.늙은 소는 일을 못하니 채찍질 해야 한다, 자기들이 공주인 줄 안다는 등 막말도 들었다.

얘기하다 보니까 눈물콧물까지 다 흘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막 승질나서 욕도 나왔죠(웃음).”

회사와 달리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는 이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같이 고민해 주시고, 해결책도 같이 찾아 주시고. 우리 의견 존중해 주는 게 회사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신영프레시젼 노동자 이희태,김정숙,이순영,최진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그렇게 201712,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신영프레시젼분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에 노동인권을 포함한 현장 개선안과 영업망 확보 및 사업 다각화 등 회사 경영 발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감행하고 청산 선언을 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잠도 못 자고 시간에 쫓겨 생활한 반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지회에 따르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연봉 3억 원에 지난 20년간 배당금으로만 860억 원을 받았고, 또 사측 교섭대표는 청산 시 부채를 정리한 후 자산을 현금화한 금액만도 약 75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노조에 밝혔다. 게다가 회사는 경영 발전 대책은 내놓지 않고 2012년부터 업종과 상관없는 골프장 사업에만 총 477억 원을 투자했다.

회사가 뒷짐만 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열심히 발로 뛰어다녔다. LG전자 여의도 본사, 목동과 성수동의 신창석 회장 집, 춘천의 로드힐스 골프장, 청와대 및 정부 관계부처에 각종 집회까지 다녔다. 이순영 씨는 운동화 밑창만 세 번을 갈았다. 이들은 51일 노동절이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고 멀리했던 사람들이다. 사측 관리자들이 분회가 생기기 전 금속노조에 직가입한 몇몇 직원에 대해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금속노조 직가입 조합원)은 알게 모르게 수군거리고 자꾸 뭔가를 전파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이상한 간첩이었어요. 그래서 관리자한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은데요? (노조하는 사람들이란) 참 이상하네요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랬던 이순영 씨는 부분회장이 되어 앞장서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이규철 사무장(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이 소식지를 돌리잖아. 그냥 휭 지나쳐 왔지. 그런데 회사가 이렇게 갑자기 엎어질지는 몰랐지. 일단 고용이 안정됐으니까. 월급 잘 나오고 했으니까.”

독산역 주변에 설치된 노동 상담소 천막을 보면 피해 다녔던 여성노동자들은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도 참석해 율동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성사업장 구조조정에 아무 대책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레이테크코리아, 성진씨에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얀 소복을 입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세계여성의날 집회에 참석해 율동을 선보인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3월 8일).작은책(정인열)

 

세계여성의날 행진을 하는 모습. 이들이 소복을 입은 이유는 해고됐기 때문이다(3월 8일). 작은책(정인열)

 

자동차업계, 조선업계도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엄연한 가장이거든요. 여성노동자들을 정말 하찮게 생각하는 건지.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한다 어쩐다 하잖아요? 있는 일자리도 못 지키면서 진짜.”

늙은 소라고 무시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자본가들의 젠더의식은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정부 역시 여성노동자를 가장으로 인정하고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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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일터탐방_ 유성기업

 

내 동생 광호가 왜 그랬을까

정인열/ <작은책> 기자

 

일은 동료와, 잠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뭐! 잘못되었습니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손팻말 문구다.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로 알려진 대표적 사업장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투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투쟁을 이기는 중이라고 평한다. 유성기업 노동자 김성민 씨와 국석호 씨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현대·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회사다. 충북 영동과 충남 아산에 공장이 있다. 김성민 씨는 1993년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지금 그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지회) 사무장이다. 노조파괴가 발생한 8년 동안 지회장만 두 차례 했다.

국석호 씨는 1994년에 입사했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한광호 씨는 이듬해에 형을 따라 입사했다.

▲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노동자들은 1400도가 넘는 용탕에서 쇳물을 녹였다. 금속을 깎고 돌리고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일했다. 밤샘 노동에 매일 잔업을 하고 휴일에도 일했다. 그러다 1999년 한 동료가 야간근무를 마친 후 통근버스 안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도 노동자 5명이 급작스런 죽음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회는 2009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여 201111일 시행하고 월급제로 전환하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시행 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와 협상하기로 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회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20115182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즉시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 깡패 약 200명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조합원 500여 명이 아산공장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석 달을 노숙했다. 용역 깡패는 대포차로 조합원 13명을 치어 다치게 했다. 경찰은 대치 중이던 조합원들을 전원 연행했다. 조합원들은 다시 모여 622일 아산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용역은 돌을 던지고 소화기를 집어던졌다.

저쪽에서 서치라이트를 켜면 우리는 앞이 안 보이잖아요. 주먹만 한 돌이 슝슝 날아와요. 소화기 뿌리다가 막 집어던지니까 굉장히 무서웠죠. ‘소리 나면 거기 맞은 거거든.”

두개골이 함몰되고 광대뼈가 부서지는 등 심하게 다친 조합원만 6. 고작 2시간짜리 부분파업에 회사는 잔악하고 집요하게 대응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제출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2011428)’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봉 7천만 원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하고 있다고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 원고는 창조컨설팅이 써 준 것이었다. (연봉 7천만 원은 입사 25~30년차 노동자가 주말, 휴일, 잔업, 밤샘 노동을 해야 받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임금이다.)

 

가학적 노무관리

직장폐쇄 후 약 두 달 만인 20117, 사측은 제2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지회가 현장에 복귀하자 사측 직원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조합원들의 화장실 가는 시간, 전화 통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등을 체크해 시급에서 제했다.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시키고 승진, 작업배치 등에서도 불이익을 주었다. 징계와 고소·고발도 끊임없이 했다. 가학적 노무관리였다. 지친 조합원들이 하나둘 제2노조로 빠져나갔다. 지회는 이에 반발해 2012~2014152일간 굴다리 농성, 259일간 22미터 높이 광고탑 농성을 벌였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를 오가며 천막농성을 하고 대전고법, 대전고용노동청 등 유관기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2노조로 넘어간 조합원 설득도 포기하지 않아, 2014년부터는 제2노조보다 지회 조합원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형, 동생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분열되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그 사람들 잘 먹고 잘살 때 우리는 가족이 고통받았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요. 아내들끼리는 시장에서 마주치면 싸움 나고, 학교에서는 애들끼리 싸우고. 가정부터 이리 되니까 삶이 다 무너지는 거야.”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조합원들의 심리 건강을 조사한 결과 43퍼센트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명됐다. 일반인보다 6~7배 높은 수치였다. 국석호 씨와 한광호 씨도 포함됐다. 그리고 20163, 국석호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저는 대전고법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는 이리 될 줄 알았지만, 왜 내 동생 광호가 그랬을까? 멀쩡하던 놈이?”

 

한광호 열사

한광호 씨는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평소 말수도 적고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던 터라 국 씨는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장례 치르면 개죽음이라더라고. 노조파괴로 지금 조합원들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결심을 했죠. 광호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이 싸움 끝내야겠다고.”

한광호 열사 꽃상여를 메고 양재동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 영정을 들고 있는 이가 국석호씨다( 20166).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지회는 열사 투쟁에 돌입했다. 회사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시신은 냉동고에 둔 채 서울시청으로 올라와 분향소를 차리고 100리터 종량제봉투에 들어가 노숙을 시작했다. 한광호 열사가 죽은 지 90일째 되는 날, 지회는 꽃상여를 메고 현대자동차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으로 분향소를 옮겼다.

 

왜 현대자동차인가?

노조파괴의 핵심에는 현대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는 이미 한광호 열사가 죽음을 택하기 두 달 전인 20161월에 밝혀졌다. 당시 은수미 국회의원은 현대자동차 최○○ 이사대우가 부하 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공개했다.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제2노조 가입 인원 목표를 주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했으며, 매주 1회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을 본사로 불러 합동 회의를 했음이 밝혀졌다. 현대자동차는 왜 그랬을까? 김성민 사무장은 말한다.

부품사들을 일률적으로 정리하고 나서 부품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 한 거라고 보거든요. 왜냐면 부품사들은 파업을 통해 노동권을 쟁취하는데 이런 데를 없애 버리면 현대차 입장에선 조용하다 이거예요.”

국석호 씨는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의 사과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지회는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한광호 열사는 노조탄압에 따른 중증 정신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 현재까지도 유성기업지회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작은책(정인열) 

 

내가 왜

국석호 씨가 서울사무소에서 노숙할 때였다. 하루는 내가 왜라는 노래가 나왔다.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꽃다지-

김성민 씨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할 때였다.

맨날 듣던 노랜데 그날따라 딱 그런 거예요. 저는 애들과 놀러 가고 싶고 가족과 저녁 먹고 싶은 평범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 선택이었거든요. 자본에 굴복하고 살았으면 그걸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불응하고 살려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런 생각 들 때면 힘들었어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검찰, 청와대, 고용노동부, 경찰이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그룹을 비호했지만 지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하나씩 이겨 나갔다. 2노조 무효 판결(20144), 유시영 대표 구속(20172, 노조파괴 혐의로 16개월 실형 선고),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대표와 김주목 전 전무 구속(20188, 노조파괴 혐의로 징역 12개월), 조합원 해고 무효 확정 판결(201810, 대법원), 한광호 열사를 포함한 사망 조합원 8명에 대한 보상.

임금도 일단 안 주고 보고, 해고도 일단 시키고 보고.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니까 이긴 거예요. 그냥 쌩으로 8년을 기다리라고 하면 저도 못 할 거 같아요. 우리가 뭉쳐서 하나하나 해 오다 보니 8년이 지난 거지.”

전에는 일하다 커피 한잔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해서 비참했어요. 지금은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이래요. 우리가 이겨 가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 유성기업지회 김성민 사무장(왼쪽)과 한광호 열사의 형 국석호 씨(오른쪽). 작은책(정인열) 


간절한 바람

지회의 요구는 3가지다.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어용노조 해체, 마지막으로 사태의 발단이 된 심야노동 철폐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9년 단체협약이 복원되어야 한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을 자고 싶다. 이들의 바람은 여전히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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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2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내가 보육 교사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이현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 대표지부장


 

나는 보육 교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육 교사를 시작할 무렵의 나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리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 피하거나, 조용한 구석을 찾아 들어가는 집순이 기질이 매우 강하기도 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보육 교사를? 물음표를 그리는 사람 여럿 봤다.

내가 보육 교사를 하게 된 건 교회 전도사님이 한 달만 지인의 어린이집에서 그저 아이들만 돌봐주면 된다며 간곡히 부탁한 때문이었다.

당시 나 역시 미디어의 폐해로 아이 돌봄 그까짓 거 아이들하고 행복한 미소를 띄며 아름답게 놀아 주면 되는거 아니야?’라고 감히 생각해 버렸고, 그게 화근이 되어 어린이집에 발을 들였다. 첫날, 30분 만에 9명이(4살 초과 보육 인원) 번갈아 가며 10초마다 비명을 지르며 울기 바빴고, 그 와중에 불편함을 못 견디는 아이들은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가며 물고 뜯고 맛보는(?) 실력 행사를 했다.

어흥이로 돌변한 아이 두 명을 품 안에 넣어 훈계(?)를 하고 있자니 그 옆에서 한 아이가 응가를 하고 손가락으로 만지작(벽에 안 바른 게 신의 한수였다), 또 다른 아이는 쉬야 마렵다 화장실이 급하다 소리치고, 내 품 안에 넣은 어흥이 둘은 계속 실력 행사를 노리고, 실력 행사 당한 아이들은 여전히 울고, 나도 울고.

전쟁이 나도 이 정도는 아닐만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예쁘지도 어른의 말을 잘 듣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고 당일 도망이 절실했으나, 나를 그 전쟁터에 소개해준 전도사님의 을 생각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이를 정말 악물고, 정확히 3개월만 일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다시는 어린이집 일 따위는 안 하고 싶었고, 30분간 이루어진 상황에 나를 밀어 넣은 전도사님이 너무 미웠다.

나도 내가 보육 교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아이 은서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죽어도 몰랐다. 내가 애증의 보육 교사를 하게 만든 그아이 은서, 그아이는 예쁜 얼굴의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여섯 살 아이였다. 누구와도 소통이 안 됐고, 언제나 같은 머리 모양에 손가락마다 붙인 밴드가 하나라도 헐거워지면 있는 힘껏 소리를 치며 불편감을 호소하던 아이였다.

청소하던 볼풀장에서 3개월만 버티자 속으로 날짜를 세고 있던 어느 날, 그아이와 나 단둘. 10초 남짓한 짧은 그 순간 그아이 은서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씽긋 웃어 주던 그 찰나. 그 찰나가 나를 교사로 만들어 버렸다.

마음속에 불이 확 일어났다고 표현해야 하나. ‘, 내가 잘 몰랐나 보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몰랐나 보다. 만약 제대로 알았다면 어쩌면 더 많은 표현들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냥 들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1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어린이집 일이 어렵다.

12년 전과 다름없이 어린이집은 교사 한 사람이 정말 많은 수의 아이들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환경에서 보통 기본 3가지부터 28가지의 다른 사건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게 보통이고 이 상태가 매일 10시간씩 유지되는 현장이다. 몸이 100개였으면 좋겠다는 말이 매일 매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전쟁 같은 점심시간, 먹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 여럿과 사투를 벌여야 하고, 그럼에도 먹여 달라는 양육자와 먹기 싫으면 놔두라는 양육자의 의견도 들어서 적용시켜야 하고, 이런 과정에서 양육자의 요구와 아이들의 거절할 권리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양육자 혹은 아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까지 모두 동시간에 일어난다.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유일한 시간인 낮잠 시간. 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 일들을 처리한다. 매일같이 하지 않으면 밀려 버리는 일들을 중심으로, 각각 감사하는 기관이 요구하는 내용의 서류를 쓰고 교구들을 만들고, 청소와 정리를 한다.

보육교사가 보육노동과 별개로 매일 작성해야하는 업무들.  사진_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보육 교사는 매일같이 입주 청소 버금가는 청소로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하루의 마무리는 실력 행사한 아이와 실력 행사 당한 아이들의 부모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일. 원장과 일부 양육자들의 감정을 받아 내는 욕받이가 되기도 한다.

그날 그 은서라는 아이의 미소가 아니었으면 나는 3개월을 채우고 도망갔을 것이다. 어린이집 일이라는 건 정말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요구되고 100개의 몸이 할 일을 고작 몸뚱이 하나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직업이다.

이런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게 현재 23만의 보육 교사들이며, 그들 또한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장의 갑질, 부모의 갑질, 행정기관의 갑질, 잠재적 아동 학대라는 편견의 갑질 속 위태로운 교사의 삶에 그나마 버팀목이 되는 것이 보육노조이다.

▲ 아동 학대 오해로 자살한 보육교사를 기리는 분향소.  사진_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은서와 같은 아이들의 미소에 홀려 보육 교사라는 직업을 유지하기엔 너무 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시스템에 의해 편견에 의해 타의적으로 그 삶을 끊어 버리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교사들은 말한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저는 아이들이 좋았을 뿐입니다.”

전 그저 아이들만 돌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가, 원장이 싫어서 전 떠나렵니다.”

어흥이가 돼 버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에게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원장님이 부모에게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당장 나가래요.”

넘어지는 아이를 잡다가 팔이 부러졌는데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요.”

아이들 장난감 만들다 손가락이 잘렸는데 다쳤다고 화를 냈어요.”

아이는 재미있게 놀았는데 상처가 생긴 줄 교사가 몰랐다면서 부모님이 무척 화를 내셨어요. 저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까요?”

원장님이 임신도 순서대로 하래요.”

정말 몸이 힘들어 쉬고 싶은데, 원래 어린이집에는 방학 빼곤 쉬는 날이 없대요.”

아이가 또래보다 많이 달라서 부모님께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원장님이 원아 떨어진다고 말하지 말래요

이 아우성 속에 보육 교사는 혼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이제는 보육노조가 같이하기 위해 조금 더 단단하게 뭉쳤다. 그리고 힘 있는 걸음걸이로 은서와 같은 아이를 만나 도망갈 궁리를 접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려고하는 교사들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가 쉬워 보이는가? 그렇다면 어린이집으로 오시라! , 100명분은 할 각오를 하시고! 그 뒤엔 보육노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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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12월호

일터 탐방_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조사 노동자

 

매우만족이 아니면 우린 끝이에요

정인열/ <작은책> 기자

 

 

삼성화재 애니카는 국내 자동차 보험 시장 점유율 1위다. 애니카에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즉시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있다. 타 보험사는 위탁받은 정비 공업사 직원이 출동하지만 애니카만은 2009년부터 에이전트라 불리는 사고조사 전문 인력을 두고 출동시켰다. 사고조사 노동자들은 사고가 접수되면 고객과 통화 후 15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사건의 경위와 피해를 조사한다. 먼저 고객을 안심시키고 다친 곳이 있는지, 차량 상태는 어떤지, 사고는 어떻게 났는지, 차량 파손 부위, 고객의 요청, 고객 차와 상대 차의 주장, 블랙박스 확보 여부 등을 확인한다.

▲ 삼성화재 블로그에 소개 된 사고조사 에이전트 자료 화면.    사진_ 삼성화재 블로그 갈무리.


삼성화재의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이하 애니카손사)이 설립한 전국 8개 센터에는 약 140여 명의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각기 업무를 위탁받아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왔다. 애니카손사는 이들과 사고출동서비스 대행계약을 맺고 이들을 서비스 대행업체라 칭한다. 이들은 애니카 명함을 사용하고, 이들의 차량에는 애니카 로고가 새겨진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으며, 명찰에도 애니카 로고가 있고, 사번도 부여받았다. 임금은 출동 1건당 받는 수수료 23천 원이다.

애니카지부 노동자들의 명찰과 끈에 삼성화재 로고가 새겨져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 노동자들 80여 명이 지난 1023일 노동조합(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삼성화재애니카지부, 이하 애니카지부)을 설립했다. 사고조사 노동자 박경재, 박성진, 정창연, 조상근, 진경균 씨를 만나 사연을 들었다.

이들의 휴대전화에는 삼성화재가 제공하는 전용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출동이 접수되면 알림음이 울린다. 15분 내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사고가 많이 나는 곳 근처에 주차를 하고 겨울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여름에는 그늘에서 대기한다. 시동은 꺼둔다. 기름값을 본인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통신비, 차량 관리비, 식대, 차량 외관의 애니카 로고까지 자기 부담이다. 4대보험도 없다. 한 달 유지비만 최소 80만 원에서 100만 원.

당직인 날은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17시간을 근무한다. 14시간을 쉬고 나면 다시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하고 또 당직을 선다. 쉬는 시간에도 고객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오면 응대를 해야 한다. 밤에 자다가도 사고가 나면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대기나 마찬가지다. 박경재 씨가 11월에 주말, 휴일 구분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평균 12.7시간을 근무해서 번 돈은 250만 원. 여기서 유지비를 빼고 나면 150만 원가량 남는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제가 지난달에 100건을 했어요. 하루도 안 쉬고. 예전에는 20일 일하고 100건 해서 350~400만 원을 받았어요.”

이들의 수입이 악화된 것은 2015년경부터. 회사는 노동자들의 서비스를 종합 평가해 등급을 매겨서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는 등급 수수료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적용했다. ~마의 5개 등급으로 나누어 하위 등급은 수수료를 건당 2천 원~4천 원 차감하고 출동 우선권 배제 등의 불이익을 주었다. 우수 등급에는 2천 원~4천 원을 추가 지급했다. 등급을 매기기 위해 출동 대기 시간과 출동 소요 시간 외에 고객 만족도, 수용률(출동 수행률), 이관률(호출을 받았으나 출동을 못하는 경우 타 대행업체로 이관), 입고율(사고 차량을 협력 정비업체로 입고), 출동 후 2시간 내 전산 입력 여부 등도 평가했다. 하지만 등급이 하락하기는 아주 쉽고 상위 등급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한 건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등급이 하락됐어요. 고객 만족 평가도 매우만족’(100)이 아닌 만족’(75)을 하나라도 받으면 끝입니다.”

폭우로 인한 침수 차량이 발생해도 등급이 하락했다. 대부분 사고조사 노동자들의 노력과 관계없는 일들이었지만 등급은 낮아졌고 1등급에게만 콜이 몰렸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3, 4등급 직원이 있어도 1등급한테 콜이 갑니다. 1등급 입장에선 멀어도 출동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늦게 도착하면 또 등급 떨어지죠, 그렇다고 다른 직원에게 이관해도 등급 떨어지죠. 고객도 손해를 보는 거예요.”

2016년부터는 대인 수수료가 없어져 수입이 더 줄었다. 대인 수수료는 가급적 고객을 병원에 안 가게 하고, 수리 차량은 협력 정비업체로 입고하고, 수리 기간 동안 렌트카를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했을 때 주어지는 인센티브였다. 그러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았다. 사고조사 노동자들은 심리적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어우~ 뒤에서 받았어요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거야. 이거 또 대인 발생되겠구나. 가면 이거 또 디메리트(불이익) 있겠구나 걱정하면서 현장 나가는데 그런 게 스트레스였어요.”

고객들의 폭언과 폭행 또한 스트레스였다. 모두 고객으로부터 욕설과 멱살은 기본, 폭행도 수차례 당했다고 답했다. 박성진 씨는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생겨 지난 8월부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조상근 씨 역시 체중이 15킬로그램 감소했고 박경재 씨는 생체 리듬이 깨져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이 든다. 이들은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다. 쉬는 날은 수입이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다섯 명 모두 긴급 출동하거나 도로에서 사고조사를 하다가 다친 적이 있지만 회사로부터 병원비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다.

진경균 씨는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나가는 동료들이 안타까웠다. 뭔가 바꿔 보고 싶었다. 퇴직자들을 설득해 퇴직금 소송을 준비했다. 20177, 퇴직자 6명이 애니카손사를 상대로 법원에 퇴직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823일 서울중앙지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선고했다.)

퇴직금 소송이 시작되자 회사는 몇 가지 조치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그동안 사고조사 노동자들에게 약속했던 우선 출동권을 없앴다. 우선 출동권은 사고 발생 시 사고조사 노동자들이 타 공업사보다 우선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권리다. 이후 정창연 씨는 공업사와 비교해 공정하게 콜이 분배되지 않는 정황을 포착하고 20185월경 공업사 직원들과 전화기를 한자리에 모아 자체 테스트를 했다.

출동 건수가 너무 없으니 답답해서 테스트를 했어요. 출동 들어오는 순서를 봤더니 에이전트는 누락을 시키는 거죠. 공업사 먼저 다 나가고, 그 다음에 정 나갈 사람 없으면 에이전트한테 주는데, 만약 공업사 직원이 나갔다 들어오면 그 사람한테 다시 주는 거예요.”

조상근 씨도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공업사 직원과 실적을 비교했다. 지난 10월을 기준으로 조 씨는 하루 평균 2.3개를 처리한 반면 공업사 직원은 하루 평균 6건이었다.

애니카지부는 에이전트의 노동자성 인정 및 직접고용 논란을 피할 목적으로 회사가 우선 출동권을 없앴다고 보고 있다. 사고조사 노동자의 수입을 줄여 스스로 그만두게 한 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하거나 정비 공업사로 이직시키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5단계로 매겼던 등급수수료도 2018년부터 사라졌는데, 수시로 업무 지휘·감독을 했던 점을 인지하고 없앤 것으로 지부는 해석한다.

, 쓸개 다 빼놓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는 직원이 아니라고 하니까 배신감이 드는 거죠.”

노동자들은 열악한 현장을 바꾸고 애니카손사 직원으로도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직접고용과 출동 차량, 유류비, 보험료, 통신비 지급 및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3교대 근무 실시, 10년간 동결된 수수료 인상 및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과의 싸움은 특히 쉽지 않을 텐데 두려움은 없을까? 정창연 씨가 말한다.

주변에서 다들 말해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거라고. 그런데 저는요, 계란으로 바위가 더럽혀지는 거라도 봐야겠어요.”

삼성화재 애니카 사고조사 노동자 조상근, 진경균, 정창연, 박성진, 박경재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회사와 투쟁을 시작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

지금도 사고 현장에 나가면 당연히 고객은 내 가족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프로답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속상하고.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고객을 안심시키고 고객의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고조사 노동자들. 이제는 이들의 피땀이 보상받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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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2월호

일터 탐방_ 손말이음센터

 

믹스커피 하나에 울음이 터졌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안녕하십니까.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OOO입니다. 청각장애인분의 요청으로 대신 전화드렸습니다.”

▲ 청각·언어장애인과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통신중계사.             사진제공_손말이음센터지회


번 없이 107을 누르면 연결되는 한국정보화진흥원 손말이음센터는 청각·언어장애인(농아인)과 비장애인이 중계사를 통해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수어(수화언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전국 32만 농아인들이 음식 주문부터 금융기관, 관공서의 민원 상담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36524시간 운영되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 건수는 2066(20171~10월 기준, 한국정보화진흥원 보도자료), 중계사 한 사람당 하루 평균 55건을 처리하고 있다(민경욱 의원실, 2017년 기준).

손말이음센터 중계사 김영수 씨(37)와 황소라 씨(31)를 문래동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노동조합(민주노총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 이하 지회)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황 씨는 대학에서 수어통역학을 전공하고 20113월에 입사했다. 김영수 씨는 대학 졸업 후 200810월에 입사했다. 대다수 중계사들은 더 나은 통역을 위해 개인 시간을 할애해 농아인 교회를 다니거나 공부 모임을 하는 등 농아인들과 교류를 유지한다.

그러나 중계사들의 노력과 달리 이들의 처우는 너무나 열악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센터 설립 직후 민간위탁을 했기 때문이다. 제니엘, 인포데이타를 거쳐 2009년부터는 KT계열사인 KTcs가 위탁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동종업계 대비 중계는 10배 이상 많이 하고 근무 조건은 훨씬 열악한데도 급여는 30퍼센트 이상 낮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중계사들을 괴롭힌 문제는 서 아무개 전 센터장을 포함한 일부 팀장급 관리자들의 권력 남용과 부정 행위들이었다. 지회는 정부 기관들에 글을 올렸다. ‘서 전 센터장이 여성 중계사들 허벅지를 만지고 사적으로 접근하는 등 성추행을 했으며 시간외수당 조작 및 횡령, 연차휴가 및 병가 반려부터 화장실 이용 제재등 다양하고 사소한 방법으로 중계사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통화하면 입이 너무 써요. 그래서 오후에 양치를 한 번 더 할 때도 있는데 걸리면 여자 팀장이 자리 비운다고 면담하고.”

서 전 센터장은 중계사들의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다. 사유는 바쁠지도 몰라서’. 반면 자신에게 잘 보이는 중계사들은 연차휴가 사용과 업무 편의를 봐주었다. 많은 중계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지회에 따르면 센터 개소 이래 누적 퇴직자는 80퍼센트.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해마다 이용자는 늘어 중계사 36명이 근무할 때 응대율이 54.4퍼센트(20185월 기준, 지회 자료). 이용자의 절반은 통화 연결이 안 돼 피해를 보고 중계사들은 화장실도 못 가며 중계를 받아야 했다. 중계사들의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 때는 20158월 무교동 청사로 이전한 뒤부터다. 100센티미터의 좁은 책상에 갇힌 채 쉼 없이 중계를 받았다. 창문도 블라인드도 냉·난방 시설에도 손댈 수 없었다. 김영수 씨가 말한다.

하루는 출근해서 커피를 타려고 봤더니 믹스커피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 내가 100원짜리 믹스커피도 아까워할 만한 존재구나. 그분(서 전 센터장)이 평소에 프린트도 못하게 종이도 다 빼놓고 그랬거든요.”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자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201412월 전용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20141224, 성탄 전야로 거리가 떠들썩한 밤에 야간근무를 하던 황소라 씨는 한 중계 영상을 받았다. 한 남성 이용자가 자위 행위를 하는 음란 중계였다. 황 씨는 깜짝 놀라 울면서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모바일 앱이나 PC 프로그램으로 접속할 때 실명 인증 절차나 휴대전화 번호 인증 절차가 없는 점을 악용한 성폭력이었다. 황 씨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하는데 목소리를 떨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 김영수 씨(왼쪽)와 황소라 씨(오른쪽)가 설명하고 있다.                                  사진_안건모


그런데 화면을 꺼야 하는데그런데 화면을 봐야 끌 수 있잖아요.”

김영수 씨가 황소라 씨의 말을 끊었다.

소라가 이 일로 산재 요양 중이라 제가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 작년 국정감사 준비하다가 멀리서 그 자료 화면을 봤거든요. 정말 그 정도인 줄 몰라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그리고 얘(황소라)한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소라가 인터뷰할 때 약 먹으면서 손 떨면서 얘기하는 거 저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심한 장면인 줄은 몰랐어요.”

해당 음란 중계는 무려 6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성폭력이 계속됐다는 것은 KTcs와 서 전 센터장의 악의적인 방치로 볼 수밖에 없다. 서 전 센터장은 화면 캡쳐를 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화면 캡쳐를 하려면 중계를 봐야 하는데 명백한 직무유기 및 2차 가해였다. (범인은 비장애인이었다.)

황소라 씨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노동조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KT새노조와 연락이 닿았다. 중계사 대다수가 노조 가입에 흔쾌히 동의해 20176월 노조를 설립하고 KT새노조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황소라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곧바로 KT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센터 운영에 관한 감사 요청서를 보냈으나 반응이 없었다. 조합원들은 센터 건물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국정감사를 준비했다. 음란 중계와 센터장 성희롱 문제가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의 공감을 샀고 진흥원 이사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질타를 받았다. 그러자 센터에 변화가 일어났다.

음란 중계 때 신고 기능 신설, 모바일 앱 및 PC프로그램 실명 인증 회원제 도입, 2배 넓은 문래동 부지로 센터 이전, 서 전 센터장 격리 및 퇴출, 보다 자유로운 연차 휴가 사용 등.

▲ 손말이음센터 모바일 앱 이용 화면.                                 사진_한국정보화진흥원


문래동으로 이전할 때 진흥원 직원분이 직접 나오셨어요. 그동안 못 해 줘서 미안하다고 하시고. 이제는 회사 가는 게 너무 좋아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도과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운동법도 안내해 주었다. 직무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중계사는 상담사를 연결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201911일부로 전 직원이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규 직원이 된다는 점이다.

런데 문제가 있다. 진흥원 본원이 대구에 있어 정규 직원이 되면 센터도 대구로 이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 중계사들은 퇴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지회는 수도권 잔류 기준 중 별도의 독립적인 업무’, ‘기타 지방 이전 시 업무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업무조항을 들어 지금의 서울 센터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대구 센터를 신설해 응대율을 100퍼센트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설득 중이다.

중계사들의 임금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열악한 상황에서 중계사로 버텨 온 이유는 무엇일까? 황소라 씨가 말한다.

저희 센터를 통해 이용자분이 주체적으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죠. ‘중계사 님, 손말이음센터 있어서 너무 편해요, 고마워요할 때 너무 좋아요. 그 사람들의 권리를 우리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으니까.”

김영수 씨는 이용자의 구직 중계를 예를 들며 말했다.

기업 측에서는 청각장애인이요? 우리는 어려운데하고 농아인은 면접 원해라고 표현해요. 짧은 네 글자지만 저는 그분의 간절함을 담아 기업 측에 면접이라도 한번 볼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하고 전달할 때 자긍심을 느껴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들의 얼굴이 무척 환하다. 황소라 씨가 말한 것처럼 중계사도 농아인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도움을 주면서 잘 사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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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1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세 번 해고 투쟁, 헛살지는 않았다

김양순/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그네틱스분회

 

 

시그네틱스는 1966년에 설립된 필립스 한국공장이었다. 시그네틱스는 반도체를 조립하는 회사다. 나는 1987년 시그네틱스 염창동 공장에 입사해서 생산3팀에서 테스트 업무를 했다. 생산3팀은 완성된 제품 중 정품과 불량품을 구분하는 작업과 출하하기 위한 포장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센츄리라는 기계를 4대 정도 작업했다. 센츄리 기계에서는 크기가 약간 큰 반도체 제품을 작업했다. 12대까지 동시에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일했던 것 같다. 센츄리에서 일하다 둘째 아들 출산 후에 몸도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부서장 지시로 로직 작업을 하게 되었다. 제품이 10개씩 묶인 채로 메가진이라는 쇠에 담겨 오는 것이다. 1로트에 4~5천 개씩 한 제품으로 한 번에 작업을 마쳐야 하는 일이었다. 메가진의 무게는 3-4킬로그램 정도였는데 수시로 이걸 들어서 작업하는 게 힘에 버거웠다. 더 쉬운 작업도 있는데 10년 이상 로직 작업한 사람과 똑같이 생산해야 한다면서 관리자가 매일 생산량을 체크해 힘들게 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비교당하는 게 힘들었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테스트에서 일한 지 약 12년이 지난 상황. 테스트 기계가 파주 공장으로 이전했다. 이전할 때 함께 간다고 했는데 사람만 버림받았다. 1995년에 필립스 자본이 철수하며 국내 자본인 거평그룹에 팔았고, 거평은 부도가 났다.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고, 산업은행이 관리하다 2000년에 영풍그룹에서 인수를 하게 됐다. 회사 주인이 바뀌는 걸 보며 사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태였다. 이미 노동조합이 있었고, 단체협약도 있었다. 1999년도 단체협약을 갱신하면서는 임금인상이 조금 되더라도 공장 이전 문제와 고용안정 문제는 조합원들의 주된 관심사였고, 반드시 관철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평이 염창동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파주 탄현면에 160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났다. 염창동 공장을 담보로 할 때 노조에서도 동의를 해 줬다. 왜냐면 파주 공장으로 갈 때 회사가 사람과 기계 모두 합의하에 데려간다고 했다고 노동조합에서 보고를 했다. 부도 이후 사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임금동결, 상여금 300만 원 반납, 호봉 승급 보류, 각종 복지 축소 등 함께 살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퇴직금 누진제 폐지이다. 1.3N(퇴직금을 근속년수×1.3만큼 지급)이던 누진제를 폐지한 것이다. 회사를 살려 고용을 보장받고자 머리를 짜내 궁리를 모색했건만, 영풍으로 인수된 이후 영풍은 안산 반월공단으로 공장 이전 일방 통보를 해 왔다. 대표이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공장 이전 문제를 노조와 함께 상의해서 잘 마무리하자고 했으나 회사는 더욱 몰아붙였다. 회사는 안산 공장 이전 이주 불가자를 모집하며 위로금 12개월분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표를 냈다. 200여 명. 20011월부터 6월까지의 사직자다. 많은 사람들이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회사는 2001723일부로 안산 공장으로 일방적 인사 발령을 냈고, 노조는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파업 장소는 염창동 공장이었다. 염창동 공장은 1600평 규모이다. 대형 천막이 10여 개가 쳐졌다. 파업 대오를 2개조로 나눠 12일 투쟁을 진행했다. 공장 안 기계 반출을 막기 위한 투쟁이 한 달을 넘어갈 때쯤, 89일 사측은 용역 200여 명을 고용해 우리를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기계를 빼 갔다. 그리고 해고 통보를 날려 왔다. 파업대오 160여 명 중 130명이 해고되었다. 그 전에 전 조합원 임금 가압류, 사직자 퇴직금 가압류, 전원 해고, 교섭위원 5명 전원 구속, 최초 여성 용역을 고용해 시그네틱스는 노조 탄압의 새로운 방법들을 내세우며 강하게 공격해 왔다. 그래도 부당 해고 철회시키고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투쟁이 이어졌다. 2003년에 조합원들을 생계 투쟁에 내보내며 대법원 판결 때까지 간부들이 투쟁 대오를 유지하며 투쟁을 했다. 2007년 대법원 판결이 났고, 간부들은 전원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떠나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남아 투쟁하는 간부들과 조합원이 있었다.

투쟁 이후 나는 변했다. 결혼해서도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시부모님과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될 때까지 함께 살다가, 지금은 두 분이 시골 가서 사신다. 1차 해고 후 염창동 공장에서 농성장 유지하며 천막 지키느라 밥도 해 먹고 공장에서 자고 들어가면, 시아버지는 바람을 핀다고 하시곤 했었다. 고집 센 시아버지라 본인이 모든 것을 다 관여하고 지시하고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콩나물값 150원이 안 맞는다고 시어머니를 쥐 잡듯 잡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투쟁을 해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공장에서 잠을 자고 집에 들어간 날 일이 터졌다.

농성장이 없어지는 걸 막고 아침에 출근한 조합원들과 교대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시아버지가 바람 피웠다며 야단을 하시기에 그날은 참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투쟁을 계속해야 했고 또 단 하루를 살아도 맘 편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람피운 걸 보셨냐고, 왜 막말을 하시냐고, 노동조합일 동참하고 온 거라는 말을 왜 믿어 주시지 않느냐고, 억울하다고 했다. 결국은 내가 이겨서, 시아버지는 앞으로 영진이(큰아들) 엄마가 하는 일은 다 맞으니 믿고 사신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는 내가 하자는 대로 시부모님이 인정을 해서 의지를 많이 하고 사신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2001년 해고된 이후 6개월 동안 교리 공부를 해서 로사 (장미꽃)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앙이 있으면 세 번 해고를 당해도 이겨 낼 수 있도록 힘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하자면, 큰아이 영진이가 엄마가 세 번 해고되어도 계속 시그네틱스 다니는 것을 보고 자기도 힘들어도 끝까지 직장을 다니겠다고 한다. 2001년 복직 투쟁할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지금은 스물일곱 살로 은행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 초기에는 일이 힘들어 엄청 풀 죽어 있더니 이제는 엄마가 투쟁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 보면서 첫 직장에서 힘들다고 관두지 않고 퇴직할 때까지 다니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새삼 시그네틱스 투쟁하면서 산 경험이 현재로 이어지는 인생의 여정이라는 것을 느낀다.

시그네틱스 1차 투쟁 때 해고되어 복직 못한 29명의 징계 해고자가 있다. 18명의 간부들과 해고 이후 산업은행 규탄 투쟁에서 로비에 들어갔다고 해고된 11명의 조합원이다. 이들은 2007년 대법원에서 정당 해고라고 판결이 났다.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2011년 안산 공장 영업 양도를 이유로 두 번째 전원 정리해고 됐다. 복직 투쟁과 소송에서 이기고 현장에 출근할 때 회사는 서울이 집인 우리에게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왕복 4~5시간 걸려 출근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우린 노조 봉고차로 6시 출근과 2시 출근자를 실어 날랐다. 그때 조합원 출퇴근시키려고 1종 면허를 땄다. 다섯 명이 1종 면허로 갱신하거나 새로 면허를 따서 조합 봉고차로 출퇴근 투쟁을 적극적으로 했었다.

이 밖에도 우리를 쫓아내기 위한 회사의 괴롭힘은 모두 다 쓰기가 힘겹다. 그럼에도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다. 밖에는 해고자가 복직을 바라며 투쟁하고 있었고, 복직한 우리는 사표 내고 싶을 때 사표 내고 그렇지 않으면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우리가 견디니 회사가 안산 공장을 매각하고 광명시 하안동 아파트형 공장을 얻어 출근을 시켰다. 출근하자마자 회사가 어렵다며 1년 가까이 휴업을 했다. 우린 또 불안했다. 세 번 해고되는 것 아닌가.

20169월 우려했던 대로 세 번째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광명사업부 폐업으로 인한 전원 정리해고 통보 한 달 후 회사는 위로금을 대폭 인상했다. 조합원 13명이 사표를 냈다. 9명이 남아 투쟁하기로 했다. 사표 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했기에 두 번 해고 투쟁을 이길 수 있었으니 세 번째 복직 투쟁을 함께 안 한다고 누굴 원망할 수 있으랴. 밉고 원망스러운 건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동료들에게 기어코 위로금을 쥐어 주고 희망을 뺏어 간 시그네틱스와 영풍 자본이다. 본사인 파주 시그네틱스 공장은 1년 내내 우리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든지, 해고되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든지 사람을 뽑고 있다. 파주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얼마 전 914일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정을 받은 9명의 노동자들은 시그네틱스 정규직이다. 회사는 복직명령서만 보내고 휴업이라고 한다.

▲ 시그네틱스에서만 3번 해고 된 노동자들. 광화문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앞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양순 씨. 사진제공_시그네틱스분회


우린 여전히 광화문 청사 옆 천막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1차 해고자이며 그 당시에는 사무장이었고, 지금은 분회장인 윤민례 동지와 함께 시작했으니 끝까지 마무리 잘하고 사람들을 남기는 역사를 쓰고 싶다. 1차 해고자와 복직자의 끝을 연결하고 있는 분회장의 책임감은 모든 간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시그네틱스 투쟁은 현재 진행형인 살아 있는 역사이다. 신규 노조가 볼 때도 끝까지 질기게 투쟁하는 모습은 동지들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투쟁이고 우리 자식들을 정리 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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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일터 탐방_ 대경환경()

 

그가 팬티만 입고 운전한 사연

정인열/ <작은책> 기자

 

생활쓰레기(생활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38). 그의 업무는 남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인 밤 930분에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의 각 가정과 상가 등에서 내놓는 생활폐기물(일반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폐기물)5톤 수거차량에 싣고 인근 소각장에 나른다. 운전기사 한 명과 쓰레기를 포집하는 미화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손발을 맞춘다. 미화원은 운전기사보다 2~3시간 더 이른 저녁 7시경 각자 맡은 현장으로 출근해 골목의 쓰레기를 포집하고 수거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도로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포집된 쓰레기를 트럭에 상차하고 쓰레기는 회전판에 밀려 트럭 안쪽으로 들어간다.

▲ 서울 마포지역에서 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 작은책(정인열)


마포구에서만 하루 발생되는 생활폐기물의 양은 456.6(2016년 서울시 통계자료). 하루만 수거를 하지 않아도 악취가 나고 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하고 토요일만 쉰다. 법정공휴일은 물론 설, 추석에도 쓰레기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명절 중 하루는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관계가 다 작살났죠. 쉬는 날이 하루라 아무것도 못해요.”

그는 야간노동으로 파괴된 일상을 설명했다. 아침에 퇴근 후 잠을 자려고 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기 때문에 항상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린다. 생활 패턴이 남들과 달라 지인들을 만날 수도 없어 사회적 인간관계는 단절된다. 배 씨는 작업을 하기에는 주간이 오히려 낫다고 주장한다.

수거차량 20대가 마포구 지역 교통체증을 유발할까요? 오히려 낮에는 도로에 불법주차 차량이 없어 작업도 원활하고 사고 위험도 낮죠.”

야간노동은 특히 가정에 어린아이가 있는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 쉬는 토요일 낮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밤잠을 자게 되고, 일요일 낮에 다시 아이들과 놀아 주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일이 많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쉬는 게 아닌 쉬는 날을 보내고 현장으로 가면 치워야 할 쓰레기는 평소보다 2.

하루 쉬고 나온 날은 12~13시간을 작업해야 돼요. 평소보다 4시간씩은 오바가 된단 말이에요.”

▲ 대경환경(마포구 위탁 환경업체) 서복석 씨가 성산동 골목을 다니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마포구청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위탁업체 대경환경()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위탁업체로는 고려환경, 평화환경, 효성환경까지 4개 업체가 있다.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410원 많은 7940. 기본급과 야간수당, 연장수당을 더하면 월 330만 원이다. 업체는 연장수당을 월 52시간으로 고정해 지급하고 있으나 배 씨가 6월 한 달간 노동조합 조합원 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장근로시간은 80시간이 넘었다. 배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의 한 달 노동시간은 240시간이 넘는다. 이는 2016OECD가 발표한 회원국 평균 147시간보다 많은 최고 수치다.

간접고용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20153개 관계부처(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하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마련하고 이들의 임금은 시중노임단가를 책정해 지급하도록 했다. 지침에 따르면 이들의 시급은 14766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중노임단가의 53퍼센트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환경미화원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리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위탁업체가 공공업무를 대행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내놔도 법적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 업체가 대다수다. 게다가 관리·감독을 해야 할 마포구청 청소행정과가 오히려 지침을 어기고 시중노임단가의 70퍼센트로 입찰 공고를 냈다. 그리고 관련법을 어기고 입찰 공고문을 변경해 노임단가를 더 내려서 업체가 연간 8억 원의 임금을 착복하게끔 도와준 정황도 있다.

위탁업체는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인건비와 식비마저 중간 착복하고 인력 충원도 최소화한다. 늘 인력이 부족하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니 안전 규정도 어기게 된다. 골절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재해 건수는 연평균 613(2015~2017년 고용노동부 자료). 특히 사망자의 88퍼센트가 위탁업체 노동자였다. 배 씨 역시 지난 1월 쓰레기를 상차하다가 회전판 사이에 손이 끼어 오른쪽 손가락 3개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야간에 청소하는 사람들 다 발판에 매달려서 다니잖아요. 음주 차량이 뒤에서 받아 버리거나 발 잘못 디뎌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나도 매달려 다녀요. 발판 자체가 불법 부착물인데도요. ? 이걸 떼 버리고 걸어 다니면 작업시간이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놔두고 있는 거예요.”

배 씨는 미화원 작업복과 장갑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 오물을 처리하다 보면 작업복과 장갑은 온갖 세균과 미생물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들면 구더기가 우두두둑 떨어져요. 그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꼭 쓰레기 더미 위에 토하고 오줌 싸고요. 그걸 수거차량에 넣으면 회전판이 돌면서 압축하거든요. 그런데 쓰레기가 가득 차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오폐수, 구더기 다 뒤집어쓰는 거예요. 저도 한번은 다 튀어서 입고 있던 옷 다 벗어서 버리고 팬티만 입고 운전했어요. 하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2009년 실태조사에서도, 환경미화원의 몸에서 검출된 미생물 수가 버스터미널 화장실 변기의 25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커녕 탈의실도 없어 주차장이나 상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작업 후에도 근처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씻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폐물이 묻은 옷은 그대로 가정 세탁기로 들어가 그 가족의 위생마저 위협한다.

▲ 한 위탁 환경미화원이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집다가 유리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베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얇은 코팅 장갑 한 켤레로 3일을 써야 하니 금방 헤진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안전수칙 가이드에서 베임방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경환경 야간 반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미화원에게는 좋은 구역을, 그렇지 않은 미화원에게는 계속 험한 구역을 배치하며 인사권을 휘둘렀다. 때마침 4명 인력 충원으로 한 조가 더 생겨나 조금은 작업이 수월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편한 사람만 더 편해질 뿐이었다. 201711월 배 씨를 비롯한 대경환경 소속 노동자 대부분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노조를 만들었다. 배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노조가 생기자 회사는 곧바로 같은 조의 노조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했다. 노조에 가입한 수습 직원 4명은 3개월 수습 기간 후 모두 계약해지 하고 새 직원을 채용했다. 27명이던 노조원은 순식간에 22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8명이 버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져 22명이 그 노조에 가입했다.

배성훈 씨는 노조 활동을 하고부터 하루 세 시간도 못 자고 있다. 아침에 퇴근한 후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상급단체와 노무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담당부서인 청소행정과에는 민원을 넣는다. 지난 828일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해 위탁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TFT 구성을 제안했다.

▲ 배성훈 씨가 폐기물 수거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작은책(안건모)


현재 서울시 직영미화원 1인당 책정된 인건비는 연 6300여만 원. 노조가 마포구청장에게 제안한 자료에 따르면 위탁 환경미화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도 기존 위탁운영보다 연간 약 18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절감된 예산으로 각 업체에 41조 인력을 충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배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보다 안전하게 일하면서 주 5일 근무도 꿈꿀 수 있게 된다.

위탁업체가 그동안 우리 뜯어먹은 거 그만하라는 거죠. 발판에 매달리지 않고 작업을 해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는 오늘도 잠 못 자고 뛰어다닌다. 보통 사람들처럼 밤에 잠자고, 가족과 일상을 함께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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