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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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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12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남해화학 비정규직

 

표적 해고당한 민주노총 조합원들

정인열/ <작은책> 기자

 

 

거북선표 비료로 농민들에게 잘 알려진 남해화학()1974년 설립된 비료 생산 기업이다. 농협 계열사로 연 매출 1조 원이 넘으며(2017~2018년 사업 보고서), 시장 점유율 50퍼센트에 달하는 업계 1위 업체다. 정규직 평균 급여도 1억 원에 이르고(2018년 사업 보고서, 평균 근속 17) 우수한 복지 제도도 많다.

남해화학 여수공장. 작은책(정인열)


하지만 이런 남해화학의 위상 뒤에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맡아 최저시급을 받으며 밤새워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이들은 2015년부터 2년마다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남해화학이 하청업체와 2년마다 신규 계약할 때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조건을 없애고, 사실상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낙찰한 신규 업체 새한이 한국노총(하이팩노조·여수종합항운노조) 조합원만 고용 승계 하고 민주노총 조합원은 거부한 일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이를 원청인 남해화학이 배후에서 지시한 정황도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지난 10월 1일부터 해고 노동자 29명이 고용 및 단체 협약 승계를 요구하며 여수 공장 안에서 옥쇄 투쟁을 시작했다이들은 모두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이하 지회) 조합원으로길게는 30년 넘게 제품팀에서 비료 포장과 설비 정비를 해 왔다.

공장 내 직원 대기실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가를 부르며 옥쇄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지난 1031, 장비팀 조합원 김중민 씨의 안내로 여수 공장 접견실에서 해고자 구성길, 이완규, 김만수 씨를 만났다. 제품팀과 장비팀은 모두 하이팩 소속이었으나 최근 입찰에서 제품팀은 새한과, 장비팀은 기존 업체인 하이팩과 계약했다. 장비팀 조합원들은 연차 휴가를 내고 공장 밖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다.

남해화학 접견실에서 이인규, 구성길, 김만수, 김중만 씨(왼쪽부터)를 만났다. 작은책(이동수)


남해화학이 새한, 한국노총 간부들하고 모여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완전히 들어내고, 나머지는 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서 최대한 이윤을 가져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완규 씨의 말이다. 지난 1017남해화학 비정규직 집단 해고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남대책위원회(이하 전남대책위)는 기자 회견을 열어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은 지난 105일 한국노총 고용과 단협 승계를 합의하는 자리에서 남해화학 제품팀장과 차장, 새한 총괄부사장, 한국노총 하이팩노조 위원장이 나눈 대화로, 남해화학 측이 민주노총 고용 승계 거부를 지시하고 인사 개입까지 한 정황이 담겨 있다. 공장 안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헌신하던 이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내친 것이다. 구성길 씨와 이완규 씨의 말이다.

남해화학에서 잡일은 다 하는 잡부죠. 주 업무가 성수기 때는 포장, 비수기 때는 설비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남해화학에서 제일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최고 장시간 합니다.”

비료 원료들은 해외에서 수입해 대형 선박에 실어 부두에 하역한다. 김중민 씨 같은 장비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장비로 원료를 운반하고 컨베이어 벨트 등 생산 라인에 투입하는 일을 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공장 내로 운반된 원료들은 화학 가공 되어 비료로 만들어지고 다시 포장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 완제품이 된다.

정량보다 적거나 많거나 포장이 불량한 것은 파대(포장을 터트림) 작업을 해요. 20킬로그램짜리를 깡통에다 붓고 들었다 놨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전부 다 사람 손으로 골라내고 까대기질(제품을 분류하고 적재) 합니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정에서 이들은 43교대로 근무한다. 성수기에는 16시간 연속 근무하는 경우도 잦다. 비수기인 7~12월에는 사고 위험이 높은 작업에 투입된다. 이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직접 올라가 투입구 밖으로 떨어진 비료를 치우거나 유해 물질이 저장된 창고나 대형 선박의 탱크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한다. 주로 다루는 물질은 비료 제조에 쓰이는 질소, 인산, 칼륨, , 석고 등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료 공급 시설로 직접 들어가 공급 라인 밖으로 넘친 비료를 청소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사다리를 타고 몇만 톤짜리 배 밑바닥으로 10미터 넘게 내려가서 삽 하나 들고 방진 마스크 쓰고 청소하고요, 황산 탱크에 들어가서 굳은 황산을 손 드릴로 파기도 하고요.”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 씨는 남해화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에 대해 모두 매우 위험한 유독 물질이다. 특히 탱크 청소할 때 산소 농도가 너무 낮거나 독성 물질 농도가 너무 높으면 질식이나 중독으로 갑자기 사망에 이를 위험이 크다. 피부에 노출되면 화상이나 피부염을 입게 되고, 만성적으로 분진을 마시면 특정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 농도를 체크한 후 작업 여부를 결정하고 투입 시에는 산소가 공급되는 송기 마스크와 작업복을 착용하고 작업복 품질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현장은 산업 안전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김만수 씨의 증언이다.

주로 방진 마스크를 많이 사용했고 사전 산소 농도 측정 여부는 저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안전 교육은 전무하고요. 원청은 우리가 작업 허가서에 서명을 했는지만 확인합니다.”

현장에는 냉방 장치도 없어 여름이면 땀범벅이 되어 일한다. 야간 노동으로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30년을 일해도 신입 직원과 똑같이 최저 시급을 받는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희망이 없다는 점이다. 이완규 씨의 말이다.

한 달에 100~150시간 잔업을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애들 뒷바라지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제 나이도 50대 중반이 넘어서 노후 자금도 준비해야 하는데.”

100시간 이상 잔업 및 야간 노동에 상여금 600퍼센트를 합쳐도 정규직 임금의 30~4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복지도 크게 차이가 나는데, 대표적으로 정규직은 모든 자녀의 대학 학자금 전액을 지원받지만 비정규직은 1년에 60만 원이 고작이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레 여수 지역 계층 간 격차로 이어진다. 구성길 씨가 말한다.

공단 정규직 자녀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이렇게 따로 다녀요. 회사 버스가 등하교 시켜 줘요. 어릴 때부터 분리되죠.”

이완규 씨는 자녀들에게까지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솔직히 공부를 좀 못해서, 빽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고생하는 건 숙명으로 알랍니다. 그런데 집에 있는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냐는 말이에요. 가족들만 생각하면 정말 피눈물이 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마다 하청 업체와 근로 계약을 맺었지만 고용 불안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남해화학이 입찰 조건으로 고용 조건 저하 없는 고용 승계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고용 승계 조건을 없앴고 최저가 입찰로 유진피엘에스와 계약을 맺었다. 유진피엘에스는 교섭 해태, 임금 체불, 부당 노동 행위를 일삼고 어용 노조인 제2노조를 설립해 기존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했다. 정규직 노조와 당시 상급 단체였던 한국노총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남해화학 생산 라인 현장에 피켓이 걸려있다. 사진 제공_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지회는 한국노총의 한계를 느끼고 2016년 민주노총으로 조직을 변경했다. 2017년 여름, 지회는 농협 본사와 청와대를 오가며 53일간 파업했고 결국 유진피엘에스를 입찰에서 탈락시켰다. 그런데 2년이 지나 이번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만 표적 해고됐다. 지회는 2년마다 고용 불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투쟁에서 확실하게 매듭짓고 싶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남해화학의 행태를 규탄하며 불매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팔짱만 끼고 있다. 김만수 씨가 말한다.우리한테 양보하라고만 해요. 최저 시급 받는 사람이 양보할 게 어디 있습니까?”

연 매출 1조 원이 넘고 이익 잉여금 33백억 원을 보유한 남해화학이 양보해야 할까, 아니면 최저 시급 노동자가 양보해야 할까. 상시적이고 꼭 필요한 업무인데 왜 비정규직을 쓰는 걸까. 근본적인 물음들이 떠오른다.

* 12월호 인쇄 직전, 지회는 해고자 전원 고용 및 단협 승계 타결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1119, 옥쇄투쟁 51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