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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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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1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

 

책임 회피만 하는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

정인열/ <작은책> 기자

 

2016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 정신 건강 책임져왔지만

고용은 늘 불안정,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는 서로 고용주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

한시적 고용 책임지기로 한 화성시, 겨울 학사일정 동안 고용계약에서 배제

상담사들은 두 달간 당장 수입 없고 상담 연속성이 깨져 피해는 학생들에게

 

학교 청소년상담사 김화민 씨. 그는 20178월부터 비정규직으로 경기도 화성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상담해 왔다. 그런데 최근 근로계약 갱신을 앞두고 고용 주체인 화성시로부터 계약기간을 20203~202012월로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 측과 학사일정이 남았음에도 새해 첫날부터 두 달간 일을 할 수 없어 임금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방학 중 상담 프로그램 부재로 학생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고등학교. 작은책(정인열)

 

김화민 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상담사는 모두 15이들은 화성시에 올 겨울만이라도 상담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계약기간 조정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상담사 김화민 씨와 김선희 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이하 도교육청)은 화성시와 창의지성교육도시(2012~20162) MOU(업무 협약)를 맺고 도내 초··고등학교에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도록 인력을 지원했다. 2012년부터 투입된 상담사들은 1년마다 학교장과 계약을 하는 학교 비정규직이었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이상 학교에 상주하며 학생, 학부모의 심리 검사 및 심리 상담, 교사 자문, 상담 프로그램 등을 도맡았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2011~2017년 통계 평균),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염유식 교수팀, 2016~2017년 발표). 학교 상담실은 접근성이 좋아 위기 상황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했다.

외부 상담소에 있을 때보다 학교에서 훨씬 병리 증상(조현병, 공황 장애, 우울 장애 등)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눈앞에서 조현병이 발병한 아이를 병원에 즉시 인계한 경우도 있고요. 특히 초등학생들은 안전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학부모, 교사와 협의해서 행동 교정에 들어가죠. 또 교사들이 담당하기 힘든 학생들은 대안 교실이라고 해서 저희가 자체 프로그램으로 돌봅니다. 학부모들이 화가 나서 학교에 올 때는 상담으로 진정 시켜 드리고요.”


김선희 씨는 상담 경력 11년으로 학교 청소년상담은 20183월부터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김선희 씨와 김화민 씨의 말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소년상담사와 임상심리사 자격, 한국상담심리학회 및 상담학회 1, 2급 자격을 보유한 전문 상담사들이다. 하지만 전문성에 비해 임금은 턱없이 낮다.

실수령액이 수당, 출장비 등 다 합쳐도 197만 원 정도예요. 최저임금 수준이죠.”

20163, 계약 기간이 2년 초과된 상담사들 약 20(공공운수노조 추산)은 교육청의 정규직(무기계약 교육공무직)이 됐다. 반대로 계약 기간 하루가 부족해 해고된 상담사도 있었다. 해고된 상담사는 모두 20. 이들을 단계적으로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도입했다면 좋았겠지만 도교육청은 하지 않았다. 이어 도교육청은 화성시와 20162월 혁신교육지구 시즌2(20163~20212) MOU를 맺었다. 도교육청은 인력 지원을 없애고 지역사회 교육 기부를 활용하겠다고 사업 기조를 밝혔는데, 이는 학교 청소년 상담 사업을 포함한 기존 사업들을 진행하되 인력 채용은 안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방침은 후에 화성시와 교육청이 청소년상담사 정규직 전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빌미가 됐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화성시는 인력 예산을 투입해 청소년상담사를 민간위탁하고 학교로 파견시켰다. 2016년 새 학기부터 기존 해고됐던 상담사 일부와 김선희, 김화민 씨 같은 신규 상담 인력이 채용되며 청소년상담사 수는 약 40명이 됐다. 이듬해인 20177,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화성 청소년상담사들은 3단계에 해당하는 정규직 전환 심사 대상이 되는 듯했다. 김선희 씨가 당시 분위기를 말한다.

시청 공무원들도 우리한테 무기직 전환 대상이라고 얘기하면서 기대감을 줬어요.”

정부 지침에 따라 청소년상담사들을 지자체 공무직으로 채용한 의정부시와 오산시의 사례도 있지만 화성시는 달랐다. 학교 청소년 상담은 본래 교육청 소관 사업이므로 시가 정규직 전환을 책임질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정규직 전환 지침과 반대로 201810, 시는 청소년상담사들에게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김화민 씨의 말이다.

“10개월씩 받아들이면 2020년까지 두 번 계약을 해 주겠대요. 실업급여도 못 받고 상담 계획도 남아 있으니까 12개월로 해 달라고 했죠. 그럼 고용에 대해 (정규직 전환)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길게는 47개월, 짧게는 27개월 동안 상담 업무를 해 온 청소년상담사들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이들은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이하 지부)에 가입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철모 현 화성시장과 면담했다. 하지만 서 시장은 상담사 외에 노동조합 관계자가 동석했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표했고 그 자리에서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졸지에 해고된 상담사들은 화성시청과 도교육청, 화성오산교육지원청을 다니며 20191월부터 3월까지 피켓 시위, 천막 농성, 두 차례 오체투지 등을 하며 고용안정을 요구했다. 이들에겐 누구보다 추운 겨울이었다. 김선희 씨가 말한다.

해고된 화성시 청소년상담사들이 단식 4일째 되는 날 수원 화성행궁에서 경기도교육청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2019221)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화성청소년상담사분과.


임용고시에 통과한 교사하고 똑같은 대접을 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학교 업무니까 저희는 교육청 공무직으로 안정되게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인터넷 댓글에선 저희 보고 거저 교사가 되려 한다 하고.”

화성시와 도교육청은 서로 핑퐁 게임만 할 뿐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김선희, 김화민, 박호진 상담사와 성지현 경기지부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20일 만인 20193, 단식을 포함한 모든 쟁의행위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경기지부, 도교육청, 화성시가 3자 협의를 시작했다. 화성시와 도교육청은 MOU1년 단축해 2020년까지로 하고, 종료 후에는 도교육청 인력풀 등재 여부를 협의하기로 했다. 김선희 씨가 당시 결정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단식 멈추지 않을 거예요. 3자 협의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시의회의 추경 예산 승인을 거쳐 이들이 학교로 복귀한 건 20198. 7개월 동안 임금이 없어 실업급여, 상담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기다렸지만 상담사 대부분이 떠나고 현재 15명만 남았다. 생계도 곤란하지만 투쟁 후에도 여전히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201911월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가 화성 청소년상담사 15명을 대상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무 불안정 항목에서 매우 불안정함으로 일반 직군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김화민 씨는 화성청소년상담사분과(노조) 대표로 유일한 남성 상담사로 20178월부터 학교 상담을 시작했다. 작은책(정인열)


그럼에도 이들이 학교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학생들 때문이다. 김화민 씨의 말이다.

취약계층이 많은 한 학교는 아동학대도 많고 아이들도 굉장히 거칠었어요. 이상심리는 경제적인 소득, 학력과 반비례하거든요. 학교 선생님들도 정말 힘들어하는 곳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상담이 빛을 발하는 경험을 했어요.”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지역교육공동체 구축이라는 경기도교육청의 목표 아래 청소년상담사들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두 기관이 고용안정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청소년상담사들만 고통스럽게 지내오고 있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