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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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할 병상이 부족하다. 11월 중순부터 환자가 급속히 늘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날마다 수백 명씩 감염이 확인된다. 무증상자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지만 열이 나고 아픈 데가 있는 환자, 전부터 앓던 병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환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12월 들어 환자가 많아지니 전담 병원 입원실에 빈자리가 없다. 지금 수도권에는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이 수백 명이다. 대기하는 동안 증세가 나빠지기도 해 환자도 가족도 방역 당국도 불안하다.
병상이 많아도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않아
상황을 심각하게 하는 것은 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 부족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폐렴이 진행되는 환자는 갑작스레 호흡곤란에 빠질 수 있어 이런 경우 초기에 즉시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로 치료해야 한다. 주로 고령층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일어나며 제때 집중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한다. 이에 대비해 정부가 ‘전담 치료 중환자 병상’을 200여 개 지정해 두었는데 12월 10일 아침에 남아 있는 병상이 서울에 3개, 경기도와 인천을 합쳐도 6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만약 호흡곤란 환자가 6명 넘게 발생하면 누군가는 치료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할 테니 정부 대책으로는 중대한 허점이다. 준비된 병상이 적은 이유가 병원과 중환자실이 적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인구당 병상은 영국보다 다섯 배, 미국보다 네 배, 독일보다 1.5배로 과잉이라 할 만큼 많다. 중환자실 병상도 상급종합병원(고도의 전문적인 의료를 시행하는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 약 3천 개, 병원 전체에는 약 1만 개나 된다.
우리나라 병상의 95퍼센트가 사립 병원 소유다. ‘95퍼센트’라는 숫자는 의료를 거의 전적으로 사립 병원에, 다시 말해 공공이 아닌 민간 사업체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환자 치료에 수익성을 따지는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수익성이 낮고 위험한, 게다가 많은 의료진을 투입해야 하는 질병에 대해 사립 병원은 입원 문턱을 높이거나 아예 빗장을 건다. 크고 유명한 사립 병원에 병상이 수천 개 있어도 코로나19 환자는 손으로 꼽을 만큼 받을 뿐이다. 그러니 환자 대부분을 공공병원이 도맡는다. 주요 도시마다 겨우 하나씩 있는 지방 의료원이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돼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병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수익성이 부족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존폐 위기 속에서 어렵사리 공공병원의 명맥을 이어온 터라, 병상 규모가 작고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도 적어 중증 치료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 대학병원에 음압격리 중환자실을 최대한 확대하게 하고 삼성, 아산 등 사립 대학병원에 협조를 구한다. 코로나19 중환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높게 정해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보다 열 배 많은 금액을 지급하기로 하며 병상을 열어 주기를 요청한다.
경영 수익을 따지는 의료의 민낯
사립 대학병원은 몸을 사린다. 그 이유를 삼성의료원이 코로나19 중환자를 4명만 받겠다며 내놓은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시설 부담이다. 음압 격리 병상 4개를 만드는 데 드는 면적이 기존 병상 18개를 폐쇄해야 할 만큼 넓다고 한다. 둘째, 인력 부담이다. 다른 중환자를 치료할 때 간호사 1명이 환자 2명을 돌볼 수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에는 간호사 5명이라야 환자 2명을 돌볼 만큼 인력 소요가 크다고 한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주는 표현이라 하겠으나, 그런 이유로 입원 환자를 극소수로 제한하는 것은 경영 수익을 중시하는 사립 기관의 전형적인 논리일 뿐이다. 삼성의료원은 소유 병상이 2천 개가 넘고 의대 학생을 교육하며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병원이다. 이와 같은 병원이 코로나19 감염증 유행의 재난 앞에서 비용을 계산하며 몸을 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의료의 어두운 민낯이다. 최고의 인력·기술·자원을 보유한 병원이 국가적 위기 극복에 발을 뺀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아 운영하는 병원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 치료를 남에게 떠넘긴다. 사립이라는 이유로 힘든 짐을 공공에 맡기고 자기 보호를 꾀한다.
사립 병원의 논리는 전문가 단체의 주장에도 반영된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12월 7일에 낸 “코로나19 급증에 따른 중환자 진료 체계 구축을 위한” 성명서는 정부와 보건 당국에 ‘상급종합병원 기반’에서 벗어나 ‘전담 병원 기반’으로 대응하고 ‘대형 임시 병원을 구축(체육관, 컨벤션 등 활용)’하라고 촉구한다. 그 뜻을 되짚으면 정부가 더는 사립 대학병원에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요구하지 말라는, 대신에 공공병원에 맡기고 그래도 부족하면 체육관 같은 곳을 임시 이용해 해결하라는 주장이다. 묻고 싶다. 의학회는 공공병원의 어려운 의료 여건을 과연 모르는지. 중증 호흡기 환자를 임시 시설에서 치료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는지. 요구대로 대형 임시 병원을 짓는다면 새로 의료진이 필요한데 여기에 학회 전문의들이 참여할 건지.
공공병원이 더 큰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이미 수도권에서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 지방 의료원의 입원 병상을 전부 또는 대부분 비워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키고 의료진이 모두 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된 상태다. 입원한 환자가 호흡곤란 징후를 보여도 중환자를 받아 줄 상급종합병원을 찾기 전까지 치료를 책임져야 하니 의료진의 스트레스가 크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지자체 당국이 응급실, 분만실 등 다른 기능은 줄이거나 정지하게 했는데 여기에도 부작용이 따른다. 의료원에 의지하던 저소득층 환자를 진료해 줄 다른 병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집에서 방치되거나 상태가 나빠져 사망하기까지 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산모, 코로나19에 감염된 혈액투석 환자를 받아 주는 곳도 찾기 어렵다. 사립병원에서는 자기 병원에 다니던 임신부라 해도 감염 확진자라고 하면 공공병원에서 분만하라며 문을 닫는다.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가 되려면
코로나19 유행이 우리나라 의료 제도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지금까지 정부는 건강보험을 통해 필수 의료가 공급되게 하고 국민에게 의료 이용을 보장했다. 그러나 보험의 주된 기능은 돈을 모아 비용을 해결하는 것이며 의료 내용과 성격에 깊게 개입하지는 못해, 그와 같은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에 관한 국가적 관리 기능을 높여야 한다. 국민을 위한 의료, 국민이 안심하는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를 사립 병원이 주도하는 시장에 맡겨둔 채 공공의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자기 사업을 꾸리는 방식으로 의료 활동을 하게 했을 뿐, 공공의 이익을 높이는 의료 체계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는 일제 강점과 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짧은 기간에 의료 공급을 확대할 목적으로 손쉬운 방안인 ‘민간 공급’을 선택했던 과거가 남긴 결과다.
의료는 매우 넓은 범위의 학문, 기술, 활동을 포괄하는 사회적 영역이며 삶의 필수 요소다. 따라서 누구도 의료 전체를 소유하거나 장악할 수 없어 사회 공동의 힘으로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의료에서 공공성은 본질로서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관련해 참고할 선례가 유럽이다. 지난 세기에 그곳 나라들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제도를 세웠다. 나라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르지만,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를 이용하고 건강에 관한 한 안심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에도, 비록 초기 방역에 실패해 유럽 모든 나라에서 환자가 엄청난 숫자로 발생하게 되었지만, 병원 대부분이 공공병원이고 의료진 대부분이 공직자인 제도 안에서 국가적 비상 체계를 작동해 상황을 통제한다. 방역의 실패를 의료가 수습하는 셈이니 우리와는 정반대라 할 만하다.
공공성을 높여 누구나 건강하게 하는 제도, 공공의료에 관한 짧은 글로 올 한 해 〈작은책〉 독자와 만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