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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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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대한민국 9급 공무원

 

 

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차 9급 공무원이다. 내가 일하는 주민센터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민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거다. 어떤 때는 정말 다들 손에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리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에는 정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진다. 점심시간 중에도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민원을 봐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 잘릴 염려 없고, 어쨌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 나는 운이 좋구나 싶다가도, 한 번씩 인터넷상에서 공무원들을 놀고먹는 철밥통에 세금이나 축내는 한심한 존재로 싸잡아서 얘기하는 댓글들을 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내 경우만 해도 몇 년에 한 번 주민센터에 가서 민원을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뭐 사람들이 그리 있을까 생각들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정적의 시간 동안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주민센터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롭게 일하는 곳으로 비치기도 할 테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화된 지금도 단골 민원인들은 있다. 어떤 민원인들은 마실 삼아 주민센터에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온다. 아침에 번호 대기표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서 오늘은 좀 사람들이 덜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치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듯이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있고, 점심도 체하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화가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질라치면 화를 내고,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 달라고 떼를 쓰는데 안 된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고, 직원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존감 뭉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그야말로, 던진다. 과연 이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 일을, 먹고살기 위해 직업으로 택한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들은 말이다. 비록 '노동자의 날'에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는 하지만, 월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거의 최저시급이고, 민원인들이 갑질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주장을 얘기하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 맘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만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욕도 배부를 정도로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재난 지원금과 관련된 경우였다. 먼저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정부에서 1차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기사가 난 이후 주민센터로 그와 관련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지침도 안 내려오고, 우리도 아는 거라고는 기사로 난 정보가 다였는데 말이다. '지침이 안 내려와서 안내를 드릴 수가 없다'는 답변을 하면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을 위해야 하는 주민센터에서 그것도 모르고 그 정도의 답밖에 못 해 주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재난 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야근에, 주말 출근에,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갔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해외 체류 등으로 지원금 수급의 자격이 안 된다거나, 가족이라 세대 분리가 안 되는 등의 사유로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이었다. 우리도 돈 더 드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럴 땐 진짜 내 월급이라도 까서 드리고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된 경우가 많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괴로웠다. 물론 좋은 민원인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와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인 걸까?

나는, 아니 대부분의 말단 공무원들은, 하루하루 성실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길 원한다면, ‘내가 내는 세금으로 너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러느냐?’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우리도 세금 누구보다 꼬박꼬박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돈이라는 건 원래 돌고 도는 존재라, 그 사람들이 말한 세금이 우리 월급에서 차지하는 지분만큼 나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각종 부문에서 성실히 소비하고 있는 돈이 흐르고 흘러 그들에게 눈꼽만큼이라도 가는 것이니 말이다.

서류 한 장에도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고 미소 지으며 말씀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작은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