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20년 10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
김계월/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
저는 항공기 기내 청소를 하는 노동자입니다. 2014년 6월 아시아나항공 하청의 재하청 업체인 케이오(주)에 입사해서, 코로나19로 인하여 2020년 5월 11일자로 정리해고가 되었습니다. 거리에 천막을 치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그 해고 판결문을 받기까지 100일 하고도 15일이 지났습니다.
저희 청소 노동자들은 승객들의 쾌적한 비행을 위해 사용했던 모포와 베개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좁은 기내를 오가고, 의자 벨트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포켓에서 오물을 빼내며 허리를 잠시 펼 시간도 없이 반복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항공기 한 대라도 더 일 시키려고 밥시간을 지켜 주지 않아 저희는 승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 초콜릿 등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조차 틀어 주지 않아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며 일했고 캄캄한 항공기에서 손전등을 켜고 일하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퇴근 시간도 지켜 주지 않아서 감독(중간 관리자)하고 자주 언쟁도 해 가며 퇴근 시간 지키기(퇴근 15분 전에는 비행기 청소 안 받기), 밥시간 지키기, 파워(전원) 안 들어온 비행기 청소 안 하기 등 기본적 권리 찾기를 하며 근무한 지 6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저에게 회사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를 쓰라고 했지만, 서명을 하지 않았고 민주노조 조합원 8명과 함께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기 전 4월부터 9월까지 70퍼센트의 유급휴직을 주겠다고 3월 16일 1노조(한국노총 소속)와 합의한 내용을 공지했지만, 3일 만에 합의한 내용을 뒤집었습니다. 선택의 시간은 일주일뿐이었고 그 시간 동안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회사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민주노조의 간부로서 이 부당한 결정에 팀장과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의와 설득도 했지만, 고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희망퇴직을 하고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썼습니다. 한 동료는 아끼던 작업복을 깨끗이 세탁해 "다음에 저를 불러 주면 제 작업복을 주세요" 하고 울면서 회사를 떠났고, 또 다른 동료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살이 빠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인천공항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모든 책임을 케이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고, 위로 한마디나 대책의 말도 없었습니다. 선종록 대표라는 사람은 정말 악덕 사장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을 이용해 민주노조 간부들을 정리해고하는 지경에 이른 것도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종각역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그것도 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일에 농성 천막이 종로구청과 공권력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두 번, 세 번 농성 천막을 설치했지만 그마저 강제 철거당해 1톤 트럭과 1인용 텐트로 농성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7월 13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7월 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아직도 복직 이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재벌의 횡포는 법도 무시하며 이렇듯 해고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 지난 6월 세 번째로 천막이 강제 철거된 날 1인용 텐트를 치고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노숙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코로나19로 원청 아시아나항공은 1조 7천억 원이라는 고용유지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냈지만 하청 또 그 하청 케이오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수백 명이 희망퇴직으로 무기한 무급휴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선종록 대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민주노조 탄압과 말살로 일관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아시아나 하청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복직할 수 있도록 사측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거리에서 농성한 지도 어느덧 봄을 지나 긴 장마를 견디고 9월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을 스쳐 지나는 바람이 새삼 고맙기까지 한 건 여름 내내 습하고 더운 날씨에 땀띠로 고생한 일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뜨거운 땡볕 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피켓 선전을 함께해 주신 연대 동지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동지애로 남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절대로 포기하지는 말자, 뼛속 깊이 다짐 또 다짐하며 저는 오늘도 해고자란 딱지를 떼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해고자 없는 세상을 위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재촉하겠습니다.
▲ 해고 통보 내용증명을 피켓으로 만들어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