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작은책> 20195월호

쉬엄쉬엄 가요

책 읽고 딴 생각_ 바벨탑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9)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출판 편집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가 되곤 하는 갑질을 그저 예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오히려 워낙 일상화되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뿐이지, 크고 작은 갑질을 예사로 당하고 사는 게 대다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벨탑 공화국에서 강준만은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결과에 의해 생겨나며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도 실은 그런 의도하지 않은결과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을 낳는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모습이다.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간 격차, 학력·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 책 제목의 바벨탑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 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이는 바벨탑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거니와 국민 다수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해도 그건 내 손톱 밑의 가시보다 하찮은 일이라는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있는것이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환기하면서 바벨탑의 붕괴로 가는 길이라 진단한다.

욕망의 바벨탑의 이면은 모욕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낮은 서열의 사람을 모욕하는 걸 자기 존재 증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많은 건 물론이려니와 모욕의 강도를 높여 나가는 걸 자신의 위계가 올라가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사코 모든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기고 그 격차를 크게 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이유를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가 바벨탑 공화국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건 서울 초집중화이다. 거칠게 간추리면 지방을 희생한 대가로 서울이 모든 자원을 독식하는 갑질이야말로 이 나라를 온통 서열 사회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난 용의 첫 번째 조건을 우선 서울에 진입하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무리한 주장도 아니다. 그 결과 지방은 점점 더 황폐화되는데. 그 피해가 지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령 도시 인구가 20만에서 10만으로 줄었다고 해도 그 도시의 도로나 수도, 전선, 통신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일이고 어느 도시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프라 비용때문에 똑같은 면적에 절반의 인구가 살게 되면 재정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올까.

더 의미심장한 건 지방이 식민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본조차 약화된다는 지적이다. 워낙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기는 하다. “겨우 한 자릿수 신뢰도를 갖고 있는 권력기관, 10퍼센트대의 신뢰도를 갖고 있는 언론과 종교, 20퍼센트대의 상호 신뢰도를 갖고 있는 국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라니까. 그런데 저신뢰 사회의 부정적 효과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지방에서 사회적 자본의 약화는 지방 소멸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체가 파편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비단 지방민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5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는 다시 축제 분위기에 달아오를 것인가? 56년 만에 개최하는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우리나라도 출전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에 돌입할 텐데, 나이 들어 그런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젊디젊은 선수들은 일단 뿌듯하더라도 색다른 마음 준비가 더 필요하겠다.

작년 105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해 물의를 빚었다. 허용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겠다지만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 총량은 줄지 않는다. 규제위원회가 오염수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늘어나는 오염수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양해하겠다는 건데, 일본 어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우리와 일본을 포함한 세계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올림픽위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에서 시작하려는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후쿠시마에서 개최할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를 지원할 자원봉사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다. 핵발전소 폭발 이후 9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후쿠시마의 새로운 희망을 국제사회로 전파하겠노라 기염을 토하지만 자원 봉사자가 목표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다는 거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일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그렇게 짐작한다지만, 도쿄에 비해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지극히 적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국제적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건지, ‘도쿄 2020 음식 제공에 관한 기본 전략에서 경악할 계획을 밝혔다. 올림픽 기간 동안 후쿠시마를 비롯해 지진과 핵발전소 폭발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해 선수촌 식당에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런 방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세계의 건장한 젊은이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셈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2011년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 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가공한 제품들을 먹어서 후쿠시마에 힘을 실어 주자!”던 민간 캠페인이 있었다. 그 여파로 유명 방송인과 연예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시달려야 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안전해졌을까? 그럴 리 없다.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땅과 대기는 지금도 일반적 허용 기준치를 5배 넘나든다. 핵발전소 폭발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그 위험성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민 거주 공간은 기준치 이내라고 홍보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활하수가 모이는 지역이라면 여전히 위험 수준이다.

우리 정부도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로 규정했는데, 이하의 수치를 보이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나라마다 제각각인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그 나라의 시민의식을 반영한다. 시민이 반사능에 민감하다면 엄격하겠지만, 아니라면 그 나라의 핵 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그런 기준치는 대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에 따른다. 방사능 위험성을 주목하며 탈핵운동에 앞장서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익중 교수는 무리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연간 1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받는다면? 만 명당 1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암에 걸린다고 무조건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살아나려면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힘겨운 치료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가 예정된 후쿠시마는 현재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는데, 내년엔 나아질까? 그럴 리 없다. 방사성 물질에서 내뿜는 방사능을 1년 만에 줄일 방법은 없다. 사고 이후 황급히 집을 떠난 후쿠시마 시민들은 되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주거 지역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완화한 사실에 분노할 따름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공유하는 벨라루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폭발을 알았어도 대규모 행사를 강행했는데, 하필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방사능 낙진이 집중된 게 아닌가. 벨라루스는 아직도 기형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으로 몸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가 연속 폭발한 일본은 예외였을까?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겉흙 1400만 제곱미터를 걷어 냈지만 오염된 흙을 모두 들어낼 엄두는 내지 못한다. 대신 꾐수를 고안했다.


킬로그램당 100베크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본은 8000베크렐 이하인 흙을 도로포장에 활용하기로 기준치를 슬그머니 완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000베크렐 이하인 흙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허용했다. 사고 이후 걷어 낸 흙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산더미로 쌓아 놓고 있는데, 당국은 170년이 지나야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기준치로 낮아질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세슘이 있는 흙 위에 콘크리트를 덮는다면 괜찮을까?

베타선을 방사능으로 방출하는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30년 뒤에 방사능 선량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독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반감기가 최소 10번 계속되어야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데, 베타선은 콘크리트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사람 피부는 능히 통과한다. 30년 이상 틈이 벌어지지 않는 도로포장은 없는데, 폭발된 핵발전소에서 내놓은 방사성 물질이 세슘만이 아니다. 간단한 장비로 검색하지 못할 뿐, 세슘보다 반감기가 길고 독성이 강한 물질이 많다. 폭발 전에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핵발전소를 이중 삼중 안전시설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문제는 음식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험해지는 방사성 물질이 몸속에서 방사능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낮은 수치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허용 기준치 이하라는 걸 올림픽을 앞둔 일본 당국은 유난히 강조하겠지만, 그런 말에 마음을 놓을 환경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를 찾은 후쿠시마 농부들은 환경단체 활동가의 손을 잡고 제발 후쿠시마 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오염된 농토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납품된다면? 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음식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우리나라처럼 킬로그램 당 100베크렐로 정했는데, 김익중 교수는 그 수치를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비교한다. 제한속도를 시속 1000킬로미터로 규정한다면 속도위반 차량이 없더라도 도로는 매우 위험해지겠지. 몸에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 플루토늄이라면 더욱 끔찍하다. 반감기가 24천 년인 플루토늄은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케 할 방사능을 가진다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철보다 무거운 플루토늄은 후쿠시마 앞바다에 쌓였을 텐데, 설마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는 해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는 건 아니겠지?

세계 51개국이 일본의 농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하는 현실이건만 일본은 한국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1심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현지 실태 조사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고 제출하지 않아 패소했다.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 다행히 2심에서는 한국이 승소했다. 2심에서 이긴 게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가 원산지를 확인하고, 정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해산물을 먹지 않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5월호

일터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작은책기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전문 성악인들과 연주자들이 경기도 양주 시내 한 교차로에 서서 민중의 노래(영화 <레 미제라블> 삽입곡)’를 부른다. 이 곡은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 때 광화문에서 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다.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데 이들은 무슨 일로 길거리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양주시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이하 양주시립예술단) 단원들이다. 그런데 지난 11일부로 60명 전원이 해촉됐다(합창단 25, 교향악단 35). 예술단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양주시가 사업을 종료하고 양주시의회는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합창단은 2003년에, 교향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어 시민들에게 해마다 20회 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갑작스런 사업 종료로 시민들은 올해부터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양주시 교향악단, 합창단 2016년 송년음악회 모습.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양주시립예술단 단원이자 공공운수노조 양주시립예술단지회(이하 지회) 조합원 김용원 씨(37)와 송수진 씨(31)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았다. 합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은 김용원 씨는 2017년에, 교향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송수진 씨는 2016년에 각각 모집 공고를 보고 입단했다.

시립(단원)이라는 것은 (음악 전공자로) 거의 최고죠. 공인된 느낌? 레슨도 많이 들어오고 경쟁률도 엄청나고요.”

▲ 2016년 양주시 교향악단합창단의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홍포 포스터.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이들은 정기연주회 외에도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파크 콘서트등의 무대에 서며 양주시 곳곳에서 연주를 해 왔다. 연주회를 위해 주 23시간씩 함께 모여 연습을 하고 받는 임금은 50만 원. 타 지자체 예술단보다 20만 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상임단원들은 지방공무원 8급 대우에 복지카드도 나오고요, 저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계약직이죠.”

2회 연습에 월 50만 원을 받는다면 임금이 많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합주하는 시간말고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노동시간이 있다.

합창단은 보통 (곡을) 외워 오라고 해요. 가사가 다 외국어인데 내 시간 내서 외워야죠. 어려운 곡들도 있는데 그때는 스트레스죠.”

악기의 경우 악기 유지관리비와 개인 연습실 사용료 등 지출이 크지만, 양주시에서는 보조해 주지 않는다.

한번은 연습 때 만든 단이 무너져서 튜바가 쓰러졌어요. 해외에서 수리해야 하는데 천만 원 정도 드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관광과(담당 부서)에 얘기를 했거든요. 시는 예산이 없다고 해서 결국 50만 원 받고 끝냈어요.”

단원들은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임금인상이나 상임단원으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주를 해왔지만 점점 참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교향악단에 부임한 김OO 지휘자는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향악단을 데리고 다른 단체명으로 시와 관련 없는 외부 연주를 했다. 2014년에만 연 10회 이루어졌고, 2015년과 2016년에는 지휘자의 아들들이 포함된 음대 입시생들의 협연에도 동원됐다.

관객이 학부모들로 열 명도 안 되고, 학예회 수준이었어요.”

김 지휘자는 찬성한 단원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지휘자가 있는 데서 거수로 투표가 이루어져 불이익을 받을까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지회는 주장하고 있다. , 지회는 시외 공연을 위해 양주시교향악단 근무시간에 외부 공연 연주곡을 연습하는 날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단원들은 김 지휘자에게 시청 모르게 하는 연주는 하지 말 것’, ‘협연 학생들에게 돈 받지 말고 양주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하여 양주에서 협연자 음악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양주시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이지만 시는 예술단에 대한 기본 관리·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예술단을 총괄하는 단무장은 역시 시외 연주를 강요했다.

양주시립교향악단 송수진 씨와 합창단 김용원 씨.  작은책(정인열)

2017년 참다못한 수석단원들이 문화관광과에 찾아가 호소했다. 송수진 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대요. 심지어 누가 찾아갔는지 지휘자한테 전했고요.”

시외 공연에 반대한 단원들은 경고를 받거나 평정(오디션)으로 수석단원에서 일반단원으로 강등됐다. 이들은 평정 부정심사 의혹도 제기한다.

평정 점수를 당사자한테 공개 안 해요.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점수를 줬는지 저도 알아야 뭘 잘못했는지 아니까요. 다른 데는 다 알려줘요.”

김 지휘자가 레퍼토리도 다르게 구성한 사례도 폭로했다. 특정 단원에게 어펴운 파트를 집중시켜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송수진 씨가 말한다.

지휘자가 트럼펫 수석을 자르려고 마음을 먹고 트럼펫 솔로만 세네 줄 나오는 서곡을 2개 넣었어요. 틀리면 실력 미달로 어떻게 하려고 했었나봐요. 우리 트럼펫 주자들 따로 모여서 진짜 독기를 품고 연습했죠.”

보통 서곡-교향곡으로 구성되는 연주회는 지휘자의 권력으로 서곡이 2개인 이상한 구성이 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단무장이나 담당 부서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지회는 밝혔다.

합창단 단역시 고통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부임한 이OO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막말과 고성, 반말을 일삼았다. 김용원 씨가 말했다.

저한테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질렀어요. 지휘자가 너무 소리질러서 지휘자님,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했거든요. 어린이합창단하고 협연할 때도 꺼져!’ 하는 거예요.”

양주시 합창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합창단 단원들도 교향악단 단원들처럼 지휘자에게 시정 요구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거의 대부분 단원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시에 제출했지만 이 지휘자는 대표격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러 간 단원 4명에 대해 해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해촉당하면 다른 데 시험 볼 때 불이익을 받아요.”

해고 위협을 느낀 단원 3명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사임하고 김민정 씨만 버텼다. 이 지휘자는 김민정 씨를 연습과 공연에서 두 달간 배제시켰다. 김용원 씨가 증언한다.

매일 저희 연습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요. 혼자 배제돼서 연습실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누나도 울었죠.”

합창단 단원들은 2018918일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양주시립예술단지회를 설립했다. 김민정 씨는 노조 지회장이 됐다. 곧이어 교향악단 단원들도 노조에 가입했다.

시의회는 양주시립예술단이 20181212일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연간 일정을 마치자 곧바로 양주시립예술단 운영예산 전액(75천여만 원, 1218)을 삭감했다. 이어서 시는 예술단 전원에게 1226일 해촉 통보를 했다.

▲ 송수진 씨가 양주시로부터 받은 해촉통지서.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양주시예술단지회. 

양주시립예술단은 전원 비상임단원으로 해마다 평정에 통과하면 자동 재위촉됐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시는 단원들을 프리랜서처럼 위촉했다. 하지만 이 아무개 단원이 낸 부당강등 구제신청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20186, 201811).

지회는 2018년 송년음악회 준비 때부터 시와 시의회가 예술단 사업을 종료할 계획이었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공연 2주 전에는 포스터가 나오고 시 전역에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성호 시장은 홍보 결재를 공연 7일 전에 했고, 협조 공문 발송은 6일 전에야 시작되어 홍보 기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항상 관람객으로 꽉 들어차던 객석이 송년음악회에는 100석도 채우지 못했고, 이를 빌미삼아 정덕영 시의원은 예산 삭감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회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촉됐다고 주장한다.

양주시에 노조가 하나도 없어요. 청소용역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 시장이 노조 없애면 처우 개선해 주겠다 했대요. 공공연히 다 퍼진 얘기예요.”

▲ 양주시 홈페이지. 양주시와 시의회는 단순히 사업 종료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양주시 홈페이지 갈무리.

황영희, 김종길 의원도 예산 심의 때 노조 만든 곳에 예산 세워 줘야 하냐며 노골적으로 노조를 반대했다. 하루아침에 해촉 당한 단원들은 해촉 철회, 양주시립예술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이들의 장기인 음악으로 시위했다. 이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지자 양주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꾸렸고 전국 예술단체들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서 양주시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예술단체들도 다 노조가 있더라고요.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서울시향, 성남, 제주, 광주 전부. 솔직히 놀랐어요.”

지회의 요구는 양주시민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뿐이다. 지휘자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예술단이길 거부하고, 폭언과 갑질에서 벗어나 음악에만 집중해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단이 되고 싶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이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음악으로 투쟁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5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한국음료지회 조합원

 

 

지방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던 나는 200812월 전라북도 남원시에 OEM(주문자위탁생산방식)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음료 공장의 식품연구소 대리로 입사하게 되었다.

한국음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_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는 자사 브랜드 없이 OEM사의 신제품 개발 및 처방 개선을 해 가며 자체 생산을 유도하여 매출을 이어 갔으며 롯데칠성, 팔도, 매일유업, 남양유업, 광동제약, SPC 등 국내 많은 기업들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한국음료는 지난 20103월 엘지생활건강 음료사업부인 코카콜라에 인수되었고, 한국음료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결정은 엘지생활건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인수 후 코카콜라 70퍼센트, 해태음료 10퍼센트, OEM사의 매출을 20퍼센트대로 유지하던 중 OEM 제품의 생산을 철수하라는 엘지생활건강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맡고 있던 OEM사의 신제품 개발 업무는 없어지게 되었으며, 현장 일은 전혀 모르던 내가 배합, 충진, 입고검사 중 택일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을 때 고심 끝에 배합 업무를 선택하였다. 주간 8시간 근무에서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과장 직급을 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생산현장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비 관련 업무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현장의 디테일한 업무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도 찾아가는 등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비와 공정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산 중이던 배합액 일부를 폐수장으로 흘려보내 징계 위기까지 갔던 일, 첨가물 용해 시 밸브 조작 미숙으로 용해 중이던 첨가물탱크가 넘쳐 났던 실수 등을 경험하면서 세상사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더 이상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묵묵히 일만 하던 우리도 엘지의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과 부푼 마음으로 엘지라는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게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엘지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대기업 손주뻘 되는 자회사가 되었으니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겠으나,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한국음료 사측은 1)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 2) 지켜지지 않은 희망고문 3) 신규 채용은 손에 꼽을 정도며 정규직도 기댈 곳 없고 급기야 노노갈등까지 우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 각각의 포지션에서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행함에도 회사에서는 개인의 업무 외에도 잡다한 일들로 직원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지시에 따르라는 일방적인 회사의 태도에 상실감과 자괴감에 위축이 되었다.

2) 코카콜라에서 인수 후 안내를 위해 내려온 인수팀, 공장 업무를 맡았던 엘지생활건강과 코카콜라 책임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짧게는 3, 길게는 5년 내에 코카콜라 임금의 80~90퍼센트 수준까지 올려 주겠다던 약속, 복리후생 또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맞춰 주겠다던 약속들은 우리에게 희망고문이 되었다.

3) 서서히 아주 서서히 100명이 넘던 정규직 직원이 47명만을 남기고 도급직으로 바뀌었으며 라인을 하나 증설했음에도 신규 채용은 없었다. 경비직, 조리직, 생산직 중 여직원 전원, 물류직군까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모조리 도급화하였다. 

위 직군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배합과 충진업무를 제외한 후공정 6명 업무도 도급업체로 모두 넘어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선 한국음료 직원들에겐 이제 충진, 배합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수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사측은 고정비 중 인건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결국 선택권 없는 직원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으며, 인수한 지 9년이 다 되도록 근로조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에, 이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멈추고자 자구책으로 지난해 4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 전북지부의 문을 두드리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북 남원 한국음료 공장 입구에서 노동자들이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2019110). 사진제공_ 한국음료지회


한국음료지회 2018101일을 시작으로 투쟁 기간 184, 단식농성 28일 경과. 드디어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천막을 걷었다.

인간 존중, 정도 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는 LG그룹을 상대로 한국음료지회 조합원만으로는 이토록 장기간의 투쟁도 역부족이었음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단식농성까지 하는 모습을 본 많은 분들이 사측의 부당함에 함께 맞서 연대해 주시고, 우리의 안타까운 싸움이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고, 시민단체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자발적인 시민들의 성금으로 메인 일간지 1면에 엘지생활건강 규탄 광고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6개월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LG그룹이 한국음료지회 노동조합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LG 자본 규탄 및 한국음료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모이고 있다(20181110). 사진제공한국음료지회


장장 반년이 넘는 정말 힘든 투쟁이었다. 혹자는 궁금해했다. 한국음료 조합원 29명의 이 처절한 6개월간의 싸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사실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그동안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우리 한국음료지회 노동자들이다. 이젠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며 모든 노동자들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퇴근길 선전전(2018115) . '' 피켓을 든 사람이 서종원 씨사진제공_한국음료지회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5월호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교사

 

 

2017년부터 해마다 할 말 있어요를 하고 있다. ‘할 말 있어요는 작은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교사인 내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할 말 있어요는 칭찬할 일, 억울한 일, 부당하다 생각되어 신고할 일 따위를 적어 내는 종이다. 이것을 나는 모두 읽어 보고 해결을 본다.

10년도 더 전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 주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 말은 다 들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 들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명 가까운 교실에서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인 데다 수업 준비와 잡다한 일로 말 걸어오는 아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다 들어 주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와의 소통을 독점하면 수줍음이 많아 나서기 힘든 아이들은 앓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기도 했다. ‘왜 말 안 했니?’라고 물어도 입을 닫고 있다. 이미 늦었다. 아이 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참 어렵다. 그냥 모두 다 듣겠다는 분위기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다. 처음 누구나 써낼 수 있도록 좀 넘치는 말을 했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나는 써내는 글은 모두 받아 읽고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듣고는 중재를 했다. 이러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뭐든 써냈다. ‘지나가다 쳤어요’, ‘화를 냈어요. 아주 사소한 불만, 불합리함 그리고 조금의 칭찬과 장난 글까지 많이도 써냈다. 지난해에 600개가 넘는 할 말 있어요를 받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 쓰게 한 덕이 컸다. 그냥 써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확 줄었다. 보통 아이들은 앞뒤 잘라 내고 말을 하는 터라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 가며 들어야 좀 알아듣는데, 글로 내용을 미리 보며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확 줄었다. 또 기록의 힘도 있다. 이렇게 써낸 기록을 모두 모아 놓으니 뒤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재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자칫 편을 들다가는 원망을 사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 판단해서 학부모님의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요령은 늘었다. 천 번이 넘도록 중재를 하며 자리 잡은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들어온 할 말 있어요를 읽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른다. 서로 같이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할 기회를 준다. 부족할 때는 본 아이들도 부른다. 그렇게 따져 보고 고의로 했는지를 밝힌다. 따져 보면 대부분 오해 때문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도록 한다. 그러면 끝난다. 이제는 과정이 3분 이내로 끝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나름 속 시원한 것이 있나 보다. 지난해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두면 바로 사라졌다. 아무리 많이 복사해 둬도 그렇다. 이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이 종이를 뭉텅이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니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또 헤어지며 할 말 있어요종이를 일부러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서먹한 아이가 없다. 예전에는 헤어지고 다시 보면 한두 아이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다 웃으며 본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헤어진 누구와도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렇게 아이들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서로 소통이 안 되어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불만을 표현할 줄 몰라 마음에 담아 뒀다가 다른 충돌이 있을 때는 더 큰 감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잘 놀지 못하는 환경이 이런 수줍음을 낳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수줍음이 서로 놀지 않아 그렇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 교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쉬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도구를 두고 놀도록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툼은 더 늘었다. ‘할 말 있어요는 더 들어왔다. 놀이의 시비를 가리는 일까지 내게 들고 왔다.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지만 그래도 다 받았다. 그런데 이게 딱 한 달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잘 논다. 자기들끼리 규칙이라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서로 심판을 보며 큰 다툼 없이 논다.

올해도 나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지난해 선배들이 한 두툼한 할 말 있어요뭉텅이도 보여 준다. 이를 보더니 몇몇 아이는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올해는 할 말 있어요받는 부서를 두고 아이들 도움으로 같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무들끼리 서로 나누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내가 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 내 책상 위에는 할 말 있어요종이가 쌓여 간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5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봄나물 잔치

윤혜신/ 밥 짓고 꽃밭 가꾸는 시골밥집 미당주방장, 착한 밥상 이야기저자

 

 

요즘 들어 우리 옆 동네에 자주 가게 된다.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열고 목요일 저녁마다 수묵화반이 생겨서 작년 늦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수묵화를 그리러 다닌다. 미술관 앞에 책방도 생겼다. 오래된 시골 이층집을 살짝 고쳐서 아담한 책방을 열었는데 시골이라 어디 갈 곳이 마땅찮다가 아담한 시골 책방이 생기니 신이 났다. 그런데 또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내가 쓴 그림책 꽃할배를 알고는 작가라며 반겨 준다. 식당 주방장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림책 저자라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며, 갑자기 지역 작가로 우대를 한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세 명의 여성들이 밝게 웃으며 식당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그림책방 주인장 소개로 왔다며 자기들도 모두 동화작가라 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대접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아는 그 시골 책방에서 강연도 하신단다. 어쨌든 세상이 다 하나로 연결된 느낌이다.

강원도에 사시는 선생님에게 봄날이 되었으니 한번 산에서 내려오시라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놀러 오신다 해서 이번에는 책방 주인장과 동화작가들을 같이 초대했다. 선생님 내외분도 그림책 작가시니 이름만 대면 서로 아는 사이리라. 그리하여 어느 봄날 밤에 모두 모였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를 뚫고 다들 모여 앉았다.

나는 조금 특별한 봄 요리를 준비했다. 냉이를 다져 넣은 만두, 취나물을 갈아 쑨 죽, 방풍과 새우를 잘게 다져 넣은 전, 상수리묵과 묵은지, 취나물현미밥과 방풍조개된장국. 봄나물을 이용해서 색다른 맛을 냈다. 모두들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맛있게 봄 요리를 먹었다. 예산 박 선생님이 작년 여름에 담근 술을 가져와서 입이 호강을 했다. 모두들, 냉이만두는 처음이라며 맛있게 먹고 신기해했다. 중동의 친구가 가르쳐 준 요리인 혼음, 내가 보기엔 만두는 만두인데 한꺼번에 크게 말아 쪄서 잘라 먹는 만두라 손쉽게 만두를 만들겠다 싶어서 내 방식으로 응용을 해 봤다. 먼저 밀가루 반죽은 거의 비슷하게 한다. 그런데 반죽을 밀 때, 우리나라 칼국수 반죽을 홍두깨로 밀듯이 커다랗게 밀고 그 위에 만두소를 골고루 얹어 돌돌 말아서 우리네 곱창같이 (순대같이) 둥그렇게 말아 놓고 찐다. 한 김 나가면 잘라서 접시에 담으면 된다. 나는 고기 위주인 그네들의 소 대신 양파, 부추, 냉이나물을 듬뿍 넣고 고기를 약간만 넣어 만든 소로 냉이만두를 만들었는데 냉이향이 향긋하니 맛난 만두가 되었다.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내려와서 차와 다과를 먹으며 동화책 이야기랑 그림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마침 송악에 살면서 그림책방과 그림책스테이를 준비하시는 감자꽃 선생님이 다음 날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 몇 년째 그림책방을 준비 중이시라고. 우리는 꼭 가겠노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송악의 책방으로 놀러 갔다. 같은 당진이라지만 오지라고 할까. 가도 가도 시골길을 달려서 논밭 가운데 우뚝하게 서 있는 예쁜 책방. 높은 벽면 가득히 그림책이 꽂혀 있고 아직도 나무 냄새와 장작불이 타고 있는 동화 같은 집에 들어갔다. 한 사나흘 정도 이런 집에서 그림책만 실컷 보며 쉬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램이다. 맛난 커피를 내려 주셔서 집안 구경도 하고 감자꽃 작가님의 책도 보고 즐겁게 놀다가 다시 면천의 책방 오래된 미래로 향했다.

책방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지고 이담 선생님의 팬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기다렸다. 글쓰기 모임의 선생님과 제자라고. 역시 좋은 책을 쓰고 그리니 어딜 가도 팬들이 있다. 작은 책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 사인도 하고 담소도 나눴다. 책방 주인인 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모두 책 선물을 했다. 예전부터 사려던 책을 딱 알아서 주시니 고마웠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을 그린 그림책. 그 책장을 하나씩 넘겨 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예산 슬로우시티 대흥마을로 가서 박 선생님이 하시는 수공예공방 짚과 헝겊에 갔다. 누님은 헝겊으로 가방, 모자, 손지갑, 생활용품을 만드시고 동생은 지푸라기로 짚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특별히 이 공방은 예산에 사는 마을분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만을 판매한다고. 인형이며 브로치, 액자며 옷가지들이 정겹게 진열되어 있다. 선생님이 타 주신 꽃차를 마시며 예쁜 손물건을 구경하고 밀린 수다를 떨었다. 오후가 돼서 우리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했다.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가끔씩 얼굴 맞대고 사는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살다가 실수한 거며 때론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든 이야기며 부모자식 이야기를 나누니 핏줄이 아니어도 피붙이 같은 사람이 있다. 나도 남편도 집안의 첫째라 언니나 형이 없어서 의논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다 만난(살림살이라는 책을 쓰다가 만남) 이분들은 내 친언니 친오빠같이 서로를 챙겨 준다. 가끔씩 만나면 너무 반갑고 안 보면 보고 싶다. 어제 하룻밤인데도 한참 전인 것처럼 느껴지고 빈자리가 허전하다.

어떻게 보면 우린 모두 이방인이고, 외지인이다. 강원도, 서울, 대구, 전주, 대전. 각기 자기 고향을 두고 여기서 살게 되었고 여기서 만났다. 외지인이라는 외로움이 우리를 더욱 친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살뜰하게 살펴 주고 다독여 주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괜히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들을 어색해하지 않고 맛있다고 색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나는 또 용기백배하여 이것저것 요상한 조합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며 신난다.

다음엔 꽃이 활짝 핀 따스한 날에 만나서 텃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맛난 요리를 만들어 봐야지. 가지로 국을 끓이고 애호박으로 김치를 담가 볼까나?

 


냉이곱창만두

만두피 재료 : 밀가루 3, 따뜻한 물 1컵 반, 소금 약간

만두소 재료 : 다진 소고기(돼지고기도 가능) 300그램, 양파 1, 대파 2, 부추 100그램, 냉이 300그램

양념 : 소금, 후추, 참기름 2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그림_ 이동수


만들기

1. 만두피 반죽을 해서 비닐봉지 안에 넣어 숙성시킨다.

2. 양파, 대파, 부추는 다져서 소금에 살짝 절인다.

3. 냉이는 다듬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짜고 다진다.

4. 절인 채소를 꼭 짜고 소고기와 냉이를 넣어 양념한다.

5. 반죽을 다시 치대고 반으로 나눠서 최대한 얇고 큰 타원형으로 민다.

6. 길이로 펴고 소를 반으로 나눠 골고루 얹고 김밥 말듯이 아래부터 만다. 끝 쪽은 떨어지지 않게 잘 붙인다. 이렇게 2개를 만다.

7. 찜통에 젖은 보자기를 깔고 김이 오르면 순대처럼 둥글게 말아서 30분간 찐다. 5분 식혀서 한 토막씩 잘라 접시에 놓는다. 달래초간장을 곁들인다.

* 냉이뿐 아니라 취나물, 방풍, 원추리, 유채 등 어떤 봄나물을 데쳐 넣어도 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4월호

세상보기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공정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태경/ 정치철학연구자

 

 

지난 2월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에 서울대 총학생회가 성명을 내며 논란이 인 바 있다. 노조의 파업은 지지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서관 난방은 중단하지 말아 달라는 게 성명의 골자였다.

성명 발표 후 대학 내외부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총학생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3일 만에 노조와의 연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논란은 사그라졌지만, 대학사회의 이러한 혼란이 이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의 20대 청년학생들은 대체로 87민주화투쟁을 경험한 386세대의 2세들이며,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화 이슈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한 세대집단이다. 노동의 기본권과 학생들의 피해를 저울질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공정함이란 어떤 것일까.

 

두 노동자의 죽음

잠시 두 개의 죽음에 대해, 혹은 그 죽음에 반응하는 방식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그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든 채로 산화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80년대 평전의 출간과 함께 청년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다.

전태일 이후 한국사회는 열사투쟁이라는 것을 시대의 유산처럼 경험한다. 80년대에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고자 한 수많은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열사정국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들의 죽음은 대체로 비슷했다. 군중이 모인 곳에서 불타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 몸에 시너를 뿌렸고, 많은 이들이 유언처럼 구호를 외치며 산화해 갔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당대 시민사회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 정언명령이 되었다.

48년이 지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발생했다. 아무도 없는 작업장에서 홀로 기계 속에 끌려 들어간 그의 몸은 (사진 한 장 외에)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도 남기지 못한다. 이미 2000년대를 전후로 노동자들의 죽음은 철저히 고립되는 형태를 띠었다. 크레인 위에서 조용히 목숨을 끊은 김주익이 그랬고, 열사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유서를 남긴 기아차 윤주형의 죽음이 그랬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 죽음들의 비참과 고통에 주목했다. 그런데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전태일은 왜 자신의 죽음에 사회가 응답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가 원한 대학생 친구는 정말 그의 편이었을까.

 

공정성이라는 낯선 물음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어떤 추상의 집합체가 존재한다. 가족공동체나 근대화 이전의 지역공동체와는 달리, 익명의 사람들이 시장과 미디어를 통해 엮인 거대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예컨대, 올림픽 경기에 함께 열광하는 사람들, 혹은 사회적 재난에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은 익명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하나의 집합체에 결속된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이 네트워크는 때로는 이해관계에 의해 연결되고, 일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상상의 네트워크다. 우리가 공적 가치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예컨대 기본권, 인권, 정의, 법 등과 같은 것들은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공론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분노, 정의의 감정들 역시 이것의 파생물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시민사회혹은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의 지반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부르는 오늘날의 용어가 바로 공정성이다. 이 용어와 함께 거론되는 또 다른 표현이 기회의 균등이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있어 공정성은 기성세대의 정의 관념과는 판이한 내용을 갖는다. 예컨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노동3은 헌법에 속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는 하나의 기본권이다. 그것은 이미 전제되었거나, 협상의 대상으로 축소될 수 없는 판단의 절대적 준거로 간주된다.

반면, 공정성 담론은 모든 것을 협상의 테이블로 올린다. 기회가 균등해야 하기에 어떠한 절대적 준거도 불필요하며, 모든 것은 이해관계의 문제처럼 협상 가능한 대상으로 쪼개져야 한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은 학생들의 피해와 거래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해관계로 간주되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회 균등을 무너뜨리는 무임승차행위로 간주된다.

요컨대, 청년들의 도덕 감정은 완전히 새로운 틀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사회 정의의 관념이나 도덕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는 사회적 재난을 만난 것처럼 격분하고(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 등), 또 어떤 것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치시키며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합의체제가 필요한 시점인데, 문제는 그 합의의 지점에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들어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체제와 위태로운 기본권

새로운 합의의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것이 정부 주도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 모델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은 공론화위원회라는 것이었다. 어떠한 절대적 가치 준거도 없이 시민들의 숙의에 모든 것을 위탁한다는 공론화위의 유토피아 정신은 사회문제의 책임을 정부와 지배권력에 묻던 이전 시대의 감성을 완전히 이탈하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기에, 정부는 사회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통치술을 사용하곤 한다. 80년대까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내치모델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개발독재국가들, 복지 중심의 유럽 국가들 일체가 그러했다. 영어로는 거번먼트(goverment), 우리말로는 통치라고도 번역되는 이 내치의 기법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일정 수준 확보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새마을운동을 생각하자). 반대로, 2000년대 이후 시장 중심의 작은 정부모델이 부흥하며 새롭게 등장한 내치모델이 우리말로 민관협치로 번역되곤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모델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보자. ‘협치의 협력 대상은 시장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다. 공적 영역으로 기업이 호출되고, 기업의 이해관계와 협상의 줄다리기를 할 시민단체들이 또 하나의 파트너로 호출된다. 이 내치의 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파트너십이며, 정부는 이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한 것으로 환원되자(광주형 일자리에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가 주쟁점이었다), 이제 쟁점은 이 거래에서 얼마의 파이를 나누어 갖느냐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노동자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주체가 명확했다는 점이다. 1840년대 이후 노동문제를 통칭한 용어가 사회문제(social question)였다. 빈곤과 죽음이라는 유령은 사회 그 자체가 낳은 난제(question)라는 것, 궁극적으로 자본과 지배권력이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제 뒤바뀌게 되었다. 국가가 갈등의 중재자로 빠지고, 노동기본권이 협상 테이블로 올려지며 혼돈이 시작되었다. 전태일은 1969년의 한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과제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외면할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타협 불가능한 무엇이 존재한다고 가정된 시대가 있었다. 서울대총학생회의 혼란은 2019년 우리 모두의 혼란인가 아닌가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4월호

작은책 법률 상담소

 


임차인이 꼭 알아야 할 주택임대차보호법


양성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세입자분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주택임대차보호법

ⓒ이동수


내 집이 아닌 전세나 월세 형태로 거주하는 세입자분들은 임대차 기간 동안 집주인인 임대인과 적지 않은 문제들을 겪게 됩니다. 일례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당장 집을 구하지 못해 계약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지만 임대인이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으니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겪게 되는 경우 임차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상대적으로 열악한 입장에 있는 주택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적어도 임대차계약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 내용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세입자들이 겪는 문제 중 대표적인 유형은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셋집이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입니다.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하면 집주인은 도리어 법대로 하라면서 집이 나가야 돈을 돌려줄 수 있지 않냐고 역정을 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세계약이 종료된 후 이사를 가기 전 임차권 등기를 해 놓는 방법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아니한 경우 임차인은 임차주택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 등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시에 임차인이 임차권등기 이전에 이미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그 우선변제권은 그대로 유지되며, 임차권 등기 이후에는 이미 취득한 우선변제권을 상실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임차권 등기 신청을 하면 이사를 가더라도 전세보증금을 다른 일반 채권자들에 비해서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임차권 등기 신청 절차나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 드리지 않겠지만 통상 등기 신청 후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이사를 가기 한 달 전에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을 해서 이사 직전까지 결정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동수


두 번째 방안은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 소요되며 임대차계약 사실, 보증금 지급 사실, 임대차 종료 사실만 제대로 입증된다면 패소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물론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내용증명 등을 보내 그 지급을 요청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임대인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승소할 경우 상대방에게 소송 비용 일부를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1년만 계약한 임대차계약, 1년을 더 임차하여 살고 싶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임대차 기간을 1(2년 계약 후 다시 1년 연장 계약을 한 사안도 동일함)으로 했는데, 여러 사정의 변경으로 인해 계약기간을 1년 더 연장하고 싶은 경우입니다. 보통 집을 계약하면 2년 단위로 하는데 이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2년 미만 즉 1년만 계약하더라도 세입자는 최소 2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집주인은 1년만 계약한 세입자에게 2년 거주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세입자인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1년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다시 1년의 계약 갱신을 원하면 추가적으로 1년 거주가 가능한 것이고, 임차인이 원하지 않으면 1년 계약이 끝나는 즉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동수


앞서 임차인이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살펴봤는데요, 임대인과의 관계에서 주택임대차 문제로 부당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상황을 풀어 갈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4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의부증 청산 수업료

임전/ 숲해설가

 

 

몇 년 전, 부부 동반 모임에서 남편 친구 부인이 지인의 권유로 사주를 보고 온 얘기를 했다. 상담을 해 주시는 분이 친구 부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살았냐며 눈물을 흘리더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찡했다.

공부를 하기 전엔 사주 보는 사람들을 스스로 자기 일을 결정하지 못하는 비주체적인 인간이라 생각해 무시했다. 그리고 사주를 미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사주는 음양오행, 우주와 천문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영성수련 단체의 권장 도서인 얼굴경영이라는 책을 보았다. 모 디지털대에서 얼굴경영 공부를 했다. 얼굴경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잘 모른다. 관상이라 말하면 얼른 알아듣는다. 사는 데 따라 얼굴이 달라지니 마음 경영을 잘해서 얼굴도 바꿀 수 있다는 뜻으로 얼굴경영이라고 말한다. 교수는 3초 안에 사람의 얼굴을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주와 접목해서 공부하면 사람 얼굴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동네 평생학습원에서 사주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어려운 걸 배우겠다고 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그만두지도 못했다.

처음엔 뭔 소린지 모르겠더니 이론을 외우고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고 사주에 대한 재미를 알아 갔다. 사주에 대해 알아 가니 현장에 가서 내 사주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 부인이 말한 곳을 가 보기로 했다. 막상 가 보니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곳은 아니었다. 한복 입은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나의 사주는 일주인 병화가 약해서 병화를 생해 주는 나무 목이 들어간 이름이 좋다고 해서 이름도 바꾸고 호도 만들었다.

사주 공부를 계속하던 작년 어느 날, 밤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실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어디라고 말은 안 하고 나중에 얘기해 준다고만 했다. 일단 전화를 끊긴 했지만 찜찜하고 의심스러웠다. 나중에 얘기해 준다고 했지만 물어보자니 그렇고 속만 끓였다.

얼마 후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인데 남편은 밥만 먹고 금방 일어나서 가야 한다고 했다. 개 눈엔 똥만 보인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니 그것도 촉수에 걸렸다.

다음 날 상도동의 철학관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여자가 없다고 하더니, 잘 좀 보라는 나의 채근에 종이로 만든 동그란 통에 자그마한 주사위 같은 것을 넣고 흔들었다. 통의 머리 부분을 쥔 손목에 스냅을 주어 꺾더니 주사위 하나를 꺼내서 보기를 몇 번 하였다. 밖에서 여자가 자꾸 불러내는구먼. 여자를 떼려면 부적을 써야 해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부적을 써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부적을 쓰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 아들과 어머니로 보였다. 오래된 단골인 듯 근황을 주고받았다. 아들이 아기를 낳아 이름을 지으러 왔다고 했다. 대기실이 따로 있는 데가 아니어서 그분들은 내가 상담을 하는 옆에서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부적을 쓰면서 그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속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부적은 정성을 다해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고객과 이바구를 하면서 쓰고 있다니?’ 더 가관인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아들을 낳은 젊은 사람을 건너다보며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책상 밑으로 다리를 뻗어 할아버지의 다리를 툭 쳤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두 개의 부적 중 하나는 집에 있는 베개에 넣고 다른 하나는 사무실에 있는 베개에 넣으라고 했다. 일단 집에 있는 베개에 두 개를 넣었다. 문득, 내가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확인한 것도 아닌데 부적을 써 왔다는 게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여자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남편은 성의 자기 결정권이 있고 본인의 인생이 있는 것인데, 부인이라고 해서 남편의 인생에 끼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사람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스스로 자존심이 상해 의부증 환자를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의 의부증의 역사는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다. 과부인 내가 총각인 남편과 결혼하여 스스로가 꿀린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결혼 전에 안양에서 야학을 같이하던 여자랑 잠깐 사귀었다는데 결혼 초 남편이 늦거나 하면 그 여자랑 다시 만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그 여자네 집에 한 번 찾아간 적도 있었다. 이렇다 할 물증이나 뭣도 없으면서 남편을 의심하는 마음에 찾아간 것이다. 그 여자는 내가 왜 찾아왔을까 이상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쇠고기뭇국도 끓여 주고 최대한 예를 갖춰 잘 대해 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부적을 쓸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 돈이 모자랐다. 철학관에서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계좌 이체로 보냈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를 앉혀 놓고, 다른 손님을 바라보며 바람을 피면 안 된다고 떠들면 무슨 상담이 오고 갔는지 나팔을 부는 꼴이 아닌가? 상담은 내담자의 비밀을 보장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할아버지 책상을 둘러엎고 올 것을. 철학관에서 일부 낸 것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할 것을. 후회하는 마음에 약이 오를수록 의부증 환자 청산 수업료로 쓴 것치곤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4월호

일터 탐방_ 신영프레시젼

 

공포의 택배 상자

정인열/ <작은책> 기자

 

 소통은 성공의 기초적 수단이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 있는 표어다. 신영프레시젼은 LG전자 스마트폰 금형 설계와 제작, 사출부터 조립까지 일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회사는 소통을 강조하는 표어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대량 해고하고, 20년간 이어 온 사업도 정리하겠다며 250명이던 노동자들을 다 내보냈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201812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노동자들 50명이 서울 독산동 사옥에 남아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2018127일부터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 김정숙, 이순영, 최진숙, 이희태 씨를 지난 35일 사옥에서 만났다. 사무실 한쪽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있는 표어.   작은책(정인열)

 

등기를 안 받기 시작하니까 회사에서 꼼수를 써서 택배를 보낸 거죠. 택배는 수취 확인 안 하고 놓고 가도 되니까요.”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은 해고 통지서. 처음 회사는 등기우편으로 해고장을 보냈다가 수령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기자 수취 확인이 필요 없는 택배로 보냈다. 발송인 난에도 회사명을 기입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받아 본 노동자들 73명은 20187월에 해고됐다.

▲ 생산 공장과 대표이사실이 있는 신영프레시젼 사옥.  작은책(정인열)

 

신영프레시젼은 자본금 12억 원(1999~2001)으로 시작해 15년간(2003~2017) 연평균 매출 1500억 원 이상, 연평균 당기순이익은 2016년까지 91억 원에 이르는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다 LG전자가 2014년부터 베트남 등 해외 공장을 가동하면서 스마트폰 국내 생산량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의 국내 생산량이 10년 만에 5분의 1로 줄면서(한겨레, 2019213일 보도) 신영프레시젼도 물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2017년 처음으로 약 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회사는 20179월부터 유급순환휴업,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축했다. 하지만 분회는 정리해고도, 청산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희태 분회장이 말했다.

 

▲ 불 꺼진 신영프레시젼 공장.   작은책(정인열)

 

단 한 사람도 회사 상황을 설명하거나 미안하다는 자리조차 없었어요. 여기 누님들 정말 10,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제가 봤으니까요. 그런데 해고장만 배달됐거든요.”

신영프레시젼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으로 이 분회장만이 유일한 남성 조합원이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녀차별때문이었다. 사출 업무를 하는 생산부 노동자들은 주야 2교대로 일을 하다 2017년부터 주야 3교대로 일할 것을 통보받았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최저시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었다. 이직하려는 남성 직원들이 생기자 회사는 남성에게만 임금 보전을 해 주었고, 여성들은 계속 최저시급을 적용했다.

남녀차별 불평등하다고 면담 신청을 했죠. 하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한밤중에 관리부장한테 단체로 문자 폭탄도 보냈지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각자 방법을 알아보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로 가서 노동 상담을 받았다. 임금차별부터 그동안 쌓였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생산부 노동자들은 사출기에서 물건이 나오면 컨베이어벨트에 일렬로 서서 분류, 조립, 검사, 포장을 했다. 사출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실내 온도는 40도에 이르렀고 화상 사고는 일상이었다. 휴대폰 반조립을 하는 제조부는 시간당 400~450개를 생산하는 것이 정량이었지만 관리자는 매일 목표치를 높여 700~800개까지 해야 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서 일하고 점심시간에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일한 시간은 임금으로 받지 못했다. 10년을 일한 숙련자라도 신입 사원과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았다.늙은 소는 일을 못하니 채찍질 해야 한다, 자기들이 공주인 줄 안다는 등 막말도 들었다.

얘기하다 보니까 눈물콧물까지 다 흘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막 승질나서 욕도 나왔죠(웃음).”

회사와 달리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는 이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같이 고민해 주시고, 해결책도 같이 찾아 주시고. 우리 의견 존중해 주는 게 회사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신영프레시젼 노동자 이희태,김정숙,이순영,최진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그렇게 201712,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신영프레시젼분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에 노동인권을 포함한 현장 개선안과 영업망 확보 및 사업 다각화 등 회사 경영 발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감행하고 청산 선언을 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잠도 못 자고 시간에 쫓겨 생활한 반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지회에 따르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연봉 3억 원에 지난 20년간 배당금으로만 860억 원을 받았고, 또 사측 교섭대표는 청산 시 부채를 정리한 후 자산을 현금화한 금액만도 약 75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노조에 밝혔다. 게다가 회사는 경영 발전 대책은 내놓지 않고 2012년부터 업종과 상관없는 골프장 사업에만 총 477억 원을 투자했다.

회사가 뒷짐만 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열심히 발로 뛰어다녔다. LG전자 여의도 본사, 목동과 성수동의 신창석 회장 집, 춘천의 로드힐스 골프장, 청와대 및 정부 관계부처에 각종 집회까지 다녔다. 이순영 씨는 운동화 밑창만 세 번을 갈았다. 이들은 51일 노동절이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고 멀리했던 사람들이다. 사측 관리자들이 분회가 생기기 전 금속노조에 직가입한 몇몇 직원에 대해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금속노조 직가입 조합원)은 알게 모르게 수군거리고 자꾸 뭔가를 전파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이상한 간첩이었어요. 그래서 관리자한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은데요? (노조하는 사람들이란) 참 이상하네요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랬던 이순영 씨는 부분회장이 되어 앞장서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이규철 사무장(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이 소식지를 돌리잖아. 그냥 휭 지나쳐 왔지. 그런데 회사가 이렇게 갑자기 엎어질지는 몰랐지. 일단 고용이 안정됐으니까. 월급 잘 나오고 했으니까.”

독산역 주변에 설치된 노동 상담소 천막을 보면 피해 다녔던 여성노동자들은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도 참석해 율동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성사업장 구조조정에 아무 대책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레이테크코리아, 성진씨에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얀 소복을 입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세계여성의날 집회에 참석해 율동을 선보인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3월 8일).작은책(정인열)

 

세계여성의날 행진을 하는 모습. 이들이 소복을 입은 이유는 해고됐기 때문이다(3월 8일). 작은책(정인열)

 

자동차업계, 조선업계도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엄연한 가장이거든요. 여성노동자들을 정말 하찮게 생각하는 건지.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한다 어쩐다 하잖아요? 있는 일자리도 못 지키면서 진짜.”

늙은 소라고 무시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자본가들의 젠더의식은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정부 역시 여성노동자를 가장으로 인정하고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