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토론이 아니라 호소를 하려고 합니다. 미국 의회가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꼭 비준해야 할까요? 지난 3일 동안의 토론에서 우리는 정부도, 국회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직무 유기입니다.
‘GDP(국내총생산) 5.66퍼센트 추가 성장, 일자리 35만 개 증가.’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하는 근거라고, 정부가 제시한 수치입니다. 찬성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이 수치를 믿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짜입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GDP 성장률이 플러스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CGE 모형을 돌리면 언제나 플러스 수치가 나옵니다. 한미 FTA로 일자리를 잃은 농민이나 중소기업 노동자가 모두 삼성반도체나 현대자동차에 취직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CGE(연산 가능 일반 균형) 모형은 어떤 정책을 취했을 때 GDP나 무역수지 등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상대적 비교를 하기 위한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FTA 상대국에 따라 서로 다른 가정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가정해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한미 FTA의 경우처럼 제조업 1.2퍼센트, 사업서비스 1퍼센트 생산성 향상을 가정해서 CGE를 돌린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가정을 한 경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아직 대답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론 2006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다고 화를 낸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급조한 가정입니다.
더구나 무역 수지는 산업별 합산이라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표준 CGE에서는 무역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당연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관세율 7.5퍼센트가 미국의 2.5퍼센트에 비해 세 배이기 때문입니다. 관세를 더 많이 내린 쪽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엉터리 가정을 하면 당연히 그 결과도 엉터리로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로도 이 수치가 엉터리라는 걸 금방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어떤 나라도 이렇게 GDP나 일자리가 증가한 나라는 없습니다.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17년째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2000년대 들어 오히려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1인당 GDP 성장률 1퍼센트 남짓이 우리의 목표일까요? 우리나라는 다르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우수하다고 우기는 것만큼 비과학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2008년에 발발한 세계금융위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역사는 이 시대를 “장기 침체”라고 부르게 될 겁니다. 당연히 한국의 수출은 줄어들 것이고, 지금도 아슬아슬한 우리 내부의 부동산 거품이 폭발하면 우리는 또다시 금융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미국의 기조는 “수출만이 살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5년 동안 대 아시아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적자 때문에 재정 정책을 사용할 수도 없고, 이미 금리가 제로이기 때문에 금융정책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환율조작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절상 압력을 넣을 만큼 다급합니다. 불행하게도 주요 나라들 중 우리 원화만 거의 절상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화가 절상되면 당연히 수출은 줄어듭니다. 한미 FTA는 이런 압력의 통로, 위기의 전달 통로가 됩니다.
지난 30년간 모든 걸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 만능론, 시장 근본주의가 판을 쳤습니다. 미국식 FTA는 시장 만능의 미국 시스템을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협정입니다. 애초에 “경쟁적 자유화”라는 전략을 설계한 로버트 죌릭은 미국 FTA의 목적이 상대국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G20 논의에서 보듯이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는 퇴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FTA뿐 아니라 각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약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규정도 바뀌게 될 겁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스티글리츠 교수를 좌파로 매도했습니다만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스티글리츠 혼자 쓴 게 아닙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 은행 총재들이 쓴 것이고 UN(국제연합)의 보고서입니다. 215개국이 만장일치로 수용한 보고서입니다. 아무 데나 색깔론을 들이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보고서는 FTA는 물론 WTO의 서비스 분야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그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의 정책 공간이 넓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한미 FTA 반대론자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시대착오라는 점에서는 한미 FTA야말로 구한말 대원군의 정책과 같습니다. 시대가 변화할 때는 얼마나 새로운 조류에 먼저 부응하느냐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지금은 국가의 자율성을 확보해서 위기에 대비할 때입니다. 미국식 시장 국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 국가 시스템을 갖추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미 파산이 증명된 미국식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게 과연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향일까요? 미국은 관세법과 무역법 등 4개의 법률만 고치면 그만이고 우리는 정부 주장으로도 23개의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건, 한미 FTA가 미국의 법과 제도를 직수입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지니 계수(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최악 세계 4위인 나라의 제도를 꼭 받아 들여야 할까요? 17년 전에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그 부문, 부동의 1위입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로 불리던 캐나다마저 우리보다도 못한 12위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우리는 14위). 이런 나라들을 우리가 꼭 뒤따라야 할까요?
양극화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특히 절망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극화는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로부터 시작됐고 외환 위기와 한미 FTA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과연 이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게 옳은 정책 방향일까요?
대처 수상 때 철도를 민영화했던 영국은 대형 사고가 빈발하자 시설 부문을 다시 국유화했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된 후, 우리 정부가 철도를 자발적으로 민영화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우린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 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 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 등 각종 독소 조항들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철도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 끊어져 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길일까요?
지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이제 우리 국민들도 복지를 원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복지의 확대를 가로막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제도 중 그래도 괜찮은, 세계 5위 정도로 평가받는 건강보험이 위험해집니다. 캐나다 정치학자 클락슨은 나프타를 초헌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는 외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만 될 수 있을 뿐 확대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의료 제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다는 뜻), 비영리법인, 그리고 전 국민 가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상교섭본부가 확인했듯이 경제자유구역은 미래 유보(개방을 하지 않고 국가의 규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의 예외입니다. 경제자유구역이 확대되는 만큼 건강보험이 설 자리는 축소됩니다.
약값이 올라갑니다. 허가-특허 연계 등으로 미국 제약 회사의 특허권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글리벡(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같은 불치병 약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같이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 모두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나 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은 더 흔들릴 겁니다.
야당들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면 불가능합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사회보험은 예외”라고 강변하지만 암 100퍼센트 보장으로 인해 망하게 된 AIG(미국 보험회사)가 과연 가만 있을까요? 투자자국가소송은 통상교섭본부장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가 이길 만하면 걸 수 있는 겁니다. 예외라 하더라도 국제관습법에 입각한 최소 기준 대우는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게 토론에서 확인됐습니다. 3명의 법률가 중 다수가 건강보험 보장성 90퍼센트가 국제 관습에 어긋난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마저 제약하는 초헌법을 우리가 굳이 받아들여야 할까요?
농업이 무너집니다. 돈 좀 더 준다고 농업이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세계의 학자들은 피크 오일, 즉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기가 곧 온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요즘 농사는 석유로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식량 위기가 오면, 과연 돈 좀 더 준다고 농산물을 살 수 있을까요? 식량 주권은 가장 중요한 주권입니다. 한번 시스템이 무너지면 다시 농업을 살릴 길이 요원해집니다.
제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기계화학, 특히 정밀기계, 정밀화학이 약하다는 겁니다. 제약이 바로 정밀화학입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허리를 끊어 버릴 겁니다. 제조업은 우리가 미국보다 우위라는 건 정말 환상입니다. 우리의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의 40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버시바우 미 대사에게 “국회의원들이 농민들에 저항하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의원들은 농민들을 두려워해, 진정한 현안들을 다루는 대신 보조금만 지급해 왔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사실이 아니겠지요? 미국 대사를 만났으면 미국의 농업 보조금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미국 정부는 쌀 농가당 연간 6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이걸 없애는 내용이 한미 FTA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재협상을 해서라도 말이죠.
이제 남희섭 변리사께서 말씀하시겠지만 우리가 논의조차 못한 의제가 한가득입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문제도 많을 겁니다. 한미 FTA는 방대합니다. 과연 한미 FTA 협정문을 꼼꼼히 읽고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찾으셨나요? 국민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미국이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의원들은 지난 5년 동안 자기 선거구민의 이익을 위해서 끝없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선결 과제, 재협상, 재재협상, 그리고 행정명령을 통해 실리를 챙겼습니다. 과연 우리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8년 국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한미 FTA 비준안을 의결하려 했습니다. 만일 한미 FTA가 우리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신다면 그 역사적 결정을 숨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국회 본청에 찬성과 반대한 분들의 이름을 새겨서 사람들이 길이 되새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 남희섭 변리사와 이해영 교수가 제시하는 여러 과제에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미 FTA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제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해 주십시오.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정책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정책을 토론 없이 의결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날치기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날치기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6개월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그 사이에 우리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제발 철저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② 네거티브 리스트 (Negative List)
③ 래칫조항 (rachet: 역진방지조항)
④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Future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