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9년 11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웹툰·웹소설 작가)
내 몸값의 두 배를 팔아도 빚이 쌓인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2011년 죽기 전 이웃집에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 내용이다. 고인의 죽음으로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실태가 알려지자 그해 예술인들의 처우개선을 담은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대다수 예술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 최고은 작가처럼 상시적인 생계 곤란에 처한다. <작은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노동자 중 웹툰·웹소설 작가 조승우, 하신아 씨를 만나 이들이 처한 구체적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여성 웹툰·웹소설·일러스트레이트 작가로 구성된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 임원이기도 하다.
▲웹툰 작가 하신아 씨(왼쪽)와 조승우 씨(오른쪽). ⓒ김재형
“일감이 없다고 잘렸어요. 월세, 생활비를 갑자기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실업급여라도 받으면 몇 달간은 걱정하지 않고 다음 작품 준비할 수 있는데 수입이 딱 끊겨 버리니까 너무 막막한 거예요.”
조 씨는 어시스턴트로 2년간 그림을 그리다 지난 8월 에이전시(콘텐츠 유통·기획사)로부터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예술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조 씨와 같은 프리랜서로,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고용보험이 없어 실업급여 혜택을 못 받고 있다. 퇴직금은 물론 해고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잘리는 신세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특고(특수고용노동자)·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국정운영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국회는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12개 예술인 노동조합 및 예술노동단체들로 구성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9월 2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고·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촉구했다.
예술인 노동자들은 수입도 적은 편이다. 조 씨의 지난 2년간 월평균 수입은 120만 원.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인 1년 수입이 평균 1281만 원,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으로 투잡을 뛰는 예술인은 42.6퍼센트에 달했다. 조 씨 역시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에 몰두하고 싶지만 생계가 여의치 않다 보니 어시스턴트 일을 놓지 못한 상태다. 하신아 씨는 열일곱 살에 만화 스토리작가(줄거리 구상 및 그림 연출)로 데뷔했다가 잡지 및 대여점 시장이 붕괴되자 작가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창작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낮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밤에는 작가 데뷔를 위해 준비했다. 그동안 인터넷,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들의 발전으로 웹툰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하 씨는 2013년 한 언론사의 웹툰 공모전을 통해 재데뷔했다. 하 씨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복잡다단한 유통 구조 속에서 웹툰 사업체들이 작가에게 불공정한 수익 분배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웹툰 사업체는 플랫폼과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작가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작품을 공급하며, 에이전시는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같은 플랫폼들과 계약을 맺고 플랫폼은 작품을 중개한다. (예전에는 작가↔플랫폼 직접 계약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작가↔에이전시↔플랫폼 계약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웹툰 사업체와 계약에서 인지도가 낮은 작가와 데뷔를 바라는 신인 작가들은 ‘을’의 입장이 된다. 제도적 뒷받침도 없는 상황에서 뜯기고 또 뜯긴다. 가령 한 달 1천만 원의 매출이 났다면 작가에게 최종 지급되는 돈은 350만 원. 적지 않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작가들은 자영업자처럼 작품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훨씬 적다. 하 씨가 예를 들어 설명한다.
“내 작품이 지난달에 1천만 원 매출이 났다고 쳐요. 30퍼센트는 플랫폼에서 가져가고 남은 700만 원을 에이전시와 작가가 5 대 5로 나눠요. 남은 350만 원에서 스토리작가, 그림작가가 3 대 7로 나눕니다. 저한테는 105만 원이 떨어지는 거죠.”
그림작가는 채색 어시스턴트, 배경 프로그램(또는 어시스턴트) 등 기타 프로그램 사용료, 작업실 사용료 등 부대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월 100~180만 원(작업 난이도 및 지출비에 따라 다름) 수준이다. 어시스턴트를 두지 않으면 기한 내 작품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추가 지출이 생긴다. 웹툰 시장이 무한 경쟁 체제에 놓이며 분량이 한정 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신아 씨의 말이다.
“70컷은 만화책으로 12~20페이지(작가에 따라 다름)입니다. 만화책 시절에는 주간 연재를 하게 되면 12~16페이지로 정해 줬어요. 지금은 주간 12~20페이지를 풀컬러(완전 채색)로 해야 합니다. 60컷, 70컷 끝도 없이 요구해요. 지금은 한 회당 100컷까지도 올라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몸이 아파도 해야 합니다.”
과도한 분량 경쟁 속에서 웹툰 작가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웹툰 작가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5.3퍼센트는 하루 12시간, 주 평균 5.7일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웹툰 스토리작가 하신아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콘티(영상 연출)를 짜고 있다. ⓒ김재형
▲ 웹툰 작가 조승우 씨가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을 위해 사용하는 부대 프로그램 사용료 등 고정 지출도 모두 본인 부담이다. ⓒ김재형
고용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만으로도 견디기 벅찬데 작가들의 목을 조르는 제도가 있다. 바로 누적 MG(Minimum Guarantee, 최소수익보장). 하 씨는 이를 간단히 표현했다.
“내 몸값의 2배를 팔아도 빚이 쌓이는 겁니다.”
플랫폼(또는 에이전시)은 작가와 일반적으로 7 대 3의 비율로 수익을 분배한다. 플랫폼은 다달이 작가에게 MG로 200만 원을 가불한다. 이후 첫 매출이 400만 원이면 작가가 받는 돈은 ‘0’원이다. 작가에게 200만 원을 선불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600만 원(정확히 667만 원이지만 계산을 간단히 하기 위해 600만 원으로 예를 듦) 매출을 올려야 비로소 플랫폼에서 요구한 MG를 채울 수 있다.
“작가들이 200만 원 받을 때 7 대 3이기 때문에 600만 원을 (플랫폼에) 줘야 합니다.”
문제는 600만 원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을 경우 부족한 금액만큼 이월된다는 것이다. 하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 몸값의 2배 찍었어도 기존 MG 체제에서는 그냥 멸시만 당하고 말아요. ‘작가님~ 이번 달도 MG 못 채우셨어요.’ 그런데 누적 MG는 이월됩니다. 다음 달에 800만 원을 채워야 해요. 다음 달에도 나는 400밖에 안 찍었겠죠. 1년 연재가 끝나면 2400만 원 빚이 생기는 거예요. 2차 저작권 영화화 계약을 해도 빚이 남아요. 이거 깔 때(빚 갚을 때)까지 다음 작품도 구속해요.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갈 수가 없어요.”
법으로도 보호받을 길이 없다. 실제 한 웹툰 사업체가 MG 반환을 요구하며 작가를 상대로 낸 선급금 소송에서 1심은 약 3천만 원 전액 배상 판결을 내렸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 이후 항소심에서 그보다 낮은 금액으로 조정) 원고료는커녕 빚만 쌓이는 형국이다. 다음 작품까지 저당 잡힌 채 작가들은 노예처럼 노동하다 결국은 매절로 모든 저작권(저작재산권)을 업체에 넘기기도 한다. ‘구름빵’이 4400억 원 매출을 올려도 작가 수입은 2000만 원에도 못 미친 사례처럼 말이다. 불공정한 저작권 양도 방지를 위해 2015년 표준계약서가 고시되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사용률은 7.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2017년 디지털콘텐츠산업 유통실태조사,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하 씨가 비판한다.
“안전망이 전혀 없어요. 업체랑 나랑 계약만 하면 되는 거예요. 작가 네가 왜 서명을 했어? 좋아서 합의해 놓고 왜 그래?”
해결 방법은 노동조합이었다. 특히 임금 및 고용불안에서 남성 작가보다 훨씬 많이 피해를 본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디콘지회는 2018년 12월 설립했지만 2016년부터 게임업계 사상검증 사태(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게임 성우를 업체가 전격 교체, 이를 비판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업계에 공유되고 작업에서 배제됨.) 활동을 시작으로, 2017년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사태(플랫폼 업체 레진코믹스의 불공정한 수익 분배를 비판한 작가들을 대표가 ‘블랙리스트’로 규정하고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메인 화면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에서도 활발히 투쟁해 좋은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 연대체는 노동조합으로 이어졌다.
▲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소개 일러스트 ⓒ디콘지회
디콘지회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저작권 양수자의 의무 강화 및 매출 내역을 작가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저작권법 개정, 표준계약서 정립, 그리고 가장 시급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즉각 입법.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많은 예술인들이 고통을 참아 왔지만 이제는 노동조합을 통해 말하기 시작한다.
“정당한 대가만 받아도 감당이 되겠어요. 노동력에 대한 최저선을 정해서 대가를 줘야죠. 최저시급만 받아도 난 감당한다(웃음).”
두 사람은 잠도 자고 싶고 공휴일에는 좀 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고용보험법 개정도 미뤄지고 있는 마당이라 한꺼번에 다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고용보험 입법이 안 되면 저도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거 같아요.”
조승우 씨가 담담히 말했다. 예술인 노동자들이 생계 걱정 없이 오롯이 자신의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