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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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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6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쌍용양회공업

 


어릴 적 부르던 교가, 기가 막힌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시아의 으뜸가는 양회공장의 우렁찬 기계 소리 메아리치는~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화초등학교 옛 교가. 양회공장은 시멘트 생산 기업인 쌍용양회공업()(이하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말한다. 340만 평 부지의 단일 공장으로 그 규모는 세계 최대. 쌍용양회는 국내 시멘트 업계 1위 기업으로 동해공장에서만 연간 1150만 톤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박준철 씨(43)는 아직도 교가를 잊지 않고 부를 수 있다.

교가에도 나오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그랬어요. 잊어 먹지도 않아요. 그 노래를 그리 부르고 당겼으니. 기가 막힌다.”

그가 기막혀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박준철 씨와 그의 동료 문홍석(42), 태윤호(39) 씨를 삼화동 사무실에서 만나 공장을 둘러본 후 가까운 무릉계곡 한 음식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준철 씨와 문홍석 씨의 아버지 역시 쌍용양회 동해공장 노동자였다. 해마다 망상 해수욕장에 쌍용양회가 직원 가족들을 위한 천막을 치면 아버지를 따라 놀러 가곤 했다. 성인이 되고 2002년 동해공장에 취직했지만 이들은 쌍용동해중기전문()(이하 동해중기) 소속 사내 하청 노동자다. 본래 쌍용양회의 중기 업무 부서였지만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하청업체로 분사됐기 때문이다. 동해중기를 포함한 하청업체는 모두 24. 중기 업무 노동자들은 불도저, 크레인, 로더 등 8가지 장비를 조종해 시멘트 제조공정에 맞는 원료 및 연료를 운반하고 투입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보유한 건설 기계 조종사 면허만도 8가지. 정규직원과 업무상 다른 점을 물었다.

▲ 쌍용동해중기전문 사무실 입구. 부지와 사무실 모두 쌍용양회가 무상 제공해 오다 노조가 생긴 후 임대료를 받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아까 정문에 정직원들 보셨죠? 우리하고 옷도 마크도 똑같아요. 정직원들은 현장 점검만 하고 나와서 우리한테 작업 지시를 하는 거죠. 여기 이래이래 해 주세요. 그게 다예요. 위험한 건 하청이 다 해요.”

이들은 소속 회사가 위장도급 업체라고 주장한다. 원청인 쌍용양회의 지휘·감독을 받아왔고 독자적으로 사업체를 경영할 만한 자금 조달 능력도, 전문기술도 없다는 것이다. 중장비와 사무실 및 부동산도 모두 쌍용양회 소유고, 대표이사도 쌍용양회 퇴직자다. , 동해중기의 최근 4년간 평균 매출액은 약 38억 원인데, 노동자들은 도급비가 매출액이라고 주장한다. 동해중기의 최근 4년간 평균 영업이익도 약 2900만 원뿐이다. 노동자 36명이 검찰에 고소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 위반자료에 따르면 (동해중기) 설립 당시 기본급과 상여 등 임금성 급여는 쌍용양회의 78퍼센트 수준으로 정하기로 하였으며, 기타 복지와 성과금은 쌍용양회와 동일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였다고 되어 있다.

처음 한동안은 쌍용양회에서 성과금 받으면 우리도 똑같이 나왔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안 나오더라고.”

성과금이 중단된 시기는 2011. 동해중기로 이직한 쌍용양회 전적자들이 쌍용양회를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하고부터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잘해 주겠지, 회사에서 줄 건 주겠지 생각했어요.”

365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이들은 주야 3교대로 일했다. 이들의 안내로 둘러본 현장은 위험천만했다. 시멘트 원료를 섭씨 1450도로 가열하는 킬른이라 불리는 거대한 소성로와 회전 분쇄기, 8킬로미터 길이의 클링커(시멘트 반제품) 운송 벨트가 눈에 띄었다. 박준철 씨가 말했다.

제가 입사하고 예닐곱 명 죽었어요. 보통 벨트에 끼거나 떨어지는 사고예요. 고 김용균 씨(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석탄운송설비 업무)랑 똑같아요.”

이들은 중장비로 연료를 호퍼에 밀어 넣다 빠진 적도 많다. 호퍼는 깔때기처럼 생긴 연료 투입구다.

호퍼가 되게 깊고 넓어요. 야간에는 시야 확보가 안 돼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탁 떨어지면 이마 박고 많이 다치죠. 혼자서 일하니까 꼭 무전기 갖고 타요.”

무전기로 다른 장비를 호출해 견인해서 겨우 나오지만 빠질 때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여름에는 에어컨 가동도 못 한다. 폭염 속 킬른에서 나오는 열이 더해져 엔진 과열로 장비가 터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작업장은 폐기물 저장고. 부연료로 폐기물이 반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폐타이어 사용부터다. 2000년대부터는 농촌폐비닐, 플라스틱 등 생활 쓰레기와 산업폐기물도 공장에 반입됐다. 둘러본 저장고는 쓰레기 소각장과 똑같은 악취가 진동했다. 미세한 폐비닐 조각들이 둥둥 떠다녀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5분밖에 머물지 않았는데도 목이 쾨쾨했다. 동해중기 노동자들은 저장고 작업 중 토한 적도 많다. 또 거의 대부분이 피부질환, 안과 질환, 비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되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피부가 너무 가려우니까. 비염도 다들 생겼어요. 어릴 때는 없던 거죠.”

쌍용양회는 이를 순환자원 재활용’,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의 시범 사업장이라며 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다르다. 최근 쌍용양회가 유기 슬러지(하수종말처리 최종 잔재물로 유해물질 함량이 높다)까지 반입해 연간 6만 톤 소각을 계획하자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 MBC강원영동 보도에 따르면 쌍용양회가 슬러지 1톤당 받는 보조금은 10만 원. 6만 톤을 모두 소각할 경우 연간 60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는 주민들의 반발로 슬러지 반입이 유예됐다.

▲ 삼화동 주민들이 쌍용양회를 규탄하는 펼침막을 걸었따. 삼화동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작은책(정인열)

위험한 작업 환경과 오염물질에 노출되면서도 박준철 씨를 비롯한 중기 업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시급이 대폭 인상되었지만 임금인상 효과는 사실상 없다. 주휴수당 등 각종 수당이 기본급에 산입되고 임금 보전도 없이 특근 시간마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쌍용양회 원청은 매출액 164백억여 원, 영업이익 24백억여 원(2015~2017년 평균)으로 막대한 이익을 쌓았지만 동해중기 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금을 없애더니 2017년에는 임금마저 동결했다.

원청 노조가 임금인상을 하면 우리는 그다음 해에 인상분을 소급해서 받았어요. 그런데 그걸 끊어 버렸어요. (동해중기) 사장한테 물어보니 하는 얘기가 양회에서 안 준대. ’. 더 이상 묻지도 말라는 거예요.”

최저임금 지급에 임금동결까지 벌어지자 노동자들은 참을 수 없었다. 노동자 36명 전원이 20181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에 가입하고 쌍용양회지회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상급단체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으로 변경했다.) 하청업체 중 가장 먼저였다. 지회는 20186월 쌍용양회와 동해중기를 불법파견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강릉고용노동지청은 불법파견으로 판단, 지난 322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동안 지회는 1인시위부터 공장 앞 집회, 시내 집회까지 쉬지 않고 투쟁했다. 강원지역 타 사업장과 연대도 적극적으로 했다. 이들은 동해공장 앞에 모든 하청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우리만 잘 먹고 잘살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잘되면 다른 업체들도 노조할 권리는 사실상 보장되는 거고요. 제조업 자체가 사실상 정규직이거든요.”

쌍용양회지회의 영향으로 중장비 정비 업무를 하는 쌍용동해정비() 소속 하청 노동자들도 20187월 노동조합을 설립해 투쟁하고 있다.

▲ 쌍용양회 하청 노동자 태윤호, 문홍석, 박준철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중기 업무 노동자들의 요구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노동조합 인정이다. 원래 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원청 직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많은 쌍용양회지만 향토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한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쌍용양회 동해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겨울철에 쌍용양회 깃발을 꽂고 동해시 제설 작업을 다녔다. 여름철에는 해변가 모래사장 평탄 작업도 나갔고, 학교 운동장 골대도 옮겨 주었다. 이렇게 동해시민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역 주민인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직원들도 다 저희하고 불알친구들이고 동네 이웃이에요. 뒤에 와서 진짜 잘하고 있다 응원해 주고, 우리 입장 다 이해해 주죠. 동네 주민들도 고생한다고 응원 많이 해 줘요.”

박준철 씨가 부르던 삼화초등학교 교가는 세월이 흘러 양회공장(동해공장)’ 가사가 빠진 채 바뀌었다. 삼화동 주민들과 하청 노동자들은 쌍용양회를 규탄하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박준철 씨가 어릴 적 선망하며 부르던 교가를 이제 와서 기가 막히다고 하는 이유다.

posted by 작은책
2019. 5. 27. 13:54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님이 감옥에서 <작은책>에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난 2018 7, 10월 두 차례, ‘전쟁광 맥아더 동상 화형식 퍼포먼스를 하고, ‘미국의 내정 간섭 중단, 신식민지 체제 폐기를 주장하며 집회한 죄목으로 구속된 분입니다. 편지 내용은, 지난 4 29일자 <한겨레>에 나온 김병익 씨의 칼럼 ‘4·19세대의 시효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김병익 씨는 그 글에서 우리의 완고한 반공주의도 한반도 평화 체제 지향으로 진전했다고 진단합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마이카족의 아파트 문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풍요의 사회에 이르렀다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이적 목사님은, 김병익 씨의 글은 가소로운 자기기만의 자족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반공주의가 한반도 평화 체제 지향주의로 진전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묻습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일부 고소득자들에게만 돌아가는데 그것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냐고 묻습니다. 또 아파트를 짓는다고 농지가 강제 수용되고 농민들이 살던 기반에서 쫓겨나 폭망 신세로 전락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감옥엔 아직도 양심수가 있고, 우리 둘레엔 비정규직,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들 등 약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을 조직해 노년유니온노동조합을 설립한 공상가가 있습니다. 이번 호 특집에서 만나 봅니다.

 

2019 5 16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소설 속을 걷다, 용두각을 찾아서 - 하명희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도대체 매력이 뭘까? - 엄익복

16 부부 30년 맞짱일기

남편의 착각과 아내의 바람 - 최해옥과 이동수

22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추억의 음식 짜장면 - 윤혜신

28 청년으로 살아가기

죽을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구나 - 유지향

32 이야기가 있는 사진 - 최인기

34 살아온 이야기(12)

연애 몇 번 해 보셨어요? - 송추향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 달 늦은 어버이 생각 - 권해진

45 교실 이야기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 - 최관의

49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나물 노동 마치고 퇴근합니다! - 조혜원

53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6 일터 탐방_ 쌍용양회공업

어릴 적 부르던 교가, 기가 막힌다 -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자본가들이 짜 놓은 꼼수 - 윤채원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신속한 분쟁 해결 제도 - 양성우

 

작은책이 만난 사람_ 고현종

73 노년이 행복한 공상가 - 안건모

98 이동슈의 생활 만화 - 이동수

 

세상 보기

100 존버 씨의 시간들 재난과 노동 인권의 현실 - 김영선

105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중국에 등장한 신형 디지털 빅브라더 -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를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하라 - 이주영

115 여성으로 살아가기 가만히 잊히는 방에 앉아 - 홍승은

120 생태 이야기 벌써 모기가 나타났다는데 -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5 오앵의 일상의 온도 - 오앵

126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백제의 길을 걸으며 - 박찬희

130 책 읽고 딴 생각

도쿄에는 17세기에 상수도가 깔렸다 - 변정수

133 독립영화 이야기 기억 저 편의 그 눈동자 - 류미례

138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개맛과 조개사돈의 비밀 -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5월호

쉬엄쉬엄 가요

책 읽고 딴 생각_ 바벨탑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9)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출판 편집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가 되곤 하는 갑질을 그저 예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오히려 워낙 일상화되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뿐이지, 크고 작은 갑질을 예사로 당하고 사는 게 대다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벨탑 공화국에서 강준만은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결과에 의해 생겨나며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도 실은 그런 의도하지 않은결과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을 낳는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모습이다.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간 격차, 학력·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 책 제목의 바벨탑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 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이는 바벨탑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거니와 국민 다수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해도 그건 내 손톱 밑의 가시보다 하찮은 일이라는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있는것이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환기하면서 바벨탑의 붕괴로 가는 길이라 진단한다.

욕망의 바벨탑의 이면은 모욕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낮은 서열의 사람을 모욕하는 걸 자기 존재 증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많은 건 물론이려니와 모욕의 강도를 높여 나가는 걸 자신의 위계가 올라가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사코 모든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기고 그 격차를 크게 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이유를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가 바벨탑 공화국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건 서울 초집중화이다. 거칠게 간추리면 지방을 희생한 대가로 서울이 모든 자원을 독식하는 갑질이야말로 이 나라를 온통 서열 사회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난 용의 첫 번째 조건을 우선 서울에 진입하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무리한 주장도 아니다. 그 결과 지방은 점점 더 황폐화되는데. 그 피해가 지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령 도시 인구가 20만에서 10만으로 줄었다고 해도 그 도시의 도로나 수도, 전선, 통신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일이고 어느 도시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프라 비용때문에 똑같은 면적에 절반의 인구가 살게 되면 재정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올까.

더 의미심장한 건 지방이 식민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본조차 약화된다는 지적이다. 워낙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기는 하다. “겨우 한 자릿수 신뢰도를 갖고 있는 권력기관, 10퍼센트대의 신뢰도를 갖고 있는 언론과 종교, 20퍼센트대의 상호 신뢰도를 갖고 있는 국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라니까. 그런데 저신뢰 사회의 부정적 효과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지방에서 사회적 자본의 약화는 지방 소멸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체가 파편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비단 지방민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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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5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는 다시 축제 분위기에 달아오를 것인가? 56년 만에 개최하는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우리나라도 출전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에 돌입할 텐데, 나이 들어 그런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젊디젊은 선수들은 일단 뿌듯하더라도 색다른 마음 준비가 더 필요하겠다.

작년 105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해 물의를 빚었다. 허용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겠다지만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 총량은 줄지 않는다. 규제위원회가 오염수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늘어나는 오염수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양해하겠다는 건데, 일본 어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우리와 일본을 포함한 세계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올림픽위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에서 시작하려는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후쿠시마에서 개최할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를 지원할 자원봉사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다. 핵발전소 폭발 이후 9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후쿠시마의 새로운 희망을 국제사회로 전파하겠노라 기염을 토하지만 자원 봉사자가 목표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다는 거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일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그렇게 짐작한다지만, 도쿄에 비해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지극히 적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국제적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건지, ‘도쿄 2020 음식 제공에 관한 기본 전략에서 경악할 계획을 밝혔다. 올림픽 기간 동안 후쿠시마를 비롯해 지진과 핵발전소 폭발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해 선수촌 식당에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런 방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세계의 건장한 젊은이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셈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2011년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 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가공한 제품들을 먹어서 후쿠시마에 힘을 실어 주자!”던 민간 캠페인이 있었다. 그 여파로 유명 방송인과 연예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시달려야 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안전해졌을까? 그럴 리 없다.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땅과 대기는 지금도 일반적 허용 기준치를 5배 넘나든다. 핵발전소 폭발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그 위험성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민 거주 공간은 기준치 이내라고 홍보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활하수가 모이는 지역이라면 여전히 위험 수준이다.

우리 정부도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로 규정했는데, 이하의 수치를 보이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나라마다 제각각인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그 나라의 시민의식을 반영한다. 시민이 반사능에 민감하다면 엄격하겠지만, 아니라면 그 나라의 핵 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그런 기준치는 대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에 따른다. 방사능 위험성을 주목하며 탈핵운동에 앞장서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익중 교수는 무리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연간 1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받는다면? 만 명당 1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암에 걸린다고 무조건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살아나려면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힘겨운 치료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가 예정된 후쿠시마는 현재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는데, 내년엔 나아질까? 그럴 리 없다. 방사성 물질에서 내뿜는 방사능을 1년 만에 줄일 방법은 없다. 사고 이후 황급히 집을 떠난 후쿠시마 시민들은 되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주거 지역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완화한 사실에 분노할 따름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공유하는 벨라루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폭발을 알았어도 대규모 행사를 강행했는데, 하필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방사능 낙진이 집중된 게 아닌가. 벨라루스는 아직도 기형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으로 몸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가 연속 폭발한 일본은 예외였을까?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겉흙 1400만 제곱미터를 걷어 냈지만 오염된 흙을 모두 들어낼 엄두는 내지 못한다. 대신 꾐수를 고안했다.


킬로그램당 100베크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본은 8000베크렐 이하인 흙을 도로포장에 활용하기로 기준치를 슬그머니 완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000베크렐 이하인 흙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허용했다. 사고 이후 걷어 낸 흙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산더미로 쌓아 놓고 있는데, 당국은 170년이 지나야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기준치로 낮아질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세슘이 있는 흙 위에 콘크리트를 덮는다면 괜찮을까?

베타선을 방사능으로 방출하는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30년 뒤에 방사능 선량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독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반감기가 최소 10번 계속되어야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데, 베타선은 콘크리트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사람 피부는 능히 통과한다. 30년 이상 틈이 벌어지지 않는 도로포장은 없는데, 폭발된 핵발전소에서 내놓은 방사성 물질이 세슘만이 아니다. 간단한 장비로 검색하지 못할 뿐, 세슘보다 반감기가 길고 독성이 강한 물질이 많다. 폭발 전에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핵발전소를 이중 삼중 안전시설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문제는 음식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험해지는 방사성 물질이 몸속에서 방사능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낮은 수치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허용 기준치 이하라는 걸 올림픽을 앞둔 일본 당국은 유난히 강조하겠지만, 그런 말에 마음을 놓을 환경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를 찾은 후쿠시마 농부들은 환경단체 활동가의 손을 잡고 제발 후쿠시마 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오염된 농토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납품된다면? 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음식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우리나라처럼 킬로그램 당 100베크렐로 정했는데, 김익중 교수는 그 수치를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비교한다. 제한속도를 시속 1000킬로미터로 규정한다면 속도위반 차량이 없더라도 도로는 매우 위험해지겠지. 몸에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 플루토늄이라면 더욱 끔찍하다. 반감기가 24천 년인 플루토늄은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케 할 방사능을 가진다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철보다 무거운 플루토늄은 후쿠시마 앞바다에 쌓였을 텐데, 설마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는 해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는 건 아니겠지?

세계 51개국이 일본의 농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하는 현실이건만 일본은 한국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1심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현지 실태 조사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고 제출하지 않아 패소했다.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 다행히 2심에서는 한국이 승소했다. 2심에서 이긴 게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가 원산지를 확인하고, 정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해산물을 먹지 않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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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30. 14:51 알림 / 엮은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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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5월호

일터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작은책기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전문 성악인들과 연주자들이 경기도 양주 시내 한 교차로에 서서 민중의 노래(영화 <레 미제라블> 삽입곡)’를 부른다. 이 곡은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 때 광화문에서 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다.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데 이들은 무슨 일로 길거리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양주시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이하 양주시립예술단) 단원들이다. 그런데 지난 11일부로 60명 전원이 해촉됐다(합창단 25, 교향악단 35). 예술단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양주시가 사업을 종료하고 양주시의회는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합창단은 2003년에, 교향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어 시민들에게 해마다 20회 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갑작스런 사업 종료로 시민들은 올해부터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양주시 교향악단, 합창단 2016년 송년음악회 모습.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양주시립예술단 단원이자 공공운수노조 양주시립예술단지회(이하 지회) 조합원 김용원 씨(37)와 송수진 씨(31)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았다. 합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은 김용원 씨는 2017년에, 교향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송수진 씨는 2016년에 각각 모집 공고를 보고 입단했다.

시립(단원)이라는 것은 (음악 전공자로) 거의 최고죠. 공인된 느낌? 레슨도 많이 들어오고 경쟁률도 엄청나고요.”

▲ 2016년 양주시 교향악단합창단의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홍포 포스터.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이들은 정기연주회 외에도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파크 콘서트등의 무대에 서며 양주시 곳곳에서 연주를 해 왔다. 연주회를 위해 주 23시간씩 함께 모여 연습을 하고 받는 임금은 50만 원. 타 지자체 예술단보다 20만 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상임단원들은 지방공무원 8급 대우에 복지카드도 나오고요, 저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계약직이죠.”

2회 연습에 월 50만 원을 받는다면 임금이 많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합주하는 시간말고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노동시간이 있다.

합창단은 보통 (곡을) 외워 오라고 해요. 가사가 다 외국어인데 내 시간 내서 외워야죠. 어려운 곡들도 있는데 그때는 스트레스죠.”

악기의 경우 악기 유지관리비와 개인 연습실 사용료 등 지출이 크지만, 양주시에서는 보조해 주지 않는다.

한번은 연습 때 만든 단이 무너져서 튜바가 쓰러졌어요. 해외에서 수리해야 하는데 천만 원 정도 드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관광과(담당 부서)에 얘기를 했거든요. 시는 예산이 없다고 해서 결국 50만 원 받고 끝냈어요.”

단원들은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임금인상이나 상임단원으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주를 해왔지만 점점 참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교향악단에 부임한 김OO 지휘자는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향악단을 데리고 다른 단체명으로 시와 관련 없는 외부 연주를 했다. 2014년에만 연 10회 이루어졌고, 2015년과 2016년에는 지휘자의 아들들이 포함된 음대 입시생들의 협연에도 동원됐다.

관객이 학부모들로 열 명도 안 되고, 학예회 수준이었어요.”

김 지휘자는 찬성한 단원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지휘자가 있는 데서 거수로 투표가 이루어져 불이익을 받을까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지회는 주장하고 있다. , 지회는 시외 공연을 위해 양주시교향악단 근무시간에 외부 공연 연주곡을 연습하는 날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단원들은 김 지휘자에게 시청 모르게 하는 연주는 하지 말 것’, ‘협연 학생들에게 돈 받지 말고 양주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하여 양주에서 협연자 음악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양주시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이지만 시는 예술단에 대한 기본 관리·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예술단을 총괄하는 단무장은 역시 시외 연주를 강요했다.

양주시립교향악단 송수진 씨와 합창단 김용원 씨.  작은책(정인열)

2017년 참다못한 수석단원들이 문화관광과에 찾아가 호소했다. 송수진 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대요. 심지어 누가 찾아갔는지 지휘자한테 전했고요.”

시외 공연에 반대한 단원들은 경고를 받거나 평정(오디션)으로 수석단원에서 일반단원으로 강등됐다. 이들은 평정 부정심사 의혹도 제기한다.

평정 점수를 당사자한테 공개 안 해요.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점수를 줬는지 저도 알아야 뭘 잘못했는지 아니까요. 다른 데는 다 알려줘요.”

김 지휘자가 레퍼토리도 다르게 구성한 사례도 폭로했다. 특정 단원에게 어펴운 파트를 집중시켜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송수진 씨가 말한다.

지휘자가 트럼펫 수석을 자르려고 마음을 먹고 트럼펫 솔로만 세네 줄 나오는 서곡을 2개 넣었어요. 틀리면 실력 미달로 어떻게 하려고 했었나봐요. 우리 트럼펫 주자들 따로 모여서 진짜 독기를 품고 연습했죠.”

보통 서곡-교향곡으로 구성되는 연주회는 지휘자의 권력으로 서곡이 2개인 이상한 구성이 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단무장이나 담당 부서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지회는 밝혔다.

합창단 단역시 고통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부임한 이OO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막말과 고성, 반말을 일삼았다. 김용원 씨가 말했다.

저한테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질렀어요. 지휘자가 너무 소리질러서 지휘자님,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했거든요. 어린이합창단하고 협연할 때도 꺼져!’ 하는 거예요.”

양주시 합창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합창단 단원들도 교향악단 단원들처럼 지휘자에게 시정 요구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거의 대부분 단원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시에 제출했지만 이 지휘자는 대표격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러 간 단원 4명에 대해 해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해촉당하면 다른 데 시험 볼 때 불이익을 받아요.”

해고 위협을 느낀 단원 3명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사임하고 김민정 씨만 버텼다. 이 지휘자는 김민정 씨를 연습과 공연에서 두 달간 배제시켰다. 김용원 씨가 증언한다.

매일 저희 연습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요. 혼자 배제돼서 연습실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누나도 울었죠.”

합창단 단원들은 2018918일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양주시립예술단지회를 설립했다. 김민정 씨는 노조 지회장이 됐다. 곧이어 교향악단 단원들도 노조에 가입했다.

시의회는 양주시립예술단이 20181212일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연간 일정을 마치자 곧바로 양주시립예술단 운영예산 전액(75천여만 원, 1218)을 삭감했다. 이어서 시는 예술단 전원에게 1226일 해촉 통보를 했다.

▲ 송수진 씨가 양주시로부터 받은 해촉통지서.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양주시예술단지회. 

양주시립예술단은 전원 비상임단원으로 해마다 평정에 통과하면 자동 재위촉됐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시는 단원들을 프리랜서처럼 위촉했다. 하지만 이 아무개 단원이 낸 부당강등 구제신청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20186, 201811).

지회는 2018년 송년음악회 준비 때부터 시와 시의회가 예술단 사업을 종료할 계획이었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공연 2주 전에는 포스터가 나오고 시 전역에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성호 시장은 홍보 결재를 공연 7일 전에 했고, 협조 공문 발송은 6일 전에야 시작되어 홍보 기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항상 관람객으로 꽉 들어차던 객석이 송년음악회에는 100석도 채우지 못했고, 이를 빌미삼아 정덕영 시의원은 예산 삭감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회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촉됐다고 주장한다.

양주시에 노조가 하나도 없어요. 청소용역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 시장이 노조 없애면 처우 개선해 주겠다 했대요. 공공연히 다 퍼진 얘기예요.”

▲ 양주시 홈페이지. 양주시와 시의회는 단순히 사업 종료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양주시 홈페이지 갈무리.

황영희, 김종길 의원도 예산 심의 때 노조 만든 곳에 예산 세워 줘야 하냐며 노골적으로 노조를 반대했다. 하루아침에 해촉 당한 단원들은 해촉 철회, 양주시립예술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이들의 장기인 음악으로 시위했다. 이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지자 양주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꾸렸고 전국 예술단체들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서 양주시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예술단체들도 다 노조가 있더라고요.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서울시향, 성남, 제주, 광주 전부. 솔직히 놀랐어요.”

지회의 요구는 양주시민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뿐이다. 지휘자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예술단이길 거부하고, 폭언과 갑질에서 벗어나 음악에만 집중해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단이 되고 싶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이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음악으로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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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한국음료지회 조합원

 

 

지방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던 나는 200812월 전라북도 남원시에 OEM(주문자위탁생산방식)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음료 공장의 식품연구소 대리로 입사하게 되었다.

한국음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_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는 자사 브랜드 없이 OEM사의 신제품 개발 및 처방 개선을 해 가며 자체 생산을 유도하여 매출을 이어 갔으며 롯데칠성, 팔도, 매일유업, 남양유업, 광동제약, SPC 등 국내 많은 기업들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한국음료는 지난 20103월 엘지생활건강 음료사업부인 코카콜라에 인수되었고, 한국음료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결정은 엘지생활건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인수 후 코카콜라 70퍼센트, 해태음료 10퍼센트, OEM사의 매출을 20퍼센트대로 유지하던 중 OEM 제품의 생산을 철수하라는 엘지생활건강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맡고 있던 OEM사의 신제품 개발 업무는 없어지게 되었으며, 현장 일은 전혀 모르던 내가 배합, 충진, 입고검사 중 택일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을 때 고심 끝에 배합 업무를 선택하였다. 주간 8시간 근무에서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과장 직급을 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생산현장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비 관련 업무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현장의 디테일한 업무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도 찾아가는 등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비와 공정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산 중이던 배합액 일부를 폐수장으로 흘려보내 징계 위기까지 갔던 일, 첨가물 용해 시 밸브 조작 미숙으로 용해 중이던 첨가물탱크가 넘쳐 났던 실수 등을 경험하면서 세상사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더 이상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묵묵히 일만 하던 우리도 엘지의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과 부푼 마음으로 엘지라는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게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엘지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대기업 손주뻘 되는 자회사가 되었으니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겠으나,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한국음료 사측은 1)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 2) 지켜지지 않은 희망고문 3) 신규 채용은 손에 꼽을 정도며 정규직도 기댈 곳 없고 급기야 노노갈등까지 우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 각각의 포지션에서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행함에도 회사에서는 개인의 업무 외에도 잡다한 일들로 직원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지시에 따르라는 일방적인 회사의 태도에 상실감과 자괴감에 위축이 되었다.

2) 코카콜라에서 인수 후 안내를 위해 내려온 인수팀, 공장 업무를 맡았던 엘지생활건강과 코카콜라 책임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짧게는 3, 길게는 5년 내에 코카콜라 임금의 80~90퍼센트 수준까지 올려 주겠다던 약속, 복리후생 또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맞춰 주겠다던 약속들은 우리에게 희망고문이 되었다.

3) 서서히 아주 서서히 100명이 넘던 정규직 직원이 47명만을 남기고 도급직으로 바뀌었으며 라인을 하나 증설했음에도 신규 채용은 없었다. 경비직, 조리직, 생산직 중 여직원 전원, 물류직군까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모조리 도급화하였다. 

위 직군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배합과 충진업무를 제외한 후공정 6명 업무도 도급업체로 모두 넘어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선 한국음료 직원들에겐 이제 충진, 배합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수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사측은 고정비 중 인건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결국 선택권 없는 직원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으며, 인수한 지 9년이 다 되도록 근로조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에, 이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멈추고자 자구책으로 지난해 4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 전북지부의 문을 두드리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북 남원 한국음료 공장 입구에서 노동자들이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2019110). 사진제공_ 한국음료지회


한국음료지회 2018101일을 시작으로 투쟁 기간 184, 단식농성 28일 경과. 드디어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천막을 걷었다.

인간 존중, 정도 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는 LG그룹을 상대로 한국음료지회 조합원만으로는 이토록 장기간의 투쟁도 역부족이었음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단식농성까지 하는 모습을 본 많은 분들이 사측의 부당함에 함께 맞서 연대해 주시고, 우리의 안타까운 싸움이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고, 시민단체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자발적인 시민들의 성금으로 메인 일간지 1면에 엘지생활건강 규탄 광고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6개월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LG그룹이 한국음료지회 노동조합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LG 자본 규탄 및 한국음료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모이고 있다(20181110). 사진제공한국음료지회


장장 반년이 넘는 정말 힘든 투쟁이었다. 혹자는 궁금해했다. 한국음료 조합원 29명의 이 처절한 6개월간의 싸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사실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그동안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우리 한국음료지회 노동자들이다. 이젠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며 모든 노동자들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퇴근길 선전전(2018115) . '' 피켓을 든 사람이 서종원 씨사진제공_한국음료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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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교사

 

 

2017년부터 해마다 할 말 있어요를 하고 있다. ‘할 말 있어요는 작은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교사인 내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할 말 있어요는 칭찬할 일, 억울한 일, 부당하다 생각되어 신고할 일 따위를 적어 내는 종이다. 이것을 나는 모두 읽어 보고 해결을 본다.

10년도 더 전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 주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 말은 다 들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 들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명 가까운 교실에서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인 데다 수업 준비와 잡다한 일로 말 걸어오는 아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다 들어 주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와의 소통을 독점하면 수줍음이 많아 나서기 힘든 아이들은 앓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기도 했다. ‘왜 말 안 했니?’라고 물어도 입을 닫고 있다. 이미 늦었다. 아이 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참 어렵다. 그냥 모두 다 듣겠다는 분위기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다. 처음 누구나 써낼 수 있도록 좀 넘치는 말을 했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나는 써내는 글은 모두 받아 읽고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듣고는 중재를 했다. 이러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뭐든 써냈다. ‘지나가다 쳤어요’, ‘화를 냈어요. 아주 사소한 불만, 불합리함 그리고 조금의 칭찬과 장난 글까지 많이도 써냈다. 지난해에 600개가 넘는 할 말 있어요를 받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 쓰게 한 덕이 컸다. 그냥 써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확 줄었다. 보통 아이들은 앞뒤 잘라 내고 말을 하는 터라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 가며 들어야 좀 알아듣는데, 글로 내용을 미리 보며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확 줄었다. 또 기록의 힘도 있다. 이렇게 써낸 기록을 모두 모아 놓으니 뒤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재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자칫 편을 들다가는 원망을 사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 판단해서 학부모님의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요령은 늘었다. 천 번이 넘도록 중재를 하며 자리 잡은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들어온 할 말 있어요를 읽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른다. 서로 같이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할 기회를 준다. 부족할 때는 본 아이들도 부른다. 그렇게 따져 보고 고의로 했는지를 밝힌다. 따져 보면 대부분 오해 때문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도록 한다. 그러면 끝난다. 이제는 과정이 3분 이내로 끝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나름 속 시원한 것이 있나 보다. 지난해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두면 바로 사라졌다. 아무리 많이 복사해 둬도 그렇다. 이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이 종이를 뭉텅이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니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또 헤어지며 할 말 있어요종이를 일부러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서먹한 아이가 없다. 예전에는 헤어지고 다시 보면 한두 아이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다 웃으며 본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헤어진 누구와도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렇게 아이들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서로 소통이 안 되어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불만을 표현할 줄 몰라 마음에 담아 뒀다가 다른 충돌이 있을 때는 더 큰 감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잘 놀지 못하는 환경이 이런 수줍음을 낳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수줍음이 서로 놀지 않아 그렇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 교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쉬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도구를 두고 놀도록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툼은 더 늘었다. ‘할 말 있어요는 더 들어왔다. 놀이의 시비를 가리는 일까지 내게 들고 왔다.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지만 그래도 다 받았다. 그런데 이게 딱 한 달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잘 논다. 자기들끼리 규칙이라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서로 심판을 보며 큰 다툼 없이 논다.

올해도 나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지난해 선배들이 한 두툼한 할 말 있어요뭉텅이도 보여 준다. 이를 보더니 몇몇 아이는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올해는 할 말 있어요받는 부서를 두고 아이들 도움으로 같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무들끼리 서로 나누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내가 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 내 책상 위에는 할 말 있어요종이가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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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봄나물 잔치

윤혜신/ 밥 짓고 꽃밭 가꾸는 시골밥집 미당주방장, 착한 밥상 이야기저자

 

 

요즘 들어 우리 옆 동네에 자주 가게 된다.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열고 목요일 저녁마다 수묵화반이 생겨서 작년 늦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수묵화를 그리러 다닌다. 미술관 앞에 책방도 생겼다. 오래된 시골 이층집을 살짝 고쳐서 아담한 책방을 열었는데 시골이라 어디 갈 곳이 마땅찮다가 아담한 시골 책방이 생기니 신이 났다. 그런데 또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내가 쓴 그림책 꽃할배를 알고는 작가라며 반겨 준다. 식당 주방장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림책 저자라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며, 갑자기 지역 작가로 우대를 한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세 명의 여성들이 밝게 웃으며 식당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그림책방 주인장 소개로 왔다며 자기들도 모두 동화작가라 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대접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아는 그 시골 책방에서 강연도 하신단다. 어쨌든 세상이 다 하나로 연결된 느낌이다.

강원도에 사시는 선생님에게 봄날이 되었으니 한번 산에서 내려오시라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놀러 오신다 해서 이번에는 책방 주인장과 동화작가들을 같이 초대했다. 선생님 내외분도 그림책 작가시니 이름만 대면 서로 아는 사이리라. 그리하여 어느 봄날 밤에 모두 모였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를 뚫고 다들 모여 앉았다.

나는 조금 특별한 봄 요리를 준비했다. 냉이를 다져 넣은 만두, 취나물을 갈아 쑨 죽, 방풍과 새우를 잘게 다져 넣은 전, 상수리묵과 묵은지, 취나물현미밥과 방풍조개된장국. 봄나물을 이용해서 색다른 맛을 냈다. 모두들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맛있게 봄 요리를 먹었다. 예산 박 선생님이 작년 여름에 담근 술을 가져와서 입이 호강을 했다. 모두들, 냉이만두는 처음이라며 맛있게 먹고 신기해했다. 중동의 친구가 가르쳐 준 요리인 혼음, 내가 보기엔 만두는 만두인데 한꺼번에 크게 말아 쪄서 잘라 먹는 만두라 손쉽게 만두를 만들겠다 싶어서 내 방식으로 응용을 해 봤다. 먼저 밀가루 반죽은 거의 비슷하게 한다. 그런데 반죽을 밀 때, 우리나라 칼국수 반죽을 홍두깨로 밀듯이 커다랗게 밀고 그 위에 만두소를 골고루 얹어 돌돌 말아서 우리네 곱창같이 (순대같이) 둥그렇게 말아 놓고 찐다. 한 김 나가면 잘라서 접시에 담으면 된다. 나는 고기 위주인 그네들의 소 대신 양파, 부추, 냉이나물을 듬뿍 넣고 고기를 약간만 넣어 만든 소로 냉이만두를 만들었는데 냉이향이 향긋하니 맛난 만두가 되었다.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내려와서 차와 다과를 먹으며 동화책 이야기랑 그림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마침 송악에 살면서 그림책방과 그림책스테이를 준비하시는 감자꽃 선생님이 다음 날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 몇 년째 그림책방을 준비 중이시라고. 우리는 꼭 가겠노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송악의 책방으로 놀러 갔다. 같은 당진이라지만 오지라고 할까. 가도 가도 시골길을 달려서 논밭 가운데 우뚝하게 서 있는 예쁜 책방. 높은 벽면 가득히 그림책이 꽂혀 있고 아직도 나무 냄새와 장작불이 타고 있는 동화 같은 집에 들어갔다. 한 사나흘 정도 이런 집에서 그림책만 실컷 보며 쉬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램이다. 맛난 커피를 내려 주셔서 집안 구경도 하고 감자꽃 작가님의 책도 보고 즐겁게 놀다가 다시 면천의 책방 오래된 미래로 향했다.

책방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지고 이담 선생님의 팬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기다렸다. 글쓰기 모임의 선생님과 제자라고. 역시 좋은 책을 쓰고 그리니 어딜 가도 팬들이 있다. 작은 책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 사인도 하고 담소도 나눴다. 책방 주인인 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모두 책 선물을 했다. 예전부터 사려던 책을 딱 알아서 주시니 고마웠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을 그린 그림책. 그 책장을 하나씩 넘겨 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예산 슬로우시티 대흥마을로 가서 박 선생님이 하시는 수공예공방 짚과 헝겊에 갔다. 누님은 헝겊으로 가방, 모자, 손지갑, 생활용품을 만드시고 동생은 지푸라기로 짚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특별히 이 공방은 예산에 사는 마을분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만을 판매한다고. 인형이며 브로치, 액자며 옷가지들이 정겹게 진열되어 있다. 선생님이 타 주신 꽃차를 마시며 예쁜 손물건을 구경하고 밀린 수다를 떨었다. 오후가 돼서 우리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했다.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가끔씩 얼굴 맞대고 사는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살다가 실수한 거며 때론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든 이야기며 부모자식 이야기를 나누니 핏줄이 아니어도 피붙이 같은 사람이 있다. 나도 남편도 집안의 첫째라 언니나 형이 없어서 의논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다 만난(살림살이라는 책을 쓰다가 만남) 이분들은 내 친언니 친오빠같이 서로를 챙겨 준다. 가끔씩 만나면 너무 반갑고 안 보면 보고 싶다. 어제 하룻밤인데도 한참 전인 것처럼 느껴지고 빈자리가 허전하다.

어떻게 보면 우린 모두 이방인이고, 외지인이다. 강원도, 서울, 대구, 전주, 대전. 각기 자기 고향을 두고 여기서 살게 되었고 여기서 만났다. 외지인이라는 외로움이 우리를 더욱 친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살뜰하게 살펴 주고 다독여 주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괜히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들을 어색해하지 않고 맛있다고 색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나는 또 용기백배하여 이것저것 요상한 조합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며 신난다.

다음엔 꽃이 활짝 핀 따스한 날에 만나서 텃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맛난 요리를 만들어 봐야지. 가지로 국을 끓이고 애호박으로 김치를 담가 볼까나?

 


냉이곱창만두

만두피 재료 : 밀가루 3, 따뜻한 물 1컵 반, 소금 약간

만두소 재료 : 다진 소고기(돼지고기도 가능) 300그램, 양파 1, 대파 2, 부추 100그램, 냉이 300그램

양념 : 소금, 후추, 참기름 2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그림_ 이동수


만들기

1. 만두피 반죽을 해서 비닐봉지 안에 넣어 숙성시킨다.

2. 양파, 대파, 부추는 다져서 소금에 살짝 절인다.

3. 냉이는 다듬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짜고 다진다.

4. 절인 채소를 꼭 짜고 소고기와 냉이를 넣어 양념한다.

5. 반죽을 다시 치대고 반으로 나눠서 최대한 얇고 큰 타원형으로 민다.

6. 길이로 펴고 소를 반으로 나눠 골고루 얹고 김밥 말듯이 아래부터 만다. 끝 쪽은 떨어지지 않게 잘 붙인다. 이렇게 2개를 만다.

7. 찜통에 젖은 보자기를 깔고 김이 오르면 순대처럼 둥글게 말아서 30분간 찐다. 5분 식혀서 한 토막씩 잘라 접시에 놓는다. 달래초간장을 곁들인다.

* 냉이뿐 아니라 취나물, 방풍, 원추리, 유채 등 어떤 봄나물을 데쳐 넣어도 된다.

posted by 작은책
2019. 4. 26. 13:57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5, 하면 저절로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도시 빈민가에서 자란 제가 어린 시절 5월이 되면 존중을 받거나 무슨 선물을 받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연날리기, 구슬치기, 팽이돌리기, 썰매타기, 술래잡기, 자치기등등 신나게 놀고 요즘 아이들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5월이라 그런지 교사 이야기가 눈에 띕니다.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주한경 선생님은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 주는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지요. 하지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말을 다 들어 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할 말 있어요!’라는종이를 만들어서 나눠 줬답니다.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 줄은.

이번 달 특집은 KT새노조 부위원장인 김미영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1970년생 김미영 씨는 1992, 한국통신(KT)에 무선국 기능직으로 입사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국제교환원 사내 공채 시험을 치러 당당히합격해 지금껏 일해 왔습니다. “2년이 지나야 공채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거든요.”

우리 딸은 ‘2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밤낮없이 노력해 당당히 합격했다는 자한당 김성태 국회의원의 거짓말이 떠올라 참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미영 씨와 KT새노조 조합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집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19418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혁명을 이룬 용의 이야기     이동수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환갑 때 고백했다      박영희

17 포장마차의 추억      차재혁

21 복직 후 내 소망은 점심시간 두 시간      조향순

25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봄나물 잔치      윤혜신

30 청년으로 살아가기

집 떠나 머물 곳이 생겼다     유지향

34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36 살아온 이야기(11)

내 모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송추향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부럽네. 다른 데 아픈 데가 더 있지?      권해진

46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50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봄나물은 사랑입니다      조혜원

54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형사보상제도      박시진

 

작은책이 만난 사람_ 김미영

73 노동가요에 가슴이 뛰는 김미영      안건모

98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100 존버 씨의 시간들

동아시아의 존버 씨들      김영선

106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우파의 수신호      고태경

111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라      이주영

115 여성으로 살아가기 라는 주어에 힘 빼기      홍승은

120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5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6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묻기     박찬희

130 책 읽고 딴 생각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133 독립영화 이야기 혁명이 끝난 후      류미례

138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펼침막과 손팻말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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