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9년 10월호
청년으로 살아가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촌스럽게 살고 싶은 스물일곱 살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인턴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지 두 달 만에 제2회 인턴 채용 공고가 떴다.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산림교육 및 치유 시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지난번과 다른 근무지에서 일할 청년을 뽑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일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주어져서 기뻤다.
두 달 동안 준비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지난달에 컴퓨터활용능력(컴활)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다른 자격증에 비해 점수가 낮았다. 한 달 만에 딸 수 있는 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다. 고등학생 때 국사 성적을 믿고 덤볐으나, 스물일곱 취준생은 열일곱 고등학생과 같지 않았다. 빽빽하게 짜인 시간표 속에서 온종일 공부만 했던 십 년 전과 다르게 자유로웠다. 드라마를 보고, 늦잠을 자고, 친구를 만나고, 돈을 벌면서 열일곱처럼 공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결국, 컴활 자격증 하나 가지고 인턴 서류를 썼다. 자기소개서 항목이 지난번과 같아서 살짝만 고쳐서 냈다. 그런데 웬걸. 서류합격이 됐다. 자격증 하나 있고 없고 차이가 이렇게 크단 말인가. 붙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처음 보는 취업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면접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열아홉 살 동생이 수시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면 좋을지 알려 달라고 해서 시간을 많이 뺏겼다. 청소년지도사 과목 보고서도 써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거기다 애인에게 서류 합격 얘기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에 삐져서 일주일 내내 심란했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 지나고 면접날이 되었다. 면접 장소는 대전 정부청사역 근처였다. 면접장에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대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다른 지원자들을 구경했다. 눈을 감고 미리 써 온 대본을 외우거나,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물을 마시며 목소리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대기실 안에 맴도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자 지원자들은 풀메이크업에 정장 재킷과 치마를 입고, 구두에 스타킹까지 신고 있었다. 나는 흰 블라우스와 남색 바지 정도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은 안 했지만, 새벽에 샤워하고 빗질도 가지런히 해서 뻗친 머리도 없었다. 또각또각 소리 나진 않지만 가지고 있는 신발 가운데 가장 단정한 단화를 신었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못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님, 앞쪽으로 오세요.” 하필 첫 순서였다.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뜻밖에 찾아온 기회이니 즐기자.’ 생각했다. 다른 지원자 두 명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관은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었다. 왼쪽 끝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면접관과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첫 질문은 1분 자기소개였다. “제가 인턴이 된다면 두 가지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첫째, 톡톡 튀는 콘텐츠를 개발하겠습니다. 제게는 전공에서 배운 산림 지식과 교육 공동체에서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산림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겠습니다. 둘째, 숲을 통한 국민 공감을 실현하겠습니다. 저는 숲을 좋아합니다. 숲에서 느낀 행복을 국민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숲의 매력을 전하겠습니다.” 내 옆 지원자는 전날 받은 레이저 수술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답했고, 옆옆 지원자는 준비해 온 답을 로봇처럼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조리 있게 말했다.
이어서 장단점, 직장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 외딴 지역에서 근무할 자신이 있는가에 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정이 많고, 단호하지 못한 나, 소통이 중요한 단체생활,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동안 행복했던 삼 년에 대해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인턴을 지원하면서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전문성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인턴이 산림교육 전문가로 나아가는 소중한 첫발이 되길 바랍니다.”
예상했던 질문은 편하게 답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은 잠시 멈추어 생각을 다듬은 뒤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면접 시간 15분은 금방 지나갔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왔다.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지원자를 보니 빨리하길 잘한 것 같았다. 대기실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먹으며 가족들과 애인, 친구들에게 면접을 보고 나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잘 봤어?”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한 것 같아.”
버스 타러 나가려는데 같이 면접 봤던 여자가 다가왔다. 면접장에서 로봇같이 말하던 거랑은 다르게 친근하게 터미널에 가는 거면 같이 가자기에 그러자고 했다. 같이 걸으면서 전공이 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인턴 면접은 이번이 처음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스펙에 놀랐고, 그녀는 내가 자격증 하나로 서류 합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터미널에서 그녀는 구두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 광주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전주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졸업한 지 일 년도 안 된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 대기실에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지원자들은 또 얼마나 간절할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내가 취업의 꿈이 간절한 사람들을 기만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았다.
며칠 뒤 확인한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올라 있지 않았다. 덤덤하게 불합격 소식을 전하니 가족들은 아쉬운 기색을 살짝 내비쳤다. 애인은 면접 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준비할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할 거라면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서울에서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 과정이 열려서 얼른 등록했다. 10월에 있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취준생으로서 서울 생활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