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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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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9. 09:57 알림 / 엮은이의 글


엮은이의 글

  독자님, 벌써 11월입니다. 〈작은책〉에서는 다달이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16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어가고 있으니 대단한 모임이지요.

  얼마 전부터 늘 모임에 나오시던 분이 안 나옵니다. 전화로 대화를 하다 보니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극우 성향이 있는 분인데 작은책 모임에 나오는 분들과 성향이 안 맞았던 거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를 끔찍이 싫어하는 나와 대화가 안 통했던 겁니다. 그분은 박정희가 우리 서민을 위해서 헌신한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와 작은책 글쓰기 모임 회원들은 박정희를 안 좋게 평가하니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요.

  그분은 오로지 자기 경험과 이웃에서 들은 이야기로 박정희를 평가합니다. “난 농촌에서 살아 봐서 알아. 박정희가 농촌 마을을 다 근대화시켰잖아. 내가 얼마 전 법조계에서 은퇴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박정희는 말 많은 지식인들 몇 명에게는 탄압을 했지만 농촌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한테는 잘해 주었다고.” 또 “박정희가 잘못했으면 지금 딸 박근혜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당의 대표가 됐겠느냐”고 흥분합니다. 말꼬리가 이어져 “지금 김진숙하고 몇몇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데 세상이 그런다고 바뀌는 게 아니야” 하고 남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머리를 세뇌시켰으니 박정희가 대단한 놈이긴 합니다. 자신이 무지하면 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독자님들, 여전히 지배세력들은 미디어를 이용해 시민들을 세뇌합니다. 미 의회에서 한미FTA가 통과됐습니다. 수구 ‘찌라시’와 텔레비전에서는, 한미FTA가 발효되면 기술이 혁신하고 기업 환경이 개선되고 외국인 투자자가 증대한다는 거짓말로 세뇌하면서 국회 비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미FTA가 재벌 외에,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피해가 오는지 그자들이 정말 몰라서 그럴까요? 아, 욕 나옵니다. ×××들.

2011년 10월 15일
안건모 올림
 



차례


4 사진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외박 투쟁을 못하는 이유 _ 이동호
17 모니터 없는 소프트웨어 회사도 있다_ 김정호
20 무덤에서 나온 국가보안법 _ 최수인
24 도배하고 싶어욧! _ 김영도
29 전혀 나이스하지 않은 나이스 _ 제갈은숙
32 오만 사람 오만 가지 이야기 _ 장예진
36 엄마 생각 _ 선경숙
38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한글날 백일장│말! 말! 말! _ 이성수
40 여성의 일과 삶  마흔두 살 아줌마의 재취업 성공기 _ 고희라
44 살아온 이야기(2)  사춘기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고추 농사 김영숙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58 사진 한 장 느낌 한 줄

일터 이야기

59 일터 탐방  서울시에서 하는 게 그렇잖아? _ 정인열
66 일터에서 온 소식  저는 회사를 옮겨 다닌 적이 없어요 _ 조봉환
70 일터에서 온 소식  사람이 기계를 보조하고 있다 _ 김재홍
74 일터 한 뼘 소식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나가서는 말도 못하는 집안 똑똑이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위원장 선거 공탁금이 700만원? _ 변영철

기획 특집

소설 《파업》에서 《박헌영 평전》까지
83 강좌 _ 안재성
103 뒷이야기 _ 정소영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자유민주주의’에 숨겨진 음모 _ 이신철
110 교육 이야기  삶을 가꾸는 배움터 만들기_ 김영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공공요금의 경제학 _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누구를 위한 핵 잔치인가 _ 박병상
122 인물 바로 보기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선생 _ 김삼웅
126 세상의 중심에서 십 대가 외친다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 아찔해졌다 _ 혜원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쪼개기 투쟁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도가니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환등기 시대가 막을 내린다 _ 박준성
142 아, 이 시!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반 _ 서정홍
144 새로 볼 책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그림자 정부 _ 안건모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김현진 / 에세이스트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 녹즙 졸업 증명서를 내주는 업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야쿠르트 여사님에게 받았다. 여사님도 별로 졸업 증명서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임의로 수령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동안 쭉 녹즙아가씨는 여사님에게 반강제로 얼음팩을 상납해 왔다. 지난 18개월 동안 그게 녹즙아가씨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올해로 20년째 근속하고 있는 야쿠르트 여사님은 백 년 묵은 구렁이보다 더 무서워서, 얼음 좀 달라고 하면 녹즙아가씨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녹즙아가씨에게서 징수해간 얼음이 한국야쿠르트 지사에서 모두가 나눠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녹즙아가씨는 분노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끝내 녹즙아가씨는 치사한 방식을 택하고 마는데, 그것은 그날그날 쓸 만큼 아이스팩을 받아다가 건물 공용의 냉장고에 절대 넣지 않고 쓰고 남은 만큼은 물류용 아이스박스에 도로 넣는 방식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얼음 좀, 하는 여사님을 도무지 당해 낼 수가 있어야지. 저번에는 얼음 좀, 하는 여사님에게 저도 사장님한테 더 달라고 못해요, 라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더니 여사님이 맑고 상쾌한 목소리로 이런 멍충이같으니, 하시는 바람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멍충이가 되었다. 하긴 내가 멍충이니까 멍충이라는 소리 듣지, 하면서도 기어코 약이 올랐다. 약이 올라 봤자 녹즙 배달이나 열심히 할 수밖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장 치르자마자 월요일부터 녹즙 배달한 녹즙아가씨는 아버지가 남기신 최후의 유산, ‘경매최고서’라는 것을 받아 들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원망해 봤자 입만 아프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녹즙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1월부터 사표 낸 자리에 여사님들이 오기만 하면 일이 힘들어 다 도망치는 바람에 녹즙아가씨는 뜻하지 않게 계속 끈기를 과시하고 마는데, 그러던 중 며칠 전 야쿠르트 여사님이 또 얼음을 달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기 싫어서 살색만 보면 전속력으로 도망쳤는데 기어코 또 얼음, 싶어 녹즙아가씨는 멍충이 소리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저도 없어요 얼음,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바보라고 할까 멍충이라고 할까 기대하고 있는데 여사님이 별말 없이 이 일이 해 보면 되게 힘든 일인데 오래 해서 참 장해, 하더니 가 버렸다.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는 감격이 몰려왔다.

  나도 이제 고참이구나.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아침 배달하러 나가다가 입고 나가던 옷이 어쩐지 심상찮아 잘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 입고 배달하다가 청소 여사님에게 트집 잡혀 꼬집히고 쥐어박힌 옷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말 안 거는 걸 보니 나도 고참이구나. 이제 제대해야겠다. 강 건너로 이사 가게 되어서 일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어서 지사장님에게 진작 관둬야 해요, 관둬야 해요, 라고 늘 말했는데 오늘은 바로 이사 전날, 지사장님이 전화를 걸어 일단 물류 발주는 해 놨거든, 현진아 삼 일만 더 도와 주면 안 되겠니, 라고 너무 간곡하셔서 일단 삼 일은 강을 건너와 녹즙을 날라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녹즙아가씨는 이번 호 발매 후 ‘녹즙’ 자를 떼고 그냥 일반 ‘아가씨’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작은책 독자 여러분, 다음 호를 기대하시라.
posted by 작은책
2011. 10. 18. 15:32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단이 편지로 왔다. “아직도 안 받으셨나요?” 묻는 전단은 검진 비용의 90퍼센트를 공단에서 담당하니 조기 진단으로 건강을 잃지 말라는 고마운 친절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친절을 이미 여러 차례 받은 처지에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는 건 왜일까. 가부장적이거나 상업적 친절이라는 냄새를 느낀다고 반응하면 좀 지나친 걸까.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에서 원장으로 은퇴한 어떤 의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건강 검진을 여태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묻자, “무서워서!”라고 답했다며 그 은퇴 의사의 친구인 선배는 실소했는데, 그 선배는 해마다 사원 개인에게 마치 크나큰 권리라도 선물하는 양, 건강 진단 다녀올 것을 해마다 회사는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나이 들은 만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당연한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무게 잡는 의사들의 과잉 전문성이 불편하다며 ‘모를 권리’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지만 회사는 알고 싶었을 게다. 미리 정리할 사원이 누구일지를.

  충성스런 고객에게 특별한 배려처럼, 구형 손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주겠다는 호들갑스런 전화를 극성스레 받는다. 멀쩡한 전화기를 바꾸라니!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배터리 성능도 좋은데 왜 바꾸라는 겐가. 할부금 시한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기능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세태에서 재고품을 처리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헐값의 프린터를 내준 뒤 고가의 잉크나 토너를 파느라 여념 없는 업체의 상혼과 비슷한 건 아닐까. 아무튼, 옛 번호를 고집하는 손전화는 아직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탈퇴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라이버시 유출에 진저리를 친 경험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언론은 귀띔했다. 진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과시하는 누리꾼들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신상 털기’라며 인터넷에 흘리자 관음증과 더불어 조회가 폭발하지 않던가. 이런 와중에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갈 소지가 다분하다. 사전 허락 없이 사용자의 행적을 감시하던 손전화기 제조 회사가 고발되었고, 벌금이 부과된 게 엊그제다.

  “건강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전자 피부’가 나온다!”며 독자에게 가슴 벅찰 것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견고한, 가로 2센티미터 세로 1센티미터에 두께가 37마이크로미터의 전자 피부를 문신처럼 심장 가까이 붙이면 환자의 심박수나 체온은 물론 근육의 움직임과 뇌파의 변화까지 24시간 감지하며 주치의에 연결한다는 언론 기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는 과학자의 소견을 소개했다. 다만 “생체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거리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원거리 전송이 필요한 의료 기기 적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덧붙이면서.

  전자 피부의 가능성을 타진한 과학자의 순진한 의도는 기술 개발 속도를 미루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스마트폰 기술과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PS)을 활용한다면 미약한 생체 신호가 담당 의사의 손전화 모니터에 전달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세계 과학기술의 추이를 분석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를 기반으로 만든 칩을 피부에 이식할 경우, 개인의 맞춤 의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담당 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적절한 약품을 그때그때 처방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먹지 않고 독한 술을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마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일러바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전자 피부에 개개인의 DNA칩을 넣어 환자, 아니, 모든 국민의 피부에 태어나자마자 이식한다면 어떠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될까. 집 잃은 개를 얼른 찾게 할 뿐 아니라 함부로 버린 개의 임자를 꼼짝없이 잡아내고, 물린 이가 예방 주사 접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자칩은 개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이 훨씬 빼어나고 비싼 DNA 전자 피부가 전하는 은밀한 정보를 병원은 물론이고 행정망의 중앙컴퓨터와 연결한다면 생활은 무시무시하게 편해질 게 틀림없다. 말썽 많은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이 지갑에서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출입국 수속을 위해,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공항에서 길게 기다릴 이유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인감증명과 건강보험카드의 기능을 포함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을 편의를 앞세우며 추진하려는 정부에 시민 단체는 맞서야 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로 시민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들이 은행이나 보험 회사, 그리고 기업에 흘러들어갈 경우 빚어질 감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을 철회했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살아나려 한다. 전자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시민과 달리 정부는 아쉬움이 큰 모양인데, 그 실체가 도대체 뭘까. 전국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폐쇄회로 카메라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은 감시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까.

  넓은 아스팔트가 한산해진 야심한 밤,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횡단보도로 찾아갈 때 저기 경찰차가 보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횡단보도 도착 전에 길을 건넜더니, 경찰 순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남발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민중의 지팡이를 믿어 안심하고 건넜다는 핑계를 귓전에도 듣지 않으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던 경찰은 전과가 없으니 봐 준다며, 더 바쁜 일이 있었는지 가던 길로 휑하니 사라져 갔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남이 보든 말든, 순찰차의 작은 단말기로 모든 범죄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에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전자주민등록증이 걱정인데, 최첨단을 찬미하는 과학 기술은 전자 피부를 넘어설 세상을 장밋빛으로 그린다.

  전자 피부의 쌍방향 정보는 주치의와 환자의 스마트폰 사이만 맴돌까. 그런 정보는 고객의 수가를 조절하고 싶은 보험 회사에서 반색하고 이윽고 가입을 거부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어떤 이의 입사를 원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자 신호의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편의에 사로잡힌 개인은 중앙이 은밀히 수집해 분류할 뿐 아니라 가공하는 정보에 굴복할 뿐, 중앙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철두철미한 감시 사회에 내팽겨진 개인은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저절로 병원 고객으로 등록되면서 나아가 ‘디지털 치매’에 들어간다.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전자 신호 체계에 소외된 이는 ‘디지털 학대’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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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열 / <작은책> 기자
 

  “저는 해고 2호, 여긴 해고 3호에요”

  좋은 일도 아닌데 밝게 웃으시며 자기소개를 하신다. 이분들은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요양보호사(보통 간병인이라고 한다)를 하다 '짤렸다'는 권옥자(54세), 이선애(62세) 씨다. 어르신들 돌보는 게 업이라 그런가, 부드러운 인상과 말투 때문에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거리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권옥자(왼쪽), 이선애(오른쪽) 씨 / 사진_안건모


  “노조 가입한 사람들은 재계약이 안 돼서 해고됐어요. 1년마다 근로계약을 하는 데 저(권옥자 씨)는 8월 6일자로, 여기 언니(이선애 씨)는 8월 16일자로 해고됐어요. 노조 탈퇴 못하겠다고 했거든요”

  2008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요양보호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기저기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광고가 넘쳐 났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 요양보호사 자격 따 놓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학원 광고마다 ‘주부 취업, 학력 불문, 퇴직 후 대비’ 등등 솔깃한 문구들로 적혀 있어 현재 자격증을 딴 사람이 100만 명이나 될 정도다. 권옥자 씨와 이선애 씨도 그중에 한 명.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25만 명 정도다. 왜 그럴까?

  “24시간 격일제로 일을 하는 데 세금 빼면 월급이 110만 원 밖에 안 돼요. 한 사람이 8명의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쉬는 시간도 전혀 없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 일 절대 못 해요. 젊은 애기 엄마가 일하는 걸 봤는데 밤새 애들이 울면서 전화하고, 애기 엄마도 울었어요. 그리고 하루 만에 그만뒀어요. 자격증 따 놓고 병원에 실습 왔다가 전부 다 떨어져 나갑니다. 하지만 저희같이 없는 사람들, 꼭 돈 벌어 가족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구요.”

  청주시에서 설립한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은 2009년에 개원해 병원 운영을 민간의료재단인 효성병원에 위탁했다. 그리고 효성병원은 요양보호사 인력을 하영테크에 또 위탁했다. 하지만 일자리 구하는 사람들이 그걸 알 리가 없다. 그이들은 파출부라도 나가야 하지만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게 필요했고, 작은 요양원보다 시립병원이 처우가 나을 것 같아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청에 하청을 주니 당연히 중간에서 인건비 떼먹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영테크는 1인당 월급을 157만 원으로 효성병원에 요청하고 실제 127만 원(세전)을 줬다. 시급으로 따지면 3천 원이 안 된다. 그리고 효성병원과 하영테크는 이윤을 내기 위해 60명을 투입해야 하는 인력에 24명으로 운영했다. 그러니 요양보호사 한 명당 환자 5~8명을 맡게 되고, 당연히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대부분 치매, 반신불수, 석션(기도의 분비물을 제거하기 위해 흡입기를 대고 있는 환자), 화상을 입은 어르신들입니다.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이 4~5명 되지요. 그런데 그중 꼭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려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더 힘듭니다. 우리가 병실을 비우고 그분을 부축해서 볼일 보는 것을 다 도와줘야 하거든요. 옷을 다 입혀서 다시 침대에 눕히고 나면 다른 분들 기저귀를 갈아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분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고, 어떤 분은 아들네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나고. 그러다 넘어지면 엉덩뼈가 부서져요. 그래서 항상 간병인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붙어서 수발 들어야 하는 환자가 8명이다. 환자들에게서 잠깐만 눈을 뗐다간 사고가 난다. 그러니 5분도 쉴 새가 없다. 게다가 수시로 욕창이 생기지 않게 체위(자세를 바꾸어 주는 것)도 해 줘야 한다. 덩치가 큰 노인들에겐 온 힘을 다 써야 움직일 수 있다. 또 남성 노인들을 돌보면서 성추행도 발생하는데, 그럴 때는 모르는 척 교육받은 대로 대처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에도 혼자 못 먹는 환자 때문에 밥을 먹여 주면서 자신도 같이 먹는다. 그러다 기침해서 가래가 밥에 들어가면 밥맛이 없어지고, 또 여기저기서 간병인을 불러 대니 도저히 맘 편히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못 쉬어가며 일하다 ‘요양보호사 권리찾기 캠페인’을 추진하던 공공노조 충북지역 의료연대와 청주노동인권센터를 만나게 되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10년 8월에 노조에 가입했다. 임금체불진정서도 냈다. 그러자 하영테크는 근로계약서를 법에 맞게 위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서명을 편법으로 받았다.

  “입사하고 3개월이 지나서야 근로계약서에 싸인했어요. 24시간 힘들게 일하고 퇴근 시간에 통근 버스 기다리는데 ‘선생님, 잠깐만요~. 싸인하고 가세요’ 하더라구요. 내용을 보려고 하면 ‘안 봐도 돼요. 그냥 싸인하세요’라고 해서 너무 피곤하고 바쁘니 별 생각 없이 싸인을 했죠. 게다가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돋보기가 없으면 글자가 안 보여요.”

  정말 얄밉다. 소송 때문에 나중에서야 근로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월급 금액을 맞추려고 4시간마다 1시간씩 무급 휴게 시간을 주었다고 계산을 했고,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유급 휴게 시간을 주었다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게 거짓 작성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근로계약서대로 요양보호사들이 쉬었다면 그 많은 환자는 누가 돌봤단 말인가? 권옥자 씨와 이선애 씨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영테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원청인 효성병원과 회의가 있을 때나 새로운 인력이 투입될 때만 관리팀장이 왔다. 모든 업무 지시는 효성병원 간호사들의 지시를 받았다. 하영테크 팀장은 노조가 생긴 뒤 노조 가입한 사람들은 모두 자르겠다고 협박해서 처음 37명이었던 조합원 수가 지금은 10명만 남게 되었다. 노조에 남은 사람들은 생계 위협에도 왜 탈퇴하지 않았을까 물어봤다.

비 오는 날 집회 중인 해고 간병인들 / 사진 제공_충북지역의료연대

  “생계가 걱정되지만 분한 생각이 더 들어요. 부당한 일이 있어서 호소하겠다는 데 왜 해고하나요? 노인요양보호서비스는 어느 가정이든지 다 접할 서비스입니다. 사람들이 간병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다른 간병사들도 이런 일을 당하면 안 됩니다. 용역업체 안 쓰고 체제만 바로 잡히면 일하는 우리도 조금 더 편하고, 우리가 안정되면 환자에게도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노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가 저희를 인정해 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자기 가족도 거부하고 우리 손길만을 기다리고, 고맙다고 할 때. 슬그머니 쵸코파이를 손에 쥐어 주고, 추운 날 출근해서 오면 춥지~ 하며 손을 잡아 주고 표졍이 밝아질 때. 말을 못해서 ‘아다다~’로 표현하는 분이 있는데 제가 한 달하고 다른 병실로 넘어가니까 그 다음부터 캔(식사 대용으로 먹는 환자식)을 안 드세요. 그러면서 보호자에게 이 사람 아니면 안된다고 ‘아아아~’ 하고 의사 표현을 하면 정말 보람을 느끼고 '얼른 다시 와서 저 환자분 돌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찡해진다. 우리 부모님도 늙어 곧 아프실 날이 오겠지. 우리 자식들도 부모님을 노인 병원에 모셔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을 돌봐 주실 그런 분들, 철없는 자식들보다 더 기댈 수 있는 그런 분들. 우리 부모님이 편해지려면 환자당 요양보호사 수가 훨씬 많아져야 하고,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되고, ‘목숨유지비’ 이상의 월급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잘할 수 있어요. 아무 희생자 없이 우리 요구가 들어져서 우리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당당한 1급 국가자격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해요.”

  젊어서도 고생했는데 늙어서도 고생하고 있는 우리 시대 엄마들이 생각난다. 늙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 엄마들, 좀 편하게 일하게 해 주이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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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분 / 출판 노동자. <작은책> 편집위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왜 내가 긴장하는 거지?’

  중학교 1학년인 작은딸 지인이가 2학기를 맞았다. 개학을 하루 앞둔 날, 왜 내 맘이 이렇게 답답해지는 걸까 생각했다. 아마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지금 담임이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싫은 맘 때문이지 싶다.

  지난 3월, 작은딸이 중학교에 입학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회사에서 야근을 하다가 큰딸 지윤이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지인이한테는 내가 이런 말 했다는 거 비밀이야.”

  작은딸이 제 언니한테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고 한다. 자기가 하기 싫은 CA(특별활동)를 친구가 대신 신청을 했기에 담임 선생에게 다른 반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는 거다.

  CA를 시작한 첫 주엔 아이들이 반이 맘에 안 들면 다른 반으로 옮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또래도우미반’에서 ‘악기연주반’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담임 선생 왈, “너 ‘악기연주반’ 그런데 가면 날라리 돼!” 그러면서 안 바꿔 줬다고 속상해했단다. 또 하루는 아침에 머리를 감고 갔는데, 머리가 마르지 않아서 긴 머리를 풀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이 딸아이를 보더니 “너 한 번만 더 머리 푼 거 내 눈에 보이면 죽여 버릴 거야.” 그러더란다. 다른 아이들도 머리 풀고 있는 애들이 여럿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 그래서 지인이가 학교 다니기 싫대.”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학교에 흥미를 잃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지윤이가 덧붙인다. “내가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더니,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 안 그래도 엄마가 대안학교 가라고 했는데 내가 일반 학교 선택한 건데 어떻게 말해.’ 그러는 거야.”

  두 아이를 키우면서 어지간하면 학교에 찾아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한테 “죽여 버릴 거야” 하고 말한 담임이 어떤 사람인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부모 총회 하는 날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엘 갔다.

  딸아이 책상을 찾아 앉아 있으니 학급 대표 아이가 학부모 총회 참가자 출석 체크를 한다. 아이 이름 옆에 엄마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도 적는다. 긴 머리를 풀고 있다. 내 딸의 CA를 제 맘대로 신청한 바로 그 애다. 자기 엄마가 하라고 했다는 CA를 혼자 하기 싫어서 자기가 내 딸아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신청해 버렸다는 거다. 그 애 엄마는 ‘또래도우미반’이 봉사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 신청하라고 했다고 한다. 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뭐 그런 에미가 다 있냐. 봉사는 점수 따려고 하는 것도, 강제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점수 때문이 아니라 내 딸들은 어려서부터 두루두루 단체 활동, 캠프 활동 등을 하면서 자원봉사가 생활화되어 있는 애들이다. 그런데 일부러 점수 따게 하려고 수업시간에 아이가 좋아하는 특별활동이 아니라 봉사 점수 따는 CA를 시킨단 말이야? 그리고 담임은 그걸 하지 않겠다는 딸아이에게 아이가 좋아하는 ‘악기연주반’에 가면 “너 날라리 돼!”라고 말로 폭력을 썼단 말이야?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담임이 학급 지도 방안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내 딸 얘기를 한다.

  “우리 반에 지인이라는 애가 있는데… ….”
 
“선생님, 제가 지인이 엄맙니다.”
 
“아, 그래요. 지인이 어머니… …. 지인이가 머리에 신경 쓰고, 교복 치마 줄여 입고, 그러다간 화장도 하게 될 거고, 화장한 뒤엔 또 더한 것도 하게 될 거예요. 지인이가 사춘기라서 그럴 거예요. 애가 다른 애들보다 성숙해서 사춘기가 빨리 왔나 봐요.”

   
기가 막혀서!!!

  “선생님, 제 딸 교복 치마 줄여 입지 않았습니다. 교복을 제 몸에 맞는 걸 사 입었을 뿐입니다.”
  
“그래요? 어느 회사 꺼요?”

  헐~. 애 엄마가 그렇다면 믿어야지 그걸 또 회사까지 확인하냐? 내가 시간이 없어서 큰딸이 제 동생과 교복을 샀던 거라 혹시나 싶어서 큰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지인이 교복 치마 줄였니? 어느 회사 꺼니?”

  큰딸한테 바로 답이 왔다.

  “아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엘리트 꺼야! 엄마 요새 교복 치마 다 짧게 나와. 그리구 지인이가 다리가 길어서 치마가 짧아 보이는 거야.”

  다른 날 같으면 깔깔대며 ‘다리 길어 좋겠다, 너 잘났다’고 했을 텐데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다. 큰딸과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담임은 계속해서 아이들 교복 얘기, 머리 얘기, 사춘기 얘기를 한다.

  “선생님, 교복은 엘리트 꺼구요, 교복을 사 준 지인이 언니가 치마를 줄인 적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죠. 제가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줄이지 않았다면 애가 치마 허리를 둘둘 말아 입고 다니는지.”

  아! 기가 막힌다. 어이없다. 처음 보는 학급 엄마들 앞에서 아이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담임한테 뭐라고 한마디 날려야 하는데… …. 참, 오늘 내가 찾아온 것은 담임이 우리 애한테 ‘죽여 버리겠다’고 한 말 때문이었는데, 아이 머리, 교복 치마 운운한 것 때문에 너무 기가 막혀서 내가 정작 찾아 온 얘기는 까먹고 말았다. 아, 정말 분해서 돌겠다. 설령 치마를 줄여 입었다고 치자.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지? 아이가 머리에 신경 쓰는 게 뭐가 문제지?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거라고? 화장하고 더한 것도 하게 될 거라고? 이렇게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비약해서 아이를 문제아처럼 몰아가는 담임한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니. 말할 기회가 없다. 보고 있는 엄마들도 많은데… ….

  담임이 계속 얘기를 한다. 자기는 교사가 천직이란다. 아버지도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셨다고, 자기 집은 교육자 집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오랫동안 생활지도부장을 해서 아이들을 잘 다룬다고 한다. 헉! 애들이 물건이냐? 잘 다루게?

  “아이들이 나를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매일 노력합니다. 저를 믿어 주세요.”
  
‘그러냐? 근데 왜 내 딸과 내 말은 안 믿는 거야.’

  담임이 계속 말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첫 시험 성적이 고3까지 갑니다. 지금까지 제가 20년 넘게 봐 와서 다 알아요. 애들 모습만 딱 봐도 그 애가 몇 점짜리 애인지 알 수 있어요.”

  이 선생 말대로라면 애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기를 쓰고 공부할 필요가 없겠다. 대학 입학 선발도 중 1때 시험 한 번만 보고 미리 뽑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미 앞날이 보인다면서 왜 애들을 6년 동안 그렇게 들들 볶아 드시는가 말이다.

  회사엔 오전만 쉰다고 하고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거라, 총회가 다 끝나기 전에 먼저 나와야 했다. 나오기 전에 학교에서 필요한 학부모 인원 동원에 몇 개 신청을 했다. 인원 배치가 다 돼야 총회가 빨리 끝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학교 급식 검수’, ‘학부모 시험 감독’ 두 가지를 신청했다.

  “선생님, 회사에 들어가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아이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아이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웃음, 구겨진 인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싸늘한 눈빛을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꾸벅 인사하고 돌아 나왔다. 뒤통수가 따가웠다. ‘당장 학교를 그만두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뭐 저런 선생이 다 있냐. 애들을 물건 다루듯 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아이와 엄마 말을 믿지도 않고, 아이의 앞날을 단정 짓고!

  회사에 들어가는 길, 큰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자고 했다. 너무 화가 나고 분하고 억울했다. 저런 선생에게 배울 게 뭐 있겠나 싶었다. 언젠가 홍세화 선생님이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교사는 안정된 직장인이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 저 담임은 학교가 ‘직장’이고, 선생이 아닌 ‘직장인’이다. 문제의식도 없고, 교사로서 성찰도 없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냥 직장 생활 편하게 보내고 싶은 ‘아이들 관리자’인 거다. 저 선생한테 참교육을 기대하지 말자.

  그날은 빨리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다. 애들하고 얘기 좀 나누고 당장이라도 어떻게 해결을 보고 결단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작은딸이 이런다.

  “엄마, 그 선생님 나한테만 그런 거 아니야. 화분 담당하는 아이한테는 ‘화분에 꽃잎 하나 떨어질 때마다 너 손가락 하나씩 부러질 줄 알아.’ 그러는 거야. 그치만 1년 뒤에 운이 좋으면 좋은 선생님 만날 수도 있는데… …. 지금 막 친구들 사귀고 있는데… …. 나 학교 그만두고 싶지 않아. 그냥 견뎌 볼게. 엄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에고, 얼마나 맘이 짠하고 속이 에리던지… …. 학교 생활이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내가 고작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런 거였다.

  “껀수 잡히지 마라. 복장, 수업 태도, 준비물 같은 거, 알았지?”

  세상에! 이렇게 긴장하고 학교에 다녀서야 학교 생활이 즐거울 수 있겠나!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날려 버리자고 작정이나 한 듯이 아이는 여름방학을 신나게 재미나게 놀며 보냈다. 부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청소년 대중음악 캠프’에 참가한 딸은, 열흘 동안 왕복 네 시간 걸리는 길도 전혀 힘든 내색하지 않고 즐겁게 다녔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를 배우면서, 그걸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다고 여긴다. 딸아이를 보며 ‘노는 것도 공부’라는 진리를 다시 깨닫는다. 부천까지 두 시간 버스 타고 전철 갈아타고 걸으며 길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음악 전문가들 모두가 딸아이에겐 고마운 스승이다.

  방학이 끝나고 나니 아이는 부쩍 자라 있었다. 비록 수학 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한 개도 외우지 않고 방학을 보냈지만… …. 아니다! 딸아인 오디션 때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를, 캠프 내내 자신이 선곡한 마이클 잭슨의 ‘벤’을 연습하고 녹음하며 영어 공부를 했다! ㅎㅎ.

  개학 전 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딸에게 말했다.

  “지난 한 학기 잘 견뎠지? 얼마 안 남았어. 네 말대로 ‘운이 좋으면’ 내년엔 좋은 담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잘 지내 보자. 뭐? 숙제 안 한 게 있어? 빨리 해,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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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해고 모른 척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2억 8천 손해배상 청구냐!”
 
 “3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차라리 우리 노동자를 죽이시지요.”

  홍익대학교 정문 오른쪽에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을 길러 낸다는 대학교에서 월급 89만 원 받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3억을 손해배상 청구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1월에 청소 노동자 170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된 뒤 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49일 동안 농성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손해배상 금액이란다.

홍익대학교 정문 옆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사진_안건모

  거기에서 일하던 40대 후반에서 60대 여성 노동자들 사연을 들어 보면 하나같이 기가 막힌다. 그중에 한 분 김금옥 씨를 청소 노동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비만 오면 여기 저기 새요.”

  청소 노동자 대기실 천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겉에서 보면 번듯한 이 홍익대 건물 안에 비가 새는 곳, 그곳이 청소 노동자 대기실 겸, 휴게실이다.

두 사람이 겨우 밥을 먹을 수 있는 대기실 / 사진_안건모

  김금옥 씨는 1953년 생. 고향은 전라남도 순창이다.

  “순창에서 20리 길 둑을 타고 나가면 우리 마을이었어요. 4녀 1남에 제가 둘짼데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죠. 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열여덟 살에 서울로 올라왔죠. 언니가 결혼한 뒤 상월곡동에 살았는데 형부가 요꼬(편직 기계) 짜는 분이라 종업원 몇 분 두고 공장을 운영했어요.”

  그 당시 옷은 그나마 잘 나가는 직종이었다. 하지만 수출이 막히면서 점점 어려워졌고, 설상가상으로 언니가 당시 20만 원 되는 계를 들었는데 계주가 도망가는 바람에 공장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논밭이었던 창동에 하꼬방(판잣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

  거기서 몇 개월 살다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언니와 형부는 남원으로 내려갔다. 김금옥 씨는 메리야스 공장에 취직을 하고 친구들하고 기숙사에 살았다. 당숙이 중매를 해 줘서 공무원 직업을 갖고 있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말단 공무원 월급으로 살기가 어려워 김금옥 씨는 한 달에 10만 원을 버는 부업을 했다. 막내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피죤, 물비누, 퐁퐁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방문 판매하는 일을 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집을 방문하면, 새댁들이, 배추에 소금을 담가 놓는 분이 있어요. 그럼 내가 씻어서 담가주기도 하고, 뭐 좀 도와주고 하니까 그 분이 다른 손님을 소개해 주고 해서 영업을 잘했죠.”

  김금옥 씨는 그 뒤 라피네 화장품 판매, 보험 영업으로 생활을 꾸려갔다. 그 당시 보험 영업은 지금과 달랐다. 한 달에 한 번씩 보험료를 내는 게 아니라 일수 찍듯이 하루에 나눠서 받는 형식이었다. 용산전자상가 건물에서 남자만 상대하는 보험 영업이 쉬울 리 없었다.

  “처음에는 용기가 안 나서, 말도 못 했다니깐요. 오래된 언니 이틀 따라다니면서 보고 배웠죠. 90도 각도로 인사하면서 ‘안녕하십니까?’ 하는 거 배우고 껌 하나, 볼펜 하나 주면서 가게마다 다 돌았어요.”

  날이 갈수록 보험 영업도 점점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사람을 끌어오라는 ‘증원’ 압박에 시달렸다. 김금옥 씨는 힘든 보험 영업 일을 남한테 이 일이 힘들어 남한테 권유하지 못해 사람을 끌어오지 못했다. 결국 그 일도 그만두게 됐다.

  김금옥 씨가 처음 홍익대 청소 노동자로 온 것은 1999년이었다.

  “그땐 제가 힘이 장사였어요. 쓰레기 봉투가 100리터짜리 스물네 개에서 서른 몇 개가 나왔어요. 엘리베이터도 없었는데 7, 8층에서 그걸 힘든 줄 모르고 계단으로 내렸어요.”

  월급이 40만 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음에 맞는 동료 언니들이 있어 그런 대로 재미가 있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마음에 맞지 않는 다른 청소노동자들과 같이 일하게 되면서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간 곳이 영등포에 있는 스크린 경마장이었다. 그곳도 청소하는 일이었다.

  “거긴 홍익대보다 월급은 많은데 손님들이 있는 데서 청소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담배 냄새가 심했어요.”

  그곳에서 6년을 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버스에 치어 머리와 어깨, 다리를 다치고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동안 치료를 한 뒤 쉬고 있었는데 홍익대에서 정직원으로 청소일을 하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일할 자리가 났으니 다시 올 수 있냐는 거였다. 사실 김금옥 씨는 노동조합(노조)이 있는 서강대에 이력서를 보내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조가 있는 곳은 처우가 좀 낫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강대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또 홍익대로 일을 하러 갔다. 6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월급 때문에 체육관 수영장 야간 일도 같이 했다.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월급이 80만 원은 됐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야간에 수영장 물일을 하니까. 락스 풀고 닦는데 공기 탁하고, 지하라. 하루에 몸무게가 1킬로씩 점점 빠졌어요.”

  자꾸 몸무게가 빠져 병원을 가니 갑상선에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난 뒤 금방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8개월을 쉬고 홍익대에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김금옥 씨 / 사진_정인열

  그런데 같이 일하는 동료 언니들이 불만들이 많았다. 노조가 있는 서강대, 연세대에 견줘, 똑같이 일하는데 홍익대는 월급이 더 적은 데다 일은 더 많이 해야 했다. 노조를 만들고 싶었지만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학생들이 와서 월급이 얼마인가, 하루 몇 시간 일하는지 설문 조사를 했다.

  “우리는 한 달에 75만 원 받고, 아침 8시 출근, 6시 퇴근 토요일도 한 달 두 번 정도 일한다고 얘기했죠. 우리가 있는 대기실을 두세 명이 세 번씩 방문했어요. 처음엔 노조 얘기 안 하고 설문 조사만 하다 두 번째 왔을 때 노조 얘기하는데 귀가 솔깃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도와주면 노조를 만들겠다 했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학교 밖 커피숍에서 처음 아홉 명이 모였다. 하지만 모두들 겁이 나 조합원 가입서를 쓰지 못했다. 김금옥 씨가 처음으로 가입원서를 쓰면서, 여덟 명이 가입서를 썼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반 이상이 조합에 가입했다. 드디어 2010년 12월 2일에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그리고 2011년 1월 3일, 설날 휴가를 끝내고 출근했다. 출근 도장 찍으려는데 경비실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 우리 경비 아저씨 휴가예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그래서 ‘출근도장이 없네요. 출근카드 주셔야죠’ 했더니 ‘몰랐어요? 아줌마들 이제 직원 아녜요 용역회사가 계약 만료되었다고 가 버렸어요.’”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용역회사와 계약이 만료됐다고 그날로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김금옥 씨와 청소노동자들은 모두 본관으로 모였다. 그것이 49일 동안 투쟁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싸움을 어찌 몇 마디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으랴. 김금옥 씨는 추운 시멘트 바닥에서 자느라 교통사고 났을 때 다친 어깨 통증이 재발했다.

  그렇게 49일 동안 투쟁한 결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170여 명은 그대로 고용승계가 됐다. 그 싸움에서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났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가 아니라 정당한 노동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노동자였다. 김금옥 씨는 부분회장을 맡으면서 생각도 변하고 성격까지 달라졌다.

  “나이가 60이 넘은 분들이 많아요. 49일 농성하다 안 아픈 데가 없고, 중간에 언니들이 다 쓰러질 것 같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할 때 용역업체와 교섭을 하고 타결됐어요. 그때 눈물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죠. 노조 가입하기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노동자들이 데모를 하는 거 보면 이해가 안 가고 왜 싸움만 하느냐고 했어요. 근데 우리가 당하고 나니까 이해가 가는 거야. 오죽하면 싸우겠어요. 김진숙, 고공 농성 같은 거, 그것도 이젠 우리 다 이해해요. 몰랐을 땐 왜 저러나 했는데 지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금옥 씨는 둘레에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 말만은 꼭 써 달라고 했다.

  “김여진 씨와 ‘날라리 외부 세력’의 도움과 도와주는 단체들이 없었다면 우린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좌절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당신들이 정당하다. 이길 거니까 힘내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나서 싸울 힘이 생겼죠. ‘이길 거니까 힘내’라는 말이 너무 고맙고…….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을 거예요.”

글_안건모 

posted by 작은책
2011. 10. 13. 13:12 태복빌딩 꼭대기

택배가 왔습니다. 경북 군위의 이점도 독자님이 보내셨네요.
뭘까 궁금해하면서 뜯어보니

 
과자였습니다! 

맛있어서 뜯자마자 한 통을 다 먹었습니다.
마감기간에 아주 소중한 간식이 될 거 같아요.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1. 10. 7. 10:37 둘레/글쓰기 모임

제주 글쓰기 모임

- 다음 모임은 언제? _ 10월 12일(수) 늦은 7시 (다달이 둘째 수요일)
- 어디서? _ 제주시청 근처 견우빌딩 6층 '한내 제주' 

창원 독자 모임
- 다음 모임은 언제? _ 10월 12일(수) 늦은 7시 (다달이 둘째 수요일)
- 어디서? _ 창원시 중앙동 101-1 경남오피스텔 203호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울 글쓰기 모임
- 다음 모임은 언제? 10월 15일(토) 늦은 4시(다달이 셋째 토요일)
- 어디서? _ 작은책 사무실(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충남 글쓰기 모임
- 다음 모임은 언제? _ 10월 18일(화) 늦은 7시(다달이 셋째 화요일)
어디서? _ 북카페 ‘다락’(아산시 온양중학교 정문 근처)
인터넷 카페 주소는? _ cafe.daum.net/withthepeople

부산 글쓰기 모임
- 다음 모임은 언제? _ 10월 19일(수) 늦은 7시(다달이 셋째 수요일)
어디서? _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지하철 2호선 가야역 2번 출구)
인터넷 카페 주소는? _ cafe.daum.net/gosbook 
posted by 작은책
2011. 10. 7. 10:20 기획 특집


사진들은 위에서부터 시간순입니다.
촬영은 '땅의사람'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1. 9. 22. 10:25 태복빌딩 꼭대기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죠?
강연에 오신 분들과 함께 맛있는 칼국수와 전을 먹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강연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열강 중이신 안건모 대표님.

이날 스물 다섯분이 강연을 들으러 오셨는데, 그 중에서 열두 분이 정기구독을 신청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독자님들과의 인연, 소중히 하겠습니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