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7년 10월호
특집 _ 채효정 지상강좌
저항에서 투항으로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안녕하세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해고된 강사이자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채효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시민운동의 변천사와 지금 현재 부딪쳐 있는 장벽, 어려움, 그런 것들을 같은 지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도 마을에서 공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실 것이다, 거기 맞춰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지금 새날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제가 판단하는 정세는 그렇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회 전반적, 국제 정치적인 질서에서 마찬가지로 보수 우경화 친좌파 형태의 후퇴, 근대 사회와 근대적 기회가 만들어 냈던 인간성, 자유주의 그런 정도도 지켜 내지 못하는 정도로 여러 공동체에서도 붕괴되고 해체되어 가고 있는 징후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에서 누가 됐죠, 트럼프. 프랑스는 마크롱. 실제 자본가를 대표하는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으로 대통령이 됐어요. 영국의 브렉시트라든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언제요? 작년 촛불,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이건 뭐지. 이 반도에서 다시 물꼬가 터질 건가? 변방에서부터 물꼬가 터지듯이 다시 한 번. 그렇지, 이 극동이라고 불렸던 여기가 그런 곳이 될 것인가. 우리한테 불씨가 안 죽고 남아 있었던 것인가 촛불이 시작될 때 그렇게 느꼈어요.
사회적으로 촛불을 규정하고 정리하는 경향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다들 이 대사건 앞에서 엄청 흥분하고 엄청 도취되어서, 사회학자, 정치학자, 문인들, 시민사회 명망가들이 모두 이 현상을 두고 “새로운 시민정신이 나타났다”, “촛불 혁명이다” 라고 하면서 스스로 고취·고양되고 촛불에 대한 해석도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시민의 승리라는 도식으로 되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들뜬 분위기가 가면 갈수록 더 서늘해지는 거예요.
대통령 탄핵하고 권좌에서 끌어낸 것은 대단한 사건이긴 하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탄핵은 정말로 촛불의 승리였는가. 탄핵은 됐지만, 그 판결 내용은 정말 보수적이었어요. 대통령 탄핵 사유 중에서 헌재가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대통령이 기업의 영업 행위를 방해했다는 것이었죠. 철저히 재벌 편에서 대통령을 자격이 없다고 직무 정지시킨 거예요.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하에서 눈치 보면서 반노동적·반민주적 판결을 해 왔던 사람들, 이를테면 통진당 해산 판결의 주역이었던 이정미 대법관이 갑자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법조인이 되고, 그런 법조인들이 아침 방송에 나와서 세련되고 온화한 말투로 대통령 박근혜의 위법 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주니까, 그들이 혁명의 조력자가 되고.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거대한 상징이 만들어지고, 시민혁명의 주인공이 되고, 우리도 그 주인공의 한 명인 양 도취되어 가면서, 마치 역사가 영화가 되고 다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거 같았죠. 사실 촛불은 처음에 시작될 때가 제일 흥분되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시민이 없다고, 시민운동 다 죽었다고 그랬잖아요. 이 촛불 시민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전에 우리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뭐였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건가. 이렇게 많았는데 그동안 시민운동은 왜 주체를 못 찾았어?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그 디딤돌을 딛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건데, 우리는 그냥 100만 명에 놀랐어요. 촛불 시민, 백만의 힘.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밖에 없고, 새로운 주체다 새로운 시위 문화다 하면서 피상적인 이야기밖에 없고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백만 명을 모을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해서 이런 백만 명이 나와서 그런 일들을 함께했고, 그런데 그 전까지는 왜 없었고, 보이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이제 하나하나 규명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 그런데 그 백만 명이 지금 어딨어요? 그 백만 명의 시민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었다면 촛불 이후에 시민운동의 제2의 전성기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중에 만 명이라도 단체 회원이 되었나요? 노동조합의 조합원 가입자는 늘어났나요? 정당에는 당원들이 모여들고 있나요? 학생회는 다시 조직되고 있나요? 아니면 기층에서 뭔가 작은 운동들의 흐름이 포착되고 있나요? 아니라는 거죠. 아까 저기 활동 오래 하신 분께 물어보니 도리어 기존 회원도 빠져나가고 있다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위기와 좌초라는 진단을 가지고 함께 고민을 나눠 보려고 해요. 지금의 시민운동의 좌초 혹은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살펴보려고 해요.
저는 세 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 노동 없는 시민운동.
□ 시민 없는 시민운동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뭐냐. 어떻게 이해하세요? 그동안 우리가 말해 왔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쉽게 말해서 회원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였어요. 대표하고 활동가만의 조직. 시민이 없으니까 활동가가 운동하고 대표가 운동을 하는 거죠.
그것도 문제는 문제인데 저는 촛불을 경험하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장을 해석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백만 명이 모였을 때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한, 정치적 존재로서의 시민이었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오’예요. 왜냐면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건 항상 ‘집합적 주체’거든요, 개인이 아니라. 그런데 촛불 시민은 개인-시민, 모래알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었던 거였어요. 그게 아무리 백만 사람이라고 해도, 그러면 힘이 없죠.
그러니까 촛불이 끝나자마자 다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졌던 거예요. 야구장의 군중과 정치 집회의 시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화에 있어요. 정치 세력화라고도 할 수 있고요. 정치적 세력으로서 조직화를 못하면 힘이 없어요. 개인은 협상력이 없어요.
이렇게 정권을 바꿔 낸 것은 뭉쳐서 협상한 거잖아요. 협상 단위는 없었지만 어쨌든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죠. 다음 단계로 조직화를 해냈어야 되는데, 무수히 많은 정당 가입원이 생겼어야 했고, 단체들이 막 또 생겼어야 했어요.
1987년하고 2017년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해요. 1987년과 2017년을 되게 비슷하게 대입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혀 달라요. 1987년 끝나고 나서 뭐가 생겼어요. 전노협, 전대협, 전농, 전교조가 생겼고 그다음 오늘 같은 이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운동의 산물들로 생겨났단 말이에요. 그런데 촛불은 그게 없어요. 오히려 조직을 해체해 버렸어요. 촛불 과정에서도 조직이나 단체는 계속 거부되는 그런 모습이 보였죠. ‘조직’은 곧 ‘지도부’, ‘낡은 방식’. 이상하게 이런 도식이 나타나서 ‘우리 뭉치자’가 아니라 ‘뭉치지 말자’가 광장의 정신인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나는 내가 대표한다” 그렇게. 촛불이 하나의 조직으로 대표되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요, 다양한 정치적 흐름들을 세력으로서 결집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야 제도 권력과의 ‘협상력’이란 게 생기거든요. 그런데 시민 권력을 못 만들어 내요. 만약 제도권과 다른 운동으로서의 정치 전체 흐름과 물결과 힘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이후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예요. 제가 주장했던 거는 이중 권력 체제가 필요하다는 거였거든요. 제도 정치로 몰빵하지 말고 견인하고 강제하고 협상할 수 있는 제도권 밖에 어떤 시민 의회 같은 시민 권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건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촛불 광장은 제도화한 시민운동의 질서조차도 허물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그 정치적 상상력이 막혀서 못 나가더라고요. 참 아깝지요.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 운동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운동은 자기 역사를 갖잖아요. 아주 조용하게 몇 명이 시작해서 조금씩 키워 나가고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가 그러면서 발자국을 남겨 나가요. <작은책>도 그렇고, 지금 강의하고 있는 <사람과 공감>도 그렇고, 문 닫았지만(웃음) <학벌없는사회>도 그렇고, 10년, 20년의 자기 역사를 가지는 게 운동이거든요. 지금 시민운동은 그런 게 없이 일회성 사업에 매몰돼 있어요. 사업 끝나고 사업과 사업 사이에 자기 발전의 경로를 가지느냐, 그게 아닌 거예요. 시민운동을 해야 할 단체들이 운동은 못하고 사업만 하고 있잖아요.
대학도 마찬가지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무슨 사업? ‘교육 사업’을 하고, ‘연구 사업’을 하지요. 한국연구재단 지원 공모사업에 연구 신청서 내고 교육 사업 계획서 내고 해서 지원금 따내는 게 목표가 되어 버렸어요. 연구와 교육이 지원금을 따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지금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금 이런 우리 운동 방식이 과연 맞는 운동 방식이냐, 이게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봐야 해요. 이 ‘사업의 정신’이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공모 사업! 공모 사업이라는 덫에 빠져서 운동 단체들이 심각할 정도로 자생력과 자율성이 훼손당해 왔어요. 이런 방식의 시민단체 지원 사업이 언제부터 시작된 거냐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예요. 시민사회를 지원하고 활성화하겠다는 목표였죠. 엄청나게 많은 지원금이 흘러 들어와요. 문제는 이 돈을 물고 나면, 이제 정면 비판을 못하는 거예요. 게다가 공모 사업에선 누가 갑입니까? 발주처인 정부, 지자체, 기업이 갑이고 시민운동 단체들이 을이에요. 여기에 맞게끔 운동이 조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누가 주도권을 가져요? 국가와 자본이.
우리 마을에서 마을책 만들기 하고 있거든요. 준비 모임을 하는데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 온 것에 익숙해져서 모임 할 때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꼭 예산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보를 들고 와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면 거기에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애초에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것들은 못하게 돼요. 우리가 운동가, 활동가가 아니고 뭐가 되냐면, 서류 작업하는 공무원 에이전트가 되는 거예요.
시골의 마을 만들기도 실은 지자체에서 나서서 해야 하죠. 마을을 살려야 하니까요. 살던 사람은 떠나고,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그러면 농촌 마을이 왜 이렇게 황폐해졌는가, 왜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가를 알아보고 그걸 가지고 그 원인에 맞게끔 정책을 수립하고 마을을 재건해야 되는데 그걸 다 외부 기관에 정책 용역을 주거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온 동네가 마을, 리, 단위로 공모해서 사업 따오게 만들어요. 그럼 그때부터 농촌 공동체가 망가지는 거예요. 자급, 자치, 자립이 생명인데, 돈이 들어오면 다툼이 생기고 돈 쓰는 것 갖고 말 나고, 지원 사업 잘하는 마을하고 역량이 안 되는 옆 마을하고 비교하고, 잘 나가는 마을은 계속 잘 나가고, 못하는 마을은 계속 못하고 격차가 벌어지고 그래요. 우리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시길, 그런 돈 500만 원만 들어와도 동네가 망가진다고 하시던데요. 어떠세요? 그 마을하고, 우리 마을하고, 또 내가 일하는 단체하고,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대학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할 때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도 하다 보면 활동이 주(主)가 아니라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게 일이 돼요. 기획서에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나죠. 나중에는 사고방식이 그렇게 돼요. 아, 이건 보고서 어떻게 들어가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보고서에 넣을 사진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첫해에 7천만 원 받았고 두 번째 해에는 전년도에 잘해서 9천만 원. 제가 학벌없는사회 사무국장을 할 때도 그런 단위의 사업비를 만져 본 적이 없는데(웃음) 제 머리로 도저히 돈을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돈을 쓰려니까 일이 엄청나게 많아져요. 증빙이 다 활동 경비니까. 죽어나는 거죠. 그러다 3년 차에 지원에서 떨어졌어요.
지원 사업 떨어지니까 학벌없는사회와 공동 기획자로 참가했던 경희대는 한 푼도 지원 안 해주겠다는 거예요. 인문 사회 한국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칭송하고 학교 홍보물에도 싣고 하다가 지원 사업 안 되니까 완전 찬밥이 됐어요. 저도 갑자기 연구원에서 빵 원짜리가 됐어요. 7, 9천만 원짜리 따 오는 연구원이었던 제가 빵 원짜리가 된 거예요.
그럼 어떡하죠? 그런 방식으로는 이제 못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에 대한 다른 상상력이 그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강좌 중심이 아닌 거리의 청소년과 만남 중심의 학교 밖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이었고, 그게 ‘떡볶이 학교’였어요. 예산 얼마였게요? 딱 오백만 원. 그런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건 더 자유롭게 많이 했어요. 전에는 평가 때문에 항상 청중이 일정 규모가 있어야 하고, 그게 가능한 안정적인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이제 그런 부담이 없어지니까 ‘아, 되든 안 되든 밑져야 본전이지! 한 명 오면 뭐 적지만, 열 명 오면 기쁘고, 까짓 아무도 안 오면 우리끼리 나눠 먹으면 되지’ 하고 떡볶이 학교를 은평 물빛공원에서 했어요. 그때 되게 재미있게 잘했어요. 평가라는 제한과 관료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이 없어지니까. 공모 사업 서류 작업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사람 버려요. 운동가 체질이 아니라 행정가 체질로 바뀌어 버려요. 우리의 시민운동도 지금 스스로의 ‘운동성’을 거세해 나간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사람이잖아요. 같이할 수 있는 사람. 운동은 주체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이게 아까 얘기했던 조직화이기도 하고 세력화이기도 한데요, 근데 그 힘이 어떻게 생겨요? 사업하고 회비 내고 그런 데서 생기지 않거든요. 같이 일을 하면 생기는 거예요. 산전수전 같이 겪으면서 동지가 되고, 둥지가 되고, 서로 삶을 지켜 주고, 운동의 의지를 지켜 나가는. 거기서 힘이 생기는 건데, 공모 사업은 그게 아니잖아요? 사업을 해야 되니까 돈이 중심이 돼요. 이 공모사업이 중심이 되니까 부작용이 뭐냐면, 원래 시민운동에서 회원 조직화 운동이 제일 중요한데 이게 부차적으로 되어 버렸어요. 사업할 수 있는 멤버가 중심이 되고요. 회원들은 시민의식, 시민 참여를 마치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상품 소비와 같은 심성이 생겨나요. 왜 ?
나 회비 내고 있어. 그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걸로 자족감과 만족감을 느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회비 내는 거는 가장 기초적인 회원의 의무이자 권리죠. 그보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장이 되고 각자가 각자의 수준에서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데, 회원들이 단체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대상화. 더 나쁜 말로 하면 ‘호구’가 되기도 해요. 공모사업 해서 우리 단체는 이런 거 했어요. 그래 놓고 상 받았어요, 신문에 났어요, 메일 보내 주면 회원들이 만족감을 느껴요.
근데 상품이란 건 그렇잖아요. 효용이 떨어지면 만족도가 떨어지고, 취향이 바뀌면 새로운 상품으로 바꾸잖아요. 맘에 안 들면 단체 후원 끊고 맘에 끌리는 다른 모임으로 갈아타고. 그건 아니잖아요. 실패도 성취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 함께 성장해 가는 관계. 그게 단체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요즘 시민 활동가들의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이야기를 보면 활동가는 죽도록 소진되고, 회원들과 단체의 관계는 계좌 이체 통장에서만 확인될 뿐이고. 사업비 타면 그 사업비로 인건비 책정하고 사업 탈락하면 활동가도 함께 아웃되는 방식, 사업이 되면 되는 대로 안으로 활동가는 죽어나고, 운동성은 계속 사라지는 방식. 이제 이 방식으로는 정말 안 됩니다. 그 핵심에 ‘공모 사업’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발주처 갑질에 계속 끌려다니지 말고 ‘그 갑이 착한 갑이라도’ 이걸 어떻게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정말 좀 터놓고 얘길 해봐야 해요.
□ 노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로 ‘노동 없는 시민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1987년 운동도 그렇고 이번 촛불도 마찬가지예요. 투쟁의 불씨는 현장에서 지속적 투쟁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냈지, 진보 엘리트들의 성과가 아니거든요. 시민단체 명망가들도 아니고 생존권 투쟁을 해 온 사람들이에요. 이 체제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살 수가 없어서 사장한테 반말 듣고 임금 체불당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각자 자기 사업장 안에서 자기 학교에서 부당 해고 당하면서 투쟁해 왔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싸워 왔기 때문에 그게 역사의 분기점에서 확 점화되면서 1987년도 생겨났고 2017년 촛불도 생겨났던 거거든요. 그런데 외곽, 외연이었던 시민, 시민운동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었어요. 노동자들은 희생자, 피해자, 소수, 약자로 주변화되었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운동, 시민운동은 화이트칼라 운동이었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현장 운동을 엄호하고 지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위상을 가졌거든요. 항상 꿀렸어요. 어떤 사람들한테? 노동계급한테요. 빨간 조끼 입고 작업복 입은 사람들한테 와이셔츠 입은 사람들이 꿀려요. 왜 꿀리냐, 괜히 꿀려요. (청중 웃음) 계급적으로도 꿀리고, 확실한 노동계급이 아닌 자기가 훨씬 더 지배계급과 더 결탁돼 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지금은 그걸 자기 한계가 아니라 자기 자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변호사, 내가 교수인 것이 노동자계급을 훨씬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고 훨씬 더 유리한 지위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나서지는 못해도 양심 있는 교수다, 의사다, 변호사다, 잘 나간다 하면 그냥 뒤에서 돈 대 주고, 옆에서 박수쳐 주는 사람들이었던 중산층 전문직들이 이제 지도를 하기 시작해요. 상황이 완전히 전도돼서 전체 운동 사회, 변혁 운동의 지도 세력이 이 집단이 된 거예요. 엘리트 집단, 교수, 변호사 이런 사람들이 시민의 대표 지위를 갖게 된 거예요. 여기서 질문.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의사 있습니까? (청중 웃음, 그 자리에 의사가 있었다 - 편집자 주) 변호사 있습니까? 대학 교수는요? 대체 언제부터 그 직업군이 전체 일반 시민들을 대표하는 직업군이 됐는지 물어봐야 되는데 이것도 거버넌스나 공모사업하고 연결되어 있죠.
단체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모객 행위에 도움이 되는 순간에 명망가가 중요해져요. 활동가가 아니라 유명한 한 사람이 텔레비전, 신문에 한 번 나와서 단체 이름 알려 주는 게 실제 현장 활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고, 그런 영향력이 커질수록 단체 안에서도 그 사람의 권력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민사회 안에서 계급 양극화가 일어나죠. 시민운동을 자기 자본화할 수 있는 활동가와 노동으로 소진되는 활동가로.
이런 과정에 사회 전체의 계급론적인 변화도 있지요. 예전에는 계급 구도가 단순하잖아요. 마르크스 책을 봐도 노동자계급, 자본가계급 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그런데 중간층이 양극화되면서 월급 받는 임노동자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일체화된 집단이 생겨나요. 그걸 신중간 계급이라고도 하고 관리자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사실상 자본의 마름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죠.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 임노동자고, 월 매출 삼백도 안 되는 영세 자영업자는 사장이고, 그럼 이상하죠? 그러니까 형식적으로 계급을 대입하지 말고 실제 계급 구조, 즉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권력의 관계를 놓고 봐야죠.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사회가 양극화되는데, 중간계급도 그런 양상을 보입니다. 화이트칼라 고용도 계속 불안정해지고 비정규직화되니까, 한편으로는 중간계급 하층부가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반면 상층계급은 부와 특권을 보장해 주면서 전체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관리·통제하는 그룹으로 편입되죠. 일례로 교수 사회의 양극화, 위계화가 대표적이에요. 똑같이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억대 연봉의 교수와 연봉 오백이 안 되는 강사로 나뉘고, 분리해서 차별하고, 동료 교수가 다른 동료 교수를 착취하게 만드는 그런 방식. 그래서 제일 아랫단에 있는 강사는 어쨌든 위로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기를 쓰고 위에 있는 교수는 아래쪽에 있는 강사들에게 갑질하고. 자기가 주인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질 수 있을까요? 노동자를 대변하고 전태일의 친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타락한 집단들, 자본에 회유된 집단들,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이 항상 사회 담론을 생산해 내고, 사회적 의제를 정하고 관점을 제시한단 말입니다. 언론은 또 그 사람들 말만 따서 인터뷰하고, 줄창 실어 나르는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고요. 문제는 그들이 누구의 입장에 서서 말하느냐인데, 결코 노동자 편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노동자를 위하는’ 말은 해도 ‘노동자로서’, ‘노동의 관점에서’ 함께 서 있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 친자본 반노동 사상과 이론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보수 진보 구분이 없어요. 오히려 보수 인사는 아, 저거 완전 반노동적인 생각이다, 하는 게 딱 보이는데, 더 문제는 진보인 척하는 전문가, 지식인들이에요. 내용은 되게 친자본, 반노동적인데 말은 그럴듯하게 노동자 편인 척하니까요. 노동자들이 어려울 땐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허용된 비판만 하고, 보수든 진보든 사실상 ‘담론 공동체’를 만들어서 계속 서로의 문화 권력, 상징 권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하죠. ‘썰전’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그래요.
그런데 시민운동이 이런 담론의 흐름에 또 굉장히 민감해요.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왜 ‘사회주의 담론’은 금지하면서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그렇게 다들 좋아하는지. 기본 소득론이나 4차 산업 혁명론 같은 미래 담론, 혁신 담론, 기업가 정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자본주의 정신. 이런 용어나 담론이 나오면 그냥 훅 쏠려서 가요. 왜 민주적 관리 운영이라고 안 하고 꼭 알아듣지도 못할 거버넌스니 협치니 그런 말을 쓰는 거예요? 그런 단어, 개념 속에서 사실상 노동의 관점은 해체되고 있는데, 그걸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아요. 왜냐, 자기도 좋거든요. 부담스러운 민중, 계급, 노동자, 이런 말보다, 두루뭉술하게 사회적인 게 좋고, 두루뭉술하게 협치하자는 게 좋고.
부르디외는 이 중간계급의 특징을 이렇게 말해요. 소속 계급이 없기 때문에 되게 기회주의적인 계층이라고. 이들은 자기의 상층계급에 대해서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하층민에 대해서는 문화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개의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집단이에요.
정확한 거 같아요. 도덕적 우월감. 나는 자본가들보다 가난하지만, 내 취향만은 더 귀족적이다. 인문주의적 시민들의 자기만족감은 체제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투항하는 중요한 근거예요. 사장님도 회장님도 대통령님도 인문학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금 인문학은 너무 좋은 중산층의 통치 수단이 됐어요.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지금 이들의 문화가 지배적이죠. 그러니 운동 방식도 이 사람들이 하기 좋은 시민운동 방식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상품 구매가 운동이 되는 거. 배지 사고, 가방 사고, 옷 사고, 공정 무역 커피 마시고. 그걸 굿즈(goods)라고 하는데, 요즘 보면 좀 과도한 거 같아요. 재정 마련을 위해서 단체도 그런 홍보 상품 제작을 많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어야지, 그게 주가 되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요새 청년 창업 아이템 보면 대부분이 다 ‘좋은 의미를 가진 물건 팔기’예요. 농부를 돕는 물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물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물건, 전쟁을 반대하는 물건. 물건은 곧 상품이죠.
그러면서 유럽에서 들어온 담론을 좋아하고, 그런 유행을 쫓아가고, 사실 그게 다 서구 사회 백인 중산층 신중간 계급이 만들어 낸 건데, 그걸 따라가고, 자꾸만 거기서 대안을 찾고 하면서 시민사회의 담론과 실천이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요. 구매력 있는 인문적 소양을 갖춘 교양 시민들의 소셜 클럽처럼 되어 가는 거죠. 그렇지 않은 단체들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예요.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 내고 그걸 사회적 의제로 만들려는 언론, 잡지, 매체들도 찾아보기 힘들고요. 촛불 광장이든, 마을이든, 마르쉐든, 어디든, 다들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한테 맞는 방식으로 하는 거예요. 현장 투쟁, 직접 행동보다는, 안전한 장소에서 포럼하고, 세미나하고, 맨날 무슨 인문 교육 사업하고, 세련된 거 좋아하고, 공간도 점점 중산층 취향을 반영하고, 집회 양식도 죄다 문화제 양식으로 바뀌고요. 집회 때 부르는 노래만 해도 그렇죠. 레미제라블 오페라를 누가 얼마나 봤다고, 그게 촛불 집회 주제가가 되니, 그 노래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하고 못 따라 부르는 사람 사이에 계급의 분할선이 확연히 그어지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방법은 점점 촌스럽게 보이고, 말하는 방식도 싫고, 옷차림도 거부감이 들고, 사실 촛불 광장도 그런 식으로 중산층의 도덕과 윤리, 미학이 압도했죠. 시민운동 전반에서 감지되는 현상이에요. 사실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탈정치화된 일종의 문화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되는 경향. 그런데 그 문화가 노동자문화는 아닌 거죠. 핀란드니 덴마크니 하면서 좋은 사회라고 맨날 가져오는 사례가, 다 서구 백인 지배계급의 중산층 문화인데, 그걸 ‘진보’라고 하니. 대외적으로 노조나 노동현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과의 연대 고리가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단체 안에서도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죠. 그러니 지금 인문학이 신종 문화 통치술처럼 활용되고 있고, 서구 중산층 문화가 마치 진보이자 대안처럼 유입되는 이 상황에 뭔가 제동을 걸어야 해요.
이거는 변절은 아니고, 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의 질서와 소비문화에 동화되고 대안도 자본주의 사회 체제 내에서 찾으려는 것이거든요. 교양 시민들이 보기에는 그냥 ‘한국’이 싫고 구질구질한 거예요. 북유럽 시민들처럼 살고 싶은 건데, 그게 투항이죠.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가 되고, 운동권이 뉴라이트가 되는 건 변절이지만, 좀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건 투항이죠. 그래서 촛불을 주도한 집단들도, 안전하고 질서 있는 퇴각으로 혁명의 경로를 유인한 사람들도, 실은 체제를 전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왜냐? 다들 이 사회에서 제 몫이 있으니까. 이번 달에도 월급 나오고, 다음 달에는 상여금 나오고, 그 다음 달에는 휴가니까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애들한테 학원비 쓰면서 명문 대학 보내려고 하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좀 있고, 자기가 없으면 부모한테 물려받을 거라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 혁명이란 게 하고 싶을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적 인사가 되어서 지금 목에 밧줄 걸어 놓고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하죠. 운동이 될 리가 없죠. 그들만의 세계예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여기도 트럼프가 와요. 미국의 노동계급이 민주당을 워싱턴과 뉴욕의 부자들이라고 여기면서, 그들이 자기의 지지 세력을 철저히 배반했다고 생각하면서 트럼프가 나온 거거든요. 똑똑한 척 도덕적인 척 다 하면서 실제로는 똑같은 부자인 힐러리한테는 죽어도 표를 주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지난 미국 선거는 하층계급, 노동계급의 이탈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중산층 진보 그룹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과 이탈의 결과라고 봐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정권 다음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오면 안 되지 않겠어요? 민주당이 원래 진보정당이 아니라도 촛불에 의해 탄생했으니 개혁적 정책을 하라고,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고,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시민사회가 이 정부를 엄호하고 있는 형국이에요. 다들 새 정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지역에서 마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씩 맡아서 정부로 들어가고.
사실 기층, 변방의 운동가들과 역량들이 중앙으로 계속 빨려들어가는 방식으로 오면서 풀뿌리 운동이어야 할 시민운동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말라 버리게 된 것이 지금 시민운동의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서울시가 대표적인 곳이고요. 뭔가 시민사회 인프라도 되게 잘되어 있고,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새로운 시민운동의 의제가 나오면 앞서서 실현하고, 그래서 열악한 풍토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민운동의 전시장, 쇼룸 같은 곳이지만, 저는 서울의 운동 풍토가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까지 말했던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말이죠.
그런데 선거에서 지지표도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들이 제대로 건강하게 분출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억눌리면 그 힘이 엉뚱한 곳으로 터져 나와요. 지금 혐오의 정치, 팬덤 정치도 그런 징후라고 볼 수 있는데, 억눌린 힘들이 억압자를 향한 증오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를 향해서 발산되고, 사회적 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까 정치는 계속 이미지만 생산하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계속 상징 정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 지금 팬덤 정치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팬덤은 전형적으로 정치를 일종의 문화적 소비재로 보는 것이죠. 그러니 정치는 계속 쇼가 되고, 쇼가 중요해지면, 그 쇼의 기획 연출자가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는 거죠. 청와대는 이 정치 쇼의 유능한 기획 연출자인 탁현민을 놓아 줄 수 없겠죠. 이런 방식은 시민사회,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보여 주는 활동, 가시화된 사업 성과가 중요해지면 역시 그 기획자가 중요해지는 거고, 그걸 토대로 다음 사업비가 나오니까 계속 운동이 쇼처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맨날 ‘상상력’만 이야기 하잖아요. 진짜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을 갖자고, 꿈만 꾸자는 얘기예요.
□ 투항과 변절
시민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1990년대가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분기점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이 시대를 규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지금 현재 시민사회의 등장은 1987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1989년에 경실련이 생겼고, 뒤이어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조직체들이 생겨났어요. 그러면서 바뀝니다. 운동의 주어가 바뀌어요. ‘노동자·민중’에서 ‘시민’으로. 그건 주체,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뜻이죠. 시민은 사실 탈계급적이고, 그런 점에서 탈정치적이기도 한 개념이죠. 원래 경실련은 처음부터 개량주의적 운동을 내걸었던 단체였어요. 개량주의 운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개량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전체의 한계 혹은 불가능성으로 설정해 버리는 거예요. 가장 높은 수위의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봉쇄하고 시작하면 그걸 넘어가려는 모든 운동들이 부정되니까요. 그리고 이후에 민교협, 민변 같은 단체가 조직되고,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면서 운동 사회 내에서 전문가 엘리트 집단들이 힘을 가지게 돼요. 협상을 하든 협치를 하든 뭐를 알아야 하니까. 협상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과는 다르죠. 전문적 지식도 있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입말과 현장 용어에 능한 사람보다 정돈된 개념어와 논리에 강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경실련의 경제 전문가, 참여연대의 입법 전문가, 환경운동연합의 환경 전문가 등, 과거 사회운동에서 측면에 있거나 후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중심부, 전방에 서게 되는 거예요. 전체 운동의 지도부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이 운동의 중심 변동이 전체 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점점 중산층 취향의 운동과 담론으로 중심 의제가 바뀌고 쟁점을 만들어 내는 핵심 개념어들도 혼란스러워졌어요. 왜 20대 실업자 문제, 20대 구직자 문제, 20대 빈곤층 문제, 20대 주거난, 10대의 참정권 문제라고 하지 않고 전부 다 퉁쳐서 ‘청년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씀드린 대로 전문가·명망가 중심의 엘리트 운동이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 생겨났던 거예요. 저는 청년의 대안으로 청년 기업가니 욜로족이니 힙스터니 하는 말을 들으면 막 현기증이 나요. 정치적 경제적 대안이 아니라 문화적 대안밖에 찾지 않는구나. 그런데 중요한 건 시민이 주어가 되고, 개량적 대안으로 사회를 개선해 나가려는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집단이 되었던 이 시기가 한편으로는 노동이 계속해서 조직적으로 탄압당하고, 노동운동이 위축되고, 노조가 분쇄되고 있었던 시기라는 거예요. 시민운동이 만개할 때 노동운동, 민중계급은 와해되고 있었죠. 이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투항! 1990년대는 투항의 시대였다고 저는 정의해요. 세계적으로는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비판이라는 담론이 유행하고 막 몰아닥쳐요. 당시 핵심 단어가 ‘해체’였는데, 해체주의 철학이 가진 전복적 가능성과 별개로 우리의 삶은 그때 그야말로 해체당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몰랐어요. 투항은 변절과는 좀 다른 거죠. 뭐가 더 나쁜 거 같아요? (변절요!) 글쎄 그럴까요? (웃음) 변절이 더 나쁜 거 같죠? 네, 나쁘긴 하죠. 근데 변절은 확실하게 보이잖아요.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나쁜 놈인 줄 다 알죠. 근데 투항은 참 복잡미묘한 거예요. 자기도 모르고 남도 잘 모르고. 게다가 투항은 저항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어요. 어떤 저항? 새로운 저항. 어떤 운동? 새로운 운동. 어떤 진보? 새로운 진보. 이를테면 그렇게요. 뉴(new), 신(新) 자가 마법인 것 같아요. 유럽의 신좌파, 신노동당처럼. 지금 우리는 아예 ‘혁신’ 그 자체를 말하고 있죠.
시민운동은 저항 속에서 성장하고 탄생했어요. 무엇에 저항했어요? 폭압적 국가권력, 독재자,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어요. 지난 겨울까지도 우리는 그런 집단에게는 투항하지 않았어요. 촛불 광장에서도 보면 그 마음은 확고했지요. 그런데 투항은 어디로 했냐하면 시장으로 투항했다고 생각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반독재’, ‘민주-반민주’라는 정치적 세력 구도가 ‘자본-반자본’이라는 세력 구도로 넘어가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서 선명했던 계급 간의 정치적 구도, 대적성이 사라지고 차이와 정체성의 정치로 넘어가게 되죠. ‘노동 대 반노동’ 또는 ‘자본 대 반자본’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시민 대 시민’으로 되어 버린 거죠. 다대다(多對多)의 전선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투항이 안 보이죠. 그렇게 되는 순간 이제 정치는 ‘취향의 정치’로, 각자의 이해와 이익들이 경합하는 장으로 가는 거죠.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양상을 보이는 ‘혐오의 정치’는 실은 이 ‘취향의 정치’의 뒷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운동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저 ‘세 가지 없음’ 속에 어쩌면 답이 있지 않을까요? 시민을 다시 찾아야겠죠. 그리고 운동성을 되찾아야겠죠. 마지막으로 노동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노동권 없이 시민권 없다는 생각으로요. 노동권이 시민권을 담보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요. 중산층 중간계급 말고 더 아래로, 더 가난한 곳으로, 더 주변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원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거기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서 주민들을 만나 나가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사업 중심이 아니라 운동 중심의 단체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리고 변절보다 투항을 조심하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언젠가 세상이 제대로 서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잃지 말자.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제 말에 해방이 절대 안 올 것 같았어도 왔잖아요. 박근혜 정권이 차기 차차기까지 집권 연장할 것 같았지만 지금 감옥에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줄지 모릅니다. 때를 기다리며, 다시 처음으로, 기층으로 돌아가서 운동을 다시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