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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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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 통학 셔틀버스 기사 

 

도망치듯 운전하고 싶지 않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침 730, 어느 중학교 등교 시간. 15인승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백용진 씨(가명)가 여느 때처럼 학생 십여 명을 학교 앞에 막 내려 주었을 때였다. 명찰을 단 사람이 백 씨의 차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서울시 교통지도과에서 나온 단속반입니다.”

20155월 서울시는 현행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을 근거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백 씨는 잠복해 있던 단속반에 걸려 6개월 운행정지 처분을 받고 100만 원가량의 범칙금을 냈다. 왜 노란 셔틀버스는 불법인가? 또 왜 백 씨는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사정을 들어 보았다.

 서울의 한 학원 앞에 정차 중인 셔틀버스들 작은책(정인열)


2015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시설장이 소유한 26인승 이상 차량만 통학버스로 허용됐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영세한 학원이나 어린이집은 좁은 골목을 다닐 수 있는 소형 승합차를 소유한 지입 기사를 필요로 했고, 합법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6년 발표한 셔틀버스 기사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국 통학버스가 약 3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으며, 한국학원총연합회는 그중 약 70퍼센트가 지입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승용차 운전면허만 있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고 노동강도가 높지 않아 장년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셔틀버스 기사의 평균 연령은 60.8.

백 씨도 여기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다. 현재 백 씨의 고정 일감은 전국 지점까지 갖춘 A학원이다. 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백 씨는 2005년 차량값 1000만 원에 권리금 300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구입했다. 오후 430분부터 1030분까지 일하고 받는 용역비는 월 170만 원. 여기서 연료비, 보험료, 수리비 등을 빼고 남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다.

한 가지 일 가지고는 도저히 생계가 안 돼요. 그래서 땜빵을 계속 찾아서 하는 거죠.”

비고정 일감을 현장에서는 땜빵또는 쪽탕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셔틀버스 기사 역시 사정은 비슷해 두세 가지 쪽탕을 뛴다. 백 씨는 중학교 등교 차량과 유치원, 수학학원 등 세 가지를 더 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해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다. 비는 시간에는 주차 단속을 피해 차에서 대기한다.

 주차 단속을 피해 대기 중인 셔틀버스 작은책(정인열)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백 씨가 일하는 시간만 계산하면 하루 10~11시간. 토요일 근무까지 해서 버는 돈이 290만 원, 차량 유지비 등으로 약 70만 원을 뺀 순수입은 220만 원이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니 최저임금 수준인데,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적용도 받지 못한다.

우리는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안 돼요. 일 그만두면 퇴직금도 없이 빈손으로 나오는 거예요.”

기사들 중 절반은 불법 소개업체를 통해 일감을 구하는데, 업체는 소개비 명목으로 과다한 금액을 요구한다.

지금 하는 170만 원짜리도 첫 달은 50~60만 원 줬어요. 한 달 월급을 뜯기는 거예요.”

국토교통부는 2013년 청주에서 발생한 유아 통학차량 사망사고를 계기로 2015년 어린이 통학차량 운행 요건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9인승 이상 소형 자가용 승합차 운행을 허가하되, 13세 미만의 어린이만 운송하고 경광등과 발판 등 안전요건을 갖추고 시설장과 기사가 차량을 공동명의로 소유한 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는 조건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백 씨는 비판한다.

중학생부터는 여전히 불법이에요. 그런데 학부모들은 셔틀을 요구하고 우리도 그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시설장과 차량 지분을 공동소유하게 하는 것도 문제다. 한군데 학원에 전속해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책임은 99퍼센트 기사가 지면서 열 가지나 되는 서류를 준비해 신고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기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더 많아졌다. 유상운송 특약에 가입해야 해서 자동차 보험료가 30만 원가량 올랐고, 전체 도색 및 경광등, 발판 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느라 200만 원을 썼다.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없다. 그러니 쪽탕을 많이 뛰어야 한다. 셔틀 기사들이 불법 통학버스를 계속 운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시는 학생들의 안전을 이유로 2015년 대대적인 중고생 셔틀버스 단속에 나섰고 백 씨를 포함해 많은 기사들이 범칙금과 운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단속만 하니 사력을 다해 도망가다 사고가 나고.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당장 그만두라고 하니 어떻게 살겠어요?”

백 씨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려고 동료 기사들과 의논을 했다. 그 자리에는 1987년부터 버스 노동운동을 한 박사훈 씨도 있었다. 박 씨는 민주노총 민주버스본부장에서 물러나고 201210월부터 25인승 셔틀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찾아가려면 글귀라도 하나 만들어서 찾아가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 수 있을지를 박사훈 씨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죠.”

박 씨가 준비한 자료를 보고 동료 기사들은 감탄했다. 기사들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정책 대안까지 완벽했던 것이다. 박 씨가 버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함께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여, 2015427전국셔틀버스노동자연대’(이하 셔틀연대) 결성을 언론에 알리고 행동에 나섰다. 박 씨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은 전용차량등록제도입과 서울시 통학버스지원센터설치다. ‘전용차량등록제는 어린이에 국한된 수송을 중고생까지 확대하되 등·하원과 통학 업무만 수행토록 하고, 차주 기사를 관할 지자체에 등록해 교통안전교육등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차량 운행 및 안전 실태와 기사의 안전교육 이수 여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통학생 교통안전이 강화되고 공동 소유제로 인한 불편도 해소된다고 노조는 밝히고 있다.

통학버스지원센터는 셔틀버스를 필요로 하는 학부모나 시설이 무상으로 이용하는 제도다. 통학버스 지원 조례를 제정해 셔틀버스 사업을 공적인 지자체 사업으로 가져오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급여를 보장받게 된다. 또 소개업자들이 중간에서 착취하는 일도 사라지고 영세한 학원과 어린이집, 유치원 등도 안정적인 재정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셔틀연대 결성 이후 셔틀버스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투쟁했다. 셔틀버스 50여 대가 국회 주변을 도는 시위도 하고, 지난해 121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천막농성 및 삭발, 19일간 위원장 단식투쟁도 했다. 마침내 지난 321, 서울시와 노조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안에 통학버스지원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3월 셔틀버스 50여대가 전용차량등록제를 요구하며 국회 주변을 운행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홍정순)

 박사훈 전국셔틀버스노조 위원장은 통학버스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며 삭발과 19일 동안 단식을 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백 씨가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뒷좌석의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OO, 여기서 내려서 저 앞에 차 지나가면 길 건너가, 알았지?”

백 씨는 아이가 길을 건너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듯 운행하던 백 씨, 이제 떳떳하게 아이들 통학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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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청년으로 살아가기


강릉으로 힐링하러 온다는 당신에게

진솔아/ 강릉에 살고 있는 청년

 

 

, 힐링하고 싶어. 나 강릉 가도 돼?”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심심치 않게 받는 카톡이다. 인구 천 만이 넘는 메가시티에 살고 있는 친구의 입장에서 내가 살고 있는 강릉은 언제나 심신 치유가 가능한 시골 마을이다. 인구 21만의 도시(20185월 기준) 강릉은 주말이나 연휴엔 관광객들로 넘쳐 나는 곳이 되었다. 이젠 해송을 따라 걸어도 어릴 때 부모님과 한적하게 즐기던 바닷가의 망중한은 없다. 매주 금요일만 되면 도심 안에 자동차가 평소보다 훨씬 늘어나고 연휴라도 있는 달에는 사람에 치여 밖에 나갈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지역의 경제적인 수입이 늘어나고, 따라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고용과 창출이 늘어난다? ‘관광을 달고 있는 도시의 위정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밥 먹듯 반복하는 소리이고 지역 소시민들이 의심 없이 믿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강릉에서 내가 사랑하는 곳 중에 하나가 경포호수이다(였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석호이자 바다와 닿아 있는 그곳에 서서 대관령의 준엄한 산맥들을 바라보면 강릉에서 나고 자란 최고의 시인 난설헌과 사임당의 한()이 느껴지는 쓸쓸함이 좋았다. 호수 어디를 걷다가도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해송을 넘어 동해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도 다 지나간 감상이다. 정철이 <관동별곡>에 쓴 경포대가 있는 이곳은 오래도록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문화재와 해안지역의 생태·환경보존을 위한 각종 규제로 묶여 있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명분하에 올림픽특구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사업자들에게 개발 권한이 쥐어졌다. 각종 인·허가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행정의 폭풍 지원하에 호텔들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고 결국 누구나 볼 수 있었던 그 풍경은 하룻밤에 수십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전락했다. 호수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시야는 주변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공룡 같은 규모의 흉측한 건물로 꽉 막혔다. 속상한 마음. 나는 내가 사랑했던 호수를 그렇게 잃었다.


서울-강릉 114! 강릉에 우후죽순 늘어나는 아파트 개발업자들의 광고에 꼭 들어가는 말이다. “강릉이 올려다보는 매직 스페이스라이프, 쾌속 교통망, 명당의 자연환경!” 어느 아파트 분양 홍보책자에 쓰여 있다. 요즘 강릉에 들어서는 아파트들이 과연 시민을 위한 안정되고 쾌적한 주거공간일까? 아니, 강릉에 지어지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아파트들은 서울에 있는 사람들의 세컨드하우스다. 이런 아파트들이 4~5억을 호가해도 금방 계약이 완료된다. 업자들은 계약금 10퍼센트만 내고 가지고 있다가 가격이 올랐을 때 팔아 버려도 앉아서 수백, 수천은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 투기. 말로만 듣던 그 부동산투기의 열풍을 거리의 광고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강릉에서 학자금대출의 빚을 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청년의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될 게 없는 개발이다. 지역 정치인들은 집이 없는 사람들의 안정적인 주거 공급에는 관심이 없고 개발업자들과 골프를 함께 치며 이런 사업들을 구상했을 것이다. 옆 동네 속초 역시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투쟁 산행에 갔다가 봤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파트들. 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주민등록 인구가 겨우 8만 명 정도 되는 속초 시민들을 위한 행정일까? 속초는 지난겨울 단수까지 겪었다. 가뭄도 가뭄이었겠지만 갑자기 늘어난 객식구들을 감당하기에 벅찼기 때문이리라.

이런 일련의 변화로 나와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집값이 오른다. 물가도 오른다. 자주 가는 사랑하는 가게들과 공간을 잃는다. 그래도 자꾸자꾸 개발이 된다. 어릴 때부터 품어 온 추억이 있는 장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탈바꿈한다.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이 많은 호수의 풍경을 잃었고 교통체증을 얻었다. 물론, 어떤 가게 자영업자들은 신이 날 것이다. 서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가게들도 자꾸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 새로운 사업을 위해 유입되는 외부 인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강릉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에 가장 많은 것이 관광개발이다. 개발을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정치인들과 민간사업자들이다. 나는 진심으로 강릉이 그만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개발 속에서 지역에서 생겨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기대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생기는 일자리는 단기 아르바이트다. 아파트 분양 홍보관 같은 데서 일을 하거나 카페나 식당의 시간제 일자리 또는 리조트 청소 같은 계절적 업무들이 생겨난다. 나 역시 여름방학마다 바닷가의 고급 리조트에서 객실 청소를 했다. 물론,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기엔 불안하고 낮은 임금의 일자리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힐링하러 오겠다던 서울 친구들은 불편해한다. “그래도 관광객들이 가서 돈을 많이 쓰면 어쨌거나 지역에 좋은 거 아니야?” 나는 왜 이게 돈을 많이 내고 가니 그만 툴툴거리라는 말로 비꼬아 들릴까. 당신은 돈만 내고 가지 않는다. 쓰레기도 두고 가고, 교통체증도 두고 가고, 고성방가도 두고 간다. 관광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릉은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경제 훈풍을 타 보겠다고 더 많은 개발 사업들을 구상 중이다. 정동진의 곤돌라 사업, 중국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계획, 강릉의 해안가를 따라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와 친구들에게는 모두 끔찍한 이야기다.

posted by 작은책
2018. 5. 28. 15:11 알림 / 엮은이의 글

엮은이의 글

 

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이해서 문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보듬는 것에서 진실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정권에서 5·18 성폭행의 진상을 밝혀내고 피해자 분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다시 꾸려진다고 하지요. “역사와 진실의 온전한 복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맘 간절합니다.

6.13 지방선거가 다가옵니다. 애국 운운하고 나라와 지역을 책임질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떠들며 거리로 나온 수많은 후보들. 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는 소리 없이 나와 이웃과 지역을 보듬는 풀뿌리 민중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작은 실천, 그 힘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이달에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농민 선애진 씨입니다. 강대국에 빼앗긴 종자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우리 토종 씨앗을 살릴 방도를 찾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는 함께 모여 토종 씨앗을 공동 경작하고 씨앗 나눔을 합니다. 홍천에서는 그 중심에 선애진 씨가 있습니다. 독자님들, 선애진 씨의 일과 삶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바꿀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해 보세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으로 전 국민이 축제처럼 들뜨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요즘 북미간의 관계도 남북 관계도 또 삐걱대는 느낌입니다. 다들 말은 아끼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화가 일상인 그런 세상을 꿈꿔 봅니다.

 

2018521

유이분 올림

posted by 작은책
2018. 5. 28. 15:08 알림 / 엮은이의 글



<작은책> 5월호 마감 중에 둔촌냥이에서 스카우트한 퉁이가 입사했습니다. 신입사원 퉁이는 그동안 제가 하던 일을 조금씩 인수인계 받고 있습니다. 손님 오시면 드립커피도 드립다 갈아서 내리고, 아침이면 신문도 가져오고, 조만간 교정지 뽑는 일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ㅋㅋ!)
이달에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경석 씨입니다. 장애인 운동의 역사와 함께한 박경석 씨의 삶을 되돌아보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이제 곧 노동절을 맞습니다. 억압받는 노동자, 구속된 노동자, 민주노총 한상균전위원장, 이영주 전사무총장에게도 봄소식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8년 5월 1일 노동절은 <작은책>이 스물 네 살 되는 날이랍니다. 노동절 집회에 나갈 계획이니 시청 광장에 계신 분들은 <작은책> 부스에 들러 안부 인사 나눠요~~!

<차례>

* 표지 그림 / 유순희
* 디자인 / Choiyoo Jiyoon 최지윤
* 곡성 농부 이재관의 그림일기 – 내 어깨에도 / 이재관
1. 책이 이끄는 여행 - 월미도,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 / 최규화
2. 엮은이의 글

* 살아가는 이야기
3. 아들이 낯설다 / 류금숙
4. 잠꼬대로 “김 사세요!” 했던 시절 / 박영희
5. 당민코아 아저씨와 한 약속 / 궁정욱
6. 서울 여자 독일 아줌마로 살기 - 독일 병원은 이래요 / 조숙현
7.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 꽃이 아름다운 건 찰나이기 때문이다 / 윤혜신
8. 한일수의 유감천만 - 세금을 왜 내가 내? / 한일수
9. 청년으로 살아가기 - 소공녀가 버린 집에 들어갔다 / 진솔아
10 이야기가 있는 사진 – 노동자가 자랑스러운 세상 / 박지호
11. 살아온 이야기(11) - 문제는 엄마 / 글 이하나, 삽화 최정규
12.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 내가 축산과에 간 이유 / 안재성
13. 교실 이야기 - 번아웃된 교사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 / 박연미
14. 이야기가 있는 들녘 - <리틀 포레스트>가 따로 없다 / 김진회
15. 글쓰기 모임 안내

* 일터 이야기
16. 일터 탐방_ 국립대학교 시설관리 노동자 - 원래 그런 줄 알았죠 / 최규화
17. 일터에서 온 소식 - 심석태 기자님께 / SBS 뉴스토리 방송작가진
18. 작은책 법률 상담소 - 못 받은 양육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 양성우
19. 작은책이 만난 사람_ 박경석 - 아저씨 이름이 이동권이에요? / 안건모
20. 이동슈의 생활 만화 / 이동수

* 세상 보기
21. 생각해 봅시다 - 누가 더 미성숙한가 / 하명희
22. 여성으로 살아가기 - 핏줄의 마법을 풀어 주세요 / 홍승은
23. ‘그때 그 사건’ 다시 보기 -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 김형민
24. 생태 이야기 - 스마트팜은 스마트할까? / 박병상

* 쉬엄쉬엄 가요
25. 책 읽고 딴 생각 - 책방 주인이 숨겨 놓은 책 / 이윤호
26. 독립영화 이야기 - 봄이 가도 우리가 잊지 못하는 것들 / Mi-rye Ryu 류미례
27. 우리 지역 깊은 역사 - 우정의 산실 망우리공원 / 정종배
28. 와글와글 아이 글 – 맑은샘학교 4, 5학년 아이들 
29. 새로 나온 책 - 《회사를 해고하다》(MyungIn Kyeon 명인 지음/ 삼인 펴냄) 외 15권 / 편집부
30. 지난 호를 읽고 – 이성인, 전경숙, 김재경 
31. 편집 뒷이야기 – 안건모, 정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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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5월호

이야기가 있는 들녘


<리틀 포레스트>가 따로 없다

김진회/ 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일명 참참

 


홍천에서 맞이한 첫 겨울은 혹독했다. 날도 추웠거니와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게다가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다 서울에 있어 얼굴 한번 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다. 모두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직접 겪어 보니 생각보다 더 추웠고, 더 외로웠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도 많이 했다. 고민이 무색하게도 봄이 오니 거짓말처럼 많은 것이 좋아졌다. 날씨나 환경, 몸의 상태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그저 바깥 날씨가 따뜻해지고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니 몸도 마음도 녹은 느낌이다.

겨우내 집 밖에 나가려 할 때마다 그렇게도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것도 귀찮았는데, 짝꿍이 냉이 캐 와서 파스타 해 먹잔 얘길 하자 그 길로 저 먼 밭에까지 냉이를 캐러 갔다. 나가자마자 향긋한 봄내음이라는 뻔한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냉이는 작았고 캐 본 적이 없어 서툴렀다. 심지어는 비슷하게 생긴 다른 풀은 아닌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소금쟁이 님이 냉이가 많다고 알려 주셨던 그 밭에서 신나게 캐 왔다.

작년 봄에도 난생 처음 먹어 본 것이 여럿이었는데, 올봄에도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있다. 냉이파스타가 그 처음이었고 두 번째는 머위된장이다. 이건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음식인데, 영화를 보면서도 저게 도대체 뭘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다. 짝꿍은 그걸 잊지 않고 이미 작년부터 머위가 나는 곳을 잘 봐 두었다고 한다. 드디어 봄을 맞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역시나 머위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머윗대와 잎만 먹지만 일본에서는 머위의 수꽃을 데쳐서 된장에다 넣고 볶아 머위된장이란 걸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영화에 보면 머위된장 하나로 밥 세 그릇을 뚝딱 비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쌉싸름한 뒷맛이 입맛을 돋워 줬다. 물론 짝꿍이 만든 머위된장은 영화에 나온 것과는 맛이 다를 거다. 일본의 된장과 우리 된장의 맛도 분명히 다를 것이고 정확한 비율이나 레시피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든 것도 인터넷에서 어렵사리 찾은 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든 것이다. 머위꽃을 그냥 먹으면 쓴맛이 강한데, 일단 데친 뒤에 물에 오래 담가 두거나 잘 볶아야 쓴맛이 빠진다.

맛있는 머위된장을 다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지난번 뜯은 냇가에는 그때 한 줌 뜯은 것이 전부였다. 머위에 비해 꽃은 별로 많이 피지 않는데, 우린 머위가 더 많은 곳을 몰랐다. 어쩌나 싶었는데 혹시나 싶어 여쭤 보니 이웃 농부님 중 머위농사를 짓는 분이 계셨다. 농사를 워낙 크게 하시는 분이라 올해는 아직 머위밭에 신경을 쓰지 못하셨다는데 물론 머위꽃은 팔지 않으신단다. 위치를 알려 주셔서 찾아가 보니 밭 가득 머위꽃이 피어 있었다!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제 혹여나 머위된장 맛이 궁금하다며 찾아오는 손님들한테도 맛을 보여 줄 수 있게 됐다. 머위꽃도 한철이라 4월 초가 지나면 찾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아쉽지만 딱 요 때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소중해진다.

지난해 맛나게 먹었던 풀들도 다시 만나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노랑꽃 또는 꽃나물이라 불리기도 하는 겹꽃삼잎국화와 이젠 재배하는 농가도 꽤 있는 눈개승마, 그 밖에도 파드득나물, 부추, 뱀밥, 새로 찾은 친구 원추리까지! 잊고 있던 봄나물 맛을 다시 보니 좋아하던 김치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렇게 온 들에 맛난 것들이 널려 있으니 맨날 봄만 계속되면 좋겠다.

이렇게 영화 같은 날만 계속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가을, 겨울에 먹을 것들을 위해 얼른 농사일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작년에 물이 잔뜩 고였던 고랑을 정비하고 있는데 깊게 판 고랑들을 다시 메울 흙을 퍼 올 데가 마땅치 않다. 하도 잘못 만들어서 구배를 다시 맞추는 것도 큰일이다. 밭 계획도 좀 바뀌어서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은데 삽자루를 들 때마다 이거 이러다간 올해도 다 못하겠다 싶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이미지


우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서 감자를 좀 심었다. 작년에 심어 두었던 마늘도 싹이 나왔다. 심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있었는데 파란 싹이 뚫고 나오니 참 예쁘기도 하다. 작년에 몇 개 못 따 먹었던 딸기도 절로 더 넓게 퍼졌다. 겨울에 죽은 듯 보이던 딸기 잎들이 저렇게 파릇파릇해 기세 좋게 살아난다는 게 신기하다. 딸기뿐 아니라 파드득나물, 부추 등은 다 매년 다시 심을 필요가 없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번 심어 놓으면 몇 년이나 심는 과정 없이 가져다 먹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최대한 이런 풀들을 먹고 사는 쪽으로 삶을 바꾸고 싶다.

통장 잔고 고민이 깊어지던 때 개구리 님 덕에 자연농에도 관심이 있으신 읍내의 한 학원 원장님과 인연이 닿았다.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와 사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어 그동안 과외나 학원 알바도 하지 않았는데, 농사도 짓고 다른 일도 하면서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게 됐는데, 어떻게 하면 비록 학원 수업이나마 단순히 시험에 나올 것들을 외우는 것보다 좀 더 나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이다. 실은 잊어버린 것도 많고 가르쳐 본 적도 없는 초짜라 학원에 폐나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이지만 말이다.

새싹이 돋고 새로운 먹을거리도 먹고 일도 새로 시작하니 자연스레 마음가짐도 새로워진다. 이래서 예부터 그렇게 봄이 왔음을 노래했나 보다. 여기서도 다 피할 수 없는 황사와 미세먼지, 밭마다 잔뜩 쌓아 놓은 퇴비 냄새에 얼굴 찡그릴 때도 있지만 시골에 왔으니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봄을 만끽해야겠다.

▲ 김진회 ⓒ김진회(페이스북에서 갈무리)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