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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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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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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후’를 읽을 줄 알아야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은퇴한 지 십 년이 지났어. 나 스스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어. 이런 말이 있지. 20대에 좌파(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인데, 40대에 여전히 좌파(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어도 바보라는 말. 나이가 들면 그동안 축적한 재산이 있으니까 그만큼 보수적이 된다는 뜻이라고 해. 하지만 난 이 따위 말을 신뢰하지 않아.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말이라고 보기 때문이야. 나이 들면 보수화되는 걸 나는 ‘돈 공부’만 하고 ‘세상 공부’를 하지 않는 탓으로 보는 편이야.

요즘 ‘하루 만 보 걷기’를 실행하고 있어. 매일 만 보를 걷는 거야. 스스로 ‘은퇴한 산책자’라고 부르는데, 온건한 사람이 되긴 틀렸다는 걸 최근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만나면서 다시금 확인했어. 며칠 사이를 두고 김기홍 씨와 변희수 씨가 세상을 등졌어. 무척 우울했는데, 그게 코로나 블루 때문만이 아니었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잖아. 사회적 존재로서 두 사람은 한국 사회를 반영해. 그 일원인 나에게도 그들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

세상에는 왼손잡이가 9분의 1정도 있다고 해. 아홉 명 중 한 명이 왼손잡이라는 거야. 한국은 왼손잡이 비율이 더 적을 것 같기도 해. 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나도 오른손잡이야. 근데 내가 오른손잡이를 선택했나? 물론 아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채 남자로 태어났듯이 그냥 오른손잡이가 된 것뿐이지. 높은 담을 넘어갈 때에도 오른발을 먼저 짚는 사람이 있고 왼발을 먼저 짚는 사람이 있어. 평소에 왼발을 먼저 짚는 사람에게 오른발을 먼저 짚으라고 하면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어려울 거야.

오른손은 ‘옳은 손’에서 온 게 분명해.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도 하는데, 바른손은 ‘바른 손’에서 왔지. 그럼 왼손은 ‘틀린 손’인가? 좌우동형으로 똑같은데 한쪽을 ‘옳다’, ‘바르다’고 말하게 된 근거나 배경은 뭘까? 절대다수가 오른손잡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언어가 곧 사유이고 사유가 곧 언어”라면, 오른손 또는 바른손이라는 말에서 다수의 횡포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해. 이 다수의 횡포가 한국어에만 있는 게 아냐. “언어는 곧 사유이고 사유는 곧 언어”라는 언어학의 명제가 한국어에만 적용될 리 없기 때문이지. “right hand(영어로 ‘오른손’)”의 right도 “main droite(프랑스말로 ‘오른손’)”의 droite도 모두 ‘옳다’의 뜻을 갖고 있어. 이건 순전히 가정인데, 어떤 사회에 왼손잡이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면, 그 사회의 언어는 우리와 정반대로 왼손잡이를 ‘오른손(옳은 손)잡이’라고 쓰고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라고 쓸 거야.

이처럼 좌우동형으로 똑같은 오른손과 왼손임에도 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라는 이유로 ‘옳은 손’이라고 주장해 온 게 인간의 사유였는데, 그런 인간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을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건대, 좌우동형인 왼손잡이/오른손잡이를 그렇게 갈라치기했는데, 성소수자/이성애자는 왼손잡이/오른손잡이의 차이 정도가 아니잖아! 역사상 거의 모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국책이 부국강병인데 여기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성소수자들은 그야말로 배제와 차별,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어.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노예해방이나 여성참정권보다 한두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을 만큼. 성(별)정체성이 사람의 의지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과학의 기여가 필수적이었지. 그리하여 마침내 21세기 초에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권이 처음 법제화되고(정확히 2001년의 일이야) 다른 유럽 나라들이 뒤를 이어 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됐어.

“19세기가 노예해방의 세기였고 20세기가 보통선거권(여성참정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성소수자들이 해방되면서 시작되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등의 유치학교에는 ‘엄마’가 둘인 동무를 가진 어린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어제 동무를 찾으러 온 엄마와 오늘 찾으러 온 엄마가 다른 거야. 맞아! 레즈비언 커플인 거지. 양육권을 가진 그들은 정자은행을 통해 생물학적 자식도 가질 권리가 있어. 남성 커플일 경우에는 대리모 관련법이 나라마다 다른데 여성 커플보다는 어려운 편이야. 이런 게 한국의 헌법에도 있는 행복추구권이 살아 있는 사회의 모습이야. 그 아이들은 ‘정상 가족’이라는 고루한 개념에서도 해방되겠지.

이런 시기인데 김기홍 씨와 변희수 씨의 죽음을 만난 거야.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의 “나중에!”에서 4년이 지난 오늘까지 반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이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씨는 “퀴어 퍼레이드를 안 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그의 평소 지론이었던 ‘새 정치’의 실체를 알려 주었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14년째 표류 중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진보적인 여성 대법관은 ‘시대의 기후’라는 말을 인용했어. 내일의 날씨를 알아야 하듯이 시대의 기후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어.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들어야 할 말이야. 아무리 한국의 현실 정치인들이 공부하지 않고 구닥다리로 남아 있어도 시대의 기후는 이미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분명히 말하고 있어.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뿐이야!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