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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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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지원품, 고맙지만 작은 배려를 해 주면 좋겠다

 

정미영(가명)/ 보험설계 상담

 

보험대리점에서 설계와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업무 특정상 매달 마지막 주가 되면 몰려드는 설계 건으로 각 보험사의 전산과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인다. 특히 거절된 심사 건이 발생하면 예민해진 신경을 부여잡고 고객에게 필요한 자료를 설명하고 요구하여 재심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더 지치게 된다. 그래서 어렵게 승인 나면 다행인데 그럼에도 인수 거절 나면 고객에게 좋지 않은 소리까지 듣게 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솔직히 화도 난다.

어느 날, 여러 보험사에서 거절 난 심사 건으로 팀장님과 한창 대화 중일 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민센터다. 우리 가족 앞으로 쌀이 기증되었으니 신분증을 가지고 방문하란다. 너무 바빠서 당장 가기가 어렵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그 짜증은 나와 같은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정책에 대한 아쉬움으로 변해 갔다.

남편과의 사별로 갑자기 한 부모가 된 나는 세 자녀를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나라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건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 월급에 비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대료를 지원해 주거나, 의료비·교육비 등의 지원은 소득이 많지 않은 나에겐 너무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 같은 것은 작게라도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책을 구입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구분 없이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잘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해진 시간 안에 사용하면 일정 기간 후 다시 충전되기에(물론 그 기간 안에 신분증을 가지고 주민센터에 가야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이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원이 항상 감사한 건 아니다. 나는 회사에 고용된 상황이기에 정해진 업무 시간을 지켜야 월급을 받는다. 그렇기에 마음대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쌀과 같이 무게가 있고 부피가 큰 지원품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나처럼 허리와 팔꿈치가 좋지 않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수령할 수 있기에 매번 주변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또한 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은 저렴한 가격에 쌀을 살 수 있고 구입한 쌀은 주민센터 직원이 배달해 주기 때문에 따로 지원된 쌀을 시간 내어 힘들게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끔 크리스마스 같은 때 각 단체(교회와 같은)에서 주는 과일 상자나 복지관에서 주는 라면상자 위에는 불우이웃돕기란 글귀까지 쓰여 있어서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해 받기를 거부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향해 배가 불렀군하며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내가 불우이웃인 것을 타인에게 알리면서까지 지원품을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요즘 쌀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쌀과 라면이 아닌 누구나 평범하게 누리는 문화적인 혜택을 더 받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여느 가정의 아이들이라면 기본으로 한다는 피아노나 태권도 등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 중 하나 정도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거나, 지금 이용하고 있는 문화누리카드의 한도액을 올려 주고 이용 기관을 늘려 아이들과 여가 생활을 지금보다는 풍요롭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주말 외엔 시간 내기가 어렵고 대중교통으로만 이동 가능한 내가 그나마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영화관을 이용한다거나 책을 구입하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는 건 문화누리카드가 있어서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가정이라면 한 부모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양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오면 제일 난감하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 주지 못한 아쉬움과 아픈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해야만 하는 형편이 속상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아이들이 지원받고 있는 드림 스타트에서 우리 가정과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가족 여행을 진행하는데, 이 시스템은 초등학생 때만 이용 가능하고 횟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이며 모든 비용은 시에서 제공한다. 여러 여건으로 아이들과 여행가기가 어려운 나와 아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작은아이와 23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참여한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비슷한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이고 함께한 보호자도 같은 상황이다 보니 위축되지 않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회를 한 번이 아닌 두세 번으로 늘려 줘서 여느 가정들처럼 여행의 기쁨을 아이와 함께 많이 누리고 싶다.


▲저소득층 양곡 할인 안내 화면. 복지로 홈페이지 갈무리


쌀이나 라면과 같은 지원품을 주는 단체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솔직히 준다는데 싫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만 이러한 지원은 매달 일정 금액을 주고 사 먹는 양곡미를 배달해 줄 때 같이 배달해 주는 작은 배려를 해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지원품에 배려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을 받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감사함을 느끼며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
2020. 6. 2. 11:22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6월호가 두툼합니다. 300호 기념으로 특집 기사를 조금 늘렸습니다. ‘노동자 글쓰기와 선전이라는 주제로 엮었습니다. 종이로 나왔던 노보와 소식지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활동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선전물이었지요. 이제 그런 소식지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욱더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려도 글을 쓰지 않고는 소식을 전할 수 없습니다. 생각할 틈이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과 천천히 곱씹어 볼 수 있는 글은 깊이가 다릅니다.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톨게이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리가 옳다!라는 책으로 기록한 이용덕 씨는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로는 투쟁의 전체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25년 동안 선전 일을 맡고 있는 김진영 선전교육실장은 노동조합을 지키는 힘은 선전이라고 강조합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에서 소식지 편집을 맡고 있는 김종필 씨도 노동자에게 글쓰기는 또 다른 투쟁의 방법이며, 힘든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독자님들, 이달 책이 이끄는 여행은최규화 편집위원이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당진필경사를 다녀왔습니다. 필경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민족 해방 운동에 영향을 끼쳤던 심훈의 상록수가 탄생한 곳이죠. ‘의 힘은 참 대단하고, 또 영원히 남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20518

발행인 안건모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당진, 심훈과 상록수의 길 최규화

 

13 발행인의 글

14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5 지원품, 고맙지만 작은 배려를 해 주면 좋겠다 정미영

19 주먹밥과 일해공원의 가치관 홍세화

23 팀장님이 잘리고 퇴직금을 받았다 최숙하

27 30년 부부 맞짱일기

늦잠의 범주와 식사 예절 이동수와 최해옥

3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이 짜장 대박이네그랴 윤혜신

39 살아온 이야기

사름하다 김수련

45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6 시 읽고 감상하기

7분의 의미 이규동

50 교장 일기

저렇게도 친구가 좋을까 최관의

55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어디서 가지고 놀려고 들어 권해진

 

일터 이야기

60 일터에서 온 소식

이젠 침낭만 있으면 아무 데서나 잘 수 있다 김승화

65 회사가 보낸 가정통신문, 그게 호소문이라고? 신재성

71 작은책 법률 상담소

아동·청소년에 대한 디지털성범죄 박시진

 

300호 특집

76 ‘먹물출신의 노동자 홍보물 도전기 하종강

85 문선공에서 유튜브까지 강연배

90 타협이 아니라 타기팅입니다 류호정

95 기록해야 잊히지 않는다 이용덕

99 노동조합을 지키는 힘은 선전 김진영

104 손글씨 소식지와 핸드폰 메모장 이은순

110 힘들게 쓴 소식지, 왜 안 가져가지? 김종필

 

112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14 옛 그림 속 여성들

어느 공주의 사랑 이야기 이종수

120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정의당의 선택 고태경

126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이주영

132 생태 이야기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 박병상

138 존버 씨의 시간들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그리고 노동유연화 김영선

14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풍속화, 결정적 순간을 담다 박찬희

150 독립영화 이야기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류미례

156 책 읽고 딴 생각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변정수

 

160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64 지난 호를 읽고

166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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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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