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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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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최근 한 인기 있는 방송에서 어린이 주먹만큼 큰 딸기가 선보였다. 이름하여 킹스베리’. 계란만큼 큰 딸기를 보고 놀란 적 있는데, 비닐하우스와 식물 성장호르몬이 우리 농업에 등장했던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계란보다 훨씬 큰 킹스베리는 어떻게 재배할까? 그 방면에 견문이 없지만 우리 기술진이 개발해 최근 첫 출하했다는 거, 가격이 높아도 인기가 많다는 건 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까닭도 있겠지. 당도가 높다고 한다. 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수출을 이끌 차세대 수출 유망 품종 5가지 품목 중의 하나로 선정했고 벌써부터 수만 달러의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은 뿌듯해한다.

사진_ Pixabay


첫눈 내리기 전부터 과일점 좌판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딸기는 5월이 제철이지만 3월이면 끝물이다. 할인 경쟁에 나서는 상인은 재고 처리 하자마자 참외를 펼쳐놓겠지. 장마 전에 즐겨 먹던 참외도 제철을 잊었다. 비닐하우스가 계절을 앞당겼지만 더 빨리 더 많이 출하하려는 농부들의 경쟁은 난방을 끌어들였다. 킹스베리는 계란 크기의 딸기보다 적정 재배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높다는데, 태워야 할 석유가 늘었겠다. 꽃가루는 어떻게 수정시키나? 꿀벌은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는데. 별걱정 다 한다. 한겨울 비닐하우스를 위한 꿀벌이 있단다. 일회용이다.

첨단을 달리는 비닐하우스는 수경재배를 채택한다. 뿌리를 붙잡는 스펀지 같은 물질에 필요한 영양분을 적시 적량 공급하는 수경재배는 흙을 퇴출시켰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도 대량 생산하는 까닭에 출하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농산물의 유전자는 극단적으로 단순해졌다. 단순한 유전자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재배환경을 맞춰야 소기의 품질과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농부는 투자비를 아끼기 어렵다.

요즘은 한술 더 뜬다. 얼마 전 취임한 농촌진흥청장은 스마트 농업의 보급을 선언했다. “개방의 심화, 기후변화, 고령화 등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농업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 농업인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고도화된 바이오기술과 디지털이 결합한 스마트 농업 기술로 우리 농업의 혁신 동력을 만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는데, 그런 농업은 농부를 존중할까? 농부대신 알바를 고용하는 건 아닐까?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최첨단 시설에서 로봇이 파종에서 재배, 수확에서 포장까지 책임지는 스마트 농업은 나이 든 농부를 거부할 것이다. 거액의 투자자는 소비자에 직배송하거나 대형마트와 계약할 테니 농촌도 외면할 게 틀림없다. 외부 환경을 차단하는 만큼 기상이변에 무심해도 무방하겠지만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만큼 온실 밖의 기상이변은 한층 거세지겠지. 국민이 체감할 성과? 어떤 성과일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농촌진흥청은 농촌 해산을 선도하려는가?

중국 인민대학교의 원로, 원톄쥔 교수는 3농을 주장한다. 세계의 공장이 되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국가의 부를 자랑하지 않는 그는 경작할 땅이 시골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내일의 대안을 찾는다. 농부는 물론, 농촌과 상생할 수 있는 농업이어야 자급 가능한 식량을 보장한다고 강조하는데, 산업화를 부추기는 스마트 농업은 흙뿐 아니라 농부와 농촌을 배제한다. 바이오와 디지털을 번지르르하게 내세우지만 신기루다. 막대한 석유가 값싸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무너질 사상누각인데, 지구촌의 석유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다. 산유국이 자료를 숨겨도 퍼올리는 양보다 소비가 많은 지 10년은 족히 넘었다.

땅은 농업의 오랜 기반이다. 다양한 미생물, 지렁이와 곤충들, 온갖 식물의 뿌리가 뒤섞인 흙이 있기 때문이다. 흙은 농작물의 뿌리를 잡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작물이 성장해 수확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제공한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한없이 펼쳐 내는 미생물이 질소와 인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흙에 내놓으면 농작물은 미생물이 생장하는 영양분을 흘려보낸다. 그런 관계가 태곳적부터 지속되면서 흙은 우리에게 농작물을 풍요롭게 베풀었고, 농부는 땀 이상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았다.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 석유를 태우는 농기계를 사용하기 전까지.

흙은 탄소를 잡아 준다. 미생물과 지렁이와 거미와 곤충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나무와 풀의 씨앗,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생장하고 죽으며 남긴 탄소가 뒤섞여 있다.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기는 농작물이 흙속의 탄소를 흡수하는 건 아니다. 녹색 잎의 엽록체가 탄소동화작용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곡식이나 과일로 생산한다. 막대한 에너지에 의존하는 농업은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 봄에 뿌린 한 톨의 씨앗이 농민의 땀과 햇빛과 빗물을 머금으며 가을에 수십 배의 소출을 내놓는 생산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변형이다. 수확한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 주로 석유가 낭비되지 않았나.

농기계와 화학비료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미국의 드넓은 밭은 영양분이 고갈돼 흙이 딱딱하다. 무거운 농기계로 땅을 대규모로 갈아엎는 농업은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석유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수확이 가능하다. 맹독성 농약으로 흙이 생명력을 거의 잃었기 때문인데, 흙마저 배제하는 스마트 농업은 어떤가? 생명을 아예 품지 않는다. 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종업원을 고용하는 공장일 따름이다. 흙을 배제하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혹한 식량위기를 초래한다.

엽채소와 과채소 위주의 비닐하우스와 스마트 농업이 수출을 염두에 두는 한, 식량자급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식민지로 만들려면 그 나라의 농업을 죽여야 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의 귀띔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급률이 20퍼센트에 턱걸이하는 상황에서 수출을 장려하다니. 우리 농업정책은 위기를 증폭한다.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을 비롯해 고기와 과일도 진정한 생산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은 한계에 부딪히고 식량주권을 잃은 국가는 종속될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미국식 농업은 수확물의 대부분을 소비자의 식탁보다 산업축산의 사료, 그리고 가공식품 공장으로 보낸다. 고기와 가공식품이 아니라면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대부분 농촌의 농부가 흙에서 생산한 농작물이다. 가공식품이 드문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발밑의 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흙을 살리면 지구온난화도 어느 정도 예방하면서 내일의 식량을 견고하게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곳곳의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남북한 합해 7000만이 넘는 인구는 농부가 흙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 늦기 전에 농토를 확보하면서 흙을 살려야 하는데, 스마트 농업과 비닐하우스로 수출농업을 꿈꾸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비축량이 얼마나 많은지 고갈 신호를 무시하며 여태 저렴한 석유, 그런 석유 덕분에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낮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부자나라의 농산물을 싸게 수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식량 자급을 준비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많은 식량을 수입해 놓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만용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간지럽히는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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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김경리/ 행복한책방 일산점 점장

 

 

또래에 비해 발육이 빠른 5학년이었다. 브래지어를 하는 초등학생이 아주 드문 때였기에 나는 노브라로 학교를 다녔다. 남들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만 오히려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담임이 내 가슴께를 흘끔거리는 걸 느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눈빛을 총애로 여겼던 것 같다.

어느 날 방과 후에 담임은 시험지를 채점해야 한다며 나만 교실에 남으라 했다. 채점을 마친 시험지 꾸러미를 들고 담임에게 다가가자 그놈은 나를 뒤에서 안더니 만져 보자, 만져 보자하면서 내 가슴을 한참 동안 주물거렸다. 그 행위가 어떤 의미인 줄은 몰랐지만 너무 무서워 눈물이 나려 했다. 그럼에도 울음을 꾹꾹 누르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후로 학교 가는 게 싫어진 나는 자주 배가 아팠다.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엄마가 일대일 수영 강습을 등록해 줬다. 수영 강사 그놈은 처음엔 소심하게 만졌다. ‘제대로 된 자세를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우길 수 있을 만큼만 만지다가 내가 반항을 안 하자 점점 대범해졌다. 그 상황을 즐기는 듯 나만 보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구역질이 났다. 참다못한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대충만얘기했다. 그런데 펄펄 뛸 줄 알았던 엄마가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수영을 가르치다 보면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것이다. 억울했다. 자세히얘기하려면 재연을 해야 했는데 그건 너무 수치스러웠다. 다시는 수영을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엄마는 돈이 아깝지도 않느냐며 등짝을 때렸다. 하지만 그놈 얼굴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아직도 수영을 못하는 건 순전히 그놈 탓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은 한 달 가까이 집수리를 하던 중이었다. 어른을 공경하는 착한 학생으로 교육받은 우리 형제들은 학교를 다녀오면 일하는 분들에게도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하루는 그중 목수 아저씨 한 명이 오냐, 잘 갔다 왔냐하면서 내 엉덩이를 잠시 만졌다 놓았다. 툭 한 번 친 게 아니다. 잠깐이지만 분명히 움켜쥐었다’. 이번엔 내가 당한 일이 어떤 건지를 확실히 알 만한 나이였다. 너무 분한 나머지 경련이 일면서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결국 저녁 밥상에서 내가 당한 일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 편은 없었다. 딸 같아서, 이뻐서 그런 걸 가지고 계집애가 까탈맞게 군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놈보다 부모님이 더 미웠다.

스무 살 이후로도 여자로 태어난 죗값을 끊임없이 치러야 했다. 신체적 성희롱이 드문드문 겪는 일인 데 비해 언어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일일이 맞서기도 피곤할 정도였다. 술 마시러 가자 할 때 볼일이 있어 빠진다고 하니 여자가 없으면 술맛이 나냐고 말하는 선배도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항의하면 농담 가지고 뭘 그리 무섭게 덤비냐며 달래는 그들은 평소에 여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보통의 평범한 남자들이었다.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났지만 매번 싸울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번번이 쎄게대응하는 피곤한 여자로 살 용기도 없었다.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남자 선배가 여자 선배의 뺨을 때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남자 선배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우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키가 작고 생김새도 순해 보이니까 나를 만만하게 보나 싶어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로 보이려고 애를 썼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려면 단단해 보여야 했다. 그 대가로 턱관절장애를 얻었다. 강해 보이려고 이를 꽉 다물고 다닌 결과다.

▲ 사진_ Prentsa Aldundia

이런 얘기를 하면 두 가지 반응을 보게 된다. 여자들은 어쩜 너나없이 그렇게 비슷한 경험이 많으냐며 놀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일들은 너무 흔해 새삼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라는 여자들의 말에 놀란다. 이런 경험이 얼마나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면 더 놀라겠군. 내 경우에는, 성적(性的)으로 결벽증이 생겼고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

오랫동안 혼자 담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 놓으니 새삼 분이 끓어오른다. 골목길에서 큰일 날 뻔했던 일, 전철에서 당했던 일 등 미처 말하지 않은 것들까지 떠올라 더 분하다. 이럴 땐 상상으로나마 복수를 한다. 죄질이 특히 나쁜 초등 담임을 불러내야겠다. 어떻게 복수하는지는 나만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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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일터탐방_ 유성기업

 

내 동생 광호가 왜 그랬을까

정인열/ <작은책> 기자

 

일은 동료와, 잠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뭐! 잘못되었습니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손팻말 문구다.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로 알려진 대표적 사업장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투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투쟁을 이기는 중이라고 평한다. 유성기업 노동자 김성민 씨와 국석호 씨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현대·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회사다. 충북 영동과 충남 아산에 공장이 있다. 김성민 씨는 1993년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지금 그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지회) 사무장이다. 노조파괴가 발생한 8년 동안 지회장만 두 차례 했다.

국석호 씨는 1994년에 입사했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한광호 씨는 이듬해에 형을 따라 입사했다.

▲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노동자들은 1400도가 넘는 용탕에서 쇳물을 녹였다. 금속을 깎고 돌리고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일했다. 밤샘 노동에 매일 잔업을 하고 휴일에도 일했다. 그러다 1999년 한 동료가 야간근무를 마친 후 통근버스 안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도 노동자 5명이 급작스런 죽음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회는 2009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여 201111일 시행하고 월급제로 전환하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시행 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와 협상하기로 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회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20115182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즉시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 깡패 약 200명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조합원 500여 명이 아산공장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석 달을 노숙했다. 용역 깡패는 대포차로 조합원 13명을 치어 다치게 했다. 경찰은 대치 중이던 조합원들을 전원 연행했다. 조합원들은 다시 모여 622일 아산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용역은 돌을 던지고 소화기를 집어던졌다.

저쪽에서 서치라이트를 켜면 우리는 앞이 안 보이잖아요. 주먹만 한 돌이 슝슝 날아와요. 소화기 뿌리다가 막 집어던지니까 굉장히 무서웠죠. ‘소리 나면 거기 맞은 거거든.”

두개골이 함몰되고 광대뼈가 부서지는 등 심하게 다친 조합원만 6. 고작 2시간짜리 부분파업에 회사는 잔악하고 집요하게 대응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제출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2011428)’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봉 7천만 원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하고 있다고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 원고는 창조컨설팅이 써 준 것이었다. (연봉 7천만 원은 입사 25~30년차 노동자가 주말, 휴일, 잔업, 밤샘 노동을 해야 받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임금이다.)

 

가학적 노무관리

직장폐쇄 후 약 두 달 만인 20117, 사측은 제2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지회가 현장에 복귀하자 사측 직원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조합원들의 화장실 가는 시간, 전화 통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등을 체크해 시급에서 제했다.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시키고 승진, 작업배치 등에서도 불이익을 주었다. 징계와 고소·고발도 끊임없이 했다. 가학적 노무관리였다. 지친 조합원들이 하나둘 제2노조로 빠져나갔다. 지회는 이에 반발해 2012~2014152일간 굴다리 농성, 259일간 22미터 높이 광고탑 농성을 벌였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를 오가며 천막농성을 하고 대전고법, 대전고용노동청 등 유관기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2노조로 넘어간 조합원 설득도 포기하지 않아, 2014년부터는 제2노조보다 지회 조합원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형, 동생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분열되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그 사람들 잘 먹고 잘살 때 우리는 가족이 고통받았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요. 아내들끼리는 시장에서 마주치면 싸움 나고, 학교에서는 애들끼리 싸우고. 가정부터 이리 되니까 삶이 다 무너지는 거야.”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조합원들의 심리 건강을 조사한 결과 43퍼센트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명됐다. 일반인보다 6~7배 높은 수치였다. 국석호 씨와 한광호 씨도 포함됐다. 그리고 20163, 국석호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저는 대전고법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는 이리 될 줄 알았지만, 왜 내 동생 광호가 그랬을까? 멀쩡하던 놈이?”

 

한광호 열사

한광호 씨는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평소 말수도 적고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던 터라 국 씨는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장례 치르면 개죽음이라더라고. 노조파괴로 지금 조합원들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결심을 했죠. 광호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이 싸움 끝내야겠다고.”

한광호 열사 꽃상여를 메고 양재동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 영정을 들고 있는 이가 국석호씨다( 20166).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지회는 열사 투쟁에 돌입했다. 회사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시신은 냉동고에 둔 채 서울시청으로 올라와 분향소를 차리고 100리터 종량제봉투에 들어가 노숙을 시작했다. 한광호 열사가 죽은 지 90일째 되는 날, 지회는 꽃상여를 메고 현대자동차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으로 분향소를 옮겼다.

 

왜 현대자동차인가?

노조파괴의 핵심에는 현대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는 이미 한광호 열사가 죽음을 택하기 두 달 전인 20161월에 밝혀졌다. 당시 은수미 국회의원은 현대자동차 최○○ 이사대우가 부하 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공개했다.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제2노조 가입 인원 목표를 주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했으며, 매주 1회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을 본사로 불러 합동 회의를 했음이 밝혀졌다. 현대자동차는 왜 그랬을까? 김성민 사무장은 말한다.

부품사들을 일률적으로 정리하고 나서 부품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 한 거라고 보거든요. 왜냐면 부품사들은 파업을 통해 노동권을 쟁취하는데 이런 데를 없애 버리면 현대차 입장에선 조용하다 이거예요.”

국석호 씨는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의 사과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지회는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한광호 열사는 노조탄압에 따른 중증 정신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 현재까지도 유성기업지회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작은책(정인열) 

 

내가 왜

국석호 씨가 서울사무소에서 노숙할 때였다. 하루는 내가 왜라는 노래가 나왔다.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꽃다지-

김성민 씨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할 때였다.

맨날 듣던 노랜데 그날따라 딱 그런 거예요. 저는 애들과 놀러 가고 싶고 가족과 저녁 먹고 싶은 평범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 선택이었거든요. 자본에 굴복하고 살았으면 그걸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불응하고 살려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런 생각 들 때면 힘들었어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검찰, 청와대, 고용노동부, 경찰이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그룹을 비호했지만 지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하나씩 이겨 나갔다. 2노조 무효 판결(20144), 유시영 대표 구속(20172, 노조파괴 혐의로 16개월 실형 선고),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대표와 김주목 전 전무 구속(20188, 노조파괴 혐의로 징역 12개월), 조합원 해고 무효 확정 판결(201810, 대법원), 한광호 열사를 포함한 사망 조합원 8명에 대한 보상.

임금도 일단 안 주고 보고, 해고도 일단 시키고 보고.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니까 이긴 거예요. 그냥 쌩으로 8년을 기다리라고 하면 저도 못 할 거 같아요. 우리가 뭉쳐서 하나하나 해 오다 보니 8년이 지난 거지.”

전에는 일하다 커피 한잔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해서 비참했어요. 지금은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이래요. 우리가 이겨 가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 유성기업지회 김성민 사무장(왼쪽)과 한광호 열사의 형 국석호 씨(오른쪽). 작은책(정인열) 


간절한 바람

지회의 요구는 3가지다.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어용노조 해체, 마지막으로 사태의 발단이 된 심야노동 철폐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9년 단체협약이 복원되어야 한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을 자고 싶다. 이들의 바람은 여전히 간절하다.

posted by 작은책
2019. 2. 27. 12:03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1970년대 국민학교반공 연설대회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김준교 자유한국당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14일 대전에서 열린 합동 연설회에서 신성하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짓밟고 더럽히고, 북한 김정은의 노예로 팔아먹으려는 짐승만도 못한 저 종북 주사파 정권을 처단해야한다며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이냐고 악을 바락바락 쓰고 있었습니다. 연설하는 이도 그렇지만, 거기에 태극기를 흔들면서 호응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를 비롯한, 4·3항쟁, 5·18 광주항쟁 등의 가해자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결과가 이렇게 부끄럽고 참담한 세상을 불러왔습니다. 그런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면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세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호 특집 작은책이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풀무질 책방 일꾼 은종복 씨입니다. 1993년부터 시대의 흐름과 함께 26년 운영하던 책방 이야기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책을 좋아했고, 오로지 세상을 맑고 밝게하려고 애쓴 사람인데 1997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지요. , 그러고 보니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아직도 감옥에 있군요.

이번 호에 책이 이끄는 여행을 쓴 김용심 씨가 마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한 말을 인용했네요.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좋아지지 않는다.” 새겨들을 말입니다.

 

2019220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재즈, 축제, 그리고 김용심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나는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김경리

15 슬픔의 무게는 같다 전영순

17 부부 30년 맞짱일기

부부싸움으로 이룬 부부산성 최해옥과 이동수

24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새로운 명절 윤혜신

30 청년으로 살아가기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유지향

34 이야기가 있는 사진 이기범

36 살아온 이야기(9)

2,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송추향

43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환자는 평등합니다 권해진

47 교실 이야기

슬픔을 아는 사람이 어른이 된다 박태찬

51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노동자 시어머니와 산골 며느리 조혜원

55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_ 유성기업

내 동생 광호가 왜 그랬을까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얘들아, 오늘도 점심 라면이래 곽지현

70 일터에서 온 소식

용균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이준석

75 작은책 법률 상담소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고?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은종복

79 풀무질 책방 일꾼 은종복 안건모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102 존버 씨의 시간들

존버 씨의 시간들 김영선

108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 놀 권리 선언 이주영

113 여성으로 살아가기 이야기 안내자 홍승은

118 생태 이야기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3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4 정작 모르는 유물이야기 주먹도끼의 또 다른 이름 박찬희

128 책 읽고 딴 생각

열등감이 만들어 낸 가짜 역사 변정수

131 독립영화 이야기

지금, 이곳에서 바라본 세계의 지도 류미례

137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가여운 돼지들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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