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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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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6. 16:17 둘레/글쓰기 모임

-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posted by 작은책

   사회 진보의 길을 찾는 진재연 씨
   안건모 글 · 사진


 

  올해 나이 서른세 살이 된 진재연 씨는 한탄강 근처 전곡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조 선생님을 만나 영향을 받은 뒤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평범했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조중동에서 흔히 말하는, 배후인 전교조 선생님들은 늘 이렇게 평범한 아이들의 삶을 삐딱한(?) 길로 이끈다. 자기만 위해 사는 삶이 아니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말이다.
  진재연 씨는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자연스레 야학 동아리를 찾았다. 도원동 철거민 투쟁 현장에서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때는 1997년 노동자대투쟁 때였다. 5월 1일 노동절 때부터 집회에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최류탄이 터지는 매캐한 길에서 경찰과 맞서 싸울 때 무서우면서도 짜릿했고 희열을 느꼈다. 진재연 씨는 그렇게 자연스레 사회에 대해서 배웠다. 졸업을 한 뒤 진재연 씨는 지하철 철도 용역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조직 활동가로 일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8개월 정도 일하고 나와 2004년 1월부터 사회진보연대라는 단체에서 상근을 한다.

△ 2008년 7월 10일 인터뷰 모습

  진재연 씨가 살아온 서른세 해 짧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2006년 1월부터 평택 대추리 지킴이로 들어가 살던 때부터였다. 그 당시 대추리는 전쟁 아닌 전쟁 중이었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평택을 주한미군의 중심 기지로 합의하고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74만 평을 강제로 수용했다. 주민 100여 명은 강제 수용을 거부하며 그때까지 버텨오고 있었다. 여기에 평택 범대위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와 학생, 노동자들이 그 대추리를 평화마을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였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남들은 무서워서 집회 한 번 참석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진재연 씨는 평택 ‘지킴이’로 가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대추리는 언론에서 늘 봐서 알고 있었어요. 폭력적인 진압이 있을 거라 말들이 많았어요. 그건 무섭지 않았는데 엄마한테 내가 평택 가서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근데 엄마는 그곳이 어떤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평택을 들어갔는데 그곳의 삶은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가 있었어요”
  진재연 씨는 그곳에서 대추초등학교 안에 있던 도서관 관장 일을 맡는다. 아이들과 같이 책읽기 모임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그곳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인터뷰해 한겨레 21에 연재를 하기도 했다. 2006년 5월 4일 노무현 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강제로 철거를 하기 시작했다.
  “5월 4일 아이들 운동회 날이었어요. 아이들이 학교는 당연히 못 갔죠. 도서관이 초등학교 안에 있었는데 경찰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면서 창문으로 포대 자루에 책을 막 담아서 밖으로 던질 때 경찰하고 싸우면서 울기만 했어요.”
  정부는 군과 경찰 병력 1만 5천 명을 투입해 마을을 강제로 철거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항의하던 시민들과 학생들을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짓밟으며 500여 명을 연행했고, 법원은 16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친 사람도 많았다. 강제 철거로 주민들은 결국 2007년 3월 29일부터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온동네가 눈물바다였어요. 이삿짐 싸면서 울고……. 3월 24일 935일째 마지막 촛불 집회 때는 사회자가 눈물을 터뜨렸어요. 그때 주민들이 전부 울었어요.”
  진재연 씨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목이 메어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2007년 4월, 진재연 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진재연 씨는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분회지원대책위원회’로부터 이랜드 노동자들이 투쟁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고 김순천 씨 외 12명과 인터뷰 형식으로 책을 내는데 함께한다. 그것이 지난 6월 나온《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후마니타스)라는 책이다.

△ 2008년 7월 11일 이랜드 상암점에서 열린 이랜드 일반노조 문화제에서 파업기금을 보태기 위해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책을 팔고 있는 진재연 씨(오른쪽)

  살아온 삶이 짧아 별로 할 말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진재연 씨. 노조활동가로서, 사회진보연대 회원으로서, 평택 지킴이로서 살았던 짧은 삶이었지만 사회 진보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작은 발걸음이 모여 이 사회가 바뀌고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진재연 씨는 여전히 그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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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가 재미있다

   김미자/ 우리말 교사



  “한국 영화가 참 재미있고 좋아요.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봐요. 그러면 속이 푹 풀려서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일하자!는 그런 기분이 돼요” 하던 우리 한국어 수강생이 나한테 다가와 ‘한국 영화를 100배 즐기는 방법’이란 강연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난 지난 6월 14일 토요일에 우메다 변두리에 있는 오사카 한국문화원까지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사는 일본 정부의 대신관방 심의관, 문화청 문화부 등을 역임하시고, 현재 교토조형예술대학교 교수이자 영화 평론가이신 데라와키 겐이란 분이었다.

  나는 그이를 교육 문제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에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어 낯익은 감이 들어 되게 흥미스러웠다. 보아 하니 한국 영화를 꽤 잘 아시지 않는가? 이분이 이렇게 한국 영화에 도통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강연을 들어 보니까 강사가 한국 영화를 보게 된 지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어느 날, 그이가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갔는데 몸짱 도둑이 현관에 서 있어 숨이 넘어 갈 정도로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조심스레 봤더니 다름 아니라 그게 바로 등신대 배용준 포스터였단다. 벌써부터 ‘한류’ 팬이 돼 정신이 빼 나간 그 집 사모님이 집 한 채를 온통 ‘한류 스타’ 사진과 포스터로 장식해 놓았단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일본 영화는 보되 한국 영화는커녕 헐리우드 영화도 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하도 권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따라 보게 됐단다. 그런데 말이다. 남을 잡으려다 제가 잡힌 꼴로 푹 빠져 버려 한국 영화를 거슬러 보게 돼 불과 5년도 안 됐는데도 이젠 연간 300편을 본다는 당당한 광이 됐단다. 오죽 빠졌으면 이렇게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는 주로 2000년 이후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봤는데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커서 그랬다.

  그러던 2004년 1월, 역사적으로 의의 깊은 일본 문화 전면 개방을 맞이했다. 이걸 계기로 한국과 일본은 문화 레벨 교류를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듣건대 거기에는 한국 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이창동 감독과 일본 정부 문화청 장관 가와이 하야오 씨 들의 꾸준한 노력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정부 문화청 문화부장이었던 데라와키 씨도 문화청 장관 가와이 씨를 따라 적극적으로 문화 교류를 위하여 한몫을 하게 됐다. 모든 건 부산에서 시작됐단다. 처음 방문한 나라, 처음 걷는 부산의 거리, 시내가 온통 영화제로 들끓던 광경에 감격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건 일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잖는가. 가뜩이나 도쿄국제영화제가 영향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였으니 말이다.

  놀라움과 초조감에 빠진 그이 곁에서 한국 측은 영화제 운영에 관한 모든 프로세스를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때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찰한 게 큰 도움이 되었고, 계속 산더미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침이 됐다고 했으며, 지금도 우의 깊게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이는 이번 강연에서 일본 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이처럼 보게 됐느냐를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의를 끝맺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여 본격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져 단계적이나마 일본 문화가 개방됐다는 것에서 가장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고 했다. 아울러 2002년에는 한일 공동 개최 월드컵을 대성공으로 끝내고,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민주화가 성숙돼, 그것이 2004년 일본 문화 전면 개방으로 이어져 그 이후로 일본과 한국이 평화지향, 문화 존중, 인권 중시 같은 기본적 가치관을 거의 완전히 공유하게 된 데에 있다고 했다.

  강사는 그러니 두 나라 국민이 사회에 대한 같은 고민이나 같은 개혁의식을 가졌더라도 별로 이상한 현상이 아니잖는가, 더구나 몇천 년 전부터 자꾸 왕래를 해 온 이웃 나라인데 한국 영화를 보는 게 일본 영화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잖는가 하고 몇 번이나 거듭 말했다.

  나는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유구한 역사 가운데 고작 몇십 년 동안만이 이웃 나라 일본에 의해 잘못된 관계가 돼 버린 것임을 새삼스레 생각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여러모로 움직인 결과 오늘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강연회 강사가 선택한 한국 영화 상위 1위부터 5위까지를 참고로 적겠다.
 

  1. 박하사탕  2. 살인의 추억  3. 오아시스  4. 나쁜 남자  5. 괴물
  난 여기서 위에서 순위 매겨진 작품을 그가 어떻게 해설했는지는 아예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사람들 반응이 궁금하다.


  내가 고른 한국 영화 (2000년~2006년 작품)

  1.왕의 남자  2. 역도산  3. 웰컴투 동막골 4. 공동경비구역JSA 5. 오아시스 6.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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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나오지 않는 노동자 이야기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두 달이 넘도록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억수와 같이 비가 쏟아져도 촛불은 꺼지지가 않는다. 시청광장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면 유모차를 탄 아이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까지 만날 수 있다. 녹음기 마이크를 슬며시 들이대면 갖가지 사연이 흘러나온다. 서울광장은 서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고 달래는 공간이 되었다. 촛불 문화제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대전의 콜텍 조합원은 서울 본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천의 테트라팩도 다국적 기업과 맞서 아직 싸우고 있다. 반가움은 잠깐이고 답답함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촛불이 미처 비춰 줄 수 없는 설움과 눈물이 너무도 많아 속상할 뿐이다. 서울광장에 모인 기자들의 카메라를 보면서 참담해진 순간도 있었다. 1000일을 넘기며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이 이제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싸움도 1년을 훌쩍 넘었다. 지난 여름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쫓겨난 이랜드 노동자들이 농성을 했던 홈에버 상암점에는 다시 농성 천막이 들어섰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 6월 25일 남대문에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을 찾아갔다.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가슴에 매단 천에는 하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 밑에 자그마한 글씨로 ‘비정규직의 뻥 뚫린 가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공공 기관이다. 서민들의 전세 자금, 연금, 학자금 들을 대출해 주는 곳이다. 5백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백여 명은 계약직 직원이다.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만들어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정책이다.

△ "사람은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

  계약직 직원은 보통 11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했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2년이 넘은 비정규직은 이제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공공 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되는 오는 7월에는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기 계약직이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광주지사에서 근무하는 이재석 씨는 지난 3월에 익산센터로 옮기라는 제의를 받았다. 계약직인데 익산으로 옮겼다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었다. 아내도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용이 안정되지 못한 이재석 씨에게 아내의 수입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전학시키는 일도 부담이었다.

  회사에서는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2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오는 7월에 당연히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서른여덟 이재석 씨는 결심했다. 이제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데 뭐가 걱정이냐. 맞벌이를 하던 아내에게는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이제 갓 입학한 아들도 전학을 시켰다. 집도 팔고 익산으로 일터를 옮겼다. 익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게 4월 3일이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이재석 씨는 어김없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익산센터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컴퓨터를 켜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을 하였다. ‘계약 인력 운용’이라는 제목으로 부사장 이름의 공문이 올라와 있었다. 이재석 씨는 무기 계약직 전환에 대한 대책이 발표된 줄 알고 기뻐서 클릭을 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공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채권추심에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을 계약 해지를 한다는 공문이었다. 업무를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직원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각 지사와 센터는 신규 직원에 대해서는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직으로 뽑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말했다.

  “능력이 없어서 쫓겨나거나 성실하지 못해서 계약 해지되었다면 억울하지 않아요. 업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상관없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2년 이상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는 거잖아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불안해도 11개월에 한 번씩 자동으로 계약을 갱신했는데 이게 뭡니까.”

  또한 계약직 직원들은 공공 부문 개혁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공공 기관 개혁을 하라고 하니 계약직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예요. 정규직을 구조 조정할 수 없으니 계약직 직원들이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으로 전환되는 걸 막아 개혁을 했다고 하려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하던 업무는 계속 필요합니다. 저희가 나가는 자리를 단기 계약직으로 충원한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식 공공 기관 개혁의 실상이에요.” 6월 3일 공문에는 계약 해지자 명단이 없었다. 더는 계약 갱신 없이 모두 해고라는 통보였다. 그날 밤 퇴근을 한 이재석 씨는 차마 아내에게 이달 말로 계약 해지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 "정규직화 실시하라." 노동자들의 바람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여보,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림만 하는 것도 이제 몸에 익네.”

  아내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말을 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식탁으로 달려와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화났어?”

  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는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목소리에 이재석 씨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재석 씨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이대우 씨는 계약직 직원을 일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행동이라고 분노를 했다.

  “계약직이라지만 회사에서 2년 넘게 근무해 온 직원들이 아닙니까. 최소한 한두 달 시간을 두고 해고 통보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모두들 집안의 가장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6월 3일에 달랑 전산망에 공문 한 번 올리고 그달 말에 회사를 나가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다른 일자리 알아볼 짬이라도 줘야 맞는 것 아니에요. 계약직 직원들이라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금융계에 근무한 베테랑이에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정말 자존심을 뭉개는 짓이에요.”

  이대우 씨는 평화은행에서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아이엠에프 때 은행들이 구조 조정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가로놓인 높은 벽을 하루에도 몇 차례 경험을 했다. 취재를 하고 돌아서는데 계약직 직원들이 물었다. 오늘 몇몇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가 왔는데 언론에서 다뤄 주겠냐고 묻는다. 얼마 전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취재를 해 갔는데 갑작스레 촛불 집회 관련 내용으로 바뀌어 방영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알 수 없다고 답을 했다. 해고를 앞둔 계약직 직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한국주택금융공사 노동자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 "비정규직 법안을 악용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를 규탄한다."

  나흘 뒤,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에 전경차가 8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보 게재에 맞서 성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몰려 나온 날이다. 물대포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생중계하던 날이었다. 노란 비옷을 입고 물대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재석 씨로 보였다. 주홍빛 조끼를 입은 기륭전자 노동자도 보였다. 이랜드 노동자도 보였다.
 
얼굴에 맺힌 물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겠다.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에 맞아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울광장에는 한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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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 30. 17:20 알림 / 엮은이의 글

<차례>

    4  사진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8   엮은이가 독자에게
    9   원고를 기다립니다
   10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2  문제아는 문제 없다   박수주
16  돼지 잡기  박용섭
20  사랑인지 집착인지  김신애
25  풀베기   박준성
28  여성의 일과 삶  
      군식구  안미선
32  삶이 있는 만화  정재훈
34  살아온 이야기(10)  큰딸이 시집간다  김재영
39  오도엽의 일터 탐방  
      성신여대 청소 용역 엄마들    
45  일터에서 온 소식
      섹시스타 ‘이효리’가 입은 간호사복   이숙희    
49  세상의 중심에서 십대가 외친다
      성장통   김수민
53  농촌 들녘에서 보낸 편지  
      사람 냄새 나는 마을   김근희
기획 특집 _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재일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김송이
57  강좌
74  질문과 답변
77  뒷이야기

79   만화로 보는 세상  이성열
우리 밖의 우리
  80  함께 읽는 북녘 글  동자삼  
  83  북녘 남새 요리  감자멸치국
  84  재일 조선인 이야기  꿈 같은 여름방학   김미자
  88  이주 노동자  잔인한 난민 입증 요구   이정원

세상 보기
   92 박종남 노무사의 현장 노동법 이야기  ‘빼앗긴 권리’와 ‘빼앗을 권리’
   94 국제중학교 문제   경쟁은 교육에 해롭다   강경구
   98 정태인의 쉬운 경제 이야기  박형준 홍보기획관에게

그때 거기, 지금 여기
  102  인물 바로 보기  깨물지 못한 혀  방학진
  106  여민락  토우  김산하
  112  그때 거기, 지금 여기  부마항쟁이 시작된 곳     김종세

쉬엄쉬엄 가요
  118  우리말 산책  뒤침과 옮김  김수업
  120  생명을 살리는 밥상  천사의 음식  윤혜신
  124  노동자 문화 산책  플라톤이라는 철학자  박홍규
  128  시사 풍자 음란 만담   청기와 주식회사
  130  함께 읽고 싶은 책  집 없는 사람이 사는 법    김승태
  132  새로 나온 책
  135  독자사업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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