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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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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최선희/ 부천실업고등학교 교사



  작년, 재작년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다음번에는 꼭 취업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아이를 바라보는 담임과 취업 교사의 차이를 느껴 보고 싶었고 내 스스로 좋은 조건의 회사를 발굴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도 아이들을 취업시킨 적은 있으나 우리 반에 한정된 주먹구구식의 취업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올해는 1학년 전체를 취업시켜야하는, 말 그대로 취업 담당 교사였기 때문에 신입생이 들어오기 전인 2월 달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며 회사를 확보하려고 동분서주하였다.

마음이 급한 가운데에 생활정보신문, 기존에 재학생이 취업되어 있는 회사, 노동부 워크넷을 주로 이용하여 취업 회사를 발굴하였다. 취업 경험이 많지 않아, 일단 전화를 하여 우리 학교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을 직원으로 써 준다고 하면 ‘아이고, 주여’ 하며 아이들을 취업시켰다. 학기 초라 취업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때여서 아이들을 써 주기만 한다면 너무나 고마운 그런 때였다.

  그러던 중에 생활정보신문을 보고 한 회사에 전화를 하니 흔쾌하게  여덟 명 정도를 고용하겠다고 하였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 회사를 확장하면서 한 라인을 우리 학교 학생으로만 돌리겠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이 출근하고 이틀이 지나서 여자 아이 두 명을 해고했다. “한 명은 왼손잡이고 한 명은 손이 너무 느리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남학생 세 명과 여학생 한 명을 해고했다. “각자 제 몫을 하지 못한다.”

  마치 여덟 명을 데려다 놓고 경쟁하듯이 일을 시켜 놓고 그중에서 제일 잘 하는 놈, 돈이 되는 놈, 두 명만 남겨 놓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행위가 하도 괘씸해서 따졌다.

  “우리 아이들이 일한 경험이 없으니 처음부터 잘하리라는 기대는 안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일단 지각, 결근만 안 하게 지도해 주면 나머지는 자식 키우듯이 여유 있게 바라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달은 지켜보고 월급은 주고 자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그 회사에서는 “회사가 뭐냐, 돈을 바라보고 하는 데가 아니냐? 그날 생산량을 못 맞춰 주면 같이 갈 수가 없다. 이것저것 떠나서 돈이 되지 않는 애를 어떻게 데리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워메, 열 받는 거… …. “아니, 그래서 면접 보기 전에 우리 아이들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지각, 결근하지 않고 성실하게 출퇴근 잘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하면 미우나 고우나 아이들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달은 일해 보고 결정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했지만, 이미 상대는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표정이었다. 이어서 마지막 남은 에이스 두 명은 근근이 잘 버티더니 한 달 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 후로 이틀 만에 해고된 친구부터 한 달 만에 그만둔 친구들의 급여는 회사 측의 말도 안 되는 이유와 억지, 그리고 횡포로 그만둔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학기 초에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일 처리를 했나? 취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주면 주는 대로, 이게 쓴 건지 단 건지도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는 좀 냉철해지기로 하였다.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가기 전에 먼저 회사를 탐방하는데, 이제는 좀 거리를 두고 생각하려고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라고 하면 좀 거창하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고용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길고 느긋하게 봐 주기를 말씀드린다. 갈 때마다 “자식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린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자식이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고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는 걸 알 테니까… ….

  요즘은 영화 제목 중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가 생각난다. 나는 취업부 일을 한 지 얼마 안 되고 1학년 아이들도 처음 일하는 것이어서 우리는 서로 많이 얼었다. 일자리 찾느라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어떤 일에 관하여 깊고 넓게 보지 못한 면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일을 해야 생활이 유지되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지각, 결근을 하여 어렵게 구한 회사를 하루 만에 잘린 놈, 월급 받고 바로 튀는 놈, 아예 우리 학교와 회사와의 연을 끊게 만든 놈들이 있고… …. 많은 것이 우리를 얼게 만들었다.

  그래서! 1학기 때 회사에서 두 번 이상 잘린 아그들에게 고함. 이제 우리 서로를 죽이지 말고 생기발랄하게 살아 보자. 한 학기 동안에 선생님 가슴에 못 박을 건 다 하지 않았니? 우리 2학기 때는 멋지게 부활하는 거야. 2학기 때도 1학기 때처럼 하루 만에, 일주일 만에 잘리고 온다면 선생님은 그냥 콱! 아우~. 생각만 해도 혈압 오른다. 그러니 우리 서로 웃으며 재미있게 살길 바래~.

  

posted by 작은책
2008. 9. 22. 11:53 기획 특집

<혁명은 다가오는가> 9월 25일 손석춘 선생님 강연이 있습니다

작은책 강좌가 벌써 열한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오는 9월 25일 목요일에 열리는 강좌는 <혁명은 다가오는가>라는 제목으로 손석춘 선생님이 하실 차례입니다. 손석춘 선생님은 현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으로 계십니다. 

손석춘 선생님 약력

학력 : 연세대학교 철학과 - 고려대학교 정치학 대학원

"새사연 원장. 언론학 박사. 현재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손석춘의 주권학교> 강의를 맡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공동대표,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4년 한국경제신문

1987년 동아일보

1991년 한겨레신문 기자

1999년 한겨레신문 편집국 여론매체부 부장

2000년 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 위원

2002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EBS `월드 FM 손석춘입니다` 진행

저서 

신문 읽기의 혁명 (1994, 풀빛)

언론개혁의 무기 (1997, 개마고원)

여론읽기 혁명 (2000, 한겨레신문사)

아름다운 집 (2001, 들녘)

유령의 사랑 (2003, 들녘)

R통신 :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손석춘의 러브레터 (2002, 한겨레신문사)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 : 한국의 친일 언론은 어떻게 부자신문이 되었는가? (2002, 한겨레신문사)

아직 오지 않은 혁명 : 손석춘의 시대, 청년, 종교, 교육 읽기 (2003, 월간말)

최근 저서 - <주권혁명>(시대의 창)

 

문의 : 작은책 02-323-5391

홈페이지 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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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9. 11:00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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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열 번째 강연 - 재일 한국인이 쓴 낫짱이야기

8월 21일 목요일 7시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 김송이 선생님 강연이 있습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는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요. 어릴 때부터 일본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살아온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학교에서 '가난뱅이 센진'이라고 늘 놀림받고 차별을 받으면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온 김송이 선생님. 어릴 때 이야기를 《낫짱이 간다》《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출판사)라는 책으로 냈습니다. 어릴 때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 자신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누구든지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녀를 씩씩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 또 자신들도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은 분들,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고 싶은 분들은 이번 주 목요일 작은책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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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이 선생님은 194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조선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사카 조선 고등학교에서 2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일본 학교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두 나라이 작품을 번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차별에 맞선 조선 아이 낫짱 이야기《낫짱이 간다》《낫짱은 할 수 있어》를 썼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다룬 만화 《맨발의 겐》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동화《밥데기 죽데기》

박기범 동화집《문제아》같은 우리 아동 문학 작품을 번역해 일본에서 펴냈습니다. 

약력 

1959년 3월 오사카시립 후카에소학교 졸업

1962년 3월 오사카시립 도요중학교 졸업

1965년 3월 오사까조선고급학교 졸업

1969년 3월 조선대학교 문학부 졸업

1969년 4월 ~ 1996년 3월 오사까조선고급학교 교사

현재 일본 긴끼대학 등에서 강사로 일함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맹원

국제고려학계 회원

 

저서에 중편소설 <조청반장> 등

역서에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긴 <맨발의 겐>전 10권

한국어를 일본어로 옮긴 <밥데기 죽데기> , <문제아>,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우리들의 손>, <비밀의 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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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도 불온서적으로 선정하라

  아내와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녀온 뒤 집에 와서 며칠 지난 한겨레를 펼쳤다. 오잉? 이게 뭐야? <국방부 ‘홍보’ 덕분에… ‘불온서적’ 판매 불티 나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불온서적? 별 웃기는 짬뽕들이 다 있군. 잃어버린 10년이니 어쩌구 하더니 정신을 잃어버렸나 보다.

  기사를 읽어봤다. 대중성 높은 인문교양서와 수십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불온도서’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다섯 배에서 일곱 배가 더 팔린다는 소식이다. 그 기사엔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 책이 ‘불온도서’로 선정됐다고 나와 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책은 나도 샀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무척 많이 팔린 책으로 알고 있는데 불온도서라고? 정부 하는 짓들이 하도 그러니까 무덤덤하다. 그런가보다 하고 월요일 치 신문을 들췄는데 어라? <우석훈, 진중권 등, 국방부 조처에 익살․조롱>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기사에 정태인 선생 이름이 나온다. 정태인 교수가 지난 2일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에 “(여러 사람과 함께 쓴)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책도 불온서적 목록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제목의 선정성이 선정 기준이었던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책은 작은책 12주년 기념으로 내가 강연을 기획해서 정태인, 홍세화, 하종강, 이임하, 박준성 선생이 강연한 내용을 ‘철수와 영희’ 출판사에서 책으로 펴 낸 것이다. 강연한 사람 가운데 나도 물론 포함돼 있다. 그런데 그 책이 불온서적 목록에 들어갔다고?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온하다는 말을 들으니 이거 참 영광(?)이군 하면서도 은근히 열 받는다. 역사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에게 재단을 당하다니. 그런데 ‘불온’이라는 말이 뭘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온당하지 않음’이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일부 명사 앞에 쓰여)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이라는 뜻이란다. 아하, 그러니까 내용은 둘째치고 자기들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면 불온한 거군.

  8월 6일 휴가가 끝나고 회사로 나와 국방부 민원실에 전화를 했다. 내가 누구인지 자세히 밝히고 그 책이 불온도서 선정이 된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담당하는 부서 바꿔 드릴게요” 하면서 정보 본부 보안과라는 곳으로 전화를 돌려준다.

  “보안과 김○○입니다.”

  “김 뭐라고요?”

 나는 이름을 먼저 알고 싶어서 물었더니 대답은 안 하고 누구냐고 묻는다. 다시 설명했다. “이번에 국방부에서 불온서적 목록을 발표했는데 그 책 가운데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를 쓴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안, 건, 모입니다. 실례지만 전화 받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죠?”

  “아, 김 서기관이라고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어 하는 말이 그런 건 민원실을 통해서 하란다.

  “민원실을 통해서 거기를 바꿔준 겁니다. 전 단 한 가지, 불온도서 선정 기준이 뭔지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거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아, 그 내용 홈페이지에 다 나와 있어요.”

  “내가 지금 국방부 홈페이지를 열어 놓고 있는데 어디에 나와 있지요?”

  “아, 제가 확인을 못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건 확실한가요?”

  “그건 잘 모르고 대변인실에 확인을 한번 해 보세요.”

  “거기가 담당 부서라면서요?”

  “아, 저는 책임자가 아니라 실무자라서 잘 몰라요. 그리고 제가 지금 회의를 가야되거든요. 죄송한데 전화 끊겠습니다.”

  삐, 삐, 삐! 소리가 들렸다. 어? 전화를 끊어? 이 사람이 내가 얼마나 집요한지 모르는군. 다시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이번엔 대변인실을 바꿔 달라고 했다.

다시 아까와 똑같이 물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하는 말이, 그건 정보본부 보안과가 담당이라고 했다.

  “거기서 대변인실로 전화하라고 해서 거기로 한 겁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마 직원 분이 아니라서 잘 모르고 그랬나 봅니다.”

아니, 직원이 아닌 사람이 왜 전화를 받아? 우리나라 국방부가 이 정도야? 불온도서 선정보다 내부 직원 선정이나 잘해라. 속으로 생각하면서 집요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두 시간 안에 다시 전화를 드릴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도 전화가 안 온다. 세 시간이 넘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엔 공보 담당이라는 곳으로 전화번호를 알려 준다.

  “돌릴 테니 혹시 끊어지면 748-6728로 다시 하세요.”

  돌린다더니 삐, 삐, 삐 소리가 들린다. 다시 전화를 돌렸다. 똑같은 내 소개를 하고 똑같은 질문을 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화 받은 곳은 문화부란다.

  “이리로 하시면 안 돼요. 여긴 문화부입니다. 748-2340으로 하세요”

  “전화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네요. 속이는 거 같아 영 기분이 안 좋네요”

  ‘지금 장난하는 거야?’ 하는 말 대신에 부드럽게 말했다. 나이 드니까 성질 많이 죽었다. 역시 전화를 돌려준다고 하더니 삐, 삐, 삐 소리가 들려 온다. 또 전화를 끊었다. 허 이것 봐라. 일부러 그러는 거야, 시스템이 엿 같아서 그런 거야? 국방부 시스템이 이 정도야? 이래 가지고 나라 지키겠냐? 오기가 생긴다. 우리나라를 지키려면 내가 포기하면 안 될 듯싶다. 다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네,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전화 통화중이라서 좀 이따 하세요. 아, 잠깐만요. 전화 통화가 끝났네요. 바꿔 드릴게요”

  드디어 보안 정책 과장이라는 사람과 통화가 됐다. 이름을 알고 싶어서 물었지만 가르쳐 주지 않는다. 켕기는 게 있나? 왜 자기 이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할까. 음, 이름이 알려지면 이북에서 테러 대상자로 찍힐까 봐 그런가 보다.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치면 안 되지. 내가 이해를 해야지. 다시 내 소개를 하고 불온도서 선정 기준을 물었다. 열심히 설명을 한다.

  “우리 군대에 세 가지 정도 근거가 있는데요. 대통령령으로 정한 군인 복무 규율이 있고 국방부 훈령으로 나온 병영 생활 규정이 있는데요…….”

  그러면서 ‘허가되지 않은 불온서적물은 반입을 금지하고 불온 표현물 소지와 전파를 할 수 없고 취득시에는 신고를 해야 하고 국방부 훈령으로 된 군사보안업무시행규칙에는 부대에 반입, 반출하는 모든 자료는 부서장이 보안상 검토를 실시하고…….’ 한참 설명하기에 잠자코 들었다.

  “네, 그건 알겠습니다. 당연히 부대에 그런 규칙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이 불온도서 목록에 올랐죠? 그 기준이 뭐죠?”

결국 정책 과장이라는 사람은 그 선정 기준을 말했다.

  “그 기준이라는 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단체에서 군대에 도서보내기 운동을 한 책을 기준으로 한 겁니다.”

  “이적단체요? 한총련을 말하나요?”

  나는 한총련이 이적 단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들은 말이 있어서 넘겨짚었다.

  “그것도 포함합니다. 엄연히 93년도에 이적단체로 법원에서 판결이 났죠. 그런 책들이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약화, 저하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판단해서 불온도서 목록으로 선정한 거죠. 어느 부분이 그렇냐고 물으면, 그것이 몇 페이지 몇 줄에 나와 있는 게 아니고…….”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는 왜 불온도서 목록에 올랐죠?”

  “그게 전체로 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한두 줄 문장에 그런 게 나오죠.”

아니, 금방 몇 페이지 몇 줄에 나와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이번에 한두 줄 문장이 그렇단다. 이랬다 저랬다 도대체 논리가 없다. 말이 바뀌는 것도 우습지만 책을 전체로 봐야지 한두 줄 문장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이 사람도 조선일보 애독자인가 보다.

  “책은 읽고 하나요? 다 읽으셨습니까?”

  “선정한 곳에서 다 읽었습니다.”

  “그럼 한홍구 선생님이 쓴 <대한민국사>는 <한겨레 21>에 나온 글을 책으로 낸 건데 <한겨레 21>도 불온 도서 목록에 올라야 하겠네요. 그 책은 왜 오르지 않았지요?”

  “한겨레 21이요?”

  “네, 한겨레에서 나온 주간지 모르시나요? <대한민국사>는 그 책에 나온 글을 책으로 엮은 거죠.”

  “사실 불온도서가 더 많죠. 우리나라에 그것밖에 안 되겠습니까.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리고 이번에 불온도서 목록 발표는 언론에 저희가 고의적으로 낸 게 아닙니다. 비공개로 군내에서만 문서 작성을 해서 발표한 걸 한 신문사 기자가 공개한 거죠.”

  “불온도서가 더 많은데 찾아내지 않으면 직무 유기 아닌가요? 그리고 불온도서 선정이 정당하면 신문사에서 발표한 게 왜 문제가 되죠? 오히려 널리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만일 그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불온도서 목록을 취소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할 생각은 없나요?”

  그 사람 대답은 ‘(사과할 생각이)없습니다’였다. 그러면서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한다. 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뭐가 죄송한 거지? 자기들이 올바로 판단했으면 죄송할 일이 없을 텐데. 오히려 정당한 판단이었다고 주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경찰에 알려 불온 서적을 낸 출판사, 그 책을 파는 서점,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알라딘이나 예스 24시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국방부 추천도서, 아니 ‘불온서적’ 판매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왜 안 잡아들이나? ‘철수와 영희’ 출판사는 책 주문이 들어와 인쇄를 또 하고 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왜 안 잡아들이나? 하긴 그러려면 수십만 명을 잡아들여야 할 테니 아마 엄두가 나지 않을 거다.

  요즘 세간에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국방부 장관을 비웃는 글들이 엄청 떠돌아 다닌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씨는 “금서 목록에 내 책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 아닌가’ 깊이 반성했다”고 비꼬았고 진중권 교수는 “내 책이 병영에 들어가 병사들의 정신세계를 감염시켜도 무방하다는 말이냐”며 조롱하고 있다. 어떤 이는 ‘머리 숱 없는 어느 대통령이 통치할 때 전형적인 친자본주의 이론가인 막스 베버의 책도 불온서적 목록에 올렸는데 그 사연인즉, 대머리 대통령의 검열관들이 '막스'를 '맑스'로 오인했던 것’이라는 보기를 들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함과 무식함의 내공을 어찌 따르랴.’고 했다. 덧붙여 ‘최소한 불온서적을 선정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마당에 이 정도의 열정과 노력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웃겨 한여름 더위를 잠깐이나마 잊게 하고 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왜 우리 <작은책>은 불온서적 목록에 선정이 안 된 거야? 우리 <작은책>이 반정부, 반미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책이라는 걸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책 내용도 모르고 불온도서 목록을 선정하는 국방부. 내가 일하고 있는 작은책 사무실로 와 보면 입이 째지겠다. 작은책에는 국방부가 선정할 만한 불온도서 같은 책 말고는 없으니까 말이다.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도 항의를 받고, 안 오른 사람한테도 비꼬는 투의 항의(?)를 받는 짓을 벌인 국방부. 전라도 표준말로 으째야쓰까잉!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posted by 작은책
2008. 7. 30. 13:38 둘레/역사와 산
이번 주 8월 10일 일요일 홍천 팔봉산 산행

운영자


△ ⓒ팔봉산에서 바라본 홍천강


팔봉산에서 바라본 홍천강

8월 10일(일요일 하루)은 홍천 팔봉산입니다. 신청하실 분은 역사와 산 홈페이지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historymt.co.kr/

[169회정기산행] 팔봉산 (302m, 강원 홍천)
모이는시간:2008년 8월 10일(일) 오전 07:30

모이는장소:시청역 삼성본관앞

산 행 일정:팔봉산, 홍천강

준 비 물:등산복,등산화,물,행동식, 물놀이 준비

회 비:일반 30,000,중.고등학생 15,000, 초등 1만원
<
홍천강 안고도는 톱날 수석>
팔봉산은 산 같지도 않은, 300미터가 조금 넘는 동산이다. 그럼에도 같은 이름의 어떤 산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이다. 여덟 봉우리가 모두 바위로 되어있어 하늘금이 둥근 톱날처럼 역동적이고 스릴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 작은 산이지만 대개의 등산객들은 팔봉 넘기를 다 하지 못한다. 철계단과 쇠줄까지 쳐있는데도 마지막 봉우리는 포기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작아도 강단(剛斷) 있는 산이다.

발치 3면은 홍천강이 싸고돈다. 강물은 깊푸르나 물가에는 모래벌이 펼쳐졌다. 그냥 모래 하얀 수반(水盤)에 물이 잘박거리는 수석(壽石)인 것이다. 요산요수를 겸하기에 이보다 나은 데가 있겠는가?

강 건너 서쪽의, 늪둔지라는 우각호(牛角湖) 가에는 밤나무숲이 울창하다. 근래 오토캠핑장을 만든다며 많이 베어버렸지만 아직도 옛모습이 꽤 남아있고 옛 강길도 띄엄띄엄 그대로 있다. 이런 명산(名山)영수(靈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교통이 불편한데도 사람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

추천코스
매표소 원점회귀 ▷ 총 3시간(8봉을 생략할 경우 2시간)
매표소-(40분)-1봉과 2봉 사이의 새목-(10분)-3봉-(30분)-4봉-(15분)-7봉과 8봉 사이의 새목-(1시간)-8봉 너머 강변-(25분)-매표소

산행포인트
산행은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있는 매표소에서 시작한다. 1봉과 2봉 사이의 새목으로 오르게 돼있는데 약간 가파른 등성이길이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새목에 올라서면 1봉을 다녀온다. 정상에 산신당 아닌 용신당(龍神堂)이 있다.

등산로는 2봉을 생략한 채 바로 3봉으로 가게 되어있다. 상봉이면서 전망 또한 최고인 봉우리다. 앞으로는 4·5·6·7봉의 연산(連山), 좌우로는 남북 강물을 다 내려다볼 수 있다.

4봉에 이르려면 ""산부인과 바위""라는 이름의 좁은 굴을 빠져나가야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산고(産苦)의 지점으로 여기서 혼쭐이 난 뒤 8봉 직전의 ""전문장비를 휴대하지 않은 등산객은 등반을 삼가라""는 안내판을 보고나면 미련없이 하산해버린다. 그렇지만 8봉이 안내문처럼 위험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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