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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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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1월호

일터 이야기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이팝 노동법률사무소, 작은책 자문 노무사

  

 

박미래 씨(가명, 40)는 올해 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경력이 있었기에 일을 시작하고 담당 업무인 회계 경리 업무를 거침없이 해 나갔습니다. 회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클럽입니다. 박미래 씨는 근로계약서를 요구하고 4대보험 가입을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박미래 씨가 입사한 지 한 달 뒤에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사유는 사업주 명령 불이행이었습니다.

해고통지서를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뛰고 그저 두려웠습니다. 둘레에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법대로 해 보자.’ 하고 의지를 다지며 노동위원회라는 곳에 가서 직접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이 접수된 것을 알고서는 바로 업무 복귀를 명령했습니다.

회사는 첫 번째 복귀한 날부터 본격적으로 감시와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중 개인 휴대폰 사용 금지, 화장실도 최소 시간으로 다녀올 것, 잡담 금지를 지시하고, 모든 업무에서 배제하고 그날그날 업무만 지시했습니다. 뭐만 하면 꼬투리부터 잡고서 경위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당당하게 업무 지시에 따라 일을 했는데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여 작성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경위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경위서 작성으로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여러 날입니다.

경위서가 여러 장 쌓이자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박미래 씨를 해고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직접 접수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했습니다. 회사도 어디서 법률 자문을 받는지 반박 서류를 치밀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박미래 씨는 그보다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부당해고 이유서를 노동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징계 해고는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는 이번에도 복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복귀하는 날 출근하니 회사가 그 사이에 이사를 갔습니다. 문 닫힌 회사 건물 앞에서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대표님, 어디로 갈까요?’ 회사는 그제야 박미래 씨에게 문자로 옮겨 간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박미래 씨가 두 번째 복귀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회사는 코로나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는 핑계로 일방적 휴직 명령을 내렸습니다. 박미래 씨는 3개월 뒤에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인력 재배치를 한다는 이유로 다시 출근한 박미래 씨에게 회계 업무와는 전혀 다른 재고 업무를 시켰습니다. 박미래 씨는 꿋꿋하게 출근을 하며 무거운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고 파악 업무를 했습니다.

회사는 다시금 박미래 씨만 콕 집어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세 번째 해고 사유는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였습니다. 박미래 씨는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노동위원회를 세 번째 찾아갔습니다. 문래동에 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가는 길이 익숙해질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판정에서도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했습니다. 회사의 해고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부당해고 인정을 받은 날 회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세 번째 복귀 명령입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박미래 씨에게 야간 업소 입구에서 체온 측정 등의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유 없이 거부당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주변 건물의 화장실을 찾아 어두운 길목을 뛰어갔다 와야 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지금도 회사의 괴롭힘에 맞서 힘쓰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감시, 이유 없는 업무 배제, 알 수 없는 업무 배치, 업무 시설 사용의 제한, 부당해고와 싸우는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에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동료들은 괴롭힘인 줄 알면서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외면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97월에 시행되었습니다. 그 인정 요건은 첫째, 가해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둘째, 그 행태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셋째,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등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률(근로기준법 제76조의2, 76조의3, 109조 제1)에는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반쪽짜리 규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업주에게 괴롭힘 신고를 한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회사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음에도 별도의 조치가 없는 경우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청은 이 경우에도 사업장 지도 개선 방식에 머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싸울 때 동료 근로자들의 외면 그리고 입증 책임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동료를 외면하지 않고 응원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 곁에 열려 있는 <작은책> 노동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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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5:20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엮은이의 글 

 

2021년 새해를 맞습니다. 지난 1년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참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날마다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인지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느라 작은책도 연말연시 모임이나 행사는 아예 계획하지 않았고요, 다달이 독자분들과 유일한 소통 창구인 글쓰기 모임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인터넷으로 접속을 하니 멀리 지방에 계신 독자분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시절에 맞게 독자님들께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새해부터 안건모의 사람여행연재를 시작합니다. <작은책>과 인연이 있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삶을 여행하고자 합니다. 1월호 사람여행의 첫 주인공은 제주도에서 집 없이 사는 최성희·최상천 부부입니다. 맘 편히 여행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니 <작은책>을 읽으며 함께 사람여행을 떠나기로 해요.

올해도 <작은책>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새로 시작한 꼭지의 필자님들과 함께 다달이 웃고 우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작은책> 자문위원인 정태인 님의 희망의 경제학과 홍세화 님의 낮은 곳, 나의 자리로도 연재됩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작은책>은 작고 낮은 곳에서 독자님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1215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제주 니어링 부부 최씨네안건모

24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26 추접스런 젊은 여자의 김장 체험기 장진영

29 코로나19로 노인 연대가 핀다 고현종

33 1인 가구, 수술 동의서 서명은 어떻게? 권영란

37 아버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다 전혜진

43 50대 백수 아줌마의 가출, 문제는 이다 김영주

47 살아온 이야기(1)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 최현숙

53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국보 빵잽이 미국 변호사 되다 남수경

57 우리 동네 주치의

조폭 아저씨의 신박한 건강법 추혜인

61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저기요, 고객님? 체온 재게 마빡 좀안정선

66 남해 바다 어촌 일기

물고기들이 자를 들고 다닌다? 황은주

70 제소라의 아는 여자

아는 여자를 시작하며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4 우리가 뉴스다 윤미영

80 신나게! 독하게! 당당하게! 정민규

86 한 시간가량 소명했는데 귓구녕이 막혔나 최창덕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부당 징계에 대항하는 법 김예지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낮은 자리, 가장자리가 편해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희망의 경제학을 시작합니다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근대 문명을 버려야 행복한 생태 문명 박병상

124 어린이 해방과 평화

대우주의 말초는 오직 어린이에게 있습니다 이주영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녀들이여, 두려움 없이 말하라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대한민국 9급 공무원

 

 

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차 9급 공무원이다. 내가 일하는 주민센터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민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거다. 어떤 때는 정말 다들 손에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리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에는 정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진다. 점심시간 중에도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민원을 봐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 잘릴 염려 없고, 어쨌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 나는 운이 좋구나 싶다가도, 한 번씩 인터넷상에서 공무원들을 놀고먹는 철밥통에 세금이나 축내는 한심한 존재로 싸잡아서 얘기하는 댓글들을 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내 경우만 해도 몇 년에 한 번 주민센터에 가서 민원을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뭐 사람들이 그리 있을까 생각들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정적의 시간 동안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주민센터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롭게 일하는 곳으로 비치기도 할 테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화된 지금도 단골 민원인들은 있다. 어떤 민원인들은 마실 삼아 주민센터에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온다. 아침에 번호 대기표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서 오늘은 좀 사람들이 덜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치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듯이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있고, 점심도 체하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화가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질라치면 화를 내고,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 달라고 떼를 쓰는데 안 된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고, 직원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존감 뭉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그야말로, 던진다. 과연 이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 일을, 먹고살기 위해 직업으로 택한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들은 말이다. 비록 '노동자의 날'에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는 하지만, 월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거의 최저시급이고, 민원인들이 갑질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주장을 얘기하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 맘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만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욕도 배부를 정도로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재난 지원금과 관련된 경우였다. 먼저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정부에서 1차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기사가 난 이후 주민센터로 그와 관련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지침도 안 내려오고, 우리도 아는 거라고는 기사로 난 정보가 다였는데 말이다. '지침이 안 내려와서 안내를 드릴 수가 없다'는 답변을 하면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을 위해야 하는 주민센터에서 그것도 모르고 그 정도의 답밖에 못 해 주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재난 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야근에, 주말 출근에,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갔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해외 체류 등으로 지원금 수급의 자격이 안 된다거나, 가족이라 세대 분리가 안 되는 등의 사유로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이었다. 우리도 돈 더 드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럴 땐 진짜 내 월급이라도 까서 드리고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된 경우가 많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괴로웠다. 물론 좋은 민원인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와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인 걸까?

나는, 아니 대부분의 말단 공무원들은, 하루하루 성실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길 원한다면, ‘내가 내는 세금으로 너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러느냐?’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우리도 세금 누구보다 꼬박꼬박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돈이라는 건 원래 돌고 도는 존재라, 그 사람들이 말한 세금이 우리 월급에서 차지하는 지분만큼 나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각종 부문에서 성실히 소비하고 있는 돈이 흐르고 흘러 그들에게 눈꼽만큼이라도 가는 것이니 말이다.

서류 한 장에도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고 미소 지으며 말씀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작은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3:49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2020년 마지막 호입니다. 올해는 기승전코로나였습니다. 요 며칠 새 감염자가 200명 가까이 나와서 거리두기 1.5단계로 가느냐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아무리 한국이 코로나 확산을 잘 막는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인데 얼른 백신이 나와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올해 연재가 끝나는 꼭지가 많습니다. <작은책>을 펼치면 맨 앞에 나오던 책이 이끄는 여행꼭지가 끝납니다. 그 밖에 끝나는 꼭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의 살아온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교장 일기, 시 읽고 감상하기,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옛 그림 속 여성들,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존버 씨의 시간들,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책 읽고 딴 생각, 두꺼비 손글씨입니다. 그동안 마감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글을 보내 주신 모든 필자님들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20211월호부터는 책이 이끄는 여행을 마치고 전국에 있는 <작은책> 독자를 찾아가 그이들의 삶을 인터뷰합니다. <작은책> 독자님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평범하게 사는 분도 있고,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분도 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도 있고, 귀촌·귀농한 분들도 있겠지요. 혹시 찾아간다고 연락을 드리면 거절하지 마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꼭지를 연재해 주실 분은 모두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참,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언제 밝혀지는 걸까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20201118

발행인 안건모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책에만 있는 문학의 자리 하명희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연필 두 자루를 못 사게 했던 남편,

백화점 가라고 카드를 주었다 임지현

18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 백은주

22 오늘도 전쟁 김병수

26 공부만 하는 바보 임혜진

29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3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에헤라디야! 김장 잔치를 벌였구나 윤혜신

39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0 살아온 이야기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시간 김수련

46 시 읽고 감상하기

봄의 기억 박영수

49 교장 일기

교장의 역할과 남은 임기에 할 일 최관의

54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독감 백신 맞아야 할까요?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8 경영진이 큰 착각을 했나 봅니다 정민규

62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일터 남기웅

67 유승민 전의원에 대한 만감(萬感) 최배근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코로나19 시대의 노동과 돌봄 전다운

 

특집_ 내가 아프면 누가 돌볼 것인가

78 딸부잣집 둘째 딸의 돌봄에 대한 고민들 추혜인

84 당신은 어떤 노년을 살고 싶습니까? 박재만

88 돌보는 능력과 돌봄을 받는 능력 이은주

92 여든아홉 살 엄마의 돌봄 강정민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우리도 오르고 싶다, 그 봉우리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아감벤과 백인주의 문명의 몰락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시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흙을 멀리하면 몸이 허약해진다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현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 평가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박물관이 가까워지는 네 가지 방법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서진학교는 문을 닫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삶의 지혜까지 이끌어 내는 과학 책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0. 11. 13. 16:27 기획 특집

<작은책> 11월호

특집_ 전태일 열사 50주기, 아동·청소년 노동

 

 

생계형 알바를 하는 학교 밖 청소년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

  

민주는 스물네 살 청년이다. 열세 살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던 엄마 아빠가 그 무렵 완전히 이혼을 했고, 건강이 나빠진 엄마는 일을 하지 못했다. 민주는 학교 준비물도 사고 친구들과 간식도 사 먹으려고 떡볶이집에서 시급 2000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잠깐 일하고 용돈을 벌려는 생각이었지만, 이후 민주의 삶은 '끝없이, 쉼없이' 일해야 하는 알바 생활로 이어졌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고 이혼한 아빠가 몇 해째 생활비를 보내 주지 않아 민주는 고등학교 입학 두 달 만에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유소, 피시방, 호프집, 제빵 공장. 민주는 몇 달에 한 번씩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일했다. 한동안 일하다가 몸이 지치면 잠시 그만두고 쉬었다가, 돈이 부족해지면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

일하는 곳을 계속 옮기게 되면서, 민주에게는 '불성실하다'거나 '끈기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10대 청소년이 긴 시간을 지속해 일하기는 힘들었다. 일이 어렵거나 정해진 시간을 지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민주를 가장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일터의 사람들'이었다. 사장은 민주가 '당연한 것을 모른다'며 자주 혼을 냈고 민주가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근로계약서나 주휴수당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민주가 의지하고 싶었던, 그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매니저나 선임들은 나이 어린 민주를 무시하거나 텃세를 부리며 일터에서 존재감을 내세우려 했다. 사장이나 선배들이 던지는 수많은 거칠고 아픈 말들을 민주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 지치고 아파 왔다. 하지만 병원에 가거나 쉴 수 없었다. 민주는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자신을 사회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병원에 간다고 조퇴를 하거나 결석을 하면 불성실하고 무례한 아이로 낙인찍히기 쉬웠다. 민주는 아파도 참고 버티며 일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고 일을 그만뒀다.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무서워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거나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민주가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으로 평가되고 기억되는 악순환의 시간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알바가 직업인 청년들

우리 주변에는 '생계형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청년,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악하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놓여 있지만, '알바'라 부르기에는 주 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그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사실상의 직업 노동자들이다.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아무런 지지를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은, 의미없게 느껴지는 학교 생활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닐 무렵인 17세에 첫 알바를 시작한다. 하지만 절박한 생활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한다. 이들 중 35퍼센트는 6개월 이내에, 70퍼센트가량은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생계형알바 실태조사 보고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 2016).

 

'불성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과 싸우는 과정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인내심이 없다',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그만둔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학교'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모르고 부당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겪어 온 '비난과 공격'을 이겨 내는 방법도 아직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처럼 어렵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홀로 참고 마음의 고통과 싸우다가 단절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뿐이다.

민주가 그랬던 것처럼, 10대에게 일터는 어렵고 두려운 곳이다. 너무나 일방적이고 불친절하고 윗사람이나 선배들 관계에 눈치껏 끼어들지 못하면 쉽게 왕따가 되는 힘든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당연한 상식'이라며 되레 혼을 내는 막막한 곳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일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학교'라는 성장의 유예 기간, 친구를 만나 어울리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 좌절과 은둔의 시간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들은 '일과 일터'를 통해서 성취의 경험들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는 일터가 '학교'이고 '삶의 터전'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 조금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그들은 일한다.

이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터가 변화하면 좋겠다고 꿈꾸고 싶지만, 사실 너무 허황되고 요원하다. 다만 내 곁에 이렇게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고, 조금 더 이해하고 응원할 수는 있지 않을까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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