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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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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1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세 번 해고 투쟁, 헛살지는 않았다

김양순/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그네틱스분회

 

 

시그네틱스는 1966년에 설립된 필립스 한국공장이었다. 시그네틱스는 반도체를 조립하는 회사다. 나는 1987년 시그네틱스 염창동 공장에 입사해서 생산3팀에서 테스트 업무를 했다. 생산3팀은 완성된 제품 중 정품과 불량품을 구분하는 작업과 출하하기 위한 포장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센츄리라는 기계를 4대 정도 작업했다. 센츄리 기계에서는 크기가 약간 큰 반도체 제품을 작업했다. 12대까지 동시에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일했던 것 같다. 센츄리에서 일하다 둘째 아들 출산 후에 몸도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부서장 지시로 로직 작업을 하게 되었다. 제품이 10개씩 묶인 채로 메가진이라는 쇠에 담겨 오는 것이다. 1로트에 4~5천 개씩 한 제품으로 한 번에 작업을 마쳐야 하는 일이었다. 메가진의 무게는 3-4킬로그램 정도였는데 수시로 이걸 들어서 작업하는 게 힘에 버거웠다. 더 쉬운 작업도 있는데 10년 이상 로직 작업한 사람과 똑같이 생산해야 한다면서 관리자가 매일 생산량을 체크해 힘들게 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비교당하는 게 힘들었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테스트에서 일한 지 약 12년이 지난 상황. 테스트 기계가 파주 공장으로 이전했다. 이전할 때 함께 간다고 했는데 사람만 버림받았다. 1995년에 필립스 자본이 철수하며 국내 자본인 거평그룹에 팔았고, 거평은 부도가 났다.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고, 산업은행이 관리하다 2000년에 영풍그룹에서 인수를 하게 됐다. 회사 주인이 바뀌는 걸 보며 사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태였다. 이미 노동조합이 있었고, 단체협약도 있었다. 1999년도 단체협약을 갱신하면서는 임금인상이 조금 되더라도 공장 이전 문제와 고용안정 문제는 조합원들의 주된 관심사였고, 반드시 관철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평이 염창동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파주 탄현면에 160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났다. 염창동 공장을 담보로 할 때 노조에서도 동의를 해 줬다. 왜냐면 파주 공장으로 갈 때 회사가 사람과 기계 모두 합의하에 데려간다고 했다고 노동조합에서 보고를 했다. 부도 이후 사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임금동결, 상여금 300만 원 반납, 호봉 승급 보류, 각종 복지 축소 등 함께 살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퇴직금 누진제 폐지이다. 1.3N(퇴직금을 근속년수×1.3만큼 지급)이던 누진제를 폐지한 것이다. 회사를 살려 고용을 보장받고자 머리를 짜내 궁리를 모색했건만, 영풍으로 인수된 이후 영풍은 안산 반월공단으로 공장 이전 일방 통보를 해 왔다. 대표이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공장 이전 문제를 노조와 함께 상의해서 잘 마무리하자고 했으나 회사는 더욱 몰아붙였다. 회사는 안산 공장 이전 이주 불가자를 모집하며 위로금 12개월분을 제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표를 냈다. 200여 명. 20011월부터 6월까지의 사직자다. 많은 사람들이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회사는 2001723일부로 안산 공장으로 일방적 인사 발령을 냈고, 노조는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파업 장소는 염창동 공장이었다. 염창동 공장은 1600평 규모이다. 대형 천막이 10여 개가 쳐졌다. 파업 대오를 2개조로 나눠 12일 투쟁을 진행했다. 공장 안 기계 반출을 막기 위한 투쟁이 한 달을 넘어갈 때쯤, 89일 사측은 용역 200여 명을 고용해 우리를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기계를 빼 갔다. 그리고 해고 통보를 날려 왔다. 파업대오 160여 명 중 130명이 해고되었다. 그 전에 전 조합원 임금 가압류, 사직자 퇴직금 가압류, 전원 해고, 교섭위원 5명 전원 구속, 최초 여성 용역을 고용해 시그네틱스는 노조 탄압의 새로운 방법들을 내세우며 강하게 공격해 왔다. 그래도 부당 해고 철회시키고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투쟁이 이어졌다. 2003년에 조합원들을 생계 투쟁에 내보내며 대법원 판결 때까지 간부들이 투쟁 대오를 유지하며 투쟁을 했다. 2007년 대법원 판결이 났고, 간부들은 전원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떠나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남아 투쟁하는 간부들과 조합원이 있었다.

투쟁 이후 나는 변했다. 결혼해서도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시부모님과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될 때까지 함께 살다가, 지금은 두 분이 시골 가서 사신다. 1차 해고 후 염창동 공장에서 농성장 유지하며 천막 지키느라 밥도 해 먹고 공장에서 자고 들어가면, 시아버지는 바람을 핀다고 하시곤 했었다. 고집 센 시아버지라 본인이 모든 것을 다 관여하고 지시하고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콩나물값 150원이 안 맞는다고 시어머니를 쥐 잡듯 잡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투쟁을 해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공장에서 잠을 자고 집에 들어간 날 일이 터졌다.

농성장이 없어지는 걸 막고 아침에 출근한 조합원들과 교대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시아버지가 바람 피웠다며 야단을 하시기에 그날은 참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투쟁을 계속해야 했고 또 단 하루를 살아도 맘 편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람피운 걸 보셨냐고, 왜 막말을 하시냐고, 노동조합일 동참하고 온 거라는 말을 왜 믿어 주시지 않느냐고, 억울하다고 했다. 결국은 내가 이겨서, 시아버지는 앞으로 영진이(큰아들) 엄마가 하는 일은 다 맞으니 믿고 사신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는 내가 하자는 대로 시부모님이 인정을 해서 의지를 많이 하고 사신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2001년 해고된 이후 6개월 동안 교리 공부를 해서 로사 (장미꽃)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앙이 있으면 세 번 해고를 당해도 이겨 낼 수 있도록 힘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하자면, 큰아이 영진이가 엄마가 세 번 해고되어도 계속 시그네틱스 다니는 것을 보고 자기도 힘들어도 끝까지 직장을 다니겠다고 한다. 2001년 복직 투쟁할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지금은 스물일곱 살로 은행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 초기에는 일이 힘들어 엄청 풀 죽어 있더니 이제는 엄마가 투쟁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 보면서 첫 직장에서 힘들다고 관두지 않고 퇴직할 때까지 다니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새삼 시그네틱스 투쟁하면서 산 경험이 현재로 이어지는 인생의 여정이라는 것을 느낀다.

시그네틱스 1차 투쟁 때 해고되어 복직 못한 29명의 징계 해고자가 있다. 18명의 간부들과 해고 이후 산업은행 규탄 투쟁에서 로비에 들어갔다고 해고된 11명의 조합원이다. 이들은 2007년 대법원에서 정당 해고라고 판결이 났다.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2011년 안산 공장 영업 양도를 이유로 두 번째 전원 정리해고 됐다. 복직 투쟁과 소송에서 이기고 현장에 출근할 때 회사는 서울이 집인 우리에게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왕복 4~5시간 걸려 출근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우린 노조 봉고차로 6시 출근과 2시 출근자를 실어 날랐다. 그때 조합원 출퇴근시키려고 1종 면허를 땄다. 다섯 명이 1종 면허로 갱신하거나 새로 면허를 따서 조합 봉고차로 출퇴근 투쟁을 적극적으로 했었다.

이 밖에도 우리를 쫓아내기 위한 회사의 괴롭힘은 모두 다 쓰기가 힘겹다. 그럼에도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다. 밖에는 해고자가 복직을 바라며 투쟁하고 있었고, 복직한 우리는 사표 내고 싶을 때 사표 내고 그렇지 않으면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우리가 견디니 회사가 안산 공장을 매각하고 광명시 하안동 아파트형 공장을 얻어 출근을 시켰다. 출근하자마자 회사가 어렵다며 1년 가까이 휴업을 했다. 우린 또 불안했다. 세 번 해고되는 것 아닌가.

20169월 우려했던 대로 세 번째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광명사업부 폐업으로 인한 전원 정리해고 통보 한 달 후 회사는 위로금을 대폭 인상했다. 조합원 13명이 사표를 냈다. 9명이 남아 투쟁하기로 했다. 사표 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했기에 두 번 해고 투쟁을 이길 수 있었으니 세 번째 복직 투쟁을 함께 안 한다고 누굴 원망할 수 있으랴. 밉고 원망스러운 건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동료들에게 기어코 위로금을 쥐어 주고 희망을 뺏어 간 시그네틱스와 영풍 자본이다. 본사인 파주 시그네틱스 공장은 1년 내내 우리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든지, 해고되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든지 사람을 뽑고 있다. 파주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얼마 전 914일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정을 받은 9명의 노동자들은 시그네틱스 정규직이다. 회사는 복직명령서만 보내고 휴업이라고 한다.

▲ 시그네틱스에서만 3번 해고 된 노동자들. 광화문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앞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양순 씨. 사진제공_시그네틱스분회


우린 여전히 광화문 청사 옆 천막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1차 해고자이며 그 당시에는 사무장이었고, 지금은 분회장인 윤민례 동지와 함께 시작했으니 끝까지 마무리 잘하고 사람들을 남기는 역사를 쓰고 싶다. 1차 해고자와 복직자의 끝을 연결하고 있는 분회장의 책임감은 모든 간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시그네틱스 투쟁은 현재 진행형인 살아 있는 역사이다. 신규 노조가 볼 때도 끝까지 질기게 투쟁하는 모습은 동지들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투쟁이고 우리 자식들을 정리 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8년 11월호


지난 호를 읽고

 

작은책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마는 굳이 이유를 들자면 쉽게 읽힌다는 것입니다. 수준(?)이 낮아서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글이 마음에서 절절하게 우러나와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또 나의 일처럼 공감하게 됩니다. 마치 옛 동지를 만난 것처럼.

10월호에 실린 김수련 님의 글을 읽으면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배경으로 드러나는데 나는 늘 내 중심적인 사고로 바라보니 오해를 하게 되고 마침내 불신이라는 늪에 빠져 사고 자체가 딱딱하고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작은책은 나를 일깨워 주는 죽비가 되기도 합니다. 함께 읽고 공감하고 때론 뉘우칠 수 있게 하는 작은책은 저에겐 오래된 경전입니다. 작은책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상록

 

작은책 10월호를 받았습니다. 젊은 우체부가 밝게 웃으며 당신 책이 왔어요! 하면서 건네주었습니다. 달마다 오는 작은 포장이 책이라고 어찌 알았는지. ^^

받자마자 앉아서 일사천리로 다 읽었습니다. 반 년 넘게 아프다는 이유로,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도태되고 있다는 자괴감까지 들던 저에게 읽어야만 한다고 죽비처럼 다가온 이야기들. 세상에 나만 아픈 것도 아닌데 저는 왜 이러고 있었는지. 냉장고를 열어 냄새를 맡고 행복한 아이처럼 다시 힘을 내겠습니다! 자신이 귀여워서 먹을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아는 아이처럼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다시 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은책~

독일에서 조숙현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꼭 종이책이 아니어도 요즘은 인터넷매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좋은 글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저도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어느새 종이책은 소홀히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잠시만 봐야지하고 펴 본 작은책에는 SNS에서 볼 수 없는 따뜻하고 귀중한 글들이 가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 보자면 어린이해방운동입니다. 그 글을 보고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만 대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어요. 항공사 승무원 두 분의 글도 다 좋았습니다. 팍팍한 현장에서도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똑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에 제 마음도 벅차오름을 느꼈어요.

백은희

posted by 작은책
2018. 10. 30. 13:42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안지희


엮은이의 글

 

“<작은책>이 몇 호까지 나왔죠?”

마감 중에 소설가 이시백 선생님 강의가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열려서 갔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제게 물으시더군요.

“1년에 열두 번, 23년하고 몇 달이 지났으니까, 280.”

정말 대단하네요. 20년 넘게 월간지가 살아남다니. <작은책>이니까 할 수 있는 겁니다.”

정말요? 에고, 고맙습니다.” 뭔가 울컥해서 말을 더 잇지 못하는데, 선생님께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요 며칠 마감에, 신년호 기획 걱정에, 신규 독자 늘릴 방법을 찾느라 머릿속이 복잡하고 의욕이 가라앉고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들으니 큰 위로가 되더라구요. ‘잘하고 있구나, 다시 기운을 내야지싶고요. ㅎㅎ.

독자님들, <작은책>25주년이 되는 2020년엔 300호 발간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둘레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작은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희가 찾아가야할 곳이 있다면 알려 주시고요. <작은책>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신발이 닳도록 뛰어 볼랍니다.

이번 호 일터 탐방은 성수동에서 신발을 만드는 노동자들 이야기입니다. 경력 수십 년이 넘는 장인, 그들은 스스로를 족쟁이라 부른답니다. 첫차 타고 출근해서 막차 타고 퇴근하는 제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족쟁이들이 외칩니다.

족쟁이도 노동자다!”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나혜석, 칼날을 쥔 여자 _최규화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친구야! 예전으로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_윤정은

14   삶의 균형 _권해진

17   변태 출몰 백서 _김지영

21   엄마가 소곡주를 마시지 않은 까닭 _유내영

26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_전미화

31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큰 딸의 혼사 _윤혜신

35   청년으로 살아가기 서른은 행복하지 않다 _진솔아

40   이야기가 있는 사진 _이기범

42   살아온 이야기(5)

  할 말은 뭐고 못할 말은 또 뭘까요? _송추향

48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 집 텃밭의 역사 _안재성

53   교실 이야기 기억나는 선생님 _박태찬

57   이야기가 있는 들녘 올해 배추는 포기다 _김진회

61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64   일터 탐방_ 성수동 제화 노동자

  족쟁이들 다 뭉치자 _정인열

71   일터에서 온 소식

  세 번 해고 투쟁, 헛살지는 않았다 _김양순

77   작은책 법률 상담소

  취약계층에게 힘이 되는 법률홈닥터’ _양성우

 

작은책이 만난 사람_ 박필성

81   유기농 펑크 포크의 창시자 사이’ _안건모

102   이동슈의 생활 만화 _이동수

 

세상 보기

104   생각해 봅시다

  문재인 교육 공약을 되찾자 _윤지희

109   어린이 해방과 평화

  세계 어린이 권리 선언들 _이주영

115   여성으로 살아가기

  참은 줄 모르고 참은 말들 _홍승은

120    ‘그때 그 사건다시 보기

  재성아, 니가 거시기 혀야겠다 _김형민

125   생태 이야기

  흑산도의 공항은 정의로운가? _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30   책 읽고 딴 생각

  다음 달은 좋아지겠죠? _변정수

133   독립영화 이야기

  난 너의 야동이 아니야 _류미례

138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돼지를 위한 변명 _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_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18. 10. 18. 23:05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작은책> 201810월호

세상 보기

 

자동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원장

 

길을 걷다 보면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오는 기색이 보이면 사람들은 얼른 구석으로 피해서 자동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조차 보행자는 자동차를 먼저 보내 주고 나서야 길을 건넌다. 이렇게 자동차가 우선시되는 문화는 우리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먼저 보내 줘야 하지?”라는 질문도 떠올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령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라고 주장하며 먼저 길을 건너려 했다가는 당장 운전자로부터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는 욕설을 듣게 될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이나 유럽은 어떨까? 한번은 필자가 미국 여행을 가서 교통신호등이 없는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저만치에서 자동차가 다가오기에 한국에서 늘 하던 대로 자동차가 얼른 통과하기만을 기다리며 딴전 피우듯 길 건너편을 주시하고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자동차를 쳐다봤더니, 그 자동차 역시 횡단보도 앞에 정지한 채 내가 길을 건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혀 멍하게 있다가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운전자는 헤이! 당신 왜 빨리 길을 안 건너고 있는 거야? 당신 때문에 나도 못 가고 있잖아라는 의미로 팔을 뻗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는 미국인 특유의 몸짓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사태 파악이 돼서 손을 들고 무안하게 길을 건넜다. 그 후로도 횡단보도에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 의식적으로 자동차보다 내가 우선권이 있어!”라며 몇 번이고 스스로 다짐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당초 길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원래부터 자동차가 도로의 주인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와 다른 선진국은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에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

사람이 우선인지 자동차가 우선인지에 대한 관념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 단적인 예가 보행 중 사망사고율이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열 명 중 네 명 정도가 걷다가 죽은 사람이다. 반면 네덜란드와 미국은 약 한 명이다. , 우리나라가 네 배나 더 많이 보행 중에 죽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선진국이지만 일본도 3.5명이나 된다. 일본이 다른 교통사고 통계는 선진국 중 으뜸 수준이지만 보행자 사고에서만큼은 후진국 수준인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운전자들이 보행자들을 그다지 배려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절반 정도의 운전자들만 보행자를 위해 차를 세워주었다.

그럼 서구 선진국에서도 원래부터 사람이 자동차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 약자(보행자)들이 가만히 있으면 강자(자동차)들이 알아서 보호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약자들이 단결해서 자신들의 걸을 수 있는 권리 즉, 보행권을 쟁취해 낸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도로교통법에는 본엘프라는 제도가 있다. 본엘프는 네덜란드말로 도로의 정원이라는 뜻인데, 이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동차는 보행속도보다 빨리 달리면 안 된다. 심지어 아이들이 이 거리에서 마음대로 뛰놀아도 괜찮다. 이렇게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살아가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고 이걸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 본엘프의 유래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힌다. 1970년대 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이라는 도시의 한 동네에 공사장 트럭이 통과하기 시작해서 아이들 등하교 길이 매우 위태롭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참다못한 어느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는 트럭이 속도를 못 내도록 화분을 내놓았고, 이걸 본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트럭들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화분들 때문에 삭막하던 동네 길이 꽃으로 예쁘게 치장된 정원처럼 바뀌어 사람들이 도로의 정원’, 본엘프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본엘프는 다름 아닌 주민(약자)들이 자동차(강자)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도한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먼저 네덜란드 정부가 본엘프를 법제화했고, 이후 독일의 템포30, 영국의 홈존, 일본의 커뮤니티존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스쿨존, 실버존, 생활도로구역 등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나 사람들의 의식은 완전히 전환되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시설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본엘프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째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보도가 없다. 골목길에서만큼은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차량 통행의 편의를 위해 중앙에 차선을 그려 놓지 않았고 길을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자동차의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셋째는 횡단보도가 없다. , 본엘프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아무 때나 길을 건널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시설로 운전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당한 채찍이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동차 운전자에게 너무 관대한 처벌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음주운전이다. 여러분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운전자가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은 음주운전을 형사사건 살인죄로 엄하게 다스린다.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시속 30킬로미터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는 본엘프에서 이를 어기고 사고를 내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미국 운전자들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려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엄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다. 엄격한 규칙은 처음에는 부담스럽지만 습관이 되면 곧 익숙해진다. 골목길에서 천천히 다녀 버릇하면 그 속도에 익숙해진다. 세 번째는 자동차에 대한 우리 마음이 바뀌어야 된다. 요즘 내 마음에 꼭 드는 교통안전 광고가 있다. “운전자! 당신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입니다.”라는 광고다. 맞는 말이다. 평생 운전자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일반적으로 직업운전자들 외에는 하루 24시간 중 아무리 길어도 서너 시간만 운전자이고 나머지는 보행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영원한 강자라도 된 양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꼴불견 운전자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와서 길 건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횡단보도 신호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 빨리 건너라는 식으로 차머리를 밀고 들어오며 위협하는 운전자, 또는 사람들이 지나가야 할 인도나 횡단보도 위에 떡하니 무단주차해 놓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아직도 지도자들의 책임감(노블리스 오블리주)이 부족한 천민자본주의 사회라고 한탄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강자의 책임의식과 관용이다. 강자인 운전자가 약자인 보행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문화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강자와 약자가 더불어 사는 진짜 사람 사는 맛 나는 세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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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일터 탐방_ 대경환경()

 

그가 팬티만 입고 운전한 사연

정인열/ <작은책> 기자

 

생활쓰레기(생활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38). 그의 업무는 남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인 밤 930분에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의 각 가정과 상가 등에서 내놓는 생활폐기물(일반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폐기물)5톤 수거차량에 싣고 인근 소각장에 나른다. 운전기사 한 명과 쓰레기를 포집하는 미화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손발을 맞춘다. 미화원은 운전기사보다 2~3시간 더 이른 저녁 7시경 각자 맡은 현장으로 출근해 골목의 쓰레기를 포집하고 수거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도로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포집된 쓰레기를 트럭에 상차하고 쓰레기는 회전판에 밀려 트럭 안쪽으로 들어간다.

▲ 서울 마포지역에서 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 작은책(정인열)


마포구에서만 하루 발생되는 생활폐기물의 양은 456.6(2016년 서울시 통계자료). 하루만 수거를 하지 않아도 악취가 나고 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하고 토요일만 쉰다. 법정공휴일은 물론 설, 추석에도 쓰레기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명절 중 하루는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관계가 다 작살났죠. 쉬는 날이 하루라 아무것도 못해요.”

그는 야간노동으로 파괴된 일상을 설명했다. 아침에 퇴근 후 잠을 자려고 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기 때문에 항상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린다. 생활 패턴이 남들과 달라 지인들을 만날 수도 없어 사회적 인간관계는 단절된다. 배 씨는 작업을 하기에는 주간이 오히려 낫다고 주장한다.

수거차량 20대가 마포구 지역 교통체증을 유발할까요? 오히려 낮에는 도로에 불법주차 차량이 없어 작업도 원활하고 사고 위험도 낮죠.”

야간노동은 특히 가정에 어린아이가 있는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 쉬는 토요일 낮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밤잠을 자게 되고, 일요일 낮에 다시 아이들과 놀아 주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일이 많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쉬는 게 아닌 쉬는 날을 보내고 현장으로 가면 치워야 할 쓰레기는 평소보다 2.

하루 쉬고 나온 날은 12~13시간을 작업해야 돼요. 평소보다 4시간씩은 오바가 된단 말이에요.”

▲ 대경환경(마포구 위탁 환경업체) 서복석 씨가 성산동 골목을 다니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마포구청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위탁업체 대경환경()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위탁업체로는 고려환경, 평화환경, 효성환경까지 4개 업체가 있다.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410원 많은 7940. 기본급과 야간수당, 연장수당을 더하면 월 330만 원이다. 업체는 연장수당을 월 52시간으로 고정해 지급하고 있으나 배 씨가 6월 한 달간 노동조합 조합원 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장근로시간은 80시간이 넘었다. 배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의 한 달 노동시간은 240시간이 넘는다. 이는 2016OECD가 발표한 회원국 평균 147시간보다 많은 최고 수치다.

간접고용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20153개 관계부처(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하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마련하고 이들의 임금은 시중노임단가를 책정해 지급하도록 했다. 지침에 따르면 이들의 시급은 14766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중노임단가의 53퍼센트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환경미화원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리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위탁업체가 공공업무를 대행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내놔도 법적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 업체가 대다수다. 게다가 관리·감독을 해야 할 마포구청 청소행정과가 오히려 지침을 어기고 시중노임단가의 70퍼센트로 입찰 공고를 냈다. 그리고 관련법을 어기고 입찰 공고문을 변경해 노임단가를 더 내려서 업체가 연간 8억 원의 임금을 착복하게끔 도와준 정황도 있다.

위탁업체는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인건비와 식비마저 중간 착복하고 인력 충원도 최소화한다. 늘 인력이 부족하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니 안전 규정도 어기게 된다. 골절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재해 건수는 연평균 613(2015~2017년 고용노동부 자료). 특히 사망자의 88퍼센트가 위탁업체 노동자였다. 배 씨 역시 지난 1월 쓰레기를 상차하다가 회전판 사이에 손이 끼어 오른쪽 손가락 3개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야간에 청소하는 사람들 다 발판에 매달려서 다니잖아요. 음주 차량이 뒤에서 받아 버리거나 발 잘못 디뎌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나도 매달려 다녀요. 발판 자체가 불법 부착물인데도요. ? 이걸 떼 버리고 걸어 다니면 작업시간이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놔두고 있는 거예요.”

배 씨는 미화원 작업복과 장갑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 오물을 처리하다 보면 작업복과 장갑은 온갖 세균과 미생물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들면 구더기가 우두두둑 떨어져요. 그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꼭 쓰레기 더미 위에 토하고 오줌 싸고요. 그걸 수거차량에 넣으면 회전판이 돌면서 압축하거든요. 그런데 쓰레기가 가득 차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오폐수, 구더기 다 뒤집어쓰는 거예요. 저도 한번은 다 튀어서 입고 있던 옷 다 벗어서 버리고 팬티만 입고 운전했어요. 하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2009년 실태조사에서도, 환경미화원의 몸에서 검출된 미생물 수가 버스터미널 화장실 변기의 25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커녕 탈의실도 없어 주차장이나 상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작업 후에도 근처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씻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폐물이 묻은 옷은 그대로 가정 세탁기로 들어가 그 가족의 위생마저 위협한다.

▲ 한 위탁 환경미화원이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집다가 유리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베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얇은 코팅 장갑 한 켤레로 3일을 써야 하니 금방 헤진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안전수칙 가이드에서 베임방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경환경 야간 반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미화원에게는 좋은 구역을, 그렇지 않은 미화원에게는 계속 험한 구역을 배치하며 인사권을 휘둘렀다. 때마침 4명 인력 충원으로 한 조가 더 생겨나 조금은 작업이 수월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편한 사람만 더 편해질 뿐이었다. 201711월 배 씨를 비롯한 대경환경 소속 노동자 대부분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노조를 만들었다. 배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노조가 생기자 회사는 곧바로 같은 조의 노조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했다. 노조에 가입한 수습 직원 4명은 3개월 수습 기간 후 모두 계약해지 하고 새 직원을 채용했다. 27명이던 노조원은 순식간에 22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8명이 버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져 22명이 그 노조에 가입했다.

배성훈 씨는 노조 활동을 하고부터 하루 세 시간도 못 자고 있다. 아침에 퇴근한 후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상급단체와 노무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담당부서인 청소행정과에는 민원을 넣는다. 지난 828일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해 위탁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TFT 구성을 제안했다.

▲ 배성훈 씨가 폐기물 수거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작은책(안건모)


현재 서울시 직영미화원 1인당 책정된 인건비는 연 6300여만 원. 노조가 마포구청장에게 제안한 자료에 따르면 위탁 환경미화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도 기존 위탁운영보다 연간 약 18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절감된 예산으로 각 업체에 41조 인력을 충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배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보다 안전하게 일하면서 주 5일 근무도 꿈꿀 수 있게 된다.

위탁업체가 그동안 우리 뜯어먹은 거 그만하라는 거죠. 발판에 매달리지 않고 작업을 해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는 오늘도 잠 못 자고 뛰어다닌다. 보통 사람들처럼 밤에 잠자고, 가족과 일상을 함께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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