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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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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취업'에 해당되는 글 2

  1. 2020.03.02 맨땅으로 내몰지 말고 헬멧이나 주라고
  2. 2019.09.26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작은책> 20203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맨땅으로 내몰지 말고 헬멧이나 주라고

 

이지우/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7기 수료한 청년

 

2018, 어느 초여름 저녁. 이태원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뜀박질하며 불판을 나르는데 주머니가 웅- 하고 울렸다. 끊기기 직전 겨우 받은 연락은 대박쌤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십 년 넘게 영어학원을 해 오던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던 애제자의 근황이 무척 궁금했던 것 같다. 특유의 호탕한 말투는 그날따라 근심이 가득했다.

너 평생 고깃집 같은 데서 알바만 하고 살 거냐?”

저한테 한 달에 칠십 이만 팔천 육백 원만 주실래요? 전 그 돈이 꼭 필요하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사회생활이다, 생각하며 꾹 참았다. 곧 찾아뵙겠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한 뒤 대충 전화를 끊었다. 인생 참 뭐 같지만 한가롭게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오른쪽 귀에 무전기를 차고, 나는 다시 기름진 소음 속으로 들어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돈 벌기(취업)돈을 벌 수 있는 공부하기(대학)였다. 은근슬쩍 대학을 권하는 부모님의 말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올 한 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정해진 시간표 아래 주어진 일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신 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돌다, 어딘가 잠시 머무르다 우연히 누군가와 만나는 일상을 상상했다. 청년 실업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대학과 취업 중 무엇을 선택해도 불안하다면, 나만의 길을 선택하고 불안해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이제 앞만 보고 달려갈 일만 남았다는 스무 살에, 나는 샛길로 빠져 멈춰 서 있다. 역사와 인문학 강의를 듣고, 출판 워크숍에 참가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일 년이 생겼다. 그렇게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주제 파악을 한 건 겨울도 채 지나기 전이었다. 듣고 싶은 강의는 이십만 원이 훌쩍 넘었고 모임이나 워크숍은 매달 참가비를 내야 했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생활비는 숙소와 밥, 교통비를 해결하면 딱 알맞게 없어졌다. 네 자릿수도 되지 않는 통장 잔고를 보며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이 곧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학력도, 경력도 없는 조무래기인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건 알바 앱뿐이었다. 이제 내가 하고픈 일을 하지 누가 시킨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당차게 첫걸음을 내디딘 지 불과 석 달 만에, 나는 시키는 일은 뭐든 척척 해내는 일꾼이 되었다. 투잡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날 밤 열두 시에 고깃집에서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빵집에 출근하는 날들로 그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면 시간과 체력이 없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다. 대신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인생이 그런대로 살 만했다. 나의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살겠다고 해 놓고서는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건 술이야!”라며 매일 음주가무를 즐겼다. 지갑에 구멍 난 것처럼 돈이 술술 나가면 또 악착같이 돈을 벌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최저 시급 인생이라 월 백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사장님 전화를 두 번 못 받았다고 다음 날 잘리고 같이 일하던 남자 동료들이 성매매 업소에 간 걸 항의했다가 잘리는 동안, 처음에 내가 상상했던 자유롭고 빛나는 스무 살은 점점 끝나 가고 있었다.

마지막 알바였던 연남동의 카페는 바싹 태워 먹은 원두를 씹은 것처럼 쓰디쓴 기억밖에 없다. 2층짜리 매장 홀과 바를 밤늦게 혼자 쓸고 닦는 것도 버거웠는데, 자동 세척기는 컵을 넣기만 하면 깨트려서 일일이 설거지해야 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그냥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라고 했다.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챙겨 다니던 나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멈춥시다!’ 외치는 사회 활동가는 못되어도 내 손으로 사람들에게 플라스틱 컵을 건네주는 건 못할 일이었다. 대신 사람을 더 뽑아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매출을 늘려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평소 윤리적인 이유로 모든 동물성 재료를 소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바를 할 때는 맛있는 라떼와 예쁜 골든와플을 만들어야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사고 먹어서 더 많은 젖소와 닭이 희생되어야만, 내가 조금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된다니.

손님이 몰려 한 시간이나 마감이 늦어진 날, 지칠 대로 지쳐 펑펑 울며 애인에게 말했다. 나는 우유와 계란을 팔고 플라스틱과 비닐을 남겨서 돈을 벌고, 이제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학생이에요? 직장인? 둘 다 아니에요? 그럼 뭐하세요?”

대학과 취업이 전부인 사회에서 그 둘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닌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조차 나를 소개할 말을 몰라 그냥 하고 싶은 거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라고 얼버무렸다. 남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런 순간들이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사실 너도 잘 모르겠지? 하고.

이런 일상으로 이 년째 살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언제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먹고살 궁리를 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 수 있는지.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지.

나 같은 요즘 젊은 것들을 보고 한참 전에 젊음이 끝난 사람들이 혀를 쯧쯧 찬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고 닥치는 대로 일단 부딪혀 보라고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맨땅에 헤딩해 보라고.

하하, 큰일 날 소리. 그러다 머리 깨지는 수가 있는데. 여러 번 시도해 보는 건 여러 번 실패해도 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한 번의 시도에 모든 걸 걸고 한 번의 실패에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왜 모를까. 맨땅으로 자꾸 내몰지 말고 헬멧이나 줬으면 좋겠다. 이거 쓰고 몇 번이고 시도해 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10월호

청년으로 살아가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촌스럽게 살고 싶은 스물일곱 살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인턴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지 두 달 만에 제2회 인턴 채용 공고가 떴다.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산림교육 및 치유 시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지난번과 다른 근무지에서 일할 청년을 뽑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일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주어져서 기뻤다.

두 달 동안 준비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지난달에 컴퓨터활용능력(컴활)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다른 자격증에 비해 점수가 낮았다. 한 달 만에 딸 수 있는 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다. 고등학생 때 국사 성적을 믿고 덤볐으나, 스물일곱 취준생은 열일곱 고등학생과 같지 않았다. 빽빽하게 짜인 시간표 속에서 온종일 공부만 했던 십 년 전과 다르게 자유로웠다. 드라마를 보고, 늦잠을 자고, 친구를 만나고, 돈을 벌면서 열일곱처럼 공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결국, 컴활 자격증 하나 가지고 인턴 서류를 썼다. 자기소개서 항목이 지난번과 같아서 살짝만 고쳐서 냈다. 그런데 웬걸. 서류합격이 됐다. 자격증 하나 있고 없고 차이가 이렇게 크단 말인가. 붙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처음 보는 취업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면접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열아홉 살 동생이 수시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면 좋을지 알려 달라고 해서 시간을 많이 뺏겼다. 청소년지도사 과목 보고서도 써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거기다 애인에게 서류 합격 얘기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에 삐져서 일주일 내내 심란했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 지나고 면접날이 되었다. 면접 장소는 대전 정부청사역 근처였다. 면접장에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대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다른 지원자들을 구경했다. 눈을 감고 미리 써 온 대본을 외우거나,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물을 마시며 목소리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대기실 안에 맴도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자 지원자들은 풀메이크업에 정장 재킷과 치마를 입고, 구두에 스타킹까지 신고 있었다. 나는 흰 블라우스와 남색 바지 정도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은 안 했지만, 새벽에 샤워하고 빗질도 가지런히 해서 뻗친 머리도 없었다. 또각또각 소리 나진 않지만 가지고 있는 신발 가운데 가장 단정한 단화를 신었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못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님, 앞쪽으로 오세요.” 하필 첫 순서였다.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뜻밖에 찾아온 기회이니 즐기자.’ 생각했다. 다른 지원자 두 명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관은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었다. 왼쪽 끝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면접관과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첫 질문은 1분 자기소개였다. 제가 인턴이 된다면 두 가지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첫째, 톡톡 튀는 콘텐츠를 개발하겠습니다. 제게는 전공에서 배운 산림 지식과 교육 공동체에서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산림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겠습니다. 둘째, 숲을 통한 국민 공감을 실현하겠습니다. 저는 숲을 좋아합니다. 숲에서 느낀 행복을 국민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숲의 매력을 전하겠습니다.” 내 옆 지원자는 전날 받은 레이저 수술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답했고, 옆옆 지원자는 준비해 온 답을 로봇처럼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조리 있게 말했다.

이어서 장단점, 직장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 외딴 지역에서 근무할 자신이 있는가에 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정이 많고, 단호하지 못한 나, 소통이 중요한 단체생활,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동안 행복했던 삼 년에 대해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인턴을 지원하면서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전문성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인턴이 산림교육 전문가로 나아가는 소중한 첫발이 되길 바랍니다.”

예상했던 질문은 편하게 답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은 잠시 멈추어 생각을 다듬은 뒤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면접 시간 15분은 금방 지나갔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왔다.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지원자를 보니 빨리하길 잘한 것 같았다. 대기실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먹으며 가족들과 애인, 친구들에게 면접을 보고 나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잘 봤어?”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한 것 같아.”

버스 타러 나가려는데 같이 면접 봤던 여자가 다가왔다. 면접장에서 로봇같이 말하던 거랑은 다르게 친근하게 터미널에 가는 거면 같이 가자기에 그러자고 했다. 같이 걸으면서 전공이 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인턴 면접은 이번이 처음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스펙에 놀랐고, 그녀는 내가 자격증 하나로 서류 합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터미널에서 그녀는 구두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 광주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전주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졸업한 지 일 년도 안 된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 대기실에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지원자들은 또 얼마나 간절할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내가 취업의 꿈이 간절한 사람들을 기만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았다.

며칠 뒤 확인한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올라 있지 않았다. 덤덤하게 불합격 소식을 전하니 가족들은 아쉬운 기색을 살짝 내비쳤다. 애인은 면접 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준비할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할 거라면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서울에서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 과정이 열려서 얼른 등록했다. 10월에 있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취준생으로서 서울 생활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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