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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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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으로살아가기'에 해당되는 글 2

  1. 2019.09.26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2. 2019.05.27 죽을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구나

<작은책> 201910월호

청년으로 살아가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촌스럽게 살고 싶은 스물일곱 살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인턴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지 두 달 만에 제2회 인턴 채용 공고가 떴다.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산림교육 및 치유 시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지난번과 다른 근무지에서 일할 청년을 뽑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일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주어져서 기뻤다.

두 달 동안 준비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지난달에 컴퓨터활용능력(컴활)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다른 자격증에 비해 점수가 낮았다. 한 달 만에 딸 수 있는 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다. 고등학생 때 국사 성적을 믿고 덤볐으나, 스물일곱 취준생은 열일곱 고등학생과 같지 않았다. 빽빽하게 짜인 시간표 속에서 온종일 공부만 했던 십 년 전과 다르게 자유로웠다. 드라마를 보고, 늦잠을 자고, 친구를 만나고, 돈을 벌면서 열일곱처럼 공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결국, 컴활 자격증 하나 가지고 인턴 서류를 썼다. 자기소개서 항목이 지난번과 같아서 살짝만 고쳐서 냈다. 그런데 웬걸. 서류합격이 됐다. 자격증 하나 있고 없고 차이가 이렇게 크단 말인가. 붙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처음 보는 취업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면접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열아홉 살 동생이 수시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면 좋을지 알려 달라고 해서 시간을 많이 뺏겼다. 청소년지도사 과목 보고서도 써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거기다 애인에게 서류 합격 얘기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에 삐져서 일주일 내내 심란했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 지나고 면접날이 되었다. 면접 장소는 대전 정부청사역 근처였다. 면접장에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대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다른 지원자들을 구경했다. 눈을 감고 미리 써 온 대본을 외우거나,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물을 마시며 목소리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대기실 안에 맴도는 긴장감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자 지원자들은 풀메이크업에 정장 재킷과 치마를 입고, 구두에 스타킹까지 신고 있었다. 나는 흰 블라우스와 남색 바지 정도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은 안 했지만, 새벽에 샤워하고 빗질도 가지런히 해서 뻗친 머리도 없었다. 또각또각 소리 나진 않지만 가지고 있는 신발 가운데 가장 단정한 단화를 신었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못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님, 앞쪽으로 오세요.” 하필 첫 순서였다.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뜻밖에 찾아온 기회이니 즐기자.’ 생각했다. 다른 지원자 두 명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관은 남자 두 분과 여자 한 분이었다. 왼쪽 끝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면접관과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첫 질문은 1분 자기소개였다. 제가 인턴이 된다면 두 가지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첫째, 톡톡 튀는 콘텐츠를 개발하겠습니다. 제게는 전공에서 배운 산림 지식과 교육 공동체에서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산림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겠습니다. 둘째, 숲을 통한 국민 공감을 실현하겠습니다. 저는 숲을 좋아합니다. 숲에서 느낀 행복을 국민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숲의 매력을 전하겠습니다.” 내 옆 지원자는 전날 받은 레이저 수술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답했고, 옆옆 지원자는 준비해 온 답을 로봇처럼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조리 있게 말했다.

이어서 장단점, 직장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 외딴 지역에서 근무할 자신이 있는가에 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정이 많고, 단호하지 못한 나, 소통이 중요한 단체생활,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동안 행복했던 삼 년에 대해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인턴을 지원하면서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전문성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인턴이 산림교육 전문가로 나아가는 소중한 첫발이 되길 바랍니다.”

예상했던 질문은 편하게 답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은 잠시 멈추어 생각을 다듬은 뒤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면접 시간 15분은 금방 지나갔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왔다.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지원자를 보니 빨리하길 잘한 것 같았다. 대기실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먹으며 가족들과 애인, 친구들에게 면접을 보고 나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잘 봤어?”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한 것 같아.”

버스 타러 나가려는데 같이 면접 봤던 여자가 다가왔다. 면접장에서 로봇같이 말하던 거랑은 다르게 친근하게 터미널에 가는 거면 같이 가자기에 그러자고 했다. 같이 걸으면서 전공이 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인턴 면접은 이번이 처음인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스펙에 놀랐고, 그녀는 내가 자격증 하나로 서류 합격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터미널에서 그녀는 구두 대신 슬리퍼로 갈아 신고 광주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전주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졸업한 지 일 년도 안 된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 대기실에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지원자들은 또 얼마나 간절할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내가 취업의 꿈이 간절한 사람들을 기만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았다.

며칠 뒤 확인한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올라 있지 않았다. 덤덤하게 불합격 소식을 전하니 가족들은 아쉬운 기색을 살짝 내비쳤다. 애인은 면접 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준비할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할 거라면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서울에서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 과정이 열려서 얼른 등록했다. 10월에 있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취준생으로서 서울 생활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청년으로 살아가기

 

죽을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구나

유OO/ 촌스럽게 살고 싶은 스물일곱 살

 

 

아이를 만들었던 날, 아랫배가 아프고 피도 살짝 나왔다. 으레 달거리(월경)인 줄 알았다. 달거리할 때는 아이를 배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이때다싶었던 그와 콘돔을 끼지 않고 몸을 섞었다. 그 뒤로 두 달이 지났는데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12주째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때 나왔던 피는 배란혈이라고 했다.

초음파로 배 속에 있는 덩어리를 어렴풋하게 봤다. 심장 뛰는 소리도 들었다. 놀랍고 신기했다. 혼자 좋아하지 말자고 되뇌면서도 나도 모르게 배를 감싸 쥐었다. 그새 모성애라는 게 생긴 것 같았다.

아이를 함께 만들었던 그에게 아이를 뱄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기르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목숨 하나를 책임지기에는 갖춰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아이를 지우기로 했다.

수술을 앞두고 그는 내 걱정을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한 척했다. 하지만 혼자 들어갔던 수술실은 너무도 차가웠다. 세균을 없애려고 소독했을 수도 있고, 어린 목숨이 죽었던 곳이라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을 수도 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쇠꼬챙이는 차갑다 못해 시렸다.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침대에 누워 영양제 링거를 꽂은 채 병실로 왔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같이 저지른 일인데 너 혼자만 아파야 하는 게 속상해.” 슬퍼하는 그를 다독이려고 괜찮아라며 웃었다. 수술비는 꽤 비쌌다. 영양제, 약값까지 더해지니 백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는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모두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그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혼자 있으니 많이 힘들었다. 쿵쿵 아이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가 미안해라고 생각했다가 스스로 엄마라고 여길 자격이 있나 싶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울었다. 수술하기 전에 병원에서 아이를 지우는 게 불법이라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아이를 지우고 나서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힘도 없고 자주 피곤했다. 건널목을 걷다가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게 우울증이구나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친구를 만나면 웃었다. 내 걱정을 하는 그에게도 잘 지낸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살면서 겪은 가장 힘든 일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와 헤어졌다. 도시에서 살고 싶은 그와 달리 나는 시골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내려와서 새 남자 친구도 사귀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면서 지나간 사람은 잊혀 갔지만, 아이를 지운 일은 잊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애를 가졌다고 초음파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릴 때, 영화에서 아기를 낳거나 임산부가 나오기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듯 아팠다. 그때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꺼이꺼이 울었다.

수술하고 푹 쉬었어야 했는데 곧바로 괜찮은 척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날이 갈수록 몸은 안 좋아졌고 삼 년이 지나니 기력이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아토피도 생겼다. 기운을 북돋워 주는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았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는 잘 지낼 것만 같았다. 같이 저지른 일인데 나만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아 억울했다. 수술비는 그가 냈지만, 한약값이 부담될 때는 조금 보태 달라고 해 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책임을 묻는 나에게 그가 뭐라 할 것 같았다. 그 말에 맞받아칠 자신이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좋게 넘어갈 일도 삐딱하게 보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공동체 식구들이나 친구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늪에 빠져 있던 내게 힘을 준 건 페미니즘 에세이 책이었다. 특히 다른 여자들이 아이를 지웠던 이야기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었구나.’ 그 솔직한 이야기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더는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아프지 않길 바랐다. 기력을 되찾으려고 국선도를 하고 명상하면서 마음을 비웠다. 그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지운 게 아니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얼른 다음 생으로 가서 더 좋은 부모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고 나서 네 번째 봄을 맞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여성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자는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드디어 받아들여진 거다. 여태 길거리에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했는데 목소리를 내 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웠다.

한 국회의원이 14주까지 임신중절을 할 수 있게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했다. 석 달 가까이 아이를 밴 적이 있는, 그 아이를 지우고 죄인으로 살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잠깐이나마 내게 와 준 그 아이에게 사랑을 보내려 한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 놓았다. 떳떳해지면 좀 괜찮아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같이 살던 이모, 친한 친구, 지금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다들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엄마에게도 말했다. 힘없는 나를 보면서 그 누구보다 걱정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많이 놀라면서도 언제, 누구랑 그랬는지’, ‘왜 이제껏 말 안 했는지다그치지 않았다. 고마운 이들을 위해서 얼른 튼튼해지고 싶었다.

올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나물 뜯으러 다닐 만큼 힘도 나고 피부도 좋아졌다. 기운이 생기니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첫 번째가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었다. 혹시 나처럼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우리는 살아있고, 삶은 소중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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