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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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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

고화숙/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 문화국장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은 공무원노조 조합원이자 간부이고 현직 지부장과 지부장을 역임했던 사람들이다. 쪼코형님은 공무원이었는데 2004년 파업 투쟁 이후 파면돼서 지금은 해고자다. 박 주사님도 해고되었지만 복직돼서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신다.

두 분 다 50대고 공무원 6급 팀장이거나 이었다. 쪼코형님은 5부 스포츠에 흰머리고, 박 주사님은 2대8 가르마에 새까만 머리칼이다. 쪼코형님은 거의 매일 술을 드시고 박 주사님은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공무원노조 인천본부에서 일하는 일꾼이다.

쪼코형님이라 하는 이유는 대화할 때 어느 지점에서 끊거나 정리할 때 ‘좋고’ 하신다. 발음 그대로 따면 ‘쪼코’가 돼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쪼코형님은 누구나 ‘형님’하고 부르고 싶을 만큼 친근함과, 비호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술자리에서 말의 반은 씨팔이고 양념이 좆도 혹은 개시끼들이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놀랄 수도 있겠다. 말투가 그런 거지 아랫사람이라고 하대하는 법도 없고 남 얘기도 잘 들어 주신다. 그래서 쪼코형님하고 만나면 즐겁다.

박 주사님은 마주 대하는 즉시 노조 지부장님보다는 주사님 하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확 들게 한다.

예전에 한번 ‘어떤 공무원’이라는 제목으로 작은책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박 주사님이다.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만큼 척 보는 즉시 ‘깐깐’ 이렇게 써 있다고나 할까.

두 분의 재미난 공통점은 노동조합 운동을 직접 하고 있으면서 ‘노동운동’에 대해서 주입하지 말라고 하신다는 거다. 50대다우신 태도이다.

사실 난 두 분과 그런 거창한 주제로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어려운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드신다.

이런 일도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이 쓴 좋은 글이 하나 있어서 박 주사님한테 ‘이런 문제에 대해 공무원노조도 같이 공감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니까 읽어보기도 전에 ‘나한테 노동운동에 대해 주입하지 말라니까’ 하신다. 그래서 막 웃었다.
쪼코형님의 7년 간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도 “일반 사기업과 공무원은 다릅니다잉”이다.

물론 어떤 조직이나 일반성과 특수성은 있는 거고 노동자라고 해서 똑같을 수는 없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굳이 매번 다르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 ‘특수성’을 강조하고 싶은 건데 ‘틀렸다거나 아니’라고 반론하지도 않는데도 매번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속으로는 ‘누가 머라나’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은 노조에 대해 맨날 흉보면서도 노조 행사 때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챙기신다는 거다.

“그 시끼들 말이야 일을 그따위로 하고 말이야.” 이게 쪼코형님 버전이고 “노조에 전망이 없어요. 공무원노조를 도대체 왜 만든 거예요. 조합원들한테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는 노조가 노좁니까.” 이런 정갈한 어투가 박 주사님 버전이다. 맨날 전망이 없다면서 박 주사님은 무려 두개 지역의 지부장을 하시고 계시다. 워낙 자주 하는 말씀이니 남들은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그 꼴을 못 보는 정씨의 버럭 한마디.

“아니, 어르신들이 어떻게 하면 도와줄까, 어떻게 해야 잘될까, 이런 말씀은 안 하시고 맨날 남 탓만 하고 김 빼고 뭐지?”

보통 이분들과 나누는 대화의 장면이 이렇다.

이런 독특한 특징을 가진 두 분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쪼코형님과 대화를 나누다 말 끝에 ‘원죄 의식’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본인이 정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면서 간만에 욕 안 하고 착잡한 표정과 말투로 “나는 괜찮은데 말이야 나 때문에 괜히 해고당한 사람들 보면 참 마음이 너무 아파” 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파업 당시 지부장이었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짠했다.

박 주사님의 걱정은 좀 다르다. 전교조는 해고 기간이 길더라도 복직돼서 현직으로 가면 일할 수 있지만 공무원은 설령 복직이 돼서 현직으로 돌아가더라도 일하기 어렵다는 거다. 일리 있는 말이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공무원 사회에 지금도 5년인데 이보다 더 긴 세월을 떨어져 있다가 들어가서 적응하는 게 단순히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일수도 있겠다 싶다. 까마득한 후배들 눈치부터 부딪혀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첩첩산중이겠는가. 이런 두 분의 고민을 들으면서 해고된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쓴다.

공무원이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로 파업을 했다. 하루 혹은 이틀 정도 결근을 했고 그만한 일로 정부는 무려 400여 명을 공직 사회에서 내쫓았다. 대부분은 복직 판결을 받았으나 130여 명은 정말 쫓겨났다.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나 노동자인데 제대로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공무원이나 다른 게 뭘까. 공무원노동조합이 생기면서 겉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변화보다 더 중요하게 내부 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과제들이 높고 많다 보니 작은 변화에 둔감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공무원 사회가 훨씬 깨끗해져 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쪼코형님이나 박 주사님 같은 분들이다.

쌀 직불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령해 간 공무원들, 여전히 검은 뒷거래에 가담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고개 빳빳이 들고 사는데 쪼코형님과 박 주사님의 어깨는 오늘도 무겁다. 잘못된 세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달라는 소박한 요구가 폭력으로 돌아오는 사회, 그것도 생존권까지 박탈해 가는 잔인한 사회는 참 나쁘다. 나쁜 사회를 바꿔 보겠다고 처지는 고개와 무거운 어깨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쪼코형님이나 박 주사 님같은 사람들…….

물론 지금 사회는 훨씬 더 비참한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기륭이 그렇고 이랜드가 그렇고 인천 GM대우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조금 덜 비참하다고 해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해고 문제가 소홀해져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이기 때문에 솔선해서 잘못된 매듭을 푸는 모범을 보이고 이를 계기로 나쁜 자본의 횡포를 줄여 가는 건 꿈에나 불과한 일일까.

이런 마음을 담아 해고된 공무원 노동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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