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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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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아버지를 만났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연속극에서 삼순이 아버지로 나온 맹봉학 씨다. <작은책>에서 연예인을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다. 전화를 했더니 “요즘, 본의 아니게 내가 유명 인사가 됐네요” 하고 껄껄껄 웃는다.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성균관대 앞에 있는 풀무질 책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맹봉학 씨가 풀무질 책방 주인인 은종복 씨하고도 친하니 잘됐다 싶었다. 정확히 두 시에 책방으로 들어온 맹봉학 씨가 은종복 씨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맹봉학 씨는 요즘 더 바빠졌다. 어제도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했고 오늘도 이 인터뷰가 끝나면 이 근처에서 다른 매체와 또 인터뷰가 있단다. 이렇게 바쁜 까닭이 연기자로서 스타가 됐기 때문이 아니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배우인데 사회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여러 매체에서 취재당하는(?) 수준을 보면 거의 사회운동가가 다 됐다. 연기를 해야 먹고사는 배우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전에 경찰에 소환당해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 벌금 맞으셨어요?”

“두 번 다 안 맞았어요. 뭐, 죄가 있어야죠.”

맹봉학 씨는 유일하게 연예인으로서 집회에 관련해 경찰에 소환을 두 번 당한 사람이다. 한 번은 2008년 촛불 집회 때, 두 번째는 지난해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때였다.

“영결식 때 도로로 차를 따라 갔는데 사진이 찍혔더군요.”

연예인이 경찰에 출두하면 금방 소문이 나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낮출 만도 한데 맹봉학 씨는 당당하다. 하지만 역시 그 사건 이후로 영화 섭외가 전혀 안 들어온단다.

“전혀 연락이 없어요. 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거든요. 근데 촛불 집회 이후로 한 편도 못했어요. 단편 영화는 숱하게 했지만. 하 참 나, 하하하!”

촛불 집회 때 기억나는 게 있냐고 물었다.

“촛불 집회 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먹을 걸 갖다 줘요, 고맙다고. 나 하나 나온 게 자기들 백 명 천 명 나온 것보다 더 힘 되니까 고맙다는 거죠. ‘아, 이분들이 지켜보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맹봉학 씨는 푸근한 아버지 역할로 많이 나왔지만 아직 미혼이다. 올해 마흔여덟 살. 왜 결혼을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못했다고 봐야죠.” 하고 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웃는 모습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얼굴이 밝지만 맹봉학 씨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열두 살 때부터 일을 했단다. 7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맹봉학 씨는 6ㆍ25 때 남쪽으로 넘어온 아버지가 수원에 자리를 잡은 뒤 태어났다. 친척이 없어 명절 때마다 우울했다. 맹봉학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혼자 살아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걸 느꼈단다. 닭을 몇 마리 키웠는데 달걀 한 개를 공책이나 학용품으로 바꿀 만큼 어렵게 살았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사 오라고 하면 집에 돈이 없어 못 사줄 게 뻔해 아예 이야기를 안 했다.

그래도 맹봉학 씨는 늘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때 만화를 많이 봤단다.

“만화를 보면, 처음엔 고생하다가 나중에 다 성공하더라고요. 하하하.”

참 잘 웃는다. 꾸밈이 없다. 맹봉학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야간 학교인 산업체 특별 학교를 다녔다. 낮에는 구로공단에 있는 병 공장에서 일했다. 일하다가 손을 다치기도 했다. 다니던 산업체 특별 학교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맹봉학 씨는 영등포공고 전기과로 들어갔다. 연극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리 집이 가톨릭 집안이에요. 성당 학생회에서 문학의 밤을 했어요. 그런데 연출가 형이 딴죽을 거는 거예요. 연기를 그거밖에 못하냐고.”

맹봉학 씨는 오기가 생겼다. 가톨릭 학교를 다녀 수사가 되려고 했지만 자기 길이 아니라고 깨닫고는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극은 재미가 있었다. 첫 작품은 전주 지방연극제에서 한 〈멀고 긴 터널>이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였다.

독립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때 출연한 작품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김진성 감독(<서프라이즈>, <거칠마루>)의 <환생>이었다. 그이가 맡은 역은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는 두 명의 사형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밖에 <2001 이매진>, <수사반장 트위스트 김>, <트라이앵글 메모리즈>, <잘돼가? 무엇이든>, <바이칼>,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등 수백 편에 출연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최원석 감독의 단편 영화 <트라이앵글 메모리즈>라고 한다. 맞고 다니는 아들한테 레슬링을 전수하는, 재미있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코믹 배우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하하하.”

맹봉학 씨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삼순이 아버지 역할이었다. 2005년에 방영했던 그 연속극은 시청률이 50퍼센트 가까이 됐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은 다 봤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한다.

“대사가 좋았어요.”

가장 깊이 기억에 남는 대사는 삼순이가 사랑에 지쳐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한 대사였다.

“미안해, 아부지. (줄임) 끔찍해. 그렇게 겪고 또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내가 너무너무 끔찍해 죽겠어… …. 아주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그때 삼순이 아버지가 한 말이 시청자들을 울렸다.

“삼순아, 아버지는 가슴이 딱딱해져서 죽었잖아.”

맹봉학 씨는 이 사회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을까. 1987년, 거리에는 짱돌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데모가 한창이었는데 맹봉학 씨는 연극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얼마 뒤 절차상으로나마 직선제 민주주의로 바뀌었는데 자신은 무임승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밑바닥에 늘 미안함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뭔가 할 거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씨앗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발아할 거’라고 했죠. 그럴 때 광우병 소 수입 반대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어른들이 막았어야 하는 일인데 아이들이 자기 먹을거리 때문에 싸우는 걸 보고, 이번에 안 하면 더 큰 죄의식을 느낄 것 같아 참여하게 된 거예요. 이왕 참여한 거 열심히 해 보자… ….”

맹봉학 씨는 현재 강동촛불, 참여연대, 언론행동모임, 강동중증장애인, 강동청소년공부방, 백혈병 단체, 제주도 다니엘, 동자동사랑방 등 일일이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곳에 후원 회비를 내고 있다. 은평시립병원, 아산병원에서는 18년째 중증 환자들과 함께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참여연대에서 주관한 ‘최저 생계비 하루 체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그 하루 체험을 하고는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고 허풍을 친 차명진 의원에게 ‘체험’과 ‘삶’도 구분 못하느냐고 쓴소리도 했다.

맹복학 씨가 이렇게 사회에 관심을 두고 촛불 집회까지 나와 경찰에 두 번 연행되면서 현실은 우울해졌다. 영화 섭외가 뚝 그친 것이다. 후회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이는 일분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후회했다면 이런 인터뷰 안 하죠.”

맹봉학 씨는 이어 말한다.

“사람이 영원히 권력을 잡을 수 없는 거고, 언젠가는 죽잖아요. 반성하면서 좀 더 착하게 살다 보면 죽을 때 덜 후회하고 죽을 텐데… …. 이명박, 자기는 안 죽나? 당장 2년 뒤에 청문회 하고 그럴 텐데. ‘버티면 전두환처럼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 가질 수 있겠죠. 세상이 잘못 됐지. 잘못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을 너무 빨리 사면해 줘서 그래요. 망명을 가게 하든지 종신형을 때리든지 해야 돼요.”

이렇게 용기 있는 연예인은 처음 만났다. 왜 이런 분이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을까. 마음에 있는 분들은 용기를 내서 <작은책>으로 연락하시라. ‘소개팅’도 사양하지 않겠단다. 맹봉학 씨는 갑자기 배가 고프다면서 떡볶이를 사 왔다. <작은책> 일꾼 최규화가 연예인이 사 준 떡볶이는 처음 먹는다며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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