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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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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1. 16:46 기획 특집

<작은책> 2017년 11월호


<특집 _ 하승수 지상강좌>



몰랐어? 문제는 선거제도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

 




제가 활동하는 단체가 비례민주주의 연대라는 단체인데요, 저는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하기 전에 녹색당 창당 때부터 활동했고요. 그 전엔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주제 중의 하나가 어린이·청소년 인권 문제였습니다.


지금 보여 드리는 자료는 유엔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행복 보고서라는 자료예요. 2012년부터 발표를 해 오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걸 가지고 비교해 보면 어떤 사회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좋은 사회인 줄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그 사회가 뭐가 다른지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겠죠.


전 세계에 있는 나라들을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1위에서 20위 사이의 나라들은 대체로 어디에 많이 몰려 있죠? 우리가 잘 알다시피 덴마크라든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이런 북유럽에 있는 나라들,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고요,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은 걸로 나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도 10등 안에는 못 들어가지만 좀 나은 걸로 나오고, 호주, 뉴질랜드, 중남미의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 이런 나라들이 행복도가 높은 걸로 나왔어요. 2012년에 나온 자료입니다. 코스타리카나 베네수엘라, 중남미에 있는 나라들은 주관적 행복감이 높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소득 수준은 떨어져도 행복도가 꽤 높은 걸로 나오고요.


여기서 주목할 만한 나라들이 한국하고 일본이에요. 한국은 2012년 첫 번째 발표된 보고서에서 56등을 했고요, 일본도 44등을 했어요. 소득 수준에 비해서는 굉장히 행복도가 떨어지는 걸로 나왔습니다. 이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 우리나라 경제부처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분석했어요.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떨어지는지 분석해 보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유엔 행복 보고서에서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 사회 공동체가 건강하다, 예를 들면 시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고 기업도 투명하게 경영이 되고 사람들의 안전이나 자유 같은 게 잘 보장이 되고 이런 거예요. 또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느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행복도가 높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행복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고 일본도 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예요. 사실 미국도 이 보고서에서 괜찮은 걸로 나왔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미국은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걸로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행복 보고서는 양호한 편이고요, 지난번에 여론 조사 기관 갤럽이 조사한 걸로는 148개 나라에서 118등을 했습니다. 거의 바닥권이었죠.


그럼 덴마크는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스웨덴이나 이런 나라들은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그걸 추적하다 보면 결국 정치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되는 거죠. 교육의 문제라면 교육 문제, 사람들이 노동 시간이 길어서 그렇게 피로에 찌들어서 사는 사회가 안 되려면 노동 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사람들이 하루하루 너무 팍팍하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장해 줄 것인지, 청소년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불안하지 않게 나오게 할 수 있는지,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정치의 역할입니다. 저는 우리보다 행복도가 높게 나온 나라의 핵심은, 그 나라 정치가 그 차이를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만든 게 선거제도고요. 그래서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까지 가지게 됐어요. 사실 어린이·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진짜 선거제도 개혁 운동에 대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청소년 행복 지수, 주관적 행복 지수입니다. 어린이·청소년만 놓고 비교해 봤을 때, 작년에 나온 결과인데, 한국이 꼴찌를 했어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주관적 행복감이 높은 나라는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위권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노르웨이까지 8등까지의 나라들의 선거제도가 뭐냐 하면, 대체로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예요. 우리가 하고 있는 선거하고는 다른 선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선거제도가 그 나라의 정치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흔히 선거제도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선거권 문제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의 시야를 그렇게 좁혀 놓은 거예요. 물론 선거권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선거권 연령을 많이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그렇지만 이것은 선거제도의 아주 일부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게 뭐냐면, 선거권을 만 16세로 낮춰도 만 15세 이하는 선거권이 없잖아요. 그러면 그 청소년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거냐, 투표권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냐, 그렇지가 않아요. 예를 들면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청소년들이 만 18세부터 선거권이 나오지만 사실은 그 청소년들은 만 18세 되기 이전부터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지금 교육부 장관이 1983년생이에요. 지난번 이준식 교순가? 그 양반이 60대였죠. 지금 정권이 바뀌었어도 김상곤 부총리, 그분도 연세는 많으시죠. 그런데 스웨덴은 1983년생이 교육부 장관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겠죠. 어떻게 30대 초반에 장관을 할 수 있냐, 교육부 장관을. 교육이 무지하게 중요한데.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 정도가 장관을 해야지 청소년들하고 소통이 좀 가능하지 않겠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구스타프 프리돌린(Gustav Fridolin) 스웨덴 교육부 장관은 열한 살부터 정치를 했어요. 열한 살에 스웨덴 녹색당에 가입을 합니다. 당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8년 동안 활동을 하다가 당원들한테 인정을 받아서 19살에 국회의원이 돼요. 그리고 2011, 20대 후반에 당 대표가 되고 2014년에 서른한 살 나이에 교육부 장관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될 때 정치 경력이 20년 되는 겁니다. 나이가 젊은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선거권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치할 자유라는 게 보장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들도 정치 활동할 수 있어야 돼요. 선거권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할 자유는 나이에 관계없이 보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제도에서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면 가장 기본은 뭐냐면 내가 던진 표가 어떻게 계산되느냐라는 문제입니다. 그게 선거제도의 가장 기본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우리나라 선거 중에 극단적이었던 경우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014년 지방 선거를 했습니다. 경상남도에서 새누리당이 1등을 했습니다. 도지사도 새누리당이 당선됐고 홍준표 전 지사. 그리고 도의회도 새누리당이 1등을 했어요. 문제는 뭐냐면 새누리당이 1등을 하긴 했는데 받은 표는 59퍼센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석을 90퍼센트 이상 가져가요. 그러면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가 1.5배로 뻥튀기 하는 거죠. 밑에 있는 정당(새정치민주연합)을 보시면 28퍼센트 받은 당이 있습니다. 28퍼센트를 받은 당이 몇 퍼센트 의석을 가져가냐 하면 3.63퍼센트 의석을 가져가요. 그러면 이 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가 8분의 1로 줄어드는 거죠. 그럼 결국 한 표의 가치는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표의 등가성이라는 게 깨지는 겁니다. ‘표의 가치는 동등해야 한다라는 것이 표의 등가성이라는 건데,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어떤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표의 가치는 올라가고 어떤 정당을 지지한 표의 가치는 8분의 1로 떨어지고. 또 여기 보시면 통합진보당이라고 5.3퍼센트를 받은 표의 가치는 제로가 되는 겁니다.


이게 어느 나라든지 간에 선거제도라는 걸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입니다. 사람들이 표를 던지는데 그 표의 가치가 어떻게 계산이 되느냐 이거죠. 이런 결과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2014년에 경상남도 의회에서 새누리당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죠? 도지사인 사람이 무상 급식을 중단하겠다, 이래서 한참 논란이 많았죠.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4월에 총선을 했는데 그 당시 새누리당이 정당표는 제일 많이 받았어요. 33.5퍼센트의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석은 122, 40퍼센트 이상 의석을 가져갔죠. 33.5퍼센트의 표보다 더 많이 가져갔어요. 더불어민주당도 25퍼센트 받았으면 한 80명 정도 돼야 하는데 123석을 가져갔어요.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받은 표보다 적게 가져갔어요. 한국은 정의당 같은 정당이 진보적인 정당이죠. 진보정당은 역대 선거에서 늘 10퍼센트 안팎의 표를 받아 왔어요. 300명의 10퍼센트면 30석을 가져가야 하는데 5, 6, 이런 거죠. 작년에 정의당이 7퍼센트를 받았으면 21석 이상을 가져가야 되는 건데 여섯 석밖에 못 가져갔죠.


21석을 가져갔다면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원내교섭단체가 되어야만 국회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정의당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진보정당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늘 받은 표보다 적게 의석을 차지하기 때문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선거제도가 잘못돼서 이런 결과가 초래되는 거예요.


전 세계에서 선거제도를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다수대표제라는 게 있고 비례대표제라는 게 있어요. 다수대표제라는 게 우리가 가장 익숙한 겁니다. 소선거구제라고도 합니다. 1등 하면 되는 선거제도, 나머지는 다 사표. 우리는 너무 익숙하죠. 그렇게 하는 게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1등 찍은 표만 유효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의사는 다 무시되는 거니까 민주적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이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냐, 반드시 표의 등가성이 깨집니다. 그러면 1등을 할 때 30퍼센트 받아서 1등 해도 돼요. 나머지 70퍼센트는 다 무효가 되는 거죠, 표가. 그러면 자연스럽게 표의 등가성이 깨지는 겁니다.


사실 선거의 역사를 보면 다수대표제가 먼저 시작된 선거제도예요. 미국이나 영국이 먼저 시작을 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무비판적으로 도입을 합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유럽에서는 150년 전부터 1등만 되는 선거제도는 곤란하다, 이거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들이 150년 전부터 비례대표제라는 걸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개발해 내요. 정당이 받은 표대로 나눠 가지자 하는 게 공통점이었어요.


이게 1900년에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채택이 됩니다. 그리고 190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유럽 대륙으로 확산이 돼요. 그 당시에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등이 이 제도를 채택합니다. 사실 지금 그런 나라들이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 100년 전에 이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아니라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복지국가들이 된 나라들입니다.


승자독식의 선거를 하면 할수록 지역구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정당, 즉 거대 정당 중심으로 정치 구조가 고착됩니다. 그리고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가 특권 계급화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0억이 넘었습니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평균 모습하고 다른 국회가 만들어져요. 그리고 대표성이 파괴됩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30대 장관도 있고 19살에 국회의원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불가능해요. 왜냐면 이 승자독식의 선거를 하면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지역구에서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못 받으면 될 가능성이 없어요. 20, 30대 청년들이 그런 정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냐? 못 받는 거죠. 작년에 국회의원 총선을 했는데, 국회의원 당선자 중 만 20, 30대가 1퍼센트였습니다. 세계 평균은 13.5퍼센트 정도는 돼요. 왜 대한민국 국회가 청년들이 없는 국회가 됐을까. 그리고 평균 연령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어요. 작년 총선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당선자들 평균 연령이 만 55.5세였어요. 그전 선거보다 세 살이 올라갔습니다. 왜냐면 지역구에서 1등을 해서 당선이 되면 그 다음에 또 하려고 하잖아요. 포기하지 않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계속 재선, 삼선 이렇게 가다 보면 평균 연령은 계속 올라가게 돼 있어요. 지금 제도라면 다음번 국회의원 당선자들 평균 연령은 58.5세 정도로 올라갈 거고요, 그다음엔 60세가 넘겠죠.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회가 될 거예요. 국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예요. 지방의원이 되려고 해도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니까 지방의원도 못 들어갑니다.


여성도,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 비율이 17퍼센트, 지방의원도 14~25퍼센트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이거 굉장히 낮은 겁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30퍼센트가 넘는 나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 나라들의 공통점도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예요. 왜 비례대표제를 하면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고 청년들이 많이 들어가느냐? 표를 받아야 하니까. 비례대표제를 하면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겁니다. 청년들 같은 경우는 청년 정책을 보고 찍고, 여성들은 성평등 정책, 여성 정책 보고 찍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정책만 보고는 사람들이 믿지를 않죠.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후보가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청년들은 청년 후보가 있는지, 여성들은 여성 후보가 있는지.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면 자연스럽게 정당들이 정책도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보자들도 다양하게 여성들, 청년들, 소수자들 다 공천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 구성이 국민들의 표준적인 구성에 유사하게 되는 거죠.


우리나라처럼 선거를 하게 되면 표의 등가성이 깨지고 거대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흘러가고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책이 중요하지 않은 정치가 됩니다. 왜냐면 대부분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번에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면 열심히 지역구 관리를 해야 돼요. 국회에 앉아서 정책 토론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국회에서 부실하게 해도 괜찮아요. 우리 지역에서 열심히 인사 다니고 행사 찾아다니면서 악수 많이 하고, 이게 다음번에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하는 방법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그걸 너무 잘 알아요. 그러니까 국회에서 정책 토론할 때에는 국회의원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정책에 관심이 없어요.


국회 자체에서 하는 공청회에도 안 앉아 있어요. 제가 국회 공청회 때 몇 번 갔는데요, 깜짝 놀란 건 17명이 앉아 있어야 되는데 서너 명 앉아 있어요. 시작할 때는 좀 앉아 있는데 그다음에 없어져요, 사람들이.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교수님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위원장과 다른 의원 한 명이 앉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는거죠. 이게 저는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답은 나와 있습니다. 어떤 선거제도가 정말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느냐, 그건 나와 있다고 생각해요. 100년 전에 승자독식의 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하고 비례대표제하고 갈라섰는데 100년 후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가 잘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비례대표제를 택했던 나라들이 많다는 거죠. 이 나라들이 100년 전에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근데 100년 동안 정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지국가라는 걸 만든 거예요. 스웨덴이 100년 전에 복지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핀란드도 100년 전에 매우 어려웠던 나라예요. 핀란드는 100년 전에 독립을 했습니다, 러시아로부터. 근데 1917년에 독립하자마자 우리로 치면 한국전쟁 같은 내전을 겪었어요. 좌우로 갈려서 총 들고 싸웠어요. 서로 죽였어요. 심각한 핀란드 내부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치유하고 지금 핀란드가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그 원인이 뭐냐면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가 크게 작용을 한 겁니다. 총 들고 싸우던 좌파, 우파, 그리고 중도파 이런 사람들이 선거를 하게 된 거죠. 내전이 끝나고 선거를 하게 됐는데, 비례대표제로 하니까 받은 표만큼 국회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좌파도 들어가고 우파도 들어가고 중도파도 들어갑니다. 받은 표를 가지고 국회 의석을 그대로 나눠 주는데 한 당이 50퍼센트를 받을 방법이 없어요. 그러면 서로 토론해 가면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그 심각한 내전이라는 내부 갈등을 치유해 나갔던 겁니다. 그러면서 핀란드가 지금 복지국가가 된 거예요. 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입니다.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예 지역구라는 걸 없애는 거예요. 네덜란드는 지역구 선거라는 게 없습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일만 하라 이겁니다. 왜 국회의원이 지역 일까지 관여하냐 이거지요. 그래서 네덜란드는 다 비례대표입니다. 네덜란드 투표용지는 이렇게(왼쪽 사진) 생겼습니다. 제가 이 투표용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이걸 가지고 어떻게 투표를 하는 거냐. 알고 보니까 투표하는 방법이 너무 간단한 거예요. 우리나라보다 더 쉬워요. 어떻게 하냐면 제일 윗줄에 적혀 있는 게 네덜란드의 정당 이름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당을 찾으면 돼요. 세로줄로 적어 놓은 게 뭐냐, 이 당이 낸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명단을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 이름 옆에 볼펜으로 체크하면 투표 끝이에요. 내가 지지하는 당을 찾은 다음에, 그 당에서 그래도 내가 지지하는 당이면 좀 아는 사람이 있을 거 아녜요?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 체크, 한 명만 하면 되는 거예요.



개표는 어떻게 하냐면, 이 당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받은 표를 다 합치면 이 당의 지지율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그 지지율대로 국회 의석을 나눠 줍니다. 150명의 국회의원이 있거든요. 150명을 정확하게 받은 표대로 나눠 주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국회가 다당제가 됩니다. 다양한 정당이 국회 안에 들어가요. 네덜란드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물을 위한 당도 국회에 들어가 있어요. 동물당! 올해에 네덜란드 총선이 있었는데, 의석이 5석으로 늘었어요. 대단하죠. 정말 다양한 정당들이 국회 안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뭘 보고 찍을까. 일단 그 당의 정책을 보고 찍는 거죠.


그리고 1등을 해 봐야 26퍼센트 받으니까 혼자선 아무것도 못해요. 어느 나라도 정당 중심으로 투표를 하면 한 정당이 50퍼센트 이상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1등 한 정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소수 정당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연립정부라는 걸 구성해요. 안정적으로 정책을 펼치려면 다른 당들하고 공동 정부를 구성하는 거죠. 공동 정부를 구성할 때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협상하는 거죠. 그래서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가 된 겁니다. 좋은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고 서로 치열하게 협상을 합니다. 아무리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지만 이 당의 정책은 말도 안 돼, 그러면 같이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서로 말이 되는 토론을 해서 정책을 합의할 수밖에 없어요.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편이고,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도 높은 편이고 복지도 잘돼 있습니다.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예요. 노인 빈곤율이 1.6퍼센트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노인 빈곤율이 지금 대한민국은 44퍼센트가 넘었어요.


네덜란드는 받은 표대로 공정하게 의석을 나눠 가집니다. 그리고 정당만 찍는 게 아니라 사람 이름까지 체크를 합니다.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순번이 있죠. 1~10 순번이 있습니다. 만약 이 당이 열 석을 받았으면 1번부터 10번까지 되는 거죠. 그런데 네덜란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10번보다 밑에 있는 사람이 체크를 많이 받았으면 순서가 바뀝니다. 정당이 순서를 정해서 내지만 밑에 있는 사람 표를 많이 받으면 이 사람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사람이 떨어져요. 그러니까 누가 국회의원이 되는지도 그 정당 지지자들이 정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정당이 공천을 엉터리로 하면 유권자들이 바꿀 수 있는 거죠. 네덜란드는 비례대표제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제대로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정치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거죠. 저는 앞으로 네덜란드식 선거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당장은 좀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면 한국은 승자독식의 선거에 너무 익숙해서 네덜란드식으로 곧장 가자고 하면 아마 유권자들이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비례대표제로 가려면 어떻게 할 거냐 관련해서 이야기되고 있는 게,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택하고 있는 방식이에요. 이 방식은 지역구 선거를 하긴 하는데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국 사람이 적응하기가 매우 쉬워요. 투표는 지금하고 똑같이 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회의원, 지방의원 대부분을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되는 걸로 뽑지만 일부 비례대표 의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 보면 지역구 후보자 한 표 찍고 정당 한 표 찍거든요.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53명은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되는 걸로 뽑고 47명은 비례대표라고 해서 따로 뽑습니다. 그리고 지방의원도 90퍼센트는 지역구에서 뽑고, 10퍼센트는 비례대표,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12, 지역구 후보 한 표, 정당 한 표 찍는데, 독일과 뉴질랜드도 그렇게 투표를 해요. 투표를 할 때는 지역구 한 표, 정당 한 표 찍습니다. 우리하고 투표하는 방법은 똑같아요. 다른 점이 뭐냐면, 계산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1등 한 사람 당선시키고 얼마 안 되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지지율대로 나눠 주는 방법인데요.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택한 방법은 그게 아닙니다.


지역구 투표를 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정당 투표입니다. 1단계로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율만 가지고 계산하는 거예요. 가령 청포도당이 10퍼센트를 받았다, 그러면 300명 국회 의석의 10퍼센트는 무조건 주는 거예요. 그럼 30석을 받습니다. 그러면 청포도 당이 지역구에서도 후보를 냈을 거예요. 지역구에서 청포도당 20명이 1등을 했다고 하면 그 20명은 우선 국회의원이 되고 모자라는 10명은 비례대표로 채운다, 이게 독일식이에요. 만약 청포도당이 지역구에서 한 명도 안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러면 청포도당은 30명 전체를 다 비례대표로 채우는 겁니다. 또 만약 지역구에서 30명이 다 됐다, 그러면 청포도당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해 주지 않는 거예요.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인정해 주고 모자라는 건 비례대표로 채운다. 이게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하고 있는 방식이에요. 우리나라도 진보정당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라는 걸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냥 지금처럼 투표하면 됩니다. 선관위에서 의석을 배분할 때 계산 방법을 다르게 하면 되죠. 아주 간단한 겁니다. 이것만 하면 한국 정치가 비례대표제로 바뀌는 거예요. 지금처럼 승자독식의 정치가 안 되는 겁니다. 네덜란드나 덴마크에 더 좋은 선거제도도 있는데, 한국이 워낙 엉망이니까 일단은 독일이나 뉴질랜드가 하는 방식 정도로 가자, 투표는 똑같이 하되 표를 계산하는 방법만 바꾸면 한국 정치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아까 보신 비례대표제 나라들처럼 다당제가 되고 그리고 표의 등가성도 지켜지고 청년들이나 여성들, 소수자들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실제로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꾸니까 그런 변화가 일어난 나라가 있어요. 뉴질랜드가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뉴질랜드는 1993년에 소선거구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꿨어요. 독일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전까지는 뉴질랜드에는 비례대표제라는 게 없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냥 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되는, 영국식 선거제도를 도입했어요. 그런데 1993년에 바꿨습니다. 바꿨더니 한꺼번에 이런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원래 뉴질랜드는 노동당과 국민당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어요. 두 거대 정당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전형적인 양당제 국가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1980년대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노동당이란 정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택해요. 그래서 노동당이 앞장서서 복지 축소, 민영화, 이런 걸 추진합니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했던 노동당이 배신한 거예요. 그 당시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들이 노동당에서 집단 탈당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해 봐야 소용이 없어요. 왜냐면 뉴질랜드 정치는 두 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는 정치니까.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했던 겁니다. 뉴질랜드의 시민단체, 노동단체가 제도 개혁 운동에 올인을 했어요. 그래서 1993년에 바꿨습니다. 1999년에 선거를 했는데, 바뀐 선거제도에 의해 노동당이 1등을 해서 38퍼센트를 받았어요. 120명 중에 49석을 얻었어요. 그러나 그걸로는 아무것도 못하죠. 그러니까 밑에 있는 다른 정당보고 연립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을 해요. 노동당이 동맹당이라는 정당 보고 같이 하자고 제안합니다. 동맹당은 뉴질랜드에서 진보정당이었어요. 그 정당이 뭘 요구했냐. 이거(91쪽 사진 내용) 받으면 같이 할게, 싫으면 말고. 노동당이 1등을 했는데 정부 구성이 안 되니까 동맹당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녹색당까지 협력해서 뉴질랜드에서 진보적인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뉴질랜드가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 전에 말씀 드린 최저임금 인상, 고소득층 증세, 임대주택 개선 이런 것들이 다 정책으로 채택이 되는 거예요. 선거제도의 변화라는 게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뉴질랜드가 너무나 잘 보여 줬습니다. 외국에서는 뉴질랜드가 갑자기 바뀌니까 다 놀랐어요. 그걸 보고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선관위 공무원들도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 사례나 외국의 선거제도를 공부하다 보니까 이걸 한국에 도입하면 한국 정치도 획기적으로 바뀌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20152월에 중앙선관위가 개혁안을 발표합니다. 시민단체들이 낸 개혁안보다 더 좋은 개혁안이었어요.


2015년 가을에 국회에서 토론이 벌어져요. 토론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 당시 야당 대표였는데, 이걸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새누리당이 반대해서 안 됐어요. 사실 작년 촛불 때부터, 촛불의 결과물이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걸로 끝나서야 되겠느냐,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선거제도,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이 선거제도를 안 바꾸고 무슨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있겠냐 라고 생각해서 올 1월부터 선거법 개혁 운동을 시작했고요. 국회의원들 중에서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은 동의를 하더라고요. 거대 정당에 몸을 담고 있어도 선거제도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왜냐면 이분들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국회의원들 중에서 한 30퍼센트 가까이 이 제도를 지지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가 300명한테 다 질의서를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85명은 찬성한다고 답장을 보내셨더라구요. 나머지는 무응답입니다. 그러니까 300명 가운데 이 제도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있구나, 이걸 확인하게 된 거죠.


지금 딱 하나 걸림돌은 뭐냐, 선거제도를 개혁하려고 하다 보니까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뉴질랜드도 그랬는데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거 하나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논리적으로는. 그냥 기득권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하는 반발 말고는 없는데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건 국회 의석을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300명 가지고 이 제도를 도입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지금 253명을 지역구에서 뽑고 47명이 비례대표인데, 47명 가지고 독일이나 뉴질랜드처럼 하면 이게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시민단체들은 국회 의석 360명으로 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253명 지역구는 그대로 놔두더라도 100명 이상의 비례대표가 만들어지면 우리나라도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다, 독일이나 뉴질랜드처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세금으로 국회를 유지하고 있는데 똑같은 돈으로 300명보다는 360명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회 예산 가지고 360명 쓸 수 있냐,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이 14700만 원이거든요. 일단 연봉을 1억으로 줄이자 이겁니다. 물론 최저임금으로 낮추자는 분들도 있는데요(웃음). 14700의 의미가 뭐냐, 노동자 평균 연봉의 네 배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자 평균 연봉이 3300으로 나왔어요. 14700, 정확하게 네 배 가까이 돼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복지국가들, 덴마크, 스웨덴, 독일 이런 나라들 국회의원들 평균 연봉은요, 노동자 평균 연봉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에요. 조금 더 주는 이유는 노동 시간이 좀 길거든요. 국민들 노동 시간보다 국회의원 노동 시간이 두 배 정도 깁니다. 하루에 14시간씩 일해야 돼요. 3D 업종이에요. 국회의원이 돈도 많이 못 받는데 노동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 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일도 많이 안 하는 거 같은데 평균 연봉의 네 배를 받는 겁니다. 이거를 확 줄여야 되는 거죠. 1억 정도로만 줄인다고 가정을 하고요 지금 국회의원 개인 보좌진을 아홉 명 쓰고 있는데요, 독일 국회의원들은 우리 절반밖에 안 됩니다. 덴마크나 스웨덴 국회의원은 개인 보좌진이 없어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진도 9명씩이나 둘 필요가 없지요. 좀 줄여도 됩니다.


국회에 보면 1년에 81억 원의 특수 활동비라는 예산이 있어요. 이거 다 현금으로 쓰는 거예요. 영수증도 안 내도 됩니다. 어디다 쓰는지 제가 좀 조사해 봤는데,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 원을 현금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야당 원내대표는 월 2000~2500만 원 정도 가져갈 수 있어요. 진보적인 정당은 원내교섭단체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가져간 적이 없어요. 국회 상임위원장이 되면 월 천만 원 정도 가져갑니다. 현금으로. 우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죠. 현금으로 가져가고 그 다음에 어디다 썼는지 보고할 의무가 없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원내대표 할 때 특수 활동비를 받았는데 쓰다 남아서 생활비로 보태 썼다고 자기 페이스북에 자백을 했어요. 근데 지난 정권에서 그게 무혐의 처분이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우리 상식으로는 공금을 개인 용도로 쓰면 횡령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처벌이 안 돼요. 하여튼 이런 예산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연봉을 1억으로 줄이고 개인 보좌진 6명으로 줄이고 특수 활동비 없애면 지금 국회 예산으로 390명 써도 돼요. 그러면 국회의원 숫자 늘리더라도 선거제도 개혁하는 게 우리한테 훨씬 유리한 겁니다.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요, 대통령 후보자들도 공약을 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정치 개혁 특위라는 게 만들어져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여기에서 합의가 안 됩니다. 6월에 만들어져서 몇 달 동안 하고 있는데 합의가 안 돼요. 밥그릇 싸움으로 보니까,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론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상당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금 여당인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자, 이게 당론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 소극적인 의원들이 여당 안에도 있습니다. 야당 중에서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은 당연히 찬성이죠. 그리고 지금 국민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아졌어요. 보수정당 중에 바른정당 일부 국회의원들도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국회 안에서도 정치권 안에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지지세가 넓어졌어요. 근데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반발하는 겁니다.


이게 올해 12월까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 사실은 지방선거도 바꿔야 돼요. 그러면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비례민주주의 연대 포함해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여기에 집중해서 활동을 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있어요. 1111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행사를 할 예정이고요, 그다음엔 국회를 갈 예정이에요. 광화문 촛불이 아니라 여의도 촛불을 켜야 하는 시기다. 올해 말 아니면 늦어도 내년 초까지 되야 합니다. 왜냐면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고 지방선거 넘어가면 그다음 국회의원 선거 다가오니까 더 힘들어집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해서 정말 국회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거거든요. 이미 법안들도 발의가 돼 있습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해서 여의도를, 진짜 국회를 둘러싸서라도 이걸 통과시키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일에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분들이 참여를 해 주셔야 됩니다. 다행스러운 게 노동운동 쪽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큰 조직이 두 개 있는데 지금 다 참여하고 있어요. 비정규 노동단체들도 다 참여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건 교육단체, 어린이·청소년 단체 다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이게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교육 문제도 인권 문제도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에 좀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선거법이 정말 낙후된 선거법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일본 거를 많이 베껴 와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뭘 하려고 하면 다 금지돼 있습니다. 우리 집 앞, 대문 앞에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선거 기간에는 불법이에요. 우리 집 베란다에 내가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를 표시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핵심인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뚫리면 나머지도 다 뚫릴 수 있어요. 어차피 다 밥그릇 문젠데, 결국에는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게 만들어야 돼요. 국회의원들 월급을 자기들이 정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까 연봉도 올라가고 그런 건데, 그것도 안 내려놓는 거죠. 맨날 선거 때마다 특권 내려놓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안 내려놓습니다. 그러니까 다 맞물려 있는 문제입니다. 결국에는 자기 밥그릇, 자기 기득권을 국회에서 내려놓게 만들면 선거제도 개혁, 필요한 것들 다 되고, 국회 개혁도 되고, 우리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에 가까운 그런 정치가 저는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시기가 있는데 올해 넘기면 더 어려워집니다. 왜냐면 국회의원 선거가 2020년이기 때문에요. 2020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선거 개혁은 어려워져요. 저는 이번 촛불은 반드시 시스템 개혁, 제도 개혁까지 꼭 이루어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잘 들어 줘서 감사합니다. 1111일 광화문 집회는 2시부터 사전 행사를 시작하고, 4시 반에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사전 집회를 갖고, 6시부터 본행사입니다. 촛불 때처럼 할 겁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7. 10. 11. 15:34 기획 특집

<작은책> 201710월호

 

특집 _ 채효정 지상강좌


저항에서 투항으로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안녕하세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해고된 강사이자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저자, 채효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나눌 이야기는 시민운동의 변천사와 지금 현재 부딪쳐 있는 장벽, 어려움, 그런 것들을 같은 지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도 마을에서 공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실 것이다, 거기 맞춰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지금 새날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제가 판단하는 정세는 그렇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회 전반적, 국제 정치적인 질서에서 마찬가지로 보수 우경화 친좌파 형태의 후퇴, 근대 사회와 근대적 기회가 만들어 냈던 인간성, 자유주의 그런 정도도 지켜 내지 못하는 정도로 여러 공동체에서도 붕괴되고 해체되어 가고 있는 징후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에서 누가 됐죠, 트럼프. 프랑스는 마크롱. 실제 자본가를 대표하는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으로 대통령이 됐어요. 영국의 브렉시트라든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언제요? 작년 촛불,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이건 뭐지. 이 반도에서 다시 물꼬가 터질 건가? 변방에서부터 물꼬가 터지듯이 다시 한 번. 그렇지, 이 극동이라고 불렸던 여기가 그런 곳이 될 것인가. 우리한테 불씨가 안 죽고 남아 있었던 것인가 촛불이 시작될 때 그렇게 느꼈어요.

 

 사회적으로 촛불을 규정하고 정리하는 경향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다들 이 대사건 앞에서 엄청 흥분하고 엄청 도취되어서, 사회학자, 정치학자, 문인들, 시민사회 명망가들이 모두 이 현상을 두고 새로운 시민정신이 나타났다”, “촛불 혁명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고취·고양되고 촛불에 대한 해석도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시민의 승리라는 도식으로 되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들뜬 분위기가 가면 갈수록 더 서늘해지는 거예요.

 

 대통령 탄핵하고 권좌에서 끌어낸 것은 대단한 사건이긴 하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탄핵은 정말로 촛불의 승리였는가. 탄핵은 됐지만, 그 판결 내용은 정말 보수적이었어요. 대통령 탄핵 사유 중에서 헌재가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대통령이 기업의 영업 행위를 방해했다는 것이었죠. 철저히 재벌 편에서 대통령을 자격이 없다고 직무 정지시킨 거예요.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하에서 눈치 보면서 반노동적·반민주적 판결을 해 왔던 사람들, 이를테면 통진당 해산 판결의 주역이었던 이정미 대법관이 갑자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법조인이 되고, 그런 법조인들이 아침 방송에 나와서 세련되고 온화한 말투로 대통령 박근혜의 위법 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주니까, 그들이 혁명의 조력자가 되고.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거대한 상징이 만들어지고, 시민혁명의 주인공이 되고, 우리도 그 주인공의 한 명인 양 도취되어 가면서, 마치 역사가 영화가 되고 다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거 같았죠. 사실 촛불은 처음에 시작될 때가 제일 흥분되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시민이 없다고, 시민운동 다 죽었다고 그랬잖아요. 이 촛불 시민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기 전에 우리 시민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뭐였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건가. 이렇게 많았는데 그동안 시민운동은 왜 주체를 못 찾았어?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야 그 디딤돌을 딛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건데, 우리는 그냥 100만 명에 놀랐어요. 촛불 시민, 백만의 힘.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밖에 없고, 새로운 주체다 새로운 시위 문화다 하면서 피상적인 이야기밖에 없고요. 언제든지 필요하면 백만 명을 모을 수 있을까요?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해서 이런 백만 명이 나와서 그런 일들을 함께했고, 그런데 그 전까지는 왜 없었고, 보이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이제 하나하나 규명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 그런데 그 백만 명이 지금 어딨어요? 그 백만 명의 시민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었다면 촛불 이후에 시민운동의 제2의 전성기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중에 만 명이라도 단체 회원이 되었나요? 노동조합의 조합원 가입자는 늘어났나요? 정당에는 당원들이 모여들고 있나요? 학생회는 다시 조직되고 있나요? 아니면 기층에서 뭔가 작은 운동들의 흐름이 포착되고 있나요? 아니라는 거죠. 아까 저기 활동 오래 하신 분께 물어보니 도리어 기존 회원도 빠져나가고 있다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위기와 좌초라는 진단을 가지고 함께 고민을 나눠 보려고 해요. 지금의 시민운동의 좌초 혹은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살펴보려고 해요.

 

 저는 세 가지로 정리해 봤어요.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 노동 없는 시민운동.


 

시민 없는 시민운동

 

 첫 번째,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뭐냐. 어떻게 이해하세요? 그동안 우리가 말해 왔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쉽게 말해서 회원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였어요. 대표하고 활동가만의 조직. 시민이 없으니까 활동가가 운동하고 대표가 운동을 하는 거죠.


 그것도 문제는 문제인데 저는 촛불을 경험하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장을 해석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백만 명이 모였을 때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한, 정치적 존재로서의 시민이었냐고 물으면 저는 아니오예요. 왜냐면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건 항상 집합적 주체거든요, 개인이 아니라. 그런데 촛불 시민은 개인-시민, 모래알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었던 거였어요. 그게 아무리 백만 사람이라고 해도, 그러면 힘이 없죠


 그러니까 촛불이 끝나자마자 다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졌던 거예요. 야구장의 군중과 정치 집회의 시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화에 있어요. 정치 세력화라고도 할 수 있고요. 정치적 세력으로서 조직화를 못하면 힘이 없어요. 개인은 협상력이 없어요.


 이렇게 정권을 바꿔 낸 것은 뭉쳐서 협상한 거잖아요. 협상 단위는 없었지만 어쨌든 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죠. 다음 단계로 조직화를 해냈어야 되는데, 무수히 많은 정당 가입원이 생겼어야 했고, 단체들이 막 또 생겼어야 했어요.


 1987년하고 2017년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해요. 1987년과 2017년을 되게 비슷하게 대입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혀 달라요. 1987년 끝나고 나서 뭐가 생겼어요. 전노협, 전대협, 전농, 전교조가 생겼고 그다음 오늘 같은 이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운동의 산물들로 생겨났단 말이에요. 그런데 촛불은 그게 없어요. 오히려 조직을 해체해 버렸어요. 촛불 과정에서도 조직이나 단체는 계속 거부되는 그런 모습이 보였죠. ‘조직은 곧 지도부’, ‘낡은 방식’. 이상하게 이런 도식이 나타나서 우리 뭉치자가 아니라 뭉치지 말자가 광장의 정신인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나는 내가 대표한다그렇게. 촛불이 하나의 조직으로 대표되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요, 다양한 정치적 흐름들을 세력으로서 결집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야 제도 권력과의 협상력이란 게 생기거든요. 그런데 시민 권력을 못 만들어 내요. 만약 제도권과 다른 운동으로서의 정치 전체 흐름과 물결과 힘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이후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예요. 제가 주장했던 거는 이중 권력 체제가 필요하다는 거였거든요. 제도 정치로 몰빵하지 말고 견인하고 강제하고 협상할 수 있는 제도권 밖에 어떤 시민 의회 같은 시민 권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건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촛불 광장은 제도화한 시민운동의 질서조차도 허물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그 정치적 상상력이 막혀서 못 나가더라고요. 참 아깝지요.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운동 없는 시민운동


 두 번째, ‘운동 없는 시민운동이야기를 해 볼까요.

 운동은 자기 역사를 갖잖아요. 아주 조용하게 몇 명이 시작해서 조금씩 키워 나가고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가 그러면서 발자국을 남겨 나가요. <작은책>도 그렇고, 지금 강의하고 있는 <사람과 공감>도 그렇고, 문 닫았지만(웃음) <학벌없는사회>도 그렇고, 10, 20년의 자기 역사를 가지는 게 운동이거든요. 지금 시민운동은 그런 게 없이 일회성 사업에 매몰돼 있어요. 사업 끝나고 사업과 사업 사이에 자기 발전의 경로를 가지느냐, 그게 아닌 거예요. 시민운동을 해야 할 단체들이 운동은 못하고 사업만 하고 있잖아요.


 대학도 마찬가지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무슨 사업? ‘교육 사업을 하고, ‘연구 사업을 하지요. 한국연구재단 지원 공모사업에 연구 신청서 내고 교육 사업 계획서 내고 해서 지원금 따내는 게 목표가 되어 버렸어요. 연구와 교육이 지원금을 따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지금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지금 이런 우리 운동 방식이 과연 맞는 운동 방식이냐, 이게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봐야 해요. 사업의 정신이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공모 사업! 공모 사업이라는 덫에 빠져서 운동 단체들이 심각할 정도로 자생력과 자율성이 훼손당해 왔어요. 이런 방식의 시민단체 지원 사업이 언제부터 시작된 거냐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예요. 시민사회를 지원하고 활성화하겠다는 목표였죠. 엄청나게 많은 지원금이 흘러 들어와요. 문제는 이 돈을 물고 나면, 이제 정면 비판을 못하는 거예요. 게다가 공모 사업에선 누가 갑입니까? 발주처인 정부, 지자체, 기업이 갑이고 시민운동 단체들이 을이에요. 여기에 맞게끔 운동이 조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누가 주도권을 가져요? 국가와 자본이.


 우리 마을에서 마을책 만들기 하고 있거든요. 준비 모임을 하는데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 온 것에 익숙해져서 모임 할 때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꼭 예산 지원 받을 수 있는 정보를 들고 와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면 거기에 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애초에 우리가 원래 하려던 것들은 못하게 돼요. 우리가 운동가, 활동가가 아니고 뭐가 되냐면, 서류 작업하는 공무원 에이전트가 되는 거예요.


 시골의 마을 만들기도 실은 지자체에서 나서서 해야 하죠. 마을을 살려야 하니까요. 살던 사람은 떠나고, 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그러면 농촌 마을이 왜 이렇게 황폐해졌는가, 왜 사람이 마을을 떠나는가를 알아보고 그걸 가지고 그 원인에 맞게끔 정책을 수립하고 마을을 재건해야 되는데 그걸 다 외부 기관에 정책 용역을 주거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사업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온 동네가 마을, , 단위로 공모해서 사업 따오게 만들어요. 그럼 그때부터 농촌 공동체가 망가지는 거예요. 자급, 자치, 자립이 생명인데, 돈이 들어오면 다툼이 생기고 돈 쓰는 것 갖고 말 나고, 지원 사업 잘하는 마을하고 역량이 안 되는 옆 마을하고 비교하고, 잘 나가는 마을은 계속 잘 나가고, 못하는 마을은 계속 못하고 격차가 벌어지고 그래요. 우리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시길, 그런 돈 500만 원만 들어와도 동네가 망가진다고 하시던데요. 어떠세요? 그 마을하고, 우리 마을하고, 또 내가 일하는 단체하고,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대학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할 때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도 하다 보면 활동이 주()가 아니라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게 일이 돼요. 기획서에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나죠. 나중에는 사고방식이 그렇게 돼요. , 이건 보고서 어떻게 들어가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보고서에 넣을 사진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첫해에 7천만 원 받았고 두 번째 해에는 전년도에 잘해서 9천만 원. 제가 학벌없는사회 사무국장을 할 때도 그런 단위의 사업비를 만져 본 적이 없는데(웃음) 제 머리로 도저히 돈을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돈을 쓰려니까 일이 엄청나게 많아져요. 증빙이 다 활동 경비니까. 죽어나는 거죠. 그러다 3년 차에 지원에서 떨어졌어요.

지원 사업 떨어지니까 학벌없는사회와 공동 기획자로 참가했던 경희대는 한 푼도 지원 안 해주겠다는 거예요. 인문 사회 한국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칭송하고 학교 홍보물에도 싣고 하다가 지원 사업 안 되니까 완전 찬밥이 됐어요. 저도 갑자기 연구원에서 빵 원짜리가 됐어요. 7, 9천만 원짜리 따 오는 연구원이었던 제가 빵 원짜리가 된 거예요.


 그럼 어떡하죠? 그런 방식으로는 이제 못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에 대한 다른 상상력이 그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강좌 중심이 아닌 거리의 청소년과 만남 중심의 학교 밖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이었고, 그게 떡볶이 학교였어요. 예산 얼마였게요? 딱 오백만 원. 그런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건 더 자유롭게 많이 했어요. 전에는 평가 때문에 항상 청중이 일정 규모가 있어야 하고, 그게 가능한 안정적인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이제 그런 부담이 없어지니까 , 되든 안 되든 밑져야 본전이지! 한 명 오면 뭐 적지만, 열 명 오면 기쁘고, 까짓 아무도 안 오면 우리끼리 나눠 먹으면 되지하고 떡볶이 학교를 은평 물빛공원에서 했어요. 그때 되게 재미있게 잘했어요. 평가라는 제한과 관료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이 없어지니까. 공모 사업 서류 작업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사람 버려요. 운동가 체질이 아니라 행정가 체질로 바뀌어 버려요. 우리의 시민운동도 지금 스스로의 운동성을 거세해 나간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사람이잖아요. 같이할 수 있는 사람. 운동은 주체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이게 아까 얘기했던 조직화이기도 하고 세력화이기도 한데요, 근데 그 힘이 어떻게 생겨요? 사업하고 회비 내고 그런 데서 생기지 않거든요. 같이 일을 하면 생기는 거예요. 산전수전 같이 겪으면서 동지가 되고, 둥지가 되고, 서로 삶을 지켜 주고, 운동의 의지를 지켜 나가는. 거기서 힘이 생기는 건데, 공모 사업은 그게 아니잖아요? 사업을 해야 되니까 돈이 중심이 돼요. 이 공모사업이 중심이 되니까 부작용이 뭐냐면, 원래 시민운동에서 회원 조직화 운동이 제일 중요한데 이게 부차적으로 되어 버렸어요. 사업할 수 있는 멤버가 중심이 되고요. 회원들은 시민의식, 시민 참여를 마치 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상품 소비와 같은 심성이 생겨나요. ?

 나 회비 내고 있어. 그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걸로 자족감과 만족감을 느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회비 내는 거는 가장 기초적인 회원의 의무이자 권리죠. 그보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장이 되고 각자가 각자의 수준에서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데, 회원들이 단체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대상화. 더 나쁜 말로 하면 호구가 되기도 해요. 공모사업 해서 우리 단체는 이런 거 했어요. 그래 놓고 상 받았어요, 신문에 났어요, 메일 보내 주면 회원들이 만족감을 느껴요.


 근데 상품이란 건 그렇잖아요. 효용이 떨어지면 만족도가 떨어지고, 취향이 바뀌면 새로운 상품으로 바꾸잖아요. 맘에 안 들면 단체 후원 끊고 맘에 끌리는 다른 모임으로 갈아타고. 그건 아니잖아요. 실패도 성취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 함께 성장해 가는 관계. 그게 단체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요즘 시민 활동가들의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이야기를 보면 활동가는 죽도록 소진되고, 회원들과 단체의 관계는 계좌 이체 통장에서만 확인될 뿐이고. 사업비 타면 그 사업비로 인건비 책정하고 사업 탈락하면 활동가도 함께 아웃되는 방식, 사업이 되면 되는 대로 안으로 활동가는 죽어나고, 운동성은 계속 사라지는 방식. 이제 이 방식으로는 정말 안 됩니다. 그 핵심에 공모 사업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발주처 갑질에 계속 끌려다니지 말고 그 갑이 착한 갑이라도이걸 어떻게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정말 좀 터놓고 얘길 해봐야 해요.



노동 없는 시민운동


 세 번째로 노동 없는 시민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1987년 운동도 그렇고 이번 촛불도 마찬가지예요. 투쟁의 불씨는 현장에서 지속적 투쟁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냈지, 진보 엘리트들의 성과가 아니거든요. 시민단체 명망가들도 아니고 생존권 투쟁을 해 온 사람들이에요. 이 체제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살 수가 없어서 사장한테 반말 듣고 임금 체불당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각자 자기 사업장 안에서 자기 학교에서 부당 해고 당하면서 투쟁해 왔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싸워 왔기 때문에 그게 역사의 분기점에서 확 점화되면서 1987년도 생겨났고 2017년 촛불도 생겨났던 거거든요. 그런데 외곽, 외연이었던 시민, 시민운동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었어요. 노동자들은 희생자, 피해자, 소수, 약자로 주변화되었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운동, 시민운동은 화이트칼라 운동이었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현장 운동을 엄호하고 지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위상을 가졌거든요. 항상 꿀렸어요. 어떤 사람들한테? 노동계급한테요. 빨간 조끼 입고 작업복 입은 사람들한테 와이셔츠 입은 사람들이 꿀려요. 왜 꿀리냐, 괜히 꿀려요. (청중 웃음) 계급적으로도 꿀리고, 확실한 노동계급이 아닌 자기가 훨씬 더 지배계급과 더 결탁돼 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지금은 그걸 자기 한계가 아니라 자기 자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변호사, 내가 교수인 것이 노동자계급을 훨씬 더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고 훨씬 더 유리한 지위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나서지는 못해도 양심 있는 교수다, 의사다, 변호사다, 잘 나간다 하면 그냥 뒤에서 돈 대 주고, 옆에서 박수쳐 주는 사람들이었던 중산층 전문직들이 이제 지도를 하기 시작해요. 상황이 완전히 전도돼서 전체 운동 사회, 변혁 운동의 지도 세력이 이 집단이 된 거예요. 엘리트 집단, 교수, 변호사 이런 사람들이 시민의 대표 지위를 갖게 된 거예요. 여기서 질문.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의사 있습니까? (청중 웃음, 그 자리에 의사가 있었다 - 편집자 주) 변호사 있습니까? 대학 교수는요? 대체 언제부터 그 직업군이 전체 일반 시민들을 대표하는 직업군이 됐는지 물어봐야 되는데 이것도 거버넌스나 공모사업하고 연결되어 있죠.


 단체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모객 행위에 도움이 되는 순간에 명망가가 중요해져요. 활동가가 아니라 유명한 한 사람이 텔레비전, 신문에 한 번 나와서 단체 이름 알려 주는 게 실제 현장 활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고, 그런 영향력이 커질수록 단체 안에서도 그 사람의 권력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민사회 안에서 계급 양극화가 일어나죠. 시민운동을 자기 자본화할 수 있는 활동가와 노동으로 소진되는 활동가로.

이런 과정에 사회 전체의 계급론적인 변화도 있지요. 예전에는 계급 구도가 단순하잖아요. 마르크스 책을 봐도 노동자계급, 자본가계급 있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그런데 중간층이 양극화되면서 월급 받는 임노동자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일체화된 집단이 생겨나요. 그걸 신중간 계급이라고도 하고 관리자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사실상 자본의 마름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죠.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 임노동자고, 월 매출 삼백도 안 되는 영세 자영업자는 사장이고, 그럼 이상하죠? 그러니까 형식적으로 계급을 대입하지 말고 실제 계급 구조, 즉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권력의 관계를 놓고 봐야죠.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사회가 양극화되는데, 중간계급도 그런 양상을 보입니다. 화이트칼라 고용도 계속 불안정해지고 비정규직화되니까, 한편으로는 중간계급 하층부가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반면 상층계급은 부와 특권을 보장해 주면서 전체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관리·통제하는 그룹으로 편입되죠. 일례로 교수 사회의 양극화, 위계화가 대표적이에요. 똑같이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억대 연봉의 교수와 연봉 오백이 안 되는 강사로 나뉘고, 분리해서 차별하고, 동료 교수가 다른 동료 교수를 착취하게 만드는 그런 방식. 그래서 제일 아랫단에 있는 강사는 어쨌든 위로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기를 쓰고 위에 있는 교수는 아래쪽에 있는 강사들에게 갑질하고. 자기가 주인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신 상태를 가질 수 있을까요? 노동자를 대변하고 전태일의 친구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타락한 집단들, 자본에 회유된 집단들,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이 항상 사회 담론을 생산해 내고, 사회적 의제를 정하고 관점을 제시한단 말입니다. 언론은 또 그 사람들 말만 따서 인터뷰하고, 줄창 실어 나르는 확성기 노릇을 하고 있고요. 문제는 그들이 누구의 입장에 서서 말하느냐인데, 결코 노동자 편에서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노동자를 위하는말은 해도 노동자로서’, ‘노동의 관점에서함께 서 있지 않다는 겁니다. 지금 친자본 반노동 사상과 이론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보수 진보 구분이 없어요. 오히려 보수 인사는 아, 저거 완전 반노동적인 생각이다, 하는 게 딱 보이는데, 더 문제는 진보인 척하는 전문가, 지식인들이에요. 내용은 되게 친자본, 반노동적인데 말은 그럴듯하게 노동자 편인 척하니까요. 노동자들이 어려울 땐 코빼기도 안 보이면서, 허용된 비판만 하고, 보수든 진보든 사실상 담론 공동체를 만들어서 계속 서로의 문화 권력, 상징 권력을 키워 주는 역할을 하죠. ‘썰전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그래요.


 그런데 시민운동이 이런 담론의 흐름에 또 굉장히 민감해요.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사회주의 담론은 금지하면서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그렇게 다들 좋아하는지. 기본 소득론이나 4차 산업 혁명론 같은 미래 담론, 혁신 담론, 기업가 정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자본주의 정신. 이런 용어나 담론이 나오면 그냥 훅 쏠려서 가요. 왜 민주적 관리 운영이라고 안 하고 꼭 알아듣지도 못할 거버넌스니 협치니 그런 말을 쓰는 거예요? 그런 단어, 개념 속에서 사실상 노동의 관점은 해체되고 있는데, 그걸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아요. 왜냐, 자기도 좋거든요. 부담스러운 민중, 계급, 노동자, 이런 말보다, 두루뭉술하게 사회적인 게 좋고, 두루뭉술하게 협치하자는 게 좋고.

부르디외는 이 중간계급의 특징을 이렇게 말해요. 소속 계급이 없기 때문에 되게 기회주의적인 계층이라고. 이들은 자기의 상층계급에 대해서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하층민에 대해서는 문화적 우월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개의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집단이에요.


 정확한 거 같아요. 도덕적 우월감. 나는 자본가들보다 가난하지만, 내 취향만은 더 귀족적이다. 인문주의적 시민들의 자기만족감은 체제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투항하는 중요한 근거예요. 사장님도 회장님도 대통령님도 인문학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금 인문학은 너무 좋은 중산층의 통치 수단이 됐어요.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지금 이들의 문화가 지배적이죠. 그러니 운동 방식도 이 사람들이 하기 좋은 시민운동 방식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상품 구매가 운동이 되는 거. 배지 사고, 가방 사고, 옷 사고, 공정 무역 커피 마시고. 그걸 굿즈(goods)라고 하는데, 요즘 보면 좀 과도한 거 같아요. 재정 마련을 위해서 단체도 그런 홍보 상품 제작을 많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어야지, 그게 주가 되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요새 청년 창업 아이템 보면 대부분이 다 좋은 의미를 가진 물건 팔기예요. 농부를 돕는 물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물건,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물건, 전쟁을 반대하는 물건. 물건은 곧 상품이죠.


 그러면서 유럽에서 들어온 담론을 좋아하고, 그런 유행을 쫓아가고, 사실 그게 다 서구 사회 백인 중산층 신중간 계급이 만들어 낸 건데, 그걸 따라가고, 자꾸만 거기서 대안을 찾고 하면서 시민사회의 담론과 실천이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요. 구매력 있는 인문적 소양을 갖춘 교양 시민들의 소셜 클럽처럼 되어 가는 거죠. 그렇지 않은 단체들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예요.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 내고 그걸 사회적 의제로 만들려는 언론, 잡지, 매체들도 찾아보기 힘들고요. 촛불 광장이든, 마을이든, 마르쉐든, 어디든, 다들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한테 맞는 방식으로 하는 거예요. 현장 투쟁, 직접 행동보다는, 안전한 장소에서 포럼하고, 세미나하고, 맨날 무슨 인문 교육 사업하고, 세련된 거 좋아하고, 공간도 점점 중산층 취향을 반영하고, 집회 양식도 죄다 문화제 양식으로 바뀌고요. 집회 때 부르는 노래만 해도 그렇죠. 레미제라블 오페라를 누가 얼마나 봤다고, 그게 촛불 집회 주제가가 되니, 그 노래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하고 못 따라 부르는 사람 사이에 계급의 분할선이 확연히 그어지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방법은 점점 촌스럽게 보이고, 말하는 방식도 싫고, 옷차림도 거부감이 들고, 사실 촛불 광장도 그런 식으로 중산층의 도덕과 윤리, 미학이 압도했죠. 시민운동 전반에서 감지되는 현상이에요. 사실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탈정치화된 일종의 문화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되는 경향. 그런데 그 문화가 노동자문화는 아닌 거죠. 핀란드니 덴마크니 하면서 좋은 사회라고 맨날 가져오는 사례가, 다 서구 백인 지배계급의 중산층 문화인데, 그걸 진보라고 하니. 대외적으로 노조나 노동현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과의 연대 고리가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단체 안에서도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죠. 그러니 지금 인문학이 신종 문화 통치술처럼 활용되고 있고, 서구 중산층 문화가 마치 진보이자 대안처럼 유입되는 이 상황에 뭔가 제동을 걸어야 해요.


 이거는 변절은 아니고, 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의 질서와 소비문화에 동화되고 대안도 자본주의 사회 체제 내에서 찾으려는 것이거든요. 교양 시민들이 보기에는 그냥 한국이 싫고 구질구질한 거예요. 북유럽 시민들처럼 살고 싶은 건데, 그게 투항이죠.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가 되고, 운동권이 뉴라이트가 되는 건 변절이지만, 좀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건 투항이죠. 그래서 촛불을 주도한 집단들도, 안전하고 질서 있는 퇴각으로 혁명의 경로를 유인한 사람들도, 실은 체제를 전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왜냐? 다들 이 사회에서 제 몫이 있으니까. 이번 달에도 월급 나오고, 다음 달에는 상여금 나오고, 그 다음 달에는 휴가니까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애들한테 학원비 쓰면서 명문 대학 보내려고 하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도 좀 있고, 자기가 없으면 부모한테 물려받을 거라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대체 혁명이란 게 하고 싶을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적 인사가 되어서 지금 목에 밧줄 걸어 놓고 오늘내일 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하죠. 운동이 될 리가 없죠. 그들만의 세계예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여기도 트럼프가 와요. 미국의 노동계급이 민주당을 워싱턴과 뉴욕의 부자들이라고 여기면서, 그들이 자기의 지지 세력을 철저히 배반했다고 생각하면서 트럼프가 나온 거거든요. 똑똑한 척 도덕적인 척 다 하면서 실제로는 똑같은 부자인 힐러리한테는 죽어도 표를 주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지난 미국 선거는 하층계급, 노동계급의 이탈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중산층 진보 그룹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과 이탈의 결과라고 봐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정권 다음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오면 안 되지 않겠어요? 민주당이 원래 진보정당이 아니라도 촛불에 의해 탄생했으니 개혁적 정책을 하라고,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고,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시민사회가 이 정부를 엄호하고 있는 형국이에요. 다들 새 정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지역에서 마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씩 맡아서 정부로 들어가고.


 사실 기층, 변방의 운동가들과 역량들이 중앙으로 계속 빨려들어가는 방식으로 오면서 풀뿌리 운동이어야 할 시민운동의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말라 버리게 된 것이 지금 시민운동의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서울시가 대표적인 곳이고요. 뭔가 시민사회 인프라도 되게 잘되어 있고,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새로운 시민운동의 의제가 나오면 앞서서 실현하고, 그래서 열악한 풍토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민운동의 전시장, 쇼룸 같은 곳이지만, 저는 서울의 운동 풍토가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까지 말했던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말이죠.


 그런데 선거에서 지지표도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들이 제대로 건강하게 분출될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억눌리면 그 힘이 엉뚱한 곳으로 터져 나와요. 지금 혐오의 정치, 팬덤 정치도 그런 징후라고 볼 수 있는데, 억눌린 힘들이 억압자를 향한 증오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약자와 소수자를 향해서 발산되고, 사회적 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까 정치는 계속 이미지만 생산하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계속 상징 정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 지금 팬덤 정치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팬덤은 전형적으로 정치를 일종의 문화적 소비재로 보는 것이죠. 그러니 정치는 계속 쇼가 되고, 쇼가 중요해지면, 그 쇼의 기획 연출자가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는 거죠. 청와대는 이 정치 쇼의 유능한 기획 연출자인 탁현민을 놓아 줄 수 없겠죠. 이런 방식은 시민사회, 시민운동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보여 주는 활동, 가시화된 사업 성과가 중요해지면 역시 그 기획자가 중요해지는 거고, 그걸 토대로 다음 사업비가 나오니까 계속 운동이 쇼처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맨날 상상력만 이야기 하잖아요. 진짜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을 갖자고, 꿈만 꾸자는 얘기예요.



투항과 변절


 시민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저는 1990년대가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분기점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이 시대를 규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지금 현재 시민사회의 등장은 1987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1989년에 경실련이 생겼고, 뒤이어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같은 큰 조직체들이 생겨났어요. 그러면서 바뀝니다. 운동의 주어가 바뀌어요. ‘노동자·민중에서 시민으로. 그건 주체,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뜻이죠. 시민은 사실 탈계급적이고, 그런 점에서 탈정치적이기도 한 개념이죠. 원래 경실련은 처음부터 개량주의적 운동을 내걸었던 단체였어요. 개량주의 운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개량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전체의 한계 혹은 불가능성으로 설정해 버리는 거예요. 가장 높은 수위의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봉쇄하고 시작하면 그걸 넘어가려는 모든 운동들이 부정되니까요. 그리고 이후에 민교협, 민변 같은 단체가 조직되고,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면서 운동 사회 내에서 전문가 엘리트 집단들이 힘을 가지게 돼요. 협상을 하든 협치를 하든 뭐를 알아야 하니까. 협상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과는 다르죠. 전문적 지식도 있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입말과 현장 용어에 능한 사람보다 정돈된 개념어와 논리에 강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경실련의 경제 전문가, 참여연대의 입법 전문가, 환경운동연합의 환경 전문가 등, 과거 사회운동에서 측면에 있거나 후방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중심부, 전방에 서게 되는 거예요. 전체 운동의 지도부가 바뀌었다고 할까요. 이 운동의 중심 변동이 전체 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점점 중산층 취향의 운동과 담론으로 중심 의제가 바뀌고 쟁점을 만들어 내는 핵심 개념어들도 혼란스러워졌어요. 20대 실업자 문제, 20대 구직자 문제, 20대 빈곤층 문제, 20대 주거난, 10대의 참정권 문제라고 하지 않고 전부 다 퉁쳐서 청년 문제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씀드린 대로 전문가·명망가 중심의 엘리트 운동이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계속 생겨났던 거예요. 저는 청년의 대안으로 청년 기업가니 욜로족이니 힙스터니 하는 말을 들으면 막 현기증이 나요. 정치적 경제적 대안이 아니라 문화적 대안밖에 찾지 않는구나. 그런데 중요한 건 시민이 주어가 되고, 개량적 대안으로 사회를 개선해 나가려는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집단이 되었던 이 시기가 한편으로는 노동이 계속해서 조직적으로 탄압당하고, 노동운동이 위축되고, 노조가 분쇄되고 있었던 시기라는 거예요. 시민운동이 만개할 때 노동운동, 민중계급은 와해되고 있었죠. 이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투항! 1990년대는 투항의 시대였다고 저는 정의해요. 세계적으로는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비판이라는 담론이 유행하고 막 몰아닥쳐요. 당시 핵심 단어가 해체였는데, 해체주의 철학이 가진 전복적 가능성과 별개로 우리의 삶은 그때 그야말로 해체당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몰랐어요. 투항은 변절과는 좀 다른 거죠. 뭐가 더 나쁜 거 같아요? (변절요!) 글쎄 그럴까요? (웃음) 변절이 더 나쁜 거 같죠? , 나쁘긴 하죠. 근데 변절은 확실하게 보이잖아요. 자기도 알고, 남도 알고. 나쁜 놈인 줄 다 알죠. 근데 투항은 참 복잡미묘한 거예요. 자기도 모르고 남도 잘 모르고. 게다가 투항은 저항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어요. 어떤 저항? 새로운 저항. 어떤 운동? 새로운 운동. 어떤 진보? 새로운 진보. 이를테면 그렇게요. (new), () 자가 마법인 것 같아요. 유럽의 신좌파, 신노동당처럼. 지금 우리는 아예 혁신그 자체를 말하고 있죠.


 시민운동은 저항 속에서 성장하고 탄생했어요. 무엇에 저항했어요? 폭압적 국가권력, 독재자,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어요. 지난 겨울까지도 우리는 그런 집단에게는 투항하지 않았어요. 촛불 광장에서도 보면 그 마음은 확고했지요. 그런데 투항은 어디로 했냐하면 시장으로 투항했다고 생각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반독재’, ‘민주-반민주라는 정치적 세력 구도가 자본-반자본이라는 세력 구도로 넘어가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서 선명했던 계급 간의 정치적 구도, 대적성이 사라지고 차이와 정체성의 정치로 넘어가게 되죠. ‘노동 대 반노동또는 자본 대 반자본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시민 대 시민으로 되어 버린 거죠. 다대다(多對多)의 전선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투항이 안 보이죠. 그렇게 되는 순간 이제 정치는 취향의 정치, 각자의 이해와 이익들이 경합하는 장으로 가는 거죠.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양상을 보이는 혐오의 정치는 실은 이 취향의 정치의 뒷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운동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앞에서 말씀드린 저 세 가지 없음속에 어쩌면 답이 있지 않을까요? 시민을 다시 찾아야겠죠. 그리고 운동성을 되찾아야겠죠. 마지막으로 노동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노동권 없이 시민권 없다는 생각으로요. 노동권이 시민권을 담보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요. 중산층 중간계급 말고 더 아래로, 더 가난한 곳으로, 더 주변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원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거기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서 주민들을 만나 나가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사업 중심이 아니라 운동 중심의 단체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리고 변절보다 투항을 조심하자.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언젠가 세상이 제대로 서리라는 믿음, 그 믿음을 잃지 말자.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제 말에 해방이 절대 안 올 것 같았어도 왔잖아요. 박근혜 정권이 차기 차차기까지 집권 연장할 것 같았지만 지금 감옥에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줄지 모릅니다. 때를 기다리며, 다시 처음으로, 기층으로 돌아가서 운동을 다시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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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5. 14:57 기획 특집


'신자유주의의 꼼수, 비정규직',
윤애림(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12월 22일 목요일 늦은 7시, 
서교동 태복빌딩('문턱없는밥집'/'기분좋은가게' 건물) 2층 강당

수강료: 12,000원 (작은책 독자: 10,000원 / 청소년: 5,000원) 


* 윤애림 선생님이 쓴 책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2006, 공저)
 
* 문의 :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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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5. 14:43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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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12:02 기획 특집




'인권이 뭐길래', 박래군(인권활동가,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11월 24일 목요일 늦은 7시, 서교동 태복빌딩(문턱없는밥집 건물) 2층 강당

수강료: 12,000원 (작은책 독자: 10,000원/ 청소년: 5,000원)


  도대체 인권이 뭘까요? 집회를 하다가 잡혀갈 때만 인권 침해를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인권 침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경찰이 가방을 검사하거나,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으로 잡혀 가거나, 정당하게 집회를 했는데 공무집행방해로 구속을 당하거나 하는 일들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현장에서 대중과 만나는 꿈을 꾸는 활동가로 살고 싶고, 기억되고 싶다”는 박래군 선생님에게 인권이 무엇인가 들어봅니다. 2012년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첫 시간입니다.

  “나는 활동가다. 그것도 인권활동가다. 그게 나의 직업이고, 정체성이다. 활동가가 아닌 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30년 가까이 활동가로서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활동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활동가로 살다가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활동가는 ‘현장과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진 현장은 즐비하다. 인권 문제가 없는 곳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곳에는 인권침해로 아파하는 대중들이 있다. 그들과 같이 울고, 호흡하고, 부대끼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

  박래군 선생님은 현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평택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같은, 인권 침해가 벌어진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인권 침해를 받아 아파하는 대중과 같이 울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박래군 선생님이 쓴 책

『새벽을 깨우는 A4 한 장』(공저),『그 삶이 내게 왔다』(공저),『아! 대추리』

* 문의 :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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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3. 10:15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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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4. 11:28 기획 특집

'농사짓는 철학자의 글쓰기', 보리출판사 대표 윤구병
 
       10월 27일 목요일 늦은 7시, 서교동 태복빌딩(문턱없는밥집 건물) 2층 강당  
                              
                             
수강료: 1만원 (독자/청소년 5천원)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 2011년 마지막 강연은 윤구병 선생님의 강연입니다.

  윤선생님 경력은 특이합니다.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지냈고, 대학 철학교수로 지내다가 변산공동체를 설립해 시골 농부가 되어, 현재 보리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윤구병 선생님은 어려운 말로 민중을 속이는 학자들을 비판합니다. 글을 쓸 때 쉬운 우리말로 해야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월간 <작은책>도 윤선생님이 창간한 책입니다. 윤구병 선생님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특권 계급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독점하려고 일부러 어려운 말을 써서 보통 사람들을 따돌리는 야바위 노름의 속임수가 학문 용어에는 많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이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끝내는 보통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우스갯거리가 될 날이 멀지 않다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의 글쓰기는 어떤 ‘글쓰기’일까요. 윤구병 선생님의 ‘내 인생과 글쓰기’ 강연에 초대합니다.

* 윤구병 선생님이 쓴 책

《있음과 없음》,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아》,《몸 가는데 마음 간다》, 《실험학교 이야기》, 《심심해서 그랬어》, 《잡초는 없다》,《바빠요, 바빠》 등

* 문의 : 02-323-5391

  
<2011년 11월부터 내년까지 이어지는 강연>

2011년 11월 24일 목 7시 - 박래군 / 인권이 뭐길래

2011년 12월 22일 목 7시 - 윤애림 / 신자유주의의 꼼수, 비정규직

2012년 1월 26일 목 7시 - 이계삼 / 절망 학교 희망 교육

2012년 2월 23일 목 7시 - 우희종 / 과학 자본주의 속의 생명

2012년 3월 23일 금 7시 - 김수행 / 세계 대공황과 노동자

2012년 4월 26일 목 7시 - 남구현 /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 복지

2012년 5월 24일 목 7시 - 박병상 / 내일을 생각하는 환경

2012년 6월 28일 목 7시 - 공유정옥/ 일터에서 살아 남기- 노동자의 건강권

2012년 7월 26일 목 7시 - 정희진 / 세상을 아는 방법, 여성주의

2012년 8월 23일 목 7시 - 이적 목사 / 비무장 지대의 목사가 본 분단 시대

2012년 9월 27일 목 7시 - 양희창 / 제도 교육과 대안 교육

2012년 10월 25일 목 7시 - 강신주 / 제목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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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7. 10:20 기획 특집


사진들은 위에서부터 시간순입니다.
촬영은 '땅의사람'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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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5. 18:02 기획 특집

<파업> 소설에서 <박헌영 평전>까지, 소설가 안재성
 
9월 22일 목요일 늦은 7시, 서교동 태복빌딩(문턱없는밥집 건물) 2층 강당
 
수강료: 1만원 (독자/청소년 5천원)  


  노동문학가이자 소설가인 안재성 씨가 작은책에서 ‘내 인생과 글쓰기’를 강연합니다.

  안재성 씨는 1960년 경기도 용인시에서 출생. 1980년 대학 재학 중 광주민주화운동 때 서울에서 시위하다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어 제적됐고, 1983년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구로공단의 동일제강, 청계피복노동조합, 태백 탄광지대, 구로인권회관 등지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1986년 《동지》를 발표하고, 1988년 《바깥 세상이 보인다》, 《타오르는 광산》을 출간했습니다.

  1989년 분신 사망한 광부 성완희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해 장편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안재성 씨는 박노해의 문학을 계승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90년 장편소설 《사랑의 조건》, 1992년 《피에타의 사랑》을 출간했고, 그 밖에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베트남전쟁 등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를 추적한 장편소설 《황금이삭》과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당당하게 누볐던 식민지 운동가들의 열정을 다룬 노동소설 《경성 트로이카》(2004), 작품집 《어느 화가의 승천》(1993) 등이 있습니다. 또 실천문학사에서 《박헌영 평전》, 《이현상 평전》도 출간했지요.
 
   
현재는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나올 책은 일제하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하던 한 사회주의자 관한 책입니다. 소설을 주로 쓰는 안재성 씨의 삶과 글쓰기는 어떨까요. 9월 22일 목요일을 기대합니다.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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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2. 13:34 기획 특집

'쉽게 강연하려고 배운 글쓰기',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8월 25일 목요일 늦은 7시, 서교동 태복빌딩(문턱없는밥집 건물) 2층 강당 
수강료: 1만원 (독자/청소년 5천원) 


 
전국에서 1년에 300여 회를 강연하는 하종강 선생님이 작은책에서 강연합니다. 이번 강연은 하선생님이 늘 하시는 노동에 관한 교육이 아니라 작은책에서 1년 기획한 특집 강좌 <내 인생과 글쓰기> 중 한 강좌입니다. ‘노동자가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철학으로 책을 내고 있는 작은책은 올해 초 홍세화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돌아오는 9월 안재성, 10월 윤구병 선생님까지 기획한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25일에 강연하는 하종강 선생님은 자세한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전국에 있는 노동, 사회단체나 학교 같은 곳에 강연을 하러 다니는 분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낸 책으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길에서 만난 사람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번 강연은 노동 강연이 아니라 하종강 선생님의 삶과 글쓰기가 주제입니다. 하종강 선생님은 명강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책을 낸 저자이자,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매체에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입니다. 하종강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왔고, 처음 글을 쓸 때 어떻게 썼는가, 왜 대중이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합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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