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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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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일터탐방_ 유성기업

 

내 동생 광호가 왜 그랬을까

정인열/ <작은책> 기자

 

일은 동료와, 잠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뭐! 잘못되었습니까?’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들고 있던 손팻말 문구다.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로 알려진 대표적 사업장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투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투쟁을 이기는 중이라고 평한다. 유성기업 노동자 김성민 씨와 국석호 씨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 현대·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회사다. 충북 영동과 충남 아산에 공장이 있다. 김성민 씨는 1993년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지금 그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지회) 사무장이다. 노조파괴가 발생한 8년 동안 지회장만 두 차례 했다.

국석호 씨는 1994년에 입사했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한광호 씨는 이듬해에 형을 따라 입사했다.

▲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노동자들은 1400도가 넘는 용탕에서 쇳물을 녹였다. 금속을 깎고 돌리고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일했다. 밤샘 노동에 매일 잔업을 하고 휴일에도 일했다. 그러다 1999년 한 동료가 야간근무를 마친 후 통근버스 안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도 노동자 5명이 급작스런 죽음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회는 2009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여 201111일 시행하고 월급제로 전환하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시행 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와 협상하기로 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회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20115182시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즉시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 깡패 약 200명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조합원 500여 명이 아산공장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석 달을 노숙했다. 용역 깡패는 대포차로 조합원 13명을 치어 다치게 했다. 경찰은 대치 중이던 조합원들을 전원 연행했다. 조합원들은 다시 모여 622일 아산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용역은 돌을 던지고 소화기를 집어던졌다.

저쪽에서 서치라이트를 켜면 우리는 앞이 안 보이잖아요. 주먹만 한 돌이 슝슝 날아와요. 소화기 뿌리다가 막 집어던지니까 굉장히 무서웠죠. ‘소리 나면 거기 맞은 거거든.”

두개골이 함몰되고 광대뼈가 부서지는 등 심하게 다친 조합원만 6. 고작 2시간짜리 부분파업에 회사는 잔악하고 집요하게 대응했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제출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2011428)’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봉 7천만 원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하고 있다고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 원고는 창조컨설팅이 써 준 것이었다. (연봉 7천만 원은 입사 25~30년차 노동자가 주말, 휴일, 잔업, 밤샘 노동을 해야 받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임금이다.)

 

가학적 노무관리

직장폐쇄 후 약 두 달 만인 20117, 사측은 제2노조 설립을 주도했다. 지회가 현장에 복귀하자 사측 직원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조합원들의 화장실 가는 시간, 전화 통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등을 체크해 시급에서 제했다.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시키고 승진, 작업배치 등에서도 불이익을 주었다. 징계와 고소·고발도 끊임없이 했다. 가학적 노무관리였다. 지친 조합원들이 하나둘 제2노조로 빠져나갔다. 지회는 이에 반발해 2012~2014152일간 굴다리 농성, 259일간 22미터 높이 광고탑 농성을 벌였다. 유성기업 서울사무소를 오가며 천막농성을 하고 대전고법, 대전고용노동청 등 유관기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2노조로 넘어간 조합원 설득도 포기하지 않아, 2014년부터는 제2노조보다 지회 조합원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형, 동생하며 지내던 사람들이 분열되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그 사람들 잘 먹고 잘살 때 우리는 가족이 고통받았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요. 아내들끼리는 시장에서 마주치면 싸움 나고, 학교에서는 애들끼리 싸우고. 가정부터 이리 되니까 삶이 다 무너지는 거야.”

충남노동인권센터에서 조합원들의 심리 건강을 조사한 결과 43퍼센트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명됐다. 일반인보다 6~7배 높은 수치였다. 국석호 씨와 한광호 씨도 포함됐다. 그리고 20163, 국석호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저는 대전고법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는 이리 될 줄 알았지만, 왜 내 동생 광호가 그랬을까? 멀쩡하던 놈이?”

 

한광호 열사

한광호 씨는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평소 말수도 적고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던 터라 국 씨는 믿을 수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장례 치르면 개죽음이라더라고. 노조파괴로 지금 조합원들이 다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결심을 했죠. 광호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이 싸움 끝내야겠다고.”

한광호 열사 꽃상여를 메고 양재동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 영정을 들고 있는 이가 국석호씨다( 20166). 사진_영화 <사수> 스틸이미지.

지회는 열사 투쟁에 돌입했다. 회사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시신은 냉동고에 둔 채 서울시청으로 올라와 분향소를 차리고 100리터 종량제봉투에 들어가 노숙을 시작했다. 한광호 열사가 죽은 지 90일째 되는 날, 지회는 꽃상여를 메고 현대자동차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으로 분향소를 옮겼다.

 

왜 현대자동차인가?

노조파괴의 핵심에는 현대자동차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는 이미 한광호 열사가 죽음을 택하기 두 달 전인 20161월에 밝혀졌다. 당시 은수미 국회의원은 현대자동차 최○○ 이사대우가 부하 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공개했다.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제2노조 가입 인원 목표를 주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했으며, 매주 1회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을 본사로 불러 합동 회의를 했음이 밝혀졌다. 현대자동차는 왜 그랬을까? 김성민 사무장은 말한다.

부품사들을 일률적으로 정리하고 나서 부품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 한 거라고 보거든요. 왜냐면 부품사들은 파업을 통해 노동권을 쟁취하는데 이런 데를 없애 버리면 현대차 입장에선 조용하다 이거예요.”

국석호 씨는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의 사과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지회는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한광호 열사는 노조탄압에 따른 중증 정신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 현재까지도 유성기업지회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작은책(정인열) 

 

내가 왜

국석호 씨가 서울사무소에서 노숙할 때였다. 하루는 내가 왜라는 노래가 나왔다.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버림받은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꽃다지-

김성민 씨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할 때였다.

맨날 듣던 노랜데 그날따라 딱 그런 거예요. 저는 애들과 놀러 가고 싶고 가족과 저녁 먹고 싶은 평범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 선택이었거든요. 자본에 굴복하고 살았으면 그걸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불응하고 살려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런 생각 들 때면 힘들었어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검찰, 청와대, 고용노동부, 경찰이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그룹을 비호했지만 지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하나씩 이겨 나갔다. 2노조 무효 판결(20144), 유시영 대표 구속(20172, 노조파괴 혐의로 16개월 실형 선고),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대표와 김주목 전 전무 구속(20188, 노조파괴 혐의로 징역 12개월), 조합원 해고 무효 확정 판결(201810, 대법원), 한광호 열사를 포함한 사망 조합원 8명에 대한 보상.

임금도 일단 안 주고 보고, 해고도 일단 시키고 보고.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니까 이긴 거예요. 그냥 쌩으로 8년을 기다리라고 하면 저도 못 할 거 같아요. 우리가 뭉쳐서 하나하나 해 오다 보니 8년이 지난 거지.”

전에는 일하다 커피 한잔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해서 비참했어요. 지금은요, ‘어우, 커피 드셔야죠.’ 이래요. 우리가 이겨 가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 유성기업지회 김성민 사무장(왼쪽)과 한광호 열사의 형 국석호 씨(오른쪽). 작은책(정인열) 


간절한 바람

지회의 요구는 3가지다.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 어용노조 해체, 마지막으로 사태의 발단이 된 심야노동 철폐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9년 단체협약이 복원되어야 한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을 자고 싶다. 이들의 바람은 여전히 간절하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8년 10월호

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감독의 <사수>

 

우리가 없던 시간의 기록들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솔직한 고백을 드립니다. 유성기업에 대해서는 자주 들었습니다. ‘장기투쟁 사업장으로서 늘 이름이 나왔고 그래서 2014밀양·청도 72시간 송년회의 방문지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그동안 이름만 알고 있었어요. 2014년 그때에 밀양, 청도 주민들의 일정에 부분적으로 동행하기도 했으면서도 유성기업의 사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구미 스타케미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코오롱 해고 노동자, 씨앤앰 케이블 노동자, 기륭 노동자. 다 열거하기에도 숨이 찹니다.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긴 시간동안 절절한 사연을 안고 싸우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각자의 차이는 뭉뚱그려진 채 이름으로만 구분될 뿐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러다가 이번에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만난 <사수>라는 영화 덕분에 이제야 그곳이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수>라는 영화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수>를 만든 생활공동체 공룡(이하 공룡)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공룡 사람들은 미디어교육 워크숍 같은 데 가면 만나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청소년들과 교육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함께 살아내고 성장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 평소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공룡이 만든 영화라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영화로 <사수>를 추천합니다.

2016년 여름,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회사의 노조 파괴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려 싸워 온 지 5년이 되어 갈 무렵이었습니다. 무장한 경비용역들로부터 무차별 폭력을 당하며 감시와 차별의 일상을 살아오던 일터 동료들에게 한광호 님의 죽음은 곧 자기 자신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또다시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각오로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은 노조 파괴를 끝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웁니다. <사수>는 그 시간의 기록입니다.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공룡 사람들이 유성기업을 만난 건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문이었습니다. 폭력의 기록이 담긴 피켓을 든 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웃지 않았고 가만히 비를 맞고 서 있었다고 김설해 감독은 말합니다. 김설해 감독이 들려주는 유성기업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1518일 그들의 회사는 야간노동을 없애기로 한 노조와의 약속을 어기고 교섭 도중 기습적으로 직장을 폐쇄합니다. 용역들이 공장 문을 막은 채 폭력을 행사하고 2000명의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렇게 기나긴 싸움은 이어집니다. 처음 보는, 하지만 낯설지 않은 화면들이 이어집니다. 투쟁의 일상 중 하루였을 어느 날, 노동자들이 천막을 철거합니다. 그중 한 노동자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라는 말을 하면서 인터뷰에 응해 줄 것을 청하지만 그 노동자는 나는 고생 안 했다고, 다른 사람 섭외해 주겠다고 쑥스럽게 웃으며 카메라를 피해 도망갑니다. ‘1994년 유성기업 입사라는 설명 자막과 이름이 떠도 저는 몰랐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동료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럽다는 심정을 토로했던 그분의 얼굴이 장면이 바뀌면서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고 한광호 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생전의 한광호 님을 알고 있었던 거죠. 인형극을 준비하고 연습하며, 천막을 치고 걷으며, 용역의 폭력에 함께 맞서 싸우며,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 온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째로 볼 때에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화면들을 보게 됩니다. 쑥스러워하던 한광호 님의 인터뷰가 끝난 후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며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멀리서 찍은 화면이 보입니다. 보통은 씬의 마무리 화면으로 쓰이는 롱샷 안 그 어딘가에 한광호 님의 모습이 있는 겁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했을 그 순간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화면을 고르며 떠올렸을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 그리고국석호, 김성민, 김수종, 김풍년. 지금은 함께 있지만 다가올 미래는 가늠이 안 되어서 불안한 이 관계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 둘씩 펼쳐집니다. 그 사연들은 고 한광호 님의 시간과 겹쳐집니다.

떠나고 싶은 생각어떻게 하면 끝낼까 이런 생각.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죠. 차로 밀어버릴까. 어디 숨어 있다가 오며는 급브레이크 잡아가지고 뭐 이런 생각. 확 들이받고 싶은(김수종)

▲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거기에 떠나간 동료에 대한 미안함까지 겹칩니다.

나 때문에 죽은 것 같고 내가 더 나서지 못해서 죽은 것 같고. 내가 좀 더 그 자리에 서서 그 형(고 한광호 님)보다 좀더 한발 더 앞서서 아니면 옆에서 왜 못해 줬을까.”(김풍년)

김풍년 님이 들려주는 그다음 얘기에 또 충격을 받습니다. 세 살, 네 살, 많아야 여섯 살 되는 자신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아이가 피가 나는데 피 난다고 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는 김풍년 님.

영화를 보고 유성기업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참 많이 놀랬습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피스톤링, 실린더사이더와 같은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던 이 기업의 2012년 말 기록을 보면 매출액, 당기순이익, 직원 평균 연봉 등이 대기업에 밀리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창조컨설팅이라는 낯설지만 끔찍한 기업의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노조파괴 전문기업이래요. 이 기업이 망가뜨린 건 유성기업 만이 아니더군요.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에스제이엠(SJM). 악명높은 이 기업의 배후에 현대차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 ‘창조컨설팅의 그 비인간적인 창조성이 노동자들의 삶을, 그 가족들의 평화를 어떻게 깨뜨리는지 영화는 속속들이 보여 줍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무릎 꿇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비닐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을 하며 유시영 대표이사의 법정구속까지 이끌어냅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고 한광호 님의 장례는 치러집니다. 싸움은 진행 중이고 이분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거기 늘 공룡의 카메라가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동료로서 <사수>가 지켜낸 자리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용자 측 직원에게 멱살을 잡힐 뻔하는 조영은 감독의 모습이 화면에 언뜻 비칩니다. 청소년기에 보았었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 공룡의 정회원으로서 여전히 삶의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대화하던 회사측 직원이 갑자기 카메라에 달려들 때 노동자들은 얼른 몸으로 막아서며 말합니다. 우리 카메라한테 왜 그러느냐고. 노동자들의 카메라로 지내온 세월. <사수>에는 2011년부터의 그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시간을 꼭 한 번 만나 보세요. (문의: 생활공동체 공룡 043-266-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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