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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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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프레시젼'에 해당되는 글 2

  1. 2021.03.30 40년 동안 사라진 회사들
  2. 2019.04.03 공포의 택배 상자

<작은책> 2021년 4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40년 동안 사라진 회사들

김정숙/ 금속노조 남부지회 신영프레시젼분회

 

내 나이 겨우 15살, 어린 나이에 공장엘 다니게 되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는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전업주부이셨던 엄마는 우리 5남매와 살아갈 길이 아득했을 것이다.

옆집 사는 친구의 소개로 무작정 집 근처에 있는 온도계 공장에 나갔다. 어렸지만, 같이 일하는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들이 봤을 때, 일을 야무지게 했던지 다들 예뻐해 주셨다.

그렇게 첫 직장을 10년을 다녔다. 그 당시는 근로기준법이라든지, 최저임금이라든지, 생각도 못했고, 아니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었다. 7~8년 다녔을 때쯤, 그래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 야학에 나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때가 1983년도였는데, 야학 교사로 있던 그들은 나와 동갑이거나 어리거나 그랬다. 중등 과정을 2년 동안 배워 검정고시를 치렀고, 합격했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몇 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저것 부업도 해 봤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무렵, 부업하던 곳의 공장에 와서 일 좀 해 달라는 청이 있었다. 오후에만 알바를 하다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어 공장과도 가까워졌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부터 종일반 일을 하게 됐는데, 사장님은 내가 일하는 걸 인정했는지 최고참 동료와 동급으로 급여를 챙겨 주셨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과장이 납품을 가면 같이 일하는 분들이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과장이 하는 선작업을 처리해 줬다. 3년 넘게 다니다 퇴사를 했는데, 후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안타까웠다.

얼마 있다가 서울로 이사를 해서 조그만 장사를 시작했는데, 대형마트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자동차를 굴리다 보니, 사람들은 동네 구멍가게는 아주 급하지 않으면 찾지 않았다. 3년 정도 버티다 결국 접게 됐다.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독산동까지 오게 됐다. 2002년 겨울 휴대폰 케이스 관련 공장에 들어갔다. 3년 정도 됐을 무렵 군포에 새 건물을 짓는다고 했다. 건물이 완공돼서 군포로 출근했다. 환경은 훨씬 좋아졌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부도가 났다며 난리가 났다. 무리해서 확장한 것이 화근이 되었단다. 잔금을 못 받은 설비업체에서 컨베이어벨트를 뜯어 가고, 또 다른 업체에서는 탑차가 와서 사출이며 도료며 실어 나가고, 이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공장에서 밤을 새고 관리자들과 싸우고, 결국은 노무사를 지정해서 체당금 설정으로 받기는 했지만 씁쓸했다.

글쓴이가 손글씨로 쓴 공장 이직 경력. ⓒ김정숙

바로 다른 공장엘 갔지만 내 겉모습만 보고 퇴짜를 놓았다.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친구만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하는 곳이라 인원이 필요했고, 며칠 후 나도 출근을 하게 됐다. 대표는 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내게 반장 자리를 줬다. 정말 내 일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3년이 넘어갈 즈음 원래 사장이 욕심을 내서 또 일자리를 잃게 됐다. 마지막 날 대표님이 그동안 맘고생 많았다며 퇴직금 이외에 얼마를 더 챙겨 주셨다.

벼룩시장을 뒤져 바로 정규직 자리를 찾아 출근을 하게 됐는데, 일한 지 1년이 되어 갈 때쯤, 회사가 또 문을 닫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속상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작은 조립업체엘 들어가 일을 하고 있는데, ‘신영프레시젼’에서 검사 경력자를 찾는다고 해 소개를 받고 출근을 하게 됐다. 출근해서 한 달 반 정도만 바빴고,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다 다른 부서로 지원을 다니면서 몇 년이 지났는데, 잘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노조를 만들게 됐다.

2019년 폐업한 신영프레시젼 사옥. ⓒ작은책(정인열)

사측에서는 권고사직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해고를 해 버렸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싸웠고, 회사로부터 현장이 아닌 관리부로 복직하라는 통보를 문자로 받았다. 회사는 얼마 후 권고사직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청산 해고를 통보해 버렸다. 알고 보니 생산에서 얻은 수익으로 골프장 건설에 투자를 했고, 회장과 임원들끼리 8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이익 배당금이라며 나눠 가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더랬다. 이윤이 날 때만 노동자가 필요했던 그들은 필요 없으면 휙 하고 내팽개치고,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쉽게 일어나는 곳이 신영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신영프레시젼 사옥에서 청산 반대 투쟁을 할 당시 이희태,김정숙,이순영,최진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회사가 사라진다는 게 이렇게 쉬웠단 말인가! 40년을 넘게 일해 오는 동안 몇 개의 회사가 문을 닫았는지…. 먹고살아야 했기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근속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란 듯이 잘 살아 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맘이 아리다. 정년이 60세로 늘어났다면서 좋아라 했었는데, 청산 해고로 정년도 되기 전에 일터를 떠나야 하니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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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4월호

일터 탐방_ 신영프레시젼

 

공포의 택배 상자

정인열/ <작은책> 기자

 

 소통은 성공의 기초적 수단이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 있는 표어다. 신영프레시젼은 LG전자 스마트폰 금형 설계와 제작, 사출부터 조립까지 일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회사는 소통을 강조하는 표어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대량 해고하고, 20년간 이어 온 사업도 정리하겠다며 250명이던 노동자들을 다 내보냈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201812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노동자들 50명이 서울 독산동 사옥에 남아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2018127일부터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 김정숙, 이순영, 최진숙, 이희태 씨를 지난 35일 사옥에서 만났다. 사무실 한쪽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있는 표어.   작은책(정인열)

 

등기를 안 받기 시작하니까 회사에서 꼼수를 써서 택배를 보낸 거죠. 택배는 수취 확인 안 하고 놓고 가도 되니까요.”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은 해고 통지서. 처음 회사는 등기우편으로 해고장을 보냈다가 수령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기자 수취 확인이 필요 없는 택배로 보냈다. 발송인 난에도 회사명을 기입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받아 본 노동자들 73명은 20187월에 해고됐다.

▲ 생산 공장과 대표이사실이 있는 신영프레시젼 사옥.  작은책(정인열)

 

신영프레시젼은 자본금 12억 원(1999~2001)으로 시작해 15년간(2003~2017) 연평균 매출 1500억 원 이상, 연평균 당기순이익은 2016년까지 91억 원에 이르는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다 LG전자가 2014년부터 베트남 등 해외 공장을 가동하면서 스마트폰 국내 생산량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의 국내 생산량이 10년 만에 5분의 1로 줄면서(한겨레, 2019213일 보도) 신영프레시젼도 물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2017년 처음으로 약 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회사는 20179월부터 유급순환휴업,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축했다. 하지만 분회는 정리해고도, 청산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희태 분회장이 말했다.

 

▲ 불 꺼진 신영프레시젼 공장.   작은책(정인열)

 

단 한 사람도 회사 상황을 설명하거나 미안하다는 자리조차 없었어요. 여기 누님들 정말 10,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제가 봤으니까요. 그런데 해고장만 배달됐거든요.”

신영프레시젼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으로 이 분회장만이 유일한 남성 조합원이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녀차별때문이었다. 사출 업무를 하는 생산부 노동자들은 주야 2교대로 일을 하다 2017년부터 주야 3교대로 일할 것을 통보받았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최저시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었다. 이직하려는 남성 직원들이 생기자 회사는 남성에게만 임금 보전을 해 주었고, 여성들은 계속 최저시급을 적용했다.

남녀차별 불평등하다고 면담 신청을 했죠. 하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한밤중에 관리부장한테 단체로 문자 폭탄도 보냈지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각자 방법을 알아보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로 가서 노동 상담을 받았다. 임금차별부터 그동안 쌓였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생산부 노동자들은 사출기에서 물건이 나오면 컨베이어벨트에 일렬로 서서 분류, 조립, 검사, 포장을 했다. 사출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실내 온도는 40도에 이르렀고 화상 사고는 일상이었다. 휴대폰 반조립을 하는 제조부는 시간당 400~450개를 생산하는 것이 정량이었지만 관리자는 매일 목표치를 높여 700~800개까지 해야 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서 일하고 점심시간에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일한 시간은 임금으로 받지 못했다. 10년을 일한 숙련자라도 신입 사원과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았다.늙은 소는 일을 못하니 채찍질 해야 한다, 자기들이 공주인 줄 안다는 등 막말도 들었다.

얘기하다 보니까 눈물콧물까지 다 흘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막 승질나서 욕도 나왔죠(웃음).”

회사와 달리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는 이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같이 고민해 주시고, 해결책도 같이 찾아 주시고. 우리 의견 존중해 주는 게 회사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신영프레시젼 노동자 이희태,김정숙,이순영,최진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그렇게 201712,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신영프레시젼분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에 노동인권을 포함한 현장 개선안과 영업망 확보 및 사업 다각화 등 회사 경영 발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감행하고 청산 선언을 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잠도 못 자고 시간에 쫓겨 생활한 반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지회에 따르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연봉 3억 원에 지난 20년간 배당금으로만 860억 원을 받았고, 또 사측 교섭대표는 청산 시 부채를 정리한 후 자산을 현금화한 금액만도 약 75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노조에 밝혔다. 게다가 회사는 경영 발전 대책은 내놓지 않고 2012년부터 업종과 상관없는 골프장 사업에만 총 477억 원을 투자했다.

회사가 뒷짐만 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열심히 발로 뛰어다녔다. LG전자 여의도 본사, 목동과 성수동의 신창석 회장 집, 춘천의 로드힐스 골프장, 청와대 및 정부 관계부처에 각종 집회까지 다녔다. 이순영 씨는 운동화 밑창만 세 번을 갈았다. 이들은 51일 노동절이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고 멀리했던 사람들이다. 사측 관리자들이 분회가 생기기 전 금속노조에 직가입한 몇몇 직원에 대해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금속노조 직가입 조합원)은 알게 모르게 수군거리고 자꾸 뭔가를 전파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이상한 간첩이었어요. 그래서 관리자한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은데요? (노조하는 사람들이란) 참 이상하네요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랬던 이순영 씨는 부분회장이 되어 앞장서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이규철 사무장(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이 소식지를 돌리잖아. 그냥 휭 지나쳐 왔지. 그런데 회사가 이렇게 갑자기 엎어질지는 몰랐지. 일단 고용이 안정됐으니까. 월급 잘 나오고 했으니까.”

독산역 주변에 설치된 노동 상담소 천막을 보면 피해 다녔던 여성노동자들은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도 참석해 율동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성사업장 구조조정에 아무 대책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레이테크코리아, 성진씨에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얀 소복을 입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세계여성의날 집회에 참석해 율동을 선보인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3월 8일).작은책(정인열)

 

세계여성의날 행진을 하는 모습. 이들이 소복을 입은 이유는 해고됐기 때문이다(3월 8일). 작은책(정인열)

 

자동차업계, 조선업계도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엄연한 가장이거든요. 여성노동자들을 정말 하찮게 생각하는 건지.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한다 어쩐다 하잖아요? 있는 일자리도 못 지키면서 진짜.”

늙은 소라고 무시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자본가들의 젠더의식은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정부 역시 여성노동자를 가장으로 인정하고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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