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21년 4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40년 동안 사라진 회사들
김정숙/ 금속노조 남부지회 신영프레시젼분회
내 나이 겨우 15살, 어린 나이에 공장엘 다니게 되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는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전업주부이셨던 엄마는 우리 5남매와 살아갈 길이 아득했을 것이다.
옆집 사는 친구의 소개로 무작정 집 근처에 있는 온도계 공장에 나갔다. 어렸지만, 같이 일하는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들이 봤을 때, 일을 야무지게 했던지 다들 예뻐해 주셨다.
그렇게 첫 직장을 10년을 다녔다. 그 당시는 근로기준법이라든지, 최저임금이라든지, 생각도 못했고, 아니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었다. 7~8년 다녔을 때쯤, 그래도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 야학에 나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때가 1983년도였는데, 야학 교사로 있던 그들은 나와 동갑이거나 어리거나 그랬다. 중등 과정을 2년 동안 배워 검정고시를 치렀고, 합격했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몇 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저것 부업도 해 봤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무렵, 부업하던 곳의 공장에 와서 일 좀 해 달라는 청이 있었다. 오후에만 알바를 하다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어 공장과도 가까워졌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부터 종일반 일을 하게 됐는데, 사장님은 내가 일하는 걸 인정했는지 최고참 동료와 동급으로 급여를 챙겨 주셨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과장이 납품을 가면 같이 일하는 분들이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과장이 하는 선작업을 처리해 줬다. 3년 넘게 다니다 퇴사를 했는데, 후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안타까웠다.
얼마 있다가 서울로 이사를 해서 조그만 장사를 시작했는데, 대형마트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자동차를 굴리다 보니, 사람들은 동네 구멍가게는 아주 급하지 않으면 찾지 않았다. 3년 정도 버티다 결국 접게 됐다.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독산동까지 오게 됐다. 2002년 겨울 휴대폰 케이스 관련 공장에 들어갔다. 3년 정도 됐을 무렵 군포에 새 건물을 짓는다고 했다. 건물이 완공돼서 군포로 출근했다. 환경은 훨씬 좋아졌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부도가 났다며 난리가 났다. 무리해서 확장한 것이 화근이 되었단다. 잔금을 못 받은 설비업체에서 컨베이어벨트를 뜯어 가고, 또 다른 업체에서는 탑차가 와서 사출이며 도료며 실어 나가고, 이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공장에서 밤을 새고 관리자들과 싸우고, 결국은 노무사를 지정해서 체당금 설정으로 받기는 했지만 씁쓸했다.
바로 다른 공장엘 갔지만 내 겉모습만 보고 퇴짜를 놓았다.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친구만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하는 곳이라 인원이 필요했고, 며칠 후 나도 출근을 하게 됐다. 대표는 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내게 반장 자리를 줬다. 정말 내 일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3년이 넘어갈 즈음 원래 사장이 욕심을 내서 또 일자리를 잃게 됐다. 마지막 날 대표님이 그동안 맘고생 많았다며 퇴직금 이외에 얼마를 더 챙겨 주셨다.
벼룩시장을 뒤져 바로 정규직 자리를 찾아 출근을 하게 됐는데, 일한 지 1년이 되어 갈 때쯤, 회사가 또 문을 닫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속상했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작은 조립업체엘 들어가 일을 하고 있는데, ‘신영프레시젼’에서 검사 경력자를 찾는다고 해 소개를 받고 출근을 하게 됐다. 출근해서 한 달 반 정도만 바빴고,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다 다른 부서로 지원을 다니면서 몇 년이 지났는데, 잘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노조를 만들게 됐다.
사측에서는 권고사직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해고를 해 버렸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싸웠고, 회사로부터 현장이 아닌 관리부로 복직하라는 통보를 문자로 받았다. 회사는 얼마 후 권고사직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청산 해고를 통보해 버렸다. 알고 보니 생산에서 얻은 수익으로 골프장 건설에 투자를 했고, 회장과 임원들끼리 8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이익 배당금이라며 나눠 가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더랬다. 이윤이 날 때만 노동자가 필요했던 그들은 필요 없으면 휙 하고 내팽개치고,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쉽게 일어나는 곳이 신영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회사가 사라진다는 게 이렇게 쉬웠단 말인가! 40년을 넘게 일해 오는 동안 몇 개의 회사가 문을 닫았는지…. 먹고살아야 했기에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근속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란 듯이 잘 살아 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맘이 아리다. 정년이 60세로 늘어났다면서 좋아라 했었는데, 청산 해고로 정년도 되기 전에 일터를 떠나야 하니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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