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7년 12월호>
작은 소설
11월의 연극
하명희/ 소설가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 불편한 온도(2017 올해의 문제소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 기억나니?’
편지의 시작은 이랬다. 1년에 한 번 뜸금없이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편지는 매번 기억을 더듬는 문장으로 시작되곤 했다. 이번에는 어떤 소식을 담았을까. 나는 핸드폰도 없는 그녀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편지를 통해 짐작해야 했다. 치유연극? 편지와 함께 들어 있는 초청장에는 ‘아주 특별한 생의 첫 번째 연극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생의 첫’ 연극과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이 묘하게 겹치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잊겠는가. 열여섯의 겨울이었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겨울밤, 내 눈 앞에는 불타는 가구공장이 있었다.
“눈이 자살하는 거야.”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 속에 서 있던 그녀가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불쑥 말을 걸어왔다. 눈은 불을 향해 집요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송이 날리던 것이 불길이 거세질수록 더 세차게 사방에서 쏟아졌다.
“눈이 자살한다고?”
내가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아름다워.”
그녀의 입술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입김이 새나왔다. 아름다워가 동그랗다는 것을 그녀의 입술을 보며 알게 된 날이었다. 눈발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 떼처럼 빛나고 있었다. 곧 이어 소방차가 오고 불길은 가구공장의 물건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뒤로 물러나고 입을 막고 켁켁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불 속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감춰놓은 것처럼 웅성거렸다.
“아름다워?”
뭐가 아름답다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그녀의 발등으로도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태우면서, 녹으면서 사라지는 거. 불을 끄기 위해 내리는 것 같지 않니? 온몸으로 불을 끄려고 사방에서 떨어지면서, 떨어지면서 사라지잖아.”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만 아는 비밀이 생긴 것처럼 눈을 찡긋, 혹은 손을 슬쩍 들어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이라. 그 11월의 밤은 우리가 친구가 된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책을 하나 빌려주었다. 그러면서 한 대목을 펼쳤다.
“여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눈이 자살하는 거야’라는 문장이 있었다.
“책에 있었던 문장이구나.”
그녀는 서울 곳곳에는 자기만 알 수 있는 증표가 심어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을지로 3가 지하상가에는 1986년에 개업한 음반가게가 있다고도 했다.
“아는 곳이니?”
그녀는 대답대신 책을 내밀었다.
“읽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덧붙였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꼭 알려줘.”
나는 그녀가 준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당연히 세상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배정받아 그녀와의 연락은 뜸해졌지만 그녀는 매년 11월마다 편지를 보내왔다.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왜 그랬는지 그녀와는 만나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편지는 한동안 끊겼다가 몇 해 전부터는 발신지가 수녀원으로 찍혀 있었다. 편지와 같이 들어 있던 초청장을 펴보니 안양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예전에 소년원이었던 곳을 중고등학교로 인가받은 곳이라고 했다.
‘1년째 이곳에서 치유연극을 진행했어.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녀석을 발견했지.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처럼 불타버린, 사라지는 것처럼 거뭇한 그림자를 가슴 속에 품은 아이였어.’
그녀는 나도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1호선 전철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학교는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예전 교도소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신분증과 초대장을 보여주자 운동장이 보이는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 옆으로 수건들이, 백 개는 넘어 보이는 같은 색의 수건들이 건조대마다 걸려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 강당이 있는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손에 피크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공개 만남의 자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강당 문이 열리고 입장해도 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강당에는 백 명은 넘는 소년들이 머리를 박박 밀고 갈색 체육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남자들의 냄새라고 해야 할까. 동물원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훅 끼쳤다. 뒤쪽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커피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뒤에서 보니 소년은 초를 잰 듯 정확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신맛과 진한맛 중 어떤 걸 좋아하세요?”
내 차례가 되자 소년이 물었다.
“진한맛이요.”
소년은 한 손은 테이블을 밀어내고 거품에 정확히 동심원을 그리며 커피를 내렸다. 저 아이일까? 보이는 소년들마다 그녀가 말한 아이로 보였다. 커피를 들고 관객석 끝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가 정리될 즈음 연극의 연출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그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치유연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지, 얘들아?”
연출가는 초대 받은 손님들이 아니라 줄지어 앉아 있는 소년들을 보며 말을 건넸다. 소년들이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뒤에서 보니 들어올 때 보았던 백 개의 수건이 일제히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었다. 관객들은 소년들의 수보다 많지 않았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무대에는 소년들 셋이 누워 있었다. 맨 끝 줄에 앉아 연극을 보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워 있던 아이들이 일어나 자기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욕이 터져 나왔다. 소년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른다는 듯 말끝마다 씨발, 좆같다로 대사를 채우고 있었다. 연출가가 이 욕들을 걸러내지 않은 것이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연극이 중반부로 갈 때까지 소년들의 가정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 아이는 매 맞는 아이였고 한 아이는 도둑질을 했다고 했다. 또 한 아이는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같은 방에 있는 소년들의 사연이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처음에는 듣기 거슬렀던 욕들이 무척 절제된 언어처럼 들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말하자면 소년들은 욕을 뱉으면서 그 상황들을 이기려고, 외면하려고, 극복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시 사이렌이 울리고, 조명이 붉은 빛으로 바뀌었다. 거칠게 욕을 내뱉던 소년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지고 있었다. 소년이 던진 것을 받은 사람들이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야.”
객석에 던져진 불덩이를 따라 조명이 붉게 비쳤다. 나는 저 소년이 아닐까 짐작했다. 소년의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불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소년도 그 속에서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붉은 조명과 사이렌이 꺼지고 무대는 정전된 듯 조용해졌다. 무대 아래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다. 소년이 무대로 올라오고 뒤 이어 소년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연극은 거칠게 그 순간을 전달하고 있었고 소년은 무대에서 끌려 나가면서 관객들을 향해 외쳤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 났어요. 이제는 좀 보라고. 불이 났다고. 저기 우리 집에 불이 났단 말이야. 이제 보이나요? 불이야.”
연극이 끝나고 연출가는 이 연극의 취지를 설명했다.
“저희 연극은 치유연극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배우들은 전문 연극을 배운 친구들이 아니지만, 이것은 처음이에요. 생의 첫 연극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이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이곳의 친구들과 연극에 접근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장놀이도 해보고 역할극도 해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면서 한 달 한 달을 채워나갔지요. 보신 것처럼 연결도 서투르고 여기저기 욕이 많이 들어가서 불편하셨죠?”
관객석에 있던 소년들이 뒤를 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내 옆에 있던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친구들이 대본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토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생의 첫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표현해낸 이 아이들이 대견하네요.”
박수가 터졌다.
“고맙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반전입니다. 지금부터는 관객들이 직접 이 연극에 참여하는 겁니다. 지금 보신 장면 중에 내가 끼여들어서 역할을 해보겠다 하시는 분들은 누구든 손을 들어주세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얘기를 연극을 통해 전달해보는 겁니다. 누구부터 할까요?”
관객들은 교실에서 잠만 자는 아이를 꾸짖는 선생이 되기도 하고, 교도관이 되어 아이들의 순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 갈색 체육복을 입은 아이 하나가 어설프게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연출가는 얼른 그 소년을 불러냈다.
“그렇지, 연극에 참여한 친구들 말고 여기서도 이렇게 할 말이 있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너는 어느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니?”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던 소년은 불을 지른 아이가 되어보고 싶다고 했다. 장면은 다시 붉은 조명을 받는 무대로 바뀌었다. 소년은 라이터를 들고 망설이다 라이터를 켜고 자기 얼굴을 비췄다.
“나예요. 아빠. 아빠 나는 불을 지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불을 질렀어요. 아빠가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어요. …아빠, 나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소년은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객석도 조용해졌다. 연출가가 음악을 낮게 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소년은 불탄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 역할을 했던 소년이 누워 있는 방에 붉은 조명이 비쳤다. 소년은 망설임없이 그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나도 여기 있을래요.”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로 눈송이 같은 조각이 떨어졌다. 나는 뒤를 돌아 조명실을 바라보았다. 수녀복을 입은 그녀가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여자가 무대를 향해 걸어가 꽃다발을 던졌다. 객석에 있던 소년들이 휘파람이 불었다. 씨발, 좆나 멋있다. 휘파람을 부는 입술들도 동그랗게 오므려졌다. 소년은 일어나지 않고 무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