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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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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용역 깡패가 공장에도 있어요? 난 철거촌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출판사 일꾼들과 저녁을 먹다가 이번에 취재한 곳의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놀랄 수도 있겠다. 요즘은 파업 현장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용역 깡패들이 동원되지만, 뉴스에는 용역 깡패가 아니라 ‘경비 업체 직원’이라고 나오니까. 사실 나도 취재를 하면서 놀라긴 했다. 왜냐하면 이번에 찾아간 일터가 ‘풀무원’이었기 때문이다.

  풀무원은 회사 이미지가 꽤 좋다. 친환경, 유기농 식품 브랜드라서 그렇기도 하고, 원혜영 의원과 그이의 아버지인 원경선 목사의 이름값 때문이기도 하다. 원경선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을 시작했다는 ‘착한 농부’고, 아버지가 키운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 1981년에 풀무원을 만든 이가 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원혜영 의원이다. 그런 ‘착한’ 회사에서 ‘못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9월 6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풀무원 춘천공장을 찾았다. 두부를 만드는 이 공장에는 백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든 것은 2000년 8월, 전체 노동자 130여 명 가운데 104명이 조합원이었다. 사무직 20여 명을 빼면 생산직은 거의 다 가입한 셈이다.

  “57퍼센트가 비정규직이었고 체불 임금이 2,800만 원 정도 됐어요. 잔업 시키고 돈 안 주고, 특근 시키고 돈 안 주고, 예비군 훈련 간 날 월급 빼 버리고 한 돈이에요. 그래서 노조 설립하기 직전에 체불 임금을 다 받아 냈고, 노조 설립하고 첫 단체 협약에서 비정규직들을 다 정규직으로 바꿨어요.”

  수처리 일을 하다 지금은 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는 박엄선 씨의 이야기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사나흘은 잔업을 하는데, 성수기인 7, 8월이면 다음 날 새벽 대여섯 시까지 일하거나 집에도 못 가서 탈의장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다시 일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 뛰어 가서 밥을 먹고 얼른 교대해 줘야 하기 때문에 내내 소화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단순 반복 작업을 하며 무거운 물건을 계속 들다 보니 손가락, 어깨, 목, 허리가 남아나지를 않았다. 또 성희롱 사건도 비일비재했고……,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그런데 노조가 만들어지자마자 체불 임금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고 거침없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하니까, 노동자들은 ‘아, 이래도 되는 거였구나. 이게 우리 권리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생산직 대부분이 노조에 가입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동자들의 호응이 높아지자 회사의 탄압도 시작됐다. 2001년에는 아웃소싱을 추진하다 노조에서 반대 농성을 시작하자 슬그머니 ‘없던 얘기’로 만들어 버렸고, 2002년 임단협 때는 용역 깡패를 등장시켰다. 한 50명 되는 용역 깡패들이 석 달 가까이 공장 안에 상주했다. 그자들은 하루 종일 제식 훈련을 하고 공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대부분이 여성인 조합원들한테 겁을 줬다. 다행히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그때부터 회사는 단협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4년 노조는 단협을 더 보완하려고 했다. 11개의 개정안을 올렸는데 회사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있던 ‘노조 깨기 기술자’를 앞세워 54개 개악안을 들고 나왔다. 고용과 노조 활동 부분에서는 건드리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30번이 넘게 교섭을 했지만 결국 합의를 못했고, 춘천공장 노동자들은 의령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들어갔다.

  “그때 원혜영이 나선 거죠. 의령공장으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대요.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힘을 못 쓰니까 의령 쪽부터 정리한 거예요. 그래서 의령공장이 파업을 접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이렇게 하면 둘 다 죽는다’고 말렸지만 별 수 없었어요. 저희도 한 40일 더 버티다가 163일로 파업을 끝냈죠.”

  이듬해인 2005년 3월, 회사는 부서 재배치를 하면서 노조 임원들을 엉뚱한 자리로 보내 버렸다. 면 공장 라인에 있던 사람을 기계 고치는 곳으로 보내거나, 물류에 있던 사람을 두부 공장 라인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노조 임원들을 재배치할 때는 노조와 미리 합의한다는 단협 조항까지 무시한 거였다. 재배치를 받아들이지 않자, 회사는 노조의 수석부위원장이던 송석호 씨와 부위원장이던 이창규 씨를 해고해 버렸다.

  부당 해고는 이어졌다. 노조 위원장이던 박엄선 씨는 2007년에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석 달 동안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나면 원래 일하던 수처리 일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복귀를 며칠 앞두고 회사에서는 아예 그 자리를 없애 버리고 생산 부서로 보냈다. 박엄선 씨는 원래의 부서로 계속 출근하며 대화를 요구했고, 회사는 계속 대화를 피하다가 석 달 뒤에 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상식과 약속을 저버린 해고의 부당성은 법정에서도 밝혀졌다. 지난해 11월, 법원의 부당 해고 판결에 따라 박엄선 씨가 복직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송석호 씨와 이창규 씨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부당 해고라 판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회사는 두 사람을 아직 복직시키지 않고 다시 9월 17일에 있을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해고된 지는 이미 햇수로 6년째다.

  그동안 일반 조합원들이 겪은 괴롭힘도 상당했다. 관리자들이 비조합원들만 데리고 회식을 하거나 야유회를 가는 것은 어찌 보면 좀 사소한 축에 든다. 가장 큰 괴로움은 경제적인 압박이었다.

  “승진에서 누락되죠, 조합원들한테는 잔업도 안 시킵니다. 기본급이 최저 임금 수준입니다. 제가 여기 15년 있었는데 이제 130만 원 받아요. 잔업 해야 먹고살아요. 근데 웃긴 건 물류 쪽은 조합원이라도 잔업을 시켜요. 그래야 물량이 나가니까.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에요.”

  2006년 회사는 노동자들한테 잔업 동의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시간과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회사는 제 마음대로 잔업을 시키고 나중에 노동자들이 항의할 때 “그때 니들이 동의서 썼잖아” 하고 나올 것이 뻔했다. 조합원들은 선택권을 달라고 하면서 동의서를 쓰지 않았고, 그 뒤로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잔업을 시키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해고와 회유, 경제적인 압박을 당하면서 100여 명이던 조합원 수는 지금 30여 명으로 줄었다. 안타깝지만 이해는 된다. 이런저런 수당을 받아도 맞벌이를 안 하면 먹고살기 어려울 텐데, 5년째 잔업도 못하고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하면서 버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남아 있는 조합원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었죠. 제가 1급 되는 데 10년 걸렸어요. 이건 노동 탄압을 넘어서 형벌이라니까요. 돈으로 죽이겠다는 거죠. 그래도 노조가 생겼으니까 제가 여기 10년을 다녔지, 안 그랬으면 그렇게 못했어요. 저는 일용직으로 들어왔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계약 연장했는데 노조 생기면서 정규직 되고 정말 좋았어요.”

  두유(콩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노조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인숙 씨의 이야기다. 사무국장이 된 지는 2년쯤 됐는데, 앞서서 노조 임원들이 줄줄이 해고되는 것을 봤지만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두렵지 않단다. 조합원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씩 ‘하루 파업’을 하며 서울에 있는 풀무원 본사에 가서 해고자 복직과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한다. 지난 8월에는 풀무원의 계열사가 외주 운영을 하고 있는 대구 동산병원 영양실 노동자들과 함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뉴스를 보면 노동자들은 흡사 싸움꾼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평화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다. 싸움이 끝나기를 바라는 쪽은 원래 ‘때리는 쪽’이 아니라 ‘맞는 쪽’ 아닌가.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평화는 단순히 ‘싸우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복종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노동자와 회사가 각자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풀무원 누리집에 가 보니 풀무원 정신이라는 꼭지에 “이웃 사랑과 생명 존중”이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풀무원이 지켜야 할 ‘제자리’는 바로 그곳이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