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9일 파업은 475일 만에 끝이 났다. 조합원 76명 중 65명은 3개월 이내에 무기계약직 별도직군제로 고용하고, 그 밖에 11명의 고용 문제는 ‘추후’ 협의 후 합의하기로 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의 직접 고용을 투쟁을 통해 얻어 낸 이례적인 성과라고 평할 수 있다. 물론 11명(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절반의 승리와 절반의 패배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결이 되면 그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나고 아주 감격해서 어찌할 줄 모를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그 이면에 있는 냉혹한 진실 때문일까?
우리가 길바닥에서 먹고 자고 한 여의도는 소돔과 고모라같이 의인하나 없는 곳이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한 가족처럼 일했던 연봉 9300만원의 정규직 동료의 외면과 계속되는 방해는 우리를 더욱더 뼈저리게 춥게 만들었다. 1800만 원 연봉의 비정규직들은 매일 아침 팔뚝질을 하면서, 눈인사도 피하며 출근하는 정규직 동료를 바라만 봐야 했다. 거기에다 타결 막판에 정규직 이기주의를 결국 드러낸 증권선물거래소(코스콤의 원청) 노조 간부들의 반대로 전원 직접 고용 합의가 무산되었을 때의 그 절망감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날은 거래소 앞마당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분신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분신도 못하고, 고공시위도 못하고, 어디 가서 한풀이도 못한 채 우리는 힘없이 그 자리를 떴다. 자기들만의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정규직 노동조합 운동이 결국 비정규직의 정당한 요구도 묵살해 버리는 현실을 겪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운다 한들 세상이 바뀌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노동자가 저 모양이라면……’ 하는 절망에 또 절망이었다.
그래도 거래소와 코스콤 밖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은데 노동자들이 모아 주신 성금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앞으로 파업 투쟁 때보다 더 많은 과제들이 남았다. 합의서가 이행될 수 있게 11명을 포함한 전원이 하루라도 빨리 복직하게 하는 것, 임금과 업무 배치 등 노동조건을 협상하는 일, 노동조합 활동에 관한 일 등이다. 뉴스에는 타결되었다고 하나 우리는 언제 또 다시 거래소 앞에서 농성을 시작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지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상명하복 식으로 일방적 명령 전달을 받는 의사소통 구조가 아닌 모든 조합원이 자유롭게 토론하여 의사 결정을 하고, 지부장은 대장이 아닌 조합원을 대표하고 조합원과 평등한 위치에 있는 그야말로 민주적인 조합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나긴 파업 기간 중에 깨달았고 그것이 지금도 가장 절실하다. 민주적인 절차 없이 얻은 성과는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