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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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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7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짓밟고 뜯어내도 뽑히지 않을 겁니다

박지숙/ 지평막걸리 노동자

 

 저는 방송 프리랜서 작가였습니다. 전통주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이 있어 취재차 지평양조장을 방문하면서 지평주조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허물어질 것 같은 오래된 양조장 안에서 술 빚는 풍경에 매료되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업인 방송작가를 그만두고는 201341일에 입사해 양조장 생산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술을 빚는 모든 과정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는 아주 힘든 작업이어서 저 빼고 모두 남자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술 빚는 과정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신세계였고, 일원이라는 자부심에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2017년에 품질관리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 무시, 끗발 있는 부서장에 줄서기하는 직원들 사이의 알력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성실, 진심, 정직 이 세 가지만 갖고 일한 결과라고 자부합니다.

지평주조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_ 지평주조 홈페이지 갈무리

 

술이 알려지면서 춘천의 산업단지에 공장을 만들어 대량 생산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평에서처럼 우물물로 술을 빚는 게 아니라 산업단지에 공급되는 상수도를 이용해 기계 설비로 대량 생산을 하면서 본연의 술맛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지평에서 근무했던 생산 현장 직원들과 관리직원들 간에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 대표와 영업 담당 임원은 오직 매출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됐고, 간언과 직언을 마다 않는 저를 전공자가 아니라 능력 부족이라며, 저도 모르는 클레임 건을 제 책임으로 몰아 보직 해임시키고 지평공장으로 좌천시켰습니다. 지평공장은 모든 기계 설비를 철거한 폐공장이 되어 있었고, 독사가 출몰하는 흉가 같은 옛날 양조장터를 청소하고 순찰하는 경비원으로 일했습니다.

 

회사는 저에게 전공하지도 않은 건축 리모델링 업무에, 폐수 허가 업무에, 양조장을 리모델링하는 데 필요한 11억 원을 양평군에서 투자받아 오라는 업무를 맡겼습니다. 아무런 직함도 명함도 없이 경비처럼 일하는 저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건, 하지 못하면 능력 부족으로 저를 자르기 위한 명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씩 영업담당 임원으로부터 겁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포털사이트 맘카페에서 지평막걸리의 맛이 예전과 다르다며 어디서 생산하는지 묻는 글에 익명으로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와 관련된 사람이 저의 댓글을 캡처해서 영업담당 임원에게 보고했고, 그 댓글을 쓴 사람이 저라는 걸 알자 저를 해임시키고 대기 발령을 냈습니다. 한마디로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춘천공장에서 일주일 동안 대기 발령을 받았는데, 공장장 자리 옆 벽과 파티션의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협소한 공간에 작은 의자 하나를 두고 앉게 했습니다. 2018년까지만 해도 저에게 팀장님이라고 하던 후배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저는 면벽수행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 모욕과 참담함과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버텼습니다. 그래도 제가 나가지 않자 이번에는 대표와 임원이 있는 서울사무소로 대기 발령을 내서 불 꺼진 빈 회의실에 일주일 동안을 앉혔습니다. 회의가 있으면 저를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 가운데 빈자리에 앉혀 놓았는데, 저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조차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더군요.

대기발령 당시 의자에 앉아서 면벽수행한 춘천공장 사무실. 사진_ 박지숙

그래도 제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자, 아무 연고도 없는 대구로 발령을 냈습니다. 대형마트에 진열되는 술을 관리하고 채워 놓는 일을 하는데, 숙소도 자비로 구하라고 하고, 차량 유지비 지원도 없다는 겁니다. 발령 나고 3일 안에 내려가지 않으면 그만두는 걸로 알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저 말고도 연구소장으로 있던 아이 셋 가장은 업무상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대표와 영업직원들의 운전기사까지 하면서도 나가지 않자 회사는 그를 전라도 전주로 발령을 냈고, 그제서야 그만두었습니다. 저도 그런 방식으로 내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회사가 저에게 자행한 일련의 비인간적인 작태의 근거를 모아 노무사를 선임하여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부당전보 및 부당해고 구제 신청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답변서에 무연고인 대구로 발령을 내도 되는 줄 알았다며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이후 저는 춘천공장으로 발령을 받아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다른 여직원들은 현장에서 근무하는데 저에게는 공장 내 화장실 청소, 식당 청소, 심지어 남자 직원들 담배 피우는 곳 청소, 공장 주변의 풀 뽑기를 시키는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제가 8년 동안 근무하면서 쌓인 기본급을 깎아 생산직원의 급여 수준으로 낮추려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춘천공장 주변 풀뽑기도 했다. 사진_ 박지숙

저의 업무와 관련 없는, 전혀 다른 현장 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까지 저와 절대로 대화하지 말라고 업무 지시서에 기재까지 해서 회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 용역들도 하기 힘들어하는 폐비닐을 프레스기로 압축하는 업무를 주었습니다. 그 업무를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부터 겨울까지 했습니다. 압축한 비닐을 기계에서 꺼내어 자키(핸드 팰릿)로 옮겨 공터에 쌓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결국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생기고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더니 인대가 부분적으로 파열되었다는 겁니다. 결국 저는 업무상 재해로 산재 신청을 했고, 지평 폐공장으로 좌천과 대기 발령 때 면벽수행하던 괴롭힘으로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아 이 역시 산재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회사는 산재 신청을 한 것을 알고는 압축 업무에서 제외시켰지만 망가진 손가락과 팔꿈치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생산 현장에서 다른 남자 직원들이 한가하게 뒷짐 지며 일할 때 저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손과 팔을 이용해서 반복 작업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팔꿈치 손상이 업무상 재해로 일부 기간 산재 승인을 받았고, 저는 정년 때까지 계속 이 회사를 다닐 계획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손과 팔목, 팔꿈치를 치료받으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남자 직원들만 하는 폐비닐 압축 업무를 여성인 박지숙 씨에게도 시켰다. 사진_ 박지숙

회사를 위해 헌신했더니 헌신짝처럼 취급한 회사 대표와 임원을 저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정신적·육체적으로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도 그만두게 하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한 회사 대표, 임원, 그리고 저를 잔인하게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문을 한 것과 다름없는 춘천공장의 공장장, 생산팀장, 지시받은 대로 했다는 현장의 반장 그리고 무언의 가담자들인 일부 현장 직원들은 지금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저를 아무리 짓밟고 찢고 뜯어내어도 저는 저의 진실, 정직한 정신적 뿌리가 마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한 절대로 그들의 위력과 겁박과 야만적인 작태에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질경이처럼 말입니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