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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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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5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경적 한 번, 손짓 세 번” 응원해 주세요!

전영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조합원 동지들이 출·퇴근하는 노동자들, 지나는 시민들에게 “경적 한 번, 손짓 세 번” 피켓을 들고 변함없이 현대호텔 옥상을 가리키고 있다. 밑에서 지키고 있는 동지들에게 더 많은 과제를 주고 온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함께 하고 있는 현대건설기계 서진이엔지 해고자 이병락 동지는 여전히 강건하다. 이렇게 오늘도 동지들과의 하루를 시작한다.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출·퇴근하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현대호텔 옥상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제공_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저는 용접 부위를 고속 회전체로 갈아 내서 표면을 다듬고 결함 등을 확인하는 그라인더(사상) 일을 16년째 하고 있는 사상공입니다. 울산에서 생활한 지 10년째로 현재는 사내하청업체 본공(하청업체 상용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선소 일은 물량팀(하청업체의 재하청)으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헷갈릴 수도 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본공과 물량팀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임금, 복지 등 차별은 늘 존재했습니다. 명절 연휴, 여름휴가 기간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로 짧았고, 일이 없을 땐 무급으로 쉬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은 휴가비, 성과금도 근속(6개월, 1년 이상, 2년 이상, 3년 이상)에 따라 차등 지급받았습니다. 학자금도 근속 3~5년 이상이 돼야 정규직의 절반 정도 지원받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임금 체불, 4대 보험 체납, 업체 폐업 등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고, 폐업 시 하청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체당금으로 넘기는 게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어 하청 노동자들의 피해가 크다는 점입니다.

하청 노동자들은 이것을 깰 수 있는 방법이 노동조합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와 업체 폐업, 해고로 두 번 다시 현대 계열사의 사내하청에 입사하지 못하게 원청에서 관리를 했기 때문에 노동조합 가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17년 고공농성으로 원청의 블랙리스트 관리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하청 노동자들은 아직도 두려워하며 노동조합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척박한 현장에서 2019년 7월 현대건설기계 서진이엔지 조합원들을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 업체 과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9차례 단체교섭을 진행했습니다. 쟁의권을 확보한 후에는 현대중공업지부(정규직 노조)와 함께 파업도 했습니다. 그러나 원청인 현대건설기계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서진이엔지의 물량 일부를 정규직으로 넘기고, 1년에 900억으로 추정되는 물류비용을 감수하면서 사외로 설비와 물량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진 조합원이 일하던 자리에 현대중공업의 정규직을 전환 배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원청은 더 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서진이엔지를 위장폐업했고, 관행처럼 이어지던 고용승계도 끝내 거부하면서 서진 조합원들은 집단해고되었습니다.

그동안 불법으로 빼앗긴 것을 되찾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조합 활동은 결국 위장폐업과 해고로 돌아왔습니다. 원청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고, 결국 직접고용 시정 지시 명령을 받아냈습니다.

현대건설기계에 과태료 4억 6천만 원이 부과되었지만, 사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버티고만 있습니다. 서진 노동자들이 해고된 뒤 8개월 동안 현대건설기계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시를 받을 뿐 책임과 권한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직접고용 대상 당사자들과 단 한 차례의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가 행정기관인 노동부의 시정 지시 명령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현대중공업그룹 재벌의 무소불위 양아치 습관은 여전했습니다.

서진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은 현대중공업의 전체 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청업체와 동반성장하겠다고 공언했던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직접 지원(하청업체 사장들의 중간 착복을 막기 위해 에스크로 계좌로 직접 지급하거나 별로도 지원)했던 조식·석식 식비, 명절 귀향비, 여름휴가비, 혹서기 연장수당, 피복비 등을 올해 2월부터 기성금(원청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에 포함시켜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겼습니다. 업체 사장들은 임금과 4대 보험 내기도 부족하다며 하청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다시 떠넘겼습니다. 그동안 1000원을 내고 먹던 아침·저녁이 바로 5500원으로 올랐습니다. 심지어, 재활용하는 정규직 노동자 작업복을 하청 노동자들에게만 입으라고 합니다. 밥값, 작업복 차별까지 치가 떨립니다.

매년 총수 일가는 900억 원대의 배당금을 챙기는데 노동자들은 죽고, 잘리고, 빚만 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재벌의 횡포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3월 19일 직접고용 대상 당사자인 서진 조합원 4명이 ‘하청 차별, 복지 후퇴 철회,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기숙사인 율전재 옥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폭력 경비대가 경찰, 119구조대를 대동해서 오함마(큰 망치)와 쇠지렛대로 철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고공농성에 돌입한 4명의 서진 노동자들은 간신히 옥탑 기계실 위로 몸을 피했습니다. 경비대들은 난간에 부착한 현수막을 뜯고 농성 물품을 강탈해 갔습니다. 최소한의 물품 공급도 막혔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강풍, 다음 날 비 예보 등으로 고공농성 유지가 힘든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올라갔던 조합원 동지들과 하청지회는 많은 고민 끝에 12시간 만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던 동지들, 내려왔을 때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양 고개를 떨구던 그 날의 동지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떠날 때 뒤에서 비웃으며 박수 치던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지난 3월 22일부터 서진이엔지 해고자 이병락 씨(왼쪽)과 글쓴이 전영수 씨(오른쪽)이 현대중공업 본관 바로 앞 현대호텔 꼭대기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서진의 이병락 대의원과 저는 너무나 정당한 그날의 요구를 다시 내걸고 3월 22일 월요일 아침, 보란 듯이 현대중공업 본관 바로 앞 현대호텔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그날 비웃던 경비대와 현대중공업에 보기 좋게 한 방 날리고 싶었습니다. 서진 동지들의 승리가 곧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신뢰와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에 제대로 투쟁해 보려고 합니다. 차별과 빼앗기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하청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으로 뭉쳐 저 착취의 공장을 멈춰 세우는 그날을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정기선 3대 세습을 위해 몸집만 키우고 민주노조 파괴, 하청 노동자 노조할 권리 탄압하는 현대중공업 자본에게 요구한다.

당사자 포함 협의 테이블 구성하고 문제 해결 교섭에 나서라!

현대중공업은 건설기계 불법파견 인정하고 직접고용 이행하라!

하청 노동자 복지 후퇴, 밥값·피복·도시락 차별 철회하라!

 

4월 23일 전영수 씨와 이병락 씨는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현장 투쟁으로 전환했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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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