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8. 13:47
월간 <작은책>/살아가는 이야기
<작은책> 2021년 5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그래, 우리 아들 퀴어
강향숙/ 홈리스 야학 글쓰기 교실 자원 교사
우리 아이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MTF, 즉 트랜스젠더이다. 쉽게 말해, 하리수를 떠올리면 된다. 아들이 커밍아웃을 한 것은 내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1년쯤 투병 중이던 때였다.
“엄마, 나 딸이에요.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 멍해지며 깊은 충격에 빠졌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아이가 어릴 적 굉장히 여성적이었던 취향들, 남자답지 않은 행동거지들,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의가사 제대를 했던 모습들이 마치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며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거였구나.’ 이유는 알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가진 신앙, 구원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적 관점으로, 성경에서는 분명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는 빨리 이 아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급해졌다. 목사님 세 분과 아이와 나 이렇게 면담을 했고, 심리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예약했다.
‘어떻게 시한부 암 투병 중인 엄마에게 이럴 수 있나. 불효막심하고 이기적인 놈...’ 계속해서 아이와 충돌했고 새벽에 1시간 넘게 하느님께 기도했다. 제발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이후 아이는 정신이 나간 듯 보였고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심장이 터져 버릴 듯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매일 아이에게 카톡으로 성경 구절들을 보내고, 때로는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으며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이런 시간이 1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거리의 만찬’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나와 입장이 같은 성소수자 부모들이 진심 어린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공감이 되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했고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그런 모임에 가면 나쁘게 세뇌된다며 만류했지만 난 가야만 했다. 난 절대 세뇌당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모임에 나갔다. 거기에서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 내고 그 아이들과 내 아이를 정죄했다. 다른 부모와 성소수자 당사자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에서 우리 아이 같은 MTF의 어머니께서 내게 《동성애와 기독교》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커밍아웃 스토리》 등 몇 권의 책을 샀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신앙과의 갈등이었다. 나는 20여 권이 넘는 동성애와 관련된 기독 서적들을 납득이 될 때까지 읽었다. 또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게이 아들과 엄마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되풀이해서 보았다. 어쩜 바비 엄마는 나의 모습 그대로 복사판이었다. 영화에서 바비는 결국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데, 그 이후 바비 엄마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로 바뀌어 간다. 감동적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지금은 하느님께서는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 하느님의 실수가 아닌, 온전한 모습으로 만드셨음을 믿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많은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고 있고, AIDS로 죽는 수보다 견뎌 내지 못한 사회의 시선과 고통 속에 자살해 사망하는 수가 훨씬 많다.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것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태어났고 감수하며 살아갈 뿐이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동성 결합법’을 천명하셨다. WTO에서는 몇 년 전 동성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대단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며, 그들을 정죄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고도 그들은 사랑해서 그런단다. 개가 웃을 일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이 아닌 광기만이 느껴질 뿐이다. 항상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에서 답을 찾는다.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시다. 그분이시라면 온전히 그들을 감싸 안아 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진심으로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선물 같은 딸을 얻었다. 나는 내 딸을 위해, 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편견에 당당하게 맞설 것이고 투쟁할 것이다. 나는 내 딸을 매우 사랑하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엄마는 누가 뭐라고 하든 죽을 때까지 네 편이야. 사랑해,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