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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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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4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국어를 잘해야 연애를 잘한다

안정선/ 서울 경희중학교 교사

 

작년 이맘때에는 기약 없는 등교 중지로 인해 학교가 4월 중순에나 열렸기에 밀린 수업 채우기 바빠 ‘중2 국어 첫 수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논하며 이름 조곤조곤 불러 보는 마음 데우기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드디어 ‘3월 2일 첫 수업’을 했다.

나의 첫 수업은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한다. 국어가 도구 과목이라서 실생활에도 유용할 뿐 아니라 다른 교과목을 공부할 때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국어를 통해 사회, 문화, 철학, 역사, 과학 등 인생 전반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어를 잘해야 연애를 잘한다’에 힘을 꼭꼭 주어 이 연사 외쳐 본다. 나만 열심히 외치는가? 아니다. 너무 긴장해서 웃지도 못하다가 점점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가던 아이들도 이 대목에서는 두 팔꿈치를 책상 맨 앞 모서리까지 당기고 숨겨 놓은 키 3센티미터를 꼿꼿이 끌어 올리며 선생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국어를 잘해야 연애를 잘한다’, 이 명제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는 분, 부처핸썸(put your hands up)? 누구 국어를 잘하면 연애를 잘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말해 볼 사람? 국어를 잘하면…, 아, 말빨이 좋아진다? 말 된다. 초등학교 때 반에 이런 친구 없었어요? 뭐 엄청 잘생겼거나 멋지거나 그런 친구도 아니에요. 근데 이상하게 여자아이들한테 인기가 좋아. 그런 애 없었니? 뭐, 너라구? 헐~ 그런 친구들 공통점이 뭐게요? 바로 이 OO 능력이 좋아요. OO에 들어갈 정답은? 그렇지, ‘공감’입니다, 공감 능력.

‘공감(共感)’이 뭡니까? 함께 공, 느낄 감.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나누는 거죠. 여러분이 여자 친구랑…. 뭐? 모태 솔로라고? 저런…, 없지만 있다고 치고, 여자 친구랑 만났는데 친구가 이러는 거야, “나 배고파. 떡볶이 먹으러 가자.” 그럴 때 네가 “나 방금 라면에 밥 말아 먹고 왔는데, 뭔 떡볶이?” 그런다? 그럼 넌 걔랑 100일을 못 채운다에 500원 건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내 배가 아무리 빵빵해도 어떻게? “오, 떡볶이 먹고 시포요? 그럼 먹으러 가야지!” 이렇게.

나는 30여 년 동안 남자 중학생만 가르쳐 왔는데 우리 남자 친구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서 안타까워요. 좀 이따가 날씨가 풀리면 여러분은 운동장 가서 친구랑 공 차면서 신나게 놀겠죠. 친구랑 둘이 바람을 가르며 막 달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서 뛰던 친구가 없네? “야, 너 어디 갔냐?” 보니까 바닥에 엎어져 있어. 친구가 피 나는 무릎을 움켜잡고 “아우쒸, 졸라 아파” 이래. 그럼 넌 어떻게 해? 다친 친구를 일으켜 세우고, “어휴, 피 나네. 많이 아프겠다. 자, 내 어깨에 기대. 보건실 가자.” 이래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꼭 “야, 너 뭐 하냐, 찐따새꺄? 얼른 일어나라?” 이러는 친구들 있다? 그러지 마세요, 제발.

누군가 “슨생님, 저는 넘어져 무르팍 까져 본 적이 없어서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물론 공감에는 ‘같은 경험’이 중요하긴 해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넘어져 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저렇게 넘어지고 다치면 무척 쪽팔리고 아플 것이다, 라고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 사람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느끼는 겁니다.

이런 공감 능력은 마치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 기를 수 있어요. 공감은 마음이 하는 일이지만 이 역시 훈련과 공부를 통해 기를 수 있답니다. 어떻게? 문학작품을 많이 읽음으로써. 국어 시간에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이런 영역도 배우지만 특히 우린 ‘문학’을 배우잖아요. 여러분도 작년에 윤동주의 ‘햇비’라는 시도 배웠고 ‘보리방구 조수택’ 이런 소설, 할머니 이야기 나오는 수필도 배웠어요. 우리가 모든 삶을 경험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요.

여러분 전쟁을 겪어 봤나요? 우리는 전쟁을 겪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경험해서는 안 되지만 <몽실언니>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전쟁의 고통과 아픔, 슬픔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아, 전쟁이란 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서 이와 같은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겁니다. 공감 능력이 있어야만 연애도, 친구와의 사귐도,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겠죠?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보다도 이 공감 능력을 길러 주고 싶어요. 마음이 따뜻하고 넓은 사람으로 자라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국어는 외우는 것보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읽는 것들이 더 많아요.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국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지만, 심지어 국어 시험을 잘 못 본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친구를 배려하고 친구의 마음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최고의 보람으로 여길 겁니다. 그런 수업을 위해 최선을 다해 가르칠게요. 그러니 여러분도 나를 믿고 재미있게 수업에 참여해 줄 수 있죠?

새봄의 아이들은 늘 예쁘다. 왜냐하면 작년 11월부터 ‘늦가을 3차 사춘기 도래’를 영접하며 좀 삐딱해지던 아이들마저도 새 학기엔 다 잘해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반짝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그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교사가 ‘너와 내가 힘을 합쳐서 열심히 공부해 보자’라고 말해 주는 거다. 물론 새 학기의 약발은 두 달 정도밖에 안 간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선생님들은 만만해지고, 교생 선생님이 오고 그러면 마음은 늦은 봄날 지는 꽃처럼 흐드러져 버린다. 그럼 그때는 또 다른 희망과 다양한 동기 유발을, 또 다른 마음잡을 이야기를 준비해 수업에 들어가야 할 거다. 다시 힘을 내 여름방학까지 잘 버틸 수 있도록 말이다. 부디 올해는 순조롭게 그 단계들을 다 겪으며 제대로 성장하는 ‘대한민국 중2 남중딩’들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