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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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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4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여섯째 주에는 섹스를 배운다

구본희/ 덴마크 독자

 

덴마크는 주차 달력을 쓴다. 이를테면 ‘3월 말 부활절’이 아니라 ‘13번째 주 부활절’, ‘7월 둘째 주 여름휴가’가 아니라 ‘23째 주 여름휴가’ 같은 식이다. 올해 여섯째 주에 작년 12월부터 시행된 락다운이 부분적으로 풀리면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등교가 가능해졌다.

“내일 학교에 가면 섹스(SEX)에 대해서 배우겠네. 내일부터 여섯째 주 맞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에 들뜬 딸이 가방을 챙기면서 물었다. 나도 예사롭게 대답했다.

“그러네, 학교 가면 SEX 배우겠네.”

작년 이맘때쯤 학교에 다녀온 딸이 큰 소리로 “우 섹스(UGE SEKS)에는 SEX를 배워.” 하고 말했을 때 나는 놀라 되물었다. “학교에서 뭘 배운다고?”

“SEX 있잖아. 남자랑 여자가 왜 다른지,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애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런 것들. 이번 주가 여섯째 주잖아. 그러니까 UGE SEKS(우 섹스)인데, SEKS랑 SEX랑 소리가 똑같으니까, 여섯째 주에는 학교에서 다 같이 SEX를 배운대.”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여섯째 주, 성의 주’ 운동은 이제 덴마크 대다수의 초중등학교가 참여하는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성과 공동체(SEX & SAMFUND)’라는 단체는 매년 학년별 성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에 배포하고, 각 학교의 선생님들이 적절한 교육을 하도록 강연 등을 기획한다. ‘성의 주’ 교육 프로그램은 해마다 변경되는 대표 주제에 맞추어 연령에 따라 성별, 건강, 몸, 관계, 권리, 행복, 사춘기, 성병, 피임, 성관계 등을 교육한다.

‘성의 주’에 실행되는 교육 내용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세심하다. 예를 들면, 음경과 음순이 자세히 드러나는 시각 자료를 활용하기도 하고, 나체의 남녀가 등장하는 영상을 통해 신체 각 부분의 차이를 설명하고, 생식을 설명할 때는 ‘성기 삽입’을 구체화하고, 다양한 성적 지향과 가족의 형태를 다루는 책과 영상을 보여 준다. 학교에서 신기한 성을 배운 딸은 매년 여섯째 주에 질문을 쏟아내고, 우리 부부는 당혹감을 감내하고 있다.

“엄마랑 아빠도 SEX 해 봤어? 지금도 하는 거야? 그런데 왜 나는 동생이 없어?”

얼마 전 한국 국회를 달구었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도 덴마크 작가의 책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덴마크 역사를 대표하는 100개의 물건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국민적 호응을 얻었지만, 한국에서는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에 의해 조기 성애화, 동성애, 동성혼을 조장하는 책으로 규정되었고 급기야 책을 회수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등장해, 여성가족부가 초등학교에서 회수해야만 했던 바로 그 책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페르 홀름 크누센 지음, 담푸스, 2017) 본문 중

 

하지만 성은 이토록 진취적인 덴마크에서도 여전히 뜨겁고 어려운 문제이다. 덴마크 국영방송인 DR의 ‘RAMASJANG(라마샹)’이라는 어린이 채널은 2021년 새해를 맞아 4~8세 아동을 대상으로 ‘John Dillermand(존 딜러맨)’이라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다. John Dillermand은 한국말로 ‘존 고추 씨’로 번역될 수 있겠다. 존 고추 씨는 놀랄 만큼 긴 고추를 가진 성인 남성이다. 성인이지만, 어린이처럼 천진하고 어린이들도 하지 않을 법한 실수를 하는 사고뭉치이다. 그가 사고를 치는 데는 그의 긴 고추가 한몫을 하는데, 그의 고추는 마치 독립적인 등장인물인 듯 존 고추 씨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 길어져 옆집 아저씨 머리 위로 사과를 떨어뜨리거나, 신호등 위로 아이스크림을 던져 신호등을 멈추어 버리기도 하지만, 고장 난 신호등 때문에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돕고, 아이들이 놓친 풍선을 잡아 주기도 하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기도 한다. 어른의 언어로 표현하니 어딘지 더 음란한 느낌이지만, 실제 애니메이션은 귀엽고 천진하다.

‘존 고추 씨’는 방송 전부터 언론과 SNS 등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러려고 수신료를 내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에게 이런 방송을 보게 할 생각은 없다. 국영방송 DR은 도대체 생각이 있느냐’와 같은 분노에 찬 반응과, 남성의 성기가 남성의 이성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행동한다는 발상은 성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발상이라는 의견, 남성의 긴 성기가 등장했다면 여성의 큰 성기도 함께 등장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등의 입장들도 있었다. 반면, ‘고추라는 이름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딱 맞는 만화이다’, ‘자신의 신체를 궁금해하는 연령의 아이들에게 신체를 즐겁게 표현한 것은 신선한 시도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와 같은 긍정적인 의견들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소아정신과 전문의 마그리트 브룬 핸슨은 다음과 같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한다.

“어른의 안경을 통해서가 아닌 어린이의 관점에서 존 고추 씨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법의 음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성인인 우리들의 삶과 경험 때문일 뿐 아이들은 전혀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발가벗고, 자신의 신체를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즐긴다. 아이들은 의사 놀이를 하고, 서로의 몸을 들여다보며 못된 말들을 하는 것을 즐기고 방귀, 고추 같은 말을 하며 크게 웃는다. 존 고추 씨는 바로 이러한 세상의 화자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아이들은 존 고추 씨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부모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확신이 어렵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존 고추 씨를 재미있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고추 씨’ 못지않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Ultra smider tøjet(울트라 스밀러 토이: 옷을 벗어던진 울트라; 울트라는 취학기 아동을 위한 국영방송국의 채널이다)’는 7세 이상의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옷을 벗어던진 울트라’는 직설적으로 신체를 다룬다. 4, 5명의 성인들이 나체로 등장해 청중석에 앉은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어떤 음경이 보통 음경인가?’, ‘여기 다섯 개의 벗은 엉덩이가 있다’, ‘다섯 개의 음소를 스튜디오에 초대합니다’, ‘모발과 피부’, ‘(신체의) 크기’와 같은 소제목으로 보여 주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15분 내외로 방영되고, 처음부터 나체로 등장한 어른들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체인 채로 어린이 방청객들과 소통한다.

시즌 2의 에피소드 ‘(신체의) 크기’ 편에는 키 큰 백인 남성, 키 작은 백인 남성, 과체중의 백인 여성, 마른 체형의 백인 여성, 키 큰 흑인 남성이 출연했다. 출연자들은 키가 크거나 작거나 마른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조금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하는 출연자도 있고, 질병으로 인해 깡마른 자신의 몸이지만 아주 만족한다고 하는 출연자도 있다. 방청객으로 초대된 11살 어린이들은 출연자들을 향해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몸을 갖고 싶은가요?”, “뒤로 돌아 보세요”, “자신의 몸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한다. 질문 순서가 끝난 후 ‘뚱뚱한 사람들은 게으르다, 많이 먹으면 반드시 뚱뚱해지고, 조금 먹으면 무조건 날씬하다’와 같은 선입견에 대해서 대화하고, 선입견 리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프로그램의 PD인 모텐 스코우 한슨은 방송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덴마크 어린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현실적이고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한다.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신체의 모습이 아닌 자연스럽고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접하면서 어린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신체에 대해 보다 현명해지도록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해 별다른 저항이 없을 뿐 아니라 지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보인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신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영화배우나 텔레비전 스타의 몸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몸에 익숙해지는 특별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섯째 주, 성의 주의 주제는 ‘평등한 성은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다’이다.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성평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평등에 대해 학습했고 함께 울트라도 시청했다고 한다. 다양한 피부색과 모발, 문신과 피어싱으로 신체를 꾸미는 사람들, 사고와 수술 등으로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방송을 시청했다는 아이는 ‘다름’에 대해 이야기했고, 취향에 대한 그간의 선입견을 돌아보았을 뿐 외설적이라거나 성관계와의 연관성에 대한 소감은 없었다.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의 다양한 신체를 숨기지 않고 성인인 선생님의 지도 아래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다는 경험은 분명 아이의 삶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 흔적이 자유이고,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는 지혜이고,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배려이길 바란다.

2021년 덴마크에 살고 있지만 마음을 70~80년대 대한민국에 두고 있는 나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에는 환호하지만, 아직 ‘존 고추 씨’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벌거벗은 어른들은 어색하기만 하다. 제 마음대로 늘어나 온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돕기도 하는 음경은 나에게 경계 너머의 것이고, 내 몸을 닮은 정직한 몸을 직시하는 것은 난처하다. 그렇지만 존 고추 씨를 통한 네 살의 즐거움과, 벗은 어른들의 신체에 대한 열 살의 호기심을 인정하는 교육은 필요하다고 본다. 핸드폰, 태블릿, 컴퓨터를 끼고 사는 아이들은 ‘라떼’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성을 접할 것이다. 교육이 선제적으로 흥미롭고 솔직하게 성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성에 대한 공식적이고 발칙한 시도가 더 많은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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