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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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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년 3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연대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순예/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엘지트윈타워분회 소속 청소노동자

 

저는 청소일을 늦게 시작했어요. 다른 일은 안 하다가 오십이 넘어 엘지트윈타워에서 처음으로 청소일을 시작했으니까요. 사십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를 낳아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야간에 일을 시작했어요. 낮에는 아이를 봐야 하기에 주간에 하는 일은 좀 힘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청소일이 올해로 13년이 되었어요.

제가 하는 주된 업무는 사무실 카펫 바닥의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일이었어요. 2층에서 20층까지 매일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했어요. 쉬는 시간은 중간에 2시간 30분 있었고요. 다 힘들지만 특히 청소기가 상당히 무거웠어요. 사무실 전체를 해야 하기에 전깃줄은 30미터가 넘고요, 한 층을 청소하고 나면 전깃줄을 접는 일을 스무 번 반복해야 했기에 일이 끝나면 팔에 마비가 오고, 겨드랑이에 멍울이 생길 정도였어요. 아침에 일 마치고 집에 가면 아이 밥을 못 해 줄 정도로 힘든 일이었어요. 청소기로 직원들 책상 아래 공간 사이사이까지 청소를 해야 했기에, 고개를 숙이는 동작을 반복해서 목이 아파 병원을 많이 갔어요.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고 계속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고도 했어요. 그러나 아이를 키우고 먹고살아야 해서 그만두지 못하고 십 년이 넘도록 했어요. 이번에 농성하면서 길벗한의사회에서 한의 진료 나오신 한의사 선생님이 침이 안 들어갈 정도라고 걱정했을 정도였어요.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선전전하는 이순예 씨. 사진 제공_ 엘지트윈타워분회

또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한 시간씩 더 일찍 나와서 추가로 회장실 청소를 했어요. 이걸 대기라고 부르는데, 1시간 더 벌기 위해 실제로 1시간 30분 이상 일찍 나왔어요. 회장실 청소 시작은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되었거든요. 대기를 하면 저녁을 못 먹고 나오기 때문에 식대를 4000원씩 줬는데, 3년 전부터는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식대도 주지 않았어요. 소장, 감독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없었고, 나 몰라라 했어요. 그래서 간식을 싸 와서 먹었죠. 싸 온 간식을 쉬는 시간인 밤 12시에 대기실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스무 살이나 어린 젊은 여성 감독은 본인이 자는 데 방해된다며 못 먹게 했어요.

이런 갑질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감독은 수시로 1~2만 원씩 거출하여 과일이나 간식을 사서 전체 노동자들이 나눠 먹고 남은 돈은 본인이 챙겼어요. 그러던 중 2019년 7월에는 야간 노동자 24명에게 2만 원씩 걷어 총 48만 원을 저에게 맡겼어요. 그 돈으로 매일같이 저녁 출근길에 간식을 사 와서 씻고 깎아서 24명에게 나눠 주라고 했어요. 그렇게 한 달 보름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수박같이 무거운 과일을 사 오라고 해서 남편과 아들이 차로 실어 주기도 했어요. 그러다 감독이 간식비를 달라고 하여 주었더니 그 돈은 본인이 챙겨 버리더군요. 너무 힘들고 비참해서 감독에게 대들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재계약이 안 될까 봐 참고 견뎠어요. 막내가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 않아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8년 정도 조장을 했는데, 전체가 모인 출근 미팅 때 갑자기 조장 수당 5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지금 돈이 없으니 내일 주겠다고 했으나, 당장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에 동료들에게 빌려서 줬어요. 아무리 감독이지만 동료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이런 수모를 겪으니 너무 비참했어요. 용역,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갑질이 있어도 고용불안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부당한 처우를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 12월 야간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감독의 갑질과 타 건물로 전환 배치를 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실제로 트윈타워 동관은 2020년부터 다른 업체로 용역 계약이 되어 동관 노동자들 중 7명은 엘지 다른 건물로 보내지기도 했어요. 이들은 일 년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야간조보다 조금 빠른 10월 말에 가입한 주간조 노동자들과 함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이 되었어요.

엘지트윈타워 로비에서 파업 집회 중인 청소 노동자들. 사진 제공_ 엘지트윈타워분회

우리는 트윈타워에서 있는 9시간 중 쉬는 시간을 많이 잡아 실제 돈을 받는 시간은 6시간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노조 만들고는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고 돈 받는 시간은 7시간이 되었어요. 주간조는 점심시간을 많이 줘서 하루 7시간 30분밖에 돈을 못 받고, 토요일에 격주로 나와 무급으로 일했는데, 노조 만들고는 하루 8시간 돈을 받고, 토요일에는 안 나가게 되었어요.

조금씩 좋아지고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있는데 교섭에는 회사가 불성실했어요. 청소노동자들을 함부로 부려 먹지 못하니까 그게 싫었나 봐요. 그러다가 갑자기 용역업체를 계약 해지하고 전원을 해고했어요. 우리는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고용승계하라고 외쳤지만 엘지는 결국 외면했어요. 새해 첫날에는 밥과 전기도 끊고,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했죠. 그런데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여론이 나빠지자 다음 날 밥과 전기가 들어왔어요. 파업 전부터도 그랬지만 연대의 힘을 절감한 순간이었어요. 우리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회사는 위로금으로 회유하고, 다른 사업장에 취업시켜 준다고 사탕발림하지만 우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해고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흔들리지 않고 있어요. 청소노동자 무시하는 엘지의 버릇을 고치고, 우리의 일자리 트윈타워로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파업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사회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현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가진 자들이 약자들끼리 싸우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이번에 연대의 중요성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온갖 응원이, 물품과 메시지가 오는데 우리도 앞으로 갚으며 살자고 다짐했어요. 우리가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많이 배웠어요. 가족들도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이제는 응원하고 있고요. 반드시 이겨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노동조합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거예요.

(구술 정리_ 손승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