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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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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인지 집착인지
   김신애/ 가사 노동자


언젠가 어머님 일로 신랑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시부모님이 서울에 오신 어느 날 저녁. 반찬으로 된장국을 끓여 놓았는데 외출하고 들어오신 시부모님이 동태찌개가 드시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벌써 6시가 가까워져 “내일 끓여 드릴게요” 했는데 싫다고 하시며 지금 끓이라고 하셨다.

주섬주섬 챙겨서 집을 나섰는데 눈물이 흘렀다. 동태를 사다가 다시 저녁을 지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신랑을 마중 나갔다.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다른 말은 필요없다. 그저 “수고했어” 한마디면 모든 것이 평화로우련만, 이 바보 같은 신랑은 여자 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래서? 해 드렸으면 된 거 아니야? 그 정도도 못해? ”

위로받고 싶은 나의 마음에 독침을 꽂는다.

“뭐야?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

그렇게 몇마디 주고받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감정이 격해진 신랑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내게 말했다.

“너한테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굶더라도 우리 부모님께는 제일 좋은걸루 해 드리고 싶어.”

여기서 너희들은 나와, 아이들 즉 처자식이다.

그 깊었던 절망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이 저렇게 절절한데, 저토록 눈물겨운데, 그곳에다 한마디 더 하면 한 대 칠 기세다. 단언하건대, 위의 언쟁에서 부모님에 대해 막말하고 큰소리치지 않았다. 아마 그랬다면 그렇게 말싸움으로만 끝나지는 않았을 터. 남편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좋지 않은 소리는 단, 한마디도.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분들께는 반쯤 닫아 버렸다.

낼모레면 40인 아들인데, 그 아들을 일곱 살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마스크 하고 다녀라, 찬물 절대 먹지 말고 미지근하게 해서 먹어라, 머리 스타일은 이렇게 해라, 옷 색깔 맘에 안 든다, 누가 고른 거냐, 라면은 절대 먹지 말아라, 오늘 저녁에는 뭐 해 먹였느냐… …. 이젠 나에게 맡겨도 될 일들을 수시로 체크하시는 어머님. 참 힘들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둘 사이의 묘한 감정. 그 사이에서 상처받고 아파했다가 마음을 닫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홀시어머니도 아니다. 버젓이 아버님도 곁에 계시는데, 왜 그토록 아들에게 집착하는지 그 까닭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제주도 토박이인 시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할 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단다. 첫째, 자신의 아들이 키가 작기 때문에 커야 하고 둘째, 반드시 제주도 여자이어야 하며 셋째, 예수쟁이는 죽 ,어 ,도 싫다고 하셨다고 한다. 어쩜 그렇게 세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지 않는 며느리감을 구했는지 우리 신랑 재주도 참 용타. 하지만 어떻게 허락을 받아 왔다. 그때 내 나이 스물셋. 어린 거 하나는 맘에 쏙 들었다는 어머님.

첫 대면은 종로의 어느 커피숍이었다고 기억한다.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어머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으셨다. 첫눈에 탐탁지 않음을 느꼈지만 난 별 문제 삼지 않았다. 나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건강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허나 돌이켜 보니 철없던 마음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하고, 장손을 낳았다.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큰아들에게서 얻은 손자이기에 각별하셨으리라,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랬지만… ….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데 손주가 너무나 궁금하신 어머님은 15일 만에 불러들이셨다. 너무나 어렸던 24살의 초보엄마의 막막함을 다시 떠올리니 에효… ….

“찬물에 손 담그면 안 되니, 설거지는 고무장갑 꼭 끼고 해라.”

허걱! 여하튼 이런저런 모든 말씀에 군소리 없이 순종하고 밤에는 어머님 몰래 훌쩍이는 날이 잦아졌다. 그 끔찍한 신랑이 그때는 어린 아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어느 날 어머님이 잔소리하실 때 약간의 눈짓을 내게 보낸 적이 있다. 니가 이해하라는 듯한 눈빛. 어머님 상처받으실까 봐 아무 말 안 하고 보낸 살짝의 눈빛. 그 효자의 맘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 작은 눈짓에 배신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니들 눈에는 나는 보이지 않느냐”며 호통 치신 후 그 길로 제주도로 내려가셨다. 석 달 동안 우리의 전화도 받지 않으셨다. 결국 뚜렷한 영문도 모르고 나와 신랑은 빌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가 그 눈짓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짐작만 할 뿐 신랑도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이것이 정상적인 관계일까. 어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가 답답했다.

친정은 기독교 집안이다. 어릴 적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결혼 후에도 신랑은 흔쾌히 니가 원하는 것이니 다니라고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고 약속을 했다. 허나, 어머님이 오시면 갈 수가 없다. 신랑이 결혼 허락을 받을 때, 못 다니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미칠 것 같았다. 가고 가지 않고를 떠나서, 이런 조건이 말이 되는가? 일방적으로 어머님께 맞추고, 눈치 보고, 비밀스러워야 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단 한마디도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 못하는 그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결국, 그렇게 깊게 집착하는 어머님께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며느리에게 던지시는 인신 공격, ‘뚱뚱하다, 제주도 여자가 아니어서 알뜰하지 못하다, 좋은 대학이 아니다’ 등등 앞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저 내 눈치만을 살피며 나보고만 참으라 했다. 그 깊은 상처는 아직 남아서 날 힘들게 한다. 어느 날, 그 상처 때문에 너무 아파서 내가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자기야, 내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자기한테 미안하지만 당신은 부모에게서 정상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거 같아. 어떻게 생각해?”

그 물음에 그는 시인했다. 그리고 오히려 물었다. “그러는 너는 독립했냐?” 하하. 한국의 여자들은 내 부모의 품을 떠나, 호적을 파서, 그놈(?) 하나 믿고 시집을 온다. 과감히 내가 살던 환경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감히 그가 내게, 부모에게서 독립했느냐고 묻는다. 우습다. 우스워 죽겠다.

아들. 내게도 있다. 여덟 살. 그 꼬맹이었던 것이, 성장하고 있음이 보인다. 그 마음은 부쩍 자랐다. 대화를 해 보니 알겠다. 나는 아들과 많은 대화를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친구 문제, 학교 문제, 고민되는 것은 없는지, 학원은 힘들지 않은지. 그렇게 대화가 쌓이니 우리 아이는 생각보다 마음이 깊고 생각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어느 날 길을 걸으며 “엄마가, 할머니를 싫어하는 것 같니?” 하고 물었다.

“싫어한다기보다 음… … 좋아하는 거 같지는 않아. 외할머니한테는 잘 웃는데, 할머니한테는 잘 안 웃잖아.”

후후. 아이의 마음을 짐작했기에 물었던 것인데, 그랬는데도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키워야 할까. 두렵다. 내가 위에서 열거한 집착. 그 과정을 나도 밟을까 두렵다.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내 모습에서, 믿지 못하고 조마조마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그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을까. 큰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나는 그래도 버젓한 직장을 갖고 있었다. 큰아이 때문에 공부도 더 할 수 없었다. 큰아이 때문에, 큰아이 때문에… …. 갑자기 섬뜩해진다.

시어머니는,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밖에 모르고 살았기에 자식들을 다 결혼시키고 나니 허무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걸고 했던 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 이젠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암담했을 수도 있겠다.

이쯤 되니,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가장 큰 사랑은,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정신적으로 놓아주는 것이라 한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그 사랑을 나는 베풀 수 있을까.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 듯싶다. 또한 자식만을 바라보며 시간 보내지 않도록 뭔가를 배워야 하겠다. 나 스스로를 위해 투자를 해야겠다. 약간의 시간, 약간의 비용이 들더라도. 내 아이들을 온전히 놓아주고, 그저 뒤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려놓는 준비를, 나를 위한 투자를 부지런히 해야 할 듯싶다.

비가 온다. 늦게까지 이불에서 부비대며 깔깔거리는 두 아이의 웃음 속에서, 오늘도 이쪽의 아들, 손주 소식이 궁금해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실 시부모님을 떠올리며 갈등한다.

전화를 할까, 말까… ….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