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20년 4월호
책이 이끄는 여행
조선왕조실록의 전염병과 코로나19
글_ 김용심, 사진_ 정인열
세상이 온통 코로나 이야기다. 치명적인 전염력을 지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잠시 주춤하나 싶더니, 신천지라는 희대의 종교 단체 활약으로 확진자가 수천 명을 넘어서며 나라를 ‘심각’ 상태로 만들었다. 몇백 원 하던 마스크는 몇십 배가 뛰었고 거리는 온통 마스크 쓴 사람들뿐이다.
옛날에도 전염병이 돌면 이렇게 난리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갖가지 전염병, 역병, 여역(癘疫, 전염성 열병)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제5대 임금 문종은 나날이 번지는 전염병을 걱정하며 친히 ‘악병을 구료하는 글’을 써서 내리는데, 그 글이 지금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병의 초기에는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는 것과 같아서··· 타인에게 접촉만 하면 곧 전염이 확대되어 마치 불이 땔감을 얻은 것처럼 한없이 연소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병에 걸린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인적이 끊긴 섬에 몰아넣고 의복, 양곡, 약품들을 넉넉히 주어 타인에게 더 번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문종실록》 1년 9월 5일)
그 뒤에 붙인 “다만 (병자들을) 빠짐없이 찾아내기란 실로 어려워서, 필연코 다 찾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병을 숨기는 자들은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번 달은 4월인 만큼 4·3항쟁 책을 들고 제주도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항공권 예매를 하려던 날, 제주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절로 손이 멈칫거렸다. 갈까 말까 주저하다 대신 떠올린 섬이 강화 교동도였다.
강화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교동도는 오랫동안 왕족의 유배지였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섬이라는 이점이 있어 격리와 감시가 쉬웠기 때문이다. 멀게는 고려의 희종, 강종, 우왕이, 조선 시대에는 안평대군, 영창대군, 연산군 같은 이들이 이 섬으로 유배되어 거의 이 섬에서 죽었다.
▲ 연산군 유배지. ⓒ작은책(정인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연산군과 전염병 이야기가 흥미롭다. 흉년과 역병이 한창이던 때, 연산군이 낙정미를 왕실 내수사에 보내라고 지시한다. 낙정미란 도정 과정에서 누락된 쌀을 뜻한다. 이에 구휼미로 내줘도 모자랄 쌀을 왕실에 바치라는 말에 간관들이 들고일어나자 연산군은 “니들은 내 신하 아니냐?”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전염병이 크게 일어나니 두려워하여 덕을 닦고 살피기를 청한다’ 하는데, 전염병은 본디 수양하여 그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려워하여 덕을 닦아 천재지변을 없애는 것은 다 옛날 성군들이나 했던 일이고··· 어진 임금이었던 요제와 탕왕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나보고 어쩌라고?”(《연산군일기》 9년 2월 15일)
그리고 열흘 뒤에는 아예 알이 굵은 밭벼쌀을 100석이나 내수사에 보내라고 지시한다. 고통받는 백성들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연산군이 마지막에 머문 곳이 바로 교동도다.
예전에는 배로 가야 했던 교동도는 2014년 바다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차로도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리를 지나는데 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니, 뭐가 이리 예뻐. 드넓은 바다와 눈부신 햇살, 간드러지게 뻗어 나간 해안선이 그림처럼 눈에 박힌다.
▲ 교동도 봉소리 앞 바다. ⓒ작은책(정인열)
교동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교동 제비집이었다. 진짜 제비집은 아니고 교동도 안내 센터를 일컫는 말인데,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 예방 차원으로 일시 폐쇄한 것이다. 코로나의 여파는 이 작은 섬에도 여지없이 찾아와 있었다.
제비집 옆의 대룡시장을 구경한 뒤, 가까운 고구리 조선 시대 한증막을 가 보았다. 돌과 황토를 이용해 둥글게 쌓은 한증막은 치병과 탕욕을 위한 시설로, 70년대 초까지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약도, 치료도 받기 힘든 백성들은 정 아프면 이런 한증막에 와 뜨거운 열로 고달픈 몸을 달래지 않았을까.
▲ 교동도 고구리에 있는 조선시대 한증막. 돌과 황토를 쌓아 만들었다. ⓒ작은책(정인열)
중종 때에는 전염성 열병인 여역이 유행했는데, 중종 21년의 기록을 읽다 보면 지금의 질병관리본부를 보는 기분이다. 각 도의 관찰사들이 연일 임금에게 도의 상황을 보고한다.
“도내에서 여역으로 죽은 사람이 460여 명입니다.”(충청도)
“도내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총 560명입니다.”(전라도)
“도내에 유행병으로 죽은 사람이 삼척 41명, 양양 58명, 간성 9명, 고성 18명입니다.”(강원도)
그리고 뜨거운 여름 막바지에 반가운 소식이 올라온다.
“전라도에 전염병이 그쳤다.”(《중종실록》 21년 7월 3일)
코로나도 날씨가 더워지면 그렇게 그쳤으면 좋겠다. 새삼 바라면서 한증막을 떠나 교동읍성을 향했다. 한때는 번창했을 읍성은 지금은 남문 하나만 남아 있다. 읍성 안으로 들어가자 흔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니 밭둑 사이로 두 개의 돌기둥이 보인다. 이제는 허물어져 사라진 옛 교동 관아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 연산군이 한때 머물렀다는, 볼품없는 연산군 적거지가 있었다.
▲ 교동읍성 남문. 오래전 폭풍우로 무너진 것을 2017년에 새로 세웠다. ⓒ작은책(정인열)
▲ 교동 관아 부지에 남아 있는 돌기둥. 다 무너지고 기둥만 남았다. ⓒ작은책(정인열)
▲ 연산군이 머물렀다는 적거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작은책(정인열)
연산군은 교동도에 유배된 지 3년 만에 병에 걸린다. 담당자가 “연산군이 역질로 몹시 괴로워하여 물도 마시지 못할뿐더러, 눈도 뜨지 못합니다” 하고 보고를 올리는데, 바로 그 이튿날인 11월 8일, 연산군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역병 걸린 백성의 구휼미를 빼돌린 죗값을 그렇게 받은 것일까.
연산과 달리 성군 세종은 역병이 돌자 먼저 나선다.
“임금께서 전염병 걸린 자를 구호하지 못하고, 혹 생명을 상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사람들을 시켜서 거리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때 소격전(昭格殿)의 종인 눈먼 여자 복덕이 아이를 안은 채 식량이 끊어져 거의 죽게 되었다. 이에 임금이 놀라 즉시 소격전의 책임자를 추국하고··· 복덕에게는 쌀과 콩을 한 가마니씩 주었다.”(《세종실록》 14년 4월 23일)
소격전은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도교 관청이다. 유교 국가 조선에서는 은근히 눈치를 보던 곳. 거기에 소속된 눈먼 여종이라니, 복덕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희한하게도 병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혹독하게 찾아오는 듯하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고전 《총, 균, 쇠》에서 유럽인이 토착 원주민을 몰아내고 신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병균’을 들었다.
“인디언이 죽은 주된 이유는 구세계의 병원균이었다.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 이 사악한 선물(전염병균)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병균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하지만 가축을 키우며 일찍부터 면역력을 키웠던 유럽인과 달리, 청정한 지역에서 자유롭게 살던 원주민들은 그 지독한 균을 이겨 내지 못했다. 유럽의 병원균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90퍼센트를 몰살시켰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 예전과 같은 집단 떼죽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역병이 돌면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언제나 힘없는 약자이다.
연산군 적거지 너머로 오래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마을을 지키듯 서 있는 나무는 우아하고도 웅장하다. 그 수려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로가 된다.
▲ 교동 읍성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작은책(정인열)
소격전의 노비 복덕이 생각났다. 먹을거리도, 약도, 한증막을 찾을 기력조차 없었을 눈먼 복덕은 더듬더듬 이런 수호목을 찾아 빌지 않았을까. 굶지 않기를, 병이 낫기를, 제발 아기가 건강하기를. 그 소원을 하늘과 별이 들었는지 인자한 임금 세종이 복덕을 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비단 전염병 걸린 사람뿐만 아니라, 유리하여 양식이 떨어진 사람들도 죄다 찾아서 아뢰라.”
그들 또한 구하겠다는 의지. 정말이지 세종답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 또한 확진된 병자들만이 아니다. 자가격리된 가족들도, 전전긍긍하는 이웃들도, 무너진 경제에 우는 소시민과 자영업자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전염병은 언젠가는 잡힌다. 하지만 병이 지나간 뒤에 피폐해진 백성의 삶은 또 다른 얘기다. 그것마저 보듬는 것이 아마도 통치의 몫이리라. 어려운 상황에서 애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실록의 한 부분을 전한다. “백성의 굶주림과 전염병을 구휼할 적에는 타는 불을 끄는 것처럼 하라.”
불은 꺼지고 삶은 여전히 계속되리니, 모두 힘을 내자!
* <작은책> 편집위원인 글쓴이는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