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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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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이 졸업했고 나는 또 조금 컸다

구자숙/ 인천부개초등학교 교사

 

 

아이들이 엄마 키만큼 크는 6년 동안 곁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챙겼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나는 학교 공간에서 애달아하며 고생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급식실을 찾아갔다. 점심 급식 준비로 정신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영양사 선생님과 급식실 조리원님들에게 딱 1분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모두 모시고 인사를 드렸다.

“6년 동안 여러분이 이만큼 키와 몸과 마음을 크게 하는데 가장 많이 기여해 주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맛있는 밥 하루도 빠짐없이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할게요. 자세 바로. 인사.”

19명의 아이들과 함께 고개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얼굴을 드는데 눈앞에 있던 모든 이들이 눈물을 뚝뚝 떨구고 계셨다.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간 맞춰 몇백 명의 밥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얼마나 많이 담길지. 작은 실수 하나도 큰 사건인 양 떠들어 대는 사람들 덕에 얼마나 노심초사할지. 맛있는 건 얘기 안 하면서 맛없는 건 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밥을 해 낸다는 게 얼마나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인지. 그 모든 긴장감과 고단함을 졸업하는 아이들의 감사합니다 한마디에 위로받고 계셨다.

밥 맛있게 먹고 쑥쑥 커 줘서 고맙다고, 중학교 가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여기서 20년 일했는데 이렇게 인사하러 와 준 아이들은 너희들이 처음이라고, 너무 고맙다는 급식 조리원님 인사말을 마음에 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은 청소 노동자! 건물이 세 채가 연결된 3층짜리 학교를 단 2명이 어떤 기계의 도움 없이 청소를 하신다. 여름에는 땀을 뚝뚝 흘리며, 겨울에는 추운 날도 편하게 움직이려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수많은 화장실과 길고 긴 복도와 사람들이 드나드는 현관을 돌본다. 구역이 달라 함께 계시는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2층 화장실 앞에 함께 계셨다. 너무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며 종종 달려가 내일 졸업식인데 인사드리러 왔다고 했다.

여러분이 쾌적한 공간에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를 늘 깨끗하게 관리해 주신 분들입니다. 이분들 덕에 더 행복하게 학교생활 했습니다. 인사드릴게요. 자세 바로. 인사.”

두 분에게 졸업 축하 인사를 부탁드렸는데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졸업을 축하해. 너희들이 학교를 깨끗하게 써 주어서 청소하는 게 한결 수월했어. 그리고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고맙다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되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아이들 19명과 나는 이렇게 학교를 샅샅이 돌면서 그간 감사했던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물론 아이들은 인사하는 와중에도 앞 친구를 밀거나 뒤 친구를 밀치면서 몸 장난을 치고 그분들이 축하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옆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딴짓을 했다. 하지만 고개 숙여 다함께 감사합니다 인사하던 순간 울려 퍼지던 아이들 목소리가 아름다웠고 그 인사를 받던 이들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났다. 앞으로 6학년을 맡으면 이 활동은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졸업했고 나는 또 조금 컸다.

posted by 작은책